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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유바나바 목자 26.08.18

고전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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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8장 1절~6절)
#고린도전서개론 #고린도전서해석 #고린도전서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고전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전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고전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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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1~6절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과 사랑의 균형을 강조하며, 사랑이 덕을 세우는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본문고린도전서 8:1-6
  •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의 제물과 관련한 지식과 사랑의 중요성을 다룬다.
  • 지식은 교만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덕을 세우는 데 기여한다.
  • 바울은 지식을 사랑을 통해 타인을 세우는 데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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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1~6절의 주제

  • 고린도전서 8장 1~6절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과 사랑의 중요성을 다룬다.
  • 지식은 교만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덕을 세우는 데 기여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

  •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자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인간이 만들어낸 허무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 세상의 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피조물이지, 신이 아니다.

지식과 사랑의 균형

  • 지식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교만이나 자기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단순히 평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 바른 지식은 성도의 신앙 수준 차이를 인정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도움을 주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와 신앙의 성숙

  • 고린도 교회는 우상의 제물에 대해 지식을 가졌지만, 이를 교만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 바울은 지식을 사랑으로 사용하여 타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신앙의 성숙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행동의 지침

  • 우상의 제물은 신앙인에게 더럽지 않지만, 이를 먹는 것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근거가 될 수 있다.
  •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가지고도, 복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타인을 세우는 근원이 된다.
전사(자막) 전문▼
네 그럼 먼저 하나님 말씀 먼저 함께 찾겠습니다.
오늘 같이 살펴볼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씀을 찾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서 6절까지 말씀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우상의 재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낳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하니라.
아멘 오늘 여기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는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 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우리 고린도 전서의 말씀을 우리 화요일 저녁 예배 때마다 같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내용을 같이 살펴보면서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가 떠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죠.
그리고 처음에 고린도 전서 강의를 시작할 때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도교회는 어떤 완전한 그런 모습으로만 있 었던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모습에 연약함도 있었다는 것을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통해서 깨닫 게 됩니다.
그래서 간혹 고린도 교회에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다 일어나는 그런 모습들을 잘 볼 수가 있는데 바로 그게 고린도 교회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고 또 일어났던 많은 문 제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바울사도의 본문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들을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 삶에도 완전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는 부족하고 여전히 연약하고 또 많은 부분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 내가 이게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깨닫고 나면 잘못된 신앙의 길로 걸어가셨던 이런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서 옳은 것을 또 바른 진리를 깨달아간 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 말씀들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깨달아가 더욱 더 성숙해가고 또 성장해가는 것처럼 우리도 이 하나님 말씀들을 배워가면서 우리의 신앙이 조금 더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해가는 저와 여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8정에도 고린도 교회가 떠안고 있었던 큰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게 바로 우상에게 바친 재물을 먹는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당시에 고린도라는 지역이 가졌던 큰 환경적인 문제로 인해서 교회가 교회 성도들이 이런 위험에 닥쳐였던 모습들을 볼 수가 있게 되는데요.
고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고린도라는 도시는 음란의 도시였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라는 도시가 음란이 일상화된 사람들이었죠.
왜냐하면 그 도시 자체가 그러했고 당시에 그것이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시대였다 보니까 많은 사회적인 환경 분위기가 음란이라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화되었던 또 하나의 일상화됐던 것이 뭐냐면 우상 숭배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우상을 이미 섬기고 있었고 또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되었던 많은 음식들 이런 것들이 재물들이죠.
이런 재물들이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사고 파는 그런 시장에까지 나오게 되어서 그 시장에서 내가 이룡할 음식을 사기 위해선 때로는 그 우상의 재물의 음식까지도 사게 되는 일이 있었다라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을 우상의 재물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먹는 이들도 있었고 때로는 이것이 우상의 재물이기 때문에 우상의 재물은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걸 알고 먹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고 때로는 더 나아가서 우상의 재물이 무슨 문제냐라고 생각하면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는 우상이 없으니까 이건 한낱 음식에 불과하다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쉽게 이 우상의 재물을 먹는 이런 문제들이 이런 다양한 우상의 재물에 대한 생각이 다른 또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한 교회에 공존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들이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것들이 때로는 성도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그리고 실제적인 하나님의 진리와는 다른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는 그 사람이 우상이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까지도 벌어져 버린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일들이 나타나다 보니까 바로 바울사도는 거기에 대한 문제도 이 편지의 글을 통해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의 재물에 대한 바른 지식 우상의 재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 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이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하고 뿐만 아니라 이 지식이 올바로 사용되기 위해서 마땅히 있어야 되는 우리의 바른 신앙의 태도가 무엇인지 이런 내용들도
보문에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는 또 아닐 수 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교회는 다양한 성도들이 있고 다양한 믿음의 분들이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믿음의 단계 아래서 어떤 것을 깨우쳐 깨달아 그 믿음의 성숙한 단계에 이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아직 세상에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때로는 이 옛사람의 모습이 옳은지 그른지
이것도 모르고 우선 신앙 안에서 거듭나신 분들도 있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죠.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것은 사람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그런 관계에 있어도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의 사랑이 지나치면 자녀에게는 이렇게 느낄 수도 있잖아요.
엄마 아빠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통제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자녀는 그걸 깨닫지 못하다 보니까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는 행동들이 나를 통제고 옥죄한다.
옥죄다.
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그걸 통해서 실족을 합니다.
때로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서 조언을 하죠.
그런데 아내가 듣기에는 당신은 나를 사랑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 생각대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죠.
친구를 사랑해서 충고를 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솔직히 이야기하는 건데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죠.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돌아서면서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랑해서 말한 걸까?
아니면 자기가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라고 오해하게 된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사실은 내가 아는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가지고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방식대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그렇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느냐?
그렇지 않은 일들도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때로는 이것이 믿음의 세계 안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다라는 거죠.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느끼는 사랑일까?
내가 옳은 것을 알려주는 그 사랑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하나님 안에서 세워주는 사랑인가?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 어떤 내가 아는 지식 내가 가진 지식을 통해서
성도를 이용해서 성도를 위한다면 그 목적은 분명해야 되는데 내 지식을 위한 지식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새로 고 세우이 위한 지식인지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부분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바른 지식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 바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래서 오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같이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가진 지식을 무엇을 위해서 사용해야 되는가.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4절부터 6절까지 있는 그러면 가장 먼저 우리는 마땅히 바른 지식을 가질 줄 알아야 되는데 우상의 재물에 대한 바른 지식은 뭐냐.
이걸 4절부터 6절에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고 그 다음에 그 지식을 이제는 실질적으로 고린도 교회 안에서 어떻게 사용할 거냐.
이게 이제 7절부터 마지막 13절까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절부터 6절까지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그리고 그 바른 지식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이 무엇인지를 먼저 같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성도는 지식으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사랑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지식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도구로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것은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로 제대로 된 지식을 안다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지식의 사용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1절을 먼저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재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 알아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상에 대한 재물, 우상에 대한 재물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의 어떤 부류들은 안다라는 겁니다.
많이 알고 있다는 거죠.
이 말씀을 정확하게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바울은 지식이 나쁜 것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 말씀드리면 4절부터 6절에 보면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
이걸 우리는 알아야 된다.
이걸 알아가야 된다.
그런 면에서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 4절에서 6절까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문제는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고린도 교성도들은 우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거죠.
우상은 신이 아니다.
그렇죠?
이 세상에서 신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역에서 계속해서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이 세상에 하나님은 나 자기밖에 없다는 거거든요.
이 세상에 신은 자기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만드는 신들은 뭐냐?
말 그대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죠.
이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냥 만들어낸.
때로는 그것이 나무면 나무고 해면 해고 다리면 다리고 강이면 강이죠.
다 하나님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만물들이죠.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세상은 하나님밖에 신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허무하고 또 피조물에 불과한 그 우상에게 받쳐진 음식이라고 해도 그 음식 자체가 온전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더럽게 할 수 없어요.
이게 어떤 부류들이 아는 우상의 재물에 대한 지식들이죠.
그런데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성도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그런 근거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우상은 신이 아니다.
세상의 신은 하나님밖에 없다.
고로 세상에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다 허물, 허울밖에 없는 아무것도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받쳐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이렇게 생각하고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믿음으로 삼는 분들도 있지만 여전히 고린로 인정한 신들을 섬겼던 사람들이 그것을 떠나보내고 하나님만 신이다.
라고 여전히 아직 그것을 정리하지 못했던 미성숙한 성도들도 존재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그 우상의 재물은 여전히 신에게 드려졌던 재물이잖아요.
이걸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만에서 거듭난 내가 먹을 수 있는가.
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여기서 교만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많아서 잘난 척한다.
그 정도의 이야기보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고 내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또 다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일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럼 사랑은 뭐냐?
사랑은 덕을 세운다.
그래서 지식과 사랑과 덕에 대해서 지식과 교만과 사랑과 덕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사랑을 가지고 만약에 지식을 사용한다면 그 지식은 교만으로 다른 사람을 낮추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자신을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지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덕을 세운다라는 것은 그냥 우리가 아는 어떤 훌륭한 그 사람의 인품 이런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한다, 집을 세운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의미는 그렇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내가 정말로 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그 사람의 믿음을 조금씩 조금씩 세워가는데 그 지식을 사용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식은 사실은 뭡니까?
그런 지식입니다.
사람을 없인 여기는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없인 여기에서 내가 높아지는 지식이 아니라 너는 그것도 모르지 나는 알아 그런 지식이 아니라 그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세워가는 그런 지식이 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거냐 그것이 않습니까?
그걸 가지고 무엇을 할 거냐는 거예요.
우리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구절도 많이 알게 되고 교리도 좀 더 깊이 깨달아가게 되고 또 그걸 통해서 그 삶에서 실천함을 통한 신앙생활의 경험들이 생겨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들이 생겨지게 되면 자신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해져 가고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점점 바로 세워져 가는 것 참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다는 거예요.
신앙의 연수가 늘어날수록 지식은 많아지는데 만약 사랑이 줄어드는 경우에는 어떤 일이 생깁니까?
처음 믿을 때에는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저 사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한 가족으로서 한 믿음 가운데 같이 서로 돌보고 이런 관점에서 사람을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그 사랑의 대상 되는 사람들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왜 저것도 모르지?
왜?
나는 저것을 이미 아는데 저 사람 아직 멀었구만 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말씀을 아는 것이 어느 순간에 사람을 세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립니다.
바울이 경고하는 문제죠.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말씀드리면 그렇다면 지식을 쌓지 말자 그런 겁니까?
그걸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바른 지식을 알아야 된다.
우상의 재물에 대해서도 바른 지식을 깨달아 알아야 된다.
이것도 필요한 일이고 우리가 더욱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음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 열심히 힘쓰고 노력해야 되고 그런 배울 수 있는 자리에 열심히 참석을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식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신앙이 지식에 합당한 그런 믿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고 실천을 통해서 경험하고 그것이 진정한 나의 믿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힘써 그 신앙 생활이라는 것을 해나가야 된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만약 단순하게 내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내가 눈에 보이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으로 우리가 삼는다면 그것은 바른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간혹 오래 신앙 생활을 하거나 혹은 말씀을 열심히 보는 사람들의 함정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빠지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그 중에 하나 한 부류가 또 이 목회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목회자는 성도들을 동료에서 믿음으로 더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까 자꾸 그렇게 말씀을 들었는데 아직까지네 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는 존재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말씀들은 말씀을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 경계해야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할까 봐.
간혹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다 보면 목자님은 언제는 말씀을 열심히 읽으라고 했으면서 언제는 지식이 문제가 많다고 또 말하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2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린녀서 8장 2절에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참 놀라운 말이죠.
나는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아직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
무엇을 몰랐다는 겁니까?
단순히 성경 지식 하나를 몰랐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아직 모른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 지식을 왜 깨달음을 줬는지 아직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단순하게 얼마나 아느냐 이걸로 측정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말씀 때문에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세워가는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은 그것이 완전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세우는 데 애써야 됩니다.
많은 사람을 돕는 데 애써야 됩니다.
많은 사람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애쓰고 그것 때문에 수고하고 이것이 바로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유인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지식인들은 그러지를 못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에게 칼을 주면 어떻게 하겠어요?
어떤 부모가 칼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칼을 보여주면서 이 칼은 아주 예리한 잘 드는 칼이니까 잘 드는 그런 좋은 칼이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그것을 보고 나도 칼을 사용할 수 있어 라고 하면서 칼을 달라고 합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말하겠어요?
안된다고 말하죠.
그러면 아이가 말합니다.
왜요?
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칼이 잘 드는지도 아는데 라고 하는 지식에 대해서 얘기를 하죠.
그러면 지식만 있다고 이걸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 엄마는 얘가 이 칼에 대해서 잘 아는구나.
그러니까 이 칼을 주워줘요?
아니잖아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 칼을 줄 수 없잖아요.
칼을 사용하라고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도 비슷할 때가 있다 하는 거예요.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해서 그 지식을 내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막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지식도 지식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지식이 지식이 교만이 되는 지식이 있고 지식이 사람을 세우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식은 사람을 세우는 지식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자신의 권리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9장에 보면 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교회가 생활을 지원받는 그런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리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죠.
우리 고린도전서 9장 12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하므로다 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누릴 권리가 있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이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이게 이제 사랑이지 않습니까 내게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지식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그 사람을 세울 수 있을 것이냐 세우지 못할 것이냐 이것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그 판단을 가지고 내 지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된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사랑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내가 할 수 있어도 때로는 상대방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것 이게 이제 8장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도 여러 가지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모범적인 삶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치에서 바로 이 보금을 설명하고 보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예수님도 자신을 높이는 길이 아니라 우리는 살리는 길로 자신이 낮아진 자리로 내려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 3절은 이 사랑의 방향이 더 깊이 보여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죠.
3절 보겠습니다.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지식을 가지지 못한 그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세우는 사랑의 군어는 사실은 그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랑해야 될
그 사람의 대상을 또 아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을 배려하고 혹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런 근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내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말씀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제 믿음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경이라서 모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의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이때 우리가 성숙한 성도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땅히 내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그 사람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실수했을 때 저 사람이 왜 저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도와주면 저 사람이 다시 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먼저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식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다음에 마땅히 알아야 되는 것은 성도가 바른 지식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된다는 거죠.
우리 4절부터 6절에 있는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에서 6절 먼저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4절 말씀 시작 바울사도는 아까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러면 지식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느냐 오히려 바울사도는 바른 우상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교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가운데 오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을 안다라는 겁니다.
당시 수많은 고린도교의 사람들이 믿었던 그런 우상들 또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던 신전들 사람들은 여러 신을 섬겼고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사에 사용된 음식 가운데 일부는 시장에 유통되기도 했다는 거죠.
그래서 성도들 사이에서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상에게 재물을 드리는 음식이라고 해도 그 음식이 특별히 다른 음식이 될 수 있는가 바울사도는 분명히 사실 말해주는 거죠.
우상 자체에는 신적인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
라는 굉장히 중요한 진리를 말씀해주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바른 사랑을 하려면 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바른 지식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서 5절부터 6절의 내용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시작!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낳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구로 말미암고 우리도 구로 말미암느니라.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강조해주고 있는데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래서 만물은 그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우리도 그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다.
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죠.
명확하게 우상 그리고 우상의 재물이 어떤 것인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왜 우리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해주 고 있는 것은 그것들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들이라는 거예요.
즉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그런 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할 수 있는 바른 지식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바울서자가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사용할까요?
그것이 7절부터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합당하게 무언가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지식을 가지고 그러면 어떤 중심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야 될 것이냐.
바울서도가 제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게 제일 마지막에 보면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13절 같이 읽겠습니다.
8장 13절 시작 그래서 바울서가 지식을 가지고 지식을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 지식이 바로 이 형제를 실족해 하느냐 실족지 않게 하느냐.
이것을 가지고 내가 지식을 사용하겠다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오늘 시간에 이 말씀 마음껏 새기고 같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지식도 깨달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우리는 그걸 가지고 우리의 삶을 세워야 될 것이고 또 더 나아가서 우리 성도들의 신앙도 세울 수 있는 그런 사랑으로 그 지식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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