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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 유바나바 목자 26.08.04

고전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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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 (#고린도전서7장 8절~24절)
#고린도전서개론 #고린도전서해석 #고린도전서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고전7: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전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7: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고전7: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고전7: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고전7: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고전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고전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고전7: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고전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7: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전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고전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고전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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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8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성도가 자신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본문고린도전서 7:8-24
  • 성도는 결혼이나 독신 등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충성해야 한다.
  • 혼인한 자는 서로를 버리지 말고, 이혼한 경우에도 화합하거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고유한 은사를 주시고, 그 은사에 따라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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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의 말씀 요약

  • 성도는 자신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삶이 중요하다.
  • 혼인하지 않은 자와 과부에게는 독신 생활이 좋으나, 절제가 어렵다면 혼인하는 것이 낫다.
  • 혼인한 자는 서로를 버리지 말고, 이혼한 경우에도 화합하거나 계속 지내는 것이 좋다.
  • 믿지 않는 배우자가 있다면 이혼하지 말고, 서로를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 하나님은 화평을 통해 성도들을 부르셨으며,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충성하라고 명령하신다.
  • 할례와 무할례는 중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 결혼과 독신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부르심과 충성

  • 성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귀하게 여겨야 하며, 그 자리에서 충성해야 한다.
  • 바울은 자신의 독신을 하나님의 은사로 설명하며, 이는 복음 전파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헌신의 표현이다.
  •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독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주어진 은사이다.

환경과 충성

  • 성도는 현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 하나님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그 자리에서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 가정, 직장, 교회 등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중요하다.
  •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되면 더 나은 자리로 인도하신다.
전사(자막) 전문▼
오늘 먼저 하나님 말씀 같이 읽고 말씀 같이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같이 함께 살펴볼 말씀은 고린도전서 7장 말씀 지난주에 이어서 8절부터 24절까지 말씀을 찾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8절에서 24절까지 말씀 우리 내용이 좀 길죠?
그래서 오늘 먼저는 8절부터 18절까지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8절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남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여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에게는 주여서 공연해 주시느니.
다시 그 남은 거와와 주시아라.
남은 또 아내를 모시시아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은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이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아내된 자여 니가 남편을 구원하려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니가 내 아내를 구원하려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함께 읽겠습니다.
할래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래자가 되지 말며.
무할래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래를 받지 말라.
그 이후에도 쭉 2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 가지고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
부르심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라는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요즘 매일매일 폭염 때문에 굉장히 더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늘도 너무 더워가지고 잠깐 나가는데도 땀이 엄청나게 흘러서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밖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이런 더운 날씨 가운데서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또 이 예배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인들에게 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더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이런 날씨에도 하나님께서 건강도 지켜주셔서 매일매일 또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름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 혼인에 관련된 내용 또 더 나가서 오늘은 확장된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데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자리 부르심의 자리가 있고 또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이게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오늘 내용에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나가서 고기를 잡고 점심이면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과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아들과 함께 평안하게 놀아주면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큰 욕심이 없었죠.
아침에 물고기 잡는 것으로 하루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참 행복했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에서 한 사업가가 내려오게 되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왜 그렇게 조금만 일하십니까?
더 오래 고기를 잡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부가 물었습니다.
돈 많이 벌면 어떻게 되는데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업가가 배를 더 사고 사람을 더 고용하고 회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죠?
그러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러면 나중에는 은퇴해서 가족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부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있습니다.
어떤 다른 삶을 꿈을 꾸지 않습니까?
학생들은 빨리 졸업하고 싶고 또 어떤 경우는 아니라고도 하던데 또 직장인은 더 좋은 직장을 꿈꾸고 또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결혼하면 행복할 거다 라고 생각을 하겠죠?
또 결혼한 사람은 혼자 있던 때가 더 그립다 라고 말하겠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자리보다 더 다른 자리를 좋아 보이고 또 원한다라는 겁니다.
오늘날도 그런 것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좀 더 많은 것 더 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지난주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 또 독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좀 드렸고 더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하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가정의 소중함.
가정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주셨고 그 가정 안에 그걸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그런 부분을 더 말씀해주고 있는데 사실 이 바울은 단순하게 이 결혼과 독신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냐 우리의 삶의 처지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이냐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은 원래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의된 것이 있죠.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우신 아름다운 질서 이게 결혼이고 가정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서 독신이라는 은사를 주었다라는 겁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면 바울에 강조하는 것은 결혼이냐 독신이냐 선택해라 이런 거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고린도교의 성도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형편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미혼인 사람은 결혼해야 되나? 라는 생각 또 결혼한 사람은 헤어져도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 믿지 않는 배우자를 가진 사람은 이 결혼을 계속 유지해야 되나? 라는 생각 관심은 다 뭐냐?
환경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있다라는 겁니다.
바울은 이 대답에 대해서 세 번의 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이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데 17절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20절에도 오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에도 오면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해라.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다는 거예요.
바울이 말씀해주고 있는 건 뭐냐면 그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두셨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자리를 달라라고 기도할 때가 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내가 너를 지금 그 자리에 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라.
이걸 먼저 말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부르신 자리의 의미를 깨닫는 것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하시고 또 그 앞에 충성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걸 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라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자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
결혼과 독신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 그런데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먼저 분명하게 알아야 될 것은 바울은 결혼을 부정하거나 독신이 결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더욱 고위의 어떤 영성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것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오히려 성경 전체를 다시 말씀드려 보면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주고 있는 인생의 질서입니다.
질서이죠.
그래서 창세기 2장 18절에 요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피를 지으리라.
제가 이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이 말씀은 사람이 죄를 지은 이후에 생겨진 어쩔 수 없는 삶의 모습 이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죠.
죄를 짓기 전에 하나님께서 온전한 이 창조의 질서가 존재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준 것이 바로 결 혼이다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 위에 생명을 주셨고 사랑과 돌봄이라는 아름다운 사명을 이 가정에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마땅히 있는 질서입니다.
마치 우리가 눈에 보고 있는 이 자연의 질서처럼 우리 육신의 질서처럼 너무나 당연한 질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또 그 태어나는 복음자리는 가정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돌봄을 받고 그 안에서 자람을 통해서 또 다른 가정으로 나아가는 이 영이 되는 것들이 마땅한 인
생의 질서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다라는 겁니다.
바울은 인간이 만든 사회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친히 세우신 창조의 질서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자신처럼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독신이 결혼보다 우월해서 그러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우리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절 7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느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즉 독신을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자신의 취향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사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 어떤 사람에게 특별하게 주시는 선물이죠.
특별하게 주었다는 것은 이것이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걸로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다름이라는 것이 우월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선물을 준 거예요.
그게 은사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 섬기는 은사를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은사를 주시는데 또 그런 부분에서는 다 다른 은사라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가정의 사명을 대신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더 온전히 헌신할 수 있도록 독신이라는 은사를 주셨다는 겁니다.
바울 자신이 사실은 그러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결혼하지 않았지만 부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삶을 살아갔어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아,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좋겠구나.
라고 생각할까 봐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이 독신, 결혼하지 않는 이 문화적 가치관은 자유의 목적이 있지 않 습니까?
물론 어떤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 독신의 은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거예요.
목적이 달라요.
그래서 그런 점에서 9장 19절에 보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합니다.
어쩌면 바울 사도의 이 독신은 오늘날 사람들이 욕심내는 야, 결혼하지 않냐 하면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냐.
라고 생각하는 그 자유의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내게 결혼이라는 책임, 이 사명, 이것을 내려놓는다면 이것을 가지고 이제는 또 다른 얽매임이 있어요.
그게 뭐냐? 보금 전파의 사명입니다.
이걸 위해서 내가 독신을 한다는 거예요.
이걸 위해서 자유를 그것에 내가 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의 독신은 편안한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그 헌신의 자리였다라는 거죠.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독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신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씀드리면 물론 결혼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잘못되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독신의 은사는 단순히 결혼을 피하는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온 삶을 드리는 그런 부르심, 그런 부르심이라는 거죠.
그래서 은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감당하기 위한 그런 희생과 헌신이 뒤따른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독신으로 살았던 이유는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충성하기 위해서 이걸 잘 말씀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자리에 하나님께서 나의 어떤 것을 이뤄나, 나의 삶을 통해서 어떤 것을 이뤄내기 위한 많은 자리들에 대해서 이번에는 쭉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먼저 바울은 미혼자와 과부들에게 이렇게 곤면하죠.
8절 9절 보겠습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하는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뤄놓으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종용기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은이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또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면 믿음 약한 사람은 결혼해라.
믿음 강한 사람이 독신으로 살 수 있는 거야.
뭔가 이렇게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죠.
바울은 매우 현실적인 목회적 곤면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면 모든 사람이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결혼이라는 창조에 합당한 그 창조의 질서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되는 거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은사를 억지로 흉내내다가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마치 당시에 이웃론자들이 있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육적인 것은 저급한 것.
영적인 것은 높은 차원에 있는 것.
이런 것을 보다 보니까 교회 안에도 들어와서 그 결혼하는 축복, 결혼한 은혜를 뒤로 하고 저렇게 혼자 사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라는 것이 보기 좋고 부러워가지고 그래 나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
해가지고 혼자 살다가 오히려 그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일들이 생긴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결혼의 자리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라.
이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 그 자리가 어디인가?
그 자리에서 충성해라.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바울은 결혼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또 곤면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11절 보겠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결혼한 사람들에게 결혼하는 삶의 자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그 결혼한 삶의 자리를 귀하게 여겨야 된다.
당시에 계속 말씀드리죠.
고린도 교회에서 육체를 낚이 어기고 영적인 것만 중요하다.
라고 생각했던 잘못된 사상.
그 영향이 결혼 관계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풍조가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쉽게 갈리게 할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9장 6제로 오면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그의 합당하게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원망하지 마셔라.
결혼하면 그 앞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셔라.
이걸 말씀해주고 있죠.
그래서 배우자가 힘들게 견디고 살아가면 나중에 또 하나님께서 그의 합당하게 자유의 날을 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 어머니니까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 이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많이 힘들게 사셔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삶에서 내게 주어진 자리 이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죠.
또 세 번째 12절부터 13절에 보면 믿지 않는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성도들 또 있습니다.
참 현실적이죠.
고린도교에 다양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다양한 위치 이거에 대해서 지금 답을 해주고 있는 겁니다.
12절 13절에 보니까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않냐 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않냐 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당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배우자를 믿지 않는 경우 그 성도님은 고민했을 겁니다.
오늘날에도 사실 믿지 않는 배우자로 인해서 고민하고 때로 그 고민이 괴로움으로까지 오는 분들의 이야기를 또 그런 기도 부탁을 많이 듣게 되지 않습니까?
믿음이 다르니까 이 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그런 고민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말하고 있어요?
쉽게 포기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그 가정 가운데도 역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가정 가운데 한 사람의 배우자 가운데 한 사람의 믿음이 온 가족을 구원해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전에 제가 한 학생부 영원에 가서 한 교사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 얘기를 간증처럼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 어머니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아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가정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어요.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녀가 하는 얘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16절에도 그런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겁니다.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하려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내 아내를 구원하려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남편과 아내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포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미혼인 사람 결혼한 사람 믿지 않는 배우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바울은 한 가지를 가르칩니다.
뭐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삶의 자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느냐보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하고 있느냐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자리는 우연히 놓인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라고 믿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가서 두 번째로 송도는 변화된 상황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먼저 바라볼 줄 알아야 된다.
17절부터 19절의 내용인데요.
바울은 앞에서 미혼자와 과부 결혼한 사람과 믿지 않는 배우자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17절부터는 이 모든 상황을 하나의 중요한 원리로 계속해서 말씀해주고 있는데 그게 뭐냐면 현재 내가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 부르심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된다.
라는 겁니다.
17절 말씀해 보겠습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그래서 반복해서 중요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환경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다르게 부르셨다는 거예요.
당시 고린도교의 성도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결혼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문제가 아닐까?
어떤 사람은 나는 결혼했는데 믿음 생활에 이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어떤 사람은 나는 노예 신분인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환경을 먼저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셨는지를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한례 문제를 통해서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니까 한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한례자가 되지 말며 무한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한례를 받지 말라.
유대인들에게 한례는 정말로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례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시로 믿었던 이 종교적인 그런 상황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떤 유대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례받은 사람이니까 저 하나님 옆에 특별한 거 아닌가?
반대로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방인들은 나는 한례받지 않았는데 한례받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준 은혜를 제대로 받지 않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말하지 않습니까?
한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옆에 은혜를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런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19절에 보니까 한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한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개명을 지킬 따름 이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느냐 이게 더 중요한 거 아니냐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 믿고 세례로 거듭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이 한례가 뭐 중요하냐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한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데 라고 유대인들은 이야기했고 그 안에 섞여 사는 한례받지 않았던 이방인들은 그것 때문에 주눅 들어가지고 이방인들의 한례받는 이런 일들도 벌어지는 시대였어요.
그래서 문제는 한례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느냐 이것을 바라보는 것 이게 기준이라는 겁니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도 사실 똑같을 수 있습니다.
자주 환경이 바뀌면 신앙생활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갈급함은 때로 우리로 하나님에 더 간절하게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그걸 통해서 그 기도의 응답 그 간절함의 응답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삶을 사랑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좋은 환경이 되면 내가 믿음 생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상황이 달라지면 더 충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지금 이 자리에 대한 원망으로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될 것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나가게 하는 이유도 생기게 한다는 거예요.
성경은 우리한테 먼저 묻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너를 두신 그 자리에서 충성하고 있냐.
물론 하나님께서 더 좋은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죠.
하지만 믿음은 환경이 좋아져야 시작되는 것은 아니에요.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꽤 많죠 이번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의 주제가 요셉이었더라고요 요셉 하면 생각나는 게 뭡니까? 형통이지 않습니까?
형통에 걸맞지 않는 요셉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엄청나게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애국에서 종으로 살았던 사람이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굉장히 절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돌아가서 감옥에까지 갇히게 되지 않습니까?
원하지 않았던 자리, 원하지 않았던 환경 하지만 요셉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노예가 되었으니까 아무 의미 없는 인생이다 나는 환경이 바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까?
그러지 않았다는 거예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죠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던 사람 그래서 창세기 39장 2절에 보면 이게 반복적인 표현인데 요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국사람의 집에 있으니 라고 되어 있어요
요셉이 충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한 것이 아니라 노예였을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감옥에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요셉은 환경이 변해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이게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근데 그 삶을 또 똑같이 잘 살아났던 사람이 누구냐면 이 말씀을 하고 있는 바울이에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 가운데 있을 때 사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 사명을 잘 감당할 만한 환경을 주세요 그가 아니라
그 사명이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충성을 하는 거죠 아시는 것처럼 바울과 신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했던 행동은 뭡니까?
기도하고 찬양하는 일이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장소가 바울의 사명을 막지 못했던 왜냐하면 그의 사명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이 현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죠 가정의 상황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직장의 환경도
그럴 수 있죠 내가 맡은 역할이 작아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우리한테 뭐라 말씀하십니까?
네가 어디에 있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냐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직장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교회에서 맡은 작은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물론 만족하라는 것이 아니라 24절 보겠습니다 고른전서 7장 24절 같이 읽겠습니다 24절 시작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그어라 결국 성도의 가장 중요한 자리는 어디냐 결혼했느냐 독신이냐 높은 자리냐 낮은 자리냐 좋은 환경이냐 좋지 않은 환경이냐 그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 이게 더 중요하다 이걸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자리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게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이걸 말씀해주고 있죠 마지막 세 번째로 성도는 부르심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된다 라는 겁니다 20절에서 24절까지 말씀인데요
결혼과 독신 할레와 무할레 종과 자유인 이런 문제를 앞에서 다뤘습니다 겉으로 오면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또 종과 자유인 각각 상황은 다를 수 있죠 그런데 바울이 반복해서 계속해서 강조해주고 있는
원리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거기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거예요 거기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겁니다 20절에서 보면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대로 지내라 라는 말씀은 아무런 변화도 추구하지 말라 이런 뜻이 아니라
운명처럼 현재 상황에 갇혀 살라는 의미도 물론 아닙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먼저 그 믿음을 가지고 좀 살아갈 줄 알아낸다 얘기를 해주고 있는 거죠 왜냐하면 성도의 가치라는 것은 내가 가진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거지 않습니까 그렇죠 바울은 이것을 당시에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던 종과 자유자 자유인의 문제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1절 보겠습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로마 사회에서 종이라는 신분은 정말 어려운 신분이지 않습니까 자유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자기 삶을 결정할 수가 없어요 근데 만약 그 시대에 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당연히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왜 이런 환경에 태어난 걸까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상황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사실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아셔야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울타리가 없어요 믿음의 울타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반대로 믿음의 가정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도 알아야 됩니다 이 부모의 믿음의 믿음이 믿음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이게 없으니 온전히 자기가 다 맞아야 돼요 물론 그걸 통해서 얻어지는
또 유익이 있습니다 더 단단해지죠 엄청나게 바람을 맞아야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종과 자유자 종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종의 입장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종으로서 신앙생활할 때 믿음생활할 때 얼마나 어렵겠어요 얼마나 많은
장애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럴 때마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마음껏 아무 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런 일들이 없었겠어요 하나님 믿는데 왜 내 상황은 이렇게 변하지 않는 걸까 그런데 바울은 정말 놀라운 말을 합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세상의 신분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가치를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조건을 많이 보죠 학력 직업 재산 사회적 위치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가 세상에 속한 사람인가 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2절 보겠습니다 고른연서실장 2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죽게 속한 자유자유 또 이와 같이 자유자료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인이라 참 놀라운 말씀인데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종과 자유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죠 한 사람은 억압받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자유를 가진 사람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는 거예요 종이
아무래도 그리스도인 안에 있으면 자유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네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억압받는 종이다.
하나님의 기준 안에서 그렇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입니까?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이 자유가 세상에서 억압받는 종으로 사는 것과 비교할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성격 공부할 때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100% 괴롭게 살다가 하늘나라 에서 100% 기쁨과 평안 가운데 안심 가운데 살아간다.
이 세상에서 100% 평안과 행복 가운데 살아가다가 저 세상에서 100%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살아간다면 여러분 뭘 선택하는 것이 죄로 선택입니까?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잖아요.
사실은 우리에게서는 죄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은 사실 말로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세상 가운데 아무리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죄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세상의 자유인 � �려하지 마라.
진정한 자유는 그런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바 된 사람 안에서 오는 것이다.
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8장 36절에 보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진짜 자유는 예수 안에서 오는 것이고 비록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종으로 살아가지만 진짜 너희의 정체는 종이 아니라 진짜 자유자다.
이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종으로 살아갔던 신앙인들은 얼마나 마음껏 위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이 주는 자유는 환경이 바뀌면 흔들려요.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
이게 사도 바울.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자리.
사역이 멈춘 억압받는 자리.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멈추지 않지 않습니까?
이게 자유죠.
그래서 간수가 전도가 되는.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감옥에 그렇게 복음 전하다 갇혔는데 거기에서 이 복음이 가두어졌는데 가두어진 게 아니라 그 가두는 걸 지키는 간수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신앙이 된다는 사실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게 우리가 누리는 진정한 자유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부르심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
그래서 빌립보서 1장 20절에서 21절에 보면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종기에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해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간에 내가 그리스도께 종기감을 받아 살아가는 것이 부르심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니의 삶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역시 다양한 자리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정이라는 자리, 어떤 사람은 직장이라는 자리, 학생이라는 자리, 교회에서 맡겨진 사명이라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가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상황에 있는가?
왜 내 삶은 이렇게 어려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질문하시겠습니까?
네 환경이 어떠하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하고 있느냐?
이걸 아마 물으실 겁니다.
성도는 환경이 좋아서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불우심을 받은 사람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그 환경에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는 사람.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다 보니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자리로 인도해 가는 거죠.
요즘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서 고민합니다.
다 기도하죠.
때로는 답답하죠.
언제부터 건축이야?
언제까지 건축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
참 힘든 여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이것이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가 이것 앞서 생각해야 될 것은 지금 우리에게 허락해 준 지금의 이 건물의 환경 안에서 얼마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냐.
이게 더 중요한 일이죠.
그렇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충성의 크기에 맞춰서 인도해 주시겠죠.
우리는 그것을 구하는 것이고, 그걸 바라보는 것이고, 그럴 수 있도록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삶, 정말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입니다.
어쩌록 이 말씀 마음가운데 새기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 그러니까 원망의 자리가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망의 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보면 피의식에 사로잡혀서 왜 나에겐 이런 환경밖에 주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꼭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의 삶에 기웃거리지 마시고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안에서 능력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또 그것에 따른 정말 귀한 열매를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보초로 그걸 바라보고 오늘을 힘있게 더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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