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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사도행전 강해 1.

김승도 · 행1:1-3

제작일 2026.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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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교회 건립과 복음 전파의 과정을 다루며, 예수 부활과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본문사도행전 1:8사도행전 2:32
  • 사도행전은 교회 건립과 복음 전파의 과정을 다룬다.
  • 예수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며, 신앙을 회복시키는 원동력이다.
  • 성령은 교회 사역의 중심이며, 복음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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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의 목적

  • 사도행전의 주요 목적은 '사도행전과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 교회 건립과 복음 전파의 과정을 다룬다.
  • 누가가 쓴 것으로, 누가복음의 속편이다.

예수 부활의 중요성

  • 예수 부활은 제자들의 신앙을 회복하게 했으며, 오늘날 신앙의 핵심이다.
  • 예수 부활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 예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의 신앙은 헛것이 된다.

성령의 역할

  • 성령은 교회 사역의 중심이며, 성령을 통해 복음이 전파된다.
  • 예수 부활을 믿는 신앙은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다.

제자들의 삶과 교훈

  • 예수님은 행함과 가르침이 일치된 분이시며, 제자들도 그러해야 한다.
  • 예수님은 볼품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택하셨으며, 그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셨다.
  • 제자들은 처음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적기사였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선포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체적 실현이다.
  • 사도행전 2장 32절은 예수 부활을 증인으로서의 삶과 연결한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철저하게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1절로 3절 말씀.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느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오늘은 사도행전을 강의하는 첫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동안에는 일반 생활설교를 쭉 해왔는데 화요일은 성경개론.
금요일에 뭔가 우리가 목표를 갖고 뭔가 교회가 지향하는 그런 목표점을 찾고 또 교회가 마땅히 해야 될 교회의 어떤 사명을 우리가 진전시켜 나가는 그런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을 해서 고민 끝에 사도행전 강의를 좀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강의하는 주요한 목적은 사도행전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같은 교회 사도행전과 같은 삶을 통해서 사도들이 행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행하고 사도들이 세웠던 것과 같이 우리도 교회를 세워나가고 사도들이 전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파하는 그런 교회의 중요한 사명을 다 했으면 좋겠다.
그런 큰 기대와 꿈을 갖고 오늘 첫 시간에 테이프를 끊고자 합니다.
여러분 오늘 첫 시간인데 소 제목을 하나씩 정해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따라 세웁시다.
계속되는 하나님 나라 고맙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을 다루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된다.
사도행전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계속되는가?
우리가 사도행전 1장부터 10, 11장까지는 12장까지는 교회가 어떻게 생성되어 갔는가?
교회가 어떻게 만들어져 갔지?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 간 거야?
예에 대한 교회 건립의 과정을 얘기했다면 13장부터 마지막 28장까지는 바울이라고 하는 한 인물의 1차, 2차, 3차 그리고 로마까지의 전도 여행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느냐라고 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도행전 전체에 말하자면 주요한 핵심 구절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 같이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여러분 다 아시는 말씀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우리 큰 소리로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게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인데요.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어가는 과정은 어떤 과정인가요?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끝까지 무엇이 전파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는 과정을 그리는 것이 뭐라고요?
사도행전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는데요.
어쨌든 우리가 이왕 이 말씀을 읽었으니까 이 말씀은 굉장히 사도행전의 주제의 말씀이죠.
그러면 이 주제의 말씀 안에 중요한 단어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성령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지 않았다면 권능을 받을 수도 없고 증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게 되면 너희는 권능을 받을 것이고 증인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죠.
그래서 사도행전의 주요한 단어는 성령 그리고 증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8절에 나오진 않았지만 복음이 또 하나 있어야 되겠죠.
성령이 일을 하십니다.
증인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하시는가 그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즉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증인, 복음 이 세 가지 트라이앵글이 사도행전의 사역의 삶여서죠.
성령께서 일하시고 증인을 통해서 일하게 하시고 증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트라이앵글이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이다.
라고 하는 것을 꼭 먼저 기억해 두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구일까요?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이 누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닙니다.
직업이 의사입니다.
그래서 의사 누가는 바울의 전도여행 때 나타납니다.
2차 전도여행 때 바울과 합류를 하고요.
3차 전도여행 때에도 바울과 함께 빌리뽀에서 합류를 합니다.
대단하죠?
그리고 1차, 2차 바울이 로마에 투옥됐을 때에도 바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죠.
아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울의 신변을 보호하고 바울의 여러 가지 육체적인 건강을 책임져야 될 조그만한 책의 무의식을 느꼈지 않았는가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누가가 이 사도행전을 기록할 당시에 그 연대는 한 80에서 90년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약간의 전체 개론을 좀 말씀을 드리고 바로 우리가 성경을 한 구절씩 읽어나가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절, 2절을 보시게 되면 대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여 승천하신 날까지의
이를 기록하였다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기 보면 대오빌로요라고 시작을 합니다.
대오빌로요.
그런데 이 대오빌로요 내가 먼저 쓴 그레는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이 대오빌로가 한 번 더 등장을 하는데 우리 한번 찾아볼까요?
누가 보금 1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누가 보금 1장 3절로 4절 말씀을 우리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누가 보금 1장 3절 4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대오빌로 각하에게 첫 차례대로 써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느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여기 보면 대오빌로가 또 나오죠.
그런데 이 누가 보금은 누가 썼어요?
누가가 썼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행전 1장 1절에 대오빌로요 내가 먼저 쓴 글이라고 하는 이 글은 바로 누가 보금을 가르친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사도행전은 누가 보금의 속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누가 보금은 예수님의 행적 예수님께서 사라생전에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또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 내가 먼저 쓴 글이죠.
누가 보금이죠.
그런데 지금 사도행전은 그 이후에 이를 기록한 것이니까 누가 보금의 속편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 어떤 영화가 있잖아요.
그럼 그 영화의 속편이 또 있잖아요.
그 이후에 제2부 해가지고 또 이렇게 만들어서 영화를 보여주는 것과 같이 누가 보금의 속편이 말하자면 그 다음 이야기가 바로 사도행전이다.
같이 이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누가 보금과 사도행전은 어떻게 보면 한 권의 스토리를 얘기하고 있는데 이 두 권의 책을 누가 썼다고요?
누가 누가 라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부터 승천하신 날까지 이 부분을 조금 우리가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이것이 예수님의 보금의 특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생전에 전하신 그 말씀이 보금이죠.
그 보금의 특성이 뭐냐 하면 행하시고 가르치신 거예요.
행하시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행함과 가르치심이 일치되는 분이시라는 것이죠.
우리 예수님은 본인이 행하지 않은 것을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본인이 행한 것을 가르친 거예요.
행하시면서 가르친 거죠.
기도하시면서 기도하라 하시고 찬성하시면서 찬성하라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이 기독교 보금의 특성은 어떠한 철학이나 어떤 생각이나 어떤 사상이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가르침이 일치된 그 사실만을 전하는 것 그것이 기독교 보금이죠.
예를 들어서 어느 종교의 어느 창시자는 본인이 행한 것을 가르쳤다라고 다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은 100% 그렇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것 그것은 자기가 행한 것으로 인하여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색을 통해서 깨달은 말을 설파한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서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행함과 가르침이 일치된 그런 가르침이다라고 하는 것을 주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쳤으니 그의 제자들도 행하고 가르쳐야 될 거 아니에요.
그의 제자들이 행하고 가르친 것을 기록하는 것이 뭐라고요?
사도 행전 그러면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이 여전히 우리들도 행함이 있고 또한 전하고 가르치는 일들이 같이 있어야 되겠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르치는 것 전하는 것만을 하려고 하니 힘들죠.
나 자신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힘들고 열매도 쉽게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함이 있고 그 행함을 갖고 전해야 두려움이 없고 자신이 있고 듣는 사람도 믿어주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음으로 2절을 보시겠습니다.
2절 우리 2절 한 번 더 읽겠습니다.
시작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지금 이거는 누가 보금의 상황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또 캐치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택하신 사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택하셨죠.
사도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저를 사도로 써주세요.
저를 제자로 삼아주세요.
라고 해서 삼아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택하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택하신 그 택함을 우리가 자세히 보게 되면 거의 대부분 볼품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자랑할 것이 없는 그러한 사람들을 제자로 택했다는 거예요.
어부가 다섯 명입니다.
어부만.
그리고 세리가 한 명이고요.
그럼 나머지 여섯 명은 뭐냐 기록이 없습니다.
직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사람들도 어부라고 하는 직업에 가깝지 않느냐라고 생각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갈릴리 그 근방에서 택하셨다고 봤을 때 거기에도 여전히 유력 환자가 있겠고 지식인들이 있겠고 회당이나 이런 데서 가르치시는 어떤 라비들이나 어떤 율법사들이 있었을 텐데 그러한 사람들을 택한 것이 아니라 가장 참 낮은 직업에 고기 잡는 어부들을 택하시고
또 그 당시 지탄받는 세리라고 하는 이 직업을 가진 마태를 또 택하시고 이런 것을 볼 때 우리 예수님이 택하신 것은 문벌이나 또는 어떤 지혜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택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볼품 없는 자들을 택하셔가지고 볼품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죠.
이게 대단한 겁니다. 여러분요.
할렐루야.
여러분 베드로 보세요.
얼마나 혈기 등등하고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이잖아요.
시몬 베드로거든요.
그런데 베드로의 별명이요.
들창코입니다.
시몬의 이름의 뜻이 들창코가 아니고 별명이 들창코래요.
그만큼 아주 못생겼죠.
그런데 그 사람을 잘 훈련시켜가지고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전우서를 읽어보세요.
얼마나 유명한 말을 많이 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유명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이렇게 유명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택하신 것은 위대한 일을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택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택하신 것은 의미 없는 택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더 위대하고 더 큰 그러한 위대한 인생을 펼쳐가라.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요. 성령으로 명하셨다 그랬어요. 여러분 이게 성령이 여기서 처음 등장을 하죠. 그렇죠?
그래서 증인이 생겨났잖아요. 제자의 사도들을 택했으니까.
그 다음에 성령으로 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명했다라고 하는 것은 성령이 이끌어 가셨다는 거예요.
성령이 이끌어 가셨다.
그래서 사도 행전에서 성령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사도 행전을 무슨 행전이라고 그래요?
성령 행전이라고. 성령이 다 지시하시고 성령이 인도하시고 성령이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성령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데 뭐.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3절을 보시겠습니다. 3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해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래서 해를 받으셨다는 것은 죽임을 받으신 후를 말해요.
여기서 해라는 것은 해암을 받았다. 죽임을 받았다.
또는 고난을 받으셨다. 그런 의미를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를 말하는 거죠.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서 40일 동안을 저희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먼저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40일이라고 하는 숫자 여러분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제일 먼저 등장하는 40이 언제 우리가 찾아볼 수 있어요. 성경에서.
40. 40년 광야생활. 40년 광야생활.
여러분 또 생각나는 거 뭐 있어요? 40하면.
저는 원고에 있으니까 다 알지. 여러분들은 없는데 어떻게 알으라고 막 질문을. 그렇죠?
어쩐지 막 자신 있게 얘기를 하던데.
여러분 모세가 신의 산에 올라가서 며칠 동안 하나님과 대면하며 십개 명을 받았어요.
40일. 40일.
여러분 또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도 40일.
또 지금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쳤죠.
자 이렇게 40, 40, 40, 40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우리가 큰 의미를 부여할 건 없지만 공통적인 것을 우리가 여기서 발견한다면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이 40이라고 하는 숫자를 썼다는 거예요.
뭔가 새로운 출발을 시작할 때 이 40은 시대를 열어가는 하나의 시작을 예고했다라고 볼 수 있는 거죠.
40년 광야 생활 이후 가난 생활의 시작.
또 40일 신의 산에서 율법 받고 그 위에 율법을 선포하는 거.
그다음에 예수님 40일 마교교 시험받고 공생에 시작하는 거.
그다음에 승천하시고 하시기 전에 40일을 가르치신 후에 그다음에 사도행전이 시작이 되는 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얘기한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러면 계속해서 이 40일 동안 행하신 일이 뭘까요?
40일 동안 행하신 것이 뭘까요?
첫째,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무엇을 나타냈다는 거예요?
친히 사심을 나타냈다.
여기서 사심다는 것은 부활을 얘기합니다.
아시겠죠?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그런데 확실한 많은 증거는요.
사보검수에 그렇게 확실한 많은 스토리로 얘기한 적이 없어요.
그냥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다 그렇게만 돼 있지.
그런데 누가 가슴 이 사도행전을 보시게 되면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자기의 부활을 나타냈다라고 얘기한 걸 볼 때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그럼 무엇을 나타냈습니까?
자기의 부활을 나타냈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이 부활한 몸을 드러내셨을까요?
왜 40일 동안 자기가 부활한 이 몸을 드러냈을까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목격한 증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겁니다.
절대 부활한 그 몸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기 위해서 40일 동안 부활한 그 몸을 보이신 거예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40일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함께 앉아서 얘기하고 함께 만져도 보고 창에 찔린 것도 집어넣어보고 옆구리도 손넣어보고 다 해봤을 거예요.
물론 도마는 제가 그러지 않아도 믿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초기의 예의를 얘기한 것이고 그 후에 40일 동안 계속 그와 함께 친히 있으면서 자기의 사심을 나타냈다는 말은 부인할 수 없는 예수님과 40일 동안 부활한 그 몸과 함께 거하고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자고 여러분 이거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럼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신 적도 없고 우리가 만져본 적도 없고 40일이 아니라 하루도 예수님과 함께 동거해 본 적도 없는데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더 확실한 것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겁니다.
여러분 봄으로 믿어지는 것은요 이건 외형적인 것입니다.
봄으로 믿어지는 것은 이것이 긴가 민가하고 나중에는 의심이 또 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은 어때요?
확실해요?
확실하지 않아요?
확실하죠.
우리가 선을 볼 때 아 이 사람 참 멋진 남자야 그래 아 핸섬해 그래 내 남편이야 하고 봄으로 그 외형을 봄으로 믿어지는 게 진짜 신뢰입니까?
아니면 마음으로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믿음을 갖게 하고 내가 신뢰함으로 믿어지는 그 믿음이 진짜인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 본 적이 없지만 우리가 더 확실하게 복받은 사람이고 더 확실하게 믿어지는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었다면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처음에 의심을 했어요.
부활을 믿지 않았어요.
자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굉장히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적기사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만 따라다니면 굶어죽을 일이 없는 거예요.
5천명을 먹이셨잖아요.
열두광주리를 남겼어요.
배가 터지게 먹고 더 이상 못 먹어.
열두광주리가 남은 거야.
4천명을 먹이시고 5천명을 먹이시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또 바람과 바다를 순정하게 하시고 또 뭐가 있을까?
무화과나무를 저주했더니 말라버리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말라버리는 거예요.
또는 여러 불치의 병을 고쳐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죽은 나사로를 살리지 않았어요.
이거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있어요 없어요?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아니면 십자가에 달려 살으셨어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죠? 이제는 끝났다는 거예요. 그것도 얼마나 철저하게 죽으셨는지 몰라요. 옆에 있는 두 강도는 다리를 꺾었어요. 확인사살을 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확인사살을 할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로 마 군병이 옆구리를 찔렀거든요.
피와 물이 다 쏟아져 내렸어요. 어떻게 살아납니까? 철저하게 죽었습니다. 너무 처참하게 죽었기 때문에 다� ��를 꺾지 않은 것입니다.
아니 그리고 무덤에 집어넣었잖아요. 로마 군병들이 지켰잖아요. 삼겹, 사겹으로 지켰어요. 그러니 얼마나 확 실하게 죽었냐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돌이 옮겨졌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보니까 안 계셔. 네가 찾는 예수는 살아나셨다. 깜짝 놀랐어요.
제자들에게 와서 예수님이 안 계신다고 그러니까 베드로가 막달라 마리아와 와서 보니까 진짜 안 계시는 거예요 .
제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의 신앙은 완전히 끝난 상태였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이 사실을 확인한 후에 열두 제자의 그 신앙은 회복됐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이 부활이라고 하는 이 신앙이 우리의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장차 부활할 그 부활도 부활이지만 내 삶이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영혼이 소생하고 내 삶이 다시 살아나고 나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샘솟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일상적 우리 삶에서 일어나야 될 진정한 부활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이것도 저것도 없어요.
장차 영원한 부활도 없고 우리의 삶의 그 어떠한 소망도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예수 부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어요.
그러므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죽은 자가 살아났어요.
오늘 장례를 치렀거든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문을 두들겨서 문을 열어보니까 죽은 사람이 들어온다면 놀랄 일이에요?
아니면 안 놀랄 일이에요?
분명히 놀랄 일이죠.
까무라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어요.
제가 한번 얘기를 해드릴게요.
3년 전에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이 아니고 이 이야기로부터 3년 전에 딸이 죽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 딸을 공동묘지에 묻었어요.
그러니까 3년이 지나서 3년이 지난 그 시점에 아니 깜깜한 밤중에 문을 두들기는 거야.
그래서 문을 열어보니까 딸이 살아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그냥 까무라쳤어요.
그 어머니가 아니 딸이 살아서 돌아왔으면 기뻐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이미 3년 전에 죽어서 장례 다 치렀는데 그 딸이 3년 후에 돌아와서 문을 두들겨서 열어보니까 딸이 어머니하고 들어오는 거야.
그러니까 까무라쳐 안 까무라쳐?
안 까무라쳐?
그냥 까무라쳤어요.
사연을 알고 보니까 3년 전에 이 딸이 가출을 했어요.
가출을 했는데 어떤 불량배가 이 딸을 자기 딸로 삼고 다른 시체를 관에 넣어서 연구차에 실어서 보낸 거예요.
자기 자기 딸로 삼으려고 주민등록증을 위조해가지고 관에 넣어서 이제 보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실수가 그 관을 열어보고 시신을 확인해야 되는데 다 뭐 완벽하게 서류나 이런 모든 걸 다 이렇게 조작을 해가지고 딸이 죽었다 하면서 주민등록증까지 다 보이면서 증거물까지 다 했는데 그거 뭐 확인해보고 있나 해서 이제 금방 화장을 시킨 거죠.
그래가지고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는 세상에는 가짜로 죽은 일이 있다.
그 말을 제가 얘기하려고 가짜로 죽은 일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가짜로 죽었어요.
진짜로 죽었어요.
예수님은 철저하게 완벽하게 죽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설 죽었는데 살아나셨다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건 부활이 아니죠.
그런데 예수님은 철저하게 죽으셨는데 부활했다면 그거는 진짜 부활이에요 아니에요.
진짜 살아나신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그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거거든요.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들도 부활을 할 수 있는 이런 놀라운 그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에 대해서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야 내가 설 죽은 게 아니다.
나 진짜 죽었는데 나 살아났지 않냐.
너희들 믿니?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주무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제자들이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2장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같이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 함께 보시겠습니다.
시작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
그러죠.
그러면 이 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죠.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큼 정말 중요한 것이 없어요.
여러분 사람이 사람의 죽은 시체를 보세요.
얼마나 보기 싫어요.
얼마나 비참해 보이고 얼마나 허무해 보이고 얼마나 보기 싫어요.
그렇잖아요.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살아있을 때는 막 예쁜데 생명이 딱 떠나잖아요.
그러면 아무리 예쁜 동물이라도 보기 싫어요.
빨리 묻어버리고 처리해야 돼요.
사람도요.
보기 싫은 거예요.
여러분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끔찍하고 비극적인 것입니다.
죽음은 인류의 가장 큰 저주이죠.
어떤 영웅 혹을 이 죽음 앞에는 초라한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부활로 그 사망의 권세를 짓밟고 일어선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 석가모니가 다시 살아났나요?
아니면 마오메트가 살아났나요?
아니면 또 뭐야 공자가 살아났나요?
누가 살아났어요 그러면 오직 기독교만이 다시 사는 부활의 종교를 믿는 것입니다 그가 살았으니 우리도 다시 살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 사실을 부인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예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없었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예수가 다시 살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사기죠 부활의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것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 다시 여러분들에게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구합니다
제자들이 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데 자기의 목숨을 건 거예요 자기 목숨을 건 거예요 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이 다시 회복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 믿음에 우리 목숨을 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도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사도들이 그랬다 우리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40일 동안 무엇을 또 하셨느냐면요 부활을 전하셨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1장 3절을 보시게 되면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이 바로 뭐냐면 보금입니다 보금 그래서 이제 트라이앵글이 생겼죠 하나는 증인 그 다음에 성령 또 하나는 보금
하나님 나라 이것이 이제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죠 그래서 이 트라이앵글 세 가지가 함께 가는 것 그것이 사도 행전을 이끌어가는 세 가지 요소다 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시작이 됐냐면요 예수님이 오시면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시작이 된 거예요
언제부터라고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이 오시게 되면서부터 하나님 나라는 시작이 됐다 하는 거예요 마가복음 1장 14절 15절을 보시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 15절 예 이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보금을 전파하여 가라사대에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보금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러분 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보금을 전파했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라고 왜 선포하시는 것입니까 그 당시에는요 하나님 나라에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어요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로마의 지배하에서 탄압을 받죠 세금은 걷어서 전부 로마에 송출을 하죠 종교 지도자들은 또 재물에 탐닉을 해가지고 전부 입만이 포켓하죠 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그래서 이런 저런 삶으로 전전긍긍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죠
뭐 병원이 있습니까 아니면 치료약이 따로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가지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면 약한 것을 고치고 모든 병을 고치시고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이 아주 작은 하나님의 나라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땅이 있고 어떤 영토가 있고 어떤 지역이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어떤 곳이든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곳을 통해서 통치하시느냐
교회를 통해서 통치하신단 말이에요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예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와야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야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야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어요 여러분 보세요 전쟁이 있지 않습니까
재난이 있습니다 이단이 참고를 합니다 여러분 기후의 변화를 보세요 지금 확실한 변화를 느끼잖아요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지진 얼마나 심각합니까 이러한 이 세상의 상황 하에서는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하나님 나라 외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서 선포되고 발현되고 나타내어 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눈을 떠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보여지는 세상에 눈을 뜨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늘 바라보고 사모해야 돼요 교회는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은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시작해갖고 하나님의 나라로 끝나는 거예요 아시겠죠 지금 사도행전 1장 1절 2절 3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봐봐도
하나님의 나라로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1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그 많은 사람이 없었더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에 있습니다 또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고요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일하고 있으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묵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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