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신 예수님이 참 소망입니다 20 이찬우
신학생 · 요5:1-9
제작일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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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하신 예수님이 참 소망입니다 (요 5:1-9) 20260804 이찬우 신학생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며, 자신의 소망을 예수님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본문요한복음 5:1-9
-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며, 자신의 소망을 예수님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 병자는 자신의 능력과 타인의 도움 없이 치유될 수 없었고, 세상의 미신에만 매달렸다.
- 예수님은 병자의 고통을 아시고, 자신의 소망을 드러내는 질문을 통해 그를 치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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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
-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명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오셨으며, 베데스다 못 근처에서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다.
- 이 병자는 물이 동할 때마다 못에 들어가려 했지만, 누군가 먼저 들어가 자리를 차지해 자신은 치유받지 못했다.
-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묻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 이 일은 안식일에 일어났으며,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이 인간의 절망 속에서도 늘 변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병자의 상황과 예수님의 역할
- 병자는 육신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절망하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세상의 미신에만 매달렸다.
- 예수님은 그의 고통을 아시고, '나는 낳고 싶다'고 묻는 질문을 통해 소망을 되살리려 하셨다.
- 병자는 소망을 고백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자비로 그를 치유해 주셨다.
신앙생활의 중요성
- 신앙생활에서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중요하며, 세상의 헛된 것에 매달리지 않고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강한 코끼리는 어릴 때부터 훈련을 통해 복종하게 되며, 사람도 예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강조되었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자 우리 먼저 본문 말씀 요한복음 5장 말씀을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저와 한 구절씩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 요한복음 5장 1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1절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많은 자들이 누워 물의 동암을 기다리니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우리 주실 때에 계십니다 내가 가고도가 합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명절이 있어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함께 읽겠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와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아멘 할렐루야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들 평안하시죠? 네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귀한 발걸음 하신 성도님들께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자비하신 예수님이 참 소망입니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들은 어떤 동물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저는 코끼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코끼리는 초식 동물인데 굉장히 힘이 셉니다 제가 어렸을 때 생각하기로는 그게 굉장히 멋있어 보였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데 힘은 누구보다 세다 생각하니까 코끼리가 굉장히 멋있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힘세고 큰 코끼리를 길들이고 저런 하곤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크고 힘센 코끼리를 길들일 수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 코끼리가 어렸을 때 그 발에 줄을 묶고 말뚝을 박아 놓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기 코끼리가 처음에는 거기서 빠져나가 보려고 막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아기 코끼리는 아직 힘이 약해요 그래서 그 밧줄을 스스로 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자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이 코끼리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습니다 나는 이 밧줄을 절대로 끊을 수가 없어 자 그렇게 되면 이 코끼리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이제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게 된다라고 합니다 그 후에 나중에는 이 발에 줄을 묶기만 해도 이 코끼리가 도망가지를 않는데요 자 이것이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우리가 처음에는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막 발버둥을 치는데 아무 진전이 없고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때 어떻게 느껴집니까? 마치 코끼리와 같이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렇게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코끼리가 더 이상 도망가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소망이 없어져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라는 소망이 있어야 시도를 하는데 그 소망이 없어지니까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포기한 사람이 다시 용기를 얻는 것은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우리의 소망을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어려움들이 각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소망이 사라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절부터 3절까지의 내용은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내용입니다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죠 그런데 이 베데스다 연못에는 행각 다섯이 있었대요 행각이라고 하면 기둥과 지붕만 있는 그런 정자 같은 건축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거기 보니까 온갖 병자들이 그 행각에 모여 있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 모여 있었냐면 우리 4절 말씀을 제가 이어서 읽겠습니다 유한복 5장 4절 유한복 5장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5장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5장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유한복 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계속 거기에 할 없이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스템인 것이죠.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 비결들은 자세히 보면 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을 수 있다고 했는데 실상은 거기에 병자인 채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왜 이렇게 많은 병자들이 지금 베데스다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다 1등 못해서 여전히 거기 있는 것입니다. 1등 못한 사람들만 다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나을 수 있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서 거기에 모였는데 실상은 매번 패배만 하는 매번 실패만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베데스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망보다는 절망에 빠지게 많은 것이 바로 이 베데스다 연못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누구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5절 말씀을 보니까 거기에 38년 된 병자도 있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주요 인물인 38년 된 병자도 지금 여기 베데스다에 있습니다. 1등 한번 해보려고. 오늘 말씀에서 정말 중요한 과제가 뭐냐면 이 38년 된 병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뭐냐면 이 병자는 38년 동안 이 병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인지는 기록이 되지 않지만 38년이라는 시간은 정말로 긴 세월이죠. 그 긴 세월 동안 이 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이 병이 깊어져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 병자도 자신의 병을 고치고 싶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병자도 지금 이 베데스다에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나도 1등으로 이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서 내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금 이 베데스다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의 시스템에 빠져드는 이유도 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너무 힘드니까. 너무 절박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걸로 저런 방법으로 성공했다고 하니까 혹시나 나도 이걸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거기에 빠져드는 것이죠. 그런데 현실은 무엇입니까? 현실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8년의 긴 세월 동안 여전히 고통당한다는 것이 바로 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 병자가 베데스다에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38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 병을 고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1등 한번 못해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패배하고 고통만 당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병자를 더욱더 낙담하게 만드는 문제가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의 무엇이었냐면 이 병자에게는 도와줄 친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병자는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7절을 보면 이 병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나를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병자는 병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이 베데스다 못에 들어갈 수가 없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줄 친구도 가족도 한 사람도 없는 처지가 바로 이 38년 된 병자인 것이죠. 우리가 마가복음에 보면 중풍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풍병자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죠. 그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서 내려줄 정도로 이 중풍병자를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병자는 아무도 없어요.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입니다. 이것이 이 병자를 더욱 낙담하게 만든 이유인 것이죠. 여러분 38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병은 낫지도 못하고 내가 너무 낫고 싶어서 베데스다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는 게 소원인데 나를 도와줄 친구조차 없으니 이 병자가 얼마나 낙심하고 외로웠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 그에게 소망이 있었을까요? 이런 형편의 사람이 소망을 가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매번 움직일 때마다 매번 물이 움직일 때마다 나도 너무나도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까 그때마다 소망보다는 절망만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란 존재는 사실 가능성에서 기대와 소망을 찾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확률로 보면 10%, 20%, 50%, 60% 이렇게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내 기대감도 커집니다.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내 소망도 더 커집니다. 그런데 만약에 가능성이 0%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대체 어디서 우리가 소망과 기대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병자는 사실 소망을 가질 수가 없는 형편에 있는 것이죠. 내 힘으로도 못해요. 그런데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병자는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자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가 낳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자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우리 본문 말씀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 5장 7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 나를 못해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낳고자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뭐라고 대답합니까? 나를 못해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먼저 못해 들어갑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네가 낳고 싶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내가 낳고 싶다. 라고 대답을 안 하죠. 그 대신에 뭐라고 대답합니까? 난 나를 못해 넣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못해 들어갈 수 없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낳고 싶냐고 물었으면 낳고 싶다고 대답을 해야지 왜 이렇게 대답을 한 것일까요? 사실 이것이 이 병자가 그만큼 절망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병자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정말로 낳고는 싶지만 나는 나를 넣어줄 사람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소망이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지금 대답을 한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 병자의 병을 낳게 해줄 수 있는 분이 누구입니까? 사실 예수님이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인데 이 병자는 여전히 허무 맹랑한 미신적인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죠.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분이 지금 내 앞에 있는데 그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미신적인 소문에만 매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성경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지금 성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38년 된 병자에게는 믿음조차도 없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5장 14절에 보면 유언복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병자는 사실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내가 죄를 지어서 고통을 당한다면 원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원래는 회개를 해야 됩니다. 원래는 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미신적인 것에만 매달리고 여전히 예수님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사실 영적으로도 답이 없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 38년 된 병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를 하면 육신적으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병이 깊고 도와줄 친구조차 없이 38년이나 긴 세월 동안 고통당한 사람이고 정신적으로는 계속되는 실패를 겪으며 절망하고 철저히 혼자라는 외로움을 겪으면서 영적으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헛된 것에만 눈이 먼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 속에 있는 다른 치유사건을 보면 그 병자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똑바로 인지하고 예수님을 찾아가서 믿음으로 간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병자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앞에 있는데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몰라요. 그리고 여전히 세상적인 미신에만 매달려 있으니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이 병자가 치유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드십니까? 그런데 사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라는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이 보시기에 사실 이 병자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문제는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에 헛된 것에만 눈이 먼 사람이 사실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사실 우리는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다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만나기 전에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 말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을 앞에 두기만 하고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만 의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38년 된 병자를 보면서 느껴야 하는 것은 쓸모없다. 어떻게 이렇게 답이 없을 수 있다. 있냐. 이런 것이 아니라 아, 이 모습이 내 모습이었구나. 이 병자가 나였구나. 라고 우리가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찾아갔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랍게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 답 없는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은 만큼 정말로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느껴집니다. 여러분 오늘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먼저 찾아가셔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것은 왜 이 병자를 찾아갔냐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이 병자를 예수님께서 그런 수고를 들여서 찾아갔냐라는 것이죠. 다른 병자들처럼 예수님을 알아보고 먼저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다른 병자들처럼 믿음이 있었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하러 이런 쓸모없는 병자를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이 병자를 만났냐라는 것이죠. 왜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를 답이 없는 우리를 찾아오셨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 다 예수님의 자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자비를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그 극율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죠. 그래서 이 예수님의 자비가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우리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본문 말씀 6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6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내가 낫고자 하느냐 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연속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행동이 예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 38년 된 병자가 누운 것을 보았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보았다는 것은 관심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병자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병자는 인간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병자를 도와줘봤자 대체 무슨 유익이 됩니까? 또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또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래서 사람은 가치가 없고 성가신 것에는 사실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죠.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거기 강도 만난 자가 나오지 않습니까? 근데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눈을 돌려버립니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리죠. 더 이상 보기가 싫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냥 돌아가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다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때에 예수님만큼은 이 병자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그 앞까지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자비는 외면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외면치 않는 분이십니다. 수많은 성경 말씀에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던 다윗의 기도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예수님께서는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외면을 당했다면 어떻게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을 외면치 않으셨기 때문에 그 자비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예수님의 외면치 않는 자비를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아셨대요. 무엇을 아셨습니까? 6절에 보니까 이 사람의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셨다라고 기억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공감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병자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예수님께서 그 마음을 온전히 알았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38년이나 긴 세월 동안 당한 그 고통과 서름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누군 그 38년 동안 겪은 사람에게 내가 가서 너의 고통을 이해해 라고 이야기해도 그것은 온전히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서름을 온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공감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자비의 특징인 것이죠. 알기 때문에 이 병자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기 때문에 이 병자를 곧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께만큼은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만큼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우리의 모든 힘듦을 온전히 공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형제들이 공감해 줄 때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저는 우리 형제들을 통해서 우리 자매들을 통해서 주는 공감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공감하시는 한 통로가 된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감을 받고 격려를 받을 때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형제가 나에게 위로해 주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께서 나를 위로해 준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실제로도 우리를 그렇게 위로하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바라업기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뭐라고 물으셨습니까? 6절에 보면 내가 낳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시죠.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여러분 사실 병이 걸린 사람이 병자가 낳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병자면 낳고 싶은 것이 당연한 건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물으셨을까요? 예수님도 다 아실 텐데 누구나 다 아는 건데 왜 예수님께서는 낳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보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서두에 코끼리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코끼리가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포기한 이유가 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그 이유는 수많은 실패를 겪어서 소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병자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실패와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낳고 싶다는 소망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답도 낳고 싶다고 대답을 못합니다. 나를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오히려 절망적인 대답을 합니다. 소망이 있냐고 물었는데 절망으로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에게 낳고자 하느냐라고 물은 것은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죠. 소망을 가지고 나에게 말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낳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 병을 낳고 싶다고 병을 낳게 해달라고 아래지 않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앞에 두고 내 문제를 아래지 않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신앙생활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은 병풍과도 같은 것이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 없이 다른 것을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묻는 것입니다 네가 낳고자 하느냐 사실 이것은 질문이지만 권면이자 확인입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권면이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그 소망을 나에게 고백하라는 믿음의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이러한 소망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죽었던 소망을 살려주는 질문인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병자가 오늘 본문 속에서 소망의 고백을 못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8절 9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와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분명히 이 병자가 소망을 고백을 못했는데 믿음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낫게 해 주십니다 이게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죠 동시에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모든 게 그 자비 때문이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직 그의 자비 덕분이었다라는 것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증명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 것이죠 내가 못났든 내 능력이 부족하든 내 믿음이 부족하든 예수님의 자비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요 인물이 예수님과 이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이야기를 보면 이 38년 된 병자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냥 누워만 있죠 너무나도 수동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면 너무나도 적극적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찾아가시고 이 병자를 바라보시고 이 병자의 고통을 아시고 이 병자에게 물으시고 또 이 병자의 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실 이 38년 된 병자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자비를 보면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치유 과정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너무나도 닮아 있죠 우리 로마서 5장 7절 8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로마서 5장 7절 8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장 7절 8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로마서 5장 7절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로마서 5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7절에 보면 의인을 위해서 선인을 위해서 죽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 선한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것이 쉽지가 않대요 그런데 누가 죄인을 위해서 죽어주냐는 것입니다 누가 그런 못난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죽어주냐는 것입니다 선하고 우러운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대체 누가 더럽고 못난 사람을 위해서 죽어주냐라고 묻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했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해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비와 사랑 덕분에 살아난 사람들이죠 베데스다에 있는 병자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런 잘난 점이 없는데 오직 예수님의 자비 하나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자비 덕분에 우리는 치유받은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는 이미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그 자비를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미 예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못난 모습을 보고 여전히 죄를 짓는 내 모습을 보고 낙담하면서 예수님의 자비를 의심하는 것은 그것만큼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는 우리가 제일 못난 모습일 때 우리가 가장 더러운 모습일 때 죽어주심으로 이미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의 자비를 힘입어 소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망밖에 가지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있더라도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은 그 예수님의 자비가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소망을 둘 것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께 소망을 두기를 소망합니다 자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소망이라는 것은 사실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어야 앞을 볼 수가 있고 소망이 있어야 우리가 우리의 걸음을 내디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을 어디에 두는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베데스다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굉장히 유혹적이고 새로운 소문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의 소문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소망처럼 보이고 소망처럼 꾸며져 있지만 사실은 베데스다 모처럼 소망이 아니라 절망인 것입니다 언제까지 거기에 머무르게 만들면서 정작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실 이 베데스다의 모신 것이죠 그러면 무엇이 참 소망입니까? 나를 외면치 않으시고 내 모든 고통과 내 마음을 아시고 나를 정말로 치유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참 소망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베데스다 모세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등 하기를 하려고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막 발버둥 치고 이것저것 하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를 치유해 주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그런 허무 맹랑한 것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문제를 예수님께 알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 있습니까? 바랍기는 우리의 소망을 예수님께 두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자비의 힘이 뭐 우리의 소망을 예수님께 둔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상으로 말씀 마치겠습니다 우리 다 함께 복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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