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01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
신영길 · 요13:1-11
제작일 2026. 8. 21.
AI 설교 정리
세종례는 주님과의 관계를 상징하고 신자들 간의 사랑과 섬김을 교훈으로 전하는 성례이다.
- 세종례는 주님의 사랑과 상관을 맺는 중요한 성례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받는다.
- 이 성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사건을 본보기로 삼아, 사랑과 겸손의 교훈을 전달한다.
- 세종례는 세례, 성찬례와 함께 교회에서 행하는 세 가지 성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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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례의 의미
- 세종례는 주님의 사랑과 상관을 맺는 성례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받는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사랑과 겸손의 본보기이며,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교훈을 주셨다.
- 세종례는 일상의 세족과는 다르게, 주님과의 관계를 상징하며, 구원과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다.
- 세종례는 세례, 성찬례와 함께 교회에서 행하는 세 가지 성례 중 하나이다.
- 세종례는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신 바이며,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성례이다.
세종례의 교훈
- "상관"이라는 단어는 주님과의 관계, 영적인 몫을 나타내며,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권세를 얻는다.
- 세종례는 신자들 간의 사랑, 용서, 봉사의 교훈을 전달하며, 그리스도와의 상관을 맺는 중요한 의식이다.
- 세족은 세례를 받은 자만 받을 수 있으며, 발만 씻는 것으로 충분하다.
- 세족은 죄를 씻는 것과는 관련이 없으며, 영적인 상관과 권세를 나타낸다.
세종례와 관련된 사례 및 교단의 관점
- 세족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보내기 전에 행하신 것으로, 보내심과 관련된 교훈을 포함한다.
- 유다는 세종례를 받았지만, 그 효력을 거부했기 때문에 주와의 상관을 이루지 못했다.
- 세족은 성례로 인정받았으나, 일부 교단에서는 성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세족은 신자 간에 서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의미를 지닌다.
- 세족은 예수님의 권세를 받고, 그 권세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네, 위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느님 말씀 함께 배우겠습니다. 시간은 세종리에 대한 우리의 믿음, 기본신앙 여섯 번째이지요. 함께 배우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11절 작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11절까지 말씀 찾으셨으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6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 ��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 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접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거룩을 벗고 수건을 벗어다가 허리에 들으시게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시몬 그들에게 이르시되 바로 되는 주여 주께서 왜 발을 씻기시나 할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내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돼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이 아니하다 하심이라 우리 교회의 성례는 세 개지의 성례가 있지요 세례, 성찬례, 세종례 이렇게 세 개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셋 중에 아마 가장 소홀히 여기는 성례가 바로 이 세종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례는 날짜도 기록하고 교적부에 그리고 기념 축하식도 하고 또 이렇게 증서도 만들어서 주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평생에 단 한 번 밖에 없고요 성찬례 같은 경우는 언제든지 정해진 평생에 한 번이 아니라 교회에서 하고자 할 때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성찬례입니다 그런데 이 세종례는 평생에 한 번 뿐이긴 한데 세례에 마치 가려진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이 내가 어떤 분들은 내가 세족을 받았던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이런 분들도 제법 계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같은 성례인데 같은 성례인데 이 세종례를 다른 성례처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세종례도 분명한 엄연한 성례입니다 성례라는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종례가 왜 성례이고 어떤 의미와 교훈이 있는지 이렇게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PPT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먼저 먼저 이렇게 해야 될 텐데요 전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세종례는 시작 세종례는 세종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종례를 1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에 세종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좀 길죠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 먼저 이 세종례는 세종례는 세종례는 그 기원이 어디일까 안 넘어가네요 성경에 과연 예수님께서 만드신 세종 발을 씻는 그것 이전에 과연 세종례는 세종례는 세종례가 있습니다 안 되는 거군요 그래서 일상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발을 씻는 그런 세종이 있었는데요 우리로 말하면 집에 들어가면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가면 잠자기 전에 발을 씻는 것처럼 일상적인 세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특히 더 우리도 집에 오면 저녁때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귀찮아도 손발은 씻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물론 아이들은 발 씻는 걸 굉장히 귀찮아합니다 아무리 아무리 귀찮아도 손발은 씻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물론 아이들은 발 씻는 걸 굉장히 귀찮아합니다 그러나 발을 씻지 않으면 굉장히 냄새가 나겠죠 근데 그 팔레스타인 지역은 굉장히 건조하고 또 모래가 많은 그런 지역이다 보니까 밖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다 보면 그 신발이 많이 더러워 지겠죠 근데 이 사람들의 신발은 더운 지역이다 보니까 우리로 말하면 샌들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발은 먼지로부터 발을 보호하기는 커녕 그 발에 먼지와 땀과 이런 것들이 막 범벅이 되죠 범벅이 되겠죠 집에 와서 어떻게 안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반드시 자기 전에 보면 발을 씻습니다 그래서 아가 5장 2절 3절을 보시게 되면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그러니까 여인이 잘나고 집에 들어가서 누워 있었는데 마음은 깨어 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뭐냐면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그러니까 이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온 그 신랑들 신랑들 남편이 이렇게 찾아온 거죠 밤에 여인이 하는 말이 뭐냐면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잘 준비를 했다는 거죠 다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려마는 그래서 자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발을 씻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요 또 그들의 문화 속에 세족은 손님 접대할 때 하는 그런 세족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시게 되면 아브라함이 늙은 종을 시켜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늙은 종이 저기 라반 집에 까지 도달을 하게 되죠 그래서 그 우물에서 리부가를 먼저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얘기가 잘 돼서 라반의 집으로 인도를 받게 되죠 그때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집으로 들어가며 라반이 약대의 짐을 부리고 집과 버릴 약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 종자의 발 씻을 물을 주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밖에 돌아다녔으니 당신의 발이 더러우니까 우리 집에 들어오기 좀 그렇잖아요 그것이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주인은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이렇게 주었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사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사사시대에도 한 레윈이 자기의 집 나간 첩을 찾았고 그리고 나서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밤이 기울어 가지고 어느 한 동네에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 어떤 노인을 만납니다 우리 집에 하룻밤 자고 가라 밤이 깊었으니까 그래서 노인이 가로대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래서 발 씻는 그들의 문화 속의 두 번째 의미는 손님을 접대하는 그런 세족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만약에 손님이 왔는데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 손님에 대한 굉장히 무례한 예의가 없는 손님을 무시하는 그런 행동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누가 보금 7장 44조 보시게 되면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내 집에 예수 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시몬의 집에 들어갔는데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안 줬잖니. 그런데 봐라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다. 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이렇게 접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손님 접대하는 세족이 있었고요. 그 다음에 구약 성경을 보시게 되면 제사장들이 발을 씻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냐면 번제단 앞에 물두멍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성막 구조를 보게 되면 그래서 출애교 30장 19절 21절 이렇게 보시게 되면 아론과 그 아델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 손과 발을 씻되 반드시 제사장들은 그 일을 제사장의 일을 섬기기 전에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는 것이 제사장의 규례였습니다 . 씻지 않으면 죽는 규례가 있었다라는 거죠. 이렇게 크게 성경 속에 발 씻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공통점이 있어요. 일상의 세족 그리고 손님 접대 그 다음에 제사장 세족 다 공통점은 자기가 자기 발을 씻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자기가 자기 발을 씻습니다. 그런데요.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마는 유대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대신 발을 씻어주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하진 않지만 그 집에 노예가 주인의 발을 씻겨주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도 그런 게 있잖아요. 자녀가 부모의 발을 씻어주는 혹은 부부가 서로 발을 씻어주는 어떤 의미예요? 자녀가 부모의 발을 씻겨준다. 어떤 표시일까요?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요? 감사와 사랑과 존경 이런 것을 표하는 거겠죠. 이스라엘의 문화 속에서도 그런 의미의 세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이 시집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발을 씻겨주는 그런 문화도 있다고 하고요. 또 라비라고 들어보셨죠?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종교적인 교사, 종교적 지도자를 선생, 라비라고 불렀는데요. 그래서 그 집안에서 라비가 나온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례가 있었대요. 어느 집안에 아들이 라비가 됐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너무 기뻐서 아들의 발을 씻겨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입장에서는 아니 어떻게 부모가, 내가 부모의 발을 씻겨줘야 하는데 부모가 어떻게 내 발을 씻겨주냐. 이제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어머니는 너는 아들이지만 라비다. 그래서 발을 씻겨주는 거다. 해서 어머니하고 아들이 논쟁이 붙었어요. 그래서 법정까지 갑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어머니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것은 엄마가 아들을 씻겨주는 게 아니라 라비의 발을 씻겨주는 거다. 그래서 엄마가 이깁니다. 어쨌든 그런 존중과 존경의 의미의 발 씻음도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지 않은 특수한 사례를 빼고는 다 자기 손으로 자기 발을 씻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배우는 세 종례는 성례입니다. 성례의 조건은 아시는 것처럼 주님께서 설립하시고 직접 본을 보이시고 부원과 관련이 있어야 그것을 성례라고 합니다. 세 종례는 주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오늘 본문에서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3장 14절 15절을 보시게 되면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은이라 내가 씻겼으니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께서 직접 본을 보이신 거죠. 15절 말씀처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건 예수께서 직접 하신 것이고 또 제자들에게 명령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례의 첫 번째 조건에 부합하죠. 그리고 이것이 일상적인 앞에서 보았던 외출에서 돌아와서 하는 혹은 손님을 접대하는 그런 세족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13장 4절을 보시게 되면 뭐라고 되어 있어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러니까 식사를 막 하다가 중간에 일어나셔서 안 되겠다. 발을 좀 씻어야겠다. 라고 해서 발을 씻겨주시거든요. 만약에 일상의 세족이라면 언제 발을 씻어야 돼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래서 이것은 일상의 세족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성례가 되는 즉 구원과 관련이 있어야 하잖아요. 성례가 되려면 그래서 어떻게 이 세족이 구원과 관련이 있는가 이것은 바로 주님과 상관을 맺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복음 13장 말씀처럼 베드로가 처음에는 이 세족이 원래는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발을 씻더라도 씻겨줘야 하는데 예외적인 어떤 존중의 의미 혹은 노예 정도나 하는 건데 그래서 본인 자기들의 스승이 씻어주겠다고 하니까 거부를 하죠. 그때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않냐면 8절에서 내가 너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그것을 바로 알아듣죠. 상관이 없다고? 그러니까 베드로가 바로 그러면 발뿐만 아니라 머리와 손도 씻겨주지 없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도대체 이 상관이란 무엇이냐? 이것이 중요하죠.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이 상관이라는 단어는 이 신약성경에 많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40회 정도 등장을 하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첫 번째는 목, 네 몫이다, 내 몫이다 할 때 어떤 사람에게 할당된 일부분 혹은 어떤 지역, 지방 어떠한 일부니까 한 토막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래서 마태봉 15장 21절을 보시게 되면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루와 시돈 지방으로 가시니 할 때 이 메로스 상관이라는 단어를 썼고요. 그 다음 누가 봄 15장 12절에서 둘째가 하루는 아버지한테 아버지 저 나갈 거예요. 아버지의 그 유산 땡겨주세요. 이렇게 하잖아요. 그때 하는 말이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소서 이 분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상관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생선 한 토막을 드림해 할 때 이 토막도 상관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상관의 뜻은요. 어디에 딸린 이란 뜻도 있습니다. 어디에 속한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이제 부분이라는 뜻이고요. 누가 봄 12장 46절을 보시게 되면 그 주인을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술 마시고 이런 종들에 대해서 이렇게 책망을 하시죠.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로 어미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에 받는 율 그러니까 어떤 신실치 않는 자가 받아야 마땅한 그에 따르는 처벌 뭐 이거에 해당하는 그런 뜻이잖아요. 그 율에 해당하는 단어가 상관이라는 단어를 사용을 했습니다. 신실치 않은 자에게 따라가는 어떤 처벌 어떤 책임 그런 뜻으로 저 단어를 썼다라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제 본문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냐면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냐 없다. 그러니까 나와 상관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주님과 상관을 맺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발을 씻는다는 것은 주님의 목, 주님께 할당된 어떤 일부분, 주님이 받을 분깃이라고 하죠. 유산, 그것과 그것이 없다는 거죠. 즉, 발을 씻어야만 예수께서 받는 그 몫을 너도 받을 수 있다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럼 예수님께서 받는 그 분깃, 그 몫이 무엇이냐? 여러분, 8장 29절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는 그로 많은, 이 그가 누구예요? 예수께서. 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많은 형제 중에서 마다들이 되게 하려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의 맏형이라는 거죠. 맏아들이니까, 첫째 아들이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받게 되는 몫은 뭐냐면 장자의 몫입니다. 유대 문화에서 장자, 첫째 아들은 다른 아들들보다 재산을 몇 배를 받아요? 두 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 성도들의 맏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받는 그 몫을, 즉 주와 상관을 맺는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마다들이 된다는, 그 마다들로서의 유산, 그것을 함께 나눈다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께서 요한봉 13장에서 말씀하신 주와 상관을 맺는다라고 할 때 이 상관은 물질적인 그런 몫이 아니라 영적인 몫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이런 아까 상관이라는 단어가 게시록에서는 혹은 고린도전서도 그렇고 참예라는 단어 들어보셨죠? 그 단어로 번역이 되어 있기도 한데요.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여러분 첫째 부활이 뭘 말해요? 첫째 부활, 세례죠. 그러니까 세례라는 것에는 참예, 몫이 있다는 거예요. 세례를 받은 자가 받는 분깃, 몫이 있다는 거예요. 주어진. 그들은 복이 있습니다. 거룩합니다. 왜요?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어요. 그렇죠? 세례를 받으면 둘째 사망, 즉 영원한 영적인 죽음의 권세가, 즉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죠. 그래서 그런 복을, 분깃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돼요.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이것이 세례를 받은 자가 얻는 상관입니다. 무엇이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것. 그러니까 실제로 이 세상에서 왕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저것은 영적인 분기시, 영적인 몫을 말하는 거죠. 예수께서 받으시게 되는 그 상관, 그 몫은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3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거기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 일단은 이 상관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왜? 주와 상관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영적인 상관, 영적인 몫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또 영적인 몫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뭐냐면 여러분 이 세종예는 누가 받는 거예요? 우리 아까 전문에서 읽었습니다마는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입니다. 왜 세례를 받은 신자여야만 세족을 받을 수 있을까? 그 근거가 어디 있어요? 요한복음 13장 1절 그리고 10절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을 보십시오. 6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를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면서 이하의 내용이 뭐에 관한 얘기예요? 세족에 관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1절에서 말씀하시는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내용이 바로 세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고요? 누구를? 자기 사람 어디에 있는? 세상에 있는 여러분 일단 자기 사람 예수님의 사람 누가 예수님의 사람이에요? 어떻게 해야 예수께 속한 예수님의 사람이 됩니까? 세례를 받아요. 그런데 어디에 있는? 세상에 있는 아직 세상에 있다라는 얘기는 뭐예요? 죽었어요? 살았어요? 살아있습니다. 살아서 저와 여러분처럼 살아있는 사람. 그러니까 이 끝까지 사랑을 나타내는 세족은 누가 받는 거냐면 예수님의 사람인데 아직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 그러니까 세례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10절 보시게 되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베드로가 손과 머리도 씻겨주세요. 라고 하니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어요. 발만 씻으면 돼. 이 목욕이라는 게 뭘까요? 세례를 말해요. 너희들은 다 세례받았자니 세례받은 사람은 발만 씻으면 돼. 그러니까 반드시 이 세족은 세례받은 자가 받는 것입니다. 세례에 이것은 순서를 바꿀 수 없어요. 세족 먼저 받고 세례 안됩니다. 반드시 요한복음 말씀에 따라서 세례를 받은 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세족입니다. 그래서 세례가 영적인 예수님과 영적인 그 목수를 나누는 것처럼 세족례도 마찬가지 이 상관이라는 것은 영적인 그 목 분깃을 말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족은 아가 10절에서 읽었습니다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 온몸이 깨끗하니까 그러니까 세족례는 죄를 씻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없다. 세족은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없다. 그게 말씀하세요. 있다 없다 없다 그렇죠. 과거에는 저도 듣기만 들었어요. 과거에는 임종 세족 들어보셨습니까? 네. 네. 네. 네. 다 우리 성도예요. 세례받은 우리 성도인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다시 한번 깨끗하게 씻고 돌아가셔야 된다 해서 임종 세족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왜 왜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세족에 무슨 효력이 있다? 죄를 씻는 효력이 있다라고 잘못 생각 했던 거죠. 분명한 것은 세족은 어떤 죄를 씻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례이냐? 영적인 주화 상관을 맺는 영적인 예수님의 그 몫을 나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인데요. 그럼 도대체 그게 뭐냐라는 것입니다. 아까 계시족 말씀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그 몫에 대해서는 분명히 봤는데요. 그럼 세족을 해서 얻는 그 분깃이 무엇일까? 그 몫이 무엇일까요? 영복음 13장의 말씀을 1절에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셔서 이렇게 발을 쭉 씻기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발 씻기기를 다 마치시고 난 다음에 11절에서 발 씻기기를 끝내시죠. 12절 발을 씻기신 후에 이제 예수께서 그 세족의 교훈을 쭉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20절을 보십시오. 영복음 13장 20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루느니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오.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왜 20절과 같은 말씀을 하셨을까요?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하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낸 자를 예수께서 누구를 보내셔요? 나중에 누구를 보내셔요? 제자들을 보내시잖아요. 그러니까 세족을 마치시고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이 세족과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심, 파송이라고 하죠. 이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요. 다시요. 이 세족의 영적인 의미, 주와 상관을 맺는 그것이 20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수께서 보내심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보내시기 전에 세족을 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기 전에 뭔가를 예수님껀데 예수님껄을 같이 분배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이제 보내심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뭐냐면 그들이 보내심을 받을 수 있는, 보내심을 받은 그래서 그들이 얻게 된 영적인 권세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거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들은 보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그들이 갖게 되는 권세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로마 10장 15절 말씀 보십시오. 아이고 로마 10장 15절 말씀 보시게 되면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리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바리오함과 같은 이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그 권세를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세로 사단의 머리를 밟고 사랑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 권세로 이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권세만 받고 어떤 권리만 있고 그걸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으면 그걸 써야 합니다. 그래서 세족은 우리는 주님과 같은 권세를 가졌어 라고 그냥 마음 한쪽에 뿌듯한 자부심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권세를 받았으니 뭐 하라는 거예요? 그 권세, 그 발을 가지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발이 그래야 되는 거죠. 그래서 보신 적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족을 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세족은 양말을 신어에 벗어요? 벗죠.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보시면 작아서 잘 안 보이시겠지만 물속에 잠겨있는 부분에 뭐가 신겨져 있죠. 금신을 신고 있는 그 이상이 보여진 장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파송하셔서 발을, 누군가의 발을 씻겨줄 때 신자의 발을 씻겨줄 때 그 신자의 발에 예수께서 직접 권세를 주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굉장히 금과 같이 귀한 발이 된다라는 거죠. 그 발로 뭐하라고요? 예수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다른 교단에서는 이 세족예를 성예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그 교훈은 남아있는데 성예로서 인정하지는 않아요. 왜 이렇게 됐을까? 본래 이 세족은 성예였습니다. 그래서 기록에 따르면 이것은 천주교에서 가지고 있는 기록이에요. 4세기까지 이 세족을 성예로서 성예로서 시행을 했답니다. 그런데요. 아주 분명한 근거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도 이미 유명한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때 신학자들이라고 하면 당시에 어떤 카톨릭의 대주교가 된 그런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이 성예냐 아니냐 가지고 논쟁이 붙었어요. 성예다 아니다. 그래서 그 외에 그러면서 이것은 유지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그런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그 중심에는 뭐가 있었냐면 이 세족을 이 세족을 죄를 씻는 정결의 의미가 있다 없다 를 가지고 싸운 것입니다. 만약에 죄를 씻는 것과 같은 효력이 있으면 뭐하고 겹쳐요? 세례하고 겹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세례하고 같은 날 하면 안 돼. 왜? 세례의 아주 중요한 의미가 퇴색이 될까 봐 일부러 날짜를 띄워서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에 대한 방증이에요? 4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세례도 세족도 천주교에서 성례로 인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 싸우다가 결국에는 종교회의를 열어서 이것을 성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지시켜버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기록이 아니라 가톨릭에서 갖고 있는 기록이에요. 뭘 말해요? 가톨릭에서 분명한 성례로서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결정을 통해서 폐지시켰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본래 있었던 분명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성례가 분명하지요. 다 믿고 계십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뒤에 내용들은 세종의 교훈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거죠. 예수께서 먼저 아가 1절 말씀 읽었습니다. 자기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셔서 설립하고 베푸신 것이 바로 세종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4절에 13장의 맨 끝부분에 보시게 되면 세 개명을 너희에게 주느니 서로 사랑하라 라는 개명을 역시 세족 후에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예를 통해서 받게 되는 상관 목 중에 하나는 바로 예수님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거 성례니까 구원받아야 되니까 무조건 받아야지 이런 마음이 잘못됐다기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교훈은 성례는 우리는 발만 내밀면 돼요. 우리가 하는 게 뭐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애쓰고 힘써야 하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종의 교훈인 거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는 거죠. 두 번째가 성결. 성결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죄를 씻는 그런 성결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의 깨끗함을 말해요. 13장 10절 보시게 되면 이미 목격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아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라고 말씀하세요. 왜 다는 아니에요? 11절. 이는 자기를 팔자가 누구인지 아시며 그러므로 다는 깨끗이 아니하다 아십니다. 누구 때문에? 그 안에 유다가 있어요. 세종의가 그 사람의 죄를 씻어주는 효력이 있다면 이때 유다는 발 씻음을 통해서 깨끗해져야 했겠죠. 그렇죠? 그런데 예수께서 뭐라고 하세요? 다는 깨끗이. 예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아가 34절 말씀 받잖아요. 서로 사랑하라는 개명을 주실 때는 그 자리에 누가 없어요? 누가 없어요? 유다가 없어요. 유다가 나간 다음에 이 개명을 주십니다. 왜? 이거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죠? 어려운 일이잖아요.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있으면 안 돼요. 왜? 유다는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행실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이란 교훈이 있죠. 13장 4절 보시게 되면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께서 직접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발을 씻기십니다. 앞서 맨 앞부분에 말씀드렸죠. 누군가 이 유대인 사회에서 대신 발을 씻겨주는 경우는 노예가 하거나 굉장한 존중의 표시라고 했잖아요.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옷을 벗고 성경에서 겉옷이 상징하는 게 뭐예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저것을 행하실 때는 겉옷을 즉 주 또는 선생이라는 신분을 벗고 완전히 낮아지셔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 봉사의 교훈이 있죠. 예수께서 겉옷을 목숨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하의 물을 담아 제대로 씻기십니다. 그러니까 야 내가 지금부터 세종리 할 거니까 베드로 너 가서 물 좀 떠와 그리고 요한 너는 가서 수건 좀 가져와 이렇게 안 했다는 거예요. 다 직접 떠오시고 다 챙기셔서 하셨다라는 거죠. 이것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봉사의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용서 그래서 읽으셨습니다마는 이미 유다의 생각을 아시면서 그의 발을 다 씻겨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종리의 대상은요.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입니다. 세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아가 13장 1절 말씀드렸고요. 그 다음에 10절도 말씀드렸고요. 히브리서 10장 22절 말씀 보시게 되면 우리가 마음의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세례를 받았으니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찬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런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신자라면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세례받고 끝 이것이 아니라 찬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도 세례를 받았죠. 세종리의 대상이 됐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 실제로 세종례를 유다의 발도 씻기셨잖아요. 그러면 유다는 주와 상관을 맺었을까요? 안 맺었을까요? 그러니까 세종리의 효력이 유다에게도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그러니까 이날 이날 주의 그 상관 그 몫을 유다가 받았을까요? 안 받았을까요? 숙제 세종리의 효력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다시요 여러분 세례를 받을 때 아기들도 세례를 주잖아요. 그런데 그 아기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그런데 세례의 효력이 있어요? 없어요? 있잖아요. 유다에게도 세종리의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유다가 거부해 버렸어요. 마치 그와 같아요. 엄마가 영양가 많은 음식을 맛있게 해가지고 애기 입에다가 딱 자식 입에다가 딱 떠넣어 줬어요. 그런데 애가 엄마를 의심해. 해가지고 입에 넣었다가 어떻게 할 수 있어요? 탁 뱉어버릴 수 있어요. 또 마찬가지. 효력은 여전합니다. 거부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신자라면 1차로 행하는 세종리는 그 성예로서의 세종리입니다. 시간이 더가지고요. 나머지 내용은 그 다음에 서로 시행하는 세종리 성도 간에 서로 발을 씻기는 그런 교훈의 의미를 담아서 서로 발 씻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기 있는 분들은 다 그 세종을 받으신 분들이죠. 그래서 우리에겐 뭐가 있어요?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가 있으니까 뭐 해야 된다고요? 일해야 됩니다. 그 발로 가만히 있으면 그 발 아껴서 뭐 하실 겁니다? 일하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용서의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귀한 발로 아무데나 가면 더럽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미의 의미와 교훈을 알고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복도하겠습니다. 복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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