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01
사랑과 은혜 20
김용준 · 요5:10-15
제작일 2026. 8. 7.
AI 설교 정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을 통해 사랑과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설교 내용 요약
본문요한복음 5:10-15베드로전서 4:8
-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치유하신 후, 그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선한 일을 비난했고, 이는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에도 사랑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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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배경
- 설교 기반: 요한복음 5장 10절~15절
- 주요 사건: 안식일에 병든 사람이 침상에서 일어나 걷는 것을 유대인들이 비난함.
- 예수님의 행동: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그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함.
예수님의 선한 일에 대한 비난
- 예수님의 선한 일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칭찬을 기대해서는 안 됨.
- 예수님께서도 선한 일을 하셨음에도 비난을 받았음.
-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사랑보다는 자신의 권위와 이익을 우선시함.
사랑과 은혜의 중요성
- 베드로전서 4:8에 따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함.
- 사랑은 죄를 덮고, 사람의 실수를 인간적인 매력으로 바꾸는 힘이 있음.
- 병자가 치유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며, 그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함.
교회와 신앙생활에서의 사랑
- 교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사랑과 배려를 가져야 함.
- 사랑은 표정과 태도로 표현되어야 함.
- 은혜를 받은 후에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며, 어리석은 행동은 피해야 함.
- 예수님은 한 번 받은 은혜를 쉽게 잊지 말라고 경고하셨음.
전사(자막) 전문▼
이 시간에 함께 나눌 말씀은 요한복음 5장 10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장 10절에서 15절 말씀을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 10절에서 15절 함께 읽습니다. 시작! 유대인들이 병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내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데 죄이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음으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낳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치니는 예수라 하니라. 아멘 여러분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잘한 일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다면 여러분 어떤 마음을 품으시겠습니까? 내가 정말 잘한 일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비난을 해요. 그럼 그 비난 앞에 여러분 어떤 마음을 품으시겠어요? 여러분 그것은 억울해 할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서 상처받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잘한 일에 비난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요. 내가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이 좋다고 그래서 결과도 반드시 좋게만 나온다라고 하는 보장이 없어요. 또 설사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그래도요. 모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준다. 여러분 이걸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일을 했다면 일한 그것으로 만족을 해야 되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말을 듣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아야 선한 일을 한 후에도 낙심하지 않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비난하고자 하는 사람의 입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요? 비난하고자 하는 사람의 입을 막을 방도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좋은 일은 좋은 대로 또 충고를 해야 될 일은 충고를 해야 되는 일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어떤 선한 일도 비방의 이유가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아무리 그래도 나는 분해서 못 살겠다. 여러분 그러면 그때는 예수님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도 비난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면 조금은 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도 비난을 받아요. 하물며 우리가 하는 일에 비난이 없기를 기대한다. 여러분 이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38년 동안 알아온 이 환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가족 한 사람도 없이 홀로 남은 정말 외로운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셨어요. 그리고 소원을 물어주시고 또 온전한 사람으로 걷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말이 그렇지 38년을 그렇게 산 사람이 말끔하게 고침을 받았다라고 하는 것 이게 작은 일이겠습니까? 사실 이 환자는 난치병 환자예요. 구제불능입니다. 세상에서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38년을 그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정말 비참한 인생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환자를 고쳐주셔서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건 정말 굉장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 앞에서 그가 누구이든 정상적인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해야 될 일이 있다면 그 한 가지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이 일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감사와 감격이 있을 뿐 다른 어떤 말이 여기에 있을 수 있냐 이 말이에요. 그런데도 비난은 있었다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이 그 일을 비난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이 사람들이 이 비난이라고 하는 건 어디에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이런 일에 조차도 비난을 하는 이런 사람들이 된 것일까요? 이유가 뭘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흔히 경험하듯이 진정으로 우리가 사랑을 하면 어떻습니까? 누군가를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내 안에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요 그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조차도 실수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으로 이렇게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잖아요. 여러분 38년 동안 줄곧 누워있다가 이제 일어나서 자기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는 이 모습 속에 언짢은 일이 무엇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시비를 걸기에 앞서서 그의 감격을 돌아보고 은혜의 기쁨과 감사로 율법을 초월할 수 있었어야만 하는 이런 일이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때때로 은혜는 이 율법을 초월해서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은혜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이 없으니까 그 감격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건너냈어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뭐하라고요? 사랑할지니 여러분 이 표현이 정말 적절하지 않습니까? 그냥 서로 사랑해라 이 정도가 아니에요. 여기에 이 단어를 덧붙였어요.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모든 화물을 덮어주고 허다한 죄를 가려주는 것이 사랑이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성도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건 뭐예요? 열심으로 사랑하는 것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 그래서 요한복음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그거예요. 서로 사랑해라 오늘 유대인들에게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만 있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의 그 감격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요 오늘 안식일 이게 전혀 문제시 되었고 그런데 그 속에 사랑이 없으니까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걷게 된 그 감격과 그 기쁨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과 예수님의 능력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들의 밥그릇뿐이에요 자기들의 권위가 실추될까 봐서 자기들의 영향력이 축소될까 봐서 자기들의 기득권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 앞에서 정상적이라면 너의 병을 고친 사람이 어떤 분이시냐라고 묻는 것이 다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묻는 걸 보십시오 여러분 11절 1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세요 11절 12절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데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이 사람이 누구냐 하되 그들이 누가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그랬느냐 도대체 이 안식이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너에게 했길래 여러분 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이게 왜 문제가 됩니까? 10절 말씀을 보면 문제 삼는 게 이거잖아요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여러분 사실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지적은 옳은 거예요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죠 여러분 미신화의 안식일에 금지되는 일을 39가지로 규정을 해요 그런데 그 39번째에 금지되는 일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이게 39가지가 있는데 그 39번째가 뭐냐면 이거예요 짐을 들고 옮기는 것 이게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금지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이 그 들 것을 들고 가는 것 이게 문제가 아니라 안식일에 그걸 들고 가는 것 지금 이게 문제라는 것이거든요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게 틀린 지적은 아니에요 미신화에 철저하게 입각해서 본다고 할 것 같으면 그런데 이게 틀려서가 아니라 그런데 이게 틀려서가 아니라 문제는 그 속에 사랑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38년 동안이나 그 고통 속에 살았던 이 사람이 걷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을 볼 줄 아는 것 이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마음이 중요한 일이다 이 말이에요. 이런 보아야 될 것을 볼 줄 아는 것 이게 복이잖아요. 지금 이 사건 앞에서도 보아야 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사람의 감격과 기쁘게 되었고 이 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시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되고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도 보아야 되고 여러분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냐고요 저는 이런 의문을 가졌어요 수많은 환자 중에서 예수님은 왜 이 38년 된 이 한 사람만 고쳐주시고 모습을 감추셨을까 뒤에 보면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인해서 피하셨다 더 이상 고치실 생각이 없으신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좀 고쳐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 38년 된 이 한 사람만 고쳐주시고 예수님은 피하셨을까 여러분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에요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지 따라서 그가 병자를 고쳐주실 때는요 병 고침 자체가 목적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38년 된 병자를 일으키게 되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집중이 되게 되지요 세상을 구원하는 방편의 하나로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거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 예수가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이시라고 하는 이걸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 그래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 이게 예수님이 이 사람을 고쳐주시는 목적 아닙니까 그래서 만나는 모든 환자들을 다 고쳐주시지는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한 사람은 고침을 받았어요 여러분 이 사람의 입장에서 이 사실이야말로 38년 된 이 병자의 처지에서는 굉장한 복음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잖아요 예수님이 자기만 찾아와서 고쳐주셨다라고 하는 사실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누가 그를 향해서 왜 당신만 고쳐주셨다고 생각을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여러분 그가 뭐라고 답변을 할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이 답변밖에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네요 여러분 이게 이걸 은혜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그것을 내가 그런 은혜를 받을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왜 내가 그런 은혜를 받을까 왜 예수님께서 나만 그렇게 고쳐주셨을까 설명할 방법도 없고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이걸 은혜라고 그런다 이 말이에요 그것이 복음이에요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왜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지 수없이 수없이 되뇌어보지만 물어보지만 거기에 대해서 여러분 답변할 수 있으십니까? 왜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콕 집어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시고 불러주셨느냐 이 말이에요 여러분 거기에 대한 대답 여러분 뭐라고 답변을 하실 수 있으세요? 모른다 여러분 이것은 생각을 한다고 그래서 알게 되고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이것이 은혜예요 그 은혜를 봐야 돼요 그 속에 있는 그 은혜를 봐야 돼요 은혜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걸 보지를 못하고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 은혜가 올라오고 얼마나 큰데? 그거는 보이지를 않고 왜 나만 구원을 해? 하나님은 불공평하셔 왜 38년 된 그 병재만 왜 고쳐주셔? 하나님은 불공평해 여러분 거기다가 되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를 보지를 못하고 거기다가 되고 불공평, 운운하는 이건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식 속에서 이념 속에서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제가 신앙생활을 목표를 하면서요 믿음의 실족을 하시는 이런 분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데 그 믿음에 실족하는 분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보통 어떤 큰 고통의 쓰나미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우리의 삶을 잘 들여다보시면 정작 큰 고통 가운데 있는 그 사람이 그 고통을 인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가는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아니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을 불평을 해요 그런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일까? 정작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 고통의 쓰나미 가운데에서도 자기를 돌아보고 그 신앙이 훨씬 더 깊어지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견디고 일어서고 이러시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는 그렇게 그 고통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가는 이런 사람이 되는데 자기는 그 고통 가운데 들어가 있지도 않으면서 저렇게 고통을 당하는 자기 백성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런 존재는 믿어야 될 하나님이 될 수 없을 거야 머리로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생각으로 여러분 오늘 이 사건 속에는 정말 보여야 될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유대인들이 그런데 그 속에 사랑이 없으니까 사람 불쌍한 것도 보이지를 않고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보지 못하게 되더라 이 말이에요 오직 보이는 것이 트집이고 비난거리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에게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 요한일서 4장 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냐 요한일서 4장 16절에는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 이라 사랑이 있어야 그 사랑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게 참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교회도 사랑이 있어야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이런 교회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전주에서 목회할 때요 우리 에스더 집사님 우리 소다니엘 집사님의 어머니 되시는 그 에스더 집사님의 고모들이 여러분 계시는데 우리 에스더 집사님이 광주에 계시는 그 고모님을 전도하고 싶어가지고 그렇게 정성을 많이 드렸어요 마음을 많이 쓰시고 그런데 전도가 되지를 않아요 그런데 에스더 집사님 어머니가 전주에 사시는데 광주에 사시는 고모의 언니가 되는 거죠 그런데 한 번은 그 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그 광주에 사시는 고모님이 언니를 보러 전주에 온 거예요 그래서 때는 이때다 우리 에스더 집사님이 기회를 잡아가지고요 고모님을 쫄라고 쫄라고 쫄라가지고 언니 보러 왔는데 언니도 다니지 않느냐 여기까지 왔으니 언니가 기뻐하시는 일인 교회에 한 번 같이 가보자 그러니 더 이상 거부를 못하죠 그래서 함께 교회를 오셨어요 처음으로 교회를 발을 디디신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하시는 얘기가 이 교회라고 하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대요 그래서 내가 아주 샅샅이 봐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오신 거예요 그래서 예배당 들어가는 순간부터 계속 보신 거예요 사람들이 예배하는 모습도 보시고 예배가 마치고 식당에 내려갈 때 또 서로서로 인사할 때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을 때 그들의 표정은 어떤지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이런 자세는 어떤지 이런 것들을 굉장히 주의깊게 보셨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보시고 난 후에 이분이 광주로 돌아가서 참여식 교회에 출석하기를 시작을 했어요 왜 교회에 출석을 했을까요? 그렇게 이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보고 싶어서 갖고 그렇게 살펴봤대요 그랬더니 우리 고모님이 그런 표현을 쓰셨어요 진심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모든 것들이 이런 사람이 진심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하고 그냥 이렇게 해야 되는 어떤 의무감이나 이런 것만 가지고 그냥 이렇게 대하는 이게 다 구별이 되는 거잖아요 특히 그런 걸 주의깊게 보려고 하는 이런 사람에게는 그게 훨씬 더 잘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러고 이렇게 보는데 이분 눈에 뭐가 보인 거예요? 진심이 보이더라는 거예요.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더라. 예배하는 자세도 참 진지하고 끝나고 인사하는 이런 것들도 정말 진심으로 마음으로 서로서로를 챙겨주고 이런 모습들을 보신 거예요. 그리고 감동이 되신 거예요. 그래서 딱 한 번 교회 다녀가신 그걸로 결심을 했어요. 이런 게 신앙이라면 나도 그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가셔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오늘 이날까지 변함없이 진심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그렇게 생활을 하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들의 눈에 사랑이 보여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우리 교인들이 사랑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 교인들이 정말 사랑이 많아요. 그런데 그게 잘 표현이 안 되고 전달이 되지를 않아요. 그래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훈련이에요. 믿음 안에 신앙의 훈련. 필요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데 필요한 그게 뭐예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 입꼬리만 싹 올려도 눈꼬리만 싹 올려도 여러분 이 사람이 눈이 착해서 이렇게 하는 것하고 눈꼬리를 이렇게 올려서 사람을 대하는 것하고요. 얼마나 이게 차이가 큰지 몰라요. 특히 내가 좀 인상이 약간 좀 그렇다 이러신 분들은 의지를 가지셔야 돼요. 왜냐하면 내가 아무 표정 없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데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여져요? 짜증 가득한 심술 가득한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잖아요. 내 안에 있는 그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된 얼마나 억울한 일이에요. 그래서 내가 평소에 가만히 있으면 인상이 사람들에게 차갑게 이런 분들은 의지를 가지셔야 돼요. 하나님 앞에 그 정도 훈련은 하셔야 되잖아요. 그래서 절대 입꼬리 쳐지지 않도록 교회에 오면 노력하시고 마음이 불편하실수록 이게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이런 훈련을 해야 돼요. 특히 제가 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인들이 정말 주의해야 될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친하신 분들 친하신 분들 너무 친하니까 그냥 막 이렇게 대하시잖아요. 둘 간에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누구에게 문제가 있다고요? 그걸 눈여겨서 보는 사람에게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중에 그런 분이 계실 수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는 너무 이상한 거예요. 이게 이상한 게 그래서 여러분 아무리 친해도요 처음 사랑으로 처음 만날 때 마음 다해서 배려해 주고 살펴주고 했던 그 마음이 있으시잖아요. 그곳 사랑에서 그렇게 하셨던 거잖아요. 그 처음 사랑으로 그렇게 대해주시길 바라요. 그들이 보고 있어요. 끝으로 한 가지 더 우리가 이 본문에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한 번 받은 은혜를 쉽게 쏟아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경고침을 받은 사람이 며칠 후에 이제 그 성전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났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십시오. 예수님이 누군가를 고쳐주시잖아요. 이적기사를 향하잖아요. 그러면 대부분은 그 일 후에 그 사람 얘기 등장합니까? 안 합니까? 그 일 후에 다시 등장하는 이런 경우 정말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일 후에 이야기가 또 있어요. 그렇죠? 그때 예수님께서 참 놀라운 말씀을 하셨어요. 14절 말씀이에요. 요한복음 5장 14절 함께 봅니다. 시작!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낳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러니까 이 남자는 38년 전에 어떤 죄를 짓고 병이 들었던 거예요. 그렇죠? 병으로 이 병이 어떤 죄로 인해서 온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요. 그에게 언제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는 캐묻지 않으세요. 그렇죠?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이 없으세요. 그런데 주님은 이 당부를 하신다는 거예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주님은요. 이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면 옛날에 죄를 다시 지을 가능성이 있다. 라는 걸 아셨던 것 같아요. 그 얘기에서 그걸 보셨던 거죠. 여러분 이적을 체험한다고 그래서 사람이 다 변하는 것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서 변해도 완전히 변해야지 적당하게 변하면요. 옛날 습관이 또 나오게 마련인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를 잘해요. 곧잘해요. 그런데 주님의 은혜를 입고 나면 어떻습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까마득히 다 잊어버리고 다시 그냥 돌아가기를 반복을 하는 이런 모습들이 많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는 생각들을 하게 되고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일에 다시 손을 대고 절대 생각하지 말아야 될 것들을 다시 마음에 두고 생각하게 되고 여러분 이런 잘못은 대단히 위험한 거예요. 첫 번째 잘못에서 맞는 배는 그렇게 아프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다시 반복을 해서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맞을 때는 피멍이 들도록 아프기 마련이에요. 정말 이게 위험한 거예요. 한 번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쏟아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돼요. 악인 줄 알면서 손을 대고 있으십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인 줄 알면서도 아직도 여전히 그 쾌락에 못 이겨서 끌려가고 계십니까? 여러분 매를 막기 전에 빨리 돌아서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 것 배워야 됩니다. 하나는 타인에 대해서는 뭘 가지고 봐야 돼요? 사랑을 가지고 타인에 대해서는 내 안에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시면 그 어떤 것도 내가 의도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한다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는 반드시 사랑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내게 필요한 것은 뭐라고요? 은혜가 은혜되게 살아가는 것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은혜 안에 사는 이런 삶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됩니다 목도하겠습니다 하레리야 아멘 찬송 218장 찬송합니다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날 붙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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