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회01
아담의 탄식
이요셉 · 롬7:7-25
제작일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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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담의 탄식 말씀: 롬 7:7-25 찬양: 325, 340
AI 설교 정리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며,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죄와의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본문로마서 7:7-25요한복음 15:5
-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알리고,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연합함으로써 은혜 아래에 있게 된다.
- 아담의 경험은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대변하며, 죄와의 갈등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된다.
- 성령의 능력과 겸손한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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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과 심판
-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며, 죄를 알리고 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 율법은 죄를 인식하게 하고, 죄는 율법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죽었으므로 율법과 양심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필요하다.
로마서 7장과 아담의 경험
- 로마서 7장에서 사용된 '나'는 바울이 아니라 아담의 경험을 대변한다.
- 아담은 율법을 몰랐으나, 선악과를 먹은 후 죄와의 갈등을 경험했다.
- 죄는 법이 생기기 전에는 죄로 간주되지 않았으나, 법이 생기자 죄가 드러났다.
- 아담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탓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은혜
-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연합함으로써 예수님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가 된다.
- 그리스도인은 은혜 아래에 있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덕분이다.
-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욕심과 싸우며 거룩해지려는 삶을 살아야 하며, 이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겸손과 주님의 능력
-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 믿음으로 일하는 일꾼이 되기를 축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는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심판의 기준이었습니다. 심판의 잣대였다라는 거죠.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죽어라 하는 것이 바로 이 성경의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목적이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후에는 이 율법과 그런 율법과 양심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 말씀이 더 이상 우리에게 죽어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죠? 우리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죽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이제 이후로 우리에게 성경 말씀과 또 양심이 필요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죠. 그런 심판의 잣대로서의 율법 그리고 양심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한 뜻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이제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후로는 어두운 밤에 우리를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는 빛과 같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에 가실 때에 헤드라이트를 끄고 한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정말 그러다가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생각만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서울은 그렇게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로등이 많이 있어가지고요. 그렇죠? 시골은 이것을 공감하기가 아주 좋습니다. 어두울 때 빛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제가 예전에 거제 교회에 있었을 때는 한 번씩 그 녹록길을 갈 때 깜깜한 밤에 정말 가로등도 없습니다. 그 길을 갈 때 헤드라이트를 일부러 싹 꺼요. 그러면 뒤에서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깨악 하고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그 빛이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는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10편 119편 105절은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말씀 배우기를 좋아하고 이전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고 우리가 양심을 살리는 방향으로 우리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눈이 밝아지는 것이죠. 그렇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멀리하고 신앙생활하는 것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천국 가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이 서울에서 저기 거제까지 헤드라이트를 끄고 가겠다. 한밤에 가겠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렵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런 정신을 로마서 7장 6절에서는 우리가 의문에 묵은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7장 7절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읽으신 이 본문 로마서 7장 7절부터 25절 여기에서 아주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이런 것도 사실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게 뭐냐면 여기서 갑자기 나라고 하는 대명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읽어보시면 거의 매 구절 나, 내가 이런 표현이 등장하죠.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 읽을 때 첫 번째 생각할 것은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가 누구인가? 이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로마서를 누가 적었죠? 바울이 적었죠. 그러니까 이 나는 상식적으로 바울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죠.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나타나기 때문이거든요. 몇 절일까요? 구절입니다. 구절. 구절을 우리 한번 보시면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법을 앞에 과로 1번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그러면 오른쪽 귀팀으로 내려가 보면 괄호 1번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법 없이 내가. 이것은 뭐냐면 다른 읽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문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저렇게 읽을 수도 있고 번역하는 사람이 나는 모르겠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시라 하고 이렇게 기록을 해놓은 것입니다. 원문으로 보면 법이 없었을 때 법 없이 영어로 하면 without law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라고 이렇게 번역한 것은 아마도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이 이 구절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약간의 의역을 하면서 거기에 자기 생각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는 법이 없었을 때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사도가 법이 없었을 때가 있었을까요?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예수님도 율법 아래 나셨다. 태어날 때부터 율법 아래 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사도도 난 지 8일 만에 한례를 받았다. 그러니까 태어나자마자 율법 아래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바울사도가 내가 법이 없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되니까 내가 법을 깨닫지 못할 때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도대체 나는 누구를 말하는가? 이것이 난제이죠. 성경에서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넘어갈까요? 그런데 들어보면 이해할 만합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 들어보면 그리고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생각하시기에 법이 없었을 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법이 없었을 때 누가 있을까요? 참고로 인류 역사상 한 명밖에 없습니다. 누굴까요? 제목이 있잖아요. 제목이 적어놨잖아요. 아담이라고. 창세기 2장을 보면 아담이 창조된 이후에 하나님께서 나중에 선화과에 법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죠? 창세기 2장은 익숙하시잖아요. 그래서 법이 없었을 때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법이 없었을 때를 경험한 사람은 아담밖에 없는데 왜 바울은 여기서 나라고 하고 있는가? 이것이 이상한 점이죠. 그렇죠? 그러나 우리가 이전의 말씀을 잘 배웠으면 이 부분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혹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네. 필리핀에 가면 연례 행사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행사가 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우리나라 에서 하면 불법일 것 같습니다. 어떤 자원자를 받아가지고 그 사람을 진짜 십자가에 못 박는 거예요. 그걸 체 험하는 겁니다. 그래서 죽이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느껴보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그 못이 예수님을 못 박을 때 몇 번 쓴 녹슨 못이 아니라 소독된 스테인리스 얇은 못이에요. 그걸 영상으로 제가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죽으� ��고 하더라고요. 아파가지고. 그 영상을 보면서 여러분께서 그 영상을 보면서 나는 예전에 십자가에 못 박혔었는데 여러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승진이 형제 말할 수 있습니까? 있죠.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연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예수님 안으로 세례받는 것이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에게 이식된 세포가 된 것처럼 예수님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가 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모든 일들이 나의 역사가 됐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내가 이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로마서 6장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 안으로 세례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온갖 좋은 것은 다 예수님 안에 있거든요. 안으로 들어가야 안에 있을 수 있겠죠. 그렇죠? 자 그러면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내보겠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죠.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는 몇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까? 큰 두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했죠. 그렇죠? 한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고 한 사람의 이름은 예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 다 아담의 몸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담의 모든 역사가 사실은 자기의 역사인 거예요. 그런데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몸에 접보침이 되고 이식이 된 거죠. 그래서 사실 아담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 바울사도도 내가 하나님께 선악과의 계명을 받기 전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나라고 하는 이 존재는 당연히 바울이죠. 그러나 이 바울이 자기가 아담 안에 있었을 때를 회상하면서 아담의 생각과 기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선악과를 먹은 전후에 아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죠. 선악과를 먹고 나서 아담이 얼마나 후회를 했을까 선악과를 먹고 아담이 무슨 소리를 했을까 성경에 1절 나오 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아담의 목소리를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탄식 소리입니다. 무슨 탄식일까요? 아담이 어떻게 탄식을 했을까요? 내가 마누라를 잘못 만나가지고 이렇게 탄식했을까요? 그렇지 않죠. 자 우리 본문으로 돌아가서 7절부터 보겠습니다. 자 7절부터 12절을 우리 다시 한번 읽어볼 텐데요. 이렇게 생각하시고 읽어보시면 조금 더 이해가 되실 겁니다. 자 7절부터 12절까지 우리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는이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름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여러분 우리 창세기 3장의 내용은 익숙하기 때문에 이야기로만 하겠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학과를 먹지 말라 선학과를 먹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의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선학과를 먹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에게 사실 이미 부족함이 보� �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첫 번째 하나님의 명령을 잘 기억을 못했어요. 무슨 A4G 10장을 외우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뭡니까. 그렇게 단순할 수 있습니까. 먹으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우리 애들도 다 알 거예요. 그런데 이 아담과 하와가 제대로 알았습니까. 죽을까. 죽을까. 혹시.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게 부족함이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마귀가 뭐라고 말했죠. 이걸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어떤 마음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 3장 6절을 보면 그 나무를 본 즉 그 말을 듣고 그 나무를 보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그렇게 좋아 보이더라는 거예요. 마음속에 탐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득 찼다는 거예요. 저 좋은 것을 하나님이 못 먹겠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거죠. 자 여러분 제가 질문을 한번 해볼게요. 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과가 되고 싶어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런 마음을 가져도 됩니까? 됩니까? 어렵습니까? 그래도 됩니까? 안 되죠. 그런데 그건 지금 우리의 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런 마음을 가지면 죄입니까? 성악관을 먹기 전에 이미 죄를 지었습니까? 이게 문제인 거예요. 죄가 아닙니다. 왜 죄가 아닐까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죄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죄다! 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는 거예요. 법 자체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죠? 그래서 8절 말씀이 이 말씀 그 뜻입니다. 이 말씀이 그런 뜻이에요. 내가 그냥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개명이 생기면서 그런 마음이 탐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탐심이라는 게 드러났다는 거예요. 죄라고 정죄받았다는 것입니다. 이해 되십니까? 법이 없었을 때는 내가 아무런 생각을 해도 죄가 되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죄죠. 그런데 그때는 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그런 마음이 그런 행동이 죄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학과를 주신 것은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 수준에서 우리는 배웠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의 수준에서 보자면 그들에게 사실 이미 부족함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죄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게 만들려고 죽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네. 우리 갈라디아서 3장 19절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 원래 법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갈라디 아서 3장 19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런 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율법이 뭐냐. 범법함을 인해서 더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계속 노상박� �를 해요. 노상박료가 뭔지 알죠. 학생부. 압니까? 노상박료. 그런데 그런 법이 없었을 때는 이 사람의 이 행동이 죄다 라고 말할 수 없고 그리고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어느 날 노상박료를 하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었어요. 그럼 그 이후로는 그것이 죄가 되고 처벌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법을 왜 만들겠습니까? 1번. 노상박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2번. 노상박료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몇 번입니까? 제가 오늘 계속 어려운 질문만 하네요. 있으니까 그런 걸 만들죠. 그렇죠? 사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학과를 만든 것은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죄가 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9절을 보면 전에 법이 없었을 때는 내가 살았더니 무슨 생각을 해도 내가 정죄받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개명이 일어나니까 죄가 드러났다. 죄가 살아났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 관점에서 이 말씀을 읽으면 이해가 될 텐데요.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렇죠? 사랑으로 지으신 아담이라도 그러나 죄를 죄로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우리 나가 누구인지 우리가 찾아봤고 그런 관점에서 이 말씀을 좀 이해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좀 재미있는 것은 오늘 본문을 보면 죄라는 것이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마치 인격이 있는 사단처럼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로마서 7장 7절부터 11절까지 읽으실 때 아담의 입장에서 죄는 사단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읽으시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사단이 법이 없으면 아담을 넘어뜨릴 방법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없죠. 그렇죠? 무엇을 해도 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아담을 넘어뜨릴 방법이 없어요. 법이 생겼을 때에 사단도 기회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11절 보면 죄가 개명으로 말미암아서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나를 속였다는 겁니다.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속였잖아요. 그렇죠? 안 죽는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거다. 속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모든 원인은 사실 마귀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선악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 아담에게 있죠. 아담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입니다.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선악가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아담이 하나님을 탓했을까요? 네? 하나님이 왜 그런 걸 만들어 놓으셔서 선악가를 만들어서 나눠 죽겠는가? 왜 이런 아내를 주셨는가? 왜 사단이 여기에 오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이렇게 아담이 원망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죠? 내 마음 속에 죄가 이미 있었다는 거예요. 그걸 죄로 드러내기 위해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누구를 탓하겠느냐. 아담이 탓하고 있지 않죠? 그렇죠? 그래서 아담도 하나님을 탓하지 않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탓하면 안 되겠죠? 그렇죠? 왜냐하면 간혹 하나님이 왜 선악가를 만드셨냐고 이렇게 탓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잘 설명을 해주면 되겠습니다. 아담도 탓하지 않는데 왜 당신이 탓합니까?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죠. 그러면 아담이 그렇게 범죄한 결과가 무엇일까요? 14절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4절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그 결과 내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로 팔려갖고 육신에 속한 자가 되었다. 라고 말하는 거죠. 그래서 14절에 나는 누구를 말할까요? 범죄한 아담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바울사도가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율법 아래, 죄 아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다 로마 서식 표현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사람은 죄 아래 팔렸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에는 죄 아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에는 죄 아래 있을까요? 복습을 해보겠습니다. 3장 9절을 보겠습니다. 죄 아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똑같은 것입니다. 로마서 3장 9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은요. 별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란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니까 답이 있죠? 우리도 죄 아래에 있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죄 아래에 있지만 우리는 또다시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4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14절 읽겠습니다. 시작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지금 여기서는 우리가 어디 아래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은혜 아래에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지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면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그 비를 다 맞겠죠? 그런데 비를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머리에만 비가 내리지 않을까요? 아니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사람에게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 사람은 우산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딱 그와 같습니다. 우리 위에도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덮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비를 맞지 않는 거죠. 하나님의 진노의 비를 맞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안에서 나가면 그 비를 맞게 되는 거겠죠? 그러면 이제 에덴에서 나온 아담이 어떤 탄식을 할까? 그 탄식 소리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에서 20절입니다. 자, 여기 보면 같은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그 내용을 한번 유의해서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에서 20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 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에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니라.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가하는 죄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헷갈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말씀을 보통 어떻게 읽냐면 우리 사람의 육체에 깃들어 있는 죄의 습관, 흔히 죄성이라고 하죠. 성경에서는 다른 말로 육체의 소욕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을 이겨내고 벗어나는 것이 되게 힘들잖아요. 육체의 소욕을 이겨서 벗어나려면 성령의 소욕이 있어야 되거든요. 성령의 힘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생이 이 육체의 소욕과 싸워서 거룩해지는 것. 이게 일이잖아요. 잘 안 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 7장 이 말씀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는 겁니다. 나는 왜 해도 해도 안 될까 이렇게 공감을 한다는 거예요. 그 내용은 맞는데 이 말이 그런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가장 어울리는 말씀은 에베소서 2장이 있어요. 에베소서 2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 3절을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세상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시면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가운데는 아내를 말합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세상 사람들을 말해요. 세상 사람들 안에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일까요? 성령입니까? 아니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예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누굽니까? 마귀예요. 그래서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귀신 들렸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들 안에 그런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의 인도함을 받아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7장으로 와서 보시면 로마서 7장 17절 이제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를 뭐로 바꿔서 읽으면 자연스럽다고 했습니까? 여러분 속에 사단이 거하십니까? 거하십니까? 거합니까? 아니죠. 이 내용을 잘 읽어보면 사실 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안에는 무엇이 거할까요? 로마서 8장 9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9절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는 무엇이 거하고 있습니까? 성령입니다. 우리 속에 죄가 거하고 있습니까? 사단이 거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탄식하는 바는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온전하게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 악을 행하더라는 거예요. 이런 맥락에서 계속 읽어가면 24절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무언가 우리가 잘해서 우리의 공로로 뭔가를 이루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탄식이죠.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자,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아담은 자기의 무능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능은 공부를 못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하려고 해도 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도리어 욕심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탄식이 아담의 탄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에는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될까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요즘에는 길거리에 잘 안 보이던데요. 예전에 사람 모양의 광고 풍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하잖아요. 비슷합니까? 이렇게 하잖아요. 종일 이렇게 합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어요. 계속 합니다. 그렇죠? 저희 집 애들이 그걸 되게 좋아했어요. 풍선을. 그런데 그 뒤에 보면 펌프가 있잖아요. 그 뒤에서 계속 바람을 넣어줍니다. 계속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팔을 돌리는 거죠. 그렇죠? 사실 우리가 그와 같습니다. 펌프를 딱 끄면 어떻게 될까요? 쓰러지겠죠.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무엇을 좀 아는 것 같고 또 무엇을 좀 하는 것 같아도 우리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되고 깨닫는 마음도 주셔야 되고 우리를 붙들어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담의 탄식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에덴을 나가보니까 자기는 껍데기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10편 104편을 보겠습니다. 10편 104편 28절에서 30절까지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10편 104편 28절에서 30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 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 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 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신 아이다. 주님께서 주신이 우리가 누리고 주님께서 가져가시면 우리가 죽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라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우리 겸손합시다. 우리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아담에게서 배우는 거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타락한 아담은 자신의 무기력함 이것에 대해서 단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에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과 또 근신하는 마음 거룩함을 주셔서 우리가 모든 일을 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하지만 주님을 힘입어서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믿음의 일꾼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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