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금)
마5:6
제작일 2026. 8. 7.
설명 펼치기▼
홍영석목자 #TJC전주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마태복음 5장 6절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강조하며, 이는 물리적 욕구보다 영적인 갈망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본문마태복음 5:6로마서 6:7신명기 10:13
- 마태복음 5장 6절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음을 강조한다.
- 이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며, 윤리적 도덕적 개념이 아닌 본질적인 의를 가리킨다.
- 세상의 욕구는 영원한 만족을 주지 않지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진정한 행복을 준다.
본문 정리 펼치기▼
'의'에 대한 이해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자를 의미한다.
- 예수님의 '의'는 당시 헬라인들이 이해하는 도덕적 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본질적인 의를 가리킨다.
- '의'는 믿음으로 얻는 칭의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를 의미한다.
- 칭의는 죄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는 것을 포함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 '의'는 단순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그치지 않고,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 세례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의롭다함을 얻는다.
- 하나님의 영광은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의로 맺어진 관계가 깨진다.
진정한 행복
- 세상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여기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한 삶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물리적 욕구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 예수님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가 의에 대한 갈망임을 강조한다.
-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과 목마름은 영혼의 생명을 위한 필수적 상태이다.
성경의 가르침
- 로마서 6:7에 따르면, 죽은 자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 신명기 10장 13절은 하나님께서 명령과 교례를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 하나님은 단순한 생존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전사(자막) 전문▼
이슈 크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말씀 마태복음 5장 6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말씀 찾으셨으면 한 목소리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6절 시작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미요. 아멘 최근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 K문화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 중에서도 한국의 음식과 음식문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죠. 김치는 사기적인 건강 음식 가운데 하나이고요. 실질적으로 미국에 가보면 굉장히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서 김치가 나오고 또 교양에 있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이렇게 인식이 될 정도로 그 위상이 굉장히 높여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한 외국인이 참 한국인들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배우면서 이런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먹는 것에 진심인 것 같아. 각 기억마다 먹자 골목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고 그리고 맛집을 찾아 저렇게 헤매며 또 줄을 두 시간 세 시간을 서고서라도 금식을 꼭 먹는 한국인들의 열정에 참 놀랐다. 그리고 특별히 놀란 것은 한국인들은 밥심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라는 그런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밥이 들어가는 것이 참 많죠. 안부를 묻는 인사도 만날 때 하는 인사도 뭐라고 얘기합니까? 식사하셨습니까? 밥은 먹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뭔가 일을 열심히 하자라고 얘기할 때도 어떻게 얘기합니까? 야, 밥값은 하자. 밥값은 제대로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보기 싫은 사람이나 보기 싫은 일을 뭐라고 표현하죠? 밥맛 떨어진다. 밥맛 없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예요? 다 된 밥에 재뿌리는 사람. 이렇게 보면 정말 우리 한국인들은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또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얘기합니다.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 무슨 얘기입니까?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최고의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은연 중에 우리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인생의 중요한 목표와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생들은 그렇게 살아가서도 안 되며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네 번째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행복이론이 무엇입니까? 정말 우리 인생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비결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사람이 먹고 살자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때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비결을 오늘 우리 이 시간에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부디 깨달아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한 삶을 다 살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의 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우리 6절 말씀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인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며 먼저 주님의 이 말씀 속에 예수님께서 이야기하는 의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 의라는 단어의 개념은 그 당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헬라 사상의 의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헬라의 철학과 사상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께서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이라고 하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 그 의의 개념이 딱 먼저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죠. 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 그리고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신뢰를 얘기합니다. 예절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다시 얘기하면 그 당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라는 개념이라는 것은 뭐냐면 사람과의 신뢰라는 것이죠. 국가 간의 신뢰라는 것입니다. 즉, 도덕적 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 이야기하는 이 의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이 의는 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하는 그런 의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설교의 핵심적인 주제가 뭐냐면 바로 의라는 것입니다. 의. 의. 자, 5장 10절 말씀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입니다. 20절. 시작. 내가 너희에게로는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굉장히 심각한 말씀이죠. 우리가 서기관과 바리세인이 가지고 있는 의보다 낫지 못하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단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것이죠. 그런데 이 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의 의는 뭐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의보다 나은 의를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뿐입니까? 6장 1절 말씀 읽겠습니다. 6장 1절. 시작.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의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예수님께서 산상순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바로 의라는 의� 그래서 예수님의 설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구절을 하나 뽑으라면 6장 33절입니다. 6장 33절. 다음 글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래야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다하시리라. 지금 예수님께서는 산상순의 네 번째 이 하나님 나라의 율법의 선포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될 이 윤리 강령 하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의 네 번째 이야기 말씀하시는 이 의의 개념을 알아야 앞으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고 설명하시는 의의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 의의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적 정리와 설명이 있는데 그것을 가장 잘 정리한 것이 뭐냐면 바울사도의 로마서예요. 로마서. 여러분 로마서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넣는 것이죠. 의. 그런데 그 의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로마서 5장 1절 말씀 로마서 5장 1절 말씀 로마서 5장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가 믿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야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여러분 로마서에서 이야기하는 이 의는 칭의이라고 하는 것이죠. 칭의가 무슨 말입니까? 의롭게 여겨주신다.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게 칭의이라는 것이죠.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느냐. 로마서 6장 4절 말씀. 로마서 6장 4절 말씀. 다음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아파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야마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칭의라는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의라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얘기하면 칭의라는 것은 죄로 말미야마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사례를 통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바울사도가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7절 다음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의롭다함을 얻었다. 이게 바로 칭의라는 것입니다. 칭의. 다시 얘기하면 성경이 이야기하는 지금 의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여러분 죄가 더러움으로 말미야마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그런 사망의 상태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사망의 상태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발변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찾아오신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그것이 사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사례를 받아 하나님과 이제 관계가 회복되어서 이제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만으로 의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로마서 8장 30절 말씀 다음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그 선택한 자를 부르셔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례를 받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이 되었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관계가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내 삶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에요.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때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며 살아가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며 살아가야 돼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며 살아가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내며 살아가야 돼요. 그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의의 관계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영화로운 그 이름을 담을 수 있겠냐?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게 뭘까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장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게 뭘까요? 뭘 바라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담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돼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아 의롭다함을 얻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고 살아가지 않으면 그 의로 말미암아 맺어진 하나님의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고 하나님의 영화로움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여기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내 삶과 함께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데 우리를 의롭게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 의로를 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 의미는 그 의미는 그 의의 관계는 유지가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여러분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죠.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 27절 말씀 24절에서 27절 말씀 다음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느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여운 거여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힘에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러분 지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그 관계 여러분 나라와 나라가 조약을 맺었는데 그것을 신실이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와 회사가 약속을 맺었는데 그것을 신실이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과 사람이 약속을 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라와 나라는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기업과 기업은 소송이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사람과 사람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짐승이 사는 집단이 될 거예요 세상의 의도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세상의 의를 신실이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깨어지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의를 지키지 않으면 무너져 버린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냥 무너져 버린다는 거예요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의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얘기합니다 그것이 신뢰관계 그것이 믿음의 관계를 지금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 관계는 깨어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의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돼요 그렇다면 우리는 두 번째 생각해야 될 게 뭐냐면 우리는 무엇에 줄이고 목마르고 있냐 이 말이에요 지금 의에 줄이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이면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신실이 맺고자 갈망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는 어디에 목말라 하고 있는가 무엇을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산상수원을 설교를 하고 있을 당시 예수님 앞에 모여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의 기적과 말씀을 듣고 아 내가 예수 그들을 믿고 따라 살아가야 되겠다 라고 결심한 사람들이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이 산상수원의 설교를 듣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서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냐면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이룰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다시 얘기하면 구약의 너희 조상들은 신의 산에서 십대명을 받아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될 율법이요 헌법이라면 오늘 내가 이야기하는 산상수원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살아갈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지키고 살아가야 될 새로운 개명이란 새로운 율법이란 반드시 지키고 살아가야 될 하나님의 명령이란 그런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 목말라하며 어디에 줄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굶주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수많은 전쟁으로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고 지배를 당하네요 가진 것은 없는데 세금은 두 배로 내야 되는 가난과 궁핍과 질병으로 정말 배고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 오늘 예수님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이란 것이죠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는 거예요 그들은 지금 먹을 것에 굶주리고 마실 것에 목말라 하고 있는데 지금 예수님은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까요? 그것은 참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이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다시 사롭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쩌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자 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이지 않았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왜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걸까요? 하나님 백성들에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살아가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본질적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갈망하고 추구하며 살아가야 되는지를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2000년 전 예수님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뭘 갈망했습니까? 먹을 걸 갈망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도 먹을 것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굶을 일이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인 것이지요 예수님을 따르면 목마를 일이 없을 것처럼 느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의에 줄이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의를 갈망하라는 것이지요 의에 목말라 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근데 여기서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의에 대한 줄임과 목마름은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정도의 줄임과 목마름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의에 줄이고 굶주리고 이 단어가 뭐냐면 그냥 좀 배가 고파가지고 냉장고 문을 열면서 먹을 게 없나? 그런 배고픔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 줄이고라는 말은 뭐냐면 압록강을 건너고 철책을 넘어서 목습을 걸고 탈북한 탈북민들이 북한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었고 창자가 뒤틀려서 사람을 잡아먹는 그런 굶주림 그런 굶주림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얘기예요 목마름이라는 것은요 그냥 갈증이 나서 시원한 물 한 잔 찾는 그런 목마름이 아니에요 목구멍이 다 들어갔어요 혀가 말라 비틀어 털어 숨을 쉴 수 없는 그런 갈증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갈망하라는 거예요? 생명을 다해서 갈망하라는 거예요 내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과의 그 의의 관계를 추구하고 갈망하며 살아가라는 거예요 내 삶의 최고의 가치로 갈망하며 살아가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에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요 이런 굶주림을 저는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목마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잘 모르겠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의의 줄이고 목마른 사람의 그 갈증과 갈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하고 붙들고 기도하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관계를 이렇게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스스로 물어볼 때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리지 못한 저의 모습을 볼 때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갈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사람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추림이 있고 목마른 사람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10편 기자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10편 107편 9절말씀 10편 107편 9절말씀 107편 9절말씀 107편 9절말씀 다음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줄인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미로다 아멘 좀 무서운 말이지만 죽은 자에게는 목마름도 굶주림도 없는 거예요 다시 얘기하면 우리가 사례를 통해서 새로운 영적 생명을 얻었다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을 갈망하는 갈망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는 의에 대한 줄인과 갈망이 없어요 그러나 살아있는 영혼이라면 그 의에 대해 줄이고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의 영혼을 돌아보시고 내 영혼이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의 영혼을 돌아볼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다 복을 주시겠다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여러분 천국은 악인도 갈망합니다 악한 사람도 죽어서 좋은 데 가고 싶어요 우리가 그 정도의 신앙이 되어선 안 된다면 우리가 정말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의롭게 살아가야 돼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답게 의롭게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갈망해야 된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자녀가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이 어느 정도인가 그걸 보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악인도 천국을 사모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의인의 삶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한번 이렇게 노래합니다 10편 42편 1절말씀 10편 42편 1절말씀 10편 42편 1절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여 사슴이 신의 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 아이다 아멘 이 갈급함은 목숨을 건 갈급함 의에 줄이고 목마른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 갈급함 여러분에게 이 갈급함이 회복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이 갈급함이 있을 때하니만이 예배가 살아나고 기도가 살아나며 찬양이 살아나고 이 갈급함이 회복될 때만이 내 영혼이 소생합니다 내 영혼이 살아나고 마지막 세 번째로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배부른 사람이 누구냐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배부른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배부른다는 것은 밥을 많이 먹은 사람 물을 많이 마신 사람 갈증을 해소한 사람 그 사람을 이야기할까요 여러분 예수님 알아요 지금 당신 앞에 나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배고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거 예수님 너무나 잘 알아요 예수님도 배고프게 살아봤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볼 때 그 사람들이 정말 불쌍한 것은 음식을 먹지 못해서 배고프게 살아가는 현실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살지 못하고 그들이 영적으로 죽어서 무엇이 참된 행복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그것이 너무나 불쌍한 그것이 불쌍한 여러분 정말 불쌍한 인생이에요 못 먹고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모른 채 자기의 영혼이 죽은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이에요 그게 정말 불쌍한 인생이에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그 불쌍한 인생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세요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그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낙탑니다. 어떤 사람이 낙탑을 타고 사막을 건너는데 길을 잘못 들여요. 사막을 가도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렸으니 이게 얼마나 위험합니까? 아무리 사막을 가도 아무리 사막을 가도 나오지가 않아요. 사람 사는 곳이 부위가 그리에 얼마나 목이 타들어가겠어요? 결국 낙탑을 잡아서 거기 안에 있는 물을 먹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낙타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에요. 사막에서 낙타를 잡아먹는다는 것은 죽은 목숨이에요. 그런데 그걸 알고도 낙타를 잡아먹을 정도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목마름과 군주림이라는 것은 인간 가장 본질적인 욕구요.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이고 목마르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목마르고 군주림 인생 그래서 그 인생들이 추구하는 것이 뭐예요? 욕구가 있잖아요. 잘 살아보려고 성공해보려고 명예를 가져보려고 즐겁게 살아보려고 그 욕구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다 있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것이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모르고 있는 거예요. 배부르면 행복한지 알아요. 갈증을 해소하면 내가 그렇게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얻고 올라가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아니라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 이것을 다른 말로 얘기하면 세상의 것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파요. 물은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나요. 다시 얘기하면 우리를 만족하게 못 만든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약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요. 이것을. 그래서 애굽에서 이끌어내셔서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냐면 광야로 인도합니다. 광야. 여러분 그들이 광야에 살면서 겪었던 가장 큰 고통이 뭐예요? 음식이 없어서 배고픈 것.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극심한 고통.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하나님께 소리소리 지르면서 왜 나를 애굽에서 구원해왔냐고 매장지가 거기 없어서 나를 구원해서 여기서 죽이려고 하냐고 하나님께 소리소리를 지른 이유가 뭐냐면 굶유림과 목마름이에요.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었느냐. 인간의 행복은 배부름과 갈증 해소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왜?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것을 그들에게 광야를 통해서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예요. 여러분 광야 40년 동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굶어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목이 타서 죽은 사람이 있냐고요. 한 명도 없습니다. 다. 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불신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 죽은 거예요. 한 명도 굶주려서 죽은 사람이 없어요. 한 명도 물을 못 먹어서 죽은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그들이 굶주리고 목말라서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은요. 음식이 없고 물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의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불신한.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내가 갖고 싶은 걸 못 가지고. 내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하나님께 원망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의롭다 여기신 그 존귀한 신분은 사라져버려요.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정말 우리가 무엇을 채우고 살아가야 진정한 행복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이거였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 말씀 신명기 10장 13절 말씀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 시작 내가 오늘 내 행복을 위하여 내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교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그들을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정말 가르쳐주고 싶었던 게 뭐냐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 그러니 그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복이 있다 그때의 피로써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저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사는 삶을 살아가다가 끝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한 삶인지를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배가 부르기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사랑 더 이상 원하는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이 하나님과의 그런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다 여러분 이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돼요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항상 이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셔서 참된 행복을 누리시며 다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묵대하시겠습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관련 지교회
전주교회
이 영상은 전주교회 채널의 콘텐츠입니다.
같은 채널 다른 영상
전주교회 채널 최신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