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회01
유대인들의 위선에 대한 책망 20
장종규 · 롬2:17-24
제작일 2026.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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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청주교회
AI 설교 정리
로마서 2:17-24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책망한다.
본문로마서 2:17-24예레미야 7장
- 로마서 2:17-24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책망한다.
-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이방인보다 우월하게 여기며, 율법을 의지하여 자신을 높이는 자세를 보인다.
- 그러나 실제로는 율법을 범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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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위선과 책망
- 로마서 2:17-24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책망한다.
-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이방인보다 우월하게 여기며, 율법을 의지하여 자신을 높이는 자세를 보인다.
- 그러나 실제로는 율법을 범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 성경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교사로 여기며, 어둠 속에 있는 자의 빛이 되어야 할 자격이 없다'고 지적한다.
- '자신을 믿는다'는 표현은 자만과 방자함을 의미하며, 이는 유대인들의 위선을 드러낸다.
율법을 범한 자들의 심판
- 바울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과 율법을 가진 유대인 모두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 예레미야 7장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악행을 하며, 성전을 자신의 구원의 증거로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으시는 곳이었으며, 이는 유대인들의 착각과 위선을 더욱 드러낸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을 때의 결과
-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하기 때문에 영적인 눈이 멀어진다.
-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착각하게 만든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소경이 되며,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된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행하지 않아 영적인 소경이 되었다.
성도의 책임과 하나님의 판단
- 라오디기아 교회는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하고 불쌍한 상태였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드리지만, 듣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 참미수교회의 성도들도 진리와 성령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온전히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모독을 받을 수 있다.
-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해야 빛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성도가 진리를 온전히 행했는지 물어보시며, 그에 따라 판단하신다.
-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드시 행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성경말씀 로마서 2장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2장 17절에서 24절입니다. 로마서 2장 17절에서 24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2장 17절 유대인이라 칭하는 내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내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 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내가 내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내가 도적질하느냐 가늠하지 말라 말하는 내가 가늠하느냐 우상을 가진 여기는 내가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내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아멘 바울 차도는 앞에서 율법 없이 범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 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증거한 바 있습니다. 즉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건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건 범죄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유대인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것을 증거하고 있고 바울 차도는 이런 유대인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위선이라고 책망하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7절에서 20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17절에서 20절 바울 차도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내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이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바울 차도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유대인이라 칭하는 내가 라고 하는 이 표현을 보면 유대인들은 이들은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이렇게 칭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방인과 구별되는 명칭입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이방인들과 구별시키는 자신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 가운데는 스스로를 유대인이라 칭한다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이방인들보다 우월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런 부분이 이렇게 암시가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내용을 보게 되면 바로 유대인들은 그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거든요. 유대인이라 칭하는 내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의지하며 바울 차도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의지한다라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을 유대인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법, 명령 이것이 바로 율법인 거죠. 그런데 바울 차도는 이 율법을 유대인들이 의지한다라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의지한다라는 의미는 우리말로 기대다라는 거죠. 어딘가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대는 것입니다. 단지 어딘가의 몸을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매달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한테 구명 이렇게 튜브죠. 그걸 던져주게 되면 그 사람은 그 구명 튜브를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걸 붙잡는 거죠. 바로 그런 상태에서 붙잡고 기대는 것. 이게 바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장 중요한 것으로 붙잡는 것. 이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의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 율법, 유대인들이 율법을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붙잡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는 거죠. 율법을 떠나서는 이들에게 율법이 없다면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만큼 이들에게 그만큼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 율법을 의지하면서 18절부터 보게 되면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좁게 여기며 좁게 여기며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비드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율법을 의지하다 보니까 그 율법을 통해서 이렇게 한다는 거죠. 그런데 언뜻 보면 이들이 율법을 의지함으로 인해서 이제 이하에 나와 있는 그런 내용들이 선하고 그리고 좋은 것처럼 이렇게 보입니다. 사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의지하게 되면 그러면 그 선하고 거룩하신 그 율법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지극히 선한 것을 구별하게 되고 그리고 그 율법을 통해서 지식과 진리를 갖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러면 소경된 자의 길을 인도하면서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 되고 어리석은 자의 훈도 즉 선생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유대인들의 이런 모습에 대해서 20절 끝에 보게 되면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스스로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스스로 믿는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잠언 14장 16절에 보게 되면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스스로 믿는다라는 것이 방자할 때 스스로 믿게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방자하다는 것은 오만 방자하다 그런 의미인 거죠. 그러니까 오만한 겁니다. 자만한 그 의미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오만해서 스스로 믿게 된다. 스스로 믿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장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에스겔 33장을 보겠습니다. 에스겔 33장 에스겔 33장 에스겔 33장 12절입니다. 에스겔 33장 하나님께서는 이 에세아 현재를 통해서 악인이 돌이키면 살게 될 것이고 반대로 의인이 범죄하면 죽게 될 것이다 라는 그런 말씀하십니다 방금 읽었던 12절에 보게 되면 끝에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이로 인하여 살지 못하리라 라는 표현이 바로 그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의인이었던 사람이 악을 행하면 그 사람이 그 악으로 인해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을 행했던 사람이 의를 행하게 되면 살게 된다는 거죠 13절입니다 13절 13절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이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는 이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방금 12절 끝에 의인이 범죄하면 그 사람은 그 의로 인해서 죽게 된다는 거죠 그것을 13절에서는 바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에게 너는 살 것이다 살리라 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그 의리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는 하나도 기억되지 않고 결국 그는 그 죄악 가운데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스스로 믿는다는 표현이 나오는 거죠 그가 그가 그 의로운 행위는 그가 그 일을 스스로 믿는다는 것은 이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의롭게 의롭게 의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자만이라는 것입니다 자만하고 자구한 거죠 그래서 이 스스로 믿는다라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의지해서 이렇게 쭉 돼 있는데 그런데 스스로 믿었다라고 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면서 그것으로 인해서 스스로를 이렇게 높이 생각 다시 말하면 우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보다 율법을 갖지 못한 이방인들에 의해서 이들이 스스로를 자만하게 여기고 그리고 우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그런 자들을 경시하는 거죠 소경을 인도하고 어리석은 자의 훈도라고 하는 것은 이 유대인들이 율법이 없는 그 이방인들에 대해서 그렇게 비하하고 그리고 경시하는 바로 그런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의지하며 해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자만하게 자구하게 생각해서 이렇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참여수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참여수교회의 성도들이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고 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자구하고 자만해지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더욱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그런 삶을 살게 하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들이 이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도록 하게 하신 이런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참여수교회에 이런 진리를 주신 것은 우리 참여수교회의 성도들을 통해서 진리를 알게 하시려고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참여수교회의 성도들이 우리에겐 진리가 있고 그리고 다른 교회는 진리가 없다라고 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욱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도록 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스스로 믿었다라고 하는 그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돌하고 스스로 믿었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다시 말하면 이거는 착각하고 있었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들이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게 아닌데 유대인들은 스스로가 이렇게 된 것처럼 여기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걸 바로 착각이라고 하는 거죠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이 유대인들이 그냥 자기들을 그렇게 여기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구역시대의 유대인들이 바로 사실은 그런 모습이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레미야 7장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7장 예레미야 7장 8절에서 11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예레미야 7장 8절에서 11절입니다 예레미야 7장 8절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가늠하며 거짓 냉세하며 바알에게 분양하며 너희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쫓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느냐 이는 이 모든 가징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구렬로 보이느냐 보라 나곤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성경은 예레미야 선자 당시에 유대인들 남뉴다 백성들이죠 그들이 하나님 앞에 온갖 악을 행했다라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라고 이렇게 말하더라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은 남뉴다 멸망 직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이제 남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남뉴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온갖 악을 행하고 계속해서 그런 악을 행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이제 멸망시키려고 작정하시는 그런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이들에게는 멸망이 눈앞에 있는데 그런데 정자 이들은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라고 이렇게 착각하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하십니까? 오늘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보라 너희 눈에 이것이 도적의 구렬로 보이느냐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켜서 도적의 구렬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그 말은 이미 그 당시 예림의 선제 당시에 그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왜? 성전은 어떤 것입니까? 거룩한 전이죠 그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그러나 당시 이 예림의 당시의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지 않은 이 성전은 아무리 화려하고 그리고 보기에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것이죠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가리켜 도적의 구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이 백성들이 온갖 악을 자행하면서 바로 이곳에 와서 그곳에서 이렇게 성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해서 하신 말씀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어떻습니까?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막 재물을 팔고 돈이 오가고 장사하는 그런 모습이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여 거늘 너희는 강도의 구레를 만드는 도다라고 말씀하면서 예수님께서 그 성전에 있던 그런 기물들을 다 이렇게 엎어버리지 않습니까? 바로 여기 예매 7장에는 그 말씀을 인용하셔서 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하고 그 백성들이 보고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큰 차이가 7장 1절입니다. 예레미야 7장 1절입니다. 1절에서 4절까지 제가 읽겠습니다. 4절.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예배하려고 하는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전자 통해서 하신 말씀이십 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는 것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이 지금 들어가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전인데 성전인데 예레미야 살렘 성전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이 거짓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전이고 또한 이제 이들이 이 여호와의 전이 들어오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는 전에 있으니까 이들이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하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착각하고 있는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 바로 그 남뉴대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요? 이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이들이 보는 것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지금 영적인 눈이 멀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런 모습을 가리켜서 영적인 소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영적인 소경에 대해서 지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가 사람의 영적인 눈을 가려서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가요. 그래서 사람이 죄가 죄 가운데 있으면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보지 못하니까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심판하시려고 하시는데 나는 구원을 받고 있다. 나는 구원을 받았다. 라고 이렇게 착각하는 그런 모습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는 겁니다. 7장 13절입니다. 7장 13절. 나 요호하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백성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벽부터 계속해서 부지런히 말씀해도 이들이 듣지 않았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남미다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했지만 이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듣고 행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들이 지금 이런 영적인 눈이 멀어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사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게 정확한 거죠. 이들은 지금 전혀 문제가 없는 자신들의 문제가 없고 오히려 지금 모든 것이 지금 잘 돼가는 그런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게시록에 있는 라오디기아 교회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기아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이 라오디기아 교회에 문 밖에 서서 계속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입니다. 이건 지금 방금 읽었던 13주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남미다 백성들에게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씀해 바로 그 모습 을 이렇게 연상케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기아 교회에 문 밖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그들에게 말씀을 계속해서 하시는데 이들이 듣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듣지 않는다는 거죠. 성경은 이 라오디기아 교회가 어떤 상태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가 말하기를 라오디기아 교회죠. 너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여여 부족한 것이 없다. 나 내 곤고한 것과 내 가련한 것과 내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예수님 보시기에 라오디기아 교회는 벌거벗었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그런 상황인데 이 라오디기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여한 것이 없어서 나는 부자라 부여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이렇게 여기에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라오디기아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지금 라오디기아 교회의 상태가 심각한 상황인데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토해내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지금 이들은 아무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부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게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상태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상태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고 이들이 행하지 않아서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참여식의 성도들은요 구약시대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럴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항상 생각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 유대인들하고 오늘 우리 신약시대의 우리 참여식 성도들하고 닮은 꼴이 너무 많아요. 하나님께서 그 많은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택하신 민족입니다. 참여식의 성도들은요.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많은 그런 교회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참여식의 진리를 주셨습니다. 진리와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지런. 그런데 그 유대인들이 오히려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영적 소경이 되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이들은 심각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한 우리 참여식의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참여식의 성도들도 그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우리가 듣지 않으면 그 듣고 행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구약 시대의 선민들 또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 또 사도시대의 유대인들의 이런 모습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그런 의미와 교훈들이 있다라는 것을 꼭 생각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본문으로 돌아와서 보겠습니다. 로마서 2장 21절입니다. 로마서 2장 21절 말씀 2장 21절 22절입니다. 2장 21절 22절 21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내가 내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파는 내가 도적질하 느냐? 가늠하지 말라 말하는 내가 가늠하느냐? 우상을 가진 여기는 내가 신사물건을 도적질하느냐? 그러면 너희가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내 자신을 가르쳐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말 합니다. 내 자신을 가르친다는 뜻이 뭡니까?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하라. 율법이 이렇게 나와 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스스로한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르치고 스스로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울이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쳐도 스스로에게는 가르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대로 행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말씀대로 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억나십니까? 앞에 우리 로마서 2장 13절에서 하나님 앞에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오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가 의롭다심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셨던 것도 결국 이 율법을 통해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알았지만, 그래서 율법을 알았지만, 율법을 들었지만, 율법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성경 곳곳에 기록됐습니다. 성경 예수님의 시대에 유대인들도 똑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에게 이루었으니, 일러스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오, 보기는 보아도 알 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나는 말씀하면 이들은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유대인들에게 계속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듣긴 들었다는 것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은 보기는 하지만, 듣기는 듣지만, 정작 그 말씀을 따라서 행하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언제 하셨습니까? 씨 뿌리는 비우 말씀하시면서 하신 거예요. 씨 뿌리는 비우. 씨 뿌리는 비우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국은 좋은 땅이 되라는 거지 않습니까? 좋은 밭에 떨어진 씨이어야만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을 하실 때 바로 너희가 듣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긴 보라도 듣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 어떤 뜻이라고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고 순종하는 바로 그렇게 될 때, 그럴 때 말씀을 통해서 결실할 수 있는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이 말씀을 이사의 말씀을 인용해서 하셨어요. 이사의 말씀을. 결국 이사야 선자 당시에도 그랬었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사야 선자 시대 그랬고 아까 읽었던 예레미야 선자 시대도 그랬고 예수님의 시대도 그랬고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충분히 그럴 가능성들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긴 들어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요. 계속 행하라는 말씀이세요. 맞춘실제항에서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반석에 집을 지는 사람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창수가 나도 무너짐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나의 이 말을 듣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이 말이 뭡니까? 마태문 7장 21절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청계 들어가는 것이 아니오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자라면 그 말씀을 들은 자라면 그 말씀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석에 집을 지는 사람 같으니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창수가 불어도 무너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바로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창수가 난다는 것은요 마지막에 구원을 받기 구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있을 환란을 말씀하십니다. 큰 환란인 거죠. 그런 가운데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그래서 반석에 오랫동안 오랜 기간 동안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반석에 집을 지은 사람이 그런 가운데서 결국 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고 반대로 그렇게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게 되면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을 선지자로부터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도 행치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세요. 이들은 당연히 예수님께서 자기들 알 거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착각한 거죠. 이들은 당연히 자기들이 구원 받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결국은 마지막 때에도 구원이 결정된 그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 구원 받는다. 당연히 난 구원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정리에 가서 보니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세요. 23절입니다. 23절 말씀. 23절, 24절입니다.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내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자랑한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앞에서 나왔죠. 이들은 율법을 의지했다고요. 율법을 의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율법을 중요하게 여겼고 율법에 매달렸고 율법이 그 무엇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율법을 자랑하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자랑했는데 정작 이들이 율법을 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고 말씀하세요. 이들이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가진 것에 대해서 자랑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걸 가지고 하나님을 욕되게 했다는 거예요. 우리 참여수교회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료와 성령이 있습니다 모든 참미수교의 교인이라고 한다면 이거에 대해서는 다 자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 중에 우리 참미수교만이 진리와 성령이 있다. 이거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그 진리를 가진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모욕을, 모독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진리 가운데 안식일이 있죠. 안식일 진리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참미수교의 안식일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것은 이 안식일을 우리 성도 들이 거룩하게 준행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기 위해서 주신 거죠. 그런데 만약에 우리 성도들이 그 안식일을 온전하게 지키지 않아요. 그러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세례 성령은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주셔서 세례를 통해서 죄를 사안받게 하시지 않습니까?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수 있게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부리도록 주신 것들인데 정작 우리 성도들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트 5장에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기 위해서 너희 착한 행시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빛을 부르셨으니까. 빛을 내는 게 뭡니까? 말씀대로 행하는 거죠. 주의 말씀 내 발에 등교 내 길에 빛이라고. 우리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빛을 바라게 됩니다. 그 빛을 보고 이방인들이 그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데 만약에 우리 참여수계의 성도들이 우리에게 주신 그 진리와 성령을 통해서 빛을 내지 않는다면 결국은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마치 밤에 가로등이 빛을 환하게 밝히면 사람들이 그 빛을 통해서 이렇게 길을 잘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그 가로등이 길을 빛을 내지 못하면 오히려 길을 가다가 거의 부딪혀서 다칠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 참여수 성도들이 이렇게 영적인 그런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바라는 그런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살라고 우리에게 세례를 주시고 세례와 성령의 그 진리를 우리로 알고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우리 성도들이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면 결국은 유대인들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일반교회 오늘날 교회가 욕을 많이 먹지 않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나 뜻을 따라 행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하지 않다 보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욕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참여식의 성도들은 정말 특별한 그런 교회와 교회요. 또한 성도라고 우리가 인식을 항상 의식을 하셔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라고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진리와 성량이라고 하는 너무나 큰 것을 맡기셨다면 주님께서 반드시 마지막에 물으실 거라는 겁니다. 그런 합당한 삶을 살아낸지. 그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고 빛으로서 빛을 바라는 그런 삶을 살아낸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아낸지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 내가 하나님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 비극인 거죠. 반드시 하나님께서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준비해야죠. 바로 오늘 이런 말씀들을 들으실 때 이 말씀을 듣고 반드시 삶 속에서 행하도록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은 나를 위한 나를 지키는 그런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행하는 데 힘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찬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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