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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사도들에 대한 박해(2) 20

장종규 · 행5:27-32

제작일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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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청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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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27-32절에서 사도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육체의 욕심을 억제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설명한다.

본문베드로전서 5:6사도행전 5:27-32
  • 사도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통해만 죽일 수 있으며, 말씀을 따라야 한다.
  •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높임과 성령의 역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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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27-32절의 핵심 내용

  • 사도들은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 주님의 천사가 사도들을 석방시켰고, 성전에서 다시 복음을 전한다.
  • 예수는 죽으셨으나 하나님께서 살리셨으며, 이스라엘을 회개하게 하셨다고 강조한다.

육체의 욕심과 성령의 역할

  • 시기와 질투는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 피해야 할 죄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 있다.
  • 육체의 소욕은 죄에 속하며, 성령을 통해만 죽일 수 있다.
  •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며, 육체의 욕심을 죽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씀과 순종의 중요성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삶이 성령을 따라가는 것이며, 말씀을 통해 육체의 욕심을 억제할 수 있다.
  •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이 필요하며, 이는 성령의 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 말씀을 멀리하면 성령의 능력이 약화되고, 육체의 욕심을 이기기 어렵다.

예수님의 순종과 부활의 의미

  •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죄를 없애셨다.
  •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는 과정이며, 죄를 사함받고 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
  • 순종하는 삶은 힘들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높임이다.

교회와 성도의 삶

  •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함께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하며, 성령은 이 증인이다.
  • 성령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순종할수록 성령의 역사와 은혜가 더 커진다.
전사(자막) 전문▼
성경 말씀 사도행전 5장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27절에서 32절까지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27절에서 32절입니다.
5장 27절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대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주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객해하사 죄삼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오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아멘 지난 시간에 사도들이 능력을 행하면서 예수 그리토를 증거할 때 이 종교 지도자들이 이 사도들을 이렇게 박해하기 시작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둡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사자를 천사를 보내셔서 감옥 안에 있는 사도들을 밖으로 내보내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라고 하는 그런 명령을 주죠.
사도들은 나와서 이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게 되고요.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사도들을 잡아다가 다시 공회에 세우게 됩니다.
공회에 세운다는 것은 그들을 신문에서 그들을 박해하려고 하는 그러한 이유인데요.
또한 그런 가운데서 사도들이 믿음을 증거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27절, 29절 말씀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27절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돼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언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이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사도들을 이제 공회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이제 신문이 이루어지게 되죠.
대제사장이 사도들에게 말합니다.
이 이름으로 즉 예수라고 하는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는데 어미금하였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느냐라는 그런 신문을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자 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지금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이렇게 신문하는 그런 상황에서 이 사도들이 우리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맞다 하다라고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여기 말대로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맞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니 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이렇게 행했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왜냐하면 지금 이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이렇게 듣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들에게 상당히 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것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렇게 말하건 우리가 사람보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마땅하다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는 이 말씀을 통해서 정말 그 말이 맞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온전하다는 것이죠.
결국 사람을 순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그 사람의 뜻을 순종한다라는 것인데요.
성경은 이 사람의 이런 뜻과 그리고 이런 사람의 본질 자체가 불완전하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다라고 또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가장 좋은 결과가 있게 되는 것이고요.
반대로 그런 불완전한 사람의 생각이나 뜻을 따라가게 되면 당장은 좋을 수 있으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나면 지나면 그것이 점점 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과정 속에서 굉장히 많이 경험하는 그런 상황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사실 거기에는 나도 포함이 되는 거죠.
나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를 따라가지 말고 아니 사람을 사람 자체를 따라가지 말라는 겁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결국 그런 말씀이거든요.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을 따라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그런 모습인 것이고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람을 순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해야 되는 이유는 마지막에 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보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3절 이해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유하고 그 명령을 시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을 선악가나에 심판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문 10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 이유 즉 사람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인데 예수님은 그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다 멸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몸뿐 아니라 영혼도 죽일 수 있는 멸하시는 그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죽음이란 게 뭡니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죽음이지 않습니까?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사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단절되는 것을 가리키는 겁니다.
단절되는 겁니다.
우리가 죽게 되면 세상에서 살아가던 나와 연견되었던 모든 것들에선 그게 단절되는 게 죽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몸만 죽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 영혼까지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단절되는 거라고 한다면 결국은 영혼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단절되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 차단되는 거죠.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거면 영원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결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이런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잠깐 동안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사실 우리는 굉장히 큰 고통을 낳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도 해주시고
또 평안도 주시고 그러니까 이런 삶이 이렇게 같이 있다 보니까 비록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때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하나님 은혜가 단절된다
그리고 영원히 단절된다고 한다면 이건 정말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지옥에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영원을 지옥에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사도들도 그들이 이런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 사도들이 이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불이익을 당하고
어떤 해를 당할 수도 있을 수 있으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영원히 이렇게 영원히 멸망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라는 것을 사도들이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결국은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됩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 이유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셔야 됩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어디 있든지 간에 내가 내가 학교에서 있든지 직장에서 있든지 가정에서 있든지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갈등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런 삶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입기 일정에 보게 되면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애구방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여자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남자아이면 다 죽이고
여자아이는 살리라고 그 히브리인 즉 이스라엘 산파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드립니다 애구방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이스라엘 여자들이 애구왕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애구방의 명대로 하지 않고 이스라엘 여자들이 남자를 낳았어도
그 남자아이를 살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을 왕성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가리켜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런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 속에는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나를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국은 순종한다는 것은 따라가는 겁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고
이런 삶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고 적용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30절입니다 30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주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하사 죄삼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조를 삼으셨느니라 이 베드로와 사도들이 지금 공의에서 신문을 받을 때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주상 하나님이 살리셨다 이 말은 지금 베드로는 이 공의 앞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너희가 바로 예수 그리토를 죽였다라고
이렇게 증거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토를 죽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무리들입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 빌라도가 무리들한테 이 예수를 살려줄지 아니면 이 바라바라고 하는 이 살인자를 살려줄지 택하라라고 말했을 때 이스라엘 무리들이 다 하나같이 이 바라바를 살려주고
그 다음에 예수를 죽이라라고 하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빌라도가 예수 그리토를 이렇게 죽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해 있는 베드로가 또 사도들이 너희가 바로 이들을 죽였다 예수 그리토를 죽였다라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종교 지도자들로 인해서 무리들이 예수 그리토를 죽였다 마태복음 27장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권했다는 것은 충동했다는 뜻입니다 무리들을 충동시켜서 이 예수를 죽이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들이 그 말을 듣고
이 빌라도 총교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에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처형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또한 성경은 아울러서 이 종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한 이유가 이 시기로 인해서 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기입니다 지난 시간에 사실은 시기 부분에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성경은 이 시기가 질투라고 하는 것이 아주 두려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3월 27장 4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부는 잔인하고 노는 창수가 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오 분노 이건 잔인하고 그리고 또 창수라고 하는 것은 홍수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뭔가 분을 내면 노를 바라면 정말로 이렇게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쓸고 가는 것과 같은 상황처럼 되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이 투기 앞에 즉 시기와 질투 앞에 이 분과 노도 설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은 이 시기는 분노보다 더 크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사람들을 죽입니다 오늘 말씀해 놓으면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였던 이유도 결국 시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경에 기록된 상황들을 보게 되면 바로 이런 시기나 질투로 인해서 사람들을 죽인 심지어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는 그런 모습도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베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사월이 다이수를 죽이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시기와 질투였다라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결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있으면 안 되는
그런 죄악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론 다른 다른 어떤 죄들도 우리가 조심해야 되겠지만 이 시기 질투라고 하는 건 우리 더덕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시기 질투라고 하는 것이 이 믿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기와 질투로 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거 보면 또 실제로 죽였던 걸 보게 되면 이 시기와 질투라는 것은 어느 곳이든 간에 존재할 수 있는 그런 모습들인 것이고요 그것은 우리에게도 다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시기와 질투라고 하는 것은 생겨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는 육체의 소욕이라고 말수하십니다 육체의 욕심인 거죠 우리 사람은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육체 안에 육체를 갖고 있다 보니까 그 여러 가지
그런 육체의 소욕들이 있습니다 물론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은 나쁜 의미인 거죠 죄에 속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는 시기 질투라고 하는 것도 육체의 소욕에 해당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상황에 대해
이게 발동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시기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고 그러면 시기를 따라갈수록 점점 미운 마음 이 들게 되고 나중에 급기야 정말로 점점 커지는 그런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그런 상황이 되면 무엇보다 이런 시기와 질투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게 될 때 이것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는 사막을 낳는 이라는 말씀처럼 그 육체의 소욕이 우리 안에 일어나 게 되면 이걸 허위가 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걸 죽일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거죠.
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통해서만 죽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은 죄에 속한 부분이니까 내가 죽일 수 없는 것. 내 힘으로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죽이라는 겁니다.
어떻게요? 갈라데오장 13절 말씀에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 시기와 질투라는 마음이 어떤 소욕이 생겨나게 되면 이걸 죽여야 되는데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에서 우리 안의 마음의 소욕들을 육체의 소욕들을 죽이니까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라는 겁니다.
그런 시기와 질투라는 어떤 그런 마음이나 생각이 들 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결국은 내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는 것 이고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겁니다.
왜?
검이니까요.
칼입니다.
아주 예리한 칼입니다.
가장 예리한 칼인 거죠.
그래서 이것이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데 근본적으로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더 큰 능력 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됐을 때만 그런 게 아니라 평상시에 우리가 이 성령의 검을 갈아야 된다는 겁니다.
전도서 10장 10절에 보게 되면요.
무딘철 연장 날을 갈지 않으면 힘이 드는 이라 힘이 더 드는 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방에서 칼을 쓰는데 이게 칼이 이렇게 무뎌지게 되면 생활하기가 되게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성경은 이 날을 연장의 날을 갈라는 겁니다.
결국 우리에게 해당되는 연장이라고 한다면 칼이지 않습니까.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에 이 하나님 말씀이 예리한 칼로 역사할 수 있도록 갈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거예요.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이 결국은 내가 이 말씀을 가는 겁니다.
평상시에.
그러면 그렇게 평상시에 말씀을 가게 되면 검이 예리해지게 되겠죠.
그러면 예리해진 검이 우리 안에 어떤 그런 육체의 소육이 일어나게 될 때 이게 바로바로 역사에서 그 육체의 소육들을 죽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이 검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예리하지 않으면 그러면 어떤 육체의 욕심이 일어나게 되고 내가 그것을 죽여야 되는데 잘 이게 안 되는 거예요.
그건 평상시에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계속해서 가는 영적인 어떤 이런 영성생활이죠.
이런 것이 잘 안 되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심은대로 거두게 된다라는 게 바로 그런 말씀인 거예요.
평상시에 우리가 말씀과 기도의 삶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이 성령의 검이요.
정말 예리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단이 시험할 때 말씀으로 읽으셨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기록되었을 때.
기록되었을 때.
기록되었을 때.
이 말씀 가지고 말씀으로 증거하니까 사단이 패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 말씀이 정말 예리한 그런 상태가 되면요.
그렇게 역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에 힘을 써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어떤 시기, 질투 또 그 외에 어떤 육체의 욕심이 우리를 괴롭히게 하고 우리를 하여금 죄를 지키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창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 제가 많이 말씀드렸죠.
디모레 6장 3절 이하의 말씀 오면 말씀에 창념하지 않으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창념한다는 건 딱 달라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딱 달라붙어 있는 그런 삶을 살게 되면요.
정말 이 말씀이 역사합니다.
결국 이게 성경 충만이 되는 거죠.
30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30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것을 가리켜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무에 달려 죽었다는 겁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고 나무에 달려 죽었다라고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나무에 달리는 상황이 있습니다.
구역 율법에 오게 되면요.
바로 그 내용이 나옵니다.
이건 이따가 말씀드리겠고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31절에 말씀 오게 되면 이스라엘로 회개케아사 죄의 삶을 얻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 그리토를 살리신 것 이스라엘로 죄의 삶을 얻게 하시려고 라고 베드로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죄의 삶을 얻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 그리토를 살리셨다라는 뜻입니다.
죄의 삶을 얻게 하시려고 그 말은 죄가 없게 하시려고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의 삶을 얻게 하려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토를 살리셨다는 겁니다.
무슨 말일까요?
죄의 삶을 얻게 하려고 죄를 얻게 하려고 라고 하는 것은 본래부터 죄가 없었다는 게 아니죠.
죄가 있었던 것입니다.
죄가 있었는데 즉 이스라엘이 죄가 있었는데 그들로 하여금 죄가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좀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거죠.
이스라엘이 죄가 있습니다.
그 죄 가운데 있는 죄가 있는 이스라엘을 이제 하나님께서 죄가 없게 하려고 하셨는데 예수 그리토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 그리토를 살리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죄의 삶을 얻게 되는 죄가 없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됐다라는 거예요.
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된 건가를 보면요.
예수님께서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토를 살리셨다라고 하는 이 말씀 보게 되면 그 전에 이제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살리시려고 했다라는 거 보면 예수 그리토가 먼저 이제 죽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그 죽은 예수 그리토를 다시금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과정이 왜 이스라엘의 외부에검 죄를 사암받게 하고 죄가 없게 하는 그런 과정으로 연결이 되냐를 생각해 보면요.
죄가 있는 사람이 죄 없이 하려를 받으면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뤄해야죠.
이거는 당연한 거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지은 사람이 죄가 있는 사람이 죄가 없다고 여깃을 받으면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뤄해야 되는 거죠.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이유가 바로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죄의 작성 사망이라고 하는 그런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죄의 작성 사망이라는 말씀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먼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죽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이제 살리신 거예요 이 과정을 거쳐서 죄에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간에 죄가 있는 사람이 이 과정 예수님께서 거쳐왔던 이 과정을 통해서 죄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과정을 같이 겪게 되는 그 과정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왜냐하면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결국 세례라고 하는 그 과정을 보면 왜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왜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살리셨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세례가 이제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 알겠습니까?
물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죽는 거죠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먼저 본이 되신 겁니다 먼저 죽으신 겁니다 그리고 먼저 부활하신 겁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도 이후에 있을 이제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사람들도 예수님과 똑같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죽고 그리고 부활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죄의 삭스를 치르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던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럼 죄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과정을 위해서 이렇게 해서 죄를 없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걸 위해서 예수를 죽게 하셨다는 거죠 and that he will be able to die 그리고 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죄 없이함을 받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은혜가 바로 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이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삼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세례 가운데 예수님의 피, 즉 예수님의 죽으심이 아니습니까 왜냐하면 죽어야만 내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거니까 그래서 반드시 이 세례 가운데는 예수님의 피가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냥 물만 보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이 세례는 예수님의 피가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7절에서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과 죄사함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죄를 사안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같은 의미가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로 죄 없게 하려고 이렇게 예수를 죽이셨고 또 살리셨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세례라고 하는 걸 통해서 우리 로하이금 죄를 없게 하셨는데 하나님은 단지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없게 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죄가 없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게 되면 그 순간만 죄가 없이 받는 게 아니라 그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피를 통해서죠 그럼 우리가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죄가 죄삼, 죄가 없이 함을 우리가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그 예수님의 피 안에 있어야 돼요 예수님의 피 안에 어떻게 해요?
요원 1절 1장 7절 말씀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의 빛 가운데 생하면 예수 그리트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주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아서 죄를 세례를 통해서 죄 없이 함을 받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세례를 받아서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우리가 피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삶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의 피가 역사하면 어떻게요? 빛 가운데 가면 그래서 암송하기가 쉽더라고요
에베스 1장 7절 말씀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다는 말씀이시고 요원 1절 1장 7절 말씀에는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하면 예수 그리트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주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런 예수 그리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우리라는 죄의 업계함 하심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세례받는 것이고 그리고 세례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트의 피로 인해서 우리가 죄를 삶을 받을 수 있는
죄의 업시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빛 가운데 우리 거하는 겁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거 그게 바로 우리가 어떻게 빛 가운데 거합니까?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 빛 가운데 거하면 빛 주의 말씀은 내 말의 등이오 내 길의 빛이니라 말씀 안에 있으면 말씀을 따라가면 빛 가운데 거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예수 그리트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순종이 중요한 겁니다
순종이 우리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율법에 나와 있는 그 말씀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명기 21장 22절 23절에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율법에 정한 그 규정을 보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받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무에 달렸다는 것은 저주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그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가리키 나무에 달아 달려서 죽임을 받았다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저주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시간간 이상 찾지는 않겠습니다만 갈라디아서 3장 10절 13절 말씀하기에는 바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신 저주받으셨다는 겁니다
그 말은 우리가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우리가 저주받았냐 성경은 우리가 율법의 저주 가운데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의 저주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이지 않습니까 그게 왜 저주가 되는 거예요
그 갈라디아서 3장 10절 이하에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지키지 않으면 다 범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율법을 잘 지키게 되면 율법을 통해서 복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은 그 율법 때문에 벌을 받게 되고 심판을 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복이 되는 율법은 결국은 저주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 있을 때 다 율법을 통해서 저주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율법을 온전히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가 되셨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그런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이렇게 지켜
온전히 지키셨다는 거예요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임을 당했다라고 하는 그런 부분들은 이런 부분이 다 포함이 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다 시키지 못하니까 우리 대신 형벌을 받은 그런 내용이 다 포함이 된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예수 그리토를 이렇게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은 이제 죄가 없다라는 것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예수 그리토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그런 과정을 갖추게 되면 예수님과 똑같은 죄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입니다 31절 말씀 이스라엘로 회개케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조를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토를 이렇게 살리셨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스라엘로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리고 나서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라는 것은요 부활시키셨다는 뜻입니다 부활이요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오른손으로 높였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을 부활시켰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오른손으로 높였다라고 하는 것은요 가장 높이 올리셨다는 뜻입니다 가장 높이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은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높이 올리셨다라는 것입니다 10편, 80편, 13절 말씀을 말씀하십니다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강하고 하나님의 손이 높다라고 하는 그 말씀인데 그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으로 그를 높였다는 것은 그를 지극하게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를 부활시켰다는 것은 장차 성경에서 지극히 높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요 장차 성도가 나중에 부활하자 했습니까? 부활 가장 큰 영광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셨다는 것은 아니 우리 성도가 장차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가장 높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부활이라는 것이 우리 성도의 마지막에 마지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림하실 때 그 구원 받게 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이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은 가장 큰 영광, 가장 존귀하게 가장 높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다 이런 연약한 가운데 있고 다 그리 비싼 가운데 있지만 장차 부활하게 된다라고 하는 것은
가장 높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를 이렇게 높이신 것은 그 과정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복종하는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아까 사도들이 사람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던 그런 모습처럼 사실은 예수님도 바로 그런 모습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중간 과정에서 이런 고난이 있었고 심지어는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하는 그런 과정도 있었지만
하지만 그로 인해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셨다는 것은 가장 지극히 이렇게 높이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힘든 과정에서 힘든 과정이 있고 때로는 그것 때문에 내가 고난을 받고 심지어 우리가 고통을 받
을 수 있어도 하지만 그건 과정이고 결과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께 겸손하다는 것은 결국은 순종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반드시 높이됩니다 이걸 우리가 믿어야 돼요 과정에서는 힘든 과정이 있습니다 분명히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끝까지 믿는 사람들은 이 길을 계속 갑니다 하지만 이걸 끝까지 믿지 못하면 가다가 말게 되는 거죠
그래서 순종하지 못하는 겁니다 성경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끝까지 순종하라는 거예요 끝까지 순종하면 반드시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그런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끝까지 믿으라는 겁니다 끝까지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줬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본이 되신 거죠 32절입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베드로는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다 이 일이 뭡니까?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관을 살리신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부활의 증인이라는 거죠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다 성령도 바로 이 일의 증인이라는 겁니다
성령이요 왜 그렇습니까?
성령이 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까?
왜 성령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라는 것입니까?
성령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이제 영으로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강림했다라고 하는 건 성령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그 죽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성령이 강림하고 있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부활하셨다라고 하는 부활해서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시다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는 그 증인이라고 말씀하세요 성령이 바로 이 일의 증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증인이고 성령도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은 분명히 지금 살아계시다 예수님은 부활해 계시다라는 것을 분명히 증거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 성령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요 하나님께서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고 또 성령의 은혜를 받는 것도 다 여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도 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우리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반드시 순종하면 할수록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은혜는 더욱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가 구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 성령의 충만은 우리 순종을 통해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이 일의 증인
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증거하면 증거할수록 점점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신다라고 하는 것을 더욱더 분명하게 알 수 있고 그럴 때 더욱더 주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나는 증거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과 이적과 기사 이런 것들이 더욱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나타나주셔서 우리가 하는 그 일이 확실 하다는 것을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이렇게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찬송하겠습니다. 찬송 502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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