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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순종의 종으로 영생에 이르라

이요셉 · 롬6:15-23

제작일 2026.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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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종의 종으로 영생에 이르라
본문: 롬6:15-23
찬양: 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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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죄와 순종의 관계를 설명하며, 거듭난 자는 죄에 종이 되어서는 안 되고,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로마서 6:15-23출애굽기 21장신명기 15장
  • 로마서 6:15-23은 거듭난 자가 죄에 머물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한다.
  • 죄는 사망을 가져오고, 순종은 의와 생명을 가져온다.
  • 신앙생활은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에 있으며, 순종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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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의 핵심

  • 로마서 6:15-23은 거듭난 자가 죄에 머물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한다.
  • 죄는 사망을 가져오고, 순종은 의와 생명을 가져온다.
  •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죄에 종이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바울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말하며, 은혜는 죄를 더하지 않도록 한다.
  • 그리스도인은 죄의 종이 아닌, 순종의 종이 되어야 한다.
  • 신앙생활에서 '가성비 따지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사모하는 것일 수 있다.
  • 출애굽기 21장과 신명기 15장의 예를 통해, 사람이 스스로를 종으로 드리면 영원히 그 종의 주인을 섬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원칙이 언급된다.
  • 거듭난 자가 죄에 종이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며, 순종의 종이 되어야만 의와 생명을 얻는다.
  •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하며, 자유는 순종을 통한 자유라고 설명한다.
  • 고린도 교회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 육신의 일은 중요하지 않으며,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잘못된 자유의 개념이다.
  •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잘못된 해석이며, 지배받지 않는 자유를 강조한다.
  • 신앙생활은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에 있다.
  • 사람은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없으며, 어떤 것에 종이 되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 죄의 종이 되면 의에 대한 자유를 얻고, 의의 종이 되면 영생을 얻는다는 교훈이 있다.
  • 순종의 종은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성장하며 거룩함에 이른다.
  • 죄의 종은 결국 사망에 이르지만, 의의 종은 영생에 이른다.
  • 신앙생활은 지속적인 반복과 순종을 통해 성숙해지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6장 15절 그런지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너희 육신이 연약함으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들여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들여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그때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입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죄의 삭순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저녁에 예배를 드리러 나오는 것이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분들은 아주 멀리서 오시고 또 그리고 저녁 식사를 못하고 오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높이고 높이고 또 경배하는 자리에 나오는 이런 노력이
어떻게 의미가 없을 수 있을까 또 열매가 없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이 수고와 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그 사망 안에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우리 세상에서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저녁에 별도로 일을 하라고 한다면
표정이 죽을상이 될 것 같은데 우리 성도님들의 표정은 그래도 기쁨과 평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잠깐 요약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 죄를 짓는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관대하기도 하고 또 불가피하다고 변명하기도 하고
또 심지어 오히려 좋은 면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하지 않느냐 좋은 면도 있다 이렇게 말하고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큰 죄는 안 되고 작은 죄는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라는 거죠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거듭난 사람의 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는 방식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되는지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6장에 질문이 두 번 나온다고 했죠 1절과 15절입니다 1절을 보시면 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이것은 죄에 머물러도 되느냐 이런 질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죄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어떤 죄는 된다 어떤 죄는 안 된다 이렇게 말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된다 어느 정도는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도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선을 그어주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딱 그냥 선을 그어주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그런 걸 좀 원하지 않습니까?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괜찮고 여기부터는 안 됩니다. 이거는 괜찮은데 이거는 안 됩니다 하고 선을 딱 그어주면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딱 지키고 살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고 바울사도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 신앙이 아주 어렸을 때 이 이야기는 우리 참예수 한국교회 이야기는 아니고 대만교회 이야기 인데요. 저도 이런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다섯 번 아마도 연속일 것 같은데요. 연속 다섯 번을 결석하면 제명하는 교회가 있었 어요.
정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오래 전이죠. 이런 판단이 옳습니까? 옳다고 할 수가 없죠. 그렇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땅에서 불면 하늘에서도 불일 것이다.
이런 말씀처럼 그것을 존중하신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성도가 잠을 자고 있는데 천사가 와서 깨웠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야 너 오늘 안 가면 제명이다. 빨리 가라.
그래서 그분이 교회에 깜짝 놀라서 왔는데 교회 문을 임원들이 열거든요. 와서 문을 열어야 되는데 임원들보다 더 빨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댑니다.
실제로 제가 이런 간증을 들어봤는데 여러분 이렇게 선을 딱 그어주면 그 안에서 건강한 신앙 생활이 있답니까 ?
교회 안 빠지고 나오는 것만으로 우리가 건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을 이렇게 딱 그어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거죠.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6장 전반부에서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그리고 나는 그 몸의 지체이다.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몸의 일부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죠.
여러분 이 말의 뜻이 뭐냐면 우리가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자신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그렇게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죄에 머물러도 된다는 생각은 안 할 거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파하고 또 가르치고 연약한 성도를 돌보는 일을 기쁨으로 또 보람을 느끼면서 할 것이다.
이런 제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제가 제목을 좀 신선하게 지어봤는데요.
우리가 버려야 될 신앙의 관념이 뭐냐면 가성비 따지는 신앙생활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딱 천국 갈 정도로만 신앙생활하면 되지 않나?
이런 생각 자체가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나쁜 생각이냐면 여러분 누가 부모를 섬기는데 얼마만큼 섬기냐 딱 유산을 받을 만큼만 섬긴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를 섬길 때 부모님이 하도 안 섬기면 기분이 나빠서 야 너 같은 놈한테는 유산을 못 주겠다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정도만 내가 부모님을 섬긴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합당합니까?
그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사실 하나님은 호주머니를 탐내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우리 생각이 좀 못 미치고 잘못됐다고 해서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정제당하는 건 아니겠죠.
그렇죠?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많이 겪을 겁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을까요?
야고보서 4장 8절을 보겠습니다.
가성비 따지는 신앙생활하면 어려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8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나님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 온기를 느끼면서 따뜻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긴 믿는데 하나님이 있는 것 같다.
같지 않고 하나님은 그냥 어떤 법칙같이 차가운 법칙 같지만 느껴진다면 그 신앙생활이 재미도 없고 또 기쁘 지도 않겠죠. 그렇죠? 그렇게 신앙생활을 죽을 때까지 한다고 하면 그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데요. 디모데전서 6장 9절을 보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9절 우리 학생부들은 성경 을 다 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디모데전서 6장 9절 머릿속으로 암송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암 송을 못하면 찾으세요. 디모데전서 6장 9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부활이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 지게 하는 것이라.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시험이 찾아오고 미혹이 찾아옵니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죠. 세상 생각이 많은 사람들 욕심이 많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시험이 많다는 거예요.
여러분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계속 미혹과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걸 잘 넘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지 않겠죠?
넘어지기가 쉽다라는 것입니다.
죄짓기도 쉽고 매맞기도 쉽다는 거예요.
그래서 매를 맞더라도 저 천국에 가면 그래도 다행이지요.
그렇게 해서 아예 넘어져서 천국에도 못 가게 되면 그건 참 슬픈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내가 천국 갈 정도로만 신앙생활하면 되지 않나?
꼭 내가 저렇게 열심히 해야 되고 돈도 많이 돼야 되고 시간도 많이 써야 되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라면 죄에 머물러도 좀 되지 않나?
이런 죄는 괜찮지 않나? 이런 생각을 안 할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 이제 오늘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거듭난 사람이 계속 죄를 짓고 살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죄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로마서 6장 15절에서 다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지 거찌하리요? 우리가.
여기서 우리는 거듭난 우리를 말하죠.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듭난 사람이 예수님의 일부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계속 죄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16절 읽겠습니다.
16절 시작.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들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이라.
여러분 여기서 바울사도가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종으로 들이는 자의 종이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종에 관한 규례를 한번 보면 좋습니다.
출애굽기 21장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절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6년 동안 섬길 것이오.
제 7년에는 값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오.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다 혈육이지 않습니까?
다 형제 자매이거든요.
다 아브라멘 자손이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규칙을 주실 때 이스라엘 안에서는 어떤 사람을 영원히 종으로 삼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을 삼게 되면 만약에 그 사람이 정말 이것저것 팔고 나머지 팔 게 없어서 자기 몸을 종으로 판다면 7년 후에는 되돌려 보내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죠.
형제 자매를 자기 종으로 죽을 때까지 부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신명기 말씀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7년을 부리고 종을 내보낼 때는 빈손으로 내보내지 마라.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든든히 해서 보내라.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신명기 15장 13절 14절에 있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내 약물이 중에서와 타장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위 줄지니 곧 내 하나님 요하께서 내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년의 규례도 있죠.
매 50년마다 희년이 찾아오는데 그 사람이 몇 년을 봉사했던지 간에 이제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을 본래대로 환원을 했어야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종으로 영원히 들을 수가 없는데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냐면 어떤 사람이 종이 되었습니다.
혼자 이제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그 주인이 그 종을 결혼을 시켜줬어요.
이제 다른 종을 주어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를 이렇게 낳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7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나가야 되잖아요.
그렇게 나갈 때 어떻게 나가야 될까요?
다 두고 자기 혼자 나가야 돼요.
아내도 두고 자식도 두고 이렇게 혼자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종이 좀 고민을 하지 않겠습니까?
아싸 하고 나갈까요?
그러진 않겠죠?
그래서 출애굽기 21장 5절 6절을 보면 이 내용이 나옵니다.
종이 진정으로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하면 곰곰이 생각해 봤을 때 이 주인이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세상에 나가서 혼자 비바람 맞는 것보다 이 주인의 그늘 밑에 있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요즘 청년들은 그런 말 한대요.
아 부잣집 고양이가 되고 싶다.
제가 봤습니다. 인터넷에서 부잣집 고양이가 되고 싶다.
부잣집 종이 되고 싶다.
나쁘지 않다는 거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6절 보시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영원히 종이 되는 방법이 있죠.
무엇입니까?
내가 나를 들이면 된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를 영원히 종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7년이 있고 희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나를 들이는 방법은 내가 나를 들이면 된다는 거예요.
이 법칙을 가져와서 바울사도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죠.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과 연합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자신을 죄에게 종으로 들이면 그때부터는 죄의 종이 된다는 거예요.
더 이상 예수님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고 의의 종은 생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 자신을 죄에게 종으로 들인다면 죄의 얽매에서 살고 벗어나지 못하고 그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른다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약간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런 수준의 생각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는데 이게 되냐 안 되냐 이거예요.
이거 되냐 안 되냐 이 생각에 머물러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고린도전서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 고린도전서 6장 12절 자 읽겠습니다. 시작 모든 것이 내게 가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오 모든 것이 내게 가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자 여러분 여기서 보면 모든 것이 내게 가나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정말 바울사도가 하는 말이 아니고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런 말을 하고 다니니까 그 말에 대해서 답을 해주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가면
현수막이 붙어 있어요 그 현수막이 뭐라고 적혀 있냐면 모든 것이 가하다 이렇게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생각은 틀린 생각이죠 그러나 고린도교의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에 대해서 얽매일 필요가 없다
죄를 지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해서 자유를 얻은 사람의 모습답지 않다 괜찮다 죄 지어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육신으로 하는 일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육신은 어차피 다 타버릴 거잖아요 육신은 휴지 같은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휴지를 가지고 코를 풀어서 버리든지 발가락 사이를 닦아서 버리든지 이거 다 결국에 버릴 건데 뭘 닦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육신으로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게 가하다 진짜로 그렇지는 않죠 그러나 바울사도가 여기에 대해서 답을 하고 있는데
뭐라고 지적을 하냐면 왜 너희들은 어떤 문제를 생각할 때 되냐 안 되냐 이것만 생각하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생각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해도 되는 일이 다 유익한 일은 아니다 유익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했어도 되겠느냐 이런 이야기죠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두 번째는 뭐죠?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제재를 받는다 하는 것은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해도 된다 안 된다 왜 자꾸 이렇게 따지냐 사실은 거기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해되십니까?
예를 들어서 술, 담배 논란이 좀 있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해도 되냐 안 되냐 성경을 봐라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바울사도가 뭐라고 말합니까?
나는 술에 지배받지 않겠다 왜 그렇게 해도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말을 왜 하냐는 거예요 사실은 지배받고 있으니까 없으면 섭섭하고 아쉽고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배받지 않겠다는 거예요 거기에 얽매이지 않겠다
거기에 종로를 타지 않겠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우리 신앙안에서 이렇게 따져야 될 문제가 있습니다 해서 되냐 안 되냐 이런 차원에서도 생각해봐야 되겠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 거기에 지배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차원에서도 우리가 생각해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혹은 스마트폰 그걸 한다고 해서 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잖아요 그게 무슨 간음이나 살인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메여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래서 거기에 얽매여서 시간도 버리고 돈도 버리고 마음을 뺏겨서 살아간다면
그게 가늠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마트폰에 중독돼 가지고 살아가는 게 더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건 얽매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의 종으로 끌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두 주인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태복음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 자 읽겠습니다 시작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 종류의 종이 될 수도 없다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신앙의 정말 성숙한 모습은 뭐냐면 되냐 안 되냐 이걸 따지는 게 아니라
서로 된다 하더라도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죠 소고기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소고기 안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거예요 말이 좀 어렵습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가 얽매이지 말고 어떤 것에도 자유를 얻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 신앙이 추구해야 될 성숙함이죠 빌리뽀서 4장 12절을 보면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마음이 자유하다 라는 거죠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모습이죠 서로 된다 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여서 종으로 살아간다면 가름보다 더 나쁠 수도 있어요
자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로마서 6장 17절 18절 자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해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바울사도가 이만큼 적으면서
하나님께 감사가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할 일이다 왜냐하면 여러분 지금 이 시간도 참으로 감사한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우리처럼 살지 않을 거거든요 우리처럼 이 시간에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은 아니죠
그렇죠?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을 여기고 그리고 이 시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매여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죠 신앙생활은 해도 되는 것 안 되는 것 그게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주인의 말에 얽매이는 거죠 그죠?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인인 것 같지만 사실은 얽매여 있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아주 비싼 차를 샀습니다 그래가지고 이 차를 얼마나 닦아대는지 아끼는지요 비가 오면 걱정이고 눈이 와도 걱정이고 먼지가 불어도 걱정이고 자기가 차를 가진 건지 차가 나를 가진 건지 이걸 구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주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종이들 아는 거예요
그죠?
세상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은 아주 주도적으로 사는 것을 칭찬합니다 물론 뭔가 얻고자 하고 무엇을 향해서 노력하고 이런 것이 나쁜 건 아니죠 좋은 태도이죠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성교에서는 칭찬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종로를 탄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죠 목표를 가지고 그런데 그것이 지나치면 너 종로를 좀 그만해라 성에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요즘에 제일 세상을 선도하는 사람
여러분 누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잘 모릅니다 사실 아직 이런 부분에서 잘 모르는데 제가 뉴스를 통해서 보면 지금 세상의 최고의 비전가는 어떤 면에서 일론 머스크인 것 같아요 그죠?
그 사람 생각이 혁명적이지 않습니까?
또 미래를 바꾸겠다는 그런 목표가 있잖아요 돈을 초월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 가진 재산으로는 100번을 죽었다 태어나도 먹고 살 돈이 될 텐데 그죠?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제가 보니까 불안하고 불안이 그렇게 크대요 그리고 너무 일에 시달려가지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서 2년 동안 밀착해서 다닌 작가가
있는데 뭐라고 그러냐면 어떤 위기가 찾아오거나 스트레스가 있으면 악마 모드로 바뀐대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폭언을 쏟아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스스로 괴로움을 못 이겨서 그런 거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과 주도적인 삶 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잘나간 사람, 천재 이런 사람들도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면 그 한계와 그 고통,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될 수가 없죠.
우리는 무엇인가의 종이 될 뿐이고 무엇의 종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집에 거울이 다 있으시죠?
거울을 보면서 나는 누구의 종인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자기의 하루를 살펴보고 자기의 마음의 온도를 살펴보고 그래서 나는 무엇의 종인가 이것을 곰곰이 살펴봐야 잘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되든지 아니면 돈의 종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종뎀은 특징이 있습니다.
19절 보겠습니다.
19절부터 보시면 이 종로릇 하나님의 종로릇이든지 죄의 얽매여서 죄의 종이 되든지 이 종로릇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19절 보겠습니다.
19절 읽겠습니다.
시작 말이 좀 어렵죠?
이 말씀은 뭐냐면 종로릇은 갈수록 익숙해지고 또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성장한다는 거예요.
반울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비슷한 맥락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에 익숙해지고 그래서 나중에는 죄에 능숙한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순종하면 순종하는 것이 처음에 불편하죠.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이 더 커져서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면 처음부터 완숙한 사람이 없고 그리고 계속하는데도 미숙한 사람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종로릇 하는 것은 갈수록 익숙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신앙생활하기 갈수록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조금 지혜를 가진다면 힘들어도 계속하면 할 만해집니다.
신앙생활을 신앙생활도 그 가운데서 우리가 유익도 알게 되고 그 깊은 의미도 알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계속 반복하시길 바랍니다.
반대로 죄의 종이 되면 그것도 익숙해져요.
그러면 간만큼 돌아와야 돼요.
내가 죄를 지으러 가지 않습니까?
가면서 생각하세요.
다 돌아와야 될 길이다.
내가 다 뒤로 와야 될 길이다.
생각하고 가야 됩니다.
이게 종뎀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자 20절 보겠습니다.
또 어떤 속성이 있을까요?
20절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자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의에 대해서 자유로웠다.
종로릇은 상대적으로 자유를 가진다는 겁니다.
죄의 종이 된 사람은 의에게 자유롭고 의의 종이 된 사람은 죄의 자유를 누린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죠?
계속 죄의 종로릇을 하면 결국에는 처음에는 양심이 말하겠죠.
야 야 하겠죠?
양심이 속에서 너 그러지 마 그래도 돼 그만해 하고 말하겠죠?
그런데 계속 무시하고 무시하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 양심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양심의 화인을 맞았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무감각한 그런 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옳은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찔리지 않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부담스럽잖아요.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아세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부담스럽잖아요.
이 앞에 지나가는 어떤 분 잡아놓고 하나님 말씀을 드려보면 부담스러워할까요?
내가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내가 그렇게 못 사네요.
그렇게 말할까요?
어떻게 말할까요?
내가 왜요?
지나가는 사람 붙들어놓고 안식이를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십시오.
그러면 뭐라고 말할까요?
내가 왜요?
그게 뭡니까?
의에 대해서 자유롭다는 거예요.
전혀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의 종이 되면 의에 대해서 자유롭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권면에도 안 들었습니다.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이렇게 힘들고 바쁜데 내가 왜?
이런다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의의의 종이 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걸리고 부담스럽고 그런다면 그런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자유를 누린다는 거예요.
무슨 말일까요?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고 어떻게 날씨도 더운데 맥주 한잔 하러 가실까요?
이 말을 듣고 끌린 분 계십니까?
아마 여러분들께서는 한 번도 끌리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왜?
그랬을 거예요.
그렇죠?
그게 뭐냐?
죄에 대해서 자유로운 거예요.
그런 마음이 드는 겁니다.
어디 가서 나쁜 짓 한 번 할까?
내가 왜?
이게 죄에 대해서 자유로운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의의의 종이 되면 죄에 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한테는 시험도 적고 미혹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겠죠.
그렇죠?
이것이 우리가 가야 될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셨는데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자유는 죄에 대해서 자유롭다는 거예요.
죄에 끌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진리를 깨달으면 죄에 대해서 자유를 누릴 거라는 것입니다.
자 21절에서 23절 마지막입니다.
21절에서 23절 읽겠습니다.
이 두 종로로 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그때의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에 삭순 사망이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두 종로로 쓴 아주 다르죠.
결국에는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사망이 이를 것이고 의의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영생이 이를 것이다.
결국이 다르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 묻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거듭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알든 모르든 동의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원칙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나는 나를 종으로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든지.
무엇에든지 종으로 내가 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죠?
내가 돈의 종이 될 수도 있고 내 자식 성공의 종이 될 수도 있고 세상 욕망의 종이 될 수도 있고 이 육체에 종이 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이 육체를 섬기는 종이죠.
그죠?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종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종인가?
누가 봐도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을 스스로 분명히 해야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미숙하지만 가르속 익숙해지겠죠?
이렇게 순종의 종이 되어서 영생이 이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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