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교회01
복음 안에서의 책망 20
허명도 · 갈2:11-14
제작일 2026. 8. 28.
설명 펼치기▼
복음 안에서의 책망 (갈 2:11-14) 202608228 허명도 목자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교제를 두려워하며 회피한 사건을 통해 복음의 진정한 의미와 신앙의 자유에 대한 교훈이 전달된다.
본문갈라디아서 2:11-14고린도서 10:10디모데전서 5:1-2갈라디아서 3:28사도행전 15
- 베드로는 유대교 관습에 따라 이방인과의 교류를 두려워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강하게 책망하며, 복음은 인종과 율법을 초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사건은 신앙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본문 정리 펼치기▼
사건 배경
-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은 안디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에 대해 책망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 안디옥은 수리아에 위치한 도시로, 이방인 복음 전파의 중심지이며, 바나바와 바울이 교회를 세웠다.
- 예루살렘 총회 이후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교류가 허용됨을 깨달았으나, 이 사건에서 유대교 관습에 영향을 받았다.
베드로의 행동과 그 의미
- 베드로는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 이는 유대인의 오랜 관습과 율법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 고넬료의 집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주셨다는 경험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여전히 이방인과의 교제에 대한 편견을 떨치지 못했다.
바울의 책망과 교훈
-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을 책망하며,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인종, 율법, 관습을 초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앙생활에서 자신의 생각과 관습을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 교회에서의 경직된 규례나 관습은 오히려 신앙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
복음의 본질과 교회 공동체
- 복음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구원하는 것이며, 이방인과의 교제는 하나님의 뜻이다.
-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강조한다.
-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으며,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이방인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추가 예시와 개인적 경험
- 장을 묶고 삶은 음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강한 냄새로 인해 먹지 못했고, 이후로는 음식을 모두 먹기로 결심했다.
- 캄보디아에서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받았으나, 형제자매들이 보고 있기에 용감하게 먹었다.
- 음식을 먹지 않고 도망치는 행동은 교회 공동체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석영자가 대만 신학원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으며, 이는 본인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임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갈라디아서 2장 11절에서부터 18절 말씀 모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에서부터 14절 말씀 우리 11절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개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구부에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개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메 그가 한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물러가메 오늘 이 시간에는 보그만에서의 책망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 가지고 은혜 나누 시간 갖도록 하시겠습니다. 먼저 우리 11절에 보게 되면 개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 안디옥은 어디를 얘기를 하냐면 수리아 안디옥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혹시 우리 방송반에서 사진 하나 보여드렸는데 이렇게 잠깐 띄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하면 할 수 없고 보게 되면 우리 유대의 지역이 보이네. 조금 밑에 확대를 해주시면 유대의 보이주 제일 밑에 오른쪽 제일 밑에 유대에서 좀 올라가게 되면 이쪽으로 잘 알고 있는 두로가 나오고 희돈이 나오고 그다음에 번이게가 나옵니다. 그다음에 위에가 수리아가 있습니다. 수리아. 그 수리아 안디옥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수리아 안디옥. 우리 사도바울의 제1차 전도행 때 안디옥을 또 가게 되는데 거기는 또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구보로에서 위로 올라가게 되면 비시디아가 있죠. 위로 올라가게 되면 구보로는 섬입니다. 중간에. 섬에서 위로 올라가면 비시디아가 있는데 바로 거기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고 그래서 이 비시디아 안디옥은 우리 사도바울의 제1차 전도행 때 방문한 지역이고 여기 수리아 안디옥은 슬리아의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진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전한 곳이고 그 이후에 바나바가 거기 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하나님 말씀 11장. 사도행전 11장 19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1장 19절. 사도행전 11장 19절. 얼굴이 나오니까 조금 자세를 발휘해야 되겠네요. 이렇게. 사도행전 11장 19절이요. 그냥 읽겠습니다. 11장 19절. 그때 스대반의 일로 일어난 활란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보로와 안디옥까지. 우리 잠깐 지도 부분에서 기억나시죠? 베니게, 구보로섬, 그 다음에 위에 안디옥 이렇게 되게 됩니다. 안디옥에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절. 20절. 그 중에 구보로와 구련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로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 예수니 그들과 함께 하심에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죽게 돌아오더라. 그래서 이 수리안의 일로 누가 세웠나요? 기본적으로 스대반의 일로 흩어진 사람들이 거기 먼저 복음을 전했다. 이렇게 나오게 됩니다. 교회로서의 모습을 이렇게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이 소식을 듣고 교회에서 사람을 파송으로 하게 됩니다. 22절 보시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죽게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죽게 도하더라. 여기 보게 되면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죽게 들어왔고 또 바나바를 통해서 더욱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무리가 죽게 도하더라. 25절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수에 가서 이 다수가 바로 조금만 더 가게 되면 길리기야 성업이 있고 거기가 다수입니다. 그래서 이 수리안의 일랑 다수랑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요. 그래서 거기 가서 사울을 데리고 옵니다. 26절 같이 읽겠습니다. 만남에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서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인이라 일걸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래서 바나바와 함께 사울이 합작해서 이렇게 크게 세워진 교회이고 여기에서 그리스인이라 일걸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리스인, 저 사람들 예수 믿고 예수의 부하를 전하는 사람들 또 예수 그리스의 말씀대로 이렇게 순정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인이라 이렇게 이름이 물려지게 된 것입니다. 4경전 13장 1절 그래서 여기 보게 되면 계속해서 가르친 내용이 있고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 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기 역시 수리의 안디옥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루살렘이 유대인의 보금 전파의 중심지로 이렇게 활동이 되었던 것처럼 나중에 수리의 안디옥은 이방인 사역의 중심교회로 이렇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수단 사람이 바나바와 바보를 통해서 온전한 교회가 세워지게 됐음을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다시 갈라디아서 2장 11절로 보시겠습니다. 그래서 개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언제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을까? 우리 보게 되면 사도행전 15장에 보게 되면 예루살렘 총회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 이후에 우리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도 반이 울게로 돌아오게 되었다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바로 이런 부분에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수리의 안디옥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르렀을 때 책망할 일이 있구로 이렇게 내가 바오사도를 면책하였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우리 개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이 부분이 여기 보면 큰 중심이 되는 부분이겠죠. 유대인들의 어떤 율법에 의하면 이방인들과는 거의 상종을 하지 않은 것으로 특히 무시를 한 것이 한례 없는 이방인들. 우리 구약성회에 보게 되면 다윗과 골리아까지 전쟁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골리아스를 한례 없는 이방인으로 굉장히 낫고 무시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한례가 없고 율법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그 사람들을 우리가 함께 이렇게 왕래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이 굉장히 의식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 베드로 사도는 이방인과 함께 앉아있는 것,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이 죄가 아님을 이미 알고 경험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사정제 10장이 기록이 되어 있어요. 우리 고넬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이 사자를 보내서 또 베드로를 보내고 또 고넬르에게는 베드로를 청해서 부르라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됩니다.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오게 되는데 거기에 부정한 것들이 잔뜩 있습니다. 베드로야 잡아먹어라. 어릴 때부터 내가 이 부정한 것 먹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다 한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부분들이 이렇게 세 번 반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우리 베드로 사도가 고넬류 가정의 결과적으로 이렇게 방문을 하게 되죠. 몇 가지 얘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 너희도 알거니와 이때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사이가 이랬다라는 것입니다.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뭐라고요? 위법. 이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이 않다 하지 말라. 우리 스스로 속되거나 또는 깨끗하지 않다라는 그런 판단을 우리가 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하시기로 29절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문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그래서 이방인의 부름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사양치 않고 왔다. 왜 나를 불렀냐. 이렇게 얘기하는 가운데서 이 과정을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 건너뛰어서 34절 보시겠습니다. 34절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똑같이 우리와 같이 구원하시는구나.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바로 이 부분을 통해서 그들과 교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이방인들입니다. 결코 이 법이 아니다라는 부분을 이미 베드로는 이 사실을 통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1장 건네떼세요. 1절부터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들었더니 누구에 관해서 한 얘기일까요? 고렐로 가정의 구원 받는 과정을 듣고서 하는 소리입니다. 2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한례자들이 흘러나야 한례자들이 강하게 질책했다라는 부분입니다. 가로도의 뇌가 무한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무한례자의 집에 들어간 것, 다시 말해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간 것, 그와 함께 먹은 것, 이 두 가지 부분 을 강하게 질책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우리 베드로 사도가 변호를 하는 가운데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죠. 17절 보시겠습니다. 그런 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이 선물이 뭘까요? 성령 부어주신 거예요. 성령은 하나님께서 신이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고 한데 하나님을 능히 맡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우려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물로 세례 주물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셔서 성령 주셨는데 누가 세례를 안 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교제했음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18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없는 회계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래서 그들이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관계없이, 구분 없이 그들도 구원하시는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입니다. 우리 구약시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먼저 그들이 유대인으로 귀화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귀화의 조건이 한례를 받는 거예요. 그리고 당연히 율법을 지켜야 되겠죠. 그런데 지금 신약시대는 그것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례와 율법이 필요가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도 함께 구원하심을 이렇게 그들에게 증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먹고 마시다가 베드로가 소식을 듣습니다. 야구부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때 당시에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을 때 그때의 총회장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야구부라고 이렇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구부에 서기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다시 말해서 야구부가 또 이렇게 몇몇 사람을 또 그쪽으로 파송을 했겠죠. 그러니까 이들이 이르기 전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한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불러가며.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함께 먹었는데 함께 있지 않고 안 먹은 척하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분명히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가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오랜 관습입니다. 오랜 관습. 이미 그 머릿속에 마음은 그게 아닌데 머리에는 뭐가 있습니까? 유대인. 자기도 유대인이거든요. 그리고 한례. 이를 갖다가 그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아직까지 바꿔지지 않는 거예요. 생각이 바꿔지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옛날에 그런 관습이 저절로 우리 마음에 남아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0장 5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케 하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우리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입니다. 우리의 본능입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뭐가 있어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저희가 신앙상환할 때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라고 제가 이렇게 강조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부분이 자기 생각이에요. 자기 뜻, 자기 현애. 그래서 그것이 안 되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 부분에서 많은 부분이 신앙에서 넘어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는 생각조차도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율법 때문에 이런 저기를 한 것처럼 우리 한국도 자연스럽게 옛날 유기문화에서 이런 것들이 있어요. 정화수도 넣고 치성들이고 백일기도, 천일기도 이런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새벽기도가 제일 활발하게 잘 되는 곳이 어느 나라인지 아십니까? 한국이에요. 그리고 새벽기도가 어떤 경우는 어떤 율법처럼 이런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안 나면 크게 잘못하는 것처럼 책망하는 경우도 이렇게 보게 됐는데 그냥 성경은 아침 기도하면 됩니다. 아침 기도. 청와대에서 총회에서 상주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우리 상의 사무원들. 그분들은 아침 기도를 8시부터 해요. 8시부터 8시 반까지. 그래서 원래 새벽 기도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야 됩니까? 그건 정화해진 게 없어요. 사람은 일반 교회처럼 4시부터 5시까지 하든지 아니면 5시부터 6시까지 하든지. 그래서 우리 천년 속의 한국청회도 교회마다 다 틀립니다. 어떤 교회에는 5시, 어떤 교회에는 5시 반, 어떤 교회에는 6시, 어떤 교회에는 6시 반. 어디가 맞는 거예요? 그건 그 교회 상황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어떤 시골교회에는 새벽기도가 또 공식적으로 없고 자유롭게 하는 기도도 있죠. 그래서 마치 자유롭게 하게 되면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것처럼 또 그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도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본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저녁 때 마무리를 기도로 마무리하면 잘 좋겠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어느 나라부터 보니까 우리 신학생들 면접 심사를 할 때 기도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가 질문으로 나오� ��라고요. 자연스럽게 아침 기도, 저녁 기도가 있는 교회는 천안처럼 있는 교회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교회는 어떻게 할까? 그럼 자유롭게 해야 되는데 그러면 본인이 일정하게 기도 생활을 못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것이 큰 잘못인 것처럼. 앞으로 신학생 돌아올 거니까 그때부터 잘하면 되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너무 경직된 사과를 갖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것이 또 하나의 우리의 법이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베드로 사도가 그것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넬료 과정에 그런 엄청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음속에 이방인들과 함께 교제하고 함께 복구 마시는 것은 안 된다. 내가 오늘 그 했다. 그래서 야구부에 의해서 온 사람들이 오니까 두려워서 그 자리를 피했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저를 면책하였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면책. 면책은 면전에서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까지 강하게 했을까? 우리 사도바울은 굉장히 융통성도 있고 또 사실은 동역자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고 심지어는 은혜를 위해 복음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두기를 악화하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고린도서 10장 1절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서 10장 1절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굉장히 온유하고 자기는 관용하는 사람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그래서 심지어 고린도교의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어떻게 했느냐 대면에서 보니까 참 현찬한 사람이다. 말도 제대로 잘 못하고 오히려 사도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약하며 두려하며 힘이 떠나노라 굉장히 자기를 절제하고 주의하는 가운데 살았음을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10절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서 10장 10절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우리 바울 소신을 보니까 굉장히 강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그들을 책망하고 권면하는 내용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왜 이렇게 했을까요?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자기 스스로 온유하고 겸손한 가운데에서 그들을 대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 편지들로 말하는 자가 어떠한 자이면 함께 있을 때 행하는 자도 그와 같은 자인 줄 알라 그래서 편지들 써서 보내거나 아니면 대면에서 말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부분으로 이렇게 받아들여야 될 것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절 2절 보시겠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절 2절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베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사도바울은 이런 사람입니다. 바로 또 이렇게 디모드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바울이 그때 당시에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자타가 공행하는 예수님의 수제자예요. 그런데 그 수제를 면전해서 이렇게 책망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왜 그렇게 베드로를 심하게 면전해서까지 이렇게 책망을 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일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보시겠습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유대인들도 함께 베드로와 똑같이 그 자리를 피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이 행동이 굉장히 심각하게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바나바는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함께 세울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리고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왜냐하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제일 먼저 헬라인들에게 보금이 전해서 세워진 교회거든요. 수리아 안디옥이. 그럼 그 사람들과 이방인들과 함께 있었어요. 지금까지 먹고 마시고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바나바조차도 유혹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대표적인 인물인데, 이 하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바나바마저도 외식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일이 될 수 있겠죠. 함께, 사울과 함께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인데, 그리고 지금 이 장소가 어디입니까? 이 장소가 수리아 안디옥이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여기에 목회자로 있었던 사람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거기를 그 장소를 피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이 부분은 우리 바우사도가 베드로를 면책하지 않으면 안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요. 보금의 진리를 따라서 행치 않았다라는 부분을 강하게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십사들 보니까,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보금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냐를 보고, 보금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않냐를 보고, 보금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분할까요? 구분하지 않을까요? 보금은 구분하지 않습니다. 보금의 비밀은 이방인들도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차가 되고, 함께 이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 보금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보금의 진리 안에서 그걸 갖다가 아직도 구분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다 보게 되면 수많은 부분이 우리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럼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 라는 그런 부분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우리 대만에서는 이것이 구원과 관계가 있냐 없냐, 이것이 진리와 관계가 있냐 없냐 라는 부분은 굉장히 이 부분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쓰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굳이 이 내용이 보금과 구원과 진리와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면 다 해도 그만, 또 안 해도 그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그런 부분을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목자님, 순대를 먹어야 될까, 안 먹어야 될까요? 그럼 제가 그랬죠. 야, 너 먹을 게 순대밖에 없냐? 그리고 목자님, 술 어떻게 할까요? 목자님, 담배 어떻게 할까요? 이미 그런 부분들은 고린도 전서 10장에 기준이 있습니다. 네 가지 기준이 있어요. 고린도 전서 10장을 보게 되면 첫 번째, 이것이 유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데 내게 유익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두 번째, 덕이 되느냐, 덕이 안 되느냐. 덕이 되느냐, 안 되느냐. 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정말 칭찬받을 만한 이런 부분들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냐 없냐. 그걸 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이라면 해도 분명합니다. 네 번째, 이것을 통해서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냐 없냐예요. 구원할 수 있냐 없냐.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구원할 수 있냐 없냐. 내가 떳떳하지 못하면서, 내가 바로 행하지 못하면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로 그런 부분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우리 보금의 진리를 보게 되면 보금은 누가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누구 안에서요? 보금의 모든 내용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구원인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입니다. 그래서 바로 인간을 위한 구원의 깊은 소식인데 보금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보금의 시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다음에 보금의 혜택은 바로 우리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는 차별이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보금의 결과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자유와 구원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부터 16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3절에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5절에서부터 15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16절까지는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죄와 죽음과 심판으로부터의 자유, 더 나아가 사단으로부터의 자� �를 우리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유를 누리는데 왜 다시 율법으로 우리를 구속하려 하느냐 이런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 사도 베드로가 이 부분을 결과적으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을 강하게 책망을 한 것입니다. 갈라데스 3장 28절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다 하나입니다.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전혀 구분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구약성에 보게 되면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남녀차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여자들의 주인은 성경에서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신약시대는 그것이 아닙니다. 같아요. 그래서 여기 보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대표하는 명칭이죠.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인이라 다 하나인데 우리가 굳이 이렇게 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경쟁하거나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로는 복음의 질의를 따라서 행치 않기 때문에 연척하였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신앙인답게 살지 않았다. 자기도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신앙인답게 살려고 요구할 수 있냐.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쫓고 유대인답게 살지 않냐면서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쫓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베드로 사도도 유대인이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들과 함께 있었고 이방인들과 함께 먹었었습니다 이방을 쫓았었다 그런데 이런 자체로 유대인답게 살지 않냐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할례랑 율법 다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못해요 유대인들은 아직까지도 그런 의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예루살렘에 가니까 어떤 호텔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안식일 전용 엘리베이터는 버튼을 누릴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서 다 서요 다 씁니다 올라갈 때 다 서고 내릴 때 다 씁니다 버튼 누르는 것도 안 돼 그리고 안식해야 되잖아요 편히 쉬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엘리베이터에 쇼파가 있어요 이렇게 앉아서 편히 앉아가라고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 하나가 굳어지게 되면 완전히 그쪽으로 고착하게 되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너무나 많은 것으로 다시 우리를 구속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항상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안식일은 은혜 아래 지킨다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그럼 무슨 의미예요? 안식일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 안식일을 복주신 것처럼 우리를 갖다가 복을 주신다 또 안식일에 우리가 총 영역관에 안식을 누리도록 우리에게 이 날을 허락하셨다 그거 즐기면서 누리시면 됩니다 마치 그것을 갖다가 못 지켰을 경우 굉장히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처럼 절대 아니에요 우리 담배 한 번 탑했다고 구원 받지 못할까요? 그 사람은 그것은 행위입니다 이것은 그 다음에 아까 얘기한 대로 이것은 유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덕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냐 없냐 이런 차원에서 보는 겁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뭐라고 합니까? 우리 사도행전 15장 보시겠습니다 우리 결론 부분을 보게 되면 우리 야거부 사도가 일어나서 이렇게 또 베드로 사도와 함께 선포를 합니다 사도행전 15장 19절 보시겠습니다 15장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이방인으로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괴롭게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할 일을 밟고 일법을 다 지키라는 것입니다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왜 이런 편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21절 보니까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으면 이라 하더라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이 초대하는 모든 회당에서 관례적으로 모세율법을 읽어주면서 그걸 갖다 가르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교회에 편지를 하자라는 것입니다 그 앞부절을 더 보겠습니다 사정지 15장 28절 보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것도 너희에게 지우지 않냐는 것이 가한 줄 알았느니 성령과 우리는 이 말씀은 뭡니까? 우리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함께 증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이것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않냐는 것이 가한 줄 알았느니 하면서 그 부분을 다시 한번 29절에서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9절 보겠습니다 우상의 재물과 피와 목매워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했더라 더 이상 이것 때문에 마음속으로 괴롭게 말고 불안하지 말고 이 가운데서 이렇게 살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가 있겠죠 그래서 베드로의 이 안디옥 회식사건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제일 첫 번째로 못 모르고 베드로 행동을 따라서 했던 바나바도 상처를 입게 되죠 바나바는 동역자입니다 이스크리스를 함께 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도 상처를 입게 되었죠 나중에 보니까 내가 왜 그랬을까 성경에 기록이 없지만 왜냐하면 바나바는 그때 당시에 이 안디옥의 지도자입니다 누가 다 보고 있어요? 신도들이 다 보고 있어요 제가 부끄러운 짓 하고서 이 단상 앞에 설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 어떤 목자나 장로나 집사나 보니까 전혀 안 그런 가운데서 얘기를 하게 되면 신도들이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아십니까? 들으시면서 당신이나 잘하시오 한 목자님이 정직하지 못하면서 정직하고 설계하면 어떻게 할까요? 사람들 들으면서 안 들어옵니다 그 가르침이 우리 귀에 들어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나바는 심각하게 자기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수리아 안개옥교회의 사람들이 바나바에서 뭐라고 생각할까요? 두 번째는 함께 식사를 했던 많은 유대인들이 또 함께 상처를 받았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함께 식사를 했던 이방 그리스도들이 엄청나게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들이 다 봤을 것 아니에요 저희가 대만에 가서 산지교회에 가게 되면 산지교회에서 특별한 음식을 내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걸 갖다가 뭐가 되는지 안 뭐가 되는지 고민을 하는데 이것은 먹고 안 먹고 문제가 아니라 비유가 약해서 먹을 수 있냐 없냐의 그 문제입니다 그런데 다 쳐다보고 있어요 먹나 안 먹나 안 먹나 한 번은 산지에 갔더니 날다람쥐 요리를 해줬는데 그냥 머리랑 이것이 그대로 있어요 이렇게 다 이렇게 그걸 갖다 뜯어 먹어야 돼요 이렇게 사람들 다 뜯어 먹더라고요 이렇게 저는 비유가상에서 못 먹고 있는데 우리 덕인 목자님은 잘 드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가 대만에서 음식 못 먹는 부분을 얘기를 하니까 우리 양요한 장로님이 우리 한국식 생활생들을 불러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목회자가 되게 되면 신들이 무엇을 주든지 전부 다 감사함으로 다 먹을 줄 알아야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제일 처음에 산지를 갔더니 산지교회에서 특별 요리를 줬대요 어떤 요리냐면 날다람쥐 요리가 고기도 먹지만 내장 요리가 제일 최고급 요리래요 왜냐하면 거의 땅에 때려지지 않고 산에서 이슬이랑 나뭇잎이랑 이런 거 먹으니까 얼마나 깨끗한 것만 내장 속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죽인 다음에 내장을 그대로 갖고 여기를 묶고 순대처럼 여기를 묶고 그걸 그대로 다 삶는대요 노린내가 엄청나게 됩니다 그래서 산지를 갔더니 장로님한테 그걸 접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으려고 하니까 이미 딱 코에서부터 들리지 않아요 한 입 딱 넣는 순간에 삼키지도 못하고 눈물이 줄줄 흘렀대요 그래서 그런 가운데에서 나중에 기도하고 꾹꾹 상패댑니다 다 드실대요 저희들이 처음에 대북교회를 갔을 때 대북교회 청년들이 우리한테 탁구를 도전했습니다 희로 목자님 있는 것도 모르고 그러면서 우리가 탁구 쳐서 진 사람이 그러면 한 덩 내는 걸로 하자 그런데 여러분들이 장난을 치려고 취두부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그 취두부가 튀긴 게 있고 삶은 게 있습니다 삶은 거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에요 정말 시궁창 냄새가 납니다 한 입을 딱 물었는데 더 이상 그 다음에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보니까 다 보고 있으니까 뱉을 수도 없고 미안하잖아요 또 이렇게 그 사람들한테는 고급 요리인데 맛있는 건데 어릴 적에 향수가 있는 건데 그런데 또 삼키는 게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저도 그냥 나중에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흐르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하다 이런 표현을 하고 화장실 가서 뱉었습니다 뱉고 나서 왔는데 그분들 얼굴 보기가 미안하다고 해서 내가 안 봤어요 이렇게 그냥 뱉고 와서 왜냐하면 우리가 접지하는 음식인데 그걸 뱉고 오면 됩니까?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제가 다 먹었죠 향체 고수 그것도 먹고 그 다음에 뱀고기도 먹고 뱀도 바로 앞에서 잡아서 죽여서 이렇게 요리하는 것도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웬만한 거 다 먹었는데 이번에 또 캄보디아를 가니까 저번에 그 사람들이 일부러 우리를 위해서 캄보디아 단백질 많은 걸 가지고 왔어요 잠자리 개구리, 바퀴벌벌벌벌벌벌벌 같은 거 그래서 그냥 벌 우리가 다 보니까 안 먹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죠? 그래서 할 수 없죠? 그래서 할 수 없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가 나랑 용준목자가 우리 기도하고 먹자 이런 거 다 캄보디아 우리 형제들 자매들이 다 보고 있는데 먹어야 된다 그래서 나랑 용준목자가 용감하게 먹었죠 먹었더니 옆에 있는 주접지가 또 우리 쪽으로 오더라고 그래서 이건 안 된다 싶어서 나중에 조금 이미 막 와서 배부르 다 했었는지 안 먹었었는데 그런 겁니다 접대하는 입장에서는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느냐 하나가 안 되느냐 이 부분까지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도망갔어요? 안 먹고? 그래서 이 부분이 안교육교의 성들들의 엄청 큰 상처를 입었을 거다라는 부분으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유대인처럼 살지 못하면서 왜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게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신앙인으로 살려고 유가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게 중요합니다. 우리 성대님들 신앙인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빌리포서 1장 27절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적 은혜의 구속을 주셨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관습과 이런 그런 부분에 우리가 얽매이지 않는 이런 은혜를 우리들에게 허락을 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최상과 죄와 마귀, 죽음 이런 심판에서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우리 성대님들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로 모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실 때 우리가 정말로 주님 안에서 신앙인답게 살아가시도록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 시옵소서. 그리고 오늘 소식이 왔는데 우리 이번에 대만 신학원에 5명이 이렇게 응시를 했었는데 다 떨어졌댑니다. 그래서 우리 기석영자가 9월 달부터 신학을 하게 되는데 2학년이랑 같이 수업을 한대요. 2학년이랑 그래서 아마 엄청 더 부담이 더 크지 않을까. 1학년 과정을 건너뛰고 2학년이랑 수업을 하고 그다음에 3학년 수업을 하고 다시 나중에 1학년들이랑 같이 수업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일본에 있는 2학년 학생은 따로 수업을 합게 됩니다. 워낙 중고가 안 되니까. 그런데 우리 기석영자는 그래도 중고가 좀 되니까 그냥 2학년이랑 바로 수업을 하는 것으로 이렇게 결정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는 참 많이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더해 주시고 풍선 또는 은혜로 능력으로 역사의 주의를 위해서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관련 지교회
천안교회
이 영상은 천안교회 채널의 콘텐츠입니다.
같은 채널 다른 영상
천안교회 채널 최신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