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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전심으로 행하지 않은 예후 화요일 저녁예배

유요한 · 왕하10:30-31

제작일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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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으로 행하지 않은 예후 (왕하 10:30-31) 2026.08.25 화요일 저녁예배 유요한 목자님

(왕하 10:30-31) 
[30]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 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31]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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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신앙 태도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문왕하 10:30-31
  • 예후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
  • 금송아지 숭배를 제거하지 않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를 인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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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신앙 태도

  • 예후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점이 강조된다.
  • 예후는 금송아지 숭배를 제거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 자신의 이익이나 이해되는 부분까지만 하며, 그 이상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중요성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더라도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 예후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앙인의 태도

  • 자녀 교육, 결혼, 금전 문제 등 특정 상황에서는 세상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기준을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전사(자막) 전문▼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다 같이 10분간 기도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할렐루야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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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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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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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찬양은 342장입니다.
342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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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네 큰일을 겪고 나니까 이 찬양 가사가 더 와닿지 않으시나요?
네 제가 찬양 선곡을 하면서 찬송가에서 어려운 일 검색하니까 딱 세 곡이 나왔습니다 그 세 곡을 오늘 부르는 거거든요 다음 찬양은 432장입니다 432장입니다
찬송가 4장 찬송가 4장 찬송가 4장 찬송가 4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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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경 580조 11기 하 10장 전체에 해당하는 말씀인데 제가 밴드에 올려드렸으니까 읽으셨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함께 30절 31절만 읽도록 하겠습니다 11기 하 10장 30절 31절 말씀 한 구절씩 읽겠습니다 30절 제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예우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홉 집에 다 행하였은즉 내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우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러부함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저녁 시간에는 전심으로 행하지 않은 예우라는 제목으로 11기 하 말씀을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저희가 예우에 대해서 두 시간에 걸쳐서 살펴보는데 지지난주죠 지지난주의 예우에 대해서 처음 살펴보고 오늘은 이어서 예우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예우에 대한 말씀이 굉장히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우리가 방금 읽은 30절 31절의 말씀을 보시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30절의 말씀만 보면 하나님께서 예우를 인정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30절의 말씀을 보면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였다 이렇게 칭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31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을 하죠 그러나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과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인가 라는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라는 것은 또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좋은 믿음을 가진 증거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럼 좋은 믿음을 가진 거지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또 열심히 일을 하면 아 저 사람은 믿음이 좋은 거다 라고 이제 흔히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쓰임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교회에서도 많은 일을 하고
또 봉사도 하고 또 심지어 전도도 열심히 해서 몇몇 사람들을 교회로 이렇게 데려오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니까 내가 교회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나는 하나님께 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보면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예후가 그런 인물이라는 것이죠 예후는 분명히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일을 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후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섬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 대해서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은 아니었다 라고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차이를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 예후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를 살펴봤는데요 2주 전이다 보니까 아마 기억이 감을감을 하실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예후는 갑자기 등장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왕의 시대에 이미 엘리아 선지자가 활동할 때에 이 예후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죠 그래서 엘리아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는 시대로 시대가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 때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하나를 보내어서
예후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삼게 됐죠 그러자 예후는 아주 일을 적극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급히 이스라엘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왕이었던 요람왕을 죽이게 됐죠 그리고 이세벨도 죽이게 됩니다 이 일이 나보세 밭에서 이루어지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합 집안을 심판하신 그 일이
예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예후의 첫 번째 시간에 살펴본 내용의 핵심은 무엇이었냐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죠 오늘은 그 다음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후를 사용하셨다라는 거예요 예후가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후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가를 보면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개의 10장의 말씀을 쭉 보시면 예후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볼 수 있는데요
이 아합 왕가를 심판하는데 아주 철저하게 심판을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 아합의 아들 70명이 있었습니다 왕위가
이를 이을 수 있는 아합 가문의 왕자들이 70명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우는 사마리아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너희가 이 아합의 자손 가운데 70명의 자손 가운데 왕을 한 명 세워라.
그 왕을 데리고 와서 나와 싸우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이 다 겁을 먹죠.
두 나라의 왕이 예우에게 당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당할 수 있겠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이 다 예우에게 죽지 않았냐.
그리고 예우와 싸우기를 포기하고 예우의 신하가 되기를 합니다.
그래서 예우의 명령에 따라서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다 뱁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가지고 예우에게 옵니다.
그래서 예우는 아합 가문을 완전히 심판을 합니다.
아합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다 제거합니다.
11절의 말씀인데요.
열한자 10장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1절 제가 읽겠습니다.
예우가 무릎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라엘의 남아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예우가 아주 철저하게 아합 가문을 심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완전히 제거하죠.
그래서 일을 아주 완벽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합 가문이 행했던 이 바할 숭배를 뿌리 뽑습니다.
예우는 바할을 섬기는 사람들을 한 번에 다 죽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데요.
그 계획이 무엇이었냐면 18절에 나옵니다.
11기야 10장 18절 말씀 예우가 묻 백성을 모으고 이래되 아합은 바할을 조금 섬겼으나 예우는 많이 섬기리라 물론 이것은 예우가 정말로 바할을 섬기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바할 숭배자들을 북이스라엘 곳곳에 있는 온 나라에 있는 바할 숭배자들을 한 번에 모아서 다 몰살시키기 위한 예우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우는 바할을 위한 큰 집회를 열겠다고 하고 바할의 제사장, 선지자, 또 바할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오라고 하죠.
그리고 나서 한꺼번에 그들을 다 진멸을 시킵니다.
28절의 말씀을 보시면 예우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할을 멸하였으나 그래서 이스라엘에 있는 바할 숭배자들을 한 번에 다 없애죠.
정말 이 일을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아합과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에 가져온 바할 숭배를 완전히 싹 씻어냅니다.
그래서 아합의 집안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리고 바할 숭배를 없앱니다.
신전도 허물고 주상도 찍어서 불사르고 다 없애버리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서 예우를 평가하신 것이 바로 30절의 말씀입니다.
30절을 다시 보시면요.
그래서 정말로 잘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우를 볼 때 그냥 단순히 그냥 악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북이스라엘의 악한 왕이다 라고 단편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실제로 예우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어서 보시면 31절에 바로 그러나라는 말이 나옵니다.
31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31절을 보시면 그러나 예우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우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함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예우가 그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온 마음이라는 것이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죠.
그래서 온 마음,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그리고 그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죄는 뭘까요?
그 죄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그 죄를 이야기를 합니다.
앞절에 29절의 말씀을 보시면요.
29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너바세 아들 여로보함의 죄 곧 베델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이것이 예우의 핵심적인 잘못입니다.
예우가 발은 제거하지 않았습니까?
우상, 숭배를 제거했죠.
그런데 금송아지는 제거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금송아지를 섬기지는 않죠.
그럼 이것이 우리와 관계없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금송아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여러분 금송아지를 왜 만들었습니까?
여로보함이 처음 만들죠.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분리되었을 때에 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남유다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남유다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내려가게 되면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기에게서 떠날까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여로보함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이 내용이 11기상 12장에 나옵니다.
11기상 12장 11기상 12장 27절의 말씀을 보시면요.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이 여로보함이 27절의 말씀을 보시면 11기상 12장 27절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의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루오보함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루오보함에게로 돌아가리라 하고
그래서 베델과 단 두 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죠.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28절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국당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이 하나님을 믿으면 된다.
이 신을 섬기면 된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로보함이 한 일은 하나님을 믿지 말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되 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방식으로 해라라는 것입니다.
그 자기의 방법을 고집한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바로 되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30절의 말씀을 이어서 보시면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합니다.
이것이 이 금송아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우는 바알은 제거하죠.
하나님이 아닌 바알은 제거합니다.
그런데 금송아지는 그대로 두었다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여로보함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과 배경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없애워서 남유다로 내려가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서 성전에서 예배를 하게 되면 자신의 왕권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 백성들이 빠져나가게 되면 국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적인 어떤 이 계산 이익을 따지고 바알은 제거했지만은 금송아지는 제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예우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 신앙적으로 해석을 해보면은 예우의 모습이 자기에게 유익한 것은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기의 왕권이라든지 자기의 정치적인 기반에서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우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우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긴 섬기지만은 내 생각과 같은 데까지만 또 나에게 이익이 되는 데까지만 또는 내가 이해가 되는 부분까지만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것쯤은 내가 할 수 있겠다 또 이렇게 하면 나에게도 유익이 있겠다 라고 생각되는 그 부분까지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하지 않습니다.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 가운데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우리 성도인들을 볼 때 이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일하시거든요.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영역에 있어서 특별히 자녀의 교육에 해당되는 부분 자녀의 미래가 걸린 문제가 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세상의 기준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학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까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다는 것이죠.
최종적인 우선순위가 자녀의 학업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신뢰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라고 하면서 정말 중요한 순간에 있어서는 또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보다 내 기준을 따르는 그런 모습을 종종 보입니다.
예우에게는 금송아지가 바로 그런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일까요?
무엇이 해당할까요?
이것이 자녀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하는데 결혼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자기의 어떤 기준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금전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돈에 대한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예우를 보시면요.
예우는 정말 큰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기록될 만한 그런 큰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합의 집안을 심판했습니다.
그리고 바할 숭배를 제거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사적인 이 사명을 수행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을 보면은 성경을 보면은 예우의 큰 이를 보고 예우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냐라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평가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살펴봐야 됩니다.
10편 51편 6절의 말씀을 보시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하죠.
중심의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우리 마음의 진실함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으로 드러날 때 내가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이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에도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우리 마태복음 23장 23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마태복음 23장 23절 제가 읽겠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종교적으로 많은 행동을 하지 않습니까?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큰 헌신을 했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온전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우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냥 옛날 이야기로만 보면 안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예우는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이렇게 봐서는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예우는 우리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나에게 부담 없는 그런 말씀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상황을 다 계산을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는 우리가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유익이 될 만한 말씀은 철저하게 지킵니다.
내 생각에 맞고 내가 이해되는 말씀은 순종합니다.
그런데 내가 손해를 봐야 되는 순간 또 내 생각과 맞지 않고 내 계획을 포기해야 되고 또 내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그런 말씀 앞에서 또는 내 고집을 내려놔야 되는 내 자존심을 내려놔야 되는 그런 순간이 오면 갑자기 순종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져요.
그래서 그때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그것까지는 못하겠는데요.
꼭 거기까지 해야 되는 건 아니죠.
제 생각은 그거랑 좀 다른데요.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시대가 다르잖아요.
이렇게 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섬기고자 하는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가 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어보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우리가 순종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큰 개명을 말씀하시면서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죠.
마태복음 22장 37절의 말씀을 보시면 마태복음 22장 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냥 적당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우를 통해서 배워야 되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예우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예우의 삶이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우의 전체 삶을 하나님께서 선하다라고 평가하신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그런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따르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과는 같지 않다라는 거예요.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잘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 큰 쓰임을 받아서 굉장히 많은 일을 했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이라고 하신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아수르의 왕이 그렇죠.
2사에서 10장 5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사에서 10장 5절 9약성경 977조 화 있을 진자 아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여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안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수르가 내 진노의 막대기다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분노를 아수르를 통해서 징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수르가 도구였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수르가 가지고 있었던 그 교만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인정하신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바벨론의 너부가네살 왕도 마찬가지였죠.
하나님께서 너부가네살 왕을 바벨론을 남유다를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만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4장 37절에 말씀해 보시면요.
다니엘 4장 37절 말씀 그러므로 지금 나 너부가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 일이 다 진실하고 그 행하심이 의로우심으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부가네살을 치셨습니다.
낮아지게 하셨죠.
그래서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누구든지 들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방의 왕들까지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나님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우를 보시면 11개 하 10장의 내용을 쭉 볼 때 예우가 정말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일을 정말 잘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칭찬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호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우에 대해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장 4절인데요.
구약성경 1256쪽 호세아 1장 4절 말씀해 보시면 여우와께서 호세야 예우의 집을 예우의 집을 예우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패할 것임이니라 이스라엘의 피를 예우의 집에 갚겠다는 것입니다.
예우의 집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우의 잘못을 책망하십니다.
예우의 집을 예우의 집을 예우의 집을 잘못 세우신 것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예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가를 심판하시고 그리고 바할 숭배를 뿌리 뽑으셨죠.
그래서 우리 본문 30절에서 하나님께서 예우에게 잘했다라고 칭찬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우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다는 사실이 예우의 삶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우의 삶에 대해서 예우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호세하서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죠.
그래서 예우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많은 일을 했다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때때로 큰 업적을 이뤘다고 해서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서 일을 한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도 온전한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시는 것은 우리 인생을 통해서 전체적으로 보는 것은 내가 전심으로 온전한 마음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했는가 또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일을 해라 너 교회에서 큰 일을 해라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이 사실은 우리에게 굉장히 두려운 그런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의 말씀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 시작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예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 아니죠.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나님을 위해서 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거예요.
이것은 경고와 같은 말씀이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하는 것보다 앞서 우리가 살펴야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서 있느냐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장에도 보시면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는 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선볐는가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 오늘 예우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예우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우를 사용하시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러나 예우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았다 라고 평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평가가 예우의 전체의 삶을 이야기해줍니다.
예우에게는 열심은 있었죠.
하지만 전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전심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많은 일을 했지만 그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순종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잘 살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죠.
내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가?
내 마음이 온전하게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면서 이 정도 선을 그어놓고 내가 이만큼만 하겠다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할 만한 말씀만 지키고 또 나에게 유익이 되는 말씀만 따르면서 내가 손해봐야 되는 부분에 있었어.
또 내 생각이 용납하지 않는 문제에 있어서는 순종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잘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또 내 계획과 다른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제가 그냥 의무적으로 또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또는 일하면서 툴툴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도 사실은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는가?
내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따르고 또 그것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에 드러나는 그런 일보다 온전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우와 같이 그러나 네가 전심으로 나를 섬기지는 않았다 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저와 우리 성대인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간합니다.
함께 묵도하겠습니다.
찬송가 511장 하시겠습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살아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더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살아 더욱 살아 이전엔 세상 나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우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가만 내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아멘 아멘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고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옵소서 들으신 말씀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성령 받기 위해서 또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 안수 기도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한글자막 by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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