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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칭찬받는 믿음 (화)

눅7:1-10

제작일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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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현집사
#TJC전주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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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이 예수님께 칭찬받으며, 신앙인들에게 온전한 믿음의 예가 되었다.

  • 백부장은 병든 종을 구원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고,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믿는 믿음이 특징이다.
  • 그의 믿음은 예수님께 큰 칭찬을 받았으며, 이는 신앙인들에게 온전한 믿음의 모범이 된다.
  •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겸손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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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백부장의 이야기

  •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셨을 때,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었다.
  •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께 그 종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했다.
  • 백부장은 예수께서 직접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으로도 종이 낫기를 갈망했다.

백부장의 믿음

  •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병을 치유해줄 것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을 보였다.
  • 예수님은 이 믿음을 매우 칭찬하며,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 백부장은 종을 사람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예수님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보였다.

믿음의 교훈

  •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 직접적인 치유의 은혜를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의 핵심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축복으로 이어진다.
  •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고, 겸손하고 온전한 믿음을 성장시켜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의 말씀
누가 보곤 7장 1절에서 10절입니다 같이 교독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1절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며칠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그러므로 내가 죽게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 여겨 돌이키사 쫓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봄에 종이 이미 강간하여졌다라 하니
성도님들 일상 중에 힘든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여러가지 많은 일들을 경험하실 텐데요 그런데 이 여러 상황 중에 칭찬을 들으시면 어떤가요?
칭찬 들으시면 좋지요 아무래도 상당히 좋은데요 아무리 일이 어렵거나 힘들 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수행했던 일의 마지막에 칭찬을 들으면 그동안 힘들거나 속상했던 일이 보상을 받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칭찬을 들으면 어떨까요?
그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라는 그런 칭찬을 들었을 때 정말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기 위해 항상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믿음이라는 것이 뭔가 명확한 기준에 의해서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중간 믿음 이렇게 하면 큰 믿음 이런 기준이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알 듯하면서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이 믿음인 것 같습니다 제가 믿음이 과연 무엇일까를 한번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전에 나온 이야기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이렇게 정의가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특히 종교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 사랑, 의례심을 갖는 일이다 라고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인들에게 믿음은
단순한 그런 믿는 마음이 아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 신앙인에게는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되겠죠 우리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같이 보면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열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베드로전서 1장 9절의 말씀을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이처럼 구원을 소망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또 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 항상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일까요?
오늘 같이 살펴볼 말씀에 나오는 백부장은 예수님께 큰 믿음을 가졌다고 칭찬을 받습니다 백부장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이 주골병에 걸린 상황에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거쳐달라고 청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 하인을 거쳐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좀 눈여겨봐야 할 것이 9절의 내용인데요 9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음이 좋다 소준이 아닌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다라고 감탄하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여태껏 예수님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당시 하나님의 선민이라 생각하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이렇게 크고 놀라운 믿음을 가진 사람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믿음의 모든 면에서 백부장의 믿음은 실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훌륭한 믿음이라고 칭찬을 하시는데요 이 말씀 중에 기이 여기다라는 원어를 보면 기이 여기다는 놀라다, 경탄하다라는 그런 의미가 있고요 또 이만한 믿음은 이렇게 큰 믿음, 또 이렇게 큰 신뢰, 확신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이 여길 만큼 백부장에게는 큰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복음 8장 6절에서 7절을 하면 보면요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6절 가로대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7절,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종이 걸린 죽을 병이 중풍병임을 알 수 있고요 심지어 내 하인이 괴로워한다는 백부장 말 한마디에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라고 선뜻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 보통 성경에 보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나와서 간절히 구하거나 외치는 상황에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시거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백부장의 경우에는 백부장의 요청 한마디에 한마디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도 백부장 본인이거나 백부장 가족도 아닌 하인의 병을 고쳐주신다고 하신 건데요
그만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큰 믿음을 보시고 직접 백부장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자 직접 나서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같습니다 대체 백부장의 믿음이 어떤 것이기에 그토록 예수님께서 높은 평가와 칭찬을 받은 것일까요 항상 큰 믿음 얻기를 구하고 소망하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무엇보다 이 백부장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본받을 사항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이 무엇인지 같이 한번 살펴보고 송도님들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사랑이 있는 믿음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에서 백부장에게 사랑의 마음이 있음을 두 가지 경우에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입니다 본문 말씀 7장 1절에서 2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1절 2절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아멘 2절에 보면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말의 그 원어를 보면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좋아하다의 그런 뜻이 아니고 귀중한 소중한 이런 뜻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종을 귀하게
정말 아끼는 백부장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종이 걸린 병은 좀 전에 마태복음 기록에서 중풍병이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그 당시 중풍병은 낫기도 어렵고 환자를 관리하기도 힘든 병으로서 성경에서도 예수님께 고침의 은혜를 받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그런 병입니다.
그만큼 백부장은 자신이나 가족이 아닌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이 중풍병 걸릴 것을 치유받기 위해 진심 어린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와 강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을 사랑하는 것은 요즘처럼 인권이 많이 발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해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종에 대한 인식을 어땠는지 살펴보면 요즘은 노예라든지 종의 개념이 거의 사라졌지만 이 당시에는 노예 제도가 있었고 특히 종은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치급을 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주인의 모든 것을 옆에서 돕는 그런 물건으로 인식을 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이들에게는 인권이나 인격 이런 것도 없었고 물건 치급하듯이 사람을 사고 팔기도 하고 심지어 큰 병으로 아프거나 쓸모없어지면 그냥 길에다가 버리거나 죽게 내버려 뒀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종이 그것도 중풍병이라는 큰 병에 걸린 이 상황에서 이를 고치기 위해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 시대의 간념처럼 종을 단순히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정말 이 종을 사랑하고 귀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송도님들은 신앙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인데요.
하지만 신앙 생활 중에 사회적 간념이나 그 당시 여러 환경에 의해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제 교회에 누가 오신다던가 새로 오셨을 때 방문하셨을 때 저부터도 이제 외모가 깔끔하거나 이렇게 하신 분에게는 호감이 가거나 하게 되는데 조금 이제 몸이 불편하시거나 어수룩하게 이제 그렇게 되는 분이 오시면 좀 마음이 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 2장 1절에서 4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1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아멘 야고보서 말씀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악한 생각을 가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사람을 가볍게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악한 생각이고 죄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고 똑같이 지음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구 하나 더 귀하거나 더 부족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종이지만 귀하게 여기고 더욱 사랑으로 대한 백부장의 마음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마음가짐인 것을 기억하시고 실천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원합니다.
두 번째로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의 마음은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었습니다.
본문 말씀 3절에서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3절에서 5절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며칠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는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아멘 방금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시면 백부장의 종이 병든 상황에서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나온 사람이 백부장이 아닌 유대인의 장로가 예수님께 나와 반고치기를 청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하시기를 해서 구원의 의미는 원어를 살펴보면 안전하게 살려내다.
라는 그런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우리는 백부장이 예수님께 구원을 요청한 것은 죽어가는 자신의 종을 예수님께서 건강하게 소생시킬 수 있다는 그런 확신을 전제로 한 것이고 여기서도 백부장의 겸손하면서도 확고한 믿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백부장이 아닌 장로들이 대신해서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예수님께 나와와서 청했을까요?
5절에 보면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이 유대인을 사랑하고 또 해당을 지어주어서 고마운 마음에 장로들이 대신해서 청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유대인과 백부장이 속한 로마 군인과의 그런 관계를 보면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을 대신해서 직접 예수님께 청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는데요.
우리나라 사람은 지금도 일본이라 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매우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깝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처럼 유대인들과 로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교만하고 유대 백성을 압제하고 재물을 탈취했고 특히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의 그런 접촉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자신의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인들과의 접촉은 도도록 아마 기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장로들이 백부장도 아닌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 대신해서 예수님께 나와 청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관계는 정말 서로를 위하여 아끼는 관계이고 그만큼 백부장이 평소 유대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많은 선행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백부장을 위해 그의 종을 살려주어도 될 만한 자격이 그에게 충분히 있음을 예수님께 강조하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여러 상황으로 인해 상대방과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좀 안 좋은 상황에 의해서 완전히 등을 돌려서 친했던 분들이 원수가 돼서 심지어 교회에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우리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1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16절 말씀입니다.
14절 에베소서 2장 14절 예수님은 이 땅에 직접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화평을 위해서 또 하나님과의 하목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면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단지 상대에 의해서 기분 나쁘고 속상하다고 해서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또 백부장이 가지고 있던 그런 사랑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실천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겸손한 마음과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
본문 말씀 7장 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7장 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가실세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아멘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청하는 유대 장로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직접 백부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백부장의 행동이 좀 이상한데요.
직접 집으로 가십니다.
방문하시겠다는 예수님을 못 오시게 말리는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 상당히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시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감사하고 어떻게 해서든 잘 모시려고 준비하고 챙길 것 같습니다.
성경에 사케어도 그렇고 우리 마리아 마르다도 예수님을 본인들이 직접 모셔서 은혜 받은 후에 뭔가 다른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백부장은 오히려 먼저 오시겠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방문을 말릴까요?
한 가지 추측을 해볼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은 이방인과 같이 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건한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아마 큰 거리낌이 된다는 것을 백부장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존재를 알고 정말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분임을 인정해서 더욱 겸손하고 정중히 예수님께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여기서 우리가 참조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6절 47절을 보면 요한복음 4장 46절 47절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의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아멘.
본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을 때 왕의 신하가 자신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께 나와 고쳐달라고 청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이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46절에 보면 아들이 있던 곳이 가버나움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아마 이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살게 되는 그런 기적의 내용은 분명 가버나움에서 큰 소문으로 퍼졌을 것이고 분명 같은 가버나움에 있던 백부장도 이 왕의 신하의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병이 낫게 되는 그런 놀라운 기적의 내용을 들어서 예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이 백부장은 이미 예수님의 소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위대한 분이심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기사를 통해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신적 권능을 아마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그 위대하신 분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치 못할 것 같은 그런 겸손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겸손한 자세는 반드시 갖춰야 할 자세인 것 같습니다.
특히 불완전한 인간은 부족하고 또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데요.
하나님 앞에서 재와 허물이 많은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백부장의 온전한 믿음을 볼 수 있는 내용이 본문 말씀 7절과 8절에 남아있는데요.
7절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절 7절의 말씀 중에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의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님 말씀에 대한 백부장의 온전한 믿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보통 병고침의 은혜를 구할 때 안수와 같은 치료 행위 등을 통해서 병이 낫는 걸로 인식을 하는데 백부장의 말씀만으로 낫게 하소서라고 청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한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 아픈 종을 대면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시기에 말씀으로 자기 종을 치유할 수 있다고 온전히 믿었던 것이죠.
즉 백부장의 온전한 믿음의 바탕은 말씀을 믿었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또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존경심이 있었기에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한다 이렇게 얘기하고 또 7절에서처럼 예수님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한다 라고 겸손한 마음으로 고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믿는 이 말씀은 단순 이런 말이 아닌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지으신 근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3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1장 1절에서 3절입니다.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이라 14절 하나 더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을 보면 그 말씀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나와 있는데요.
우선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전에 말씀드린 대로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모든 것이 지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14절의 말씀을 보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고 되어 있고 그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은 받았고 또 말씀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더욱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게 되고 그로 인해 구원의 축복을 우리는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말씀에 더욱 충실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 또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처럼 말씀 안에서 온전히 성장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요.
이런 백부장의 온전한 믿음은 예수님께서 기이 여기실 만큼 아주 놀라고 경탄하실 만큼 책임받는 그런 믿음이 되는데요.
우리 9절에서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 9절에서 10절입니다.
9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 여겨 돌이키사 쫓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봄에 종이 이미 강건하여 졌더라.
이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서도 기이 여기시는 것 외에도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지 못했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받게 되고 백부장의 그런 큰 믿음으로 또 예수님의 말씀으로 백부장의 하인은 낳게 됩니다.
같은 내용의 마태복음 8.13절을 보게 되면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8.13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시로 하인이 나은이라.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큰 믿음을 보시고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만큼 백부장의 믿음이 크고 온전하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 신앙인에게 이것만큼 큰 칭찬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어렵고 힘든 일을 접하게 되는데요.
어려울수록 또 더욱 힘든 일을 만날수록 낙심하는 것이 아닌 백부장이 행한 것처럼 큰 믿음을 가지고 더욱 하나님과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원합니다.
오늘 성도님들과 같이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시는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말씀에서 백부장은 사랑이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신분을 초월한 사람과 또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백부장은 하나님께 겸손한 사람이었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런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기이 여길 정도로 큰 믿음이었고 백부장의 칭찬받는 믿음으로 인해 백부장의 종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낳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의 말씀은 비단 백부장에게만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우리 신앙인들이 마음에 품으면서 더욱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목표로 세워야 할 말씀인 것 같은데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
내 믿음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해질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칭찬받는 믿음을 우리들은 가질 수 있습니다 더욱 기도와 말씀으로 온전한 믿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성도님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상 말씀 마치고 찬송가 344장 하시겠습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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