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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표면적 유대인과 육신의 할례 20

장종규 · 롬2:25-29

제작일 202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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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청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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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25-29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의 할례가 무효라고 말하며, 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와 신령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본문로마서 2:25-29예레미야 4:4예레미야 5:5신명기 10:12
  • 로마서 2:25-29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의 할례가 무효라고 말한다.
  • 표면적인 유대인은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며, 마음의 할례와 신령이 중요하다.
  • 하나님은 율법과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요구하며, 내면의 믿음과 행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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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주요 내용

  • 로마서 2:25-29는 율법을 행하지 않는 유대인의 할례가 무효라고 말한다.
  •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였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의미가 없어진다.
  • 표면적인 유대인이나 육신의 할례만 있는 자는 진정한 유대인이 아니며, 마음의 할례와 신령이 중요하다.
  • 유대인들은 율법과 할례를 자랑했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비난받는다.
  •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할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무할례와 같다고 성경은 지적한다.
  • 진정한 유대인은 마음의 할례와 신령을 가지고 있으며, 율법을 실천하는 자이다.
  • 이방인도 율법을 지키면 할례가 있는 유대인보다 더 유리하다는 점을 성경은 강조한다.
  •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고통을 동반할 수 있다.
  • 세례는 육체의 더럽음을 제거하는 상징을 마음의 죄를 제거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 세례만으로는 구원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행함이 중요하다.
  • 표면적인 것보다 중심, 즉 내면의 믿음과 행함이 중요하다.
  • 참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며,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 예레미야 4:4, 5:5는 표면적인 순종보다는 내면의 회개와 순종을 강조한다.
  • 신명기 10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마음과 힘을 다해 순종하라고 말씀하신다.
  • 마음의 한례를 행하지 않으면 죄가 마음에 남아 목이 곧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다.
  • 성도는 세례로 영적인 한례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마음의 한례를 받아야 한다.
  • 마음의 한례를 행하면 마음의 더럽고 죄스러운 부분이 제거되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하게 된다.
  • 반대로 마음이 굳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
  •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고 반복적으로 권면한다.
전사(자막) 전문▼
성경 말씀 로마서 2장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2장 25절에서 29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2장 25절에서 29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2장 25절 내가 율법을 행한 즉, 할래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 즉, 내 할래가 무할래가 되었느니라 그런 즉, 무할래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래를 할래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래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래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시 아니하겠느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래가 할래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래는 나음이 알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아멘 앞시간에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랑하고 율법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정작 율법을 행하지는 못하는 행하지는 않는 그런 모습을 이렇게 성경은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그 유대인들의 그런 모습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가운데 모독을 받는다라고
이렇게 성경은 증거한 바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같은 연장선 상에서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율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할래에 대해서 그들이 이런 할래를 받고 할래를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 그런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런 부분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25절 말씀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25절입니다 내가 율법을 행한 즉 할래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 즉 내 할래가 무할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행한 즉 할래가 유익하나라는 이 말씀 보면 이 할래라고 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할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맨 처음으로 이제 나타나는 그런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알고 너와 내 자손과 내게 속한 모든
그런 남자들이 다 할래를 받으라고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너와 너의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언약의 증거로 할래를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 아브라함
부터 시작해서 그의 이제 자손들은 이제 할래를 받게 되며 그 할래를 받음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증거가 되는 것이고 이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런 언약들이 이 그들에게도 이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라고 하는
바로 이 언약의 증거가 할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래는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는 그런 증거란 증거였던 거죠 아브라함의 자손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라 이 되는 것인데 그 증거로 그 증거로 할래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래서 할래를 이제 받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거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 이제 이들이 거룩한 의로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라는 그런 의미도 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대로 한다면 내가 율법을 행한 즉 할래가 유익하나라는 이 말씀을 먹게 되면 이 할래가 유익한 것이나 그러나 이 할래가 유익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행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행하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이 할래가 그와 같은 그런 유익한 면이 유익이 있다라는 거죠 그럼 반대로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 할래가 무의익하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을 행한 즉 할래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 즉
내 할래가 무할래가 되었느니라 바로 이 말씀이십니다 결국은 유대인들이 할래를 받았지만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이여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이렇게 여기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때 그렇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시켜 행하지 않으면 이 할래가 무할래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앞 시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 백성이다 라고 하는 그런 증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의지했지만
하지만 하지만 율법을 그들이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율법을 받았지만 그리고 할래를 받았지만 이들은 이들은 그 율법을 가진 혹은 할래를 받은 그런 의로운 거룩한 하나님 백성 은 아니라는 바로 그 말씀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런 의식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 자부심 그래서 이방인들보다 우월하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생각을 강하게 했었던 이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었는데요 누가 보면 3장에 보게 되면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
회계에 합당한 열매를 매지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우리가 아브라함이 다시요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라고 이렇게 증거합니다 회계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면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회계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는 것은 행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회계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하게 될 때 열매를 맺게 되는데 행하지 않으니까 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는 거죠 그런 가운데 있는 자들이 유대인이었고 세례요한은
그들로 하여금 속으로 아브라함이 너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계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으니까 다시 말하면 행함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례요한은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라고 이렇게 바로 이어서 증거합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겁니까 결국 이들이 유대인들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 혈통이긴 했으나 하지만 이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니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행했을 텐데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그런 말씀이십니다 예수님 요한문 8장 39절에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 행사를 너희도 할 것이거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은 그 말씀은 유대인들이 스스로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런 아브라함처럼 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니까 너희가 아브라함의 사손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러면서 세례의원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돌들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액성이 되게 할 수, 아브라함의 사손이 되게 할 수 있다� ��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은 결국은 당시 유대인들이 스스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이고 우리는 이방인들과는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스스로 이렇게 믿고 생각하고 그런 우월식에 젖어있 는 그들에게 하신 그런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말씀하시는 기준은 다 이들이 행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바로 이들이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들이 받았던 할래도 무할래가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죠.
율법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율법을 받았다 하더라도 율법들을 행하지 않 게 되면 그 율법이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런 말씀이 되는 거죠.
26절입니다. 26절 말씀. 26절.
그런 즉, 무할래제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래를 할래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절. 또한 본래 무할래제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래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아니 하겠느냐.
그래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할래를 받았지만 율법을 행하지 않다 보니까 무할래가 되었다면 26절, 27절에서는 할래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이 비록 할래를 받지 않아서 무할래자가 되었지만 그런데 그들이 그 율법을 지켜 행한다면 그러면 그들이 그들의 무할래를 할래를 여길 것이 아니냐.
이렇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할래를 받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한다면 할래를 받고도 율법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이걸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율법을 받고 그리고 할래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런 증거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는 그런 의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행할 때에 율법도 할래도 다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중요한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그런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문 21장 4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에 열매 맺는 백성이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는 겁니다.
왜요? 열매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는 이방인들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오래 믿는 것이나 그리고 어떤 것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구원의 보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우리 참예수교회 와도 연관을 시켜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27절에서 무한례자가 한례를 받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율법을 시켜요.
그러면서 한례를 받았음에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이렇게 판단하고 책마 할 수 있지 않느냐 라는 그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진리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만일 진리를 따라 행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가진 우리 참예수교회의 성도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럼 이렇게 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앞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참예수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거 너무나 큰 은혜이고 복인 거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성령을 받은 것 그것으로만 우리가 족하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왜 주셨는지 그 뜻을 따라서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래서 진리를 따라서 행하지 않는
그런 가운데 있다 온다면 여기 말씀처럼 진리가 없는 가운데도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말씀드리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그리고 또한 율법을 주시고 한례를 주시고 또 오늘날 진리를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그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바이며 하나님께서 이것을 위해서 이제 은혜를 주시게 되는데 이게 바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점차로 이제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반드시 행하는 그런 자들이 되어야 된다라는 것을 생각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태국 7장의 그런 말씀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총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 그런 말씀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진리가 없는 진리가 없는 이방 진리가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진리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도
다시 말하면 우리 산려수교의 성도들에게도 해당된다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죠.
7장 21절 그 다음에 22절 하신 말씀 무엇입니까?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주여 우리가 주여 주의 이름을 선지자로 타고 귀신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시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면 그날이라는 것 이런 상황들이 그날에 이루어지는 것들이고 그날의 마지막도 있지 않습니까?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이렇게 구원을 얻을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볼 때 굉장히 마지막 때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길 것을 알게 되는 거죠.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장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지만 하지만 그렇게 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게 구원받는 게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상황 상황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진리가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참여수교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참여수교의 성도들도 내가 세례받고 성령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구원받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님 뜻대로 행한다는 것은 단지 안식이를 지키고 그리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는 그 말씀, 교리적인 그 말씀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성경에는 모든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을 따라서 행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걸 삼대 믿음으로 이제 인정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로 이끄시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바로 그와 같은 그런 생각으로 그런 신앙으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참유수교회의 성도들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항상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행해야 된다라는 것이라는 것이죠.
28절입니다. 28절 말씀.
28절, 29절입니다.
28절.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오. 표면적 육신의 한례가 한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한례는 마음의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 아니라 아니오.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 말씀은 단어가 반복돼서 언뜻 보면 헷갈릴 수 있는데요.
이렇게 여러 번 보면 이게 어떤 뜻인가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28절입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오. 표면적 육신의 한례가 한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한례는 마음의 할지니.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볼 때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은 성교에서 말하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본래는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게 표면적인 유대인이 그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겉으로 보여지는 그런 모습으로 유대인이 아니라 어떤 겁니까?
어떤 겁니까? 여기 보면 이면적이라고 되십니다.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면이라는 게 뭡니까? 내면이라는 거예요. 표면과 반대된 내면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그런 모습으로 유대인이라고 하나님께 보시는 게 아니라 내면적인 모습이라는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라는 뜻입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내용들인 거죠.
그래서 별면적으로 율법을 가졌다고 그리고 한례를 받았다고 유대인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그럼 내면적 유대인이라는 걸 뭘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명령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율법을 주신 것도 그렇고 한례를 받게 한 것도 결국은 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도록 하기 위함 이라고 볼 때 그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인정하시는 그런 모습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것인데 그것이 빠진 채로 율법만 있고 그리고 또한 한례를 받는다고 한다면
이거는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유대인은 아니라 그런 의미가 되는 거죠.
조금 전에 계속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행하는 겁니다.
행하는 자. 하나님의 법들 행하는 자.
그런 사람이 비로소 진정한 유대인은 진정한 유대인.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거죠.
자,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참유수교회가 하나님의 진리가 있으면 되죠.
그리고 특별히 유대인들이,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런 증거가 할래이지 않습니까?
할래예요.
성경은요. 우리 성도들에 대해서 우리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래를 받았고 우리는 그리스도 할래를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게 뭐냐. 바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것을 그리스도 할래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리스도 할래. 세례라는 겁니다.
성경은 이 영적인 할래. 다시요. 세례가 영적인 할래를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할래. 왜 그렇습니까?
이 할래라고 하는 게 뭐예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의 증거로 주신 할래라고 하는 것.
할래라는 의미가 뭡니까?
할래라는 단어는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뭘 제거하느냐.
더러운 걸 제거하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유대인들 태어나면서 8일째 될 때 이 남자 어린아이들이 할래를 받게 될 때 그 할래는요.
그 남자의 그런 성기죠.
그 표피라고 하는 표피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게 할래입니다.
결국 그것은 뭐냐면 더러운 걸 제거하는 거예요.
더러운 걸.
띄워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구약 이스라엘 백성도라이금 이런 할래를 받게 한 것은 그런 더러운 걸 제거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고 하는 그런 상징적인 그런 의미가 바로 할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신약시대에 와서 진정으로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을 제거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세례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례가 뭐예요?
죄를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죄를 사는 거지 않습니까?
구약이 할래라고 하는 것은 육신적인 그런 어떤 더러움을 제거하는 어떤 이런 부분적인 의미의 어떤 예표적인 의미라고 한다면 실질적인 것은 이제 세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없애는 겁니다.
그래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거라는 거죠.
문제는 방금 성경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할래를 바랬다 하더라도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할래가 무할래가 된다라는 그런 말씀대로 우리 성도들이 우리 참녀의 성도들이 그런 영적인 할래라고 하는 세례를 우리가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세례가 그 세례를 통해서 우리가 그 세례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내가 세례를 받았으니까 내가 그러니까 이것이 마치 우리 어떤 신앙의 모든 것의 어떤 보지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행하는 어떤 이런 부분에 힘을 쓰지 않고 그냥 내가 세례를 받은 그 하나 그것으로만 해서 내가 모든 것이 결정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할래를 주게 하신 것은 근본적으로는 바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이제 반드시 영적인 살래는 받아야 됩니다.
이 세례는 반드시 받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죄를 사암받게 하는 그 세례를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되죠.
하지만 거기서 그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행하도록 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하는 그런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요 또한 그런 증거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런 말씀을 보게 되면 성경은 이런 표면적인 것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중요시 여겼던 것이 바로 표면적인 것입니다. 거칩니다. 보여지는 부분 입니다. 하지만 성경 하나님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 �모를 보고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세요.
하나님과 유대인들의 예수님 시대에 혹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의 그런 차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 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 중심이 아니라 표면적인 것, 겉으로 드러난 부분들 이런 것들을 중요시 여기고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이렇게 계속해서 책망했던 부분이 바로 그런 형식적인, 외식적인, 위선 적인 그런 신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볼 때 그들이 갔던, 그들이 걸었던 그런 길을 우리는 따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들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거울을 삼아서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중심인 거죠.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은요. 보이는 걸 보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걸 보는 겁니다.
이것이 참대 믿음인데.
이것이 믿음으로 행하게 되면 이렇게 어떤 보이는 부분이나 형식적인 이런 부분들에서 벗어나서 그 본질적인 것을 따라가게 되는데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점점 겉으로 드러난 부분들, 눈에 보여지는 부분들, 이런 부분들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그리고 또 그런 것들에 매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또 문제가 생기는 걸 알 수 있는 거죠.
결국은 우리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교회가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듣고 공개를 일삼는 것도 결국은 다 그런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점점 소홀히 하게 되고 구제하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이렇게 제공해 줘야 하는 이런 눈에 보여지는 이런 부분들에 더욱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교회 안에 원망하는 이런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 성도들은 아니 우리 참미의 수교회는 이런 표면적 유대인이 되지 않도록 표면적인 어떤 눈에 보여지는 이런 부분이 아니라 본질적인 이런 부분에 우리가 더 힘을 쏟고 그런 것들을 따라가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이 바로 미디엠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미디엠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여지는 것 이런 것을 더욱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거죠.
고린도 사장 18절 말씀처럼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니 우리가 돌아보는 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게 바로 믿음이고 이런 믿음 그리고 그런 믿음을 따라가게 되면 반드시 뭐가 따라오게 됩니까?
행함이 따라온다는 거죠. 행함이요.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함께 이렇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보게 되면요.
29절에 보면 할래는 마음에 할지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래를 마음에 하라는 것입니다.
할래를 마음에 하라 어떤 뜻일까요?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할래라고 하는 것은 더러운 걸 제거하는 겁니다.
할래를 마음에 하라는 것은 마음에 더러운 걸 제거하라는 거예요.
마음에 더러운 것이죠.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도 사실은 마음의 죄를 제거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죄로부터 우리가 죄를 사안받는 거지 않습니까?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런 이 마음의 할래를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음의 더러운 것들을 계속해서 제거하는 그런 할래를 해야지 이 마음 안에 있는 거 더러운 걸 제거하지 않으면서 겉으로 보여진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깨끗하게 하고 뭔가 이런 것도 추가하게 되면 결국은 유대인들 같은 어떤 그런 외식적인 위선적인 어떤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4장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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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과 예레미야 5장 5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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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자니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할 수가 없고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하려는 것, 내 욕심을 죽이는 것 이게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래는 고통이 따른다는 거예요 할래는 너의 마음 가족을 배라라고 하는 것은
그런 고통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일 선지자는 유일 2장 1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같은 말씀입니다 여기는 마음가주 배라고 되는데 유일 선지자는 마음을 찢으라는 것입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게 정말 그 자신에게는 고통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게 이게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고통이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입니다 신명기 10장 말씀 신명기 10장 신명기 10장 12절입니다
신명기 10장 12절 신명기 10장 12절
이스라엘아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내 하나님 여호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행복을 위하여 내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귀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라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대해서 순종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입니다 16절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의 한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기 12절 13절 말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라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한례를 행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한례를 행한다는 건요 순종하는 겁니다 그리고 순종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라는 겁니다 힘을 다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 마음 속에 있는 이런 더러운 것들을 벗어버려 마음의 한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의 한례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더러운 부분이
마음의 더러운 부분이 마음 안에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더러운 결국 죄이지 않습니까 그 죄가 마음 안에 있잖아요 그럼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목이 곧게 돼요 목이 곧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목이 뻣뻣해집니다 안 들어요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고집 점점 마음이 점점 고집이 더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굳어져요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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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안 들으려고 합니다 나중에 돌이키지 못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한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이미 세례를 통해서 영적인 한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계속 우리는 마음의 한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한례를 행해야 합니다 그게 뭐라고요?
순종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이렇게 될 때 계속 그 마음에 더러운 이 죄를 우리가 벗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걸 위해서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숨을 다해 주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힘써야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신명기 30장입니다 신명기 30장 1절 신명기 30장 1절 내가 내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내게 임함으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내 자손이 내게 임함으로 돌아와서 내가 오늘날 내가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돌아와서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겁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러니까 돌이켜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6절입니다 6절 말씀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마음과 내 자손의 마음에 할레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성경은요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때 회개하게 될 때 그때 어떤 은혜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할레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그 마음의 할레를 베푸시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마음의 더러운 부분들이 제거가 되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세요 반대로 말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돌아와서 돌이켜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이렇게 반대가 된다는 거예요 점점 더 마음이 굳어지게 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더욱더 멀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행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오늘 우리 참례수교의 성도들이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행하는 우리 참례수교의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찬성하겠습니다 338장입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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