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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가성비 크리스찬

이요셉 · 롬6:1-11

제작일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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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성비 크리스찬
본문: 롬6:1~11
찬양: 206,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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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관계, 세례의 의미, 그리고 예수님의 몸에 속한 삶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본문로마서 6:3고린도전서 12:26-27
  • 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관계를 다루며,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을 상징한다.
  •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었으므로 더 이상 죄에 머물 수 없다고 강조한다.
  •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몸에 속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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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죄와의 관계

  • 로마서 6장 1-11절은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관계를 다룬다.
  •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질문은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대답하며,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에 머물 수 없다고 강조한다.
  • 죄를 지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례의 의미

  •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음을 경험한 것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한 생명을 끝냈다는 의미이다.
  • 로마서 6:3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 즉 그의 죽음과 연합하는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
  • '합하여'는 원문에서 '안으로'로 해석되어, 세례는 예수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고, 그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이는 영적인 연합을 의미한다.
  • 예수님의 몸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본받는 것을 포함한다.
  •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신앙생활의 의미

  • 신앙생활은 죄를 더하고 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 가성비 크리스찬은 신앙생활을 천국 가기 위한 계산적인 접근으로 보는 태도이다.
  • 참예수교회는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의 몸에 속한 자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한다.
  • 죄는 하나님의 주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서의 삶은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 하나님께서 개인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 쓰임받는다는 자각이 커진다.

그리스도의 몸과 공동체

  •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이며, 서로 연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 천국을 가는 데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예수님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깊이 인식하면 죄의 용서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
  •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전사(자막) 전문▼
1절에서 11절까지 말씀 가운데서 로마서 6장 1절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는이라 죄에 대하여 죽 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아멘 오늘 이 시간은 가성비 크리스찬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이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을 해보시면서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로마서를 가르칠 때 보통 첫 번째 시간에 질문을 합니다.
어떤 질문을 하냐면 여러분 천국에 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죠.
이런 질문을 받음과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는 바로 죄라고 하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가 그때로부터 끝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이후에도 우리 성도들은 계속 죄를 짓는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난 이후에 절대적인 죄의 양은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게 당연히 그래야 되겠죠. 절대적인 죄의 양은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죄의 무게가 마음속에서 가벼워졌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다 씻었는데 그 이후에 죄에 대한 무게가 마음속에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신앙 생활을 하고 말씀을 들을수록 지식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 죄인들도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죄의 범주 안에 들어와버린 거죠.
아 이것도 죄구나, 이것도 죄구나, 이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커진 것뿐만이 아니라 양심도 예민해져서 예전에는 작은 죄라고, 이건 뭐 죄도 아니다.
누가 이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 했던 것들도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참 큰 문제구나.
이것을 알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절대적인 죄의 양은 당연히 줄어들었겠지만 마음속의 죄의 인식, 죄의 무게 이런 것들은 도리어 더 커진다는 거예요.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여러분 천국 가실 수 있겠습니까?
점점점 그래가지고 이렇게 물으면 마음이 무겁죠.
선뜻 대답하기가 좀 어렵게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거듭난 후에 우리가 이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죠.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또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생각을 하는데요.
어떻게 생각을 하냐면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느냐.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죠.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요?
죄 안 짓고 살 수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립니까?
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죄만 안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
작은 죄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죄에 대해서 상당히 무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디서부터가 큰 죄이고 어디까지가 작은 죄일까요?
그런 게 있을까요?
살인과 간음입니까?
그러면 그것 빼고 다른 죄는 다 괜찮습니까?
그러면 큰 죄를 지으면 예수님 안에서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작은 죄는 예수님의 은혜로 다 용서받는 것입니까?
정말 그럴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죄를 지어도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계속 질문만 하고 있죠.
제가 지금까지 질문을 몇 개 했는지 아십니까?
한 열 번 정도 한 것 같습니다.
생각이 계속 이렇게 엮여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큰 죄만 안 지으면 작은 죄들은 회개하면 다 천국에 간다.
천국에 가긴 가는데 살면서 죄의 대가는 다 치러야 되기 때문에 권한이 많다.
그래서 안 짓는 게 좋다.
제가 지금까지 한 모든 이야기들이 완전히 얼토당토하는 이야기들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다 틀린 건 없죠.
그렇죠?
부분적으로 불명한 부분이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부분에 있어서 좀 명확한 생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명확하게 생각을 가져야.
왜냐하면 이 죄의 문제 때문에 때로 지나치게 위축이 돼가지고 기쁨 없이 불안함 속에서 신앙 생활을 이어나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반대로 죄가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정말 위험하게 살아가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죄를 어떻게 여기고 살아야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 분명한 생각을 가져야 되겠죠.
이 내용이 바로 6장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로마서 6장의 키워드는 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로마서 6장에서 죄라고 하는 단어가 몇 번 나오는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동그라미 한번 찾아보시면 열 몇 번 나올 겁니다.
이것이 주제이죠.
여러분 바울사도는 이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하나 던지면서 시작을 합니다.
로마서 6장을 보시면 질문을 던지고 시작하는데 이 질문이 전체 방향을 잡는 질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답을 보기 전에 질문을 먼저 잘 읽어야 합니다.
그 질문이 뭘까요?
6장 1절을 보겠습니다.
6장 1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여기서 바울사도가 뭐라고 질문하고 있습니까?
죄에 거하겠느냐? 이게 무슨 뜻입니까?
죄에 거해도 되느냐? 이런 질문이죠.
죄에 거해도 되느냐?
같은 질문이 사실 15절에도 있습니다.
15절을 보시면 그런 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지어도 되느냐?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죠.
여러분 여기서 이 질문을 잘 읽어야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어도 되느냐?
이렇게 묻고 있지 않아요.
질문이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질문이 무엇입니까?
죄에 거해도 되느냐?
이게 질문이에요.
거하는 것은 지속성을 말하는 거죠.
그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죄를 지어도 괜찮다라고 말하면서 머물러 있는 것 어쨌든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니까 죄를 많이 지을수록 죄의 용서도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죄를 많이 지을수록 은혜가 크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되는 것 아닌가?
죄에 머물러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질문이 전체 방향을 정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질문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에 관한 질문을 한번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 죄를 지어도 되나?
이런 질문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점점 위선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죠.
그렇죠?
요한 1서 1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요한 1서 1장 10절 보겠습니다.
요한 1서 1장 10절 보겠습니다.
요한 1서 1장 10절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경험적으로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그러나 죄를 짓는 것과 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렇죠? 그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지금 바울사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죄가 크냐 작으냐 이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그 죄가 아주 무거운 죄냐 아니면 일상 속에서 지을 수 있는 죄냐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지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도성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그건 작은 죄니까 괜찮아.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런 죄 안 짓고 어떻게 살겠어.
그러니까 죄 지어도 괜찮아.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고치지 않고 그 가운데서 계속 살아가는 것 그래도 되느냐 ? 이런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냥 단순히 안 되지. 그러면 성경이 굉장히 짧아지겠죠. 그렇죠? 안 되지 하고 넘어가면 우리가 죄와 싸우는 힘이 약해질 것입니다. 사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죄는 반복적이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보면 뭔가를 기대했다가 여기서 더 세게 얻어맞 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짓는 죄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이거든요. 어쩌다가 짓는 죄는 죄로 여기지도 않아요.
실수로 여기지.
그래서 오히려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좀 더 무거울 수도 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명확하게 왜 그래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하고 있을까요?
2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럴 수 없는이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사도가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더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도 우리가 들어보면 쉬운 말인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 죄를 안 짓는다는 말일까요?
무슨 말일까요?
그러면 우리가 언제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일까요?
그 내용을 3절부터 이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씀이 나오는데요.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절 시작!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그때 거기 있었다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 참예수교의 성도인들이 잊어서는 안 될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함께 합하여 라는 말은 사실 원문으로 보면 안으로입니다.
안으로.
여러 번 들어보셨죠?
이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into입니다.
into.
안으로.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세례를 통해서.
그래서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통 영적인 연합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렇죠?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예수님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입니다.
로마서 11장 17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1장 17절 로마서 11장 17절 그래서 영적인 연합을 성경에서 여러 가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시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거죠.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남나무인 내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남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 되었은 즉 그래서 우리가 원래 이 돌 감남나무 가지였는데 꺾여진 그래서 점점 말라가는 그런 돌 감남나무 가지였는데 이 참 감남나무에 딱 접붙임이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줄기와 뿌리에서 오는 진액을 받아서 열매 맺는 그런 가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영적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전 세계에 하나님 보시기에 인구가 몇 명일까요?
80억 명이라고 그러면 유튜브 가서 다시 듣고 오셔야 합니다.
전 세계 인구가 몇 명이죠?
두 명이죠. 두 명.
그렇죠? 두 명.
우리 한 사람, 각 사람은 하나의 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아담을 머리로 하고 선악과를 따먹었던 그 사람의 몸에 있던 세포가 세례를 통해서 딱 떼져가지고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신 예수님의 몸에 딱 이식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연합이죠.
여러분 그래서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예전에 십자가에서 죽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빠꾸해야 되겠네요.
대답을 안 하시는 거 보니까 뒤로 좀 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3절에서 5절 읽겠습니다.
3절에서 5절 읽겠습니다.
시작.
주여 죄송합니다.
6장 3절에서 5절 읽겠습니다.
시작.
6절에서 5절 읽겠습니다.
6절 읽겠습니다.
6절 읽겠습니다.
6절 읽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6절 읽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여러분 제가 10살 때요 라고 말하는 제 혀는 10살 때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죠? 얼마 전에 생겨난 세포들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를 자기 것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으면 예수님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장례를 치렀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죠?
그리고 이후에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부활할 것이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영적인 연합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단순히 죄를 더하기 빼기 더하기 빼기 하듯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너가 죄를 더했으니까 내가 빼줄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영을 만들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예수의 몸에 붙여 놓으시고 예수님의 몸으로서 살아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 할 때 이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들을 나도 지금 한다는 거죠.
그의 몸의 일부가 되어서 내가 지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적인 연합은 안 보이는 거잖아요.
보입니까? 안 보이는 거잖아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들은 사실은 다 두 사람이다.
그러면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안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것 그 모습을 통해서 믿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걸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시면 후반부를 보시면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그래서요.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 죄를 더하고 빼고 더하고 빼고 이런 관점에서만 생각하면 그 소용돌이를 벗어나올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누구로 여기고 살아가느냐 나를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 여기고 예수님의 도구로 여기고 살아가느냐 이 땅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손도 없이 발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셨겠습니까?
입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하셨겠습니까?
그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나는 나라는 사람을 누구로 여기는가 그래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 내 욕심을 만족시키고 그저 가족만을 위해서 내 자식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냐?
자기를 그렇게만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냐?
아니면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몸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인가?
그래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는데요.
12절을 보시면 내가 진실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믿고 싶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지금의 의미가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신앙생활의 의미가 신앙생활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신앙생활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예수님의 의미가 우리가 참고 고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욕심을 억누르고 그냥 참고 참고 가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 돼 그런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천국에 대해서 투자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일까요?
그러면 우리가 오늘 제목처럼 변해갑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죄도 짓지 말아야 되고 돈도 내야 되고 시간도 써야 되고 그러니까 뭘 따지기 시작할까 가성비 따진다는 거예요.
가성비라는 말을 안 합니다.
그런데 말 속에 그게 다 묻어 있어요.
가성비가 뭡니까?
가격 대비 성능을 말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똑같은 성능이면 싸게 주고 사면 잘 산 건 아닙니까?
그렇죠?
천국도 가성비를 따져서 가려고 하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아니 꼭 목자님이 안 돼도 천국 갈 수 있잖아요.
꼭 임원이 안 돼도 성직자가 안 돼도 천국 갈 수 있잖아요.
꼭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일 안 하고 천국 가면 그 사람이 승자라는 거예요.
승자 이해 되십니까?
뼈꼴 빠지게 교회에 일해가지고 천국 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런 분도 있어요.
제가 이제 85세대 분 세례를 바쳤는데요.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그분이 천국을 못 갔다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세례를 받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어요.
천국을 못 갔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분이 진정한 승자 아닙니까?
이런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태어나가지고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해야 돼요.
패자들이잖아요.
여기 패자가 한 명 있습니다.
가성비 따진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려고 저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되나?
적당히 천국 갈 정도 안에서 자기 만족도 좀 누리면서 자기 먹고 살 국리도 좀 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잘하는 거 아니에요?
이게 이제 가성비 크리스찬이죠.
가성비 크리스찬 근본 관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함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이 세상의 온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초점이 맞춰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일의 중심이다라는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서 그의 몸의 일부로서 내가 그 일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게 나라고 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안으로는 여러분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이 일을 하면 천국에 가냐 지옥에 가냐 더하기냐 빼기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누구냐의 문제이죠.
이것이 나하고 어울리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탕자의 이야기를 한번 회상해 보겠습니다.
누가 보금 15장에 보면 탕자의 이야기가 있죠.
그렇죠?
잘 아시니까 찾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보면 우리가 이 아들이 죄를 많이 지었잖아요.
그렇죠?
아버지의 자산을 허락방탕하게 허비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
참 나쁜 놈이다.
라고 말하기 전에 그의 근본 문제가 어디 있었습니까?
자기를 그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나는 저 넓은 데 가서 재밌게 살아야 돼.
나는 멋지게 살아야 돼.
자기를 그렇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이지 이 아버지 집에서 이렇게 쭈그려 있는 게 이게 인생이냐?
자기 삶을 그렇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긴 결과가 죄가 되는 것이지 집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괜찮으냐?
형을 보십시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예수님의 일부이다 라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죄를 짓는 것은 허용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할까요?
안식일을 빠지는 것은 몇 번까지 허용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최근에 성경을 보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린 내용을 봤는데요.
그 내용을 보면서 좀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 내용이 뭐냐면 다 아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면서
원래 텐트에 거하셨잖아요. 텐트에.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백향목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그 집을 요구하신 적이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다른 우상들하고는 보면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그 신전들은 얼마나 웅장합니까?
그 건물만 봐도 위약감이 느껴지고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치장하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면 내가 따르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면 나도 세상적인 멋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 그렇게 나답지 않은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좋은 옷, 이쁜 옷, 좋은 집,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세련되고 멋진 삶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구나.
이걸 이제 받아들이는 거죠.
여러분, 좋은 옷 입는다고 해서 지옥에 갑니까?
천국에 갑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걸 한다고 해서 지옥에 가냐, 천국에 가냐 그게 아니라 무엇이 나다운 것인가 내가 따르는 예수님다운 것인가 그렇게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 가는 것, 지옥 가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그런 것을 받아들이고 그런 것을 기쁘게 따라가는 거죠.
그렇죠?
오히려 사실 이런 점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것 속에서 진심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6절, 7절을 보겠습니다.
6절, 7절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로를 타지 아니하려 하미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합하여서
예수님 안으로 우리가 들어갔다라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은 계속 죄에 거하는 거죠.
자기를 예수님의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에 머물지 않습니다.
벗어나기 힘들어도 계속 몸부림치고 벗어나가려고 노력을 하겠지요.
그렇죠?
그 죄가 큰 죄든 작은 죄이든 서로 아까 제가 말씀드린 옷을 입는 이런 문제라 할지라도 거기에 얽매어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지 큰 죄, 작은 죄에 따져서 큰 죄 지은 사람들은 영원히 소망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작은 죄는 누구나 짓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교회에 나오면서 자기 욕망을 어느 정도 보이지 않는 데서 누리고 살아가고 그럴 때 기쁨과 만족을 얻고
그것은 가짜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진짜는 나를 누구로 여기느냐 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 읽겠습니다.
시작!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 지어다 여기라 너 자신을 그렇게 여기라 이 말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죠.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예수 안에 있는 몸의 일부로 여기십니까?
그러면 그 사람답게 살아가기를 원할 거예요.
그렇게 흉내 내기는 것이라도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나 자신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죄가 있겠죠.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 있어서 죄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죠.
물론 그 죄와 싸우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갈수록 나아질 거예요.
그러나 죄가 영원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2절에서 14절 읽겠습니다.
12절에서 14절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자, 여기서 죄에 순종치 마라, 뭐뭐 하지 마라, 이런 말을 우리가 명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의 일부는 이렇게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되면 결국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할 것이다.
이 말의 뜻이 뭘까요?
이런 사람들은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니까,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뭐 그런 것일까요?
그런 뜻이 아니라, 죄로 인해서 마지막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비록 죄가 있지만, 그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라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우리 믿음이 커져야 되는데, 이 믿음이 커진다고 하는 것은, 아,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이구나.
이것을 우리가 더 깊이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언제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입니까?
그것을 자각하셨습니까?
제가 대체로 보니까 두 가지 정도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는 내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우리 몸 된 교회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그 몸에 지체된 성도들부터 사랑을 받을 때 우리가 정말 한 몸이 맞구나.
주 안에서 한 가족이고 내가 한 몸이 맞구나.
이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자각하죠.
그죠?
또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때로 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는구나.
이것을 알게 됩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런 것을 세우셨구나.
이것을 드러내서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로 쓰임을 받았구나.
이걸 알게 되죠.
그럴 때 그 자각이 더 커져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에 이르게 될까요?
고린도전서 12장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 27절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 27절 읽겠습니다.
시작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오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가 서로서로 연합하고 교제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라는 거죠.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한 몸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받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가
천국을 가는 문제에 있어서 가성비를 따지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정말로 나 자신을 예수님의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는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다 라고 느끼는 사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해야 내가 천국에 갈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몸답게 살아가고 싶겠죠.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죄가 있지만 죄의 용서함을 알고 또 평안을 누리게 되는 거죠.
바로 그는 저와 여러분께서 가성비 크리스찬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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