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교회01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20
허명도 · 창13:1-18
제작일 202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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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창 13:1-18) 20260829 허명도 목자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아브람의 신앙 회복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리고 해불원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본문로마서 8:28
-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전환하신다.
- 신앙 회복은 예배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하며, 재물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 해불원은 신앙 중심지로, 이삭, 야곱, 다윗 등 중요한 인물들의 장례지이자 역사적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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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신앙 회복
- 아브람은 애굽에서 나와 베델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 이는 신앙의 회복과 예배의 시작을 의미한다.
- 하나님은 애굽 왕의 선물로 육축과 은금을 주시며 악을 선으로 전환하신다.
- 로마서 8:28에 따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법이다.
- 신앙생활에서 방황할 때, 예배의 회복이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아브람과 로트의 갈등
- 로트와 아브라함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며 결국 로트가 떠나게 된다.
- 아브라함은 로트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화목을 추구하고, 서로 다투지 않도록 제안한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하며, 재물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귀중하다.
- 예수님은 돈과 재물을 하나님과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 롯은 물이 풍부한 땅을 선택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음을 보여준다.
해불원의 역사적 중요성
- 장례를 치르는 장소로 해불원이 지정된다.
- 이삭과 야곱도 이곳에서 죽고 장례를 치르게 된다.
- 다유당이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해불원에서 머무르게 된다.
- 해불원은 조상의 터전이자 신앙 중심지로 여겨진다.
- 다윗이 해불원으로 이동하여 정착하게 되며, 이후 왕 세우기의 기점이 된다.
- 압살롬의 반역도 해불원에서 시작된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을 허락하셨으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렸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님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창세기 13장 1절에서부터 18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3장 1절에서부터 18절 말씀 1절에서부터 4절까지 먼저 같이 읽겠습니다. 1절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베들에 이르며 베들과 아이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우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오늘 이 시간에는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하고 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 가지고 같이 운행하는 시간 갖도록 하시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애굽에 내려가게 되면서 우리 아브라함의 약한 모습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참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우리에게 또 은혜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회개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전부 다 잘못할 수 있고 또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것이고 복음의 시작도 제일 먼저 우리에게 외치는 일성은 회개하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아브라함은 다시 시작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는 보시기에 이런 아름다운 모습 신앙인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1절부터 4절까지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올라와서 바로 이렇게 다시 베델에 이르게 됩니다. 3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베델에 이르며 베델과 아이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래서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으로 이렇게 돌아가게 됩니다. 여기 보게 되면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사실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의 선택에 의해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거기서 잘못하면 엄청난 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아내를 뺏길 뻔했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교육에서도 많은 잘못된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잘못된 일을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이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애굽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바로 안 좋은 일이었지만 어떤 은혜를 더하셨을까? 바로 그것은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 아브라함에게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2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여기 보게 되면 원래는 아브라함에게는 육축이 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더라 육축이 가축이 더해지게 되었고 은금이 풍부하게 되었는데 이 은금 육축이 더욱더 풍부하게 더해지는 것은 어디에서 난 것일까요? 애굽왕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준 것입니다. 사실은 안 좋은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손으로 바꿔주는 경우도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 창세기 45장 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45장 5절 7절 7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급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우리 애급으로 가기까지 요셉의 일정은 참 고난의 역경이다 일정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형들한테 죽을 뻔하다가 구덩이에 던져지게 되고 그 다음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종으로 팔리고 난 다음에 또 그 집에서 오해를 받아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전부 다 우리가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안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갖다가 선한 쪽으로 바꾸어서 이런 모든 것을 더 좋은 쪽으로 이루어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부분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좋은 쪽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애급의 안 좋은 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을 이렇게 더해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 게 하신다 선을 이루도록 도와주신다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갓 제가 부임해서 나올 때 남원, 서도, 순천 이렇게 보게 될 때 그때는 저희가 휴대폰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갓 나오고 가격도 굉장히 비쌌을 때였어요 그래서 아무나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던 때였었는데 제가 우연히 서도 3개를 이렇게 갔습니다 그래서 어느 모친 집에 방문을 했더니 모친이 저한테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굉장히 반가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반가워하시나 했더니 오늘따라 갑자기 전을 붙이고 싶은 생각이 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그러셨대요 아, 목자님 오셔서 드시면 참 좋겠는데 근데 연락하면 좀 더 그럴 것 같고 근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었는데 그냥 제가 알아서 이렇게 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감사하다 그래서 제가 모친한테 이 말씀을 드렸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뜻대로 부르신 이분 자들에게는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일은 좋은 쪽으로 안 좋은 일도 선으로 바꾸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데로 돌아가서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한 부분은 바로 단을 쌓는 부분부터 시작이 되게 됩니다 저번 시간에 볼 때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쭉쭉쭉 내려갑니다 근데 그 기록에 단을 쌓았다 여와 이름을 불렀다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단을 쌓았다 여와 이름을 불렀다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베데로 돌아가면서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단을 쌓은 곳 거기서 여와 이름을 부르는 것 예배의 회복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회복은 바로 하나님과의 동행의 시작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뭘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아너를 찾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육축과 은금을 더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이렇게 아브라함은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나중에 있을 롯과의 분가에서도 바로 이 부분이 크게 작용을 한 거예요 우리 힘으로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재물을 얻는 것 이것이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다 이것을 아브라함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시 시작할 때 우리 신앙생활 하다 보면 우리도 많은 부분에서 이렇게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방황의 가장 첫 번째 모습은 예배를 쉬는 거예요 또 교회 나가도 이렇게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으로 신앙의 회복은 예배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배부터 그래서 나중에 우리 상세계에 보게 되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갔다가 별로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고 외삼촌과 관계가 틀어지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밤에 도망을 나오게 되는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부분은 베데로 돌아가라 처음에 나타났던 곳 네가 맹세한 곳으로 돌아가라 그래서 신앙의 회복 이 세상의 수많은 어려움 위기 이런 부분에 직면했을 때 우리 신앙인들이 제일 먼저 할 것은 그것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더욱더 중요한 것임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1장 13절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31장 13절 나는 베데로 돌아가라 맹세했던 곳 여기서 바로 하나님의 전이 될 곳이라고 이렇게 창세기 31장 13절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신앙의 회복을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사라 하시는 분들은 먼저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를 먼저 선행하셔야 돼요 우리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래서 신앙의 회복이 우리 인생의 모든 어려움의 회복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창세기 13장 5절부터 7절까지 보시겠습니다. 5절, 아브라함의 일행 로또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여기 보니까 아브라함의 일행 로또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로또 함께 부자가 되었음을 같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로또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난한 사람과 부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했는지라 얼마나 가축들이 많았으면 함께 있을 정도가 못되어서 이렇게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말씀하신 대로 이렇게 복을 줘 내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라는 은혜가 아브라함의 성취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소유의 많은 것이 결과적으로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없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소유가 많아지다 보니까 이제 로또와의 관계를 정립할 그런 시기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소유가 많지 않았으면 로또는 계속해서 아브라함 곁에 머물 수가 있었겠죠. 그런데 소유가 많아지면서 아브라함과 함께 동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동거를 하게 되면 로또는 바로 아브라함에게 전해주는 이런 모든 복을 함께 나눠서 받을 수가 있는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결과적으로 세상적인 재물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한데 결과적으로 재물이 많음을 통해서 그것이 함께 용납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보니까 17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의 로스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난한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했는지라 가난한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했는지라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고 브리스 사람도 있기 때문에 땅은 더욱더 우리가 거하기에 좁다는 그런 의미도 있고요. 심지어는 가난한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보는데 누구누구가 싸운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로스의 가축의 목자들이 서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보게 될 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끼리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덕이 될까요? 안 될까요? 덕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사실은 조카랑 삼촌 사이인데 재물 때문에 사투가 갈라진다. 별로 보기는 안 좋을 부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될 수가 없겠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바로 아브라함이 로스에게 이런 제안을 하게 됩니다. 8절, 9절 보겠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우리는 한 고륙이라. 가족, 친척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하나인데 우리가 이런 부분 가지고 재물 때문에 다투었어야 되겠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 다 하나라고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제 저녁에 찾았던 말씀인데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보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인이라 이렇게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범 17장에도 예수님의 기도 내용 중에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저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 그래서 신앙 안에서 하나인 사람들은 서로 다투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이니까. 그러면서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라함이 화목을 추구하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약성에 보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해 하시고 화목해 하는 직책을 또한 우리에게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목의 사자들을 둬야 됩니다. 화목. 우리 은사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키우는 사람은 굉장히 좋은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직분이었고 오늘 우리가 그 직책을 이어받게 되었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8절 보시겠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난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 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하게 하는 직책.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진 직책 중 하나가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서로 식이하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다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다 화목의 직책을 가졌고 심지어 우리가 전부 다 주 안에서 하나인데 타투질이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세우는 곳이지 바로 어떤 일 때문에 사람관계가 틀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입니다. 일은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또 하면 돼요. 왜냐하면 교회는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일입니다. 한 번 우리가 준비가 좀 부실해서 못할 수 있어요. 그럼 못한 거 가지고 우리가 서로 그것 때문에 서로 간에 불편해하거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잘하면 되죠.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람이 실수로 인해서 이것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그러면 그 사람을 우리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서 다시 세워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 사도마울이 한 말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권세는 파하려고 주신 권세가 아니라 세우려고 주신 권세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연약한 사람을 세워주기 위해서 이렇게 권세를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 뒤에 한 사람이 좀 앉아 계시는데 조금 나가셨을 것 같아요. 저 밖에 안으로 들어오도록 얘기 안 되지 마시죠. 13장 9절. 13장 9절. 여기 보니까. 네가 좌우. 여기 보니까. 네 앞에 온 땅 있지 않냐. 나를 떠나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떠나라. 우리 사람의 계획이 아무리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우리 마음과 생각으로. 또 인간의 정과 사랑으로. 함께 이렇게 롯을 데리고 왔다 할지라도.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는. 너는. 아브라함 괜히.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 해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그런데 떠나게 될 때 롯의 아버지가 먼저 죽었어요. 그러니까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독화를 이렇게 데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라. 결국 이 시점이 되니까. 결과적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동거할 수 없는 가운데서. 떠나는 쪽으로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제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리 인간의 정과 사랑으로. 인간의 계획과 뜻대로 어떤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런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는 거예요. 나를 떠나라.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이렇게 떠나려고 할 게 될 때 롯이 어떻게 하면 제일 좋았을까요? 삼촌, 저는 가축과 목자, 이런 수많은 가축부들보다도 삼촌이랑 있는 것이 더욱더 보니까 더 귀여워하고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차라리 내 모든 것을 다 줄 테니까 그냥 같이 많이 있게 해달라. 이럴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그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우리 사람들은 그래도 재물이 필요합니다. 책 제목이 그런 책 제목이 있었대요. 솔직히 예수님 담으로 돈이 좋아요. 솔직히.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돈과 재물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만 유협을 받을 수 있고 인간의 마음, 인간의 육체를 따라서 난 사람은 유협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나중에 보게 되면 이삭과 이스마일이 있습니다. 이스마일, 유협을 함께 얻지 못하리라 해서 이스마일을 떠나보내는 내용이 이렇게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런 모든 선택의 우선권을 누구한테 주냐면 롯에게 전적으로 이렇게 다 주게 됩니다. 기득권을 다 양보한 거예요. 원래 기득권이 누구한테 있습니까? 오늘날 롯이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이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브라함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면서 롯의 인생도 더욱더 많은 부분에서 평안과 형통함으로 이렇게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얻었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니까 아브라함이 요구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전혀 그런 요구를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권한을 우리 조카에게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인간의 모든 사람들의 본능에는 더 좋은 것을 먼저 차지하고자 하는 본능이 다 있습니다. 이것은 조카와 삼촌 관계가 전혀 관계가 없어요. 예전에 제가 청주에 있을 때 아마 제가 고등학생 때나 됐을 건가요? 우리 당숙이랑 이렇게 길을 가다가 둘이 동시에 길에 떨어져 있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더 동작이 빨랐을까요? 당숙이 저보다 동작이 더 빨랐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했냐? 당숙이 손으로 집으려고 할 때 제가 먼저 얼른 발로 밟았습니다. 나중에 누굴 게 되었을까요? 제가 졌죠. 손이 먼저 간 사람이 우선이니까. 그래서 그런 것을 보면서 친척 사이에도 돈은 별개의 문제다. 재물입니다. 재물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이유가 뭘까요? 재물이라는 것이 내가 내 힘을 얻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더해주는 재물이 더욱더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아브라함은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네가 선택하라. 네가 얼마든지 선택해도 그것은 인간적인 선택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걸 통해서 얻는 복은 따로 있으니까 아브라함은 오늘 그것을 믿을 수가 있게 된 것 입니다. 그래서 로시 선택을 합니다. 창세기 13장 10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에 로시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녹록하니 요하께서 소동과 고무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던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 온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로시 요단 오원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로시 먼저 이렇게 바라보게 됩니다. 요단들을 바라보니까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녹록하다. 목축할 때 가장 좋은 것이 뭘까요? 물이 넉넉하고 푸른 초장이 막 쭉 펼쳐진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푸른 초장이 아무리 딸지라도 물이 부족하면 황폐화�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로시는 보니까 그것이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살짝 이렇게 전제를 다뤄놓고 있어요. 뭐라고 얘기합니까? 소동과 고무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던 고로. 그래서 이 창세계 기록이 나중에 기록된 것인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 소동과 고무라는 어떻게 정해진 거예요? 멸하시기로 작전된 곳이라는 것입니다. 로시 그걸 알 리가 없겠죠. 그때 당시에는. 그런데 일단 눈에 보니까 그쪽이 너무나 좋습니다. 온 땅이 물이 녹록하고 심지어는 여우와의 동산 같고 애급당과 같았더라. 애급당. 본인들이 내려갔던 애급당. 나일강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물이 녹록하고 푸른 초장이 있고 목적이 딱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려갔던 애급당과도 같았다. 그래서 로시 요단 온두를 택하고 동으로 옮겨서 서로 떠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13장 12절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난한 땅에 고하였고 로스는 평지 성업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듬까지 늘었더라. 아브라함은 간단하게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난한 땅에 고하였고. 이 가난한 땅은 어떤 곳입니까? 약속의 땅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 비록 척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 안에서 저 풍부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우리 눈에 보기에도 척박하지만 여기는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삶을 비교해 보길 때 많은 부분에서 우리 조건이 뒤떨 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믿어야 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거한 데에서 하나님의 더욱 더 크신 은혜를 입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항상 가질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서 보니까 또 하나 전제가 나오는데요. 그 장막을 옮겨 소듬까지 이르렀다. 아까는 보니까 멸하시기로 예비된 곳이었고. 13절 보니까 소듬 사람은 악하여 여우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여기 보니까 여우와 앞에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 성도민들 신앙생활할 때 3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여우와 보시기에, 여우와 앞에, 하나님의 뜻대로 입니다. 그래서 우리 소듬 사람은 보니까 여우와 앞에 큰 죄인이었음을 이렇게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가게 됐는데, 이 소듬을 나중에 멸망당할 때 어떤 상태였냐. 우리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후서 2장 6절 보시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2장 6절. 결과적으로 롯이 좋은 것을 선택해서 갔습니다.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될 때 목축하면서 이렇게 참 좋았었고, 심지어는 소듬에서 어느 정도의 재물이 많음을 통해서 지위도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소듬과 고브라성의 상류인사들과 어울리는 그런 삶도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선택한 곳이 우리 인간의 안목으로 좋은 곳. 그런 부분을 결과적으로 선택함을 통해서 이 세상을 더 사랑하는 그런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므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요한일서 2장 1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 말세의 징조를 얘기할 때에서 우리 사도바울은 여러 가지 징조를 얘기하는 가운데 세 가지 사랑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그런 것들을 사랑하게 될 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다른 것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모세는 이사를 백댓에게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가 우리 인간의 마음으로 제대로 잘 숨길 수 없을 수 없는 그 상황이 더 많음을 이렇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자라면서 16절 보니까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여 세상으로 쫓아온 것이라. 여기 롯이 걸렸던 것이 뭐였을까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장 궁극적으로는 가장 첫 번째로는 안목의 정욕입니다. 눈을 들어서 보니까 물된 동산 같고 애국과 같고 여우와의 정원 같다. 여우와의 동산 같았더라. 눈에 보니까 너무 좋죠. 견물 생심입니다. 우리 세상에 있는 이런 많은 것들이 우리가 처음부터 몰랐다면 처음부터 보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냥 사지 않았을 것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보이니까, 보면서 저거 좋아 보이니까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지금 쇼핑 중독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쇼핑 중독, 특히 홈쇼핑. 그리고 유대민 너무 좋아서 휴대폰으로 다 쇼핑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다다다다 딱 몇 번 누르면 바로 그 다음날 집으로 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오늘도 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새벽에 도착하고. 너무 편해졌어요. 그런데 보니까 사놓고 안 쓰는 것도 굉장히 많죠.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한 번씩 그런 얘기를 합니다. 연말에 우리가 사랑의 선물 준비하자. 그래서 사놓고 집에서 안 쓰는 것, 많이들 갖고 오셔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록 집에 많은 것들이 더욱더 쌓아지게 됩니다. 쌓아 놓는 것은 하나의 탐욕입니다. 쌓아 놓는 것.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출하기를 이렇게 해놓았을 때 2km 정도까지 1m가 쌓였어요. 아침부터 밤새도록 주워서 다 그 다음날 그 다 먹으려고 말려놨다는 것입니다. 또 주실 텐데. 그래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탐욕은 사실은 끝이 없는 거다. 그래서 바로 이런 것들이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 쫓아온 것이라. 세상으로 쫓아온 것이라. 우리 성대님들,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먼저 바뀔 것은 가치관입니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 신앙적 가치를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돼요. 신앙적 가치를. 우리 사도바울처럼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길 뿐더러 심지어는 배설물로 여긴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라는 부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많은 사람들은 누구랑 삶을 비교합니까? 같이 가는 신앙적 가치로 바뀌어놓고 삶은 세상 사람들과 항상 비교해요. 세상 사람들이 누르는 것 같이 누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제일 먼저 작용을 하는 부분이 바로 안목의 종육이에요. 안목의 종육. 계속해서 보게 되죠. 그러면서 세상 사람과 비교하는 가운데서 이생의 자랑. 우리 자녀들이 더욱더 잘 돼야 될 텐데. 그런데 자녀들의 발걸음 발걸음도 누가 인도하십니까? 하나님 안에서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제일 귀한 복이에요. 예전에 그런 말이 있죠. 아들 사명제 갔는데 제일 잘난 아들은 나중에 보니까 내게 아니라 나락거립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 많아 되겠죠. 그리고 또 하나 보니까 나중에 그 아들이 성군에서 죄말이 굉장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누구 거라고요? 그건 처가 거. 자, 다만 나중에 보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들이 마지막 내 옆에 붙어있더라. 우리 신앙생활은 사실은 그런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과 이 세상의 재물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내 신앙을 가로막는다. 오늘 루스의 인생에서 우리가 그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헤어지고 난 다음에 나타나십니다. 14절 보시겠습니다. 루스의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영화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여기서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브라함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아브라함이 루스랑 대판 싸우면서 야이누부 자식아 내가 지금까지 너를 데리고 다녔고 네가 부자가 된 것도 사실은 내 덕인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 충분히 우리 사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들이랑 싸우는 때 보면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이게 제일 먼저 나와요. 우리 성도가의 관계도 그러더라고요. 내가 전에 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지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것이 자연스럽게 우리 성도가의 관계도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아브라함도 충분히 그럴 수가 있는 상황입니다. 자기가 어른이고 자교를 위해서 로또 복을 받았고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조카를 아브라함이 챙겨준 거기 때문에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 말 그대로 한 끗 차이입니다. 그 한 순간 그 한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 한 순간에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 이것을 우리 전부 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신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시험에 아브라함이 통과를 했어요.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르니 영원히 이르리라. 롯도 바라봤습니다. 아브라함도 바라봤어요. 동서남북. 롯은 선택을 하면서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동 쪽으로 가게 되면서 이렇게 선택을 했습니다. 그 지역이 롯이 선택한 지역이에요. 하나님께서 거기를 롯에게 이렇게 허락해서 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디를 주십니까? 아브라함은 동서남북이에요. 동서남북을 다 볼 때까지 주겠다. 우리 인간의 시야가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요? 높은 건물이 없으면 50km는 넋건히 보이고도 남습니다. 아마 100km까지도 보이지 않을까요? 충분히 그 이상도 보일 것입니다. 우리 배도인족이 시야가 굉장히 좋다고 얘기를 하죠. 3.0, 4.0만 이렇게 된다고 하는데 우리 시야가 점차점차 안 좋아지는 이유가 바로 가까운 점을 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안과의사들은 가급적이면 멀리 봐라. 가급적이면 멀리 푸른 초원을 갔는데 산을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도 있고 건물도 많아서 멀리까지 볼 이유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때 당시에는 그런 높은 건물이 없습니다. 엄청나게 멀리까지 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는 모든 당을 다 내게 줄이라. 로시 차지했던 땅의 몇 배를 우리 아브라함은 그냥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보니까 영혼이르라 하시는데 17절 보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해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줄이라.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를 말씀해 주는 부분입니다. 일어나서 종과 행하로 행하해 보라. 우리가 장난감을 사갖고 왔어요. 그래서 자녀들한테 줬는데 자녀가 처음에 받은 거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걸로 끝하면 얼마나 부모 입장에서 서운한가. 장난감 이렇게 같이 노는 거여서 차 놀이도 하고 같이 할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에게 준다고 하는데 아브라함이 별 반응이 없어요. 그러니까 일어나서 걸어봐라. 네가 걷는 모든 땅 다 내게 줄 거다. 물론 이것을 갖다가 우리가 나중에 영적 싸움터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시고서 이것을 더욱더 허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3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네 자선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 텐데 네 자선도 셀이라. 여기 보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신 다음에 그다음에 자선을 약속을 하십니다. 자선이 많아지게 되면 얼마나 더욱더 넓은 땅이 필요할까요? 이 땅을 주신다는 것은 이제 너는 롯과 다투는 것처럼 그렇게 다툴 필요가 없다. 이 넓은 땅을 롯과 다투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면서 살게 하는 이런 은총을 그들에게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많아지고 땅이 좁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또 우리나라처럼 치열하게 싸우겠죠. 좁은 땅덩이에 많은 사람이 사니까. 서울에 아파트 한 평. 제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이 30평을 15억 주고 샀는데 지금은 그거에 거의 한 30억 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파트 성략값을 하나 해놓고 그것도 30억 넣고 사는 거예요. 불쌍하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땅 다 주겠다. 땅이 티끌같이 지냐고 많다 할지라도 그 자녀들이 넉넉히 살 만한 이런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18절 보시겠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장막을 옮겨 해불원에 있는 마무래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요하를 요하여 단을 쌓았더라. 베드레에서 어디까지 내려오냐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30km 밑에 남쪽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왜 내려올까요? 보이는 모든 땅을 다 내게 준다 했으니까 여기도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이에요. 그래서 베드레에서부터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해불원에서 이렇게 정착을 하게 되고 나중에 사례가 죽었을 때 거기서 땅을 사서 또 거기서 장례를 치내게 됩니다. 나중에 이삭도 거기에 과하고 야곱도 거기에 과하고 나중에 이곳이 이삭에 죽고 야곱에 죽고 장례를 치르는 곳이 바로 또한 이 해불원에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나중에 쭉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유당이 유다의 왕이 되게 될 때 제일 먼저 해불원에서 이렇게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 있어서 조상의 삶의 터전이었고 더 나아가서 신앙의 중심지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이런 종교활동으로 장소를 이렇게 해보느니 이 자리를 갖다 자리 잡게 됩니다. 사무엘하 2장 1절 보겠습니다. 사무엘하 2장 1절 그 후에 다윗이 여우와께 물어 가로돼 내가 유다 한성으로 올라가리까? 왜냐하면 그 기름붐을 받았거든요. 올라가야 될까? 그러니까 여우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돼 그럼 어디로 가리까? 가라사대 해불원으로 갈지니라. 그래서 해불원에 가서 이렇게 정착을 하게 되면서 이곳이 나중에 이후에 왕을 세울 때도 그 장소가 먼저 기점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 성경을 보게 되면 압살롬이 다윗아 아버지를 반역하는데 반역의 시작도 바로 해불원에서부터 시작을 해요. 그래서 이 의미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베데뿐만 아니라 베데레에서 바라볼 때 좋았던 이런 모든 땅 동서남북을 다 바라보게 하셨는데 우리 팔레스타인 지역이 남북으로 깁니다. 그렇죠. 그래서 북쪽에서 남쪽까지 내려오는 가운데서 이 모든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다. 또 거기에 머무를 수 있는 충분한 자손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은 이런 엄청난 복을 누리는데 가장 아브라함이 잊지 않고 반드시 했던 것은 바로 거기서 여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진실로 동행하시는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 성디님들 다 받아서 누릴 수 있는 우리 성디님들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로 보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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