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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유바나바 목자 26.08.29

삼상13:5-15

제작일 202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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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사무엘상13장 5절~15절)
#왕들의이야기 #안식일예배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삼상13:5)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 치매
(삼상13: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삼상13: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삼상13: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삼상13: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삼상13: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삼상13: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삼상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삼상13: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가량이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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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스스로 번제를 드리며 신앙의 실패를 보여주는 이야기

본문사무엘상 13:5-15
  •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를 드리며 신앙의 실패를 보여준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의 결과를 경고한다.
  • 믿음은 상황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본문 정리 펼치기▼

사건 개요

  • 사울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사무엘의 도착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번제를 드렸다.
  •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즉각적인 행동을 취한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경고받는다.
  •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훈과 의미

  •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에 있다: 사울의 사례는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해야 함을 강조한다.
  • 상황보다 말씀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 진정한 믿음을 보여준다.
  • 사람의 반응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사울은 백성들의 반응과 상황에 흔들렸지만, 하나님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관련 성경과 예증

  •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신 후, 돌을 빵으로 바꾸어 주신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의 은혜를 보여준다.
  •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의 명령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고수했다는 예증도 있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식일 오전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사무엘 상 13장 말씀 찾겠습니다.
사무엘 상 13장 5절에서 15절까지 말씀 좀 긴 내용이지만 그래도 우리 번갈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 상 13장 5절에서 15절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5절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러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쫓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이 사무엘의 전환기한 데고 그를 끌다드리게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그저는 이 사무엘에서 벗어진다.
사울이 가로대 번제와 허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가로대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대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박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일을 안고자 하니 사무엘의 사울에게로대 왕이 망령대의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요하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요하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여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의 일을 일어나 길가래서 떠나 베냐민 기부하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개수하니 600명 가량이라
아멘 오늘 여기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이란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 안식일을 지키고자 하는 믿음 가운데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송도님들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더해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나 많은 어려움과 또 우리의 한계를 경험할 때가 참 많이 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오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을 통해서 그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능력이 되고 힘이 되는
그리고 그 말씀에 근거되시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붙들어주시는 그런 은혜가 저와 우리 성도님들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시간에도 하나님 앞에 축복과 감사의 인사로 우리 함께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 얼굴 보시면서 환한 미소로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네 오늘도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은혜 받고 축복받는 안식일 되세요 우리 서로 사랑하는 안식일 됩시다 꼭이요 꼭 그런 안식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이 말이 꼭 이루어지는 그냥 있는 말이 아닌 그런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안식일 하루 동안에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지킨 이 안식일이 더 없는 은혜와 더 없는 사랑이 마음가운데 가득 넘치는 그런 안식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성경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얘들아 내일 소풍을 가려고 하니까 커다란 돌 몇 개씩 가져와라 이렇게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바윗돌처럼 큰 그런 돌멩이를 힘들게 가지고 우리 예수 님을 따라서 산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늘 의심했던 가륜유다는 그 말을 의심해서 힘들게 무슨 큰 돌을 가져와 라고 생각해서 작은
돌멩이 한두 개 주머니에 쏙 넣고 그래도 나는 말을 들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돌멩이를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이렇게 산을 올랐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내가 명령한 돌들을 이제 내려놓고 모두 앉아라 우리 점심 먹자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드린 후에 돌에 안수를 하니까 돌이 빵덩이가 이렇게 된 거죠
야 이제 먹어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큰 빵을 하나님 예수님 명령에 따라 가져온 큰 빵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가륜유다는 어떻게 됐을까요 쫄쫄 굶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내일 또 소풍을 가려는데 이제는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주머니에 채워와라 이렇게 그랬습니다
다음날 베드로와 제자들은 작은 돌멩이를 주머니에 가득 넣고 소풍을 따라왔습니다 의심하는 가륜유다는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라고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큰 돌을 들고 땀 뻘뻘이면서 예수님의 대를 따라갔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큰 나무 아래 가셔서 나무를 붙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에 빵이 주렁주렁 열린 거죠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가지고 온 돌들을 가지고 따먹어라 이번에는 베드로와 제자들이 이걸 맛있게 따먹었는데 가륜유다는 그 가지고 온 큰 돌을 던져보지도 못하고 쫄쫄 굶고 내려왔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얘기일까요?
가륜유다는 이 경험을 통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 말씀을 드릴 걸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믿음은 결과를 보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 그 신뢰를 가지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면 상황이 급해지고 때로 사람들이 나를 압박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생각이 옳다라고 여겨질 때
그럴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붙잡을 수 있냐 이게 참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일 때가 참 많습니다 이걸 소위 시험이다 라고 말하는 거죠 사울은 바로 그런 시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3회의상 13장 5전의 말씀을 보면 블레스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서 모였는데
제가 만지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5전을 보니까 블레스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가가 3만이요 마병이 6천이요 백성은 해변에 모래같이 많더라 해변에 모래같이 많았다라는 이 표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이들이 얼마나 많이 큰 군대였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위급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6절을 보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마지막에 보니까 웅덩이에 숨었다 그 앞에 선 그 상황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위축이 되었을까요
그런데 사월에게는 이미 하나님 말씀이 있습니다 3회상 10장 8절을 찾아보겠습니다 3회상 10장 8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내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하목제를 드리니 내가 내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
사무엘이 사월에게 명령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 길갈로 가서 번제와 하목제를 드릴 거니까
내가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7일 후에 반드시 갈 거다. 기다려라. 내가 가서 할 거니까 기다려라. 분명히 그렇게 얘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죠. 상황은 사울한테 기다리지 말라. 그런 상황이 되고 있고 사람들은 전쟁 앞에 다 떠나가고 있고 그리고 사울 자신도 자기 나름대로 보여주는 일들을 보면 판단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코 사울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변 상황을 보니까 결국에 어떻게 됐습니까? 그 하나님 명령을 어기게 되었죠.
그랬을 때 우리 사무엘상 13장 13절에 보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요하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럼 통해서 요하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이라고 말하면서 결국엔 그 왕의 자리가 떠나갈 것이라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죠. 어쩌면 이 내용을 보면 참 사울이 안타깝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감정이입을 할 만큼의 이런 상황들이 우리 현실 앞에 참 많거든요.
도저히 하나님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해서 그것에 순종하기에는 내 앞에 놓여져 있는 상황이 너무 막막하고 또 사람들이 생각하고 반응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신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사람들은 반응하게 되고 또 뿐만 아니라 이것을 계산해 내가 생각해보면 이 말씀을 따라서 하는 것이 맞을까?
이런 의심이 들 때가 있다라는 거죠.
그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믿고 그걸 순종해야 된다.
그 믿음을 흔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이 사울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 명령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우리가 간직해야 될 텐데 어떻게 해야 될 건가에 대해서 오늘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때로 우리 현실 앞에 놓여져 있는 사울이 경험했던 이런 상황이 우리 앞에도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런 가운데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냐고 그 말씀만을 바라보고 또 말씀의 뒤에 계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 상황을 견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그런 귀한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첫 번째 본문을 통해서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위급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좀 붙잡고 살아가야 된다라는 겁니다.
사울이 하나님 명령을 어기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습니다.
먼저 아까 읽었던 말씀 5절에 보니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가가 3만이고 마병이 6천이고 백성은 해변에 모래같이 많았다.
이스라엘이 감당하기에 정말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엄청난 규모로 쳐들어오게 된 것이죠.
이 상황에서 6절을 보니까 이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를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위급함을 보고 절박했다.
그래서 숨을 수 있는 곳은 다 들어가서 숨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굉장히 두려운 상황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굴과 수풀과 바이툰과 은밀한 그런 곳 그리고 웅덩이에 숨었다 이렇게 말해주고 있죠.
더 나아가서 7절에 보니까 심지어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불이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러 땅으로 가되.
그러니까 상황이 점점 이 상황을 보면 당시에 초대왕인 사울왕의 마음을 압박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게 있는 것이죠.
사울이 처한 상황이 실제로 어려웠다.
이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괜히 조급해진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거죠.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사울의 마음속에 이런 마음도 들러올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래도 내가 왕인데 지금 당장 뭔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저는 이런 지점이 우리의 믿음의 시험의 시작이다.
이런 지점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이런 상황만 우리가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내게는 뭐라 말씀하실까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분명히 이런 상황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통해서 이미 명령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8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3일상 10장 8절이죠.
3일상 10장 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너에게 가서 번제와 허목제를 드리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인지 이걸 가르쳐 줄 거니까 기다려라.
서울에게 필요한 건 사실은 뭐냐면 어떤 주어진 환경 주어진 상황에 대한 새로운 판단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신 상태였고 그 말씀을 보고 기다려야 된다.
기다려야 된다.
불레색깐 군대가 물러와도 백성들이 흩어져도 서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 떠나가도 그런 상황 가운데서 또 사울은 사실 기다렸어야 된 것은 이미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다.
사울은 이런 상황 가운데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된 거죠.
사울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이 상황이 점점 커 보이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이 신앙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건 뭐냐면 믿음은 상황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을 보면서 상황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더 신뢰해 가는 것이 믿음이죠.
사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불레색 군대가 많다는 사실을 본 것이 아니라 문제는 불레색 군대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 바뀌어 가는 것이 문제인 거예요.
상황은 변했지만 사실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신앙도 이럴 때가 참 많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상황에 놓일 때가 정말로 많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원칙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도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아무런 문제 없이 이루어질 때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 때가 정말 많다는 거예요.
상황이 어려워지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습니다.
이번 한 번만 그렇게 하지 뭐.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
라는 생각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되고 하나님 말씀이 내 삶의 가치관이니 그 말씀을 따라야 돼.
라는 그 마음이 한쪽 후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밀어내는 말들이 그런 생각들이 마음가운데 공존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말씀보다 좀 상황을 기준으로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는 일들이 우리 마음이죠.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우리 마태복음 4장에 보니까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말씀의 배경이 어떻습니까.
어떤 배경입니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극심한 굶주림을 경험합니다. 성경은 40일 동안 금식하셨다. 40일 동안 금식하게 되면 돌을 떡으로 바꿔서 먹는 것이 아니라 돌도 씹어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 상황 아닙니까?
상황만 보면 돌을 떡으로 바꿔서 먹어도 됩니다.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죽겠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상황보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의 인간이란 존재는 우리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육신 안에 영혼 있는 존재고 우리의 영혼인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나인데 내 눈에 육신을 위해 보여져 있는 이 상황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가?
이게 예수님의 선택이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의 삶에도 이 상황의 위급함 때문에 이 말씀을 무너뜨린 일들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직장에서 불이익받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시험이 있고 입시가 코앞인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워서 힘들어졌을 때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손해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때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이번에는 하나님의 원칙을 좀 내려놔야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이런 순간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되는가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분명히 잊지 않아야 되는 것은 이런 순간이 믿음의 자리,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인 것을 잊지 않아야 된다는 겁니다.
상황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죠.
다니엘도 사실은 그런 상황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왕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만약 그렇다면 사자굴에 던지겠다라는 것이 다니엘 앞에 놓여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다니엘 6장 10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시킨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에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찌 보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정적들이 이 다니엘을 잡기 위해서 상황을 바꿔서 오히려 이 다니엘이 항상 하나님을 염부해 두고 했던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죠.
다니엘의 신앙은 그런 상황과 언제 어떻게 됐을까요?
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상황이 믿음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했다.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 고집을 부려야 된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어떤 상황에서는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할 때가 있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 혹은 하나님의 가치관과 충돌될 때 이 상황을 오늘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사호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상황을 하나님 말씀보다 위에 놓아서는 안 된다.
이걸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황은 계속 변합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상황은 계속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질문해야 됩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는 것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이걸 고민해야 돼요.
사호를은 블레시 군대를 보았습니다.
백성들이 떠난 것도 보았습니다.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죠.
사무엘이 갈 때까지 기다려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서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실 것을 기다려라.
사무엘이 사호를에게서 필요한 것은 상황에 맞춰서 하나님 말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간직해야 될 믿음이었다.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워서는 안 된다.
이걸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올수록 덕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상황이 급하면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황이 오게 될 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이 상황을 극복해야 될 것인가.
이걸 도처의 장치를 마련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께서 내게 신규어진 이 말씀을 붙잡는 것.
상황이 나를 몰아붙일수록 더욱더 상황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그런 상황 가운데 우리가 가져야 될 믿음이다.
두 번째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사울은 상황의 위급함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울을 흔들게 했던 것은 상황만은 아니었다.
바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사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거죠.
6절 보겠습니다.
6절.
우리 3회의상 13장 6절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툰과 은밀한 곳과 웅동이에 숨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위급해지고 절박해서 숨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7절에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라 땅으로 갔대.
사울은 아직 길갈이 있고 그를 쫓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무서워하기 시작해요.
사울이 왕이 된 이후에 처음 맞은 큰 전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백성들이 사울을 믿고 힘을 모아서 이 일을 함께 극복해야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또 뒤로 가고 숨고 사울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있습니다.
군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아무도 남아나지 않는 그래서 이 블랙스 앞에서 자신 혼자서 싸울 수도 있겠다.
그런 위기가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이미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기다려라.
갈 때까지 기다려라.
문제는 이 사람들의 반응이 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커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문제죠.
8절 보겠습니다.
3회상 13장 8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래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메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 저라.
여기서 순서를 주목해보면 사무엘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졌습니다.
사울에게는 점점 더 큰 압박이 밀려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9절에 보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9절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재물을 이래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분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무엘이 가서 내가 번제와 화목재를 드릴 거다.
그러니까 기다려라.
그걸 어떻게 행동해야 될 것인지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 내가 가르쳐 줄 거야.
7일만 동안 기다려.
그런데 그 7일 동안 기다렸는데 왔어요? 안 왔어요?
안 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상황을 보면 그 다음에 10절을 보니까 그 사무엘이 왔어요.
사무엘상 13장 10절 보겠습니다.
번제를 드리기를 필하자.
끝마치니까 사울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왔습니다.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무난하며 이 상황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입니까?
이왕 7일까지 기다렸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간혹 제가 우리 특강이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의 믿음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인내에 대해서 찾아볼 때 그림을 찾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꼭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열심히 내가 땅을 봐서 보석을 캐는 거죠 아마 한 번쯤 그런 그림을 보셨을 거예요
열심히 파다가 도저히 파도 안 되겠다 싶었는데 바로 1cm 앞에 고석이 숨겨져 있는 거예요 그 1cm를 못 파서 이곳이 아닌가 봐 다른 곳으로 가는 거죠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타깝다 1cm만 더 팠어도 이런 거 아니에요?
이 상황도 마찬가지죠 이왕에 그런 상황에서 잘 견뎠습니다 잘 기다렸어요 7일 동안 7일 위에 오겠다고 말했으니까 7일 동안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조금만 기다렸다면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더 인내하면 분명히 사무엘은 왔을 것이고
사무엘을 통해서 이 블레셋의 위기 가운데 이겼을 수 있을 것인데 사물은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물이 묻습니다 11절에 가보면 우리 사무엘하 13장 11절 보겠습니다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무엘이 가로대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냐 사울이 가로돼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불레이셋 사람은 민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않고 불레이셋 사람은 민마스에 모였음에도 불레이셋 사람들이 많이 이렇게 모인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 상황들을 근거로 해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서 12절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불레이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아직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예상되는 것은 우리를 치러 올 거다.
그래서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강구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그 말씀을 어겼다.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내가 가서 행할 때까지 기다려라 라는 그런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하게 내가 그럴 수� ��에 없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님의 반응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겁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들에게 굉장히 우리들을 흔들어 놓을 때가 참 많습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그렇고 또 신앙생활 할 때도 그렇고 칭찬하면 힘이 나죠.
그런데 비난 받으면 낙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좀 되도록이면 칭찬을 좀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많이 따라오면 내가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행하는 대로 내가 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면 내가 잘못한 것처럼 이럴 때가 있다는 거예요.
사람의 반응이 옳고 그름의 어떤 기준이 되는 이럴 때가 있다는 거죠.
그럴 때 성경은 우리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우리 자문서 29장 25절 말씀 제가 오늘 보내드린 말씀인데요.
이 말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문서 29장 2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요하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조석에 마다 바뀌게 되어 있어요.
오늘 칭찬하던 사람도 내일 비판할 수 있는 것이 또 사람 마음이고 오늘 나를 지적하는 사람도 내일은 또 나에게 좋은 말을 할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의 반응에 따라서 신앙의 기준을 삼게 되면 반드시 우리 신앙도 흔들릴 때가 정말로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 생활을 할 때 우리가 어떤 신앙 생활을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절대로 사람� ��의 반응에 따라서 내 신앙 생활을 해 나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일단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하지 않아요.
다니엘의 새 친구를 생각해 보면 누부간 쌀 왕이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지 않 습니까?
그런데 그 다니엘의 새 친구들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다시 기회를 줬습니다.
그때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죠.
우리 다니엘 3장 17절 보겠습니다.
다니엘 3장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물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더 나아가서 18절에 보니까 18절로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줄을 없어서 사람들이 다 절합니다.
왕도 명령합니다.
왕도 명령합니다.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누구신가?
이것에 움직이는 신앙이 되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조금 더 섬세한 형태로 이런 시험들이 올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죠.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그러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면 힘이 나죠.
더 하고 싶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봉사할 때가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럴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을 따라 살다 오면 어느샌가 내가 신앙의 하나님과는 멀어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멀어져 버릴 때가 있어요.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귀한 일을 해야 되지만 그 기준은 사실은 무엇이 되어야 돼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할 줄 알아야 돼요.
그게 중요하죠.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를 몰라줘?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했는데 왜 우리 가족들은 나한테 고맙다고 말을 해주지 않는가?
뭐 이럴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거죠.
신앙의 결정에서도 그렇습니다.
친구들이 다 그렇게 말할 때가 있기도 하고 직장 종료들도 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너만 왜 그렇게 하냐?
그때 우리는 흔들리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정하게 되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우리가 그러는 것은 안 된다라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야 된다라는 겁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도 이것을 좀 기억해야 됩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말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데 왜 나만 안 돼요?
라고 부모님한테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 무조건 안 돼가 아니라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를 해줄 줄 알아야 돼요 .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집은 하나님을 믿는 집이잖아.
사람들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집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집이니까 우리는 좀 다르게 해도 돼.
이렇게 좀 이야기할 줄 알아야 돼요.
우리 자신 있게 좀 이야기하셔야 됩니다.
신앙의 기준을 그렇게 세워주는 교육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거죠.
그게 우리의 신앙이니까.
교회 공동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사람들이 좋아하느냐.
사람들이 싫어하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냐.
하나님이 싫어하냐.
이것이 우리의 어떤 선택의 기준이 돼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 말씀 찾겠습니다.
시작. 이에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너무나 명확한 말이죠.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사람을 따라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결정하고 무언가를 해나갔다면 우리는 하나님 있는 사람이 아니죠.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믿고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이 나를 만든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라고 믿는다라는 것은 우리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면 사올이 만약 지난주에 살펴봤던 것처럼 하나님이 세운 왕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뭘 말씀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져야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참 이렇게 얘기를 하면 목자님 말이 쉽죠. 맞습니다. 말이 쉽죠.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같이 들으면서 다시 세우는 거예요. 다시 세우는 겁니다.
그동안 흔들렸던 내 마음. 사람들에 따라서 내 감정도 흔들리고 또 감정이 흔들리니까 믿음까지 흔들렸던 내 마음을 다시 잡아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이 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마음껏 다시 생기는 거죠.
마지막 세 번째로는 내 판단이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지 않게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마지막에 한 가지 더 등장하는 것은 사올 자신의 판단이죠.
사올은 상황을 보고 또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결국에는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라고 판단했다는 거예요.
11절에 보니까 사무엘이 가로대 왕에 행한 것이 무엇이냐 그랬더니 말하는 게 무엇입니까?
백성은 나에게서 터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민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다.
그래서 12절에 결정적인 말이 뭘까요?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강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이런 상황까지 되었으니까 결국에는 그 모인 블레셋 사람이 뭐 할 거냐?
나 치러 우리나라 치러 오게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이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그 판단을 하게 된 근거를 쭉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핵심은 뭡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내가 몰랐다.
이건가요?
그게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 명령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 말씀보다 앞세웠다는 거예요.
사울의 판단 자체가 항상 잘못됐냐?
그런 건 아닙니다.
상황을 판단하는 건 지도자가 가져야 될 굉장히 중요한 필요한 일이죠.
문제는 그 판단의 기준과 순서예요.
상황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판단을 세운 다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판단에 하나님의 행동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어요.
기다려야 된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상황에서는 기다릴 수 없다라고 판단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기준에서 다시 올케 생각해 보면 하나님 말씀을 내 판단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여차저차에서 상황을 판단했어요.
그러면 이 판단이 하나님 말씀에 맞냐?
이렇게 돼야죠.
그래서 내 판단을 하나님 말씀에 맞춰가야 되는 거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여차저차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이런 일들이 벌어졌고 이런 상황 가운데 이런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그럼 맞냐?
이걸 마지막 검증으로 우리가 세웠어야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모를 때보다 알면서도 내 생각과 다를 때 더 큰 시험을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문제는 선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뭐냐면 12절에 보니까 내가 여우와께 은혜를 강구치 못하였다 하고 겉으로 보면 사울의 행동에는 상당히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분명하게 이 내용에 대해서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판단하고 있냐면 13절에 보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어 행하였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우와께서 왕에게 행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에 무엇입니까?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그 명령을 순종한 걸로 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명령을 지킨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좋은 의도가 하나님 명령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려고 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순종했다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좀 조심스럽죠.
신앙생활에도 우리는 종종 이럴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은 뜻으로 한 겁니다.
교회를 위해서 한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우리에게 중요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내가 무엇을 위해서 했다라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무엇을 할 거냐 이걸 더 크게 볼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 가운데서는 이런 때가 참 많습니다.
때로 어떤 경우에는 유익이 될 만한 것들이 많이 질박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더 중요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유익불도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과감하게 이것들을 내려놓는 겁니다.
그걸 선택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이 말씀이 사올이 선택했던 이 말씀이 사올에게서는 어쩌면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결국에 사올이 더 이상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 수는 없겠다라고 판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서 이런 부분이 있어 우리가 어떻게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될 것인가.
우리에게는요 말씀 앞에서 멈추는 습관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에는 이게 맞고 상식적으로 그런 것이 맞는 것 같고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한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한번 멈춰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 질문 하나가 우리의 많은 실수들을 막을 수 있어요.
이게 습관처럼 좀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습관처럼 우리가 기도라는 멈춤잔치.
저는 이 기도가 참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하는데 때로 내 육심만 생각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막 살아가던 그런 기관차 같은 나에게 잠깐 멈추게 하는 시간은 이 기도 시간입니다.
이 기도를 가지고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제 생각은 이런데요.
그러면 하나님 음성이 들린다니까요.
아이고 어떻게 목자님은 제주도 좋으시네요.
저는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안 들리던데요.
하나님 음성이 들린다는 것은 반드시 우리 안에 성령이 있기 때문에 옳은 말이 떠올라요.
그 사람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됐으면
그래도 안식일에는 학원이 아니라 교회에 보냈어야 했는데 이게 떠오른다니까 믿어보세요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우리한테 그렇게 폭주기관차같이 육신의 것만 생각나고 그게 옳았어 이렇게만 하나님을 내버려 두지 않아요.
기도해보세요. 그러면 어쩌면 우리가 하도 육신적인 생각을 가득 채워가다 보니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생각이 줄어들어서 작게 음성이 날 수도 있는데 그 세미한 음성을 우리가 개최해야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럴 때가 많아요. 저한테 그런 경험이 정말 많은데 그러면 그 음성을 크게 들어야 돼요.
이게 멈춤입니다.
그리고 자꾸 이상하게 제가 설교했던 말씀들이 생각나요. 그러면 내가 가르쳤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럴 때가 좀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하시는 분들은 믿음이 막 생겨요.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런 상황 가운데 네가 그러면 안 되잖아 라는 게 바빡 떠오르거든요.
물론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할 때가 많은 게 또 저인데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씀으로 자꾸 우리 안에 역사에 그걸 들어야 됩니다.
그게 멈춤의 시간이야. 그래서 왜 때로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이렇게 좋은데 기도가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는데 그래서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 멈추세요. 이 말씀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 이거 어떻게 판단해야 될까? 이게 맞을까 ? 틀릴까?
그러면 정말로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를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보세요. 저를 믿지 말고 오늘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나를 흔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나를 흔들 수 있어요.
또 이걸 통해서 생겨진 나의 판단이 이 생각이 나를 흔들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고 내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절대로 하나님 말씀보다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나님 저 좀 붙잡아주세요.
이렇게 좀 기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기도 가운데 역사해 주시고 사울처럼 핑계되지 않는 정직한 영혼을 가진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실 겁니다.
모쪼록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제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묵도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광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026년 하반기에 예수재산함기 전도운동을 실시합니다.
8월은 증거의 달로써 먼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주의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참여예수교회가 믿고 있는 구원의 진리를 증거하고 자신이 구원받게 된 과정을 관증하며 복음을 힘써 전하는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후 3시 목양실에서 정기 임원회의가 있습니다.
오늘 저�식사 후 대방교회 교사훈련학교가 대예배당에서 있습니다.
9월 1일 화요일부터 16일까지 유 바나바 목자님께서 해외 선교사역으로 브라질에 다녀오실 예정입니다.
사역을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방교회 신축에 대하여 총회의 이사회에서 승인이 되었습니다.
교회 건축 계획 및 실행에 대한 임시 신도대회가 9월 19일 안식일 오전 예배 후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늘부터 영혼 전도리를 위한 릴레이 금식기도가 시작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반식일 오후 4시 30분부터 30분간 대예배당에서 교회 건축을 위한 기도회가 있습니다.
교회에 계신 성룡님들은 함께 찬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애차는 대학부 고용체 자매님 부모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다 함께 일어나셔서 인사 나누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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