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 유바나바 목자 26.08.07
창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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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 (#창세기8장 1절~5절) #창세기개론 #창세기해석 #창세기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창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창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창8: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창8: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00:00]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창세기 8장 말씀 찾겠습니다. [00:00] (화면) (창8:1) 하나님의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창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창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
- [00:00]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창세기 8장 말씀 찾겠습니다.
- [00:00] (화면) (창8:1) 하나님의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창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창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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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_one": "창세기 8장은 하나님의 기억과 구원의 역사, 그리고 시간에 따른 계획을 강조하며, 노아와 홍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를 보여준다.",
"summary_three": "창세기 8장은 홍수 이후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달하는 과정을 기록하며,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와 기억을 강조한다.\n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기 위해 백성을 기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교훈을 주며, 신앙생활에 대한 위로와 지침을 제공한다.\n하나님의 인도는 즉각적인 해결이 아닌,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한 과정이며,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붙잡고 순종해야 한다.",
"body_md": "## 하나님의 기억과 구원\n- 창세기 8장은 하나님의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기억하시고 홍수를 멈추게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n- 홍수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150일 동안 지속되었고, 이후 물이 점차 빠지며 방주가 아라랏 산에 도달하였다.\n-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 산에 이르렀고, 10월 1일 산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n- 이 사건은 하나님의 정확한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기억(권념)이 홍수의 시작과 종결, 그리고 노아의 구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n- 이는 출애굽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n\n##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n- 노아의 방주 기록은 일기장처럼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에 대한 강조를 보여준다.\n- 창세기 8장 1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생물을 기억하셨다.\n-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신다는 의미이다.\n- 하나님은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약속을 이루실 때가 되면 역사하신다.\n- 노아는 방주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다.\n- 하나님의 침묵은 망각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기 위한 준비와 시간이다.\n\n## 신앙의 위로와 교훈\n- 이는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n-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고통 속에서도 기억하신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n- 이사야 49장 15-16절은 하나님께서 자식을 잊지 않으시며, 사람을 손바닥에 새기고 항상 보호하신다는 말씀이다.\n- 하나님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가진 분이시며, 사람들이 잊는다고 해도 자신은 잊지 않으신다.\n- 하나님의 인도는 즉각적인 해결이 아니라, 때로는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한 과정이다.\n- 신앙의 여정은 기쁨으로 완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n\n## "흐라"의 의미와 하나님의 계획\n- \"흐라\"는 \"멈추다, 쉬다, 안식을 얻다\"를 의미하며, 방주가 하나님의 인도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n- 방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바람과 물결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정착시켰다.\n- 하나님의 때는 중요한데, 이는 구원을 준비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다.\n-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도 하나님의 준비 과정의 일부이다.\n- 하나님의 인도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이다.",
"tags": ["하나님의 기억", "홍수", "노아", "신앙생활", "구원", "시간과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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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막) 전문▼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창세기 8장 말씀 찾겠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서 5절까지 말씀을 찾겠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서 5절까지 말씀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창세기 8장 1절에서 5절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해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 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심에 물이 감하였고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함께 읽겠습니다.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곧 그달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노아를 권념하사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 권념은 기억한다. 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노아를 또 방주에 탔던 그런 생물들을 기억하셨다라는 내용 같이 생각해 보는 기간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계속해서 창세기 말씀을 계속 찾고 또 이 말씀을 같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6장부터 시작된 노아의 방주 또 이 세상에 대한 심판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져 있고 오늘 6장 그리고 7장을 지나서 오늘 8장에 이르는 말씀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8장을 읽다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져가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죠.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8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일하고 계신다.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8장 1자를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녈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심에 물이 감하였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이 온 세상에 다 덮였지만 이것도 정말 중요한 것은 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물을 어떻게 하셨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냐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권념하셨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라는 겁니다. 창세기 6장부터 8장까지 내용을 가만히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특별한 어떤 특징이 있습니다. 이거는 이제 출애국기에서도 그런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우리 모세가 기록하는 방식 바로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라는 겁니다. 날짜들이죠. 홍수 사건을 기록하면서 날짜를 하나하나 적어가고 있습니다. 노아 600세 2월 17일 하늘에 창이 열렸다. 40일 동안 비가 계속 내리고 또 물은 150일 동안 창이라 했다. 7월 17일 방주가 아라라산에 머물렀고 10월 1일 산봉오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40일 후 노아는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 보냈다. 다시 7일 후 비둘기를 또 내보냈다. 또 그 7일 후 세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다. 노아 600일 욕박 601세 1월 1일 지면의 물이 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27일 하나님께서 방주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마치 일기장 기록하듯이. 그렇죠? 이것을 하나하나 정리해보면 마치 일기장에 내가 경험했던 사건들을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하는 것처럼 기록해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약 1년 10일 동안 방주 안에서 생활했던 노아. 오세는 왜 이렇게 날짜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가. 단순히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일까? 저는 이제 더 중요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오세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정확한 때에 이루시는 분이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지 않습니까?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계통으로 그들의 뿌리가 무엇인가? 이걸 가르쳐줌을 통해서 그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살았지만 그들의 뿌리가 애굽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이 창세기를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하나 이게 구체적인 바로 이 날짜를 가지고 기록되어 있는 그 뿌리에 대해서 정확한 때로 이루신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씀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성수는 절대 우연히 시작된 것이 아니다라는 거죠. 그런 것처럼 물이 빠진 것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라는 겁니다. 방주가 멈춘 날도 땅이 마른 날도 노아가 나온 날도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 있는 날이었다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셨고 하나님의 구원도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것이고 그 회복 또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다 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 이 내용을 같이 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 노아를 잊지 아니하시고 그를 회복하시는 내용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면 이 구원의 때에 하나님 노아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기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를 기억하셔 너희를 권념해서 이끌고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 너희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권념이라는 말이 출연계에도 똑같이 사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이끌고 나오시는 그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곧 우리에게 또 해주시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 백성을 절대 잊지 않으신 것을 오늘 보물을 통해서도 볼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 우리가 8장 1절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이 언약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라는 겁니다. 창세기 8장은 아주 의미있게 시작을 합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이 노하와 그와 함께 방주해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셨다. 권념하셨다. 기억하셨다. 그래서 기억했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갑자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어버렸다가 갑자기 생각해서 깜빡했다. 깜빡했다. 이제 생각났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념하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잊어버리시다가 뒤늦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또 시작하는 행동하기 시작하는 그 타이밍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표현들을 말씀드렸던 것처럼 창세기에 보면 19장에도 보면 기록이 되어 있는데 19장에 보면 소동과 고무라 성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이 롯을 구원해 이런 내용을 기록해 주고 있거든요. 창세기 19장 29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에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생각하셨다. 아까 말씀드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국에서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 말씀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 말씀 2장 2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 마셨다라. 여기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들을 건져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언약이 떠올라서 하신 행동이 아니라 이제 약속을 이루실 때가 되어서 역사하기 시작 한 그때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8장 1절에 있는 권녀마사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제 노아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기 시작하셨다. 이렇게 표현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입장에 생각해 보면 홍수는 이미 끝나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비도 멈췄습니다. 하지만 방주 안에서 여전히 기다려야 되는 그 노아의 심정에 대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아도 사방은 무리고 또 어디를 보아도 육지는 보이지 않고 언제 내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실까?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1년 10개월이라는 이 시간 동안에 그 안에서 얼마나 깝깝하겠는가라는 겁니다. 또 집안에 휴가가 되어서 집안에 한 4월 있으면 편하죠? 어떤 분은 이 여름 더운 날 휴가 잡아서 왜 더운 날 밖에 가서 고생이냐? 집에서 바캉스 보내는 것이 더 좋지 않냐? 이런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더욱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맛있는 음식 시켜 먹으면서 또 핸드폰 손에 들고 이것저것 하면서 노아가 만약 오늘날 세상처럼 1년 10개월 동안에 방주에 있었다면 재미있게 보낼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가족들만 그 짐승들의 냄새가 배어있는 그 방주 안에서 둥둥 떠다니며 어디라고 할지도 모르는 이런 가운데 그 얼마나 갑갑하고 힘든 그 방주 안에서의 삶이었겠는가 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인간이라면 충분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언제 나갈 수 있는가? 언제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때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권염하셨다. 즉 하나님은 노아를 잊지 않으셨다. 기억하셨다. 노아가 하나님을 기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시고 계셨다. 사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은혜잖아요. 우리 신앙생활하면서 이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내 삶이 참 깝깝할 때가 있죠. 그래서 마음속에 많은 질문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잊으셨나요? 라고 할 때가 있죠. 아무런 진척이 없을 때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망각이 아니다. 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고 하나님은 침묵하실 수 있지만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이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그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을 때 그 깝깝한 그들의 심정, 그들의 상황 그럴 때 성경은 계속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떤 심정으로 잊지 않는가에 대해서 말씀해주는 내용들이 참 많은데 이사야 49장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49장 49장 15절부터 16절까지 찾겠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해선 한 아들을 궁위를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참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나를 잊지 아니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어머니의 사랑이 너희가 경험하는 인간의 최고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도 변한다 그런데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너를 절대 잊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 마음인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것은 사실 노아 한 사람뿐이 아닙니다 보면 더 나아가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측을 권념하셨다 즉 방주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기억하셨고 즉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만 관심이 있으신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언양 안에 둔 모든 생문 생명 그 생명체를 다 책임져 주시는 분인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도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는 거죠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속으로 주어진 사람들 그들을 결코 잊지 않고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서 28절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여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는 이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책임져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아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심정 즉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해서 붙잡고 기억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을 때 반드시 있지 않아야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기억하느냐 이것도 우리가 가지는 믿음이지만 진짜 믿음의 시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 이것을 믿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노아가 방조 안에서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아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를 끝까지 잊지 아니하시고 그를 지켜주었기 때문인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꼭 새겨져서 건념하시는 하나님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것이 비록 우리가 느낄 때는 답답하고 또 진척 없고 변하지 아니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계속 일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또 오늘 보물 내용을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 바로 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라는 거죠 8장 시작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분명히 우리를 권염하셨다라고 말씀해주고 있고 하반부에 보면 권염하셨기 때문에 즉 우리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일하기 시작하는데 어떤 일을 하시냐면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심에 물이 감하였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물이 감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억은 반드시 역사로 나타납니다 우리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을 통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시지 않았습니까? 홍수가 시작될 때도 하나님이 일하셨고 홍수가 멈출 때도 하나님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인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물을 퍼낸 것이 아니라 노아가 방주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람을 부르셔서 보내셨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물을 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게 하셨다라는 겁니다 즉 노아가 계속해서 방주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도록 하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구원의 시작도 하나님이시고 사실은 구원의 완성도 하나님이신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는데 여기서 질문이 있죠 믿지 않는 믿음의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좀 지식적으로 알고 싶은 욕심에서 성경을 보는 입장이면 그렇다면 온 세상을 덮었던 그 많은 물은 어디로 갔는가? 안 궁금하십니까? 온 세상에 물이 가득했잖아요. 온 세상에 물이 가득했는데 물이 가맸다라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동부들은 목자님 물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디로 사라졌어요? 우리 학생들은 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단계 안에서는 저는 필요한 질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 창세기 8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가마였다라고 되어 있어요. 물러갔다는 표현은 물이 없어졌 다는 표현이 아닙니다. 있던 물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게 아니에요. 물이 물러간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물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로 이 지구 안에는 새로운 질서가 생겼 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새로운 질서 가운데 물을 이동을 시켰다는 거예요. 그래서 쉽게 이해하면 요즘 지구과학을 배우면 질량 보존의 법칙 이런 거 배우지 않습니까? 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변해서 이동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마시는 물은 내가 물을 마셔서 없애는 게 아니라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수분이라는 것이 나중에 우리 몸에서 배출이 되고 또 우리 몸에서 어딘가 어떤 기관을 통해서 나오게 돼서 이게 또 증발을 하게 되고 그게 이제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또 그것이 다시 또 땅으로 내려와서 강이 되고 또 강에서 정제돼서 우리 또 물이 돼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고 이게 이제 없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런 거지 않습니까? 홍수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 세계 안에서 새로운 질서로 이동이 된 거죠. 그래서 쉽게 이야기를 하면 오늘날 워낙 날씨가 이상해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가장 큰 걱정이 뭡니까? 북극과 남극에 있는 빙하가 녹아가지고 해수면이 올라온다. 이게 걱정이다. 나중에 우리 지구에 있는 땅의 몇 프로가 감소될 거다. 이런 얘기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바닷물이 드러난 땅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아시나요?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면 집에서 밥을 하실 때 한번 실험을 한번 해보세요. 밥을 하면 밥솥에다가 쌀을 넣고 물을 채우지 않습니까? 쌀이 더 많게 하나요? 물이 더 많게 하나요? 물을 더 많게 하죠. 그런데 쌀을 더 쌀을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 밑에 있는 한쪽에 있는 쌀을 밀어올리면 쌀이 드러나죠. 그런데 그만큼 물의 한쪽은 깊이가 생기잖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 되십니까? 그러니까 온 세계를 마치 밥솥처럼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 자체를 홍수가 내릴 때 땅이 솟아오르면서 지각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죠. 그러면서 이 땅이 융기와 치마 이게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럼 자연스럽게 되어있게 됩니까? 물이 깊어진 곳으로 물러가게 되고 또 한쪽 땅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거죠. 이렇게 균형이 생기는 겁니다. 이게 질서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해수면 위에 있는 땅을 다 깎아내가지고 바다를 메우면 절대 메울 수 없습니다. 훨씬 더 바다가 깊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이 질서가 언제 생겼을까요? 창조과학자들은 이 노아의 홍수의 대격동 이때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뭐라고 말하냐면 격견적 판구조론 이런 말을 하죠. 이렇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과학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구나.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으로 성경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사실은 발견하는 거예요. 우리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이 시대에 의학이 발달하고 혹은 또 기술이 발전하면서 발견하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신기한 겁니다. 우리의 눈은 한계가 있어서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세균. 세균은 원래 있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거죠. 원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게 있다라는 사실을 우리 몰랐죠. 기술이 발달하니까.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만들어 놓은 이 세계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실 하나님 믿는다라는 것은 이런 과학을 통해서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믿음으로 믿는 겁니다. 믿음으로 믿는 거예요. 다만 우리가 믿음의 단계에서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는 사람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고 믿는 거예요. 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믿음의 단계에서는 이게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 믿음이 흔들리는 것처럼 때로는 이런 일들을 이해해가면서 하나님을 믿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말씀하시기 때문에 믿는 겁니다. 그래야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런데 이런 연구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또 주기도 하죠. 성경의 기록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나 신화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실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또 우리가 이해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가 더 중요하게 보여야 될 게 뭐냐면 물이 어디로 갔느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거예요. 누가 물을 걷어내어 가셨는가 누가 그렇게 하신 겁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래서 1절에 보면 하나님이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심에 물이 감하였다. 단순한 자연현상을 설명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창조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다. 이걸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는 거예요. 홍수를 일으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셨고 홍수를 멈추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심판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고 회복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게 뭐냐면 하나님은 즉시 이 모든 것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겠다는 겁니다. 3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이것도 이성적으로 이해해 볼 게 있죠. 이해해 볼 게 있습니다. 우리가 엄청난 비가 쏟아지면 산에 한번 가보세요. 그 산이 머금고 비가 오면 산이 머금고 있던 물들을 계곡을 통해서 통해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가 온 다음에 얼마 되지 않게 계곡에 가면 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물들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서 점점점 수가 줄어가는 거죠. 점점점 시간이 가면서 줄어가는 거죠. 이성적으로 이해해 보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런데 발견이 되어 가는 거예요. 하나님은 단순히 문제만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믿음을 만들어 가시는 분이다라는 겁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비가 멈춘 후에도 기다렸어요. 물이 줄어드는 과정에서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계속 일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우리의 삼동이 이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도했는데 아직 응답이 내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건가요? 나는 열심히 기도하는데 나는 빗땀 흘려서 열심히 기도하는데 나는 작정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하는데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셔 그런 분인가요? 그래서 문제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에 대해 실망했다고 그래서 그런 전화도 가끔 받습니다 하나님, 목자님 제가 하나님한테 실망했어요 하나님 왜 제 기도는 안 들어주는 거예요? 누가 봐도 이거 들어줄 수밖에 없는 건데 누가 봐도 하나님께 이루어온 일인데 어떻게 이거 안 들어주세요? 라고 하면서 원망하는 말을 때로는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분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럴 때가 있어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사실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기다리게 하심 이건 하나님의 포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계속해서 일하고 있는 거죠 점점점점점 물러가게 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실 때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측량할 수가 없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답답한데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면 인내하라고 인내의 믿음을 가지라고 상황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계속해서 이걸 강조하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약속해 주었는데 세상에 백세의 아들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기간 동안 얼마나 답답합니까 아무것도 일하지 않냐 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측량할 수가 없어요 볼 수가 없어요 잴 수가 없어요 그래서 믿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이것이 힘들잖아요 목자님한테 고민해서 얘기했더니 기껏 얘기했으니 인내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기다려야 될 것 같아요 언제까지 때가 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을 지으실 때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세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때를 위해서 하나님도 일하시고 하나님도 일하시면 우리도 일을 해야죠 하나님의 때는 늦지 않습니다 아름답죠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물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노아가 바로 방주 밖으로 나온 것은 또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다 이걸 말씀해주고 있죠 방주는 계속 무리에 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방주를 안전한 곳에 머물게 해 나가는 데 다음 단계를 보면 세 번째 하나님은 구원의 방주를 반드시 안전한 자리로 인도하신다 인도하신다라는 겁니다 창세기 8장은 홍수 이후의 회복의 과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걸 날짜별로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죠 4절 보겠습니다 4절 창세기 8장 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7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라산에 머물렀으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뭐냐면 방주가 산에 도착했다 이 사실만이 아닙니다 모세는 왜 굳이 날짜를 기록했냐 언젠가 방주가 산에 도착할 거야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게 기독교를 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정확하게 7월 17일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은 어떤 막연한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 이런 정확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본 것처럼 홍수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닌 것처럼 날짜를 따라서 시간을 따라서 즉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기록했다는 거예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큰 기품에 샘들이 터지고 하늘에 창들이 열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졌죠 그걸 기록해 주고 있는 것처럼 40일 동안 비가 내린 사건에 대해서 기록해 주고 있는 것처럼 마침내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째 되는 날 방주는 아라라산이라는 곳에 정착 머물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혼란 속에서도 정확한 하나님의 방법이 분명히 있고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라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노아 입장에서 보면 이 노아의 방주에는 노가 없어요 키도 없습니다 키를 만들지 않았어요 키가 뭡니까 우리 자동차 키가 어디에서 온 오원입니까 우리 배를 보면 핸들 같은 거 있잖아요 그게 키잖아요 그거 그거지 않습니까 노아의 방주에는 그게 없어요 노아가 방주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움직이는 거니까 하나님이 움직이는 거니까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답답합니다 밖에는 물밖에 없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노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시죠 방주가 어디로 갈 건지 언제 멈출 건지 어디서 머물게 할 건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운영하시고 진행하신다 이게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방주가 아라산에 머물렀다 단순히 우연히 걸렸다 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노아흐라는 이 단어인데요 멈췄다 쉬다 안식을 얻다 안식을 얻다 그래서 방주가 우연히 어느 곳에 걸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로 인도에 가셨다는 거예요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으로 그래서 말하는 이 단어를 나중에 안식일에 붙여서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붙여서 많이 사용해요 안식을 얻다 그래서 노아가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노아가 산을 찾아서 간 것이 아니라 바람과 물결에 맡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노아의 방주를 하나님께서 그 방주가 머물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곳에 정착시켜서 머물게 했다는 거예요 거기에 안식이 있으니까 그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는 우리 인생이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앞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로 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기도해도 상황이 바뀌지도 않고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계시니까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에는 반드시 방향이 있다 그런데 그 방향은 누가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뭐가 필요한 거예요 순종이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붙잡고 그것에 순종해서 살다 보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는 거죠 가장 안전한 곳으로 10편 37편 23절에서 24절에 보면 요아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암은 요아께서 손을 손으로 붙두시미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붙두셔서 그렇게 인도해 가신다는 거예요 비록 우리가 살다 보니까 넘어진 것처럼 보이고 넘어지다 보니까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일으켜서 결국에 데려가는 곳은 가장 우리에게 맞는 안전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가보니까 물이 점점 감아요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의 봉오리가 보였다 점점 하나님은 한순간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라라산에서 도착했다고 바로 밖에 나온 것도 아닙니다. 아직 기다려야 된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은 장소만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배우는 과정이에요. 우리가 그런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방주 안에 있는 노아는 그 하나님의 구원을 배워가는 과정이에요. 종종 우리가 하나님 앞에 좀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쓸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믿음이 생길 때까지는 기다려야 된다. 조금 더 내려놓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단순하게 우리를 어려움에서 꺼내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를 준비시키는 분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일들을 보면 준비시키는 하나님인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 40년 동안 살아가게 하신 그들이 만난 많은 일들 다 하나님의 때에 만날 일을 만나고 만남에서 반응하는 일들의 과정을 도우면 조금씩 조금씩 그들이 준비되어 가는 어디를 가기 위한 완전한 구원 바로 가난에 들어가기 위한 이 과정인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처럼 노아도 그랬습니다. 이 구원의 방주 안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있는 과정 가운데 배워가는 거죠. 우리도 그렇습니다. 구원의 방주 가운데 있는 우리가 바로 구원이 이루어 하나님께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배워가야죠. 그게 지금의 과정이다 라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씨앗을 심고 다음날 땅을 계속해서 파보고 파보면 그 씨앗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거는 뿌리가 나기 전에 말라버릴 거예요. 기다려야죠. 왜 안 나오지? 왜 안 나오지? 분명히 심었는데 기다려야죠. 하나님도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고 그럼 우리도 그의 맞게 일을 해야죠. 노아의 방주는 무리에서 흔들렸지만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방주의 안전함은 노아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방주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거예요. 우리의 믿음이 강해져야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도 반드시 배워야 됩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준비되어 가는 우리를 보면서 흐뭇해하실 것입니다. 마치 민준이가 잘하는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지 않습니까? 언제 기어가 다니던 것이 저렇게 서 있는가 생각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면서 그러실 텐데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일들을 꼭 마음가운데 새겨서 비록 우리 앞에 답답하고 앞이 보이지 않고 너무나 응답이 늦어지는 이런 답답한 상황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당연한 겁니다. 그런 가운데 꼭 하나님 붙잡고 이 신앙의 여정을 끝까지 완주하는 저 여름 되시기를 제 이름으로 주건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 생각하시면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참 큽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가 너무나 큰 우리의 선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힘이 나고 능력이 되고 또 새롭게 뭔가를 이뤄나 할 수 있는 그런 원동력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능력이죠. 어쩌로 이거 붙잡고 우리 신앙의 여정을 꼭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성령의지에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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