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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 20

정호민 · 엡4:1-6

제작일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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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1.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씀 찾으셨으면 저와 성도님들 한 절씩 나누어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00:00] (화면) True Jesus Church 안식일 오전예배 [2026.09.05.]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엡 4:1-6) [00:15] (화면) True Jesus Church 안식일 오전예배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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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_one": "에베소서 4:1-6을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됨을 힘써 지키고, 신앙과 교리, 예배의 통일을 강조하는 메시지.",

"summary_three": "에베소서 4:1-6을 중심으로 교회가 하나됨을 힘써 지키고, 신앙과 교리, 예배의 통일을 강조하는 메시지이다.\n교회는 주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으며,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이 하나되어 믿음과 성령, 하나님의 뜻을 공유한다.\n하나됨은 겸손, 온유, 인내, 용납, 평안을 통해 실천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body_md": "## 교회의 하나됨\n- 에베소서 4:1-6을 중심으로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함.\n-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사도로서의 사명을 이행하며 교회에 권면.\n- 교회는 주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있고, 한 성령과 한 세례로 하나됨.\n- 유대인, 이방인, 종, 자유인 등 다양한 배경의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됨.\n- 믿음, 세례, 성령, 하나님은 모두 하나이며, 이는 교회의 단합과 통일을 의미함.\n-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교리가 확정됨.\n- 참여수교회는 10대 기본 신앙을 바탕으로 오대교리(세례, 성령, 세종래, 성찬래, 안식일)를 지킴.\n-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됨을 힘써 지키며, 하나된 믿음과 교리, 예배를 통해 하나됨을 실천해야 함.\n\n## 신앙의 핵심: 구원과 재림\n- 예수 그리스도 재림과 구원은 신앙의 핵심이다.\n- 열 가지 기본신앙 중 구원과 재림은 핵심이다.\n- 하나의 믿음, 하나의 하나님,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신앙의 기초이다.\n- 신구약 성경은 하나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일관되게 증거한다.\n- 구원은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적이다.\n- 영생을 향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n\n## 하나됨을 이루는 방법\n- 성령은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며, 하나님과의 화평을 회복시킨다.\n- 사단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하나됨, 그리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파괴하려 한다.\n- 교회 내 분쟁과 갈등은 사단의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다.\n-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 평안은 하나됨을 유지하는 방법이다.\n- 예수님의 겸손은 신앙생활에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n- 겸손은 하나 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n- 온유는 성경에서 길들여진 유순함을 의미하며, 태생적인 성품이 아닌 훈련을 통해 얻는다.\n- 모세는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 온유함을 얻었으며, 이는 모든 신자에게 적용된다.\n- 오래 참음(인내)은 교회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고 하나 되는 데 필수적이다.\n-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자세는 하나 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n- 평안과 화평은 하나 되는 교회의 핵심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연결된다.\n- 교회 안에서의 하나 되기는 모든 성도가 힘써야 하며, 개인의 책임이다.\n- 교회 간 교류와 교제는 신앙 공동체의 하나됨을 강화한다.\n-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교회가 더욱 하나 되기를 간구한다.",

"tags": ["하나됨", "교회단합", "신앙", "성경", "예수그리스도",

전사(자막) 전문▼
1.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씀 찾으셨으면 저와 성도님들 한 절씩 나누어서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평안에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의 하나님이 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도 하나이오 믿음도 하나이오 세례도 하나이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이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모두의 성도 여러분들 지난 한 주도 모두 주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어느덧 무더운 8월 여름이 지나가고 9월이 되었습니다.
비록 날씨는 무더웠지만 지난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요.
또한 9월 첫 주 안식일을 맞아서 저희가 한데 모여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바라오키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 귀한 안식일 하나님의 큰 복과 평안을 누리는 그런 행복한 하루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시간 우리 성도님들과 나눌 말씀의 제목은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 입니다.
자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예배 소서의 말씀입니다.
예배 소서는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예배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자 그래서 오늘 본문의 1절을 보면은 바울은 어떤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라고 말하고 있죠.
자 앞선 예배 소서 3장 1절의 말씀과 같이 보시면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가운데에서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중에도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사도로서 이방을 위해 또한 많은 사람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대외적으로는 믿지 않은 많은 이방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믿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권면했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부르심을 입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시면은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면 이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인가?
오늘 말씀을 결론적으로 보면은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라는 것입니다.
자 오늘 이 시간에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주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우리 모든 성도가 힘써 지켜야 할 하나됨에 대해서 같이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첫 번째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내용은 우리는 주 안에서 이미 하나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이미 하나이다.
자 오늘 말씀을 4에서 6절까지부터 보면은 한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우리 4절에서 6절을 같이 읽어볼 텐데요.
어떤 단어가 몇 번 반복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4절에서 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어떤 단어가 계속 반복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
한.
하나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이 되고 있죠.
그렇다면 총 몇 번에 걸쳐서 하나 또는 한이라는 단어가 나왔을까요?
총 7번이.
잘 쓰였습니다.
7번 이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종합을 해보면은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하나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4절의 말씀부터 보시면은 가장 먼저 무엇이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몸이 하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 12장 5절의 말씀을 보시면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레이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 안에는 많은 성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성도들이 저마다 저마다의 배경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저마다 민족이 다르고요.
외모가 다르고요.
언어가 다르고요.
성격이 다르고요.
많은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의 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레이스도도 그러하니라.
그래서 성경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주 안에 있는 교회의 모든 성도는 한 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해 볼 수 있겠죠?
어떻게 각기 다른 사람이 한 몸이 될 수 있느냐.
그것은 한 세례와 한 성령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5절 그리고 4절과 5절의 말씀을 보시면은 성령이 하나 그리고 세례도 하나.
그래서 우리가 갈라디아서 3장 27절 28절의 세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레이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레이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레이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당시 사도시대를 기준으로 본다면은 사독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는 유대인도 있었고요.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도 있었습니다.
자유인도 있었고요.
종도 있었고요.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세례를 통해서.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례를 받기 이전에는 다 제각각 저마다 다 다른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이제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 죄사함을 받고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면서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이자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의 말씀을 보시면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세례를 받은 것처럼 또한 동일한 하나의 성령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그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천국의 기업을 보장해 주시고요.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면서 우리가 끝까지 이 믿음의 길을 완주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신다.
성령을 통해서 함께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각기 다른 사람이 주 안에서 한 몸 하나가 되었느냐 바로 한 세례와 한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과 영으로 거듭나서 주 안에서 하나 된 우리는 몇 개의 믿음으로 살아가느냐 바로 같은 하나의 믿음으로 살아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 5절의 말씀을 보시면은 믿음도 하나라고 말하고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서 1장 3절의 말씀을 보시면은 하나님께서는 물과 영으로 거듭난 한 교회의 한 몸 된 성도들에게 단번에 하나의 같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사도시대에 우리가 역사를 생각해보면은 사도행전 14장에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마친 이후에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된
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15장에서 예루살렘 회의를 개최하게 되고요.
그래서 각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게 됩니다.
마침 오늘날 각 교회 그리고 세계적으로 보면 모든 교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 대표 대회를 하는 것과 동일하죠.
그래서 그 사도행전 15장의 결론부를 보면 이제 결론을 내리면서 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이것을 결정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서 결정을, 결론을 내렸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규례, 규례라는 것이 세워지고요.
이 규례를 각 교회에 편지하여서 다 동일하게 지키도록 합니다.
이 규례라는 단어가 원어로 보면 교의, 교리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 참여수교회에 5대 교리를 주셨고요.
1975년 제2차 세계 대표 대회를 통해서 이 5대 교리를 기반으로 10대 기본 신앙을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에 똑같이 이 기본 신앙을 전해주어서 이 신앙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날 참여수교회에 신도된 우리 모든 성도는 기본 신앙을 배우고 기본 신앙을 지키지 않습니까?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기본 신앙은 총 몇 개일까요?
총 10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우기 쉽게 단계적으로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가장 먼저 우리 믿음의 대상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곧 참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근거이자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은 구원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러면 세 번째로 우리는 어디에서 믿습니까?
믿음의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세우신 사도교회에 부응된 참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회에서 무엇을 행하느냐?
우리 믿음의 증거이자 우리 믿음의 행함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지키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오대교리라는 것입니다.
오대교리가 무엇이 있습니까?
순서대로 외우면 알기 쉽게 첫 글자만 떠서 보통 새성, 새성, 안이라고 외웁니다.
그러면 하나씩 생각해 볼까요?
첫 번째 새가 무엇입니까?
세례, 그 다음에 성령, 세종래, 성찬래, 안식일.
그래서 우리가 이 다섯 가지를 믿음으로 행하고요.
또한 믿음으로 지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지키는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함에 있다.
그래서 아홉 번째 기본신앙이 구원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기본신앙이 재림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열 가지의 기본신앙을 우리가 배우고 기본적으로 지킨다.
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같은 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우리 믿음의 대상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죠.
그래서 다시 예배소서 4절에서 6절 말씀해 보시면 6절에서 하나님도 하나이다.
그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하고 있죠.
그리고 5절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신약 모든 성경은 일관적으로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한 분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4절을 보시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고요.
이사야 43장 11절에서도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단 한 분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작의 이 말씀은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 말씀 찾으셨으면 같이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여기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도 한 분이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한 하나님,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구원에 있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4절의 말씀을 다시 보시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교회의 성도로서 이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구원에 있고요.
바로 그 구원에 우리의 하나의 소망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1장 3절에서 6절 말씀을 참고해서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하나의 소망을 주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한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영원한 삶은 결국 둘 중에 하나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불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영생이 있고요.
반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영벌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두 가지 영원한 삶 중에서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갈 것인가?
당연히 영생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결국에는 사라지고 없어질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더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세례, 한 성령을 통해서 주 안에서 한 몸이 되었고요.
이제 한 하나님, 한 주를 믿으면서 하나 되어서 살아가는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부르심의 한 소망, 곧 영생이라는 하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곱 가지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두 눈 들어서 주변을 바라보면 저마다 다 다릅니다.
우리가 늘 주 안에서 한 형제, 한 가족,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늘 말하지만, 노래를 부르지만 실제 우리가 주변을 바라보면 다 다르지 않습니까?
저마다의 배경도 다르고요. 상황도 다르고요. 생각도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서 바라보면 영 안에서, 영적으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이 하나 됨이 완성된 것은 아직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두 번째 우리가 함께 나눌 내용은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한다.
자, 오늘 본문 예배소드 4장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절 읽겠습니다. 시작!
평안의 매눈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아멘.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기도 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힘써 지키라. 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무엇에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까?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즉,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힘써 지켜야 된다라는 것이죠.
자, 그래서 우리가 두 가지를 나누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라는 것입니다.
자,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자, 이것은 곧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도록 지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지으신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 남자를 지으셨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 홀로 지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선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남자를 도울, 돕는 배필로 여자,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주 안에서 한 몸, 한 살이 되어서 서로를 돕고 서로를 사랑하며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 으셨습니다.
비록 사람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고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깨어졌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서 사람들을 주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고요.
다시 그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참된 화평, 참된 평안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 말씀 찾아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18절입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 18절 말씀 먼저 제가 쭉 읽겠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개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패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세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십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아멘 이 말씀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 이전에는 우리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그런 존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율로 말미암아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이제는 우리가 주 안에서 한 몸이 되어서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단이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바로 죄를 통해서.
그래서 사단은 사람을 유혹하여서 죄를 짓게 하고요.
그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 사람의 하나됨을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과 사람의 관계를 파괴시켜서 그 사이에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시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과 사람의 관계를 보면 여러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가정적으로부터 보자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더 나아가서는 이웃, 동료, 여러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수많은 갈등이 있지 않습니까?
그 갈등은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고요.
그 다툼으로 인해서 결국 분열되고 분열되는 그런 많은 사례들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보유를 말미암아서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지만 반대로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틈을 노리면서 그 하나됨을 파괴시키려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례는 사도시대에도 쉽게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빌리포서 4장 2절의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는데 특별히 여기서는 실명을 거로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빌리포서 4장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요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계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만약 예의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요.
제가 설교하는 자리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두 사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누구 누구 형제님, 누구 누구 형제님 두 분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가지십시오 라고 말하면 그 권면을 받은 성도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한편으로는 깜짝 놀라겠죠?
공식적인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는 것은 지금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하다라는 것입니까?
적어도 같은 마음은 아니라는 것이죠.
주 안에서 한몸된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이것은 개인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 1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분쟁, 분열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0절의 말씀을 보시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겁게 엄중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하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
교회 안에서 쉽게 말하면 다 끼리끼리 마치 당을 이루어서 마음이 다 나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 12절의 말씀을 보시면 다 저마다 쫓는 사람이 다르더라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볼로를 쫓고요.
누군가는 바울을 쫓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 가운데에서 바울은 아주 엄중하게 하나됨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한 교회를 세우시고요.
그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한몸된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하나입니다.
앞서 말씀을 나누었죠.
우리는 주 안에서 이미 하나이다.
그러나 육적으로 본다면 한 공동체에 지체된 여러 성도들의 다양한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성도들을 놓고 보면 다 저마다 다르죠.
저마다의 생각도, 성격도, 신앙도, 환경도 모든 것이 다 다릅니다.
비록 우리는 영적으로는 이미 한 몸이지만 서로의 마음이 다를 때가 적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다르다 보면 서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서로가 이해되지 않으면 쉽게 오해와 갈등이 발생되고요.
이 오해와 갈등으로 말미암아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결국 그 다툼으로 인해서 분열, 분리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기에서는 안 됩니다.
가볍게 여기에서는 안 된다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랑 이 사람은 다르니까 우리가 다 다른 환경이 자랐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어?
어떻게 우리가 한 마음이 될 수 있어?
교회에서는 한 마음, 한 뜻을 얘기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지.
이건 안 되지.
하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렸죠?
우리는 영적으로 이미 주 안에서 하나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다.
또한 그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그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하나 되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고 계속 나뉘어지는 것입니까?
그 배후에 누가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사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 성도들의 틈을 노리면서 어떻게든 우리의 하나님을 파괴시키려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건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 되게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었다고 해서 그냥 내가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으면 그냥 저절로 알아서 단결되는 것이 연합되는 것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다면 이제 우리가 그 성령을 힘입어서 더욱더 힘써서 이 하나 됨을 지켜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하나 됨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 안에서 더욱 하나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세 번째 내용입니다.
어떻게 하나 됨을 힘써 지킬 것인가?
우리가 이 다섯 가지를 통해서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 그리고 용납, 평안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 서로 용납하고 평안, 화평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1절에서 3절 말씀해 보시면 바울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권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위해야 된다.
이것은 하나 됨.
하나님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나 되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힘써 지킬 것인가 첫 번째는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마음의 낮음을 말합니다.
마음의 낮음 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툼이 일어나고 분열되는 것입니까?
내가 상대방보다 위에 서서 내 뜻, 내 마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내 뜻과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나보다 상대를 높여서 상대방을 섬길 수 있는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 찾아보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무 일이라든지 다툼이나 허용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아멘 자, 여기서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낮게 여기라라는 것입니다.
시옥 받침입니다. 지읒 받침 아닙니다.
낮게가 아니라요.
더 낮게, 나보다 더 좋게 여기라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나는 낮아져야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어지는 빌립보서 2장 3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겸손에 대해서 가장 좋은 본보기를 제시합니다.
그 본보기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죠.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포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런데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바로 겸손의 마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 누구이십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 위에 계신 가장 높은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섬기는 섬김에 순종의 삶을 사셨고요.
결국에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당신이 대신에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 예수의 겸손을 배워서 그 겸손으로 다른 성도들을 높일 수 있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 신앙 세안을 하면서 많은 성도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때 가장 먼저는 이러한 겸손이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순간 내 생각을, 내 마음을 고집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고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높아질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높아진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 뜻, 내 마음을 내려놓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성도들을 더 낮게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상대방을 더욱 이해할 수 있고요.
그렇게 우리가 그 겸손을 통해서 하나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온유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든 겸손에 이어서 바로 온유함을 이야기하고 있죠.
온유하다라는 것은 한자으로 보자면 따뜻할 온자에 부드러울 유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온화함, 친절함을 말하는 것인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온유란 태생적으로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유하다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럽고 온화한 어떠한 모습 그런데 어떠한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역자님, 저는 태생적으로, 저는 원래 성격이 온유하지 못합니다.
저는 원래 온화한 성격이 아니에요.
저는 사람이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고요.
부드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 온유함은 태생적인 온유함이 아니다.
이 온유하다라는 말을 원어로 뜯어보면 동물에게 쓰일 때 어떤 뜻으로 쓰이느냐?
길들여진, 유순한 의미로 쓰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래는 굉장히 사나운 동물인데 우리가 이제 도렌사가 이 동물을 훈련시키지 않습니까?
그 훈련을 통해서 길들여져서 유순해진 상태가 바로 온유함이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 모세는 원래 태생적으로 보면은 온유한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을까요?
후자에 가깝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가 애굽에 있었을 때 한창 혈기 망성한 청년의 시기였을 때 자기 동종이 애굽 사람에게 괴롭힘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모세의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참지 못하고 그 즉시 일어나서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 애굽 사람을 처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그냥 처 죽인다고만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만 아니, 사람을 처서 죽일 정도면 얼마나 때렸다는 것입니까?
사실 무시무시한 일이죠.
그런데 이후에 모세가 광야로 도망가서 40여 년간 하나님의 훈련을 받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게 되었고요.
이후에 민숙이의 말씀을 보시면 이 모세를 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모세의 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사람들보다 모세가 온유하다.
가장 온유하다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은 태생적인 온유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통해서 다듬어진 온유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온유함을 훈련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 성격이 어떻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통해서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훈련되어져야 되고요.
이 온유함으로 성도들을 대할 수 있어야 된다.
세 번째로 우리는 오래 참아야 됩니다.
오래 참아.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죠.
모든 겸손과 온유하고 오래 참음으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음은 곧 인내를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나로와여금 참을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로와여금 참을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나로와여금 참을 수 없는 어떠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에서 내가 때로는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평소에는 우리가 하하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든지 또는 내가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게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했는데 그 소리가 돌아 돌아서 내 귀에 들렸다든지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행동을 했다든지
어떤 경우에는 정말 내가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억울하게 어떤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참지 못하면 참지 못하고 화를 바란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크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일로 인해서 내가 교회에서 멀어지든지 아니면 그 일로 인해서 상대방이 멀어지든지 더 나아가면 그 일로 인해서 두 사람 다 혹은 그 이상이 교회에서 멀어지든지 결국 하나 된 교회에서 나뉘어지는 그런 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오래 참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대살로니가 전서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또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살로니가 전서 5장 14절을 보겠습니다.
대살로니가 전서 5장 14절 15절입니다.
14절 15절 찾으셨으면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참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좋으라 아멘 그래서 14, 15절을 연결해서 보시면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예외가 없다라는 겁니다.
실제로는 신앙생활하면서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도 오래 참을 수 있어야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더 억울해요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그에 대해서 화를 바라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나는 억울하지만 사실 그 억울함을 누가 다 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요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내가 오래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인내를 귀하게 여겨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오래 참음으로 발매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지킬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모든 사람에 대해서 모든 상황에 대해서 오래 참을 수 있어야 되겠고요 설레 누군가가 나에게 악하게 되었다고 해서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선을 추구하면서 인내할 수 있어야 되겠다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서로 용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서로 용납할 수 있어야 된다 이 용납하다라는 것은 참다, 견디다, 그리고 너그럽게 보아주다라는 의미입니다 너그럽게 보아주다 오래 참음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오래 참을 수 있어야 되고요 또한 서로 간에 용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용납되지는 않아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가 어떠한 상처되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내가 어떠한 액션은 취하지 않아요 참습니다 참는 내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 사람을 용납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겠는 거예요 그러면 그 인내가 빛을 바랄까요?
물론 참긴 참습니다 그런데 그 용납할 수 없는 그 마음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끊임없이 이 사람에 대해서 악한 마음이 들어요 왜 이렇게 하지?
왜 저렇게 했지?
왜 나한테 그랬지?
그래서 용납하지 않고요 용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마음은 내 마음을 갉아먹어서 나로 하여금 결국 이 하나 됨에서 벗어나게 하는 또 하나의 악한 계기가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오래 참는 동시에 또한 용납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기에는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설령 내게 어떤 잘못을 하고 피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내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용납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그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받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용서받은 사람이에요 사실 용서받을 수조차 없는 그런 죄인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큰 용서를 받았는데 왜 우리는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대서 3장 13절에서도 누가 누기에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래 참는 동시에 서로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된다
마지막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평안에 매는 줄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평안에 매는 줄 곧 화평 화목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앞서 하나님을 힘써 지키기 위한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고 용납해야 된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라 하면 그 핵심에 사랑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말씀을 보시면은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사랑은 겸손하다라는 것이죠 사랑의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죄인인 우리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보율로 말미암아서 또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참된 화평, 참된 평안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시간 동안 예배소서 2장 13절, 18절까지 좀 긴 내용이지만 쭉 읽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또한 반복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가 바로 화평 또는 평안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바로 평안 평안의 매뉴지를 할 때 이 평안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평안을 통해서 화평을 통해서 우리를 주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누가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까?
바로 여기 있는 우리 한 사람 모두가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된다 결국 우리가 이렇게 겸송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용납으로 평안의 매뉴줄로 화평을 추구해야 된다 화목을 추구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많은 말씀에서도 이 평안, 화평, 화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9절에서도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일군을 비롯해서 성도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화평의 일 정말 교회의 성도들이 화목을 이루어서 정말 교회의 성도들이 화목을 이루어서 누구 하나 불편한 사람 없이 정말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일에 힘써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배소서 4장 3절의 말씀을 다시 보시면 결국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과 용납과 평안의 매뉴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죠? 힘써 지키라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이것을 힘써 지키지 않으면
사단이 우리의 틈을 노려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무산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평안의 매뉴줄로 우리를 꽁꽁 매야 됩니다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모든 다섯 가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일에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까?
내가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편의성 우리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일은 주위의 일꾼들이 혹은 은사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지 아유 뭐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하니까 아유 나는 이런 데는 은사가 없어 아유 나는 믿음도 약하고
아유 내 믿음 챙기기도 버거운데 누가 누구의 믿음을 챙기고 어떻게 내가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있겠어?
가 아니라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 누군가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또 하나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앞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가 필요합니다 내가 겸손해야 되고요 내가 온유해야 됩니다 내가 오래 참아야 되고요 내가 용납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평안의 매눈줄로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됩니다 그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우리를 이룰 때 우리가 이 다섯 가지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주 안에서 더욱 하나 되게 하시고요 하나 된 교회를 통해서 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지난주 대일 대만 방문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국에 있는 대일 학생들을 데리고
대만 교회를 방문했는데요 또 저로 보자면은 또 오랜만에 대만에 방문해서 대만 교회 성도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그 주에 대전교회 청년부에서 우리 수원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또 감사하게도 우리 대전교회 그리고 우리 수원교회 청년부들이
또 믿음 안에서 교류하는 교제하는 아주 감사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또한 이렇게 믿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은 이렇게 교류하고 교제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바라오키는 이 모든 기회에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또한 기회가 될 때 우리가 또 교회 차원이든지 신도회 차원이든지 다른 교회를 방문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은 우리 수원교회도 또 평택교회도 얼마든지 해외교회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또한 많은 사랑을 또한 받고
또한 교류할 수 있지 않습니까 또 반대로 두고 보면은 또 이번에 대전교회에서
강남교회에서 방문한 것처럼 이전에 강남교회 마가회에서 방문한 것처럼 많은 교회에서 또 우리 수원교회를 평택교회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또한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누어 줘야죠.
더 많이 또 줄 수 있어야죠.
그래서 저는 또한 이런 시간을 통해서 또 우리가 주관에서 더욱 하나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가 갖춰야 할 이 다섯 가지를 통해서 우리가 날로 날로 더욱 하나 될 수 있는 그런 교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로 얻기는 이 모든 것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하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하나 되어가는 우리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잠시 묵도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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