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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유바나바 목자 26.08.21

창8: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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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창세기8장 17절~22절)
#창세기개론 #창세기해석 #창세기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창8: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창8: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창8: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창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창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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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장 17절에서 22절은 노아와 방주에서 나온 생물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을 시작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은혜와 질서 회복의 의미를 다룬다.

본문창세기 8:17-22
  •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 감사했다.
  • 하나님은 홍수 이후 땅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약속하며,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질서 회복, 그리고 인간의 순종과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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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과 순종

  • 창세기 8장 17절에서 22절은 방주에서 나온 생물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을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룬다.
  •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물이 줄어들고 산봉우리가 보이기까지 방주에서 나가지 않았다.
  •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

  • 하나님은 노아에게 향기를 흠향하시며,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며, 땅이 있을 동안에는 사계와 낮과 밤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이는 심판 이후에도 새로운 시작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예배와 감사

  • 노아는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렸다.
  •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며, 마음의 감사와 삶의 실제적인 드림을 포함해야 한다.

홍수 이후의 질서와 은혜

  • 홍수는 단순히 재앙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새로워지는 사건이다.
  • 홍수 이후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유지하고, 생명의 질서를 회복하신다.
  • 홍수 이후의 자연환경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를 감사하고 살아가야 한다.

순종과 감사의 중요성

  •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순종은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
  •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며, 그의 믿음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창세기 8장 17절에서 22절까지 말씀 창세기 8장 17절에서 22절까지 말씀 저와 성도님들 천천히 번갈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8장 17절에서 22절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키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메.
땅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해서 나왔더라.
요아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듭과 초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고.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고라는 제목 가지고 오늘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에도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또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또 감사한지를 다시 한번 좀 생각해서 또 하나님께 예배로 또 찬양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계속해서 6장과 7장과 8장의 내용을 통해서 심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시간 시간에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드렸던 것은 오랜 시간 동안에 노아가 그 방주에서 어떻게 생각해 보면 굉장히 깝깝하고 또 답답한 그런 이 방주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물이 줄었다고 자기 마음대로 그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산봉우리가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았고 또 땅에서 물이 거치고 심지어 말랐어도 마음대로 그 방주를 나오지 않았다라는 거죠.
마칫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따라서 노아가 또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지난주에 살펴보면서 노아라는 사람을 그동안의 행적들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를 생각해 보면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순종하는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노아의 순종에는 중요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이걸 잘 말씀해 주고 있죠.
여기 있는 내용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모든 사람은 물론이고 노아조차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이 세상의 심판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홍수가 일어남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다 죽고 또 그들이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만 구원 받는 이 모든 경험들은 한 번도 노아는 경험해 보지 않았고 심지어
상상도 못한 그런 일 아니었겠습니까?
사실 이 모든 계획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그 넓고 깊은 이 계획을 노아는 들었고 그리고 노아는 그 들은 말을 순종으로 해 나가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보면 노아가 순종하지 않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노아는 순종함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 보면 사실 순종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우리로 하여금 우리로 좀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 아닙니까?
순종해라!
그러면 우리를 좀 옥죄는 것 같고 억압하는 것 같고 왜 이렇게 해야 되는가?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 같고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 순종이라는 것은 사실은 우리가 순종할 수밖에 없는 그 일을 우리를 위해서 하라고 하시는 거잖아요.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순종들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려고 해봐도 또 지식적으로 또 우리의 지혜를 가지고 헤아리려고 해봐도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어떤 무언가를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순종 그 요구가 순종이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아 라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고 그 심판의 도구로 비를 내려서 홍수를 통해서 심판하겠다고 한다는 것을 어떤 납득가게 이해시키려고 만약 이야기했다 할지라도 노아는 이해했을까요?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구원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여차여차해서 너는 이럴 수밖에 없고 이렇게 해야 되고 이런 일들을 만약 지식적으로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고 한다면 이걸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떤 구원의 역사 혹은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한 번도 걸어가지 않았던 우리의 인생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종이라는 것은 사실은 순종할 수밖에 없는 순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입장과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이 잘 맞아져 있는 당연한 믿음의 행위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라는 사람을 말씀드렸던 것처럼 노아라는 사람의 믿음을 한 단어로 그 사람을 표현한다면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특별한 노아의 믿음이 아니라 어쩌면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연약하기 때문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되는 믿음의 모습인 것을 또 생각해 볼 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오늘 같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결국에는 내 지혜와 내 지식을 가지고 내가 개척하며 내가 내 피로를 채워가면서
마련하면서 혹은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결국 그럴 수 없는 결국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우리라는 사실을 오늘 노아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생각해 보면서 또 은혜 나누고 또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이 세 가지 내용도 생각해 보면서 같이 은혜 받았으면 좋겠는데 첫 번째 오늘 본문 내용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심판 이후에도 바로 생명을 다시 축복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하셨다라는 겁니다.
우리 창세기 8장 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의 길은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메 여기서 먼저 눈여겨볼 만한 것은 다 이끌어내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생명들 이제 다시 땅으로 내어 보내라 왜 보냅니까?
이들이 어떻게 살기를 하나님 바라십니까?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나님께서 이 방주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주에서 이제 나와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라는 겁니다.
이 말씀은 어디서 많이 봤지요?
이미 창세기 1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만드시고 또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축복하시면서 주었다는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해라 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다시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단순히 홍수가 끝났으니까 이제 나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가서 다시 살고 그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죠.
이 말씀은 홍수 이후의 장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한데 홍수는 생명을 끝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홍수는 심판이지만 심판은 끝나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 심판이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죠.
6장과 7장을 보면 모든 것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사람도 죽었고 육축도 죽었고 공중의 새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8장에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고 물이 물러나기 시작했고 방주가 산 위에 머물렀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 생명들을 다시 땅으로 내어 보내면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 새로운 세계를 그들에게 허락해주셨다라는 겁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기 전에 온 세상을 만들고 또 온 세상을 만든 이후에 생명체를 만들어 또 인간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이 세계 내가 베풀어준 이 세계를 너희가 생육하고 번성해 살아가라고 축복으로 더해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 바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라고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새로운 시작을 열�
�주셨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은 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에게 앞에 놓여져 있는 심판은 온 세상의 심판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고 그 길을 걸 어가지 않습니까?
그럼 심판은 끝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심판 이후에는 완전한 새로운 시작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이 심판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축복된 삶 이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내용도 그러하죠.
하나님께서 이 노아와 방주 안에 있었던 생명체들을 나오게 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바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가라고 말씀해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생명체를 만들고 그 생명체를 그냥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축복의 삶을 살아가라고 만든 그 목적에 합당한 그 축복을 더하여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우리가 앞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심판을 또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노아에게 있어서는 이 홍수 심판 이전에 경험했던 이 세상은 죄악에 관영했던 온 세상이 이 죄악이 가득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었던 그런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쓰러져 심판받고 난 다음엔 완전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때로 죄악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심판 이후에 주어질 또 다른 세계.
그게 노아가 맞닥뜨린 세계였고 또 다른 것은 우리는 그 노아가 맞닥뜨렸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이 있는 하늘나라의 세계라는 것을 또 꿈꾸게 하고 소망하게 만드는 이 말씀을 본문에 전해주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또 말씀을 보면 18절과 19절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능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해서 나왔다.
계속해서 3절을 거쳐서 나오고 나오고 나오는 것으로 기록됨을 통해서 이제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죠.
새로운 시작.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는 거 잊지 말고 그 새로운 시작을 소망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창세기 8장 2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은혜가 그 사람은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다라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20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노아가 방주해서 나올 때 어떤 심정으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어떤 한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그 안에 어쩔 수 없이 갇혀 있는 것처럼 느낄 만하게 있었다면 우리는 뭘 소망하겠습니까?
이것을 빨리 떠나고 싶다.
떠나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걸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형제들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항상 소망하는 것이 군대에 나오면 뭐가 할 건가?
내가 제대만 하면 뭘 해야 되겠다.
뭐 이런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군대에 가면 첫 휴가를 기대하면서 첫 휴가 받으면 내가 집에 가서 가장 먼저 먹어야 되겠다.
어떤 음식을 가장 먼저 먹어야 되겠다.
어디에 가장 먼저 가야 되겠다.
뭐 이런 생각하잖아요.
노아는 그 오랜 시간 동안에 방주 안에 있으면서 내가 나가기만 하면 먹어야겠다.
뭐 이런 생각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법문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무엇을 쌓았습니까?
달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뭘 드렸습니까?
번제로 이걸 드렸어요.
노아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예배를 드렸다는 겁니다.
노아에게는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 형편을 보면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던 사람 아니겠습니까?
홍수로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새로운 땅에서 이제 살아야 됩니다.
먹을 것도 마련해야 되고 거처도 준비해야 되고 가족도 돌봐야 되고 동물들도 돌봐야 되고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 환경에 적응도 해야 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뭐냐면 하나님께 재단을 쌓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살아남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재주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때문이다.
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생존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생각해 보면 노아는 만약에 노아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자신을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악으로 다 심판받았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있을 만한 일입니까?
다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그 죄악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았는데 벌을 받았는데 우리 반에서 다른 친구들은 다 무릎 꿇고 팔을 올리고 벌 받고 있는데 나만 칭찬받고 있어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막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럴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전제로 믿음이 부족함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자신만 살아남았습니다.
자신의 가족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걸 무엇으로 중병했습니까? 재단을 쌓았다는 겁니다.
창세기 6장을 돌아가 보면 노아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냐면 그러나 노아는 요아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는 말은 뭐냐면 노아는 은혜를 입은 사람 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수 이후에도 노아라는 사람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새로운 삶의 첫 행동이 뭐냐?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하죠.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자신을 자랑합니다.
그러는 거죠.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살아나온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방주를 준비하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라는 거죠.
그래서 성경은 단순하게 노아가 가장 먼저 단을 쌓았다 이렇게 말하지 않죠.
누구를 위해서 단을 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기서 예배라는 것의 정확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아를 위하여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니죠.
예배의 중심은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설교를 들었는가?
내가 얼마나 예배를 통해 감동을 얻었는가?
이게 중심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이 예배를 통해서 얼마나 내 마음이 편해졌는가?
이게 중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배의 기준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배의 중심이라는 겁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여러분 이거에 대해서 고민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 자리에서 오신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이 아마 다양하실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안식일 저녁 예배는 당연히 와서 예배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예배드리는 분들도 있을 거고 예배드리면 그래도 말씀 창세기 배울 수 있는 기회니까 와야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오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그래도 있는 정기 예배니까 안 드리면 찝찝하니까 그래서 오신 분들도 있겠죠.
그런데 이 예배를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 드리러 온다.
라고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노아가 왜 예배를 드렸냐?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다는 거예요.
왜 노아는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냐?
그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예배의 이유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 인해서 그 하나님을 위해서 내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그 하나님을 위해서 노아는 예배를 드렸다.
재단을 쌓았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아는 새로운 세상의 첫 자리를 누구한테 드렸어요?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우리는 좋은 일이 생기면 너무 빨리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합격하면 내가 공부 좀 열심히 했지?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업이 잘 되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자녀가 잘 되면 내가 잘 키웠으니까 건강하면 내가 그래도 좋은 음식 먹고 열심히 운동한 덕분이지 라고 생각하기 참 쉬운데요.
물론 우리가 노력하지 마라 하는 얘기가 아니죠.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묻죠.
그게 가능하게 된 이유가 뭐냐?
이걸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 방주를 만드는 동안에 얼마나 수고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인내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방주가 노아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방주를 통해서 노아를 구원한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재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볼 만한 건 뭐냐면 노아의 예배에는 실제적인 드림이 있었어요.
본문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8장 20절에 보니까 노아가 요아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들었더니 여기서 말하는 정결한 짐승 중에서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그 가운데 골라서 무슨 얘기예요?
자신한테 가진 것 중에 가장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것을 골라 골라 들였다는 거예요.
골라 골라 들였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이때 당시에 노아 입장에서 보면 이제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환경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미 앞서는 시간을 통해서 말씀드렸던 것은 그 방주 안에 있는 동물들 이외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미 세상은 다 심판되어서 쓰러져 사라져버린 상태 아닙니까?
농사를 아직 짓지도 않았어요.
곡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동물을 나중에 보면 그 내용도 앞으로 나오겠지만 동물을 먹으라고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동물들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마치 우리가 앞날을 예비하기 위해서 통장에 열심히 돈을 넣어놔 쌓아놓는 것처럼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노아는 소중한 것을 드릴 줄 알았다는 거예요.
노아는 마음만 감사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드렸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 중에서도 골라 골라 이걸 거룩하게 구별했다라고 말하죠.
골라 골라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렸다.
우리가 예배해 드리는 또 중요한 원리가 이 안에 있죠.
감사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맞죠?
그런데 예배는 삶으로 나타나야 돼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서 내 시간은 전혀 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서 내 물질은 전혀 드리지 않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면서 내 삶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처럼 살아가요.
그 감사가 정말 하나님께 향한 감사일 수 있는가 돌아봐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또 있죠.
노아가 제자를 쌓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어떻게 하셨어요?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굉장히 기뻐 받으셨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앞으로의 하나님의 무언가를 작정하게 됩니다.
21절 보겠습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아께서 그 향기를 흠량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면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무슨 얘기입니까?
이렇게 노아의 홍수 심판을 통해서 그 땅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만큼 우리 창세기 6장을 보면 다 쓸어버리겠다라고 말하잖아요.
실제적으로 이 노아의 홍수는 당시에 사람들이 삶을 살았던 처음에 만들었던 그 창조 질서를 다 쓸어버립니다.
다 사라지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 이야기하려고 하는 내용인데 완전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요.
처음에 하나님이 세웠던 창조 질서와는 다른 질서가 생길 만큼 완전히 다 쓸어버립니다.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런 식의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
그래서 우리에게는요.
이런 심판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사는 그래서 그래서
22절의 내용을 보면 비로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연의 질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 반복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요.
그래서 크게 성경에서 나타난 자연의 질서는 두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 이전의 자연의 질서와 노아 홍수 이후의 자연의 질서예요.
물론 노아 홍수 이전의 자연의 질서가 훨씬 사람이 살기에 좋았겠죠.
그리고 생명체 동물들이 살기에 훨씬 좋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자연의 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허락해 주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가 이 상황 가운데 새로운 자연의 질서 심음과 거듭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이런 자연 의 질서를 반복되게 우리에게 주는 이 모든 일들 그리고 앞서서 말했던 것처럼 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연의 질서를 말하는
겁니다.
이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살아가는 가운데서는 다시 어그러뜨리지 않겠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죠.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약속해 주고 있느냐.
노아라는 사람이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이 모든 구원은 자기의 순종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거라는 사실을 감사해서 예배로 드렸던 이 예배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려졌다는 거예요 .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렇게 매번 드리는 이 예배가 우리는 뭐 일주일 중에 오늘도 화요일이니까 오늘도 금요일 이니까 오늘도 안식일이니까 예배 드리는 거 뭐 정해진 시간이지 뭐 라고 하는 시간으로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노아의 예배를 어떻게 여기셨는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을 다한 그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하나님 어떻게 여기실까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는 예배가 참 많죠.
우리 교회는 참 예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예배하죠.
이제 안식일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까?
안식일 오전에도 예배 있고 오후에도 예배 있고 또 아동부도 예배 있고 또 청년부도 예배 있고 참 반복적으로 예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와의 관계 가운데 어떻게 여겨받고 계시는지를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감사가 담겨 있어야 됩니다.
담기셔야 돼요.
그래서 워낙 오시는 과정에서 바빠가지고 그 예배에 우리의 마음을 담기가 어려우면 그래서 조금 일찍 오셔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한 주 동안 나를 이렇게 지켜주신 것이 내 노력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 압니다.
내 지혜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 압니다.
내 노력과 내 지혜라고 내가 한참 다 알지 못하는 내가 어찌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지금이 있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 이외에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용광 돌릴 수 있도록 하나님 제 마음 주장해 주세요.
이렇게 좀 담아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에 많은 역할들이 있는데 저는 기도가 우리의 삶의 어떤 전환 같은 역할을 또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았던 내가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내 마음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이 또 기도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이 예배 시간을 좀 귀하게 여기십시오.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은 귀하게 좀 여러분들이 좀 담아내셔야 돼요.
거기 감사도 담아내고 또 은혜도 담아내고 그래서 무언가를 드리세요.
무언가를.
그게 예배에 담긴 또 하나님이 원하는 우리의 마음들인 거죠.
세 번째 이 내용을 통해 생각해 보시는 것은 하나님은 그런 예배하는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세상을 허락해 주었다는 거예요.
노아가 재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셨어요.
그리고 22절을 넘어가 보면 22절 함께 읽겠습니다.
2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듭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냐 그래서 쉬지 않는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우리의 삶에 계속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단순히 홍수가 다시 없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질서를 새로 개편하고 그걸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유지시켜 주시겠다는 거예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유지시켜 주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는 생명의 질서가 새롭게 회복이 됩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의 이 기간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잖아요.
그러지 않습니까?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환경이 노아의 홍수 심판의 그 과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아의 홍수 심판이 끝나고 나서는 새로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그 환경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서 22절을 자세히 보면 네 가지로 서로 짝지어 이루고 있는데 심음과 거듭.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두게 해주겠다.
복자님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라고 생각할 수 있죠.
우리가 씨를 심으면 당연히 열매가 거두죠.
그런데 성경은 뭐라 말하고 있냐면 이것을 어떻게 하겠대요?
쉬지 않게 하나님이 해주겠다는 거예요.
누군가 이것을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하지 않아.
그냥 그걸 우리가 받는 거죠.
추위와 더위가 즉 추운 때가 있고 더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때가 있고 더운 때를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 그 다음에 있는 여름과 겨울.
계절이 생겨나게 돼요.
계절이 생겨납니다.
계절은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낮과 밤이 있습니다.
빛이 있고 어둠이 있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쉬지 않겠다.
쉬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지속적인 질소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겠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홍수로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그래서 계속 말씀드리지만 홍수라는 이 세상에 있었던 충격적인 일은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게 합니다.
소위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
홍수 이전과 홍수 이전과 홍수 이후의 세계에 홍수 이전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늘 위에 어마어마한 물층이 있잖아요.
지금은 오전충이 있어가지고 오전충이 해외를 통해서 유입되는 잘못된 빛을 차단시켜주고 인간이 위험으로부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이 오전충과는 비교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물층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7장에서 보면 홍수의 심판이 일어날 때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그 하늘의 물층이 무너졌어요.
물이 땅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어요.
땅 아래에 있는 어마어마한 물들이 다 속고쳐 올라왔습니다.
엄청난 지각변동과 엄청난 하늘과 땅의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났어요.
그런 일들이 홍수 심판에 일어났고 심지어 그것이 마르는 과정에서도 우리가 엄청난 비가 쏟아지게 되면 뭐가 생겨요?
골짜기가 생겨요.
그런데 이 지구를 덮었던 어마어마한 물의 양이 순식간에 이것이 정리가 됩니다 흐르게 되고 또 그것이 땅 아래로 스며들게 되고 이런 모든 과정이 이 홍수 심판의 과정에서 일어나요 그러니까 그랜드 캐니언 같은 어마어마한 골짜기들이 나타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 지구의 어떤 자전과 공전 그리고 어떤 자전측의 기울기
그런 걸 통해서 생겨나는 밤 계절과 낮과 밤의 원리 이런 것들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참 궁금해하는 많은 것들 예를 들면 거대한 화석들을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옥자님 공룡과 을 비롯한 거대한 60동문들은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됩니까 옥자님
석탄과 소균은 하나님이 창조한 겁니까 이런 질문들 극지방 즉 남구과 북극의 어마어마한 얼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겁니까 오늘날의 기후의 생태들 물론 이것이 하나하나 성경에서 다 꼬집어 이건 이런 뜻이야 이건 이런 뜻이야 라고 말하진 않아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면 노아홍수 심판 이후와 이전에 있었던 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노아홍수 심판을 통해서 급변하게 되었어요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어요 그것을 밝히는 시도들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가능성이죠 왜냐하면 성경은 이것을 즉각적으로 다 답을 주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데 이해해 볼 수는 있겠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일들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 성경을 통해서 헤아릴 수 있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거죠 또 하나 이 내용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는 것은 노아홍수 심판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살고 있는 이 자연입니다 이 자연의 질서예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고 이것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매일매일 매해마다 매 계절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서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냐
얼마나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 이 환경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이제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오죠 여름 가면 가을 오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당연하죠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노아의 홍수 심판을 우리가 배우고 또 그 주체가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나면 이 자연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그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재단을 쌓았던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안식일 저녁 예배 안식일을 맞이하는 이 시간 한 주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환경 가운데 사랑하게 하시고 내 모든 인생을 주관해 주셔서 이렇게 안식일을 맞이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예배로 감사할 수 있고 보답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려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이 사실을 아는 우리가 이번 주에 맞이하는 이 안식일이 좀 더 특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특별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오늘도 해가 뜨고 이번에도 계절이 바꾸고 우리 하루가 지고 있는 이 모든 순간순간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우리 성도인들 마음가운데 자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제 이름으로 주건드립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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