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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유익과 가치

전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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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진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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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질과 천국에서의 영광,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며, 믿음 생활의 개혁을 강조한다.

본문전도서 7장고르도전서 3장 10절~13절
  • 신앙생활의 질은 천국에서의 영광에 영향을 줍니다.
  •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로, 삶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 믿음 생활의 개혁과 신앙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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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질과 천국

  • 신앙생활의 질은 천국에서의 영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 지상에서의 믿음 생활, 예배, 헌신, 봉사는 천국에서의 영광에 영향을 준다.
  • 천국은 영원하며, 들어간 후에는 영원히 거주하게 된다.
  • 천국에서의 삶도 차이가 있으며, 영광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지혜의 중요성

  • 지혜는 재물보다 더 귀중하며,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삶이다.
  •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며, 믿음 생활과 영적인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 지혜는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신앙생활의 개혁

  • 신앙의 삶을 개혁하고, 믿음 생활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 하나님을 경애하고, 지혜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는 방법이다.
  • 기도문을 통해 신앙생활의 개혁을 요청하며, 주기도문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참고사항

  • 강연은 기도 후 인사로 마무리된다.
  • 성경 구절(전도서 7장, 고르도전서 3장 10절~13절)이 인용되며, 믿음의 생활과 영적인 집에 대한 비유가 설명된다.
전사(자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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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자막 by 한효정 168장입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감사합니다.
일은 푸른 땡에 잔치 차라리 때 주님 다시 오신 마음을 할 수 없어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소서 참나 믿고 다 안 돼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나 바로 내 나의 일 나 바로 내 나의 일 나 바로 내 나의 일은 군대의 잔치 차라리 아멘 167장입니다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저 찬양을 나의 일은 저 찬양을 나의 일은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저 찬양을 가봄이 저 찬양을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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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주 예수의 황미를 가봄이 할렐루야 아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로 받들어서 화일 저녁 예배 드리겠습니다.
찬송 219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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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멘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전도서 7장 말씀 보겠습니다.
전도서 7장 1절부터 4절까지만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우리 신앙인들을 집 짓는 사람들이다라고 예수님은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재혜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집 믿음의 집은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로 짓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을 지을 줄 아는 풍성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보배로운 믿음의 집을 지켰지요.
그러나 그 집이 훌륭하지 못할 것 같고 지혜가 많지 않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또한 영적인 집을 아주 엉망으로 짓겠지요.
그러면 우리 모두가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일까요.
나의 믿음의 집은 어떤 집일까요.
내 집 짓는 영적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집을 지어갈 때 굉장히 참 아름답게 기대가 되게 집을 지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또 집을 짓다가 부도가 나가지고 완전히 그냥 폐가 건물 되도록 방치해놓은 그런 집들도 있습니다.
길거리 지나다 보면 큰 건물도 부도가 나가지고 그냥 관리가 되지 않는 희망도 느껴지지 않는 오히려 흉물처럼 남아있는 집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집은 어떤 집일까요.
고르도전서 3장 10절에서 13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여기 저 번호시고 고르도전서 3장 10절에서 13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고르도전서 3장 10절에서 13절 시작.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털을 닦아둠에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털을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털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집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의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입니다.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떤가 어떤 믿음 생활을 해왔고 어떤 명적인 믿음의 집을 지어왔느냐 하는 것을 불로서 태워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어날 일들이죠.
하나의 불이 살라졌을 때 이것은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가지의 것으로 아니 몇 가지로 됐습니까.
금으로 지은 사람이 있고 은으로 믿음의 집을 지은 사람이 있고 보석으로 지은 사람이 있고 또 나무로 지은 사람도 있고요.
불로 공력으로 그렇게 할 건데요.
풀로 집을 짓는 사람도 있고 또 집으로 집을 지은 사람 이렇게 다양한 믿음의 집을 짓더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불로 그 심판을 나타날 텐데 불이 그 집에 붙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타지 않겠지만 나무나 풀이나 집은 하나도 흔적 없이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되 부끄럽게 구원을 얻겠죠.
공력이 싹 타버려요.
빈털터리가 돼서 그냥 벌거벗은 영혼으로 주님 앞에 구원 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울 수 있을까요.
제가 볼 때는 그렇게 신앙생활하시는 분들도 상당히 꽤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제가 그런 분들을 만나서 좀 심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죠.
당신은 구원을 받아도 부끄럽게 구원 받을 것이다.
그렇게 지적을 합니다.
그런데 화나지 않게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죠.
왜냐하면 왜일까요.
제가 저번에 휴가 때 영암 쪽에 계곡에 갔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들이 평상을 빌리려고 하는데 정자도 있더라고요.
정자.
굉장히 비싸죠.
정자가 7만 원인가 그렇게 되더라고요.
하루 노는데.
그다음에 평상.
평상에 있는데 4만 원.
4만 원이요.
그런데 늦게 가다 보니까 다 나가버렸어요.
평상이 4만 원짜리인데 햇빛 들어오는 데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햇빛 안 들어오는 대로 좀 그늘로 나무 밑에 들어간 게 낫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평상을 안 얻고 그 정자 있잖아요.
정자.
정자로 지은 옆에 나무 있는데 거기다가 깔판을 깔고 우리 가족들이 이렇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까 빈부 차이가 너무나 나는 거예요.
그쪽에 평상을 얻는 사람은 둥글 둥글하니 그냥 하루 종일 그냥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는 그냥 거기에 비좁게 거기에 그냥 가족들이 매곡히 거기에 곱살이 껴서 나무 사이에 그냥 햇빛이 어떻게 누르는지 돌아가면서 그 깔판을 막 뒤로 밀었다가 앞으로 밀었다가 보통
그래가지고 우리 가족들이 많으니까 옆에 있잖아요.
정자로 된 옆에가 공간이 남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도 비탈길이야.
사람이 이렇게 앉으면 거꾸로 이렇게 비탈길이라 이렇게 앉으면 허리가 넘어가려고 그러고 음식을 놓으면 자꾸 미끄러지고 얼마나 협소하든지 천국에 가도 영광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천국에 가도 정자 같은 데서 넓은 데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정자 옆에서 비좁게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물론 천국은 넓죠.
내 아버지 집은.
갈 곳이 많다고 하지만 해의 영광이 있고 달의 영광이 있다고 하고 별의 영광이 있다고 합니다.
이 별들도 막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있고 거의 막 불빛을 잃어버린 희미한 별도 있잖아요.
그런데 차별은 없어요.
그런데 차이는 있습니다.
영광이 틀림없이 틀리대요.
그러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데도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그다음에 예쁜 사람 안 예쁜 사람 다 섞여 있잖아요.
건강한 사람 장애를 가진 사람 눈이 큰 사람 눈이 작은 사람 여러분들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어떤 사람은 머리가 초미해가지고 한 번만 읽어도 그냥 공부가 쫙 돼버리고 저같이 밤을 세워도 공부가 잘 안 되는 사람도 있고 그 차이인데 태어날 때부터 좀 이렇게 잘 태어났으면 평생 고생하지 않잖아요.
공부 좀 안 하더라도 한 번 책 읽으면 그냥 쫙 읽으면 공부가 쫙 되면 그렇죠?
고실 안 고실은 한 번에 쫙 패스하고 태어나기를 잘 태어나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체력만큼은 주셨어요.
그래서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주셨습니다.
그거 하나 가지고 여태까지 버텨왔거든요.
그런데 잘 관리를 못해가지고 당뇨 성인병 다 와가지고 완전히 지금은 건강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태어날 때 잘 태어나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평생을 사는데 천국은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의 집을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느냐에 따라서 그것에 따라서 완전히 그것도 우리는 7, 80년 그렇게 살지만 우리 술을 다 누린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부모님이 주신 그런 체력이나 모든 환경을 가지고 평생을 살지만
천국에 가면 시간이 70년입니까 80년입니까 천국은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돼요.
영원히.
그러니까 천국과 지옥도 한 번 들어갈 때 잘 들어가야 돼요.
한 번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살지만 지옥에 한 번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살아야 돼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광스럽게 들어간 사람은 아주 영광스럽게 살지만 아주 그냥 끌적지근하게 부끄럽게 겨우 턱거리만 해가지고 거기에 천국에 들어가면 평생 정말로 차이는 차별은 없지만 차이는 있어요.
정말 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 믿음 생활을 해야 될 것인가 정말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해야 됩니다.
우리 예배드리는 것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 하나도 헛것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 앞에 기억된 바 될 것입니다.
냉수 한 잔이라도 말이죠.
냉수 한 잔이라도 소자에게 대접하는 결탄코사
상급을 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상급이 얼마나 대단한 상급일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끔씩 저는 옛날에 서북교회의 성도들이 교회를 잘 안 나왔어요. 예배를 잘 안 드렸어요.
그래서 항상 그랬죠. 여러분 왜 예배 안 나오십니까. 예배 안 나오면 얼마나 소련인지 아세요.
왜 여러분들이 예배를 안 나오시냐 아십니까. 돈을 안 주니까 교회에서 돈을 안 주니까 안 나오는 것 같아요 .
예배 시간 1시간 나올 때마다 1억씩 준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이 나오겠습니까 안 나오겠습니까.
아마 여기 지역 사람들도 아마 안 믿는 사람도 예배 1시간 나오면 1억씩 준다고 하면 아마 서울 시내 사람도 아니 막 전국에서 번호표를 그냥 타가지고 서 있을 거예요. 밖에 서 있을 거예요. 돈을 안 주니까 안 나오죠.
그런데 여러분 예배 1시간 드리는 것이 1억 가치 이상을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얼마나 많은 영광의 보상이 주어질지 한번 기대하시고 예배 1시간 1시간을 정말 가볍게 생각하고 기대하시고 하늘의 상을 쌓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제가 볼 때는 1억 가치가 아니라 10억 가치가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교회에 안 나오시는 것은요 . 이렇게 손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가 얘기했습니다.
엄청 손해보고 있죠. 오늘 예배 안 나오신 분들은 엄청 손해보았어요. 1억 손해보았다니까요. 1억을. 아니 10억을 손해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 소자에게 냉수 한 컵이라도 한 장이라도 대접하는 이 모든 것을 결단코 잊지 않냐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 주님께서 정말 풍성한 은혜로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나는 금으로 짓는 사람인가 은으로 짓는 사람인가 보석으로 내 믿음의 영적인 집을 짓는 사람 인가를 늘 생각해야 됩니다.
나중에 다 불타 없어져버리고 헛것이고 이제 후회밖에 안 남아요.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솔로몬처럼 전도다처럼 그렇게 말하고 끝나는 인생이 될 것인가.
내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는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 나를 위해서 주의 명령을 위해서 주님을 섬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살아왔다.
이렇게 살 것인가. 언제까지 게으르게만 나태하게만 세상에 메어서 그렇게 정말 믿음의 힘 한 번 내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고 결심하지 못하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서 정말 이런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지혜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만이 그런 열심도 될 수가 있는 거예요.
이 지혜가 우리의 영적인 집 믿음의 집을 아름답게 짓게 만들 것입니다.
지혜로우니까 지혜롭게 사는 것이고 정말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영원한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삶으로 자기가 이끌어가는 거예요.
삶을 지어가는 것이에요.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만 가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영광을 받을 것인가. 어떤 멸관을 쓸 것인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
그러니까 바불사도는 모든 걸 다 걸어버렸잖아요. 확실하잖아요.
냉수 한 잔도 하나님께서 결단하고 잊지 않고 상급을 주신다고 하는데 그러면 다 걸어버려야죠. 다 걸어야죠.
주식인가 뭔가를 한다는데 거기만 넣으면 100배로 그냥 다 되는 거예요.
그것보고 주식 뭐라고요. 안 해봤고 몰라요. 그것보고 상장? 상장이 된다고 그런가 뭔가 어쨌든.
그럼 누가 안 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확실합니다. 주님 앞에는요.
정말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믿음의 아름다운 집을 지켜야 되는 것이죠.
이 지혜의 가치를 한번 유익과 가치를 19절 보겠습니다. 전도서 7장 19절.
같이 읽습니다. 지혜가 지혜자로 성업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는이라. 정말 능력 있게 만들어요.
그런데 여기서 유사는 지배자를 가르쳐요. 권세자. 많은 병력을 휘화해두고 한 성업을 궁사적 안보를 담당하는 고위관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열 유사라고 하는 것은요. 성업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만큼의 충분한 숫자를 가지고 있는 유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서금이나 도시 혹은 국가의 안보를 유지하는 데에서도 강한 물리적 힘보다도 하나님을 경애하는 지혜가 더욱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보다도 열 유사보다도 하나님을 경애하는 이 지혜를 가진 자들의 지혜가 지혜가 더 열 유사보다 더 나은 능력과 효과를 가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지혜의 유익과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어떤 가치를 줄까요.
첫째는 지혜는 죽는 날을 태어난 날보다 아름답게 만듭니다.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혜는 죽는 날을 태어난 날보다 아름답게 만듭니다.
저희 솔녀딸이 지금 싱가포르에서 태어나서요.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그리고 아기가 갈수록 예뻐요.
제 솔녀라서 그런지 어쨌든 참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우리 은양이만 빼놓고.
어쨌든 간에 이렇게 예쁜데 태어나는 것도 막 날마다 이렇게 갈수록 기쁘잖아요. 갈수록 기쁘지잖아요.
아기만 봐도 그냥 웃음이 나오잖아요.
태어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런데 죽을 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까요.
과연 태어난 날보다도 죽을 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죽을 때 아름다운 사람.
우리의 신앙인의 삶은요.
뭘 우리는 사모해야 되냐면 죽을 때 내 이름이 빛날 수 있도록 죽을 때 내 이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잘 산 것입니다.
참 어떤 사람에게든 그 이름이 가슴 속에 마음에 빛나요.
고마움. 빛된 사람. 고마운 사람.
참 마음에 행복을 주었던 그런 사람.
그 이름이 정말 고상하고 고귀한 그 이름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았다면 태어난 날보다도 죽는 날이 더 영광스럽고 죽는 날이 더 아름다운 사람인 것입니다.
어떤 초상집에 가면 화한들이 어떻게 많았는지 복도 저 끝에 붙도 그냥 매그룹하게 놓여져 있어요.
최근에 몇 달 전에 갔는데 저는 그렇게 많이 놓여진 집 옛날에 한 집 봤거든요.
그런데 그 집보다 더러워졌어요.
어떻게 많이 놓여져요.
그런데 그 집은 어쨌든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잘 됐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안 다녀요.
교회는 안 나와요.
갖고 이제 아는 사람.
치의장. 도지사.
사업을 하고 집 짓는 걸 하니까 양쪽으로 놓아졌는데 그냥 까들게 놓아졌단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고인이 잘못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식 덕보인 거죠.
자식 지인이에요.
그러니까 내 손님은 없다고 하잖아요.
결혼식 때는 부모님 손님.
죽을 때는 자식 손님.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죽는 날 내 이름이 아름다워야 됩니다.
정말 태어난 날도 감격스럽지만 죽는 날이 정말 감격스럽고 모든 사람들 앞에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날.
그것을 꿈꾸며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도 그런 죽음을 죽기를 원하는데 정말 나는 어떻게 살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우리 성도인들은 그런 마지막 날을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그 지혜가 그렇게 만들어요.
죽는 날을 태어난 날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놓습니다.
참 이게 잘 산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1절 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정말 감격스럽죠.
어떻게 출생하는 날보다도 죽는 날이 더 나을까요 정말 가치 있게 잘 산 거지.
그리고 이제 11절 12절 보면 지혜는 유옥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여기 지혜는 유옥같이 아름답고 라는 해석
지혜가 이렇게도 해석을 합니다. 지혜가 재산과 유산과 함께 있을 때 이렇게도 해석을 합니다. 지혜가 유산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지혜로운 청지기로 살게 됩니다.
성경 속에 어리석은 부자가 있잖아요. 자기 창고 늘리고. 그런데 갑작스럽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취했을 때 그가 가졌던 모든 것들이 니 것이 내 것이냐. 그 재물을 가지고 자기만 바라봤던 그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율 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 살았던 그 부자. 그런데 지혜로운 청지기도 있었잖아요. 그 주인이 맡겨놨는데 자기 것도 아닌데 그거를 갖다가 선한 일이 다 써버렸어요.
그런데 주인이 칭찬해졌죠. 우리의 믿음의 세대를 빗대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주인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인에게 하나님께 꾸지점을 들었던 어리석은 자와의 차이는 뭘까요.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재물만 가졌지. 지혜가 없으면 자기 자신만 바라봐요. 그런데 지혜가 있으면 재물과 함께 지혜가 있으면 그 재물을 통해서 정말 더욱더 빛나고 가치 있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선하게 살고 싶어도 재물이 없으면 남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일단은 정말로 보면 재물도 있어야 되고 남을 도울 만큼 능력
도 있어야 되고 거기에 뭐가 있어야 됩니까. 지혜가 함께 할 때 빛나고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혜로운 청지 기가 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혜가 있기 때문에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다면 어리석은 부자가 되겠죠. 그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쌓아놓는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아니면 지혜가 있어서 하나 님께 주신 것으로 정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또 함께 나눌 수 있는 지혜로운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 습니까.
그리고 의인과 악인의 차이도 역시 지혜의 차이에요. 지혜의 차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악에 붙잡혀 있습니다.
자문서 3장. 자문서 3장 보겠습니다.
13절부터.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은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전국보다 나아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희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의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의 손에는 부기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오 그 첩격은 다 평강하니라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대도다 여왁께서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그래서 이 우주와 이 지구를 어떻게 세우셨을까요 하나님의 지혜로 지혜가 없었다면 이 우주를 펼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바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청지의 삶을 살게 만들고 또한 이 지혜는 참된 경건의 삶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죠 다시 돌아와서 15절에서 18절 전도서 7장 15절에서 18절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 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폐많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전에 죽으려냐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아주 지혜롭게 인생을 잘 살아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실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주를 창조했듯이 우리가 믿음으로 영적인 아름다운 집을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가 있어요 자기가 가진 지혜만큼 믿음 생활하는 거예요 영적인 수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 지혜를 구해야 돼요 지혜는 바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죠 얼마만큼 내가 지혜가 있는지 따라서 내 영적인 믿음의 삶은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요 참된 지혜자는 자신을 지혜롭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참된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똑똑한 줄 알아요 그리고 자기가 지혜롭다 지혜롭게 생각해요 내가 참 지혜로워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보면 내가 똑똑하지
이런 사람들은 참 어리석은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지혜롭게 여길 수는 없죠 왜냐하면 인간은 불안전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여기 16절 말씀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만큼하느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라고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자기가 의인인 채 하는 거예요 의인인 채 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자기의 참 사람이 온전하지 못하죠 어떤 사람이 극장에 갔어요 그래서 과자를 하나 딱 뜯어가지고 딱 옆에다 놨더니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이 내 과자를 집어먹는 거예요 하나는 뭐 집어먹었으니까
나는 먹을 수 있는 자꾸 먹는데 나도 하나 먹고 이 사람이 먹고 나도 하나 먹고 이 사람이 화가 나더래요 그런데 나중에는 마지막을 하나를 딱 자기가 먹고는 비일봉지를 갖다 그렇게 하고 이렇게 넣어버리더래요 참 이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이렇게 경험한 사람이 있나
아무것도 이렇게 자기 것 같이 먹나 하고 나서 집에 와서 보니까 자기가 산 과제가 가방 속에 그대로 있더래요 경우 없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자기였어요 세상은 참 그래요 내가 옳은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릴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왜 저런 사람이 있는가
내가 정유롭다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자기의 의로움을 지나치게 사람들하고 해서 과도히 내세우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순교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자기만은 어려워요 자기만은 어려워
그리고 보면 항상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항상 자기만 피해보는 사람이에요 순교자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교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정말 그리고 실제로 남에게 아주 그냥 혹독한 말로 정지하고 심판하고 되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어려우니까 그리고 본인은 어떠냐면
조그만한 비판이나 충고합에도 그냥 자존심이 상하고 벌쩍벌쩍 뛰어요 막 분해서 막 참을지를 몰라요 그리고 자기 가까운 사람에게는 아주 전폭적인 인정과 사랑을 베푸는데 자기 눈밖에 난 사람은 아주 그냥 국물도 없어요 그냥 냉정하게 아주 대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면은 아주 지나치게 의로워요 지나치게 정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병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뭐라고 하냐면 자기가 은사가 있대요 그리고 자기가 간마드로 아주 그냥 똑똑하대요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도 지나치게 자기 자신의 의를 내세운다면
이것도 병입니다 병이에요 자 20절 보겠습니다 20절 선을 가치겠습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의는 세상에 아주 없는 이라 참된 죄는 그렇게 지나치게 자기 의를 내세울 만한 존재가 못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겸손해요 남의 허물에 용서할 줄 알고
남이 지적하고 남이 충고해지면 오히려 그것에 크게 분노하지 않고 거기에 받아들일 줄 아는 오히려 지혜를 얻을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지나치게 의로운 사람들이 있어요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지나치게 악에 빠진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징벌을 하나님의 심판을 자처하고 있는 행위죠. 그래서 이 양극단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의롭게 생각하지 말고 지나치게 하나님을 또 의식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어떻게 될까요. 이 악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벌을 받겠죠. 17절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짜여 기한전에 죽으려냐.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도 놓지 말라. 그러면 우리가 사모 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의도 잡아야 되겠죠.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애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겸손해요.
그리고 하나님을 경애하는 사람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악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행했던 악들이 자기에게 벌로 다 돌아온다는 것을. 스스로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양극 단에 빠지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 지혜는 결국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의 집을 아름답게 지켜 만들어요. 이 양극단에도 빠지지 않 게 치우치지도 않게 만들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내 인생의 집을 이 믿음의 집을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시는 대로 아름답게 지어 가는 사람. 마지막 날에 이름이 빛날 사람. 마지막 날에 날이 태어난 날보다도 더 영광스럽고 더 아름답고 더 감동적인 그런 마지막 날.
그 마지막 날이 저와 여러분의 마지막이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하신 분들만 그렇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 끝까지 아멘 하나님.
자 그런 날을 삼아야 됩니다. 자 두 번째는 지혜로운 자는 불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애하는 법을 배웁니다.
지혜로운 자는 불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애하는 법을 배웁니다. 14절 보겠습니다.
13절 14절 시작.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굳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공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케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리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참 인생 살다 보니까 오래 살아갈수록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 그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죠. 이렇게 좋아도 돼. 이렇게 잘 돼도 돼. 이렇게 행복해도 돼.
야 막 모든 일이 잘 되는데 그 다음에는 반드시 뭐가 옵니까.
슬픈 일들이 꼭 찾아오도록 돼 있어요. 참 그래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형통한 날에는 그러니까 기뻐하고 공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거죠.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병행하게 만든 것이 인생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요. 이 두 가지 일들을 번갈아 겪게 하셔서 삶의 균형을 알맞게 잡아주는 것입니다. 균형 을 잡아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번영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역경이 뒤따른다라는 것입니다.
항상 형통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욥기 2장 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욥기 2장 10절 제가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적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욕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그렇죠. 인생에 그렇게 병행하도록 만들었어요.
내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에 비해서 고통이 크다면 하나님이 더 큰 상을 주셨을 수도 있어요.
거기에 알맞게 병행하도록 하나님께서 교만하지 않도록 그렇게 고난도 그의 비례에서 준 것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만 생각하죠.
그런데 하나님의 큰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주신 거죠.
바울 사도도 병이 있었죠.
낳아달라고 하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그래 낳아주마.
그게 아니라 네 은혜가 족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네 은혜가 너무 커가지고 거기에 균형은 줄을 맞춰야 되는데 네가 병에 거기에 걸려 있어야 균형이 돼.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기울어져가지고 네가 하늘로 본지 모르게 솟아가지고 교만해져 버려요.
교만 병에 들어가.
그러면 사탄의 밥이 되잖아요.
그래서 균형을 맞춘 거예요.
사실 그게 균형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랑인 것 같아요.
균형을 맞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번영 후에 역경에 따르는 것은 균형출을 맞춰서 나의 영혼을 온전히 지켜주시는 것이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사람이 걱정, 근심이 없이 그냥 잘되기만 하고 사는 것은요.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악에 빠지는 거예요.
악인들의 형통은 저주와 같습니다.
이하면 자기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없고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내 악이 있고 범죄가 있는데 그냥 잘만 되면 어떻게 생각하냐면 내가 그냥 하나님께 잘 믿고 그래서 하나님께 나에게 축복 주시는가 보다 하고 회개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더 악에 치우쳐지는 거죠.
회개는커녕 더 악랄해지는 것이죠.
그러면 이제 죄에 사로잡히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나중에 결산할 것들이 많아져요.
그래서 정말 어떤 어려움이 없이 좋게만 산다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닙니다.
악인의 형통은 정말 저주와 같습니다.
돌이킬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뭘까요?
매일이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죠.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하시죠.
역경을 주시면서.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겸손함을 가지고 또 하나님께 대한 절대주권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가운데 순종하는 삶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예 중에 하나는 뭘까요?
우리에게 태어남도 주지만 죽음도 주죠.
2절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허락하셨을까요?
7장 2절.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이 결국에 이와 같이 됨이라.
산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느끼죠.
그래서 언젠가 죽는다.
네가 극복할 수 없잖아요. 죽음은.
그러면 어떻게 변합니까?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선해져요.
아이고 얼마 못 살 건데.
이렇게 악하게 살았고 욕심내서 살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앞으로 10년도 안 남았는데 20년도 안 남았는데.
그러면서 마음이 선해져요.
자비롭고 친절하게 변합니다.
손주들한테도 용돈이 나가는 액수가 달라져요.
죽음이 가까울수록.
사람이 좋아진다니까요.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 참 좋아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생 속에 어려움이 있어서 눈물을 많이 흘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번 보겠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으면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되면이라.
맨날 어떤 사람들은 맨날 모든 게 잘 돼서 웃고 살아요.
깔깔깔깔 웃고 살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생 속에서 슬픔을 만나서 많은 눈물을 가지고 근심 속에서 살아요.
그런데 그러면 이 사람들은요.
어떻게 되느냐.
슬픔 속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묻불은 우리의 마음 속의 동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나 자신의 존재의 한계를 느끼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또 회개의 삶을 살게 만들고 그 슬픔을 가슴으로 체험하면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포용력이.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이웃들을 포용하고 동정을 갖고 자비를 베풀고 친제를 베풀냐면 인생 속에 많은 어려움을 애완을 겪은 사람들이 사랑이 많은 것입니다.
고생 안 해본 사람들은 남 어려운지 몰라요.
자기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참 참 예 이러한 역경이 우리를 참 아름답게 만듭니다.
자 그 다음에 이 지혜자의 책망 듣는 것이 칭찬 박수갈채 받는 것보다 낫죠.
5절 보면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고
듣는 것보다 나은이라. 박수갈채를 보내는 그런 경우보다도 오히려 지혜자의 책망 듣는 것이 더 낫다. 나만 같은 경우도 부하들이 부축해서 오히려 아부하면서 그냥 돌아가자고.
그렇다면 얼마나 정말 불행했을까요. 평생 문둥병자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니 그것 보다도 더 한 일을 지켜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자기 현실이 문둥병 환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했던 지혜로운 충고는 그의 삶의 새로움을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선물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정말 내 마음을 아프도록 충고하는 지혜가 나를 살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부 하고 다른 사람이 좋게만 얘기하고 그게 좋은 게 아니라 진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나를 허물을 꾸짖 어서 나를 깨닫게 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지혜자의 충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혜는 결국 우리의 실황의 집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는데요.
이 솔로몬이 뭘 깨달았냐면 이런 지혜를 자기가 얻고 싶어도 심지어는 이 죄악까지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지� �를 얻고 싶어도 지혜를 얻지 못했다.
이 많은 지혜를 얘기하면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7장의 입사합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여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하였도다 .
중요한 게 깨닫고 싶다고 해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지혜롭게 살고 싶다고 해서 지혜롭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그러면 누가 그 지혜롭게 살 수가 있을까요?
이 지혜는 내가 공부 많이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내 노력으로서 얻어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니죠.
이 지혜가 들어오면 내 인생의 각종 모순을 다스릴 수 있고 내 죄에 관한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금과 같은 집을 지을 수가 있는데 이 지혜는 내 노력으로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참다운 지혜는 인간의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에게 주어지는 것.
내 마음이 어느 순간에 깨달아지는 것.
어떤 자매님이 어떤 형제님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리고 완전히 삶이 바뀌어버립니다.
그리고 지혜가 오면 은혜가 임하고 마음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눈이 번쩍돼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저분이 저렇게 바뀔 수가 있어.
교회 암초 같은 그런 분들이 있단 말이에요.
사사건건 시비 걸고 전 사람이 어떻게 변할 거나.
그런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오면서 어떤 지각변동이 일어나버리는 거죠.
얼굴도 다르고 말투도 달라지고 정말 은혜로운 삶으로 이제 시작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삶을 아름답게 갖고 갈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지혜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험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혜죠.
그래서 인생의 각종 모순과 죄에 관한 고민들 해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한번 보겠습니다.
내 마음에 찾아도.
28절 읽겠습니다.
시작.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1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1천 여인 중에도 하나도 얻지 못하였네요.
여인 중에는 하나도 찾지 못하고 남자 안에서 겨우 하나 찾을 동안 이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 다는 얘기죠.
하나님의 노력에 의해서 주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에게 허락하신 선물이다.
우리는 그 지혜를 얻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
하나님을 경애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 인생의 삶을 우리의 이름들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질문해야 됩니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죽을 때 아주 흉한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품성을 생활 속에 드러내기 위해서 정말 고쳐야 될 부분은 무엇인가를 두고 우리는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태어난 날보다도 죽는 날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마지막이 되기를 우리 같이 기도해야 되 겠습니다.
목도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찬송.
218장입니다.
218장입니다.
내 맘에 오사 널 벗들어 주시고 내 마음에 세임을 주소서 널 기쁘게 하소서 사랑해줘 사랑해줘 내 맘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세상 한만 고치소서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내 소원 다 아시고 내 무거운 짓 맡아줘서 맘 편하게 하소서 사랑해줘 사랑해줘 내 맘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산만 고치소서 내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날 정결케 하시고 그 은혜로 내 맘에 태워 널 청난게 하소서 사랑해줘 사랑해줘 내 맘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내 앞길인 도와요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내 맘에 오사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저 예수님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내 맘에 오사하시고
자 오서 내 모든 제사하시고 세상만 고치소서 아멘 주의 소유로 믿음의 아름다운 집을 짓도록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죽는 날이 태어난 날 보다도 더 아름답게 할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또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허락하신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고
또한 하나님의 참된 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용기 주시고 또한 희망도 주시고 저희를 또한 격려해 주시옵소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참된 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셔서 우리의 신앙의 삶을 정말 개혁하고
우리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오늘 이 시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같이 참된 지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들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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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의 삶을 정말 개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을 정말 개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을 정말 개혁하고 있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해 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의 이마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롱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의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하게서 고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상 이벤 마치겠습니다
일어나서 인사 나누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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