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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사도행전 강해 5.

김승도 · 행2:22-41

제작일 2026. 9. 1.

AI 설교 정리

AI 자동 정리

오순절 이후 베드로의 설교와 성령 강림, 교회 형성에 대한 강해가 진행된 예배 내용 요약.

본문사도행전 2:14-42사도행전 2:38
  • 예배에서는 찬송과 함께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강해하며 예수 부활과 성령 강림의 중요성을 강조함.
  • 베드로의 담대한 설교는 예수 부활을 중심으로, 청중의 회개와 세례를 촉구했으며, 교회 형성의 시작을 알림.
  • 성령은 구해야 받을 수 있으며, 예수를 믿는 자는 세례와 성령의 은혜를 통해 변화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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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개요

  • 예배 시작 전 반복된 인사 "안녕하세요"와 "아멘".
  •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열린 금요 저녁 예배.
  • 찬양 예배에서 여러 찬송가가 순차적으로 부름 (544장, 502장, 512장 등).
  • 예배 중 찬송가 번호 목록이 화면에 표시되며, "아멘"이 반복되어 강조됨.

말씀 강해: 사도행전 2장 14절-42절

  • 베드로의 설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중심으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긴 구세주가 되셨음을 강조.
  • 예수 부활의 중요성: 종교의 진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교리.
  • 베드로의 변화: 성령의 역사로 완전히 변한 인물로, 예수 부활을 확증함.
  • 청중의 반응: 설교를 통해 죄를 지적하고, 회개와 세례를 촉구함.

교회 형성과 성령 강림

  • 세례와 성령: 사도행전 2장 38절에 따르면, 세례와 성령을 받는 것이 구원의 해답.
  • 성령은 구해야 받는 은혜: 예수를 믿는다고 자동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구해야 함.
  • 오순절 이후: 3천명이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며 교회가 형성됨.
  • 교회 공동체 생활: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공동체로 성장.

성령과 방언의 의미

  • 방언: 성령을 받은 증거로 여겨짐.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이 방언을 언급.
  • 성령 역사의 일관성: 예루살렘, 사마리아, 고네루, 에베소 등에서 성령과 세례가 함께 전파됨.
  • 오순절 이후 복음 확산: 제자 수 급증, 제사장까지 기독교에 귀의하는 등 구원의 확장.
전사(자막) 전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식 금요 저녁 예배 찬양 예배 드리겠습니다.
첫 찬양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찬양 드리겠습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비비다가 멸이 조미로 오라 하시며 영광지니 나가리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세상 집에 내려놓고 빛난 멸루가 받아쓰고서 죄와 함께 다스리리 눈물 골짜기 더듬이면서 나의 갈 길 다가니 주의 피만에 내가 안기여 영원토록 살리로 오라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세상 집에 내려놓고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세상 집에 내려놓고 열린 천국미 내가 들어가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다스리리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나아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나아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열린 천국미 내가 가정 주가 내게 부탁하여 모든 역사 마치 예비하신 그 집에서 주의 얼굴 그 배월이 빛나라는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배월이 한량없는 영광지 주의 얼굴 배월이 성도들이 함께 노냐 할렐루야 미를리
나도 깊이 마이로 바다가 옆을 흐르리 빛나라 내 계집에서 지의 얼굴 배우리 얼려 놓는 영광지 주의 얼굴 배우리 이 세상에 사는 경향 주의 이름을 힘쓰고 독일 장마 떠날 때 지의 얼굴 배우리 빛나라 내 계집에서 지의 얼굴 배우리 얼려 놓는 영광지 주의 얼굴 배우리
502장 태산을 넘어 한국에 가도 전향 드리겠습니다.
대상으로 넘어 한국에 가도 빛 가는 대로 걸어 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날씨 변치 않니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이 차고도 넘쳐 알렐리아 지하니 힘차게 빛나 영원히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아니지 않아도 죽게 선양이 그대시고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지하니 캄캄한 밤이 주님 찬양하리
알레르다리 빛차게 빛고 영원히 주님 찬양하리 512장 내 주대신 주를 참 사랑하리
찬양하고 찬양 드리겠습니다.
내게 죄를 타고 하리라 그대들을 지지 내게 주지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지 날 사랑하사 그하시려고 지오십자가 거나 당하셨도다 그가 슬픈 시 내 주 배우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주 예수의 거대 이 길이 다가 신출될 때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이 평생이 멀지 깊이 이미 533장 내 맘의 주여 소망대소서 전화하겠습니다 우리 주여 소망대소서 고망대소서 즐거소 모든 일 흩뜨려라
맘이 나야 지라 주님 생각 날 빛나 빛나 함께 하소서 지레에 지려 말씀 이뤄서 언제나 네 안에 계십소서 지는 내 아버지 아니 나를 지는 내 삶을 고치고 세상에 영향은 앞에 없네 언제나 주님 나를 잃어라 주님 없네 맘에 그지 오니 영원한 주님 영원한 주님 창피하여라
영원한 주님 내 신비의 주님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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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영원한 주님 내 삶을 고치고
우리가 지금은 낙은에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모자나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시네 전사도 흠모하겠네 암혹해하라 신 고조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온 세상 만민들 흉악한 죄에서 떠나라 하시니
이 말씀 듣고서 새 생명 얻어라 이 기쁜 소식 전하세 주 내게 부탁하시네 전사도 흠모하겠네 암혹해하라 신 고조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영생의 복락과 천국의 갈 길을 만백성 알도록 나가서 전하세 주 예수 말씀이 이 복음 전하세 우리에게 부탁하셨네
주 내게 부탁하시네 전사도 흠모하겠네 아멘 아멘
말씀의 그 깊은 뜻을 깨닫고 주님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 유음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리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사도행전 2장 14절로 41절을 나눠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42절 사도행전 2장 14절로 42절까지 한 절씩 윤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러스되.
그때의 내가 내 영으로 네 남종이나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을 할 것이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고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들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는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 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시오.
희망이 그하리니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셨으니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선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대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런지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가 아로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또 이런 말로 확증하여 구원하여 가로대 너희가 이 폐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함께 읽겠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로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오늘 이 시간 여전히 변함없이 교회를 나오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사도행전 강의 다섯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어찌할 거라고 하는 소 제목을 갖고 오늘 이 말씀을 강의하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읽은 이 말씀을 세 달락으로 좀 나눠보면 14절에서 36절까지는요 베드로의 1차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1차 설교
그 다음에 37절은 우리가 어찌할 거 해서 듣는 자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고요 그 다음에 38절에서 42절까지는 보금의 이행과 교회의 건립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달락을 나눈 후 먼저 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이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 내용인데요
우리가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은 오순절 성령 강의를 통해서 이 베드로가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이 베드로가 아니고요 아주 탁월한 설교자로 변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베드로의 놀라운 그 설교의 강장이 여기에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신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내용도 나오고요 그 다음에 오순절 성령 강림에 이르기까지 아주 논리정연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23절 24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우리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 24절 시작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고 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받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 이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은 우리 예수님께서 우연히 어떤 한 인간의 손에 의해 갖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이미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해 가지고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라고 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목, 이러한 영성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참 대단한 거죠 베드로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어떻게 변했는지를 좀 보겠습니다 31절로 32절을 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31절로 32절 시작 미리 보는 거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의 보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시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 자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우리 베드로는요 다윗의 10편의 16편 10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0편 16편 10절을 보시게 되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하신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인 이니다
다윗은 자기가 죽고 난 이후에도 결코 내가 썩음을 당치 않게끔 다시 거룩한 자로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 하는 이 부활신앙을 얘기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다윗의 이 부활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확증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사실 우리 인류 역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없다는 거예요 뭐라고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류 역사 중에 종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종교가 다 같다라고 말을 해서는 안 되죠 즉 어느 종교이든 간에 믿는 목적지는 같다라고 말을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부활이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죽는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고요 그 다음에 그가 다시 살아났느냐 이 두 가지의 문제가 아주 중요한 핵심이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세상에 모든 종교에 교주가 있지 않습니까?
불교면 석가모니가 있겠고요 이슬람이면 마음의 특요가 있겠고요 뭐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 오면 공자님이 계시겠고요 그런데 그들이 죽었잖아요 그런데 누구를 위해서 죽었느냐 하는 질문을 던져놓고 보면 누구를 위해서 죽은 게 아니라 다 생이 다해서 자연스럽게 죽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다시 살아났느냐 라는 질문을 해보면 전혀 그들이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온 세상 인류를 위해서 죽었고요 그래서 그 죽음에 대한 목적이 정확했고요 그 다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활을 다시 증명하는 그래서 그 종교의 말하자면 그 중심이 주체가 될 수 있었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가 있는데 세상에 많은 종교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종교는 결국은 다 같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예요
여러분 수많은 눈꽃송이가 떨어지는데 그 꽃송이들이 다 같아요 아니면 틀려요?
생각해 보셨어요?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요 그것이 어떻게 결정체를 이루느냐에 따라서 다 틀립니다 하물며 하물며 하물며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다고 해서 그 종교는 다 목적지는 같다 방법이 틀린다 할지라도 가서 보면 다 같이 한 군데서 만난다 그렇게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무엇이 참된 종교이고 거짓된 종교인가 이것을 구분할 수 있는 핵심이 뭐냐면 부활이에요 부활 다시 사는 종교죠 다시 사는 종교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모름질기 어느 종교에 교주가 있고 주창자가 있고 더 남아서 내가 구세주다
내가 구세주다 내가 예수다 내가 불사주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부활을 해놓고 내가 구세주다 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증명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게 선포만 해놓고 죽으면 끝나는 거예요 그럼 누가 책임집니까?
그럼 누가 책임집니까?
그를 따르던 추정자가 또 다른 교를 만들고 또 다른 주장을 하고 또 다른 구세주가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모순이 있다는 거예요 석가모니 마오메트 공자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사람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그가 다시 산 것과 같은 그런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끔 하셨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 32절을 보시게 되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의 증인이로다 이렇게 베드로가 힘차게 설교를 하게 된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십자가를 전하고 예수 부활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
목적이 있는 죽음을 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 라고 하는 이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돼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끌려가시니까 다 도망갔어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그는 한때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그는 이적의사도 일으키시고 우리를 도난 받고 다 먹여주고 살리시고 그렇게 참 훌륭하신 분이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시체로 내려오시니까 모든 것이 물고품이 된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헛수고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셔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40일 동안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동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그가 부활한 사실을 직접 만져보게 하시고 확인하게 하시는 이런 일을 통해서 제자들의 신앙이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예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신앙이
다시 살아나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 십자가 그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래서 그는 나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잘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은 반등하는 거죠 주식이 반등하듯이 우리의 신앙이 완전히 회복되는 거예요
그러한 귀한 말씀의 그런 시간 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전후해갖고 완전히 바뀐 걸 알 수 있어요 이전에는요 얼마나 겁쟁인지 몰라요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했고요 저주했고요 혈기가 어떻게 왕성한지 그냥 칼을 잘못 써가지고
제사장의 종의 말고의 귀를 쳐서 그냥 참 그런 낭패를 또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령 강림 이후에는 진정한 제자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무엇이 베드로를 이렇게 바꿔놓았을까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바꿔질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 아주 오래전에 어떻게 개구장이고 말도 안 듣고 사고만 치고 그냥 뭐 아주 그냥 집안에서도 아주 그냥 혀를 내둘렀어요 그런데 그 형님이 아이 학생용원회를 갔다 오더니 완전히 바뀌었어요 완전히 그냥 어린 양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의 인격 그의 말 그의 행동 그의 모든 가치관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이렇게 강한 거구나 성령이 우리를 강하게 역사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가능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지금도 선한 양과 같이 열심히
주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은 그런 능력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죠 또 열심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를 바꿔 주십시오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계속 기도하면 성령이 내 인격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고 내 행동을 바꾸고 나의 모든 삶을 바꿔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런 사람으로 우리를 바꿔주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기도하는 일 우리가 우리가 그 기도가 절실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무엇을 주십시오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자꾸 주시라고 하는 기도보다는 나를 바꿔주세요 베드로가 베드로가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을 받고 변화된 것과 같이 나도 예수님의 일꾼으로 담대한 일꾼으로 쓰임 받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내식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추구합니다 여러분 계속 36절을 하나 더 보시겠어요 36절 이제 베드로의 설교가 듣고 있는 총중들을 향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36절 시작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령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입니다 여러분 이게 웬만한 강심장은 아니군요 이런 말을 하기가 참 어렵다고 난 봐요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하게
변했다는 거예요 베드로의 설교는 우회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입맛에 맞춰서 적당하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요 그것도 아니에요 여러분 사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누구죠?
지금
온 천하에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은요 그 사실도 잘 몰라요 그럼 실제로 예수님을 죽인 그 현장에 있던 그 사람들은 누굽니까 첫째 군중들 그 다음에 빌라도 또 누가 있을까 대제사장들 종교 지도자들 그런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때 그냥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바라보는 막 소리를 친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 당사자도 아니었던 지금 이들에게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다라고 얘기했다면 이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굉장히 베드로가 난처해질 수도 있어요 그럼 만약에 아니 이의가 있다 아니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고?
너 말 조심해라 아니 지금 듣고 있는 중에 상당히 거스린다 우리가 언제 예수를 죽였냐 하면서 막 몰려와서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면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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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아니예요?
베드로도 역시 용기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합해진 거죠.
그래서 오늘 성령이 그렇게 하실 것이겠지만 우리들도 용기를 갖고 담대하게 말씀을,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이 댁목에서 과연 뭐가 설교냐?
저 자신도 내 스스로를 반추해 보면 내가 상당 부분 청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에 집중한 설교를 많이 하지 않았느냐?
또는 청중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애를 쓰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과연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담대하게 설교를 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요.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백성들의 죄를 지정하고 있고요.
그리고 그들이 또한 자기들의 죄를 깨닫는 거예요.
37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질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랬어요.
그래서 설교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설교를 듣고 설교를 듣는 자도 자신들의 죄를 확실히 깨닫는 일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했을까?
이게 중요한 거죠.
베드로의 유차한 설교 아니면 베드로의 어떤 담대함, 용기 아니죠.
결국은요.
말씀의 빛입니다.
어떠한 프로페셔널하지 않아도 좋아요.
굉장히 아마추어적이고요.
아주 단순한 거라도요.
거기에 선포되는 말씀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듣는 자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말씀의 빛입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듣는 하나님 말씀을 말씀의 능력으로 받아들이시고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구합니다.
여러분, 사울이 담회색으로 이렇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가지고 옥에다 이렇게 넣으려고 공문을 가지고 아주 공식적으로 그냥 담회색이면 현재의 다마스커스 시리아의 수도 아닙니까?
이스라엘 바로 북쪽의 시리아 지역이고요.
시리아 위쪽에 터키, 소아시아 지역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 담회색으로 가던 중에 이 빛과 음성을 봤어요.
그래서 빛이 쫙 비치는데 사울이 확 쓰러졌어요.
아마 말을 타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서 가겠습니까?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같이 갔을 겁니다.
상당히 위치가 있는 만큼 그런데 그냥 빛이 비치니까 떨어졌어요.
그리고 음성이 들렸어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랬어요.
아니 주여 네 시오니까 그러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런 거예요.
야 여러분 이건 이 사울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이 사울 개인의 신변에서 처음 경험하는 그 현상이었어요.
이게 뭐냐 여러분 이게 사실이었을까요?
만약에 이게 추측이나 아니면 이런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면 사울이 평생을 그 음성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부인할 수 없는 너무나도 확실한 체험을 그가 받은 거예요.
그래서
너는 지금 집가라는 동네로 가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선지자의 집으로 돌아가 그가 너를 지도할 것이다.
눈이 보여야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그 사울의 뒷모습을 보세요.
그렇게 당당하고 그렇게 바리세적이고 그렇게 위치가 대단했던 그 사울이 그냥 빛과 음성을 통해서 쓰러져가지고 비틀거리며 꼼짝 못하게 포로가 되어서 그러고 하는 그 집가라는 동네에 가는 그 모습을 보자는 거예요.
인간은 그렇게 강하게 보였다 할지라도 그러나 가장 약한 것이 자기 자신이거든요.
가서 아나니아 선자를 통해서
거기서 보금의 대략을 설명을 받았어요.
바꾸고 보니까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가 어찌할 거라고 하는 지금 이 사람들의 깨달은 것 같이 사울도 자기 의 죄를 깨달았어요. 무슨 죄입니까. 사울이 어떤 죄를 줬습니까. 도적질을 했어요. 살인을 했어요. 아니면 남의 물건을 토색했어요. 음행을 했습니까. 뭘 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기 스스로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아주 유일하게 그가 저지른 대역죄가 있으니 바로 아나니아 선자를 통해서 깨닫고 보니까 내가 조상 대대로 섬겨왔던 그 하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욕실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했으니 네가 나를 핍박했다라는 것이고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완전히 회개하기 시작한 거예요.
내가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반등을 한 거예요.
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어찌할 거. 야 내가 너를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겠다. 나를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 로 책임을 다해라.
아
그래서 사울이 바울이 됐잖아요. 그래서 평생을 복음전하는 자로 주를 위한 사도가 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이 설교 말씀도 중요하겠지만 듣는 자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 해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 말씀의 빛을 통해서 자기의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았는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거는 정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건보다도 유리하여 우리의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그랬거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쪼개기는 커녕 전혀 감각이 없잖아요. 의사가 수술을 하면 집도를 한단 말이에요.
아픈 곳을 발견하고 도려내고 또 도려내고 계속 도려낸다는 거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죽은 부분들을 뜯어내고 수술을 해내는데 우리는 감각이 없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받았든지 아니면 받았지만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았다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고 말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두 번째 단락을 좀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37절에 우리가 어찌할꼬 말씀을 받는 자의 반응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여기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는 거예요.
이 찔렸다라고 하는 단어가 이 찔렸다라고 하는 단어가 이 찔렸다라고 하는 단어가 이 찔렸다라고 하는 단어가 카테 뉴게산 따라서 해보실랍니까?
카테 뉴게산 아이고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카테 뉴게산 이게 헬라오입니다.
헬라오인데 찔렸다라는 이 헬라오 언어를 보면 여러분 말 발굽 아세요?
말 발굽 말 발굽이 턱턱 하면서 치고 나가잖아요.
그럼 말 발굽에 의해서 땅이 움푹움푹 패인 그 상태 그 상태를 뭐라고 해요?
카타 뉴게신이라고 해요.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의 말 발굽의 땅이 움푹 패인 것과 같은 감정을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즉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당신들이 예수를 죽였다라고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고통 이 죄책감이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죄책감에서 죄책감을 안 갖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요.
그렇지 않을까요?
교회 와서 좋은 얘기만 듣고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려고 그러죠?
그래야 그래요.
졸지마! 그러면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쁘지 않아요.
기분 나쁘죠.
에이 다음에 교회 안 나올 거야?
사실은요. 졸지 말라고 하는 그 말이 뭐예요?
맞는 말이거든요.
엄청나게 큰 그런 뭡니까?
고통으로 찾아왔다면 이것은요.
건강한 죄책감이에요.
여러분 세상이 주는 죄책감은요.
비생산적인 죄책감이에요.
비생산적인 거.
그래서 이러한 죄책감에 걸리게 되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제 가게 되면서 개선이 아니라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그런 해로운 감정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것이 비생산적인 감정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잘 새겨들어서 건강한 죄책감을 우리가 갖도록 해야 돼요.
이건 하나님이 주신 죄책감인데 예를 들어서 성경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자기의 죄를 니우치면서 옥합을 깨트려 예수의 발 앞에 붙고 자기 머리털로 씻겼죠?
거기에는 심원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어요.
아니 왜 이 귀한 옥합을 낭비하냐 300대 날이나 더 되는 이 귀한 옥합을 가난한 자들에게 논아주지 여러분 이 여인에게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거든요.
그러나 그 죄책감이 긍정적인 건강한 죄책감으로 이게 이제 발이 되니까 자기의 죄를 통의하고 회복하고 하는 그런 쪽으로 이것이 잘 쓰이게 된 거예요.
여러분 삿개오도 보세요.
예수님이 개입하니까 자기의 죄를 깨닫고 재산을 다 논아주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됐잖아요.
세리의 기도를 보세요.
세리는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서 성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성전 문지방에 엎드려서 가슴을 치면서 통의하는 그 세리의 기도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누구의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으시겠느냐 바로 세리의 기도라고 했을 때 그 세리는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지만 오히려 그 죄책감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쪽으로 그 능력이 발휘되었다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듣는데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네 번째 세 번째 달라 사도행전 2장 38절 41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41절에 있는 말씀을 쭉 보시게 되면 이 내용은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 거라고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에요.
해답.
자 그 해답을 보게 되면 세례를 받아라 그 다음에 성령을 받아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어찌할 거라고 하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세례와 성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교리 가운데서 도구마에 해당하는 교의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도구마라고 하는 것은 따라서 해보실래요?
도구마 처음 들어보세요?
도구마 다시 한번 도구마 도구마 다시 도구마 옳지 도구마라고 하는 것은 도구마는 그것이 아니요.
그것이 아니고 그것도 헬라우인데 공적인 결의 사항을 도구마라고 그래요.
그래서 법정에서 선고한 공적인 결정 정부가 시행하는 사항에 대해서 법적인 결정 그것을 도구마라고 그래요.
그런데 도구마를 기독교가 차용을 한 거예요.
헬라우를 차용을 해서 교회에서 어떠한 일을 공식적으로 결정했을 때
그 결정을 도구마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총회에서 어떤 일을 결정하잖아요 그리고 공문으로 보내죠 그러면 공문에 실린 그 내용은 도구마가 되는 거예요 반드시 실행해야 되고 반드시 숙지해야 될 내용이죠 공적인 결의사항을 뭐라고 그래요?
도구마라고 한다 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이 도구마라고 하는 거는요 어느 종교가 지향하는 구원을 얻기 위한 절대적인 가르침을 도구마라고 그래요 예를 들어서 불교 같은 경우에서의 도구마는 찾아보니까 참선, 수행, 자성 이것을 아주 공식적인 구원을 위한 불교의 구원을 위한 도구마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 다음에 이슬람 같은 경우에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복종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루에 몇 번 기도해요?
하루에 세 번 어디를 향해서?
동쪽을 향해서 그 다음에 천주교 같은 경우에는요 미사 그리고 사랑과 봉사를 얘기하고 있고요 힌두교에서는요 지혜롭게 사는 것 욕심 없이 봉사하는 것 그리고 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기독교에서의 도구마는 뭘까요?
여러분 성경에서 찾아야 되겠죠 여러분 요한복음 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우리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로 5절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라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었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 날 수 있었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뭐뭐하지 아니하면 뭐뭐할 수 없다고 그랬죠
이게 도구마예요 기독교에서의 도구마는 거듭나야 된다는 거예요 불교에서의 도구마는 참선 스스로 수행하는 거 그걸 통해서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잖아요 그럼 기독교는 뭐냐 기독교에서 구원을 얻는 절대적인 가르침 그건 뭐냐 거듭나야 된다는 거예요 이 거듭난다는 건 뭘로 거듭난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바울사도는 어떻게 도구마를 얘기하고 있을까 디도서 3장 5절을 또 보시겠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다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국렬하심을 쫓아
중생의 시슴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 오직 절대적인 것이죠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도구마가 뭐냐 중생의 시슴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 도구마가 도구마의 근원은 예수님이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이거를 전승시켰습니까
베드로에게 그래서 베드로가 이 도구마를 언급했죠 그 어딥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 세례받고 제산받아라 성령을 선물로 받아라 이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는 예수님의 도구마를 실현시킨 거예요 그 다음에 바울도 역시 마찬가지로 중생의 시슴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이 도구마가 이렇게 전승되어 온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물이라고 하는 것은 물로 거듭나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물로 거듭나라는 것은 세례를 받고 제삼을 받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짝을 이루는 거예요 예수님은 물로 거듭나라고 그랬고 이 말씀을 계승받은 베드로가 실천한
예수님의 도구마는 세례를 받고 제삼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곧 세례라고 하는 것은 이미 계속 반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만 베드로 전서 3장 21절 베드로 전서 3장 21절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한번 찾겠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1절
우리 큰 슬을 읽겠습니다 시작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은 세례입니다 그래서 물로 거듭나라고 하는 것은 세례로 거듭나라 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러므로 같은 베드로가 말한 사도행전 2장 38절의 세례를 받고 라고 하는 말은 물로 거듭나라고 하는
예수님 말씀과 일치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로 거듭나라고 하는 말씀을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설교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약속한 첫 번째 열쇠입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
네 베드로 너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그리고 내가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리니 네가 무엇이든지 풀면 풀릴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매면 매일 것이다 라고 했을 때 그 천국 열쇠를 예수님이 주었으니 베드로가 그 천국 열쇠를 사용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사도행전이고
어디고 찾아봐도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들고 열고 닫은 일이 없습니다 없어요 그러면 천국 열쇠를 준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므로 천국 열쇠를 줬다면 베드로는 필연적으로 천국 열쇠를 사용해야 돼요 사용하지 말아야 돼요 사용해야 돼요 그 천국 열쇠를 사용해야 돼요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뭐냐 바로 세례받고 죄사함 받는 것 그리고 성령을 받는 것 이 두 가지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는 그 말씀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설계가 있는데 두 번째 열쇠가 있는데 첫 번째 열쇠는 물로 거듭나는 거예요
물과 성령이니까 하나는 물로 거듭나는 것 또 하나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거죠 성령으로 거듭나는 이 성령을 받는 일이 두 번째 열쇠인데 오늘 4등전 2장 38절 39절의 본문은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서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라고 하는 이 말이
곧 성령을 받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어떻게 받는다라는 얘기입니까 이 말을 그대로 이해하면 마치 세례를 받는 자에게는 성령이 선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임하는 것으로 왜냐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믿고 행하는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모든 일반 교회예요 예수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는 거라 정말로 그 뜻이 내가 구하지 않아도 성령을
그냥 동시에 받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않다는 성경 구절을 우리가 어디서 찾아야 될까요?
누가 보금 11장 13절 누가 보금 11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즉 구할 때 선물을 주겠다는 거예요 아시겠죠?
성령을 돈을 받고 주는 게 아니라 공짜로 주겠다는 거예요 다만 구할 때 그렇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동시에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을 구해야 받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약간의 교리 시간이죠?
사도행전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나가야 됩니다 그럼 여러분 성경을 보시게 되면 성령을 구해서 받는 일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도행전 8장에 사마하리아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며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베드로와 요한을 예루살렘 총령을 구해서 보냈단 말이에요
그래서 사도행전 8장 14절에서 17절까지의 내용을 보시게 되면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에게 안수하니까 성령을 받았다는 거예요 졸리십니까?
두 번째는 바울 사도가 사도행전 19장 5절 7절을 보시게 되면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만나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에게 안수하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거예요 세례를 받으면 동시에 그냥 성령이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안수를 하니까 비로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그들이 3천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이실 때는 다 도망갔어요 그런데 지금 이 3천명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거예요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걸 제가 몇 번 말씀드렸죠 예수님도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으니까 육체로 있을 때는 그래서 그가 3년 반 동안이라는 짧은 공생일을 마치고
일찍 부활승천한 거예요 그리고 성령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 있고 성령을 받게 하고 그들이 또 복음을 전해가지고 또 구원을 받게 하니 복음의 문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열렸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렇게 3천명이 세례를 받고 나서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여러분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교회를 이룬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42절 보시겠습니다 42절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시작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기서 나는 확신 큰데 3천명도 다 오순절 성령을 받아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지금 비하인드 가려있는 부분이라 생략이 되어 있으니까 아니 그러면 세례를 3천명이 받았는데 3천명이 다 성령을 받아서 똑같이 방언한 증거를 되시오 이렇게 얘기한다면 우리가 약간 근거가 부족하니까 좀 당황하겠죠 그러면 이 근거 없는 당황한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잘 보충하겠느냐
여러분 120명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성령을 받았어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세요 그러면 3천명이 그러면 성령을 안 받았을까요 일단 그런 약간의 모호한 추측성을 우리가 놓고 생각을 해보자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들이 가는 곳마다 한 것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성령 바치고 세례 바친 거예요 바울도 마찬가지예요 에베스 제자를 만나서 예수의 세례를 받아라 세례를 받고 안수해 갖고 성령을 바친 거예요 그러면 이 기간을 제가 좀 조사를 해봤더니 예루살렘의 이 기간이 뭐냐면 1장에서 7장까지입니다 이때 3천명의 세례를 받았잖아요
이게 33년이거든요 그 다음에 사마리아가 8장입니다 8장인데 34년 되던 해입니다 1년 차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보낸 이유가 뭐냐 확인하라는 겁니다 가서 봤더니 예수 이름으로 세례는 받았는데 성령을 받지 않았어 그래서 성령 받기 위해 기도했다면
그럼 3천명에게는 성령이 전혀 내리지 않았는데 그들은 따로 국밥으로 남겨놓고 지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가 사마리아로 간다는 얘기입니까?
문제가 좀 일치가 안 맞잖아요 그 다음에 고네루가 10장에서 등장합니다 이게 41년이 사마리아로 간다 33년에서 31년이면 몇 년이 경과한 거예요?
8년 그런데 여기에서도 베드로는 여전히 이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물로 세례 주면 그 말이오 하고 세례를 주라 명하니라 그랬어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받았으니 그 다음에는 저희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의 목힘을 들으미러라 그랬거든요 그 다음에 19장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이게 53년 되던 해입니다 장소는 에베소 여기에서 바울도 역시 그들에게 세례받치고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아서 방언다고 예언도 했잖아요 모두 몇 사람?
12사람쯤 되니라고 그랬거든요 그 다음에 이제 고린도 교회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던 그 해가 59년 되던 해예요 이때 보시게 되면 14장 18절을 보시게 되면 14장 18절을 보시게 되면 바울이 하는 얘기가 나는 너희들보다 방언 말하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너희들보다 방언 말하기를 더 힘쓰노라 그 다음에 39절은
절대로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 그랬거든 그러면 이 고린도 교회는 이미 다 성령 받아서 방언하는 것을 근거로 얘기한 거거든요 이런 것을 볼 때 3천 명만 성령을 받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이 일관된 성령의 역사의 흐름에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지 않을까요?
그래서 3천 명이 오승절 성령을 분명히 받았다는 사실은 기록에는 없지만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라고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복음이 거대한 물결같이 전파가 됩니다 2장 47절을 보시겠어요?
사도행전 2장 47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 시작 하나님을 참매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죽기 위해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랬어요 그것도 하루 걸러가 아니라 날마다 더하게 하셨으니까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그 다음에 사도행전 4장 4절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 우리 읽겠습니다 시작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더라 그랬어요 그 다음에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힘이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정하니라 이제는 제사장의 무리들까지도 기독교로 개정하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얘기하고 있는 구원의 선비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감사할 뿐 아니라
이 올바른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그러한 여러분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목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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