서부교회01
사울,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
신영길 · 삼상9:1-10
제작일 2026. 8. 25.
AI 설교 정리
사울의 배경과 그의 결핍,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교훈이 소개된다.
본문사무엘상 9:1-10
- 사울은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훌륭했지만, 문제 해결 능력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 사울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지만,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났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자,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에 따라 사울 같은 지도자를 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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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배경과 특성
- 사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의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잘생기고 키가 큰 외모를 가졌다.
-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암나귀를 잃어 사울에게 찾아보라고 했으나, 사울은 암나귀를 찾지 못했다.
- 사울은 성실하고 효성이 있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지혜를 구하는 능력도 없었다.
하나님의 인도와 사울의 반응
- 사울이 암나귀를 찾지 못하자, 함께 간 사원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라고 조언했고, 사원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은을 준비했다.
-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기 위해 물을 길어오는 소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물에서 만난 소녀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인물을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만,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훈
- 사울은 겸손한 성품을 보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소홀해지고 결국 하나님을 버린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를 왕으로 삼으시며, 그렇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배제하신다.
- 사울은 온 이스라엘의 기쁨을 사모하는 지도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왕으로 삼지 않으셨다.
- 하나님의 일하심은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되, 자기 중심이 아닌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에 들어간다.
-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요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사울 같은 지도자가 등장했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한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제가 함께 나누실 말씀 사무엘상 9장 1절에서 10절까지 찾겠습니다. 사무엘상 9장 1절에서 10절까지 말씀 사무엘상 9장 1절에서 10절 찾으셨으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라세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사울의 아비 이키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원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며 그들이 숲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하는 사원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사울이 그 사원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이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다라. 사울이 그 사원에게 이르되 내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 9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그 왕 사울이 처음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바로 앞에 8장에서 우리가 함께 살펴봤는데요. 백성들이 요구한 왕이었죠. 바로 어떤 왕이에요? 열방과 같은 왕. 그들이 원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도 하나님도 그들의 그런 요구를 기뻐하지 않으셨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줘라 허락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에 진노하심으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직은 진노가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 이스라엘의 왕이 어떤 왕인지 우리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봐도 그렇죠. 하나님께서 대부분 우리가 뭔가를 선택하고 판단을 할 때에 사사건건 우리에게 개입하셔서 이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지 않으시죠. 그런데 우리가 나중에, 나중에서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죠. 그 일을 다 지나가고 나서야 아,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사울이 왕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사울이라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발견하고 나누는 시간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9장 1절을 보시게 되면 기스라는, 그러니까 사울의 아버지죠. 기스라는 사람을 소개합니다. 쭉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누구의 아들이고 손자고 증손이고 현손이다 이런 식의 인물 소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그죠? 그런데 우리가 사무엘 상 안에서도 이런 소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를 소개할 때 그랬어요? 누구의 아들, 손자, 증손, 현손 이런 식으로 사무엘 상 1장 1절에서 처음에 엘가 나라 하는 사무엘의 아버지죠. 그를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두 번 정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사무엘 상의 구조는 대조적인 구조가 계속 유지가 됩니다. 그래서 초반부에서는 한나의 집안과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집안이 대조가 되고요. 중반으로 넘어가면 사무엘과 사울 이런 사람이 대조가 되고요. 그 이후부터는 사울과 다윗이 대조가 된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9장 1절에서 기스를 소개하는 방식이나 1장 1절에서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 나를 소개하는 방식이 동일합니다. 동일하지만 사무엘 상 전체 대조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을 이제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아버지를 소개하는 데서부터 사무엘과는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점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뭐냐면 사울에게 없는 것과 있는 것 순서는 있는 것을 먼저 찾아보고요. 사울에게 없는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1절을 보시게 되면 베냐민 집화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사울이라는 사람 엄밀히 말하면 그 기스 아버지가 어느 집하여? 베냐민 집화 사람이다. 그리고 유력한 사람이다. 이런 정보를 먼저 소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베냐민 집화, 베냐민 사람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경이 어딘지 아십니까? 베냐민 사람, 베냐민 집화 이게 거의 주인공처럼 나와요. 사사기입니다. 사사기 중에서도 맨 뒷부분 19장에서 마지막 21장까지는 거의 베냐민 집화가 주인공이에요. 그런데 그게 좋은 내용이에요? 안 좋은 내용이에요? 안 좋은 내용이에요. 베냐민 집화가 주인공이에요. 그래서 한 레위인이 자기의 첩을 찾으러 갔다가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밤이 깊어가지고 유숙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베냐민 집화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나쁜 사람들 비류들이 시비를 걸어가지고 그 과정에서 레위인의 첩이 아주 잔인하게 죽게 되 죠. 그 일 때문에 레위인이 이 사실을 모든 이스라엘 집화에게 알리게 되고 그것을 안 집화들이 베냐민 집화에게 잘못한 사람을 벌할 수 있도록 요구를 하지만 베냐민 집화가 그럴 수 없다 해가지고 베냐민 집화 대 나머지 11집화가 전쟁을 일으키게 되죠. 당연히 싸움은 11집화가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 전쟁을 통해서 베냐민 집화가 멸족의 위기에 처합니다. 전멸당할 뻔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제서야 늦게서야 깨닫고 아이쿠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한 집화가 사라질 뻔했다 해서 뒤늦게 간신히 베냐민 집화를 살린다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의 그 마지막을 정말 우울하게 만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베냐민 집화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울의 가문은 정말 다른 집화들이 뒤늦게 깨닫지 않았다면 그래서 다 죽어가는 사람 이렇게 심폐소생술 하듯이 살려내지 않았으면 베냐민 집화는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집화가 얼마나 작았겠어요. 그 수로 보나 여러가지 면에서 그런데요. 그 집화에서 기스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요? 유력한 집안이었다. 그 다 죽어가던 베냐민 집화에서 유력한 사람이 나온 거예요. 유력하다는 것은 힘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힘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어쨌든 유력하다라고 하면 재산이 많든지 아니면 군인이면 물리적인 힘이 세든지 아니면 그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 정치적인 영향력 이런 것들을 다 통틀어서 유력하다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 그러니까 어쨌든 이 기스는 자기들 집화는 미약했는데 기스라는 이 사람은 그 집화 중에서도 굉장히 유력한 가문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집안은 굉장히 보통 집안이 아닌 거죠. 다 죽어가던 집화에서 유력한 가문으로 살아난 그런 집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에요. 배경 좋죠. 게다가 그는 2절 보시게 되면 기색의 아들이 있는데 이름은 사울인데요. 뭐라고 되어 있어요? 준수한 소년이라. 준수하다. 무슨 뜻이에요? 잘생겼다는 거예요. 서부에도 잘생긴 형제가 있었죠. 지금은 없어요. 준수한 형제였습니다. 사울은 준수했습니다. 그리고요. 그의 키가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딱 같이 서 있으면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어딜 가도 그냥 생긴 것도 눈에 띄는데 키까지 커가지고 아무데나 가있어도 눈에 띄는 그런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뭔가 하나 해도 할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용받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3절 보시게 되면 한 사건이 나오는데요. 사울의 아들 키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가지고 아들 사울에게 야 나귀들을 좀 찾아와 이렇게 시키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암나귀를 찾아보시게 되면요. 집안에서 키우는 그런 가축 중에 하나죠. 그런데요. 이 암나귀는 특별히 재산 목록에 들어갑니다. 무슨 뜻이에요?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동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렸는데요. 몇 마리를 잃어버렸을까요? 몰라요. 어쨌든 암나귀들이에요. 그러니까 기스 집안에는 암나귀가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스의 사울의 집안을 쭉 살펴보건대 유력한 집안, 그 다음에 잘생긴 외모, 그 다음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그런 집안 출신이 바로 사울이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죠. 여기까지 봤을 때 우리 아가 9장 1절은 1장 1절하고 인물 소개 방식이 동일하다 이렇게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무엘 집안하고 대조가 됩니다. 사무엘 집안은 그 시작이 어떻게, 무슨 얘기로 시작해요? 한나의 집안은 한나는 무자하였다라. 그 집안의 결핍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집안은요. 뭐가 있었는지, 뭐가 풍족했는지 이것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을 하죠. 그리고요. 아직 진도가 거기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만 뒤에 나오는 다윗이 등장할 때를 보면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7장 12절 제가 읽겠습니다. 다윗은 유다, 베들렘, 에브라스 사람 이세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세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인 자, 다윗의 아버지 이세를 소개하는데 뭐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늙었다. 이것밖에 없어요. 이세에 대해서 할 말은 늙었다. 그리고 아들이 많았다. 다윗에 대해서는요. 다윗에 대한 소개는 15절에 나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렘에서 그 아비의 양을 칠 때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다라는 거죠. 그런데 어디서요? 베들렘. 여러분 베들렘이 어딘지 안식일 오후에 성경공부 때 3일 전이군요. 말씀드렸었는데 혹시 기억하십니까? 베들렘이 북부에 있을까요? 중부에 있을까요? 남부에 있을까요? 베들렘. 찍어보세요. 셋 중에 하나예요. 북부, 중부, 남부. 남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있어요. 혹시 기억하세요? 이스라엘 땅은 북부와 중부와 남부 중에 어디가 제일 살기 좋을까요? 3일 만에 잊을 수 있어요. 있습니다. 제일 살기 좋은 동네는 북부예요. 아래쪽으로 갈수록 뭐가 별로 없어요? 비가 없어요.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베들렘에서 양을 친다는 건 저 푸른 초원에다가 무슨 초원에다가 양 키우는 농장처럼 양 풀어놓고 풀 메기는 그런 데가 아닙니다. 풀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는 데예요. 그리고 야생, 들짐승으로부터 양을 보호해야 하는 일이 당시에 목동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당시에 3D 직업 중에 하나였던 거죠. 그러니까 다윗은 집안을 봐도 늙은 아버지밖에 없고 다윗은 양을 키우던 그런 사람이었다. 이렇게밖에 소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얼마나 배경과 가진 것이 넉넉한 그런 사람 그런 집안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인물을 왕으로 세우시려고 하는 걸까요? 이유가 뭘까요? 지난 시간에 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게도 열방과 같은 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요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열방과 같은 왕이라는 게 뭐예요? 이렇게 배경 좋고 능력 있고 외모 좋고 부유한 그런 배경을 가진 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첫 번째 왕으로 세우신 이유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바로 그 사람을 찾아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3절까지밖에 안 읽었죠. 이런 사람이 꼭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사울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교만했고요. 명예욕에 빠졌고요.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아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죠. 그러면 이제 사울에게 없던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있는 것을 찾아봤는데요. 그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첫 번째 4절에서 5절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2장 4절 5절입니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다니돼 찾지 못하고 살림 땅으로 두루다니돼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다니돼 찾지 못하니라 그들이 숲 땅에 이를 때 사울이 함께하는 사원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우친이 암락이 생각은 보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암락이들을 찾아오라고 했는데 사울이 찾다 찾다가 다 못 찾았어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해요? 에이 못 찾겠다. 가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여기도 찾아봤고 저기도 찾아봤고 그랬어요. 그죠?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습니다. 굉장히 성실한 그런 사람이죠. 찾으라고 하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찾다가 찾다가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늦게까지 집에 안 돌아가면 누가 아버지가 걱정하실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집으로 가자. 어떤 아들이에요? 착한 아들이죠. 아버지가 걱정하시면 안 되잖아. 굉장히 성실하고 또 부모를 생각하는 효성이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뭐가 없어요? 성실하고 부모도 생각할 줄 아는데 뭘 못했어요? 미션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암락이들을 못 찾았다는 거예요. 그런 자기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냥 이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랬으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뭐예요? 6절부터 누가 나와요? 그 사환이 등장을 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사울이 아니라 누구예요? 그의 사환이라는 것입니다. 6절 보십시오. 대답하되 보소서 이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이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예요? 선지자 사무엘이잖아요. 아니 사완도 그렇지. 아니 도움을 청할 게 없어서 낙위 찾으려고 선지자를 이렇게 찾아갑니까? 그런데 사완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건 뭐예요?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르니까 우리의 갈 길을 그에게 물어보자 라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만약에 사와를 왕으로 세울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이쯤부터 불안해져야 합니다. 아 집안은 좋고 다 좋은데 능력이 없네? 이 능력이라는 게 자기의 갈 길을 모를 때 누구를 찾는 능력? 하나님의 사람을 찾는 능력이 사울에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오히려 사울이 사완에게 이끌려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또 대조가 되는 것이 있죠. 사울은 등장하자마자 아버지의 잃어버린 낙위를 찾아야 했습니다. 낙위를 잃어버렸다는 것 이것은 물론 나중에 찾기는 합니다만 한나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키워드가 뭐였어요? 한나의 결핍이죠. 그리고 기스도 낙위들을 일시적이긴 하지만 결핍의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요 한나가 그 결핍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어요? 기도했어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서원함으로 그 결핍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때요? 집안도 좋고 외모도 좋고 가진 것도 많은데요. 뭘 할 줄 몰라요? 하나님께 구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 이것이 우리는 뭐라고 해요? 하나님께 구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지혜이죠. 사울에게는 지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같이 데려간 사원보다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없었다는 것이죠. 그의 부족한 지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7절, 8절을 보시게 되면 사울이 그 사원에게로 대해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또 사울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뭐예요? 아까는 못하고 못하고 못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없어. 그때 사원이 뭐라고 해요? 8절, 사원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돼 사원은 내 손에 은 한 세계를 사분이 되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사원은 이런 일을 미리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중에 예비한 것이 있었다라는 것이죠. 예비할 줄 아는 지혜도 사울에게는 없었고 사원에게는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울에게 지혜 없음이 더욱더 이 사원을 통해서 부각이 된다라는 거죠. 자, 어찌됐건 이 사원의 이런 지혜로 선지자를 만나서 이제 일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 선지자는 사무엘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죠. 그래서 이제 아,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 만나면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어떤 문제냐면 사무엘은 한 곳에 있어요, 돌아다녀요.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7장에서 봤습니다. 여러 지역에 다니면서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살고 있는 동네라고 해도 반드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죠. 그러면 그런데 결국 만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이 있죠. 11절, 12절 여기 있습니다.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길로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대,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돼, 인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 보셨나이다. 사무엘을 만나기 전에 누구를 만나요? 누구를 만나요? 소녀들인데 어떤 소녀예요?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소녀들로부터 아주 고급 정보를 얻어요. 지금 빨리 가라고.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 여러분 성경에서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이 몇 번 등장을 해요. 첫 번째는 창세기 24장입니다. 창세기 24장 10절 보겠습니다. 창세기 24장 10절부터 보시게 되면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시켜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와라. 이런 미션을 줬죠. 그래서 24장 10절을 보시게 되면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에 열피를 주여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베소부다미아로 가서 나울의 성에 이르러 그 약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울 때이었더라.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늙은 종이 기도를 하죠. 그래서 누가 물을 나한테 주거든 그게 당신이 주신 그런 이삭의 아내로 알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정말 리부가를 만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라헬을 만난 곳이 어디예요? 거기도 우물이에요. 라헬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러 나오다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세 모세 아내가 누구예요? 시뽀라는데요. 어디서 만나요? 역시 우물에서 만나요. 그래서 원희자매 결혼하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우물로 가야 돼요. 이런 게 우물이 어디죠? 우물에 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오늘 사환과 사울은 마침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서 사무엘을 만나게 되죠. 그래서 물길러 나오는 소녀들은 무언가를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줍니다. 이 좋은 것이 뭐예요? 무언가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이루게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그 소녀들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라는 거죠. 그래서 결국 낙이들을 찾게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면 9장 20절 말씀처럼 사무엘이 중간 내용은 건너뛰었습니다. 사흘 전에 이른 내 암낙이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하나님의 사람의 입에서 야 낙이 걱정하지마. 찾았어. 이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사흘 입장에서 여기저기 막 최선을 다해서 찾았는데 못 찾았어요.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찾았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반응이 먼저 나와야 될까요? 어떤 반응이 나와야 돼요?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흘에게 그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흘에게 없던 두 번째입니다. 자기가 할 수 없었는데 사원의 말을 듣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찾으려던 것을 찾게 되죠.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그런 모습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요.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흘 전에 사무엘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말을 듣게 됩니다. 암락위들을 찾는 건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그 뒤에 말이 뭐예요? 온 이스라엘이 사무하는 자가 바로 너이고 내 아비의 집안이다. 이런 얘기를 들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네가 왕 된다라는 거잖아요. 여러분 갑자기 이런 당신이 내년에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이 말 들으면 기도 안 차가지고 제자리를 떠나시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그러면 어떤 반응이 나와야 돼요? 일단은 뭐 믿을 수가 없고 놀랍고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지자의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이때 사무엘은 이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21절 같은 반응이 나오죠. 21절 제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돼 나는 이스라엘 집하의 가장 작은 집하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집하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나이까 자 이 말을 이 말을 보면 사울이 어떤 사람? 자기 집하는 가장 작은 집하고 또 그 작은 집하 중에서도 가장 미약합니다. 이것은 일면 사실이기도 해요. 어쨌든 드러난 이 표현을 통해서 보건대 사울은 굉장히 어떤 사람이에요? 겸손한 사람이죠. 그렇죠? 여러분 그 자기 집안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그래서 제가 뭘 할 수가 없어요. 이런 표현을 정말 유사하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 중에 있어요. 사사기 6장 보겠습니다. 사사기 6장 15절입니다. 사사기 6장 15절 제가 읽겠습니다. 기도원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까 호소서 나의 집은 문하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 장입니다. 어떻습니까? 말하는 방식이 동일하죠? 집화도 가문도 너무 작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사람을 사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기도원이 300명만을 데리고 와서 미디안을 물리치게 되죠. 이게 어떻게 가능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미약한 가문의 약한 자가 그 미디안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자기의 배경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승리하는 비결이 뭐예요? 다음 절에 나오죠.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왁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내가 미리한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승리의 비결이 뭐예요? 하나님께서 함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도저히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되고 그것이 정말 객관적인 사실이고 혹은 그것이 겸손에 의한 것이든지 그럴 때에는 근데 그 일을 해야 돼요. 그냥 누가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 한 말입니다. 그러면 그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근데 사울은요. 그 이후를 봐도요. 자기가 정말로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고요. 하나님께 의지하거나 그 능력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가면 그가 하나님을 버리죠. 의지하거나 함께하기를 구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버렸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없는 세 번째 입니다. 그는 지혜가 없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몰랐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런 생각도 없었다. 라는 거죠. 사울은 겉으로 보면 열방과 같은 왕들이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 갖춰야 할 것은 갖추지 못했다. 라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신 걸까요? 다시 9장 3회상 9장 16절 보겠습니다. 16절에는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9장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일 이맘때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내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다 내 백성의 부르지즘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보았노라 하시더니 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죠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래서 무엇을 삼으라고요? 이스라엘의 지도자 뭘 삼으라고요? 지도자 지도자는 희례레어로 나기드라고 하는데요 왕을 가리키는 단어는 따로 있습니다 왕을 가리키는 말은 멜레크고요 여기서의 지도자는 나기드입니다 물론 지도자가 왕보다 더 포괄 큰 개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아니라 지도자를 삼으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이 지도자가 할 일이 뭘까요? 하나님께서 왜 지도자를 이 시점에 필요로 하신 거예요?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소원에서 구원하게 하려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을 왜? 백성들의 부르지짐이 상달되었기 때문에. 여러분 이런 표현이 굉장히 익숙하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부르지 지니 누구를 세웠더라. 부르지지니 세웠더라. 어느 시대에 이게요? 사사.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실은 사사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17절. 그러면 나기드, 지도자 사울이 할 일이 무엇일까요? 17절을 보시면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 여호와께서 그 얘기를 하시되 보라. 이는 내가 내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통할하리라. 통할이라는 말은 전체를 거느리다 이런 뜻이죠. 그런데 원면을 보시게 되면 사실 이 말의 뜻은 멈추게 하다, 억제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울이라는 지도자가 할 일이 뭐냐면 왕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못하게 억누� ��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에 대해서 이미 어디서 말씀하셨어요? 8장에서. 이들이 요구하는 왕의 제도는 이러하다 라고 반드시 알려주라고 하셨죠. 자식들을 데려다가 자기의 뭘로 삼고 뭘 바치게 하고.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열방과 같은 왕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9장의 초반부를 보게 되면 사울이라는 사람의 성실함과 효성과 겸손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중에 교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변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 있는데요. 그러나 우리가 9장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왕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20절의 말씀을 듣고 정말 걱정 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20절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사울 전에 이른데 나 안나기를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에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사울과 그 집안은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즉 기뻐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왜 걱정스러운 일이에요? 사울은 온 이스라엘이 기뻐하는 사람, 온 이스라엘이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는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누가 세워야 돼요? 하나님이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요? 누가 세운 지도자예요? 온 이스라엘이 기뻐했던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사모엘도 기뻐하지 않았죠. 그래서 사울은요? 지도자는 될 수 있었어도 이스라엘의 왕은 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3회상 2장 보겠습니다. 3회상 2장 10절 보시면 한나를 통해서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3회상 2장 10절 제가 읽겠습니다. 여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래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와를 통해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이렇게 되어있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그런데 사울은요? 누구의 왕이에요? 온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힘이 있어요? 없어요? 없죠. 하나님 소유의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또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사람을 왕으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는요. 때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자라면 하나님 나라의 왕이 아니라 할지라도 죽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사도행전 12장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입니다. 사도행전 12장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해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신이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해롯은 왜 죽었어요? 야고보를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둬서 죽은 게 아니라 왜 죽었다고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죽어요? 충이 먹어 죽었어요. 충이 뭐예요? 충 벌레 벌레가 먹어 죽었죠. 여러분 벌레가 먹어서 사람이 죽을 수 죽었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죽어서 벌레가 먹을 수는 있어도 이 충이요 이 충을 이 벌레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문제 벌레 좋아하지? 벌레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절대 이 벌레를 만나서는 안됩니다. 마금 9장을 보시게 되면 거기에 벌레가 나오는데요. 이 벌레는 죽지 않아요. 그곳은 부더기가 죽지 않는 곳입니다. 그 벌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자는 벌레를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늘 느끼고 깨닫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언제 아 난 하나님과 함께 있어 이런 것을 아주 뼛속 깊이 체험하는 때가 언제예요? 잘 모르십니까? 언제 진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어요? 고난 받을 때이죠. 그래서 고난을 유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레이시아의 어떤 한 장도님께서 암투병을 한 6개월간 하셨다고 합니다. 그 항암 치료 기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그 너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이분은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너무 자주 느끼신 거예요. 식욕이 없어서 고토 증세가 나서 어디가 아파서 그럴 때마다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느꼈다라는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에 내가 이런 고난을 통해서 여러 가지 유익을 느꼈는데 그러면서 그 중에 몇 가지를 쭉 나열하시고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해서 이런 유익을 얻었다 하셨습니다. 그 중에 맨 마지막에 유익이 이것입니다. 골로세서 3장 6절입니다. 골로세서 3장 1절에서 4절 골로세서 3장 1절에서 4절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위의 것을 찾으래요. 위의 것은 어떤 곳이에요? 누가 있어요?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의 것을 생각한다? 라는 것은 어떻게 사는 걸 말할까요?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하래요. 어떻게 살아야 위의 것을 생각하고 사는 거예요?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죽은 것처럼 살아요. 어디서요? 교회에서. 우리는 교회에서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왜?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살아있음은 그리스도께 감추어 있기 때문에 굳이 내가 나 살아 있어요. 이렇게 하면 신앙생활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나 살아있고 나를 살아있고 나도 생각 있는 사람이야. 나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마. 그럼 나 가만히 안 있어. 이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의 것을 찾는 것입니다. 내가 죽은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낼 것인가. 이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하셨을까. 이때 예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시 내가 죽는 거죠. 그렇게 할 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이 들어간다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은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런 사울이 첫 번째 그들의 지도자가 됐죠. 바라옥기는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하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도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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