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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김승도 · 욥12:7-9

제작일 202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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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등장하는 새들의 상징성과 신앙적 교훈을 설명한다.

본문욥기 12:7-9예레미야 8:7이사야 40:31
  • 성경에서 새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며,
  • 신앙적 통찰력과 믿음을 상징하며,
  • 교인들은 교회를 안전한 보금자리로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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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새의 상징성과 교훈

  • 용서와 보호: 욥기 12:7-9에서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신다고 말한다.
  • 교회의 상징: 제비는 성전에서 둥지를 틀며, 성도들도 교회를 안전한 보금자리로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 하나님의 말씀 따르기: 예레미야 8:7은 철새가 계절을 알며 이동하는 본능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 믿음과 통찰력: 독수리는 멀리 바라보는 능력이 있어, 신앙적으로도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 영적인 기쁨: 이사야 40:31은 하나님을 악망하는 자가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오르며 피곤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 하나님의 보호: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통해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으며, 이는 최선을 다한 후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의미이다.
  • 신앙적 상징: 제비, 황새, 독수리, 공중의 새,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은 각각 시기 분별, 통찰력, 믿음, 신뢰,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 신앙적 보호: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마음으로 태어나셨으며, 오늘날도 예수님은 신자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암탉의 사랑을 통해 나타난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이런 제목을 갖고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욥기 12장 7절로 9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욥기 12장 7절로 9절 이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내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내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내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내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 알지 못하랴 우리가 욕시편 자문서 이것을 갖다 우리가 소위 말해서 지혜서 또는 시가서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이 욕기는요 아브라함이 있기 이전 훨씬 그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죠.
욕이라고 하는 인물은 기원전 약 30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인데 이 욕기설을 보시게 되면 상당히 문학적인 깊이가 있고 또 색채가 있고 바로 3000년 전에 기원전 3000년 전에 이러한 문학적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참 경이롭다� ��고 하는 것이고요.
그 욕기설의 그 욕기설의 그 한 구절 한 구절들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아주 깊다 거기에는 철학과 문학과 또 많은 가르침 특히 종교적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는 바로 욕기설에 나오는 이 말씀을 갖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기 보면은요.
짐승에게 물어보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땅에게 고해봐라 바다의 고기에게 고기가 또 너를 설명하리라 의인법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들에게 물어본들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많은 그들에게 물어보라 그러나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라는 거죠.
관찰하고 그 이치를 깊이 생각하면 우리가 깨닫는 바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런 깨달음 중에서 오늘은 공중의 색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것을 교훈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요. 많은 새가 나오는데 그 첫 번째 예를 든다면은 성전에 둥지를 튼 제비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이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10편 84편 1절로 3절 말씀 10편 84편 1절로 3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10편 84편 1절로 3절 시작 만군의 요호하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요호하의 궁정을 사모하여 수약하며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진 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요호하여 주의 재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들 보금자리를 얻은 나이다.
그래서 제비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아주 친숙한 새였다라고 볼 수 있겠죠.
여러분 우리가 흥부와 놀보라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까? 우리나라에 그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제비가 박씨 하나를 물고 오죠.
그래서 그 제비의 둥지를 쫓아내지 않고 제비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흥부의 가정이 그 박씨 하나로 인해서 아주 큰 경사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제비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희망을 가져다 주고 상당히 복을 가져다 주는 그러한 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제비가 지금 어디에 있냐면요.
성전의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근의 여호와여 주의 재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들 보금자리를 얻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마다 이 보금자리를 트는 제비들에게 이 성전 구역은 방해 없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다고 해요.
즉 외부의 어떤 소란이나 이런 것에 상관없이 아주 평화롭게 머물 수 있는 그런 장소.
그곳이 어디냐.
바로 성전의 구역이라는 거예요.
성전 처마도 되겠고 성전 어딘가의 빈틈에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기르는 그래도 성전은 고룩한 곳이고 또 인적이 드문 곳이니까 안전한 그런 장소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 84편은 고라자손이 쓴 건데요.
이 고라자손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이 고라자손은 6개월에 한 번씩 일주일씩 성전에서 봉사를 했다는 거예요.
반차를 따라서.
그러면서 그는 성전 구역에 있는 제비의 둥지를 보고 자신도 제비처럼 여호와의 집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성전의 둥지를 틀었던 제비를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어요.
제비는 성전의 둥지를 틀었잖아요.
거기가 보금자리야.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성전이 내 보금자리예요.
성전의 둥지를 틀고 내 가족과 내 식구들이 거기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과 같이 그렇게 우리가 성전을 사무한다라고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8장 7절 예레미야 8장 7절의 말씀 어떤 새가 또 나올까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8장 7절 말씀 시작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이 많은 새들이 나오는데요.
저기 보면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안다라고 하는 이 부분을 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이 공중의 학이라고 하는 이 학은 히브리 원어상 하시다 라고 하는데요.
황세를 뜻한대요. 황세 그래서 이 황세는 자기가 언제 떠날지 또 자기가 언제 와야 할지에 대한 시즌 그 계절을 안다는 거죠.
그래서 이 공중에 날아다니는 이 학 즉 황세는 자기의 시즌 자기가 자기의 그 계절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이동을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 황세뿐만 아니라 반구 제비 두루미 이런 새들이 소위 말해서
철새라고 그러잖아요. 철새. 그냥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훌쩍 떠나는 사람을 철새라고 그러죠. 그런데 그런 철새가 아니라 자기의 시기를 알고 자기가 와야 할 때 자기가 떠나야 될 그 때를 아는 철을 따라서 이동하는 새를 철새라고 그러죠.
그런데 이 에레미야의 저자는 에레미야죠. 에레미야의 저자는 에레미야죠. 에레미야가 이런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에레미야는 하늘의 황새가 제철을 안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 실제로 봄이 되면 아프리카를 떠나서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요르단 골짜기. 즉 요르단 골짜기는 어디죠?
제일 동쪽에 요르단 골짜기가 있어요. 바로 그러니까 요르단 골짜기를 따라서 여행하는 그런 유럽의 황새가 많이 있다고 그래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렇고. 그래서 야한 30만 마리 30만 마리의 이 황새들이 늘 관찰이 된다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철을 따라서 그 시기가 되면 이동하는 그 수십만 마리의 황새들을 바라보면서 이 황새들도 자기의 시기와 자기의 계절을 알고 그렇게 움직이는데 너 이스라엘아 너희는 너희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이 철새들이 참 경이롭대요.
그래 철새들이 그 계절이 되면 그 자리에 오잖아요.
여러분 우리 순천만 늪지대도 마찬가지고. 김재도 그렇고.
그 철새들이 많이 이렇게 그 때가 되면 수십만 마리가 와서 겨울을 나고 또 봄이 되면 이동하고 하는 걸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도대체가 이 철새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이주를 하는가.
라고 하는 걸 알아봤더니 본능에 따라서 이주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철새들에게 본능적으로 이주할 때를 아는 감각을 넣어줬다는 거예요. 감각을.
여러분 우리도 겨울이 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옷이 두꺼워지죠.
그리고 여름이 오기 전에 자연스럽게 어떻게 돼요.
옷이 얇아지죠.
이것은 감각적으로 느끼는 어떤 생태적인 그런 시계에 의해서 나타나는 그런 본능의 발로라고 볼 수 있는 거 거든요.
그리고 어떤 환경의 신호.
먹이가 떨어졌다. 그러면 어떡하지.
먹이 있는 곳을 향해서 떠나는 이런 환경적인 신호.
또 기후의 변화. 너무 여긴 덥다.
그리고 겨울은 다른 데서 나자라고 하는 이런 것들.
또는 학습된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이동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이것은 모두가 다 참 기이한 그런 섭리다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철새는 그 정한 시기를 안다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금 12장 54절로 56절 말씀.
누가 보금 12장 54절로 56절.
누가 보금 12장 54절로 5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또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불물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기의 기상은 분변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천기의 기상은 우리가 분변하잖아요. 남풍이 불면 봄이 오겠다.
아니면 북태평망 고기압이 불어오면 이거는 굉장히 고온다습하겠다. 비가 오겠다. 등등. 우리가 그렇게 천기는 분변할 줄 알면서 왜 이 시대는 분변하지 못하느냐.
여러분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우리는 늘 보아옵니다. 국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 적으로 아니면 기구적으로 자연생태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이런 것들은 오늘 우리에게 뭔가를 얘기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런 시대의 분변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치 새들이 그 시기를 알고 오고 떠나는 이 루틴을 정확하게 밟고 있듯이 오늘 우리는 이 시기를 정확히 분변하고 내가 오고 내가 떠나는 이러한 신앙적인 의미를 우리가 잘 깨닫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될까요.
예레미야 8장 9절.
예레미야 8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보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이 8장 9절은요.
지금 8장 7절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공중의 학은 정한 시기를 아는데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보렸으니 너희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느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고 자기의 때를 분별할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잘 얻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성경에 또 다른 새가 나오는데요.
독수리입니다.
그렇죠?
여러분 독수리 하면 그 특징이 뭐예요?
높이 난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을 오름같이.
뭐 그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좋은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독수리는 멀리 본다는 거예요.
성경을 한번 찾아보겠어요.
욥기 39장 욥기 39장 27절로 29절 말씀 욥기 39장 27절로 29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하미냐.
그것이 낭떠러지의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데 거하며 거기서 움킬 만한 것을 삼키나니 그 눈이 멀리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멀리 보는 독수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경우는 멀리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된다.
가까이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 눈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보는 것 같이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통찰력이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은
교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수리는 어느 정도로 멀리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봤는데요 높이가 5000m 상공에서 관찰을 한대요 여러분 5000m면 5km입니다 상공 5km면 보이질 않아요 그리고 시력이 얼마냐 하면 우리 사람이 제일 시력이 좋은 사람이 2 정도 된다고 해요 1.5모라도 정상인데 2 정도 되면 거의 50m에 기어가는 개미도 보일 정도예요
그런데 독수리는 시력이 얼마인지 아세요?
5입니다 5 대단하죠?
그래서 2km에 떨어져 있는 토끼의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대단하죠?
그래서 3000년 전에 욕기에서도 언급을 했다는 거예요 이 독수리는 멀리 본다는 거예요 멀리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을 키우자라고 하는 거죠 믿음은 멀리 바라보는 거예요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를 떠날 때 가나한 땅을 바라봤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한 땅을 발붙일 만큼의 땅도 주지 아니하시고 계속 유목생활을 하게끔 만들었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오자는 땅은 어떤 땅이었어요?
이 땅이에요? 아니면 하늘에 있는 기업이에요?
더 나은 본양이죠?
그곳을 바라보게끔 했다는 거예요 얼마나 멀리 바라보게끔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점점점점 믿음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아, 이 나은 바 본양을 생각했다면 저희가 벌써 그 고향을 돌아갔을 텐데 이제는 저희가 더 나은 본양을 사모하니 곧 어디에 있는 거예요?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래서 하늘에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늘나라까지 바라볼 수 있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안목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소부와의 독수리와 여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날 독수리와 여우가
야, 우리 서로 싸우지 말자 하고 화해를 했고 그래서 서로 사이좋게 집을 짓고 살자고 했는데 독수리는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었고 여우는 그 나무 밑에 덤불에 집을 지었죠 그런데 어느 날 여우가 새끼를 낳았는데 독수리가 내려와서 여우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거죠
그래서 너무 분해해서 여우가 복수를 해야 되는데 복수를 할 수 없는 거예요 여우가 어떻게 독수리를 복수를 합니까?
날아가고 높은 곳에 사는데 너무 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에 염소로 번제를 드리는데 독수리가 번제를 막 드리고 있는데 두두두두두 내려와서 어머, 내장을 딱 집어서 자기 둥지 안으로 간 거예요 새끼들에게 주려고 그런데 이 내장에 불이 붙은 내장을
물고 올라간 거예요 어떻게 됐을까요?
이 둥지가 홀몰 탔겠죠 깜짝 놀라서 새끼들이 우수수수수 떨어졌죠 그래서 누가 그 새끼를 먹었어요?
여우가 그래서 우리가 이 이속우하를 이렇게 통해서 본다면 우리가 멀리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적으로 멀리 바라봐야지 육신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육신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걸 말씀드리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육신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것은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해서 사업이 어떻게 되고 나는 10년, 20년, 30년을 바라보고 나는 사업을 할 거야 여러분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다 부지럽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멀리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이루어질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멀리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독수리가 멀리 바라봤자 그것이 결국 그에게 해가 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서 멀리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48장 17절 18절 이사야 48장 17절 18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의 구속자시오 이스라엘의 고루가신자신 여호와께서 가라스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 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다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내 의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우리는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평강이 없 죠 그렇죠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면 나에게 평강이
넘치고 의의가 바다 물결 같이 되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삶은 영육간에 다 풍족하게 채워지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자야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강구하느라 나의 자녀들이 진리안에 있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내가 내가 기쁨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진리안에 살아가고 우리 영혼이 잘되면 부수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도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축복해 주시는 거예요 이사야 40장 31절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악망하는 자는 쇠임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다른 박지라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독수리가 얼만큼 높이 올라간다고요 5000m까지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 높이가 어마어마하죠 그 높은 데서 지
상을 바라봐요 그러면 이 지상세계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별것 없는 거예요 독수리는 더 높은 차원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이 지상의 생물들이 알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를 이렇게 해가지고 하늘 높이 올라가요 구름을 차고 올라가죠 그래 비행기가 어디를 날아가요 구름 위를 날아가요 구름 위를 거기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죠
구름이 슉슉슉슉슉 지나가죠 그냥 바다가 쫙 보이는데 배들이 얼만큼 커 보여요 배들이
나뭇잎보다 더 작아 보이죠? 그런데 내려와서 보면 그 배들이 커요 안 커요? 엄청 크죠.
드디어 활주로를 향해서 선회를 하고 착륙을 하기 위해서 내려오는데 지상에 보이는 수많은 집들이 커 보여요?
작아 보여요?
아주 작아 보이죠? 성냥깨비 정도, 성냥값 정도의 그런 크기로. 그런데 내려와 보면 인간 만사, 서로 아웅 당하고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서로 이 삶의 생존 경쟁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상 아니겠습니까 ?
그래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이지만 우리는 어디 위에서 살아가야 돼요?
우리는 하늘 위에서, 하늘의 시민권이 있잖아요. 하늘 위에서 살아가는.
그래서 내 육신의 삶은 피곤하지만 내 영적인 신앙은 늘 상공해서 기쁨과 만족을 만끽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네 번째. 어떤 새가 나오는가 보겠어요.
마태복음 6장 26절. 마태복음 6장 26절을 찾아서 읽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26절.
자, 시작.
자, 여기 보면 공중의 새가 나오는데요.
이 공중의 새를 통해서 예수님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염려하지 말라는 거죠?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에는 옛날과 다르게 그렇게 먹을 것을 위해서 걱정하는 세상은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도 염려하죠.
그거 참 현하죠.
우리가 먹을 거, 입을 거, 마실 거 다 있는데 그런데도 우리가 염려하죠?
그러면 왜 우리가 염려할까요?
더 맛있는 것, 좀 더 멋있는 옷,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죠?
그러고 보면 여전히 염려라고 하는 것은요.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이거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잘 사는 나라든 아니면 아주 후진국이든 고관 대작을 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아주 밑받아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든 이 염려는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아, 그러면 염려하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다 입히신다고 그랬고 다 주신다고 그랬잖아.
나 지금부터 염려 안 할 거야.
그래서 일도 안 하고 그냥 누워서 가만히 하늘만 쳐다보는 것 그것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여러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 지나치게 염려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는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돈을 또 잘 벌 수 있을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도 하고 계획도 하고 노력도 해야 됩니다.
왜?
삶의 법칙은 내가 뿌리는 대로 거두는 거예요.
나는 일도 안 하고 전혀 그냥 먹고 노는 거야.
그러면서 염려하지 말라.
다 채워주시겠다.
그런데 왜 안 채워주냐라고 항의해서는 안 되겠죠.
그럼 여기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염려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세요.
새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잘 관찰해 보면 새들은 열심히 노력합니다.
제가 삼양천을 걸었거든요.
오늘 말고 벌초하고 쫙 벌초를 했는데 오리, 여러분.
오리 있죠.
여기 삼양천 오리.
오리들이요.
이게 웬떡이야.
그냥 벌초를 하니까 거기에 수많은 자양분들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지렁이도 있고 먹을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막 이른 새벽부터 와서 먹는데 정신없는 거예요.
이야, 다 예비하시고 있구나.
그런데 염려하지 말라고 그래가지고 이 오리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입만 벌리고 있으면 누가 그 입에다 넣어줍니까?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잊지 말고 때로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들은요.
열심히 노력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쨍쨍쨍쨍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먹이를 구하죠.
그러나 그들은 지나치지 않습니다.
회사에 출근도 안 하고요.
시장에 가서 장사도 안 하고요.
자연 속에 있는 먹이를 먹으면서 살아가요.
그래도 새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리는 아직까지는 못 들어봤어요.
다 먹을 것들을 다 준비하시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지구상의 새들이 한 몇 마리 정도 될까요?
지구상의 새들이 천억 마리예요.
천억 마리.
그러면 우리 사람 인구는 몇 몇 마리예요?
몇 마리.
우리 사람 인구는 몇 명이에요?
전 세계 인구가 63억이에요.
그럼 천억하고 이게 비교가 돼요?
안 돼요?
안 되죠.
그러면 이 천억 마리의 새들이 다 무엇을 먹고 살까요?
여러분 새들이 아이고 무슨 새들이 뭘 많이 먹고 살겠어?
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런데 어느 교수가 제비에 대해서 연구를 했는데 제비가 새끼를 키울 때 하루에 100번 이상 먹이를 물어다 준대요.
어미 제비가 3주 동안에 곤충 2천 마리 정도를 잡아다가 먹여야 새끼들을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새들도 많이 먹어요?
안 먹어요?
새들도 많이 먹죠.
그런데 그 많은 먹이들을 누가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새들이 농사 짓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출근해서 돈 벌어서 수퍼에 가서 사갖고 오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연에는 그 먹이들이 다 준비되어 있죠.
누가 준비해 놓은 거예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는 것은 이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그렇게 다 먹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여의를 구하라 그래야만 이 모든 것을 다 너희에게 주시리라 말씀 하신 일로 믿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다섯 번째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 마태복음 23장 37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7절이 되겠습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 개의 파악을
화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 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세 번째는 새끼를 모으는 암탉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 이 닭도 원래는 새과에 속해요. 여러분 아세요? 새과에 속해요.
그런데 새의 뼈를 딱 꺾잖아요. 꺼서 보면요. 새의 뼈는 하고 비어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닭의 뼈를 딱 쪼 개보면 닭의 뼈에는 비어있어요? 차 있어요? 차 있어요. 그래서 못 나는 거예요.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래요. 날개도 있죠. 충분히 날 수 있는데 얘가 부뚜뚜뚜뚜뚜뚜뚜뚜 날아가다가 10m 도 못 날아서 그냥 떨어지죠? 왜 그럴까요?
아주 진짜 그거예요. 차 있기 때문에 뼛속에 차 있기 때문에 많이 못 날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닭이 됐는데 원래 이 닭도 새과에 속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마지막 새해인 병아리를 모으는 암탉 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병아리와 암탉과의 관계는 절대적인 겁니다. 절대적인 거예요.
제가 한 번 영상을 봤거든요.
그런데 참매 여러분 아세요? 우리나라 순수한 매예요.
이 매가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이 암탉이 병아리를 끝까지 보호하고 사수했어요.
그래서 둘이 싸움이 붙었는데 그것이 합성인지 어쩐지는 잘 몰라도 결과적으로 매가 죽었어요.
그만큼 사생결단을 하고 지킨다는 거예요.
암탉은 새끼를 절대적으로 지킨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본문에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으냐 했다라고 한 이 말씀을 누가 한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유태인이에요.
자기 나라 백성을 먼저 이끌으시기 위해서 유태 나라에 강생했잖아요.
베들레엠에 강생하셔서 33년 반 동안 유태인으로 살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지키려고 얼마나 부르고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마는 결국은 이스라엘이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는 병아리를 모으기 위한 암탉의 치극한 사랑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모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예요.
적이 공격을 하면 암탉이 날개를 펴서 그 날개 아래 그 새끼들을 모으고 비가 와도 날개 아래 그 새끼들을 모아서 피를 맞지 않게 하고 위험한 짐승이 오면 사생결단을 하고 제가 그 영상을 봤더니 병아리들이 엄마 뒷궁무니만 쫓아다니더구만 엄마는 선두에 서서 방어를 하고 새끼들은 뺑글뺑글 돌면서 엄마 뒷궁무니만 찾아다니는 거야.
마음은 안전해요.
참 그 본성이 아주 잘 나타났어요.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그 새끼를 새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엄마가 그걸 포기한다면 먹잇감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낳은 그 새끼를 지키기 위한 그 모성애가 얼마나 강한 겁니까.
그와 같이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다섯 종류의 새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성전에 둥지를 튼 제비는 어떠한 교훈을 우리에게 줄까요.
다 잊어버리셨어요.
성전 3호.
제철을 아는 황새.
어떤 교훈이 있을까요.
시기와 때를 분별하는 그 지혜를 말하죠.
멀리 보는 독수리.
어떤 교훈?
우리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통찰력을 갖자는 거죠.
가까운 데를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는 믿음.
공중에 나는 새.
공중에 나는 새.
다 누가 키워요.
다 하나님이 키우니까 어떻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염려하지 말라.
그렇다고 해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놀고 먹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좋든 나쁘든 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줄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지혜.
또 병아리를 모으는 암탑.
하나님의 보호하심.
묵도하시겠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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