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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선택 유바나바 목자 26.08.11

고전7: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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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선택 (#고린도전서7장 25절~40절)
#고린도전서개론 #고린도전서해석 #고린도전서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고전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고전7: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고전7: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고전7: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고전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7: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고전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고전7: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고전7: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고전7:34)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고전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고전7: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고전7: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7: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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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25절부터 40절까지는 결혼과 독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루며,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에 있다.

본문고린도전서 7:25-40
  • 고린도전서 7장은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결혼은 창조 질서에 따라 자연스러운 선택이지만, 독신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로 주어진 삶의 형태이다.
  • 모든 선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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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독신의 하나님의 뜻

  • 고린도전서 7장 25절부터 40절까지는 결혼과 독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루고 있다.
  •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세워진 것이지만, 독신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로 주어진 삶의 선택이다.
  • 선택의 본질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선택의 기준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부르신 대로 그 삶을 충성되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결혼이나 독신의 선택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성도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며, 결혼 여부나 가정 유무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선택이 중요하다.

바울의 조언과 상황

  • 바울은 예수님의 명령이 아닌 목회적 판단을 바탕으로 처녀들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임박한 환난"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겪었던 박해와 어려운 상황을 의미한다.
  • 당시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이유로 사회적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독신 생활이 오히려 안전할 수 있었다.

결혼과 독신의 중요성

  •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와 자녀를 고려해야 하지만, 혼자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 결혼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 결혼한 자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독신자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할 수 있다.

선택의 원칙

  •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다.
  • 모든 선택은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세상의 유익을 기준으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 선택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목적과 믿음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이익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선택을 했으며, 이는 믿음의 본보기이다.
전사(자막) 전문▼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오늘 같이 찾을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7장 말씀 찾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25절부터 40절까지 말씀 오늘 7장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내용인데요.
좀 내용이 기니까요.
우리 먼저 25절부터 31절까지만 먼저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25절부터 31절까지 말씀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처녀의 대하여는 내가 죽게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구하노니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노이기를 구하지 말며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 노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느니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이후부터 아내가 안 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함께 읽겠습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인이라.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선택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선택이라는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에도 이 하나님 말씀은 사모하고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오늘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지혜를 얻고 또 우리가 사람의 삶의 결국에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고린전서 말씀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린전서 말씀을 같이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특히 오늘 7장의 내용을 통해서 독신과 교론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우리는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선택함에 있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가진 가치관대로 턱턱턱턱 이렇게 하루를 보내지만 사실은 모든 순간순간이 다 우리는 선택이죠.
아침에 무엇을 먹을 것인가 또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디에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어쩌면 우리의 모든 인생들은 선택의 연속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들은 단순히 내가 뭘 할 건가에 대한 선택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갈 것인가 어떤 가치관에 대한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인생에서 결혼을 하고 가정의 연속이다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그것 또한 성경은 하나님께 귀한 하나님의 뜻안의 선택이고 어떤 사람은 독신으로 살아가는 부르심을 받아서 특별한 은사라고 계속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는데요.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부르심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삶도 있다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뭐냐 결혼했느냐 결혼하지 않았느냐 가정을 이뤘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은 나의 삶은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 드려지는 삶인가 누구를 기쁘시게 하는 삶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돌아봐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더 7장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들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결혼과 독신에 대한 그런 설명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이다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독신이 그러면 하등 우리가 의미 없는 것이냐 독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특별히 주어진 특별한 은사다 특별한 은사는 특별한 또 힘을 주시는 것이고 또 독신으로 산다라는 것은 특별한 절제의 능력 어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이 가정을 불우하고 또 자기의 삶을 비관하고 또 이것을 절제 못해서 오히려 더 하나님께 불령왕 돌리는 이런 삶으로 나아간다면 이거는 사실은 특별한 은사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차라리 결혼해라 이게 이제 바울스도가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중요한 원리를 또 제시하고 있는 것이 17절 이미 지난주에 봤던 17절에 보면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언하노라 라고 말하면서 성교의 정말 중요한 기준은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다른 삶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다른 삶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다른 삶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자신의 환경을 탓하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서 부르셨는지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거다 이런 말씀을 지난주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 말씀은 좀 한 걸음 더 나가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오늘 말씀해주고 있죠 왜냐하면 같은 상황이 있어도 누구를 위해 사느냐 그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또 어떤 사람은 독신을 자신의 편안함만을 위해서 독신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성도의 삶은 다르다 결혼하든 독신으로 살아가든 가정이 있든 가정이 없든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누구에게로 향하여 나가야 되느냐 하나님께 향해져 나가야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이 한 가지 방향 즉 어떻게 하면 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면 행복하게 살 것이냐 라는 그런 질문 앞에 자꾸 서려고 하지만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질문 앞에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이걸 넘어선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려줄 수 있을 것이냐 하면
첫 번째 본문 내용을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성도는 우리의 현실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된다 라는 겁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이걸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된다 라는 거죠 오늘 본문의 시작하면서 먼저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예수님이 직접적인 명령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목회적인 판단 내가 목회를 하다 보니 많은 성도들의 신앙적 삶을 통해서 내가 곤면해 볼 만한 그런 곤면의 내용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서 바울은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울의 참 엄격함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여겨지는 것과 어떤 그렇지 않은 것을 잘 구분해서 이렇게 우리 고린도전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말해주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되는 거죠 25절에 보면 천여에 대하여는 내가 죽게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구한다 라고 말해주고 있죠
내가 죽게 받은 계명이 없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내게 주신 그런 말은 아니지만 이란 뜻이잖아요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에 베풀어주셨고
하나님의 일권으로 이렇게 사용되는 이 목회적 삶에서 내가 판단해 보니까 이런 뜻이잖아요.
그래서 결코 저는 두 번째 자기의 목회적 판단에 의거한 곤면 이것도 결국 가벼운 곤면은 아니다라는 것을 사실 바울사도는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5절에서는 처녀에 대하여 즉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신 그런 명령은 아니지만 목회적인 판단으로 내가 이렇게 곤면해 주고 싶다라고 하는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죠. 26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처녀들에 대한 곤면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란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바울이 말하는 중요한 배경은 임박한 환란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임박한 환란이라는 말이 정확한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견이 좀 나뉘어지기도 합니다.
바울사도는 대살로니가 전서 내용이나 이런 내용들을 보면 곧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우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이런 부분이 예수님이 또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 임박한 환란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당시에 기독교의 필박에 대해서 말을 주는 거다라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당시 초독교의 성도들은 믿음 때문에 굉장한 어려움을 당하던 그런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실제적으로 12명의 사도들 물론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이 사도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유다는 특별한 목적에 의해서 자연사했다라고도 말하지만 나머지 이 사도들은 처형을 당하거나 돌팔매질을 당해서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핍박이 어마어마한 그런 박해를 받는 시대였다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죠.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이익을 당했던 그런 때 그런 상황에서 결혼한 사람은 자신만 생각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배우자도 생각해야 되고 자녀도 생각해야 되고 물론 그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그만한 책임감을 가져야 되죠.
배우자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그런데 이렇게 큰 핍박이 임하는 상황이다 보니까 오히려 혼자 있는 것도 괜찮겠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당시에는 대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집회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광장에서 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어떤 표식을 통해서 이렇게 만나고 또 그렇게 이동해서 비밀스러운 집회를 했던 그런 시대 아닙니까?
그때 만들었던 게 익투스라는 물고기 모양이잖아요.
그런 시대였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자녀를 빌미로 해서 그리스도인,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밝혀내려는 추궁 앞에 어떻게 해야 되냐? 이런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죠.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이 믿음이 이런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고통을 당하게 되고 차라리 나 한 사람 죽는 건 괜찮은데 이런 생각이 들만한 그런 임박한 환란들이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이런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설명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바울서드는 결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그렇죠?
28절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28절 7장 28절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오.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쓰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이 말씀이 중요하죠.
한마디로 바울의 의도를 오해하지 마라.
라는 거죠.
독신은 거룩하고 결혼은 세속적이냐.
오늘날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
당연한 책임감이죠.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해주고 근무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가정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어찌 자녀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수고하고 땀 흘리고 그게 어찌 문제겠어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결혼은 죄가 아니라는 겁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니까.
그렇죠?
그런데 바울은 당신의 현실 속에서 한 가지를 더 바라보게 되는 거죠.
지금 나의 이 선택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고 있냐.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냐.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냐.
이게 중요하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될 중요한 게 뭡니까.
성도는 현실만 바라보면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원을 바라보면서 선택하는 사람들이 우리 성도들이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현재의 유익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것에 삶을 투자하지 않습니까.
제가 간혹 우리 구도자 교육 때 우리 완전한 우리 성도님이 되지 못하신 분들 이런 분들은 간혹 질문이 안식일에 대한 질문들 또 사람들은 우리 참여수 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냐라고 말씀을 질문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기를 가끔 합니다.
그거 우리 성도님들 다 아십니다.
다 아셔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구원을 얻는 데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무릎쓰고 신앙생활 하시는 것이고 무릎쓰고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런 눈치에도 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실제 그렇죠.
그 기준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의 기준에는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삶의 기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앞에 어떤 현실에 맞춰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간에 우리는 이 신앙의 길을 참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이 신앙을 이 진리를 포기하지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영혼이라는 것에 기준이 있으니까 그것을 따라 선택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게 성도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엇이 나에게 편한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이 내 삶을 더 안정되게 하는가.
어떤 끊임없는 내 개인의 나에 대한 것을 얘기하지만 이것들이 계속 말씀드리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질문할 줄 알아야 되는데 이 선택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부자 청년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그 청년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그런 사람 아니겠어요.
예수님께서 예수님께 그 사람 묻지 않습니까.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보시지 않습니까.
재물을 내려놓고 나를 따라라.
그 청년은 근심하고 그냥 가지 않았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현실의 안정이 더 중요했다라는 겁니다.
영생을 어떻게 얻어야 되냐라고 하는 영원한 생명의 선택의 기로에서도 그는 여전히 육신의 안정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이 인생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영원한 삶의 가치를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
이게 우리 성도다.
성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을 잃지 않을까가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길인가.
이것의 고민이 질문이 있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은 더 나아가서 2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려전서 7장 29절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느니 때가 단축하여 진고로 이후부터 안에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그리고 쭉 앞에는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며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며 를 31절까지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죠.
이 말씀은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를 사랑하지 마라.
뭐 이런 뜻일까요?
가정은 무시해라. 이런 뜻일까요?
바울사도가 사실은 이 말씀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이 우리 삶의 우선이냐.
결혼도 하나님께도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선물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죠.
재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입니다.
하지만 재물이 하나님보다 중요해질 수는 없잖아요.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하신 하나님보다 앞설 수 없어요.
그 가치 기준 안에서 때론 없는 것 처럼 또 될 줄 아는 것.
이게 어떤 기준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인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31절에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진화감이니라.
이 세상의 모습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택해 얻은 많은 것들이 마치 없어도 되는 것처럼 삶을 살아갈 줄도 알아야 되는 거죠.
우리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지만 이 땅만 바라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정도 귀합니다.
직장도 귀하고 재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죠.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들의 최종 목적은 될 수 없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의 것들은 사용하지만 영원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우리다라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선택 앞에서.
그래서 질문해야 된다는 거죠.
이게 나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가.
라는 것보다 먼저 이것이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 것인가.
이걸 좀 고민할 줄 알아야 된다.
라는 겁니다.
두 번째 본문 내용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32절부터 35절 내용인데요.
성도는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할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성도가 현실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뜻을 바라봐야 된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제 좀 더 질문을 해보면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 거냐.
하나님의 뜻을 바라본다는 것은 실제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냐.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32절부터 쭉 전해주고 있습니다.
결국에 성도의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32절 내용을 일단 보겠습니다.
32절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는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 거하되.
바울은 여기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의 삶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염려한다.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 거하는 것이다.
그럼 이 말은 독신자가 결혼한 사람보다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다.
이런 뜻일까요?
또한 결혼한 사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뭐 이런 뜻입니까?
이렇게 보면 안되겠죠.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의 책임과 또 집중할 수 있는 방향 무슨 얘기냐면 독신자는 상대적으로 가정에 대한 책임이 적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더 우리가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헌신하라고 주어진 사명 혹은 은사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 시간을 통해서 그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어요?
교회를 위해 쓰겠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그 삶의 장점을 설명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결혼한 사람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33절 보겠습니다.
3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아내를 기쁘게 할 거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결혼한 사람은 세상적인 것에 대해서 매여 있다.
바울은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구나.
바울은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를 사랑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연합니다.
당연합니다.
당연합니다.
자녀를 양육할 책임도 있습니다.
가정을 세워야 될 책임도 있는 거죠.
그건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사명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정을 가지게 되면 이 가정의 책임을 다하는 것.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가정을 돌보는 것 이것만이 아니라 문제는 가정보다 하나님보다 가정에 앞서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자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좋은 교육도 시키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필요한 것을 부적함 없이 세워주는 이건 어찌 보면 부모로서 자녀를 위한 최선의 일이죠.
그런데 만약에 자녀의 성공이 하나님보다 중요하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지만 정작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면 이건 큰일 날 일인 거죠.
좋은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사람.
이게 좋은 부모지 않습니까?
이거는 일관된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책임.
그래서 신명기 6장 6절에서 7절에 보면
자녀에게는 어떻게 돼요?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라.
끊임없이 믿음으로 글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가르쳐야 된다.
누웠을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앉았을 때든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된다.
이게 부모의 책임이다.
이걸 말해주고 있잖아요.
가정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으로 가정이 세워져야 된다는 거예요.
결국 바울이 말하는 기준은 뭐냐?
바울이 하나님은 독신자의 자리에서, 결혼한 사람은 결혼한 사람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종 목적 은 같다.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
이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죠.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복음사역을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삶에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삶이 독신의 삶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서 이 독신을 선택하지 않고 싶다.
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이 은사로 독신의 은사를 주어서 그에게 감당시키는 일을 생각해 보면, 와 바울 사회가 감당한 일은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수많은 위험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편안함에 있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건가?
그래서 같은 교회에 보낸 고린도 후서에 보면 5장 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힘이 정말 힘써야 될 것이 어떤 자리건 간에, 어떤 상황이건 간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다. 독신으로 살아도 가정을 세워가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다. 그래서 바울의 삶 의 기준이 명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35절 우리 고린도 7장 35절 보겠습니다.
35절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것을 말하면 너희의 유익을 위 하며 너희에게 올물을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유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사람을 억압하려고 시험에 들게 하려고 이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말라. 가정을 가지지 말라.
그렇게 강요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목적이 분명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누구를 섬기는 거예요? 주를 섬기는 것.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 이 얘기를 해주고 있는 거죠.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에게 믿음을 전하고 가정을 하나님 뜻 안에서 세워가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시간과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모습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삶이 누구를 향해져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 .
이런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지금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결혼도 주님을 위해서 독신도 주님을 위해서 가정도 주님을 위해서 교회의 섬김도 주님을 위해서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성도는 36절에서 40절까지 말씀인데요.
모든 선택을 주 안에서 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결혼과 독신에 대한 실제적인 곤면을 마무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나오지 않죠.
앞에서 바울은 독신의 유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환란 가운데 더욱더 하나님 나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사실 책임질 일이 더 많아지는 일보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또한 결혼한 사람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책임을 당연하게 감당해야 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남은 질문은 뭐냐면 실제적인 선택의 기준이 뭐냐.
그 답은 그 기준은 주 안에서 입니다.
주 안에서.
먼저 36절 보겠습니다.
3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을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당시에 문화적 배경이기도 한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결혼 문제에 많은 영향력이 있다는 거죠.
부모를 통해서 결혼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에 대한 결정권.
이게 부모에게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잘 엿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인데 이건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관 할 때 청년들한테 부모의 의견은 절대적이다.
이런 얘기를 좀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3년 만난 네가 죽고 못 사는 그 상대보다 30년 너를 키운 네 부모가 너를 더 잘한다.
이 얘기도 제가 많이 하거든요.
그만한 권한이 부모에게 있는 거죠.
사실은.
그래서 특히 딸의 혼인은 가정의 중요한 결정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울은 결혼하는 것이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계속 말씀드리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창조의 질서잖아요.
그래서 앞에서 독신의 유익을 이야기했지만 바울은 결혼을 금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결혼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혼인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 반대의 경우도 또 말해주고 있습니다.
37절에 보니까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 선택도 인정해주고 있죠.
그런데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의 작정하여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즉 두려움 때문에 사람의 시선 때문에 이렇게 결정하지 마라.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목적과 믿음 가운데서 결정해야 된다.
그래서 바울은 중요한 이 선택의 원리를 말해주고 있는데 39절 보겠습니다.
39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메어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와 관련된 그런 표현일 수 있는데 사실 이게 성경 전체에 올리잖아요.
무슨 얘기냐면 성도의 모든 선택은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혼도 주 안에서 해야 되죠.
삶의 방향도 주 안에서 결정해야 되죠.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도 주 안에서 사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렇죠?
그래서 나만의 이익, 세상만의 유익으로 무언가를 우리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가?
내가 원하는가?
내게 유익한가?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끊임없이 어떤 선택의 순간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이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부분도 중요해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묻죠.
그래서 이 선택이 하나님이 기뻐할 일인가?
이걸 우리는 물어야 되죠.
그렇죠?
그래서 이 성경의 원리를 물어봤던 인물들은 성경이 참 많지 않습니까?
아브라함도 그렇죠.
땅을 조카로스와 함께 선택할 때, 끊임없이 조카로스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선택하는 사람이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0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의실터가 있는 성을 바랐습니다.
라고 아브라함이 선택한 기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거든요.
현재보다 하나님 약속을 바라보는 것.
눈앞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이게 아브라함의 선택이었고 그게 믿음의 조상.
마치 우리의 표준적 기준과 같은 역할의 사람이 이 아브라함의 선택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매일매일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겁니다.
이 결혼의 문제, 직업의 문제, 자녀 교육의 문제, 시간 사용의 문제, 돈의 사용의 문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린 선택이라는 걸 합니다.
그때 성도가 가져야 될 정말 중요한 기준 하나는 뭐냐면 무엇이 내게 좋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거냐.
이게 주 안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선택의 기준이라는 것을 꼭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결혼하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야 되고 가족 있는 사람도 혼자 살아가는 사람도 모두 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모든 선택이 내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이게 주 안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선택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 무엇을 선택하냐라기보다 누구를 위해서 선택할 거냐 이게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만 거기에 넣지 마시고 꼭 우리는 거기에 하나님을 더해서 드셔야 돼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냐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모든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될 것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 같지는 않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상황이 다하고 형편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고 각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고 그러면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찾으셔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
모쪼록 안 되기시 모든 성도님들과 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그런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 생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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