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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라

이남찬 · 벧후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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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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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후서 3:8-13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재림의 약속,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본문베드로후서 3:8-13베드로후서 3:11-13베트후 3:11-13
  • 베드로 후서 3:8-13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재림의 약속을 다룬다.
  •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며, 재림은 준비가 필수적이다.
  • 신앙인은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며, 세상과 구별되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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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 개념

  •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며,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
  • 재림의 지연은 하나님의 인내와 회개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 주의 약속은 지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림의 준비와 경계

  • 주의 날(재림)은 도적처럼 예상치 못하게 온다고 하여, 준비가 중요하다.
  • 도적은 언제 오는지 미리 알리지 않지만, 준비를 통해 피해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 말세에 그리스도인은 더욱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신앙생활의 실천

  • 신앙인은 어둠에 속하지 않고, 깨어 있고 근신해야 하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야 한다.
  • 경건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두려움과 순종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통해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며, 교회는 비진리, 세속성, 성공주의 등으로부터 경계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과 말세

  • 예수님의 재림은 천장이 불에 타고, 세상이 멸망하는 장면이 나타난다고 묘사한다.
  • 예수님 오실 때는 세상이 멸망하고 악이 더 커질 것이며, 준비가 필수적이다.
  • 진정한 믿음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하며, 천국은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다.
  • 예수님 오실 때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사(자막) 전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같이 나눈 말씀 베드로 후서 3장 8절에서 13절의 말씀입니다.
베드로 후서 3장 8절에서 13절의 말씀 저 한 구절씩 교독하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8절에서 13절의 말씀 우리 한 구절씩 교독하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8절에서 13절의 말씀 저 한 구절씩 교독하겠습니다.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도시의 요리에 풀어지고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의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가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렇게 마지막을 준비하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업과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그 일들은 시작이 있고 끝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러한 어떤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사실 다양한 면에서도 마지막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자기의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퇴직한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굉장히 많이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이제 백세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까 65세 퇴직하고도 아직 몇 년을 더 살아야 됩니까 평균적으로?
25년 이상 더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먹고 살아야 될 문제가 있다 보니 또 끝을 알고 일을 준비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를 알게 된다면요.
사람들은 준비하게 되고 그 준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굉장히 지혜롭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분명히 일어나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마땅히 준비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 마지막 말세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교훈의 말씀인데요.
어느 말씀 같이 나누면서요. 우리는 말세에 어떻게 이 세상을 준비할 것인가?
말세에 우리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할 것인가?
같이 말씀을 통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8절에서 9절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에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게 이르기를 원하시는 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요. 하루가 몇 년 같습니까? 천년 같고 천년이 뭐입니까? 하루 같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말씀을 고지곳대로 문자적으로 본다면 우리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몇 년 전에 하셨습니까? 대략 2천 년 전에 하셨어요.
그러면 우리 예수님에게 이제 우리 하나님의 입장에서는요.
이제 며칠 지난 것입니까?
여러분 고작 이틀 지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잠깐 내가 어디 갔다가 올게 했을 때 그 잠깐이 가끔은 일주일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몇 년이 더 필요합니까?
5천 년 더 지나야 돼요.
아무튼 우리 하나님의 시간의 관념에서는 이런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세계에 계신 분이다 보니 우리 사람의 시간 속에 있는 천년, 만년이라는 시간은 사실 영원이라는 그 개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사실 영원이라는 그 시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참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독교에서도 그런 어려움들이 있으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그러니 절대 더딘 것이 아니다.
그래서 9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그 재림의 약속이 자꾸 안 오시니 너희가 자꾸 오해하고 있다.
예수님 안 오실 것 같이 보이고 또 우리가 신앙생활 이렇게 핍박받으면서 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 오기는 오는 걸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우리 하나님께서는 왜 바로 당장 내일 안 오시고 사독교 입장에서는 당시에 너무 안 오셨는데 오늘날까지 보면 2000년 이상을 아직 안 오셨어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오래 참으셔서 너희에 대하여 바로 너희들이 회개해서 모두 멸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해야 돼요.
우리 하나님께서는요.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고 다 천국에 가는 걸 원하십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드로 후서의 말씀에서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바로 교회 성도들을 말하며 성도들이 정말 모두가 회개하여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그리스도 안을 거하기를 우리 하나님이 기회를 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요.
모든 사람이 처음에 시작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람이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 신앙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게 과거에 일을 했다는 사람도요.
시험에 크게 들어서 넘어지게 되어서 교회에서 모습이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다시 회개하여 다시 하나님께 찾아와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분도 계시지요.
우리 하나님은 사실 과거를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하나님이 제일 중요하게 보시는 건 언제일까요?
지금입니다. 현재입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참 시간에 굴레 속에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언제 오실까요?
우리 참례숙교회가 세워진 지 100주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고있으면 11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언제 오십니까?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또 저희가 예측하기 어려운 정말 세상에 별의별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진짜 언제 올까?
우리가 매번 말하는 것이 이제 곧 예수님 오실 것 같다라는 말을 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10절의 말씀에서 주의 날, 바로 재림의 날을 가리켜 뭐라고 비유합니까?
자, 10절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구조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마지막 날이 바로 도적같이 온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적은 언제 오는지를 미리 예고하고 옵니까?
그런 도둑이 있으면요.
아마 경찰이 붙잡아놓고서는 너는 정말 어리석다.
도둑질 또 머리가 좋은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이러지 않습니까?
도둑은 절대 내가 언제 여기에 몇 월 면칠 몇 시에 당신의 집에 와서 뭘 훔치겠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은밀하고 주도 면밀하게 그리고 아무 생각지 못할 때 방심할 때 오는 것이지요.
그러면 문제는 이거라는 거예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 입장에서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마지막 날 재림을 바라는 소망인데 예수님이 오시는 날을 좀 알면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몰라요.
그러다 보면 우리도 뭐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죠. 방심하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지금 회개해야 될 게 있는데 회개도 못하고 알고 놓쳐가지고 결국 뭐가 될 수 있어요?
천국을 못 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럼 큰일 나잖아요.
그러니까 참 우리 입장에서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오는 것이 사실 좋은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정말 도적같이 오십니까?
우리 대살로니가 전서 5장 해보겠습니다.
대살로니가 전서 5장 4절입니다.
2절부터 보시면요.
2절 보겠습니다.
대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룰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미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른 것 같이 멸망이 호르니 저에게 이르니니 결단고 피하지 못하리라
우리 아까 베드로 후사님 말씀처럼 절대로 주의 날은 알 수 없다. 도적같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절의 말씀을 보면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않야매 그날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합니까?
아니만대요? 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까?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럼 몇 월 며칠에 오십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미는 그게 아니죠.
우리 성교에서 말하는 것은 몇 월 몇 시 이렇게 알기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니라 말세의 징조들을 통해서 이제 곧 예수님이 오시는 걸 아니까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오신다고 이미 약속하셨어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준비하면 되는 거예요. 이거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를 해야만 그날이 우리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도적은 절대로 몇 월 몇 시에 온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런 거예요.
나 너의 집을 방문할 것이다. 그래서 뭘 훔칠 거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뭘 해야 합니까?
열심히 잠금장치도 만들고 신고도 하고 준비할 거 아닙니까?
언젠간 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도둑이 도둑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정말 마지막을 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보니까 우리들도 신앙이 깨어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곳에서 근신하고 깨어있으라고 합니다.
그런 자들이 바로 주의 날을 도적같이 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그래서 우리 성도 가운데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도적같이 임하지 않도록 우리는 마지막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까요?
오늘 두 가지의 말씀으로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요.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베드로서 3장 11절 말씀 보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11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아멘. 우리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세상이 멸망할 것인데 우리 베드로서 3장 11절입니다.
우리 베드로서 4장 11절입니다.
우리 베드로서 4장 11절입니다.
그래서 5장 11절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거룩함에 대해서 거룩함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좀 있습니다.
마치 깨끗한 자가 깨끗하고 성결한 게 거룩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먼저 구별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러운 죄인들 어둠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따로 불러내어서 구별하시고 하나님에게 속하려면 거룩하고 깨끗하고 위로워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이란 구별됨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룩은 여러 사람이 있어도 구별되어 보여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이 거룩하게 살아간다면요.
구별됩니다.
구별될 수밖에 없어요.
친구들이 학교 친구들이 다 세상 연예인에 빠질 때 모르면 안 됩니까?
몰라도 돼요.
그게 거룩의 시작입니다.
애들이 이상하게 보죠.
그게 맞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술 마실 때 나는 술 마시지 않는다.
그것도 이상의 의견입니다.
심지어 직장 상사나 선배가 건네주는 술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서는요.
그것 때문에 굉장히 많은 피해를 보시고 괴로움과 심지어 구타도 당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술을 머리에 붓거나 머리에 이렇게 탁 던지기도 해요.
그게 뭐가 문제냐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내 거룩함을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백성의 말씀을 쫓아 살아간다는 것으로 나를 드러낸다는 것.
왜 세상 사람들이 발끈하시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가 죄악땜을 구리라는 빛 때문에 알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화가 난다고 성경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의 빛이다.
내가 그래서 저 어둠들을 어둠이라고 말했는데 저들이 나를 뭐 했다는 거예요?
핍박했다는 거예요.
하물며 선생과 주인에게도 이렇게 했는데 하물며 제자와 종된 너희들에게는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스승이자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이자 예수님의 종이예요.
우리의 스승과 주인에게도 함부로 하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얼마나 더 험악하고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그게 우리 정체성이라는 거예요.
저도 음악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음악하는 세계를 잘 모르실 거 아니에요.
겪어본 분들은 아실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심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정말 힘들고 미혹과 시험거리 속에서도 늘 도망나시고 피하십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회사에서 승진 자리를 그러니까 그분이 우리 형제님이 너무 뛰어났어요.
너무 잘했거든요.
승진시켜주고 키워주려고 해서 그래서 간부들을 만나고 주요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게 해줬어요.
어디 간지 아십니까?
여자 이런 업소 간 거예요.
그런데 우리 형제님이 그런데 가겠습니까?
절대 안 간다고 막 몸부림치면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다음날 회사에 나왔는데 얼마나 난리가 났겠습니까?
그러면 그 거래처 사람들과 직장 상사들이 뭘 하는 거예요?
너만 의롭냐는 거예요.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요.
우리 성도인데도 전혀 거룩이 없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의 모습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다 욕도 안 하시고 남 비판도 안 하시고 항상 교회에 와서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모습은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런데 그 본 모습은 진짜 어디서 드러날까요?
그건 세상에서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 요셉이 대단한 거예요.
요셉은 애국에 하나님 믿는 사람이 누구밖에 없었어요?
몇 명이었습니까?
자기 혼자예요.
하나님 말씀 안 지킨다고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내가 하나님 옆에 어떻게 특제합니까?
늘 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그리고 또 경건이라는 게 나옵니다.
여러분 경건이 뭡니까?
제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많이 들어왔던 게 있습니다.
여기 설교석상은 뭐합니까?
굉장히 경건하다는 거예요.
이게 경건입니까?
경건이라는 말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원어를 갖고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이 뭐냐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아이가 놀다가 강대상 올라갈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닌데 강대상이 무슨 구원시켜주는 그런 겁니까?
그게 아니거든요.
경건이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 잘 우리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 경건이라는 말은요.
사실 두려워하다라는 말이 시작되는 겁니다.
두려워하다.
그러면서 존중, 존경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건데요.
우리 디모대 전설 보겠습니다.
디모대 전설 4장 7절 말씀 보면요.
보세요.
경건은 물건이나 어떤 이런 분위기 이런 게 아니에요.
4장 7절 보시면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로 뭐하래요?
연습하는 겁니다.
행동적인 게 경건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경건하는 행동을 해야 되는데 경건한 행동이라는 게 뭐냐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어르신들한테 굉장히 예의를 차리는 것 유교적인 성향을 갖고 하는 것 그거일까요?
그거 공장에서 시작된 말 아닙니까?
우리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많이 오해하는 말 중 하나가 사랑은 뭐라고 합니까? 사랑은 뭐예요? 우리 고린들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겸손하고 예의를 주시하는 이런 말이 있거든요.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사실. 나중에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더 자세하게 할 겁니다.
성경에서 그게 뭘 말하는지 알아야죠. 성경에서 말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경건이라는 것은 연습이 있으면 어떤 행위를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행위일까요? 그래서 경건이라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두려워해서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나타나는 형상이 있습니다.
뭘까요? 순종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뭐가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우리 누가 보금 보겠습니다. 누가 보금 5장입니다.
누가 보금 5장 25절 말씀 보면요. 우리 사람은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들입니다.
보시면요. 누가 보금 5장 25절 말씀 보시면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가노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시는 이 모습을 보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요. 경건한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에 두려움으로 순종하시고 사셨다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의 표적이 일어나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되고 그 영광을 통해서 그들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뭐예요?
이게 경건의 원뜻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 말씀 순종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요.
여러분들 우리들 삶 가운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보고선 하나님의 두려움을 느끼고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느껴야 됩니다.
그런 삶을 산다는 게요.
정말 쉬운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려면요.
굉장히 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시험 속에서 세상 사람들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 사람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걸 봐야 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얼마나 우리가 그렇게 살아갑니까?
혹시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너가 믿는 하나님, 너가 믿고 너가 따르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
너는 정말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주고 나를 좀 도와달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그 정도 살아야 경건해 모르겠어요.
예수님의 경건의 기억이라도 도달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건해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거예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물건이 경건하고가 아니에요.
내가 행위가, 내가 얼마나 이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느냐 그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 마지막 말세에 우리 베드로가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말세에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 것이 중요하냐?
거룩하고 경건인데 왜 마지막 때에 경건이 중요하냐?
디모델 후서 해보겠습니다.
디모델 후서 3장 1절입니다.
똑같이 말세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도 경건을 이야기해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디모델 후서 3장 1절 말씀 보면요.
네가 이것을 알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니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규만하며 회방하며 도무를 거 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하면서 쭉 이야기하잖아요.
사제 보시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구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누구보다 더 사랑합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이 있으면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 자니.
이 같은 자에게서 네가 뭘 합니까?
돌아서라는 거예요.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말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난다?
말세에 일어날 거다.
그런데 이들은 뭐가 있대요?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부정한다.
없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경건은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폭 풍 만나고 괴로워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가지고 아 저 사람은 누구다? 하나님이 함께한다.
저걸 느끼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런 거예요.
말세가 돼서 우리 성도들이 우리들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긴 믿지만 세상을 더 사랑해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말씀 들을 때는 뭐합니까?
아멘 하고 하나님 말씀 지켜야죠.
하나님 말씀이 중요하죠.
말은 그러지만 실제 세상에 가서 여러 시험과 어려움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아까도 그렇게 말씀드렸지만 경건은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폭풍 두려운 것보다 하나님 말씀 어기는 게 두려운 거예요.
그게 순종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더 두려웠고 세상이 더 사랑하니까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지켜요? 안 지켜요?
안 지키는 거예요.
우습게 여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경건의 능력이 일어날까요?
안 일어납니다.
그걸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교회 와서는 하나님 말씀 잘 듣는 척, 하나님 말씀 무서워하는 척, 하나님 말씀 듣 고 회개하는 척 해놓고선 세상만 돌아가면 뭐 하는 거예요?
하나도 안 지키는 거예요.
하나도 안 무서워해요.
사실 정말 하나님 말씀 들으면서요.
굉장히 무서울 때도 많아요.
안 그렇습니까?
정말 무서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맞아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금유를 베퍼주고, 사랑으로 위로해 주는 말도 있지요.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죄송스럽지만 성경의 70%는 우리를 권면하고,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고치라고 하는 우리 의 죄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설 때 두려워 떨어서 뭐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있으면 두려워서 뭐 해야 합니까?
엎드려져야 돼요.
왜 엎드립니까?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어떻게 봅니까?
그런데 우리 성경에서 뭐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누굴 본대요?
죄가 없으니까 하나님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성령이 우리를 일으켜서 하나님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 말씀이 많이 들어오지만 정말 정작 내가 하나님 말씀을 정말 경건함을 이루기 위해 정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제 말세가 정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정말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서 순종하려는가.
제가 분명히 느끼는 게 하나 있어요.
뭐냐?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도 있는데요.
교사 말도 듣지 않으면요.
하나님 말씀 안 듣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이 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해놓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보이는 사람한테도 할 줄 모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한테는 어떻게 하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들이 건면하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안 듣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저분은 도대체 하나님 말씀을 정말 들을까?
하나님만이 아실 겁니다.
모든 건 마지막이 결과로 나올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나는 구원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옆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구원받길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기도하면서 경건해 이르기를 노력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대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서 좀 무섭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에게 헌신하지 않고 교회에게 복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경험대로 죄송하다 한마디면 어차피 교회에서 다 용서일 줄 아니까 죄송하다 말하고 안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성경에 이런 지혜를 말했습니다.
끝까지 사랑으로 품을 거지만 돼지 앞에 뭘 던지지 않는다?
진주를 던지지 않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뭐와 같다?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는 거예요.
성도를 가리켜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될까요? 바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구하셔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베드로 후서 3장 12절 말씀 보시면요.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의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러니와 아멘.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는 거예요.
이 말씀은요. 원어를 가지고 보면요. 당긴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오시는 날을 당길 수 있을까요?
여기 당길 수 있다고 합니까? 없다고 합니까?
있대요. 어떻게 당길까요?
사실 우리 예수님은요. 이 세상을 오실 때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은 홍수 심파하실까요?
아니죠.
노아 입장에서는 빨리 뭐 하면 돼요?
하루라도 빨리?
방주 만들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하나님이 뭐 하실까요?
홍수를 내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그 간절한 마음이 바로 이 말씀과 동일한 거예요.
정말 하나님의 날이 간절히 임하기를 사모한다면요.
우리가 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하는 딱 그때가 있어요.
우리 게시록에 보면 게시록 보겠습니다.
게시록 7장.
14절 17절의 말씀입니다.
14절 말씀 보시면요.
하고 쭉 읽어보시면요.
14만 4천이 나오는 순간.
즉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경건하고 거룩함을 이룬.
정말 다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그러는 자들.
그런데 어떻게 범죄하지 않을까요?
정말 마지막 대이기 때문에요.
세상은 이미 풍기 박산나고 교회 안에서도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나고 악인들이 의인들을 어마어마하게 괴롭힐 때 남은 우리 성도들은 의인으로서 많은 빚박을 받습니다.
그러면 빨리 뭘 바랄 수밖에 없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날에 간절히 사모하게 하나님이 또 만드실 거예요.
우리가 너무 괴로우면요.
하나님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 너무 편안합니다.
안 그래요?
너무 편안하니까 다들 내일 하나님이 오신다는 거 생각도 안 하고 삽니다.
회개도 안 하고 말씀을 가르쳐도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정말 내일 예수님 오신다면 또 이 상황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다면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요.
평안하고 평화로우면요.
자기 본성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걸 잘 아시기 때문에 어떻게 하실까요?
엄청 괴로운 불시험을 줄 겁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 서 계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모르겠어요.
여기 중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게 결코 나쁜 게 아니에요.
하나님 뜻이면 뭐 하나님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화를 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성도들이 너무 괴로우니까 이 말씀을 알기 때문에 뭐 하면 돼요?
우리 예수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란다면 뭐 하면 됩니까?
우리가 빨리 거룩해지면 돼요.
경건하게 살고 교회가 온전해지는 것을 우리가 온전해질 때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거든요.
지금도 이미 다 말했잖아요.
그러면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할까요?
진짜 경건하게 살면서 예수님 오실날을 바라는 사람은 완전 다르게 살 겁니다.
그러면 그날을 우리가 뭐 하는 거예요?
그게 사모하는 것.
바로 그날을 당기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오늘 날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요.
세상이 완전해지고 세상이 무슨 뭐 평안을 가져다주고 세상이 부응할 거라는 오해를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멸망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악해질 것이고 더 많은 질병과 재앙과 신앙안의 병듬과 온역과 비진리와 세속적인 것들이 계속 들어올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경건하고 거룩하게 정말 열심히 살아가야 돼요.
정말 진심입니다.
진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원로 목자님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천국에 가면 너가 두 가지로 놀랄 것이다.
첫 번째는 와야 할 사람이 뭐 있다?
없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안 올 것 같던 사람이 뭐 있다?
와 있다는 거예요.
참 그 말이 참 무섭기도 하며 이게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겠구나.
어린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마음 깊이 새겨놓고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멸망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겠습니까?
오늘 성경에서 두 가지를 말했어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됩니다.
또한 사실 그거와 관련 있는 거예요.
두 번째도 우리가 그것을 이루어서 그 날을 앞당기는 그 마음.
예수님 늦게 오세요가 아니라 예수님 빨리 오세요라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요.
행동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로 증명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때 그렇게 살아가면요.
마지막에 뭘 얻을까요?
우리 베드로 호서 3장 13절 말씀 보시면요.
베드로 호서 3장 13절 말씀 보시면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가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그렇게 말합니다.
결국 너희가 이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약속을 지키실 것이니 너희는 새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있지 않냐.
그것을 뭐 할까요?
받을 것입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여러분 천국 가서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천국 가는 게 쉬우면서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을 믿으면 쉬운데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고 살면요.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는 것이 참 어렵지요.
오늘날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아가야 됩니다.
이 세상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세상 사람들의 이웃과 이 말 세상의 흐름 철학 이런 것들 절대 미혹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오르지 봐야 되는 것은 성경이며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이 교회 안에 머물러야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 여러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비진리가 있으며 우리 교회에 세속적 성공주의가 있으며 또 세속적 신앙이 우리 교회 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 부활을 믿지 않는 신앙과 그 다음에 재림은 오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도적같이 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도적같이 않은 바로 준비된 상태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기 계신 저 여러분께서 우리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셔서요.
경건함에 이르셔서 주의 날을 당기셔서 우리 모두 다 함께 천국에 와서 영원히 사시는 그런 시간 생활을 하는 저 여러분들이시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찬양 163장 다같이 찬양 들으시겠습니다.
이것으로 화요일 저녁 예배 마치겠습니다.
일어나셔서 인사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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