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될까? 엄이사야 장로 26.08.22

눅10:25-37

제작일 2026. 8. 22.
설명 펼치기▼
나는 누구에게 이웃이 될까? (#누가복음10장 25절~37절)
#TJC교회교육 #청년부예배 #사청부예배 #대학부예배 #학생부예배
#엄이사야장로 #TJC대방 #TrueJesusChurch

(눅10: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눅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눅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 하시니
(눅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10: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눅10: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하시니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AI 자동 정리

예수님은 이웃의 정의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확장하시며, 사마리아인의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 이웃 사랑의 본보기로 삼으셨다.

본문누가복음 10:25-37창세기 12
  • 예수님은 이웃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하셨다.
  • 사마리아인의 자비로운 행동이 진정한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본문 정리 펼치기▼

이웃의 정의

  •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37절의 말씀을 통해 이웃의 정의를 다루고 있다.
  • 율법사가 예수께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자, 예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핵심을 말씀하신다.
  • 율법사가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예수는 강도에 의해 다치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예로 들어, 이웃은 상황에 관계없이 필요로 하는 사람임을 설명하신다.

사마리아인의 행동

  •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 가지만,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겨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는 모습을 보인다.
  • 예수는 '이 세 사람 중 누가 이웃이 되었느냐?'고 묻고, 답변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라고 하신다.
  • 사마리아인은 부상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

이웃 사랑의 의미

  • 이웃 사랑은 종교적 틀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이다.
  • 예수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웃을 돕는 행동을 권장하셨다.
  • 이웃의 개념은 예수님의 시선에서 모든 사람을 포함하며, 이는 이웃 개념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웃 개념의 확장

  • 율법사의 이웃 개념은 제한적이었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웃을 모든 사람으로 확장했다.
  • 이웃의 개념은 인간이 좁게 해석했지만, 예수님은 이를 원래의 넓은 개념으로 회복하셨다.
  • 이웃은 강도 만난 자를 돕는 자비를 베푸는 자로, 예수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같으며,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 사랑이 드러난다.
  • 연약하고 소외된 형제자매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는 무리를 불쌍히 여겨셨고, 그 사랑은 사마리아인의 사랑과 같았다.
  • 예수님의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 하며,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눌 주님의 말씀은 누가 보금 10장 25절에서 37절 말씀입니다.
누가 보금 10장 25절로 37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어라 기록되었으며 내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대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
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쭤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의 이웃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남해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내외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체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 대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대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기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내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우리가 읽은 25절에서 28절 사이에 있는 말씀을 보면 어떤 율법사가 영생 얻는 길을 우리 주님께 묻고 주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합니다 어떤 율법사가 영생에 관심이 있었는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이렇게 묻지요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그럼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이 율법사가 잘 대답했지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신 말씀이었어요 그러니까 율법에 하나님의 계명에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 율법을 압축해서 요약을 하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건데
이것을 행하면 영생을 얻으리라 하는 말씀인데요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고 또 많은 것을 거기에 함축하고 있고 녹아있는 아주 풍부한 의미가 있는 그런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성경 전체를 창세기부터 게시록까지 모두 이렇게 다 살펴본다면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그것을 행할 수 있다면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이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원래 하나님 사랑 부분은 신명기 6장 5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리고 이웃 사랑 부분은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완이라 이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이 둘은 흔히 우리가 여기고 있듯이 별개인가? 다른 것인가?
사실은 별개가 아니고 이 하나라는 것이죠 결론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포커스가 이웃 사랑에 맞춰져 있어요 그러면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 사랑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본문 말씀 읽은 거 29절에서 37절 말씀을 쭉 보면 이웃의 개념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 어떤 비유를 들어서 지금 말씀하고 계셔요 비유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어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예루살렘은 이렇게 높은 곳이에요 그리고 산에 위치하고 있죠 산 꼭대기입니다 여리고는 거기서 한참을 내려가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 길에서 어떤 강도 맞는 사람 그래서 거의 죽게 된 사람을 중심으로 이 비유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사장과 레위인이 거기를 지나쳐요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개명인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그런 종교적인 의무를 몸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에 처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길을 가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마리아인이 등장합니다 사마리아인은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적대감이 있었죠 서로가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적대감을 넘어서 강도 만난 자가 유대인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이 불쌍히 여긴다는 마음이 매우 독특하고 강렬한 표현이에요 그는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죠 그리고 돌봐줍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죠 심지어는 이튿날 더 많은 비용이 든다면 그 비용에 대해서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하고 갑니다
이처럼 사마리아인은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지요 이처럼 사마리아인은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마리아인은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29절에서 한 율법사가 우리 주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이처럼 내 이웃이 누구냐는 거예요
이처럼 내 이웃이 누구냐는 거죠 내가 중심이에요 나 중심으로 봤을 때 내 이웃은 누구인가 이게 궁금했어요 그런데 36절에 우리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비유의 말씀을 다 하시고 다시 묻습니다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우리 주님의 말씀을 분석해 보면 강도 만난 자가 중심이에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중심이었어요 누가 이 어려움을 당한 강도 만난 이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니까 관점이 이동하고 있어요 시선에 변화가 있습니다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군가 나를 중심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데 우리 주님께서는 누가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강도 만난 사람을 중심으로 놓고 다시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시선의 변화를 감지할 수가 있어요 이 시선의 변화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열차가 이렇게 들어오면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갔어요 열차가 들어오니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바뀌었냐면 열차가 들어오니 노란선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와요 어떤 변화가 있죠?
예전에는 열차가 중심이었어요 열차가 부흐하고 들어옵니다 철로를 따라서 쭉 들어오면 저기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승객들이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열차가 중심이죠 그런데 그런데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은 이 안내방송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이 드냐 하면 열차가 들어오니까 노란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나를 중심으로 본다면 노란선 밖으로 물러나는 것은 철로 쪽으로 가는 걸 의미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사고 위험이 무의식적으로 사고 위험을 높인다고 해서 많은 여론 수렴 끝에 이 안내방송을 바꾸 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중심으로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승객을 중심으로 열차가 들어오니 노란선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도 시선의 변화 관점의 변화가 있어요.
예전에는 열차가 중심이었어요. 지금은 사람이 중심입니다. 시선의 변화 관점의 변화가 있죠.
우리 본문에 있는 이 이웃의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율법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내 이웃은 누구인가 이게 궁금했어요.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제목과 같죠?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 너도 이같이 하라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가 아니고 누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줄 것인가.
완전히 관점이 다르죠.
그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한번 살펴보면 이 율법사는 이웃의 개념이 이랬어요. 매우 제한됐어요.
이 율법사에게 이웃은 사마리아인은 이웃이 아니었어요.
이방인은 이웃이 아니었어요.
어린아이나 여성이나 노예들은 그의 이웃 개념에서 제외됐어요.
이웃이 아니에요. 그래서 실제로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배드릴 때 하는 기도문이 지금 남아있어요.
기도문 중에는 어떤 내용이 있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내용이에요.
굉장히 이웃의 개념이 좁죠.
그리고 남성 중심적인 이런 것이 거기에 배어있어요.
그래서 이런 이웃 개념을 가지고 있는 율법사가 내 이웃은 누구인가에 관심이 있었죠.
그런데 사실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에서 우리 이웃을 바라보면 관점이 달라져요. 시선이 달라져요.
우리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나의 이웃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내용을 이웃 개념의 확장이다 이렇게 이해하는 분도 있어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는 원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웃 개념이 이렇게 좁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웃 개념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이웃 개념의 회복이다.
회복이라는 것은 원래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뜻이죠.
이웃 개념의 회복일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선택하면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백성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시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창세기 12장 그 이전에는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었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는 이 백성을 통해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삼고 싶어 하셨어요.
그리고 온 세상의 빛으로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택하셨던 거예요.
예전에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면 이 말세에는 오늘날에는 거듭난 우리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택받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항상 이 선택받은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의 사명이 있어요.
그 사명은 무엇인가 하면 우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 말씀도 보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율법사는 이웃의 개념이 매우 제한되고 좁았다고 그랬죠.
또 남성 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매우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 편협한 시각의 이웃 개념이었어요.
거기서 나온 것이 할리에 같은 겁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할리에가 하나님의 뜻으로 정해진 것이죠.
할리에가 뭘까요?
할리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자신의 몸에 새기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내 몸에 새기는 겁니다.
그것이 할리예요.
그런데 여자들은 할리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남자들만 할리를 받았죠.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에요.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이 할리가 세례로 바뀌었죠.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면 그의 죽으심 또 그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자가 되고 하나가 돼서 이방인이나 여성이나 어린아이나 노예할 거 없이 다시 한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원받은 인간으로서의 회복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원받은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 거예요.
그래서 할리가 세례로 바뀐 것도 어쩌면 편협한 이런 것이 훨씬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그런 개념으로 회복된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오늘 이웃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없던 것이 원래 좁았던 것인데 이게 확장됐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원래 이웃의 개념은 아주 넓은 거였어요.
그러나 인간이 이것을 매우 좁혀놨다가 이 기회에 우리 주님께서 그 이웃의 개념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29절에 보면 내 이웃이 누구냐 이렇게 물었다면 36절에 보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우리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래서 내 이웃이 누구냐를 묻기 전에 내가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37절에 보면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웃 사랑을 지금 강조하고 있죠.
그런데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 중요한데 이것은 하나라고 제가 말씀드렸는데 왜 하나가 되는지 한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 찾겠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느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이라 이 말씀은 참 우리의 마음을 찌르는 말씀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우리는 항상 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늘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흔히 우리가 겪는 이 현실은 어떤가 하면 내가 가까이 하고 있는 그 가족이면 가족 나의 이웃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너무 쉽게 함부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마음에 찔림이 있죠.
왜냐하면 하나님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 둘은 둘이 아니고 하나인데 하나님 사랑 따로 있고 이웃 사랑 가족 사랑 가까운 친구 사랑이 따로
따로 있는 것처럼 이렇게 느껴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웃사랑의 실천이 굉장히 중요해요.
왜 그러냐면 이 이웃사랑을 통해서 성도들 사랑을 통해서 또 가족들을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올바른 이웃사랑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진심은 이웃을 사랑하는 그 모습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 순환적인 거예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흔히 우리 현실 속에서는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둘이 둘이 아니고 하나� ��는 것이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 사랑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혹시 연약하고 소외된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그런 연약하고 소외된 형제자매에게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지금 힘이 되어줘야 할 그런 연약한 형제자매는 혹시 누가 있는가?
한번 주변을 살펴보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본문의 그 33절 말씀에 이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이런 표현이 있는데 이 불쌍히 여겨 라는 표현은 매우 참 강한 표현입니다.
이게 헬라우로 이렇게 돼 있어요.
스플랑크 니 조마이 이렇게 돼 있어요.
그것의 의미는 창자가 끊어질 듯한 깊은 연민을 의미하는 거예요.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랑이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 바로 이거였어요.
그러니까 마태복음 9장 36절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합니다.
이런 말씀이 있는데 여기서 주님께서 이렇게 목자 없는 양같이 되어 있는 고생하는 무리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때 불쌍히 여기시니 하는 말씀이 아까 읽었던 그 내용입니다.
스플랑크 니 조마이 창자가 뒤뜰릴 만큼 마음이 깊이 마음 깊이 아파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그 사랑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 사랑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유대인 거의 죽게 된 유대인을 보고 느꼈던 그 마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아니 누구에게 내가 이웃이 되어주어야 하는가?
때로는 그것이 우리 부모님일 수 있어요.
부모님들도 위로 받아야 될 존재입니다.
그냥 늘 투정하고 이렇게 해서 부모님은 어른이니까 이런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에요.
가장 가까운 나의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또 교회의 형제 자매들 또 여러분이 가장 친하게 생각하는 여러분들의 친구들 우리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그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분들에게 우리가 이웃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이렇게 흘려보내야 돼요.
그래서 그 사랑을 통해서 다른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우리를 통해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면 내 손에 장미향이 남는 거예요.
목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공유

XFacebook
YouTube에서 보기

관련 지교회

대방교회

이 영상은 대방교회 채널의 콘텐츠입니다.

같은 채널 다른 영상

대방교회 채널 최신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