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20 김인수
신학생 · 창29:10-27
제작일 2026.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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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창 29:10-27) 20260901 김인수 신학생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야곱이 라반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적으로 성장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훈련을 경험한 이야기
본문창세기 29:10-27
- 야곱은 라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다듬는 훈련을 받는다.
- 라반은 야곱의 성품과 유사한 인물로, 야곱에게 자신의 잘못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서로 부딪히는 상황을 통해 성도들을 더욱 다듬고 훈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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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라반의 만남
- 야곱은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고, 우물에서 돌을 옮겨 양떼에게 물을 주며 라반과 만난다.
- 라반은 야곱을 만나고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라고 말하며 환영한다.
- 야곱은 라반의 목자들과 대화를 통해 라헬이 곧 도착할 것임을 알게 되고, 이 만남을 하나님의 인도로 받아들인다.
야곱의 신앙적 성장
-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빼앗고 바다나람으로 도망한 후, 하란에 도착한다.
- 라반의 딸 라헬을 사랑하는 야곱은 7년간 라반을 봉사하며 결혼을 약속받지만, 라반은 약속을 어기고 레아를 주며 야곱을 속인다.
- 이는 야곱에게 자신의 약점과 단점을 드러내는 '거울치료' 형태의 훈련이 된다.
하나님의 훈련 방식
- 하나님은 야곱에게 라반과 같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난 부분을 다듬도록 인도하신다.
- 라반과의 만남은 야곱에게 자신의 성품을 반성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 이는 교회 안에서도 적용되며, 다른 성도의 약점이나 단점은 자신의 성장 기회가 될 수 있다.
- 하나님은 교회에서 서로 부딪히는 상황을 통해 성도들을 훈련시키신다.
전사(자막) 전문▼
자리에 편히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다함께 본문 말씀 창세기 29장 10절에서 27절 말씀을 함께 보겠는데요. 말씀이 길어서 13절과 14절 말씀만 저와 성도님들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9장 13절에서 14절입니다. 13절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드리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메 라반이 가로대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아멘 할렐루야 천안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십니까? 이렇게 비가 오는 흐린 날에도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예배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길 소망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로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제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점점 확신이 드는 것이 있는데요. 이렇게 삶을 살아가다가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이런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어떤 누구라도 어딘가에 이렇게 모가 난 부분이 연약한 모습이 조금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을 볼 필요 없이 저만 보더라도 저에게도 참 모가 난 부분이 많이 있다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어떤 성품이라든지 생활습관이라든지 신앙적인 태도가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고 또 다듬어져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이 있구나라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되는데요. 우리 천안교회 성도님들에게도 혹시 다듬어져야 할 부분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의 모난 부분들이 정말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나의 모난 부분을 약점 또는 단점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나의 이런 부족한 부분들이 나의 단점이나 약점이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는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모난 부분이 나의 약점이나 단점이 다듬어지고 깨져야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의 어떤 한 부분이 이렇게 깨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깨짐의 과정에는 고통이 있고 때론 눈물이 있고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가 내가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져야 한다는 것을 내가 더욱 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깨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의 이런 단점이나 약점을 다듬어야 할까요? 너무나 다행히도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으로 우리의 이런 연약한 부분을 모가 난 부분을 다듬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해변을 보면 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갈들이 많이 있죠. 이 해변의 돌들, 자갈들이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파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돌들 위에 파도가 치면 이 돌들이 파도에 휩쓸려 소도 부딪히면서 점점 깨지고 점점 매끄러워집니다. 이 돌들에게는 이 파도가 그것들이 다듬어지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려면 이러한 파도와 같은 훈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의 주인공은 바로 믿음의 족장 중 한 사람인 야곱이라는 인물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생기는 것에 아주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인물이었던 야곱도 처음부터 단단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앙도 성품도 모가 난 부분이 무척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은 베데레 사닥다리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77세였습니다. 즉 그는 무려 77세가 되기 전까지 하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신앙인으로서는 약간 거리가 먼 그런 삶을 살아왔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서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야곱을 훈련시키셨을까요? 야곱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또 어떤 깨달음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다듬어 나갔을까요? 본문을 함께 살펴보면서 교훈 얻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 창세기 29장 10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0절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의 딸 라엘과 그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서 우물 아구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고 본문의 시작은 야곱이 라엘과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인 에서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자신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예서는 굉장히 화가 났겠죠. 그래서 그는 스스로 내가 이 야곱을 가만두지 않겠다. 죽이겠다라고 다짐을 합니다. 이 에서의 다짐을 어머니 리부가가 먼저 듣게 됩니다. 그래서 리부가는 야곱에게 자신의 고향인 바따나람으로 도망가라고 야곱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곳에 가서 자신의 오라비이자 야곱의 외삼촌이 라반을 만나려면서 그를 떠나보냅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부엘세바에서 무려 720km나 떨어져 있는 이런 바딴 아람으로 피난길을 오릅니다. 대략 20여일간의 여정 끝에 야곱은 드디어 이 바딴 아람이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하란 지역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마침 목자들이 양떼를 치다가 우물에서 물을 먹이고 쉬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29장 4절 야곱이 목자들에게 묻습니다. 길을 묻는 것인데요. 나의 형제여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 목자들이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우리는 하란에서 왔습니다. 야곱의 목적지가 어디였습니까? 야곱의 목적지가 바로 이 하란에 있는 바딴 아람이었죠. 하란 근방에서 우연히 만난 목자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더니 그들이 마침 야곱이 가려고 하는 야곱이 찾고 있는 이 하란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이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감격스러웠겠죠? 감격에 찬 야곱이 그들에게 또 묻습니다. 5절 그렇다면 혹시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십니까? 그들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그들이 가로대 아노라 우연히 만난 목자들이 마침 하란에서 온 목자들인데 심지어 자기가 찾고 있는 자신의 외삼촌 라반도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야곱은 더 이상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만남이 이 일이 더 이상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베데레 사닥다리에서 약속하신 그대로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구나. 야곱은 이러한 확신이 들었을 것입니다. 6절에서 야곱은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라반이 현재 평안합니까? 왜 이러한 질문을 했을까요? 만약 라반의 삶에 여유가 없다면 야곱이 찾아가도 그를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이 목자들에게 라반의 근황을 물어본 것입니다. 목자들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라반이 평안하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 그 라반의 딸 라엘이 지금 양을 몰고 이리로 오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우연의 연속으로 변장한 하나님의 너무나도 뚜렷한 인도하심에 야곱은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목자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라엘이 양떼를 몰고 도착합니다. 야곱은 라엘이 도착하자 우물 입구에 있는 큰 돌을 옮겨서 양떼들에게 물을 주고 또 그러고 나서 라엘에게 입맞추고 엉엉 소리 내며 웁니다. 그간의 고통과 서러움이 한 번에 폭받친 것이죠. 몸도 마음도 지친 이 야곱에게는 라엘과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12절 야곱은 라엘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합니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의 조카입니다. 당신의 고모인 리부가의 아들입니다. 이 야곱의 소개를 들은 라엘이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아버지 라반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13절 라반이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합니다. 야곱을 끌어안고 입맞추고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드립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야곱을 돌봐줍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너는 참으로 나의 고륙이다. 우리는 한 핏줄이다 한 가족이라면서 그를 감싸줍니다 이 야곱에게는 이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큰 위로가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후에 라반은 야곱에게 내가 언제까지 너한테 이렇게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줄 수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15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29장 15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내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 라반은 야곱에게 너가 나에게 무엇으로 보수를 할 수 있냐라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이어서 창세기 29장 16절을 보면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일이라. 라반의 딸들이 소개됩니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형의 이름은 레아 아우의 이름은 라일이었습니다. 17절 레아는 알력이 부족하고 라일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세기의 저자는 라반의 두 딸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첫째인 레아는 알력이 부족하다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언니였던 레아는 알력이 부족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알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단순히 시력이 나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이 눈에 깃든 눈을 통해 보이는 이 총기, 총명함이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째인 라일은 곱고 아리따우니. 동생인 라일은 언니인 레아보다 상대적으로 외모도 아름다웠을 뿐더러 느껴지는 이런 모양새나 분위기도 언니보다 총명했다라고 성경에서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18절을 보면 이러한 곱고 아리따운 라일을 보고 야곱이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야곱이 라일을 연애함으로. 야곱이 라일을 연애했습니다. 즉 사랑했다는 것이죠. 77세의 이런 중년, 노년의 남성이 10대 후반의 소녀에게 이러한 사랑의 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야곱이 라일을 만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인데 라일이 여간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라일한테 사랑에 빠진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어떤 제안을 합니까? 18절.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딴 라일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봉사하리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자신이 라일을 위해서 7년을 봉사하겠다라고 제안합니다. 7년간의 봉사가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준 이런 값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겠죠. 야곱은 라반에게 왜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일까요? 당시에는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의 집에 집창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도피 중이었던 야곱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죠. 그래서 집창금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돈이 아니라 이러한 노역으로 집창금을 대심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야곱의 큰 실수였습니다. 야곱과 라반은 어떤 관계였습니까? 외삼촌과 조카 이런 가족관계 혈연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이러한 제안은 이러한 가족관계를 고용주와 노동자의 이런 고용관계로 상하관계로 바꾸는 아주 어리석은 제안이었습니다. 19절 라반이 가로대 그를 내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라반은 야곱의 제안이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라반 밑에서 7년 동안 봉사를 합니다. 20절 야곱이 라이를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가닥에 7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연애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던지 그 7년이 무려 수일처럼 여겼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윽고 라반과 야곱이 약속했던 7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1절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안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기안이 찼으니 내 아내를 라이를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21절에 보면 들어가겠다라는 표현은 원문으로 보면 결혼하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모든 기안을 채웠으니 자신이 약속한 그 기안을 모두 채웠으니 라일과 결혼을 시켜달라고 라반 에게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이미 라일을 내 아내라고 일컫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러한 정당한 요구에 라반이 어떻게 보답합니까? 22절에서 24절을 보면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며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야곱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신호로 주었더라. 라반이 약속을 지켰을까요? 지키지 않았을까요? 지키지 않았죠. 라반은 야곱이 원했던 둘째 딸 라일이 아니라 첫째 딸 레아를 야곱의 신부로 줍니다. 전날 혼일잔치의 연파로 야곱은 이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자신의 신부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5절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일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하심이니까? 야곱은 몹시 속상했습니다. 야곱은 라일을 얻기 위해서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을 수일처럼 여기면서 봉사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 낯선 이방 땅에서 늘 혼자였던 그에게 늘 외로웠던 야곱에게 드디어 나에게도 가족이 생긴다는 나에게도 가정이 생긴다는 그러한 난을 소망하면서 고대해왔는데 그 일이 무산된 것입니다. 야곱의 억울함과 분통함이 얼마나 컸을까요? 야곱은 당연히 감정이 격앙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외삼촌이 라반이라는 사람이 몹시 미웠을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7년간의 수호가 허탈하고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야곱이 현재 이러한 상황에 처하도록 그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난 부분을 다듬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야곱을 훈련시키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라반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이 야곱이 라반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해서 이 야곱을 훈련시키고자 하신 것 입니다. 야곱과 라반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계획하신 의도된 만남인 것입니다. 라반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라반은 야곱과 무척 닮은 사람입니다. 라반은 야곱과 닮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들의 삶의 방식도 무척 닮았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 대신 들어앉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쟁취하는, 빼앗는, 찬탈자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야곱의 삶을 돌아보면 야곱은 자신의 이름도로 살아왔습니다. 야곱은 항상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기억하고 얻어내고야만은 그런 인물이었 습니다. 야곱이 첫 번째로 갖고 싶었던 것이 무엇으로 기억되어 있습니까? 장자의 명분이었죠.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야곱은 에서의 약점을 이용했습니다. 사냥을 다녀온 에서의 약점인 배고픔, 허기짐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습니다. 또한 야곱은 장자에게 주어지는 이삭의 축복, 아버지의 축복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는 아버지를 속입니다. 눈이 약점인,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서 형 에서에게 주어져야 할 이러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던 이러한 야곱에게 자신이 뿌려왔던 그대로 자신이 되돌려받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라반은 야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속이고 이용하자고 작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창세기 29장 1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창세기 29장에서는 13절과 14절이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처음 만났을 때 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달려와서 그를 안고 입 맞추고 라반은 야곱을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를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이것은 먼 곳에서 온 조카를 만난 반가움의 표현이었을까요? 아니면 빈털터리, 동양이, 도망자였던 이 야곱의 볼품없는 행색에 동정심을 느낀 것이었을까요? 그런데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많은 라비들이 13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서 안고 입을 맞추면서 야곱의 주머니를 뒤진 것이다. 사실 야곱은 라반에게는 가난 지역에서 온 두 번째 손님이었습니다. 라반이 만난 가난 지역의 첫 번째 손님이 누구였을까요? 24장에 등장하는 엘리에셀이었습니다. 창세기 24장 30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24장 30절 그가 그 누이의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 누이 리부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가미라. 그때 그가 우물가 약대 곁에 섰더라. 수십 년 전에 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감을 찾기 위해서 바탄아람에 방문했습니다. 이때 라반이 처음으로 가난에서 온 손님이었던 엘리에셀을 만난 것이죠. 엘리에셀과 라반의 첫 만남에서 이 라반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30절을 보면 그가 그 누이의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라반은 엘리에셀이 리부가에게 주었던 그 값비싸 보이는 고리와 손목고리를 가장 먼저 보았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라반이라는 인물의 첫 등장의 첫 행정을 그가 그 누이의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았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 속에서 이 라반이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물을 탐하는 인물로 표현합니다. 24장 53절 은금 폐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부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또한 당시 엘리에셀은 이 리부가를 이삭의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서 지창금으로 은금 폐물과 의복을 리부가에게 주고 또 오라비인 라반에게도 보물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라반에게서 이 가난에서 온 손님은 자신에게 큰 재물을 가져다 주는 아주 기쁜 기억이 있는 그러한 손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엘에게로부터 이 아버지 가난에서 야곱이라는 리부가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라반은 한껏 기대를 하면서 야곱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을 처음 만났을 때 달려가서 그를 안고 입을 맞추는 척을 하면서 그의 주머리를 뒤졌다는 것이 라비들의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라반은 야곱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빈털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곱을 먹여주고 재워주면 그의 노동력을 무보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 라반이 정말 머리가 비상한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것을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창세기 29장 13절 후반부를 보면 하란에 도착해서 라반을 처음 만났을 때 야곱이 라반에게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13절 후반부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메. 야곱은 그동안의 여정이 너무 고단했고 서러웠던 나머지 자신의 목표이자 친척인 외삼촌 라반을 만나자 너무 반가워서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행하고 겪어온 모든 여정을 라반에게 이야기한 것인데요. 하지만 이 또한 야곱의 실수였습니다. 본래 남의 속사정을 깊이 아는 사람일수록 도리어 그 사람을 더욱 깊이 찌를 수도 있는 것이죠. 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도리어 나의 적이 되었을 때 그보다도 무서운 사람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나의 모든 속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신중해야 하는 것이죠. 나의 속사정을 깊이 아는 사람일수록 언젠가는 도리어 나를 더욱 아프게 더욱 깊게 찌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부간의 일이나 가족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신중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라반은 야곱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되자 야곱의 노동력을 빼앗기 위해서 야곱의 약점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애서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처럼 라반은 야곱이 라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약점으로 이용해서 야곱의 7년간의 수고를 빼앗습니다. 야곱이 이삭과 애서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것처럼 라반은 야곱을 속여서 야곱이 그토록 원하던 장자를 레아를 주는 것입니다. 너가 그 토독 원하고 얻고 싶어했던 그 장자를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레아를 주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죠. 장자인 애서를 속였던 야곱을 이번에는 라반이 장자인 레아를 이용해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창세기 31장 41절을 보면 라반의 속임수는 본문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야곱의 품갓을 열 번이나 속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야곱과 라반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상대를 속여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닮았고 교활한 성품도 너무나도 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어서 14절을 보겠습니다. 아까 창세기 29장에서는 13절과 14절이 중요한 구절이라고 했었죠. 14절을 다시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14절 라반이 가로대해 너는 참으로 나의 고류기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하더니 야곱의 모든 주머니 사정과 그간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라반은 야곱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는 참으로 나의 고류기로다. 너는 나와 핏줄이다. 우리는 혈육이다. 너는 나의 가족이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죠. 지친 야곱이 듣기에는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까요? 야곱에게는 이보다 달콤한 위로의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라반의 본심은 어떠했을까요? 라반은 야곱에게 너는 참으로 나의 고류기로다. 너는 참으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라는 의미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와 나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남을 속여서라도 얻는 같은 부류의 사람. 동일한 사람. 닮은 사람. 너와 나는 참으로 곤륙이다. 이런 의미로 야곱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훈련의 목적,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야곱과 너무나도 닮은 라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거울치료라고 부르기도 하죠. 거울치료란 자신의 잘못된 습관이와 태도를 그대로 재현해줘서 마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보는 것처럼 스스로 자극을 얻게 해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치료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서 또 자신과 약점이 비슷한, 단점이 비슷한 라반을 만나게 하셔서 야곱의 모난 부분들이 다듬어지도록 깨지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일을 통해서 라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던, 남을 속이던 자신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들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들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용당했던, 자신에게 속았던 사람들의 그 속상함을, 그 속마음을 드디어 몸소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 일은 분명히 야곱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라반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나와 모난 부분이 비슷한, 나와 약점이나 단점이 비슷한, 우리에게도 일부러 나와 닮은 성품의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일부러 나와 닮은 그 사람과 계속해서 부딪히게 되는 그러한 상황을 만나게 하셔서 우리가 더 다듬어지도록, 더 나아가 우리의 그러한 모난 부분들이 깨지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성도님들도 성도님들의 삶에서 이 라반을 만나본 적이 있으십니까? 성도님들의 삶의 라반은 누구이십니까? 어쩌면 나와 가장 닮은 나의 부모님, 나의 자녀들, 나의 가족들이 우리의, 나의 라반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아버지께서 굉장히 잔소리가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예민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커서 아버지처럼은 안 해야지 이런 마음을 품었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제가 아버지와 몹시 닮아있더라고요. 잔소리를 좋아하고 또 예민하게 굴고 이런 모습이 이미 닮아있더라고요. 이처럼 가족들은 우리와 가장 닮아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잔소리를 할 때 너는 도대체 누구 닮아서 그렇게 하니? 그런 행동을 하니? 이렇게 말을 하죠. 사실은 자기를 닮았는데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이처럼 나의 가족들이 나의 라반일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도 나의 비슷한, 나와 비슷한 이런 약점이나 단점을 가진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나의 라반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 보면 또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던 상대의 모습이 나에게 발견될 때가 있죠. 그럴 때 굉장히 깜짝 놀라곤 합니다. 나의 주변에 왠지 마음에 들지 않고 왠지 정이 가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혹시 내가 싫어하는 상대의 그 성품, 그의 습관, 이런 태도나 말투가 나에게도 똑같이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보내신 나의 라반은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너가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기보다 내 눈속에 있는 들뽀를 먼저 깨달아라 이러한 말씀을 실천하는 그러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29장 26절을 보겠습니다. 26절 라반이 가로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라반은 억울해하는 야곱에게 이 지방에서는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일이 결코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지방의 전통으로는, 규율로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27절 이를 위하여 7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내게 줄이니 내가 그를 위하여 또 7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 라반은 또 한 번 야곱에게 너가 7년 동안 나를 위해 봉사하면 일주일 후에, 7일 후에 정말로 이 라헬을 너의 아내로 주겠다라고 제안을 합니다. 라반의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이러한 이기적인 약속에 야곱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런데 다음 구절을 보면 야곱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서,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 왜 야곱은 라반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이것은 야곱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6절에서 라반은 야곱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 말은 라반이 야곱의 양심을 자극하는 말입니다. 13절에서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모든 일을 구했기 때문에 라반은 야곱이 어떻게 장자의 명분을 얻었는지, 야곱이 어떻게 장자의 축복을 받았는지도 들었습니다. 너희 지방에서는 동생이 장자의 명분도 빼앗고, 장자의 축복도 빼앗는 일이 허용되지만 그러나 우리 지방, 이 지방에서는 하지 아니하는 바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 말을 듣고 야곱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자신이 한 짓이 떠오르면서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야곱이 라반에게 모든 것을 말한 행동이 또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서 빛으로 날아와서 자신에게 꽂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아주 제대로 거울치료 훈련을 해주시고 있는 것이죠. 말씀의 결론 맺겠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다른 표현으로 종합병원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연약한 사람들, 모관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많이 있다는 것이죠. 때로는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의 모난 부분을 보면서 미워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심지어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일부러 서로 부딪힐 일을 계속해서 만들어 주십니다. 즉 우리에게 파도가 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들이 이런 부딪힘을 통해서 다듬어지도록 더욱 깨지도록 훈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성도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을 보시고 미워하지 않는, 책망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누군가의 약점이나 단점을 보고 그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 저 사람이 나의 라반이구나. 내가 저 사람을 통해서 나를 한 번 더 돌아봐야겠구나. 내가 저 사람을 통해서 내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변화될 수 있도록 훈련의 기회로 삼아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더욱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생활을 해가시는 저와 성도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훈련을 통해서 더욱 단단해지고 다듬어지는 우리 천안교회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이것으로 말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묵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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