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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악한 말로 원망하지 마라

이남찬 · 민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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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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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장 1~3절을 통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태도와 그 결과를 강조하며, 현대 사회에서도 원망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신앙생활에서 원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세를 강조한다.

본문민수기 11:1-3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불이 진을 태웠다.
  • 현대 사회에서도 SNS와 익명성의 영향으로 원망이 늘고 있다.
  • 신앙생활에서 원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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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와 원망

  • 민수기 11장 1~3절을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함.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했고, 그로 인해 여호와의 불이 진 끝을 태웠다.
  • 모세가 기도하자 불이 꺼졌고, 그 장소를 '다베라라'라고 명명했다.

현대 사회와 원망

  • 현대 사회에서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쉽게 원망하고 불평한다.
  • SNS와 익명성의 영향으로 원망과 불평이 늘고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했다.

원망의 이유와 하나님의 인도

  • 원망의 이유 중 하나는 애굽에서의 풍족한 생활에 대한 회억 때문이었다.
  • 하나님의 인도는 풍요롭고 편한 삶이 아니라, 힘든 길을 걷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꿈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성장과 고통

  • 성장에는 고통(성장통)이 따르며, 하나님을 믿는 자는 고통을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국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거룩해지는 과정이다.
  • 하나님을 믿는 자는 과거의 고통을 잊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신앙생활에서의 자세

  • 원망은 큰 죄로, 하나님께 듣고 심판을 받을 수 있으며, 교회에서도 원망이 발생할 수 있다.
  • 원망은 마음의 문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 신앙생활에서 원망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죄와 용서

  • 인간은 죄인이며, 하나님은 죄를 가르치고 용서하신다.
  •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
  •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론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원망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 원망이나 악한 말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선한 말을 해야 한다.
  • 예배를 마치고 임시 직무가 진행되며, 찬양과 인사로 예배를 마무리한다.
전사(자막) 전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나눈 말씀 민수기 11장입니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우리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 3절의 말씀 우리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게 악한 말로 원망하며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심에 백성이 모세에게 불을 지지 모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구였더라.
아멘 오늘 이 시간에는 악한 말로 원망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요 굉장히 원망하고 싶은 마음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특히 여름철에 무슨 지수가 높다고 합니까?
불쾌지수가 높죠.
그래서 여름철에 우리 아이들과 산행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온도는 뜨겁고 또 습도는 높으니 불쾌지수가 높잖아요.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뭐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 없이 잘 가다가요.
어떤 한 아이가 너무 힘든 나머지 조금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많은 아이들도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속에 있었던 자신들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그 학교 선생님들이 이러면 안 된다.
아이들을 이렇게 타일렀지만 아이들은 계속 뭐라고 뭐라고 했대요.
요즘 또 아이들이 잘 안 참잖아요.
그래서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요.
어떤 집단이나 사회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요.
모두가 처음에는 아무런 말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사회를 이룬다는 것과 그 집단에서 한 구성원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에 대해서 너무 빠르게 이야기하거나 또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든 점이 있다라고 다 이해하는 바가 있죠.
그러나 요즘 세상은요.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 사람들은요.
굉장히 자기 원망과 불평과 악한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시대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익명성 때문이에요.
SNS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을 그냥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 솔직하게 인터넷 세계와 SNS 세계 속에서 엄청 많이 말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젖어들어서 오늘날 조금만 힘든 일이 있어도 당연히 이거에 대해서 불평하고 불만을 말하고 제기하는 것을 나쁘게 보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그걸 나쁘게 안 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요.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지 그거를 나쁘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갈 때는 좀 참아야 되는 면도 분명히 필요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지 못하고 말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원망을 하여 다베라라고 칭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지요.
그래서 민숙이의 역사를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같이 다루게 되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는 원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사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통해서 우리가 원망에 대한 생각을 좀 해보고요.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악한 말로 원망하지 말아야겠다.
한번 교훈의 말씀을 같이 삼아보고자 합니다.
자 우리 1절 말씀인데요.
한번 우리 같이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광야의 여정 가난 땅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시작하자마자 뭐 하기 시작했습니까?
원망했다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그들이 왜 원망하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였습니다.
군대.
하나님의 군대였고 그 군대는 우리 군대 다녀오신 형제님들은 잘 아지 않습니까?
조금 하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토다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아무 말 하지 말고 복종하라는 게 군대의 미덕입니다.
그리고 그게 군대라는 조직계의 특수성인데요.
그게 맞기도 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니까 군인답지 못한 모습을 바로 보여주지요.
왜 이들은 원망했을까요?
그들이 원망하게 된 이유는요.
맥락상으로 보면 바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10장 3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기 시작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무엇으로 인도했습니까?
언약괴와 우리 민수기 9장 15절부터 나오는 우리가 살펴봤듯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인도하셨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게 가장 복된 길이며 가장 행복하고 또한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로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게 가장 복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우리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행복하고 다 뭔가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했다는 거예요.
왜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원망하게 됐을까요?
그 이유는 민수기 11장 5절 말씀 보겠습니다.
우리가 또 다음 시간에 같이 볼 거지만 11장 5절 말씀 보면 그 이유 중 하나예요.
이거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인데 11장 5절 보시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갑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나아가는 길을 가보니 주변에 뭐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자기네들이 애굽 땅에서 왔는데 애굽은 먹을 게 넘쳐났습니다.
실제 애굽이라는 땅은 먹을 게 넘쳐나 너무 풍족해서요.
먹을 것으로 기근으로 걱정하는 나라가 전혀 아니에요.
여러분 그래서 먹을 게 해결이 되면요.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이 놀이 문화가 그때 발전하는 거예요.
먹고 살기 바쁘면요.
농사하기 바쁘면 그런 거 발달 안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왜 갑자기 철학을 말놀이를 하기 시작했냐.
먹고 살만 하니까요.
우리 이게 인간입니다.
우리 좀 경험이 느껴지 않습니까?
좀 여유가 생기면 그때서야 여가 생활이라는 게 생기지.
그래서 가난한 국가에서는 요트, 골프 이런 거 할 수가 없고 할 생각조차도 없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서도 나름의 즐깃거리가 있지만 발달이 잘 안 돼요.
그런데 애굽은요.
굉장히 많이 발달되었고 축제도 굉장히 많았고 아주 좀 다양한 것들이 많았어요.
그들이 그곳에서 400년을 살아왔거든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곳을 떠나왔는데 자기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가는데 뭐밖에 없어요?
뜨겁고 덥고 힘들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인도함을 받으니까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요.
뭔가 부귀 영화를 누리거나 무엇이 풍족한 그런 삶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뭐가 자꾸 생기는 거예요?
원망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우상처럼 성기는 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꿈도 포기할 때가 옵니다.
저도 음악을 이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포기했거든요.
그런데 그 괴로움이 굉장히 큽니다.
괴로움이 없다라고 말하면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인지라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포기한다는 것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우리 어떤 형제님은 돈을 굉장히 잘 버셨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돈을 메이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신앙생활 하기도 힘들고 나도 굉장히 각박해지고 이것을 아둥바둥 사랑하기 맞을까.
그래서 돈을 잘 버시는 사업을 하셨는데 그만두셨어요.
사랑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런 거예요.
우리 어떤 한 형제도 전에 다니던 직장이 굉장히 월급이 강했어요.
사회 초년생 치고 제약회사 쪽에 일했는데 그런데 자기가 결혼을 하고 이제 좀 더 규모가 작은 우리 교회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이직을 결정 했습니다.
월급이 거의 반토막 났대요.
그리고 나서 평소 자기가 쓰던 대로 못 쓰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느꼈대요.
돈 100만원 200만원 더 번다는 게 삶의 질이 엄청 바뀌는구나.
그래서 후회하냐 하니까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냐.
이 또한 주신 거에 감사하다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요.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게 결코 아니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천국이라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거룩해져 가는 그 길.
그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덥기 더운 곳을 다니며 괴롭고 힘든 곳을 건너가며 가끔은 바로 코앞에 있음에도 왜 굳이 뒤로 돌아 길게 우회해야 하냐는 거예요.
그저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도하심을 아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보고 또 지금 내 몸이 괴로워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에 원망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보셔야 됩니다.
교회적 측면에서도 교회가 힘들고 어려운 길 갈 때가 많아요.
그러면 앞으로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여러분 성장을 한다는 것은 결국은 성장통이라는 걸 겪어야 되는 거예요.
저는 전혀 몰랐는데 신생아 아이들도 몸이 급격하게 자라면서 좀 아프대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거에 대해서 전혀 몰랐을 때는 왜 애가 왜 이럴까 하는데 자라기 때문에 아프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교회가 성장하거나 혹은 나아 개인이 성장하는 것도 결국은 어려움을 만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이 인도 하심을 받는 것인데 우리는 그 괴로움밖에 기억이 안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이 너무 괴로운 걸 버티기 어려워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사람이 받는 그 괴로움과 고통 아무리 이해해 주려고 해도요.
당사자만큼 당사자가 사실 그것을 우리가 완전히 공감해 줄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정말 괴롭거든요.
가난함으로 인하여 정말 괴로웠던 일, 병으로 인하여 괴로웠던 일, 배신당하여 괴로웠던 일, 여러 가지의 � �로움들이 있는데 그 괴로움 가운데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어도 그 괴로움을 완전히 잊으려면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계속 말하거든요.
나 힘들었다.
우리 그런 일이 있었다.
우리를 막 이렇게 돼 있다.
개인의 삶이거나 교회를 향해 막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거는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었던 과정 속에 대해서 믿지만 온전히 믿지 못하는 태도라는 거예요.
정말 믿는다면요. 과거를 괴로웠던 거 다 잊어버리고 더 이상 원망이 없어야 되는데 누구처럼요?
요셉처럼이에요.
그리고 요셉의 마지막 시험은요.
형들이 너를 팔았던 그 형들을 진짜 온전하게 용서하는 그 길.
그래서 여러분 요셉의 이야기 중에 그 마음의 상처가 사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잖아요.
그거를 치유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게 사실 한 개의 제 얘기를 해요. 요셉의 이야기에서.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게 뭘까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봤는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밖에 못 본 거예요.
하나님을 믿어서 왔는데 눈앞에 뭐밖에 없어요? 황량한 사막밖에 없는 거예요.
도대체 뭘 바라고 우리가 왔냐는 거예요.
애국은 정말 넘쳐나고 즐겁고 최고고 위대한 것들이 많은데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온 게 이거냐?
그러니까 불만이 잔뜩 쌓고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위한 선택을 하잖아요.
눈앞에 뭔가 확 달라질 것 같죠?
아닙니다.
달라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요.
별로 달라지는 게 없어요.
오히려 괴로운 일이 더 늘어나기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끝입니까?
그 괴로움 속에 사는 거예요?
아니죠.
여전히 그 결과라고 우리가 착각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쭉 나아가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결국 이 인도하심의 끝은 어디였습니까?
가난한 땅이었잖아요.
우리는 그곳에 도달할 때야 비로소 아는 거예요.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을까?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굉장히 공감하실 거예요.
왜 내가 그때 이런 삶을 만났고 또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으로 이사와서 또 이렇게 살아갔고 왜 나는 거기 갔으며 왜 이런 생각을 했고 또 어쩔 때는 실수하기도 했고 죄를 짓기도 했지만 또 다시 하나님을 찾아왔고 이런 모든 것들이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네.
하나님은 모든 걸 다 미리 하시고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고 계셨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걸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갖는다는 게 정말 정말 어렵다는 거예요.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야곱처럼 나이가 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됐을 때 비로소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죠.
우리가 그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게 되었는데 우리 민숙이 11자 1자에 다시 돌아와서 보시면요.
백성이 여우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메.
여우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우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끝을 사르게 하시메.
그래서 이들이 원망했어요.
원망 있습니다.
마음의 불평불만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얼마든지 우리가 불편한 곳이 있고 또 굉장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마음속에 품고 그냥 소화시키면 되는데 그걸 하진 못하고 뭐가 문제였어요?
원망했다는 거예요.
사실 이들이 하나님의 군대인데 11장 1절을 조금 자연스럽게 말씀드리면요.
그들이 원망하는 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군인으로서 살아가야 되는 자들이 원망하는 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악한 말로 원망했고 그게 누구 귀에 들어갔습니까?
하나님 귀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원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이냐.
하나님은 이거에 대해서 굉장히 들으시고 진노하시고 심지어 불로 그들 진을 끝을 사르면서 완전히 가둬버리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 가운데 갇혀버린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무서운 경고를 하신 것이죠.
오늘날 이 원망이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피해야 되는 또 가장 이겨야 되는 그러면서 가장 짓기 쉬운 죄입니다.
왜냐하면 말로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 고린도전서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고린도전서 10장 10절 말씀 보겠습니다.
10장 10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였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리고 11절의 말씀도 보면 결국 그 민숙이의 우리가 읽고 있는 말씀의 이야기죠.
원망하는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너희가 거울로 삼아서 스스로를 잘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이 정말 큰 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우리 사람은요 보통 간음, 살인 이런 것은 굉장히 큰 죄로 여깁니다.
그런데 거짓말, 원망하는 말, 질투하는 말, 화내는 것 이런 것은 별로 그렇게 대주로 있지 않게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크고 작음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죄라는 본질은요. 여러분 한 번 원망했다고 사람이 지옥 가도 됩니까? 원망한 사람이랑 가늠한 사람이랑 누가 지옥 가야 돼요? 둘 다 심 판받아야 됩니다.
본질적으로는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다 죄라는 거예요. 크고 작음은 교회의 치리와 하나님의 나라의 어떠한 운영을 위하여 우리가 논하는 것일 뿐이지 본질은 다 죄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다음 시간 보지만 세상에 가장 많은 죄이고 사람을 죽이는 게 사실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 계속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가르쳐주지도 않고 안 와도 합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튼 원망하는 것이 결국 작은 죄가 아님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민숙이 본문에서 하나님이 경고하신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그들을 바로 하나님이 심판하신 게 아닙니다.
오늘은 경고로 끝났어요. 왜 그럴까요?
너희 다시는 원망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악한 말로 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악한 말들이 많이 나왔겠습니까?
다양한 말이 나왔겠죠.
그래서 교회에서도 원망하는 일이 나올 수 있어요. 우리 사도행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 자 1절 말씀 보겠습니다.
여러분 여기 보시면 사도교회가 너무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남자 수만 5천명만 이렇게 세를 받았는데 한 몇 명이겠습니까?
다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 아닙니까?
우리 교회가 한 100명만 평균 출세 100명만 돼도요.
교회 운영하는 거 진짜 힘들어요.
엄청 바쁩니다.
그런데 2만 명 된다 생각하세요.
얼마나 더 바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구제하는 일을 했는데 헬러파 유대인들이 그들 가운데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졌어요.
그래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교회가 어떤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까?
어떤 큰 시련에 빠진 거예요?
구제에 빠진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뭐가 문제였습니까?
원망했다는 거예요.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요.
굉장히 어쩔 때는 본질적인 거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아무것도 아닌 문제에 막 혈안을 갖는 경우가 있어요.
한 그릇도 되는 문제가 있어요.
여러분, 고기를 제가 들었던 얘기인데 고기 있잖아요.
고기?
지금 까먹었네.
고기인지 김치인지 모르겠는데 김치를 이렇게 썼든 이렇게 썼든 이게 뭔 상관입니까?
그런데 그거를 자기가 원한 데서 썰리지 않았다고 막 주방에 버럭버럭 화를 낸 경우가 있었답니다.
그게 중요합니까?
아니잖아요.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회의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원망하는 일이 발생하니까 사도들이 큰일이 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2절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괴를 쌓는 것이 마딱치 아니하니.
그래서 사도들이 영적으로 충만했던 사도들이 이 원망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이것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 했을까요?
그들은 알았어요.
이거는 무슨 구제 시스템 아니면 이런 것들을 잘 준비해서 가다듬으면 해결된다?
가 아니에요.
사도들은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못 가르쳤다는 거예요.
이게 원망을 해결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요.
세상을 살아가면서요.
원망하지 않으려면요.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어요.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요.
막 불평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으며 해결하더라도 더 큰 소음을 내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을 다 들어준다고 해서 원망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보세요.
배고프다 하니까 만나줘도 원망하고 고기 달라 해서 고기 줘도 원망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뭘 해도 원망이에요.
결국은 마음의 문제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원망하지 않고 사는 정말 그런 신앙이 되려면요.
말씀에는 불가능한 거예요.
이건 그 교회 운영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결국 행정이 다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 행정은 행정을 통해서 해결하거든요.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가 해 줄 수 있어도 하지 않는 데 이유가 있는 것이며 그 안에는 말씀을 통해서 내가 부족하든 풍족하든 만족하고 자족하며 남을 섬기고 인내하고 그런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며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
그럴 때 원망하지 않는 자가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그런 분들이 병 걸리고 다치셔도 감사하다고 표현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문을 봉구차 옛날 있잖아요.
거기에 손이 있는 상태에서 어떤 분이 실수로 문을 세게 닫은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손가락이 딱 껴서 어떻게 했을까요?
손가락이 부러진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감사주라고 한 거예요.
손가락 다 부러질 뻔했는데 몇 개만 부러졌다고.
이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원망하고 굉장히 악한 소리를 할 수도 있는데 그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말씀이 있었던 거예요.
말씀으로 뿌리 내린 신앙.
그것만이 우리가 원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을 하면 불편한 거 있을 수밖에 없어요.
특히 우리 한국 사람 특성상 여러분 한국인만큼 불편한 거 못 참는 나라 없습니다.
중국, 한국인 불편한 거 못 참는 민족이에요.
그 증거가 뭔지 아십니까?
우리는 아날로그 다 디지털화 해버리거든요. 순식간에.
그것이 우리에게 민족적 특성으로 있다 보니까 교회에서도 고스란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조금 뭔가 아쉬운 게 있으면 막 불평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거를 해결해주면 다 될 것 같죠?
또 다른 새로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시켰는데 탕수육이 나왔는데 뭘로 나온지 아십니까?
탕수육이 나왔는데 소스를 따로 이렇게 준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막 불만을 얘기한 거예요.
자기는 탕수육을 볶아서 주길 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반장이 예 하고서 가져와서 볶아서 줬대요.
또 컴플레인을 걸었어요.
뭘로 본지 아십니까?
소스를 왜 이렇게 많이 넣고 볶냐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가지고 거기서 상을 엎었답니다.
끝도 없다는 거예요.
사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면 사도들은 그걸 안 거예요.
교회에서 원망이 나오는 것만큼 가장 큰 문제가 없는데 그 문제를 무슨 구제나 이런 것을 잘 준비하고 불만과 불편과 불편함이 없는 것으로 해소함으로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무엇으로 이것을 해결해야 된다?
말씀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그랬을 때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감사해요?
우리 전에는 지하에 계시 않았습니까?
지하에서 예배당 있으면 습도 문제, 습기 문제, 공기 문제 막 별의별 문제들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힘들어요.
근데 오늘날 우리 정말 좋은 곳에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실 사람이 원망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또 내 마음을 다스리는 한 가지 방법 중 하나는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는 거예요.
더 나아지지 않았냐?
그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종이었던 사실을 닦아먹었어요.
뭐만 남은 거예요?
먹을 게 없고 누릴 게 없고 그게 기분 나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리석은 일을 하면 안 되겠죠.
우리 민수기 11장 다시 가보겠습니다.
민수기 11장
2절에서 3절 보겠습니다.
2절에서 3절 보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불을 지짐으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경고의 메시지를 봤어요.
불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래서 그들이 결국은 하나님 앞에 바로 모세에게 불을 지셨죠.
이것이 바로 예표적이지요.
모세에게 부탁했고 모세는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이 그 불을 거두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원망하거나 그 외에도 수많은 죄를 지으면서 사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 안 해주십니까?
용서해 주십니다.
진심으로 회개할 때.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 또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알면서도 불구하고 또 기회를 주고 또 기회를 주셔요.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또 한 번 실수하고 또 넘어져도 심지어 우리 1만 달러한테 빚진 자 이야기 사실 우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몇 대나리온 빚진 자기 그 동료 가두다가 함부로 하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임금이 부끄러워 가지고 어떻게 합니까? 민망해서 갚아버리라고 하죠.
우리 하나님 마음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또 한 번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그 � �로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안다면요.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성도로 인하여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도요.
그 원망하는 마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요.
나는 하나님 앞에 구원 받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이제 모든 게 망했어.
나는 끝났어.
아닙니다.
용서해 주세요.
심지어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도 발을 씻기는 사건이 나옵니까?
가룬유다예요.
여러분 가룬유다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예수님께서 만약에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만약에 가룬유다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니우쳐 나왔다면 용서해 줬을까요?
해 주셨을 거예요.
그게 예수님이 세종예 때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예수님의 마음을 이미 자기를 팔자를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하고 구하면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이라는 것을 해서 하나님께 큰 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이 그 죄 또한 오늘 또 한번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경고해서 끝났어요.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죄를 지었을 때 경고하실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지만 매 안 드는 부모가 아니에요.
우리 세상에서도 우리 금쪽이들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매 안 들어서 라고 얘기하지 않 습니까?
훈육을 안 해서다.
그래서 제가 흥미로운 걸 봤어요.
어떤 아이가 선풍기에 자꾸 손가락을 넣으니까 아빠가 선풍기에 손가락 넣으면 안 돼? 이렇게 얘기했대요.
그런데 또 넣었대요.
그래서 넣으면 안 된다니까 한 번 더 했대요.
그런데 또 넣으니까 이번에 아빠가 화나가지고 막 버럭버럭 화내면서 손을 강제로 잡아다가 그러면 손 다 넣어버리라고 늘려 했대요.
얘가 어떻게 했을까요?
기겁하면서 안 하겠다 한 거예요.
그때부터 안 했대요.
여러분 이게 인간의 어리석을 입니다.
그 아이의 어리석을 우리도 갖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 우리는 그때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다를 깨달아야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얼마 안 돼서 바로 어떻게 합니까?
또 원망합니다.
우리는 그런 실수하면 안 되겠죠.
그리고 원망하여 그때부터는 계속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원망하여 가난한 땅에 못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그 말씀을 듣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사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괴로울 때가 많을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
그게 사실 지극히 건강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린 죄인이거든요.
하나님은 내 죄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은요.
자기 잘못과 자기의 문제점을 들으면요.
모두가 기분 나빠하는 게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문의 말씀에 보면 아비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그것을 받을 줄 아는 자가 지혜롭다.
그래서 우리가 그 죄인된 육신을 이겨야겠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수많은 말씀들을 들을 때 이것을 통해서 화를 내고 막 그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죄를 어떻게 하시고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면요.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죄와 싸우는 삶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우리는 이 악한 말로 원망한 자들처럼 악한 말로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들을 기억하셔서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나올 때 생길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시면서 그 마음을 다스리시면서 하나님 앞에 좋은 코 선한 의로운 말을 하시면서 가난한 땅으로 가시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찬양 427장 찬양 드리시겠습니다.
이것으로 화요일 저녁 예배 마치겠습니다.
예배 마치시고 임시 직무에 여기 앞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일어나셔서 인사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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