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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노아의 순종

김승도 · 창6: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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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방주를 지는 과정을 통해 은혜를 받고 가족을 구원한 사례를 통해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본문창세기 6장
  •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는 과정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
  • 순종은 제사보다 더 중요하며, 믿음 없이는 순종할 수 없다.
  • 노아와 그의 가족은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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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순종과 구원

  • 노아는 창세기 6장에서 의인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으며, 노아는 그 명령을 120년간 순종하며 방주를 지었다.
  • 방주는 매우 큰 규모였으며, 노아는 어린 아들들과 함께 방주를 짓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방주를 완성했고,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순종의 중요성

  • 순종은 제사보다 더 중요하다.
  •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 믿음 없이는 순종할 수 없으며, 순종 없이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순종과 구원의 관계

  • 가족의 구원을 위해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 하나님을 경애하는 마음이 순종의 기반이 된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영원한 구원의 길이다.
  • 노아와 그의 여덟 명의 가족은 방주에 들어갔다.
  • 하나님은 방주를 지으라고 한 명령을 통해 은혜를 주셨다.
전사(자막) 전문▼
잠깐 묵도합시다 화렐루야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오늘 개의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희들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복을 주장하신 하나님 오늘 또 변함없이 저희를 주님께 저희들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희들의 예배가 연락되기를 바라옵고 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지켜주시며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익히 아쉬움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또한 저희들에게 은혜로운 삶으로 역사되어 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의 시간이 생명의 시간이 되게 하시고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 받으시고 저희들 마음 가운데 한량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노아의 순종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순종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고 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그들에게 기쁨이 되고 또 그들의 결과가 다 아름답게 결과를 맺어가듯이 하물며 우리를 지으시고 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그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이겠느냐 그래서 성경은 결국 순종이라고 하는 의미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하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또 타락해서 그 후에 인간의 모든 불행과 슬픔이 왔던 것 같이 결국 성경의 시작도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를 놓고 시작을 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 가인이 또 아벨을 처 죽이는 그런 불순종을 통해서 또 인류의 어떤 험난한 역사가 시작이 되지 않
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복을 받고 그 아벨의 시 대신 아벨 대신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시를 주셨으니 셋이라고 하는 인물이 나오고요 그 셋의 후선이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하는 주인공인 노아가 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한편으로 가인의 후선도 창세기 4장에 기록되었으니 가인의 후선들이 점점점 성장하고 또 점점 번성해가지고 창세기 6장에 사람의 딸들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출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이 개념은 믿음의 후선인 쇠쇠후선을 이야기하는데요
결국 이 두 양날개 즉 선과 악이라고 하는 쇠쇠후선 그리고 가인의 후선이 서로 대립하면서 성경은 또 다른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곧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하는 그런 큰 사건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그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우선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또한 또 다른 믿음의 씨를 또 이 땅에 나타내셔서 그 후선들을 통해서 결국 오늘 우리가 믿음의 후선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악한 가인의 후선인 이 헌난하고 죄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여전히 도전을 받고요 또 우리 또한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는 대로 골라 연애함으로 이 세상이 이 세상에 흡수되는 이러한 현상을 가지고 오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노아의 후선으로서 또는 아브라함의 후선으로서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결코 이 땅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할 줄 믿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후선들 하나님의 자녀들 위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의와 축복이 함께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노아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노아는요 당대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을 보시게 되면 창세기 6장 9절을 보시게 되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이렇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당대의 완전한 자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로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3장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라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은 서로 충돌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여기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의미는 노아가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완전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는 의인으로 칭함받고 당대의 완전한 자라고 하는 일컬음을 받은 것이죠 그러므로 순종이라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아는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라멕인데요 라멕이 몇 세의 노아를 낳았는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5장 28절로 29절 말씀 창세기 5장 28절로 2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5장 28절 29절 시작 라멕은 182세의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대 요바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로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그래서 이 아들이 그 아비를 안위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말씀드렸듯이
이 창세기 5장에는 이 세세후선들이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에녹이라고 하는 사람은요 65세의 무더셀라를 낳고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나오고요 무더셀라는요 969세를 살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더셀라의 아들이 라멕이고요 라멕의 아들이 노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후선들을 기록하고 있고요 그것이 몇 면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후대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자녀들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더위를 이기고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믿음의 자녀들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곳에 이끌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믿음은 여러분들의 이름은 대대로 성경에 기록된 세세우선들과 같이 하늘의 생명체계에 기록된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라멕의 아들이 노아입니다. 그럼 노아의 이름은 뜻은 무엇일까요? 안위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라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로대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로 일한 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의 후손들도 저주받은 이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저주받은 이 땅에서 수고로이 일을 하며 그 이마에 흐르는 그 땀의 대가로 땅의 소산을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의 대가는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라멕의 마음을 위로해 줬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안위하시는 그런 하나님 의 은혜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노아 시대 때 이 세상은 어떤 형편에 놓여 있을까요?
여러분 참 기이한 것은 창세기 6장에서부터 시작된 아담의 족보가 쭉 나오는데요.
셋의 족보가 노아의 때에 와서 딱 멈춥니다.
그리고 6장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요.
6장에서 노아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족보라고 한다면 노아 다음에 계속 족보가 나와야 되겠죠.
그래서 아브라함까지 나오든지 아니면 그 이후까지 나와야 되는데 족보를 쭉 설명하면서 5장에서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 새로운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을까요?
여러분 이 사건은 노아의 홍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6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을 보시게 되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의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 세상의 죄악이 이 땅에 가득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6장 1절 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창세기 6장 1절 2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세계통의 경건한 자들이고요.
사람의 딸들은 이제 추측하건대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무슨 얘기냐 경건한 믿음의 계반에서 출생한 자녀들이 추구해야 될 삶은 선한 행실과 그리고 내적인 믿음에 대한 신앙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외면을 보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뭐냐 음란과 그리고 거룩이 서로 혼동이 되는 그러한 결과를 마주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거룩이고 무엇이 음란인가 우리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혼동스럽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거룩이고 어디까지가 음란인지 우리가 분별할 수 없는 우리 스스로 혼동에 빠지는 그러한 순간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비롯된 것 이것은요 오늘 우리가 이 현대를 살아가면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락된 문화죠.
이미 우리나라는 마약이 들어와서요 아주 일상의 그런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계보가 세상의 계보와 결합되는 이런 현상을 가져왔다는 거예요.
우리는 믿음의 계보 안에 있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계보와 결합되는 이러한 가치관을 버리고 믿음의 계보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런 삶을 살아야 되겠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한 인물이 누구냐 하면 바로 노아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 일어나기 전에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조금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로 6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로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여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의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입니다.
11절 보시겠습니다.
11절 시작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폐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구절은 사람이 본 관점입니다.
사람이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본 관점은 어땠을까요?
달랐을까요?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2절 시작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폐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현력 있는 자의 행위가 폐괴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보아도 폐괴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폐괴했다라고 하는 히브리어 샤하트는 썩다 타락하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땅이 폐괴하였고요.
또한 더불어서 모든 현력 있는 자의 행위가 폐괴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현력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여기를 보면 드디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게 됩니다.
그가 누구냐? 바로 노아입니다.
모든 현력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누구에게 얘기했습니까?
노아에게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면 우리는 기분이 좋을까요?
아 잘됐다.
그래도 하나님은 나에게만 말씀하시는구나.
그럼 나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거구나.
세상은 다 멸망해도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려고 하구나.
상당히 어떤 위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노아도 여기까지는 기분이 좋았겠죠.
그런데 여러분 14절을 봐야 됩니다.
여러분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는 잔남으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무엇을 만들라는 것입니까?
방주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잔나무로 방주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방주라고 하는 원어를 보면 퇴바, 히브리어로 퇴바인데 상자입니다. 상자.
이 단어를 추레국기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장 3절을 보시게 되면 같은 퇴바가 나오는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여기서 상자는 똑같은 퇴바, 즉 상자인데요.
모세가 들어있는 상자는 작은 거죠.
그 다음에 노아에게 지시한 상자는 작은 걸까요? 큰 걸까요?
어느 정도로 큰 상자를 말할까요?
크기를 계산을 해왔습니다.
길이가 300규빗이면요. 길이가 170m입니다.
여러분 170m면 엄청난 큰 배입니다.
넓이도 높이는 얼마나 될까요?
50규빗, 즉 28m입니다.
넓이만 28m입니다.
높이는 얼마나 될까요?
30규빗, 즉 77m입니다.
77m.
여러분 거기서 떨어지면 죽겠죠?
배수량이 얼마일까요?
2만 톤 정도의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어느 정도의 동물을 실을 수 있느냐면요.
12만 5천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생물을 예를 들어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소류가 17,600종을 한 쌍씩 실을 경우 35,200마리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방주의 용량이 12만 5천마리의 양을 실을 수 있어서 멸종한 동물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한 공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머리가 아픈 것입니다.
내가 방주를 너에게 명한다.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는 사실은 기분이 좋았는데 방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을 듣고 그때부터 머리가 아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머리가 아파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종했을까요?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머리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날씨도 덥고 짜증도 나고 일도 안 풀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데 안식일은 돌아오지 머리 아프다 여러분 그 이외에 우리가 믿음 생활을 살아가는데 믿음으로 인해서 머리 아픈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떤 순종을 했을까요?
첫째 말씀대로 순종했다 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는 잔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6절 보시겠습니다.
거기 창들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3층으로 할지니라 즉 하나님은 구체적인 설계도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종류, 방주의 크기 방주의 내부 구조 및 크기 방주의 외장재 또 마무리 작업은 어떻게 되는지 이렇게 설계도를 받은 노아는 머리가 아팠을까요?
아팠겠죠.
내가 이걸 어떻게 그런데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22절을 보시겠습니다.
22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자 그러면 이제 시작을 해야 되겠죠 방주를 만들어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럼 뭐가 필요합니까?
나무가 필요합니다.
그럼 나무는 어디로 가 있을까요?
산에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산으로 갔겠죠?
그러면 나무를 베야 되겠죠?
어떻게 베었을까요?
제가 기도하는 중에 이 부분은 내가 확인을 해야 되겠다 해서 창세기 4장을 보니까 이미 가인의 후손들 중에서 철기문화가 등장을 합니다.
그래서 두발 가인 갑자기 생각 두발 가인이 두발 가인이 철기로 각종 기구를 만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5장에 세세 후손이 나오고 그 후손 중에 노아가 나오는 거니까 아마 적어도 철로 만든 톱은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주 기계톱이라든지 전기를 꼽아서 쫙 잘라내는 그런 기회가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날카롭지만 그래도 쓸만한 톱은 있었겠죠.
아마 그곳으로 나무를 뱉겠죠.
그러면 이때 당시 노아의 아들들 샘과 함과 야벳은 나이가 어느 정도로 됐을까요?
아주 어렸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노아 500세 때에 샘과 함과 야벳을 낳고요.
그리고 6장에서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고요.
그래서 실행을 했는 거니까 아마 방주를 지을 그 당시 샘과 함과 야벳은 아주 어린 아이였을 것입니다.
규민이 하민이 아니면 우리 은지 정도 또래나 되겠죠.
이 아이들이 톱을 가지고 나무를 쓸 수 있을까요?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노아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 칸 한 칸 만들어서 나중에 이어붙이는 식으로 건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다 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배수량이 약 2만 톤 정도 되는 배를 나무로 건조해라 라고 얘기했다면 이건 정말 머리 아픈 일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아는 순종했다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6장 22절을 보시게 되면 노아가 이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정말로 쉬운 일이었을까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준행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위에서 폐유시키지 않았습니까? 그 원인이 사울의 불순종에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지 으라고 하신 것은 불가능한 것을 얘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그 방주를 지었을까요? 지었습니다. 누구의 은혜로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지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니까 방주가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있다. 그러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구합니다.
여러분 사울에게 부탁한 하나님의 명령이 어려운 명령일까요? 아말렉과 싸워서 그 금은 보아나 그 아말렉 군� ��를 진멸하라. 남기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너무 오바된 그런 명령일까요?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쉬운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보시게 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기와 여추님 앞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적인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삶이 더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순종이 바탕이 된 제사가 하나님 앞에 받음직한 연락될 수 있는 제사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양의 기름으로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것을 우리에게 부탁한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 갈대우려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고자 한 것이 정말 쉬운 일이었을 까요?
아브라함이 보기에는 정말 어려운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적이 없어요.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할 때에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따라 갔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과 문제도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고 피할 길을 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서 11장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바를 하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랬어요.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순종하며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갔다는 겁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이 어려운 길을 걸어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 편해졌어요.
교회 나오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여러분 예전을 생각하십시오.
예전에는 차도 없고요.
버스도 하루에 한두 대만 다녔고요.
길도 어려웠어요.
에어컨도 없습니다.
편리할 수 있는 그런 생활 조건이 없었던 그런 때에도 우리는 가능했어요.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교회 나와서 부르짖고 많은 체험과 이적기사를 경험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더 강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이 더 어려워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믿음이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하고 순종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문제가 왜 해결이 되지 않느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럼 왜 순종할 수 없느냐?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노력해야 됩니다.
말씀을 들으므로 믿음이 생기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외면하니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는 불가능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 120년 후에 광주가 세워졌고 그의 가정이 구원받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견지해 나가야 됩니다.
두 번째는 끝까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세요.
끝까지 순종했다.
여러분 광주를 짓는 데 소요된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요?
창세기 5장 32절에 보면 노아가 500세 된 후에 샘과 함과 여배서를 낳았고요.
바로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 함께 하세요.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됩니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즉 120년 후에는 그들이 다 멸망하리라.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120년이라는 것은요.
하나님의 관용의 시기이고요.
은혜의 시기를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120년이 지나면 홍수가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짓는 그 기간은 적어도 120년.
120년이라는 이 세월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모릅니다.
노아가 500세 되던 해에 시작했다면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땅에 있었거든요.
창세기 7장 6절을 보시게 되면 홍수가 땅에 있을 때 노아가 600세라 약 20년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100년에서 120년 정도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누가 어느 한 가지 일을 한 100년 정도 한다고 했을 때 그 일이 정말 쉬울까요?
50년 가게를 잇고 60년 가게를 잇고 하지만은 정말 그러기가 어려운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노아는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라는 것입니다.
당시 방주를 지을 때 세 아들은 아주 어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일은 혼자 해냈겠죠.
그러므로 대부분의 일은 혼자 해냈겠죠.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와서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났다고 했을 때에도 아마 그들이 도왔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100년, 120년 동안 그러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아마 다들 미쳤다고 하면서 도망을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방주를 지키는 노아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도 세 아들을 낳았거든요.
그러므로 가장 소박한 꿈을 위해서 집도 짓고 아이들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부터 방주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방주를 짓는 일이 쉬웠을까요?
어린아이들은 어리고 만약 여러분들의 옆집에서 누가 큰 배를 만들고 있는데 모시
10년, 20년 사람들이 도와줄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120년간을 그렇게 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 돌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림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신앙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끝입니다.
달려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다림이라고 하는 이 원어를 보니까 몸을 비틀다는 것입니다. 몸을 비 틀어요.
여러분 우리가 차를 기다리는데 차가 안 오면 몸을 비틉니다.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얼마를 기다렸다는 것입 니까?
1시간, 2시간, 하루가 아니라 120년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기다려야 됩니다. 왜?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영생의 그 나라에 비하면 120년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120년을 기다려 영원한 그 세계에서 영생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120년을 기다리지 못해 영원한 영생을 얻 지 못한다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기다림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끝까지 달려가는 것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마태복음 24장 13절을 보시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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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알았을 때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하나님은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능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하심이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가 순종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성경은요 그가 많은 재물을 소유했다든지 아니면 그가 하는 사업이 성공했다든지 아니면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죄악된 세상에서 그들과 같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그 기사 외에 어떤 기사도
기록되지 않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6장 9절 시작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삶이죠 이와 같이 노아가 순종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자야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느라 이렇게 말씀했잖아요 우리 영혼이 잘되야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이지 우리 영혼이 잘못되는데 내가 어떻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형통은 우리 영혼이 잘되는 거예요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기도할 때마다 은혜가 넘치고 찬성할 때마다 마음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담으로 씁니다 영혼한 내세 천국을 내 눈으로 확인하듯이 바라보이며
이 땅은 내가 살 곳이 아니라 내가 살 내 고향 내 집은 영혼한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다시 확인하게 되고 깨닫게 되는 이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정결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럽고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그러한 행복관에서 벗어나서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거룩한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 가치관을 바꿔 주시옵소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잇는다면 그 어떠한 요구도 우리는 순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네 번째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순종했다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절 읽겠습니다 시작 시작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로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자가
몇 명 뿐이니 곧 8명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노아가 120년 동안 한 상자만을 만들고 있었단 말이에요 터 그러면 옆사람이 미쳤다고 했을 거예요 더구나 그의 아내는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요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만약에 새아들과 아내까지
아니 당신 정말 미쳤어요 라고 얘기했다면 정말 방주 만들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년이 되어도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방주 만들기를 그치니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제 방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어려운 명령을 내리셨느냐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어려운 명령을 내리신 줄로 믿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 어려운 명령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다 우리의 축복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내 가정을 위하여 요구하시는 줄로 믿으시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여러분들이시기를 추구합니다 추구합니다 여기를 보면 방주에 들어간 사람이 몇 명입니까 여덟 명입니다 도대체가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너무 손해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엄청나게 2만 톤이나 넘는 그 배를 8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배를 만들라고 한다니 이건 너무나 손해 아닙니까
그것도 100년이 넘게 그 방주를 지으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바로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수가 다수가 아니라 정말 소수인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적다 이 작은 수를 구원하시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나 우리가 세상을 나가보면 세상은 너무나 넓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넓어요
그런데 교회는 너무나 작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보이는 세상에 비교한다면 보이지 않는 이 세계가 너무나 안 보인다 이 말이에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니까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고 여덟 명을 들어가게 하시고 비를 내리셨습니다 단 여덟 명의 구원을 위해서 그 방주를 예비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이고 그것이 바로 교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방주에 들어가는 일이 그러면 정말 재밌었을까요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디즈니랜드 정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좋은 뷰의 카페도 아니고 그야말로 잔나무로 만들어서 뭐 그때야 무슨 전등이 있었겠어요 뭐 핸드폰에 어 이 전등 나오는 거를 이렇게 딱 해서
비칠 수 있는 그런 시대였을까요 그런 게 아니에요 꼼꼼하죠 비는 내리죠 문은 닫히죠 어 수심 수만 마리의 짐승들은 울부짖죠 여러분 그곳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 정말 재밌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정말 답답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도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몰라요 정말 미쳤구나 그러나 그들이 방주에 들어간 이유는 온 가족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120년을 순정한 것입니다 원아업기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교회를 나오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손을 잡고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들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방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방주를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방주에 들어왔다면 여러분들의 온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이 방주를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나만 들어와서 앉아 있습니까 여러분 방주는 교회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또 나의 일생도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내가 죽어 있던 세상의 모든 것들도 다 내려놓고 떠나야 됩니다
내가 죽으면 세상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알아주는 일도 없고 후대의 세대가 나를 알아주는 일이 없습니다 100년, 200년이 지나면 100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됩니까
나만을 위해서 나만 방주에 들어와야 됩니까 내 가정의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내 온과 힘과 정성을 다해서 그들을 이끌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한 번이 어렵지 데리고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받으면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가정에 온전히 충만히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기도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고 그가 듣는 말씀마다 그의 가정의 축복으로 역사할 줄로 믿습니다 노아는 자기만을 위해서 방주를 지은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방주를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하나님을 경애함으로 순종했다 라는 거예요 히브리서 11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애함으로 하나님을 예비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 미야마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쫓는 의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가 120년 방주를 예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경애했기 때문에 방주를 지울 수 있었다라는 거예요
노아가 하나님의 경애에 마음이 없었다면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경애한 후 방주를 예비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경애한다는 게 뭡니까 경배한다는 것은 와서 찬송 드리고 하나님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거지만 경애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 신도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몰라요 안식이를 지키지 않아도 이것이 개명을 어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민수기 26장 민수기 26장 65절 보겠습니다 민수기 26장 65절 시작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 내 아들 갈렙과 너네 아들 여호사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열두 정탐군 중에서 두 명만 빼고
나머지 그리고 광야에 나온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가난한 것입니다 가난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뭐에 의해서 그들의 생명이 좌지우지 됐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들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이 선포한 말씀대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실감이 안 나세요?
오늘 제가 목소리가 크죠 예수님의 말씀은
잘 들으셔야 돼요. 오늘 왜 목자님이 열을 냈는지 왜 목소리가 커지는지 깊이 있게 인식하라는 거예요. 하나 님의 말씀이 그렇게 두려운 거예요. 죽으리라 한 이 선포된 말씀에 의해서 그들이 광려에서 다 죽었잖아요.
여우사와 갈렛만 들어갔잖아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질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듣고도 그냥 먹어버리는 거예요. 듣고도 잊어버리는 거예요. 듣고도 명심을 안 해. 듣고도 마음의 새김을 받지 않습니다.
듣고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가책이 없어요.
오늘 이 시간에는 노아의 순종.
말씀대로 순종했다. 따라서 하세요. 말씀대로 순종했다.
끝까지 순종했다.
은혜를 받음으로 순종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순종했다.
하나님을 경애함으로 순종했다.
그래서 노아의 여덟 명은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묵도하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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