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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귀히 여기라 유바나바 목자 26.07.28

고전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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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귀히 여기라 (#고린도전서7장 1절~7절)
#고린도전서개론 #고린도전서해석 #고린도전서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고전7: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전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7: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고전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전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고전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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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은 가정의 중요성과 부부의 상호 의무, 결혼과 독신의 하나님의 질서에 대해 설명한다.

본문고린도전서 7:1고린도전서 7:7
  • 고린도전서 7장은 가정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귀히 여기고, 부부가 상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결혼은 음행을 피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로, 독신은 특별한 은사로 하나님께 주어진 선택이다.
  • 가정은 참된 사랑을 배우는 학교이며,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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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의 핵심 내용

  • 가정의 중요성: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세워져야 하며,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부부의 의무: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을 위해 살아야 하며, 상대의 몸을 주로 관리해야 한다.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 결혼과 독신: 결혼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음행을 피하기 위해 권장된다. 독신은 특별한 은사로 하나님께 주어진 선택이다. 결혼과 독신은 우열을 논할 수 없으며,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 사랑과 헌신: 사랑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결혼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과 비교될 만한 상호 사랑을 요구한다.
  • 가정의 역할: 가정은 참된 사랑을 배우는 학교이며, 인간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중요한 도구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음행과 같은 죄가 발생할 수 있다.
  • 고린도 교회의 문제: 고린도 교회는 결혼을 피하는 금욕주의가 있었으며, 바울은 이를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설명했다.
전사(자막) 전문▼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오늘 같이 자질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7장 1절에서 7절까지 말씀 찾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에서 7절까지 말씀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절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은 없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함께 읽겠습니다.
오늘 읽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귀히 여기라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귀히 여기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우리 화요일 저녁 예배 때마다 우리 고린도전서 고린도 교회에게 주시고 있는 바울사도의 말씀을 같이 찾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시간에는 이 가정의 소중함을 잊어버렸던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고 오늘 여기는 이 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면서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할 때 우리가 어떻게 어떤 문제가 또 일들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함을 통해서 생기는 일들 또 후회들 이런 것들이 참 많죠.
오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대전과 천안에서 학생부 영원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대전에서 함께 모여서 학생부 영원회를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고등부 영원회 또 중등부 영원회 나눠가지고 천안과 대전교회에서 이렇게 따로 열렸습니다.
지난주에는 중3 수련회가 있었고 또 7월 첫 번째 주에는 대학부 영원회가 이렇게 있었는데요.
교육 행사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행사를 할 때마다 제가 느끼는 것이 참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사들을 치르고 나서 항상 우리 아이들한테 오늘 이번 행사는 어땠어라고 물으면 한결같이 하는 얘기는 좋았어요.
한결같이 하는 얘기는 좋았어요.
라고 약하게 말하는 친구부터 해서 너무 행복했어요.
라고 굉장히 강하게 말하는 또 그런 친구들로 후회 없이 이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우리 아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원회를 참관해 보고 또 주관해 보면 우리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하는 것이 보이죠.
그래서 오늘 영원회 끝나는 때에 영원회 책임교사 그리고 끝날 때에 또 우리 아이들 가운데 책임교사가 울고 또 아이들 가운데 울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책임교사는 왜 울었을까요?
이 천국같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아이들이 마음에 막 쓰여가지고 너무 안타깝고 너무 아쉬워서 우는 교사 그러면 학생은 왜 울었을까요?
천국같은 이 자리를 떠난다라는 것이 너무 아쉬워가지고 헤어짐의 눈물 그래서 그 마음이 온전히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런 일들을 경험해서 느낀 건 뭐냐면 참 아이들이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길 줄 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같이 되라라는 말씀을 한 걸 우리 예수님이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귀한 것이 무엇인가?
그 귀한 것을 어린아이들은 압니다.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그 귀한 것을 붙잡을 줄 알고 그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그걸 누릴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그런다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럴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느끼지 못할 때가 참 많다라는 거죠.
참 많다라는 거죠.
우리 이번 행사에 참석했던 그 친구들은 그 영혼의 기간에 주었던 하나님의 은혜가 또 하나님의 평강이 또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고 그것이 소중하게 일 줄 아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 귀한 것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떨 때 그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알게 되냐 깨닫게 되냐 그걸 잃어버렸을 때죠.
그걸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건강할 때는 건강이 얼마나 귀한 건지를 알지 못하지만 건강을 잃어버려 보면 그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또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이 또 그러한 겁니다.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 가정 안에 있는 부모님이 귀중한데 평상치에 알지 못했던 그 부모님의 소중함을 잃어버리면 알게 되는 거고 자녀도 그렇고 또 아내도 그렇고 남편도 그러하다라는 겁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 그러한 것이죠.
가정은 정말로 소중한 것입니다.
귀하게 여겨야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많은 부분에서 다른 것을 또 바라보고 또 그것을 찾고 그걸 위해서 살다 보니까 많은 부분에서 진짜 내게 귀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 때가 참 많이 있다.
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이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가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가정은 얼마나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또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런 거룩함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이 가정은 또 얼마나 우리에게 또 필요한 것인가 이걸 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서 또 부부의 소중함에 대해서 결혼의 소중함에 대해서 사실 굉장히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은 좀 더 비유적이고 또 확장적인 의미에서의 가정의 소중함에 대해서 같이 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이 가지는 의미는 6장에서 바울서도가 말했던 것은 바로 음행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이 가정이라는 관점에서 큰 혼란을 겪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 음란이라는 문제 바로 고린도 교회가 떠안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가 하나가 뭐냐면 음란을 허용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앞서 6장에서 바울은 성도의 몸이 음행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를 위한 몸이라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강력하게 말씀해 주고 있고 그 성도의 몸이 누구의 것인가 이걸 다시 한번 밝혀줌을 통해서 우리가 음란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잘 말씀해 주고 있고 음행하지 아니하는 그러면 이것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을 때 그 중에 7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그들이 왜 그 고린도 도시에 만연했던 그 음행 그 음란함을 왜 교회 가운데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바로 바르게 가정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7장에는 이 가정에 대해서
여러 말씀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6장까지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바로 그들이 가졌던 방종이죠 그들의 방종의 문제가 굉장히 큰 문제였다라는 것인데 이번에는 어떤 문제가 이 고린도 교회 안에 벌어지게 됐냐면 정반대의 문제가 벌어진 겁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결혼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부부라도 육체적인 관계는 피하는 것이 더 거룩하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라는 겁니다 잘못된 금욕주의죠 어찌 보면 두 극단 같은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 가운데 주었던
이 가정 결혼의 질서가 깨짐을 통해서 일어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르게 이 결혼과 가정이 세워질 때 이 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 결혼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가 그들에게서 잘못 세워짐을 통해서
일어난 문제가 그 양극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방종을 통한 음행 때로는 이 교론이 무너져버리는 그래서 오히려 교론이라는 것이 굉장히 육신적이고 또 그런 거기 때문에 또 신앙의 단계에서 저 밑바닥에 있는 몸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치부해버린 일들도 이 고린도 교
회 안에 벌어졌다라는 겁니다.
사실은 생각해보면 교론이라는 것은 죄가 만들어낸 제도고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실 교론이라는 것은 사람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세워져서 그 인간이 좀 더 행복하고 영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질서로 세워진 것이 교론이라는 질서입니다.
창조의 질서라는 거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후에 다음 주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혼자 사는 일에 대 해서도 말해주고 있지만 결혼보다 더 거룩하거나 어떤 더 높은 영성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에 대해서 먼저 말씀해주 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론과 독신이라는 것이 우열을 논할 수 있는 일이냐 절대 그럴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해서 오늘 먼저 밝히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자리에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마땅히 세워야 되는 이 가정의 필요성 그리고 가정을 행복 가운데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의미 합당하게 세울 수 있는 조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첫 번째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1절과 2절의 내용을 통해서 성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론을 귀하게 얻을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거룩독교의 성도들이 보낸 질문에 바울사도가 답하기 시작하는 그 내용을 볼 수가 있는데 1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1절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마치 바울사도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처럼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은 이미 독신을 결혼보다 더 높은 영성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런 의미는 아니죠.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에 거룩독교회가 이런 교론에 관련된 독신에 관련된 이런 문제 때문에 바울사도에게 질문지를 보냈다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룩독교회가 편지를 통해서 바울사도에게 질문한 거죠.
그에 대한 답을 바울사도가 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룩독교회 안에는 극단적인 말씀이렸던 것처럼 금욕주의가 또 있었습니다.
얘기했던 것처럼 영적인 사람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더 나아가서 이 결혼이 무용한 것처럼 이렇게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거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팽배했었던 이월론적 사고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헬라 철학 가운데 있었던 몸과 영혼이 분리된 몸과 영혼을 분리시키는 이런 시도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영혼은 선하고 몸은 열등하니까 몸과 관련된 것은 영적인 삶에 방해가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그런 가치관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까지도 부정하게 만드는 이런 잘못된 가치관을 가르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생각으로부터 바로 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우리 고린도 7장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 7장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음행의 용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는 것은 결혼의 제도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결혼의 제도를 제대로 세우지 않다 보니까 생긴 문제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음행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이란 존재에게 절대적인 인간의 삶에 있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주운 하나님의 질서이다.
거룩을 지키기 위한 또 그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결혼 가운데 참된 기쁨과 하나님께서 이 결혼을 통해 주 시는 그 목적을 이뤄내는 도구로써 이 가정을 세우게 하셨다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사실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 가운데 세우신 질서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의 질서 이걸 창조하시면서 말씀하 셨던 것은 무엇이냐면 보시기에 심이 좋았다라는 그런 말씀을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결혼이라는 제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심이 좋은 것입니다.
결혼은 마땅한 것이죠.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요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피를 지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창세기 2장 24절에 보면 함께 찾겠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 말씀 창세기 2장 24절 함께 읽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름으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사실 이 말씀은 죄가 들어온 이후에 주신 말씀이 아니에요.
아단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질서다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인간 사회의 어떤 필요에 의해서 물론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나중에 인간들이 살다 보니까 이게 필요하구나 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힘이 좋았더라.
라고 하신 그 창조 안에서 창조 안에 포함된 하나님의 선한 계획.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다.
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은 당시에 관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 창조의 질서를 다시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19장 4절에서 6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 4절에서 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교론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인정하시고 있고 이걸 회복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회복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오늘날 이 음행이라는 죄는 왜 벌어진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오늘날 고린독교회는 고린독교회와 또 다른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고린독교회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거룩하다.
이런 가치관이 이런 금욕주의로 흔들렸던 이 교회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오늘날은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개인주의 같은 이런 걸로 흔들리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오늘 세상이 그렇죠?
그래서 혼자가 편하니까 결혼은
선택이고 내 자유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이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말들을 참 쉽게 듣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죠.
그런데 이것이 문제는 마치 고린도 지역에 팽배했던 이런 잘못된 결혼관, 가정관이 교회 가운데 들어와서 생긴 문제인 것처럼 세상 가운데 있는 이 가정관, 결혼에 대한 의식들이 교회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 큰 문제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경계해야 될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런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어떤 올해 이 결혼 정년기를 넘어선 어떤 교회 청년을 두고 이미 연세가 오래되신 여집사님께서 결혼 뭐하러 해 힘들게, 결혼하면 자유도 없고 그냥 혼자 벌고 직장생활 잘하고 살아.
이렇게 말씀하신 걸 제가 들은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씀 못 드리고 그 청년을 불러다가 듣지 않아야 될 말은 듣지 마.
이렇게 말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는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
결혼 자체의 가치죠.
결혼은 시대가 만든 제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죠.
그런데 그 질서가 깨뜨려지게 되면 반드시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자연의 질서가 깨뜨려지면 그걸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져요?
자연재해가 벌어집니다.
가정의 질서가 깨뜨려지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가정을 통해서 마땅히 지켜져야 될 가정의 소중함들 그것이 지켜지지 않냐고 그걸 누리지 못합니다.
결국 오히려 가정이 우리로 괴롭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이 되는가 하면 가정이 마땅히 담당함을 통해서 인간이 행복해져야 될 일들이 그 가정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짐을 통해서 인간이 괴롭게 되고 고통스럽게 되는 그게 의밍이라는 문제로 또 나타나게 되지 않습니까?
어느 결혼식 주례에서 이런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식 주례는 행복한 사람 둘이 만나서 더 행복한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사랑을 배우게 하시는 학교랍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걸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다 보니까 참 공감이 되는 말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을 이뤄보시면 아시겠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가정을 이뤄보면 참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기다리는 것도 배우게 되고 용서하는 것도 배우게 되고 희생하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저도 이제 목회를 하다 보니까 그 자리를 통해서 주례하는 일이 벌어지다 보니 막 책임감이 생겨서 결혼을 앞서 주례하게 되면 불러서 몇 가지 당부 얘기도 하지만 정말 힘들 때는 전화해야 돼 너희들이 선택하지 말고 꼭 전화해야 돼 라고 부탁을 하거든요.
어떻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AS 해줄게 이런 의미로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해야 되니까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 말은 되도록이면 전화 안 오면 제일 좋잖아요.
그런데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저 사람은 저런지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막 그러면서 그 결혼하기 전에 이 사랑이 더 컸던 것 같다.
결혼하니까 진짜 너무 이 사람 때문에 힘들고 이 사람 때문에 더 괴롭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해서 이 말씀이 이 주례하셨던 분의 말이 생각이 나가지고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배워야 됩니다.
참는 것도 배워야 되고 기다리는 것도 배워야 되고 용서도 배워야 되고 희생도 배워야 되잖아요.
그런데 가장 효과적인 그 배움의 대상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거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배워야 이게 배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 이런 얘기를 하면 다 공감하시는데 다른 사람이 나한테 소원한 얘기를 하면 별로 안 소원해요.
그런가 보다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왜 이렇게 소원합니까?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사람이 나한테는 가장 나를 훈련시킬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는 것이 가정이죠.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가정을 또 만드셨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훈련되라고.
그래서 아내를 통해서 남편을 통해서 훈련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통해 잘 훈련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듣고 지나가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성품을 다듬어 가시죠.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그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이유 아니겠습니까?
혹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가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로 가정을 짐으로 여길 때도 있지 않겠어요?
결혼을 어떤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고 여기는 것보다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할 때가 혹시 있지 않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은 언제나 선하다.
이걸 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이 가정을 우리도 좀 귀하게 여기실 줄 알았으면 좋겠고 이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인간이 더욱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질서 자연이 자연답게 인간인간답게 그걸 위해서 하나님 질서를 만드셨는데
그 가정은 인간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란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 가정을 우리는 소중하게 읽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럴 때 음행이라는 죄도 우리는 남의 얘기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이 무너지면 음행이 남의 얘기가 아니죠.
그래서 가늠의 죄는 그런 거잖아요.
가늠의 죄는 울타리 하나를 넘냐 넘지 않느냐 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부부라는 울타리를 안에 있으면 이것이 축복이 되고 기쁨이 되고 또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 인간에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데 부부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이게 죄가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가정이라는 또 부부라는 이 창조 질서는 언제나 선하다.
언제나 선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결혼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단지 결혼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은 어떻게 세워져야 되는가?
부부는 어떤 마음으로 또 가정의 구성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정을 세워야 되는가를 두 번째 3절부터 5절에 말씀해주고 있는데 성도는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을 사랑으로 세울 줄 알아야 됩니다.
바울은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임을 말씀하시고 이제 그 가정이 어떻게 세워져야 될까 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고른전서 7장 3절을 보겠습니다.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이어서 4절 보겠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얼핏 보면 권리다툼 처럼 주장 하라고 하니까 옛날 우리 어른들이 결혼하면 남편들한테 또 아내들한테 조언하기를 초장에 잡아야 된다고
이런 얘기하지 않습니까 권리싸움 권리싸움 이렇게 여기는데 물론 바울사도의 이 말은 음행과도 관련된 그런 말이죠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이 말씀을 좀 더 확장해서 우리가 이 가정 안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사랑에 관한 말씀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거죠.
당시 사회는 남성중심의 사회였어요.
남편의 권리는 굉장히 크게 생각했던 시대였습니다.
아내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가 그려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죠. 그런 가운데 바울은 굉장히 놀랍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의 사회 통념을 깨버리는 말입니다.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살아야 되고 아내도 남편을 위해 살아야 된다.
이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남편에 대한 권리, 아내에 대한 권리 너의 권리는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있는 거야.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내 권리보다 상대를 위한 사랑 그걸 먼저 생각해야 된다.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사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이잖아요.
네 몸 먼저 생각하지 말고 네 몸처럼 네 이웃도 생각해야지.
이 요구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정이라는 누가 더 큰 사람이냐 이걸 다투는 곳이 아니다.
이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느냐 사실은 자기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여길 줄 알아야 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한테 당부하셨던 말씀이 이 성규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님께서도 하여간다.
인자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송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향해서 주신 사랑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죠.
섬기는 것.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섬기입니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대송물로 주신 사랑.
그런데 이것을 바울사도는 에베소소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단 말이죠.
이게 무슨 얘기냐면 성도의 가정도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사랑한 것처럼 남편이 아내를 예수님이 사랑한 것처럼 사랑해야 되는 것처럼 성도의 가정은 그 사랑을 서로서로 배워가야 되는 사랑 예수님이 보여줬던 그 사랑을 만들어내는 사랑의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행복한 가정 만들기 이런 얘기 많이 하지 않습니까?
가장 필요한 게 뭐냐 어쩐지 하면 경제력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취미가 같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잘 맞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격은 가장 먼저 서로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희생하느냐 서로를 향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어린 자녀들은 사실 부모님의 희생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자신이 부모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졌는지 이걸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사랑이라는 건 뭐냐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거예요 사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는 겁니다.
이게 사랑이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7장 5절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고른전서 7장 5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게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죠.
왜냐하면 부부는 한 몸이니까 절대 사실 우리 삶 자체를 나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도 중요한 단어는 뭐냐면 서로라는 단어와 합의상이라는 단어예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마라.
이 얘기잖아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마라.
기도도 함께 운운하고 삶도 함께 운운하고 가정도 함께 세워가라.
그래서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이게 가정이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스 5장 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여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된다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피차 복종한다는 말은 무슨 얘기입니까?
서로를 귀하게 운운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내 권리를 상대에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가정이라는 것은 자기가 이기려고 하는 것이 가정이 아니잖아요.
서로를 세워주는 곳이다.
어느 노부부가 있었던 겁니다.
결혼 60년을 맞아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두 분은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는 거죠.
왜 안 싸웠겠습니까?
우리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물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60년을 함께 사셨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싸워도 헤어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주례했던 부부 중에 한 분이 상담 왔을 때 너무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괴롭다고 상담을 해줘서 제가 뭐라 했냐면 신앙 가운데서 만난 부부가 정말 절대적으로 소중한 이유가 뭔지 아냐.
우리는 절대로 헤어질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어떤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상대가 어떤 실망을 나에게 안겨준다 할지라도 우리의 최후는 절대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없지 않냐.
그러면 어쨌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런 얘기를 제가 하거든요.
우리의 최후에는 헤어짐이 없잖아요.
그러면 해결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가정이라는 것은 굉장히 짧은 의미지만 큰 지혜가 있는 거죠.
사실 가정은 완벽한 사람이 모인 것은 아닙니다.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면서 함께 나가는 곳이 가정이고 그 가정에 부합한 우리의 태도 나의 태도는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죠.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겁니다.
우리의 가정도 내 권리만 먼저 생각하면 절대로 이 가정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권리가 아니라 상대의 권리가 바로 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돼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성도는 맡기신 부르심에 충성을 다 해야 된다.
사실 이 말씀은 그 다음에 이어져 있는 말씀의 전제 같은 이야기입니다.
7장 6절 7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하면 권도여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여기는 보면 그 다음에 8절부터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독신에 대한 얘기를 말씀해 주고 있어요.
독신은 은사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결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일에 충성되게 오로지 하나님에 몰두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독신으로서 하고 있는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이 독신에 대해서 풀어가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준 것은 무엇입니까?
질서죠.
결혼이라는 질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결혼해야 되는 것이 인간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특별하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특별한 능력을 주어서 이 독신이라는 것을 주었다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 가정이라는 것을 결혼이라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인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어진 것은 결혼인 겁니다.
그런데 독신도 특별한 은사라고 한다면 그 은사에는 특별한 능력을 하나님께 부여해 주셨어요.
이것은 다음 주에 또 나와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같이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에 같이 살펴본 이 말씀을 같이 생각해 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바르게 세워져 갈 때 우리 세상 가운데서 얻지 못한 참된 하나님 안에서의 가정의 행복과 기쁨을 통해서 얻어지는 그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 질서 가운데 세워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하게 주셨는지 처음에 소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때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에게 가정이 있다 보니까 이 가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귀한 것인지 모를 때가 참 많습니다. 저도 그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오늘 여기 있는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부모님이 우리의 자녀가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내 권리가 아닌 그의 권리 합당하게 내가 어떤 섬김으로 이 가정을 세워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그것을 위한 희생 그것을 위한 사랑을 더 품을 줄 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 생각하시면서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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