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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사도들에 대한 박해(3) 20

장종규 · 행5:33-42

제작일 202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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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33-42절에서 사도들이 박해받는 상황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성공을 이끌어낸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본문사도행전 5:33-42
  • 사도행전 5장 33-42절은 사도들이 박해받는 상황을 묘사한다.
  • 가말리엘은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성공의 길임을 강조한다.
  • 믿음의 길은 힘들고 고난이 따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함을 통해 온전한 믿음과 영광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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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33-42절의 내용

  •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증거하자, 종교 지도자들은 분노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한다.
  • 바리세인 가말리엘은 공회에서 사도들을 잠시 밖으로 보내고, 자신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 가말리엘은 과거에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했으나 실패한 두 사람(두다와 갈릴레이 유다)을 예로 들어, 사람의 뜻을 따르면 실패한다고 말한다.
  •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경우는 성공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의 차이

  •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성공과 영광을 얻는 길이며,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것은 실패와 불행으로 이어진다.
  •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면 말씀을 통해 분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믿음의 길과 고난

  • 그리스도를 따라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에게 칭찬과 영광을 받는 길이며, 믿음의 연단과 성숙으로 이어진다.
  • 믿음의 길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과정을 통해 온전한 믿음이 형성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존귀를 받는다.
  •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믿음이 자라지 않지만,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길이다.

신앙생활의 의미

  • 고난과 힘든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함을 느끼게 하며, 신앙생활은 위기이자 복이다.
  • 좁은 길을 택하는 것이 믿음의 길이며, 이는 초대교회의 길이자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길이다.
  • 십자가의 길을 가야 비로소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전사(자막) 전문▼
성경말씀 사도행전 5장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33절에서 42절까지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33절에서 42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 33절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세 바리세인 가말레이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두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며 사람이 약 400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며 쫓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레이엘다가 일어나 백성을 꿰어 쫓게 하다가 그도 망한 즉 쫓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오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우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저희가 옳게 어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노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력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의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아멘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던 사도들이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 옥에서 이렇게 내보내주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게 되죠
종교 지도자들이 이것을 알고 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이제 공회에 세웁니다 이제 이들을 신문하고 재판해서 결국은 형벌을 주려고 하는 그런 상태로 가는 거죠 신문이 이루어지게 되고 사도들이 그 가운데서 증거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과정 속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함께 살펴보고 교원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33절 35절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할세 바리세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성경은 이 종교 지도자들이 이 사도들이 증거하는 것을 듣고 크게 노했고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즉 죽이려고 했었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의 증거하는 말을 듣고 크게 노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앞에 내용을 살펴보게 되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 종교 지도자들을 대해서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이 예수 그리토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이 말씀으로 증거했었습니다 이 사도들이 이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너희가 예수 그리토를 죽였다 이렇게 말하게 된 거죠 그 말을 듣고 이 종교 지도자들이 크게 분을 냈고 그리고 사도들을 죽이려 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 건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그리토를 죽였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예수 그리토를 죽게 된 것이 이 종교 지도자들로 인해서 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책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이 사도들의 책망을 듣고
크게 노했고 오히려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사도인자 2장에 보면 동일한 상황이 나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그런 것에서 놀래하는 놀라워하고 그리고 기이하게 여기는 그런 상황에서 이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 그리토를 죽였고 그 예수 그리토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라고 한 똑같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인자 2장에서는 그런 사도들의 이런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에 대해서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찌할까 하거늘 마음이 찔려 그들이 어찌할까 하거늘
이렇게 말했다라고 됐습니다 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책망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유대인들의 반응은 마음이 찔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라고 이제 자신들을 낮춰서 뭔가 이제 회개하려고 하는 그런 어떤 모습이었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이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일한 책망의 말씀을 들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책망의 말씀을 듣고 깊이 뉘우셔서 돌이키려고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죽이려고 했던 것까지 이렇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성경은요 이 책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3장 16절에는 성경에 대해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들이 교훈, 책망, 바르게함,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이고 이런 말씀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럼 그 가운데 있는 책망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 가운데는 책망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 책망의 말씀이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가운데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고 온전한 온전하게 되는 그런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 말을 듣고 분을 내거나 그리고 오히려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생각이나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을 더욱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 말씀대로 하는 겁니다 그 말씀대로 하지 않아서 책망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대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결국 그것이 그 책망의 말씀이 그 성도에 있어서는 정말 생명의 말씀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걸 통해서 그가 더욱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되면서 하나님에게 더욱더 은혜 받을 수 있는
결국은 그런 은혜가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책망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책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성경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저는 잘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상황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동일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또 책망도 하시는 거죠 그런 말씀을 들을 때에 그렇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믿을 때에 그 말씀이 듣는 자는 역사하게 됩니다 은혜가 되게 하는 거죠 오늘 본문에 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바로 이렇게 증거를 하게 됩니다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는 공의 자리입니다 사도들이 신문을 받는 과정입니다 이 신문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있게 될지 모르는 경우에 따라서는 그 결과에 따라서는 이 사도들이요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담대했던 거죠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한 거죠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했던 거죠 바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당시에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들의 잘못, 그런 죄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경애하는 그런 마음에서 이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이 사도들을 그 가운데서 지켜주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도들의 말을 들을 때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바리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지하는 거죠 이제 막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어떤 상황에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말리엘이 일어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가말리엘이 이렇게 사도들을 해야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주를 경애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경애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그 가운데서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이 사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바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켜주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켜주시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지 않 습니까 특별히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켜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사무엘상이죠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다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사무엘상 19장에 보게 되면 사올 왕이 다윗을 막 잡으려고 죽이려고 쫓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올이 이제 사자들을 군대겠죠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올이 보낸 이 사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셔서
그들이 예언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얘기는 뭐냐면 이 사람들이 사올 왕이 보낸 이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하게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잡으려고 보냈던 이 사올 왕의 사자들이 다윗을 잡지 못하고 예언한다는 것입니다 안 되니까 또다시 사자를 보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또다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셨고 이제 예언하는 거죠 이제 보다 못해 안 되니까 사올 왕이 직접 다윗을 잡으러 갑니다 성경은 똑같이 하나님께서 사올에게 하나님의 영을 임하게 하셔서 그로하여금 예언하게 했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요?
온종일 옷을 벗고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강건적으로 그 사올에게 역사하셔서 이 사올의 의지로 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3에서 23장에는 사올의 군대가 다윗이 있는 거처를 기습하게 됩니다 이제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이제 도망을 가는데
이제 궁지에 몰게 됩니다 포위가 되는 거죠 이제 곧 사올 왕과 그의 군대에게 잡히게 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불레색 군대가 이제 쳐들어왔다라고 하는 그런 소식을 듣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불레색 군대를 치기 위해서 사올 왕과 군대가 그곳을 떠나게 되는 철수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 3에서 23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건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려고 행하셨던 다양한 방식으로 행하셨던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심인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니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놀라운 방식으로 이들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한다면요 그럼 두려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걸 주관하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려고 한다면 아무도 해할 수가 없는 거죠 아까 말한 것처럼 사올 왕의 아무리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건적으로 역사하시게 되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 10장에서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 하나님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참새가 귀한 존재이고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하나님께서도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고 하나님을 시인하는 그런 가운데
결국 이게 사람 경의하는 삶이지 않습니까?
그런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하시고 시인하신다는 것은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걸 하나님께서 나타나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나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보이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역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6절입니다 36절 36절 가말리엘은 두 사람을 예로 듭니다 하나는 두다 하나는 갈레리유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두다가 일어나 갈레리유다가
일어나 다 일어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어났다라고 하는 건 뭡니까?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겁니다 이 두다라는 사람 그리고 이 갈레리유다라는 사람도 바로 어떤 목적이 있는 거죠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기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나 이들은 당시에 로마의 지배를 받는 그런 상황 속에서 그것을 뭔가 해결하기 위해서 극복하기 위해서 뭔가 자신의 어떤 그런 목적을 이루려고 이렇게 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둘 다 결국은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다도 그렇고 갈레리유다도 마찬가지로
결국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사람들이 쫓았고 또한 사람들을 쫓게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실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가말리엘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가말리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이 종교 지도자들이 베드로이 비롯한 사도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가운데서 한 말입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이 이 두 사람을 말했던 것은
이 두 사람이 두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가 일어나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했으나 결국은 실패한 어떤 이런 예를 들어서 사람이 스스로가 일어나서 스스로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한다면 이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두다처럼
사람의 뜻을 쫓아서 자신의 뜻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라고 지금 가말리엘이 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말리엘은 이 사도들이 만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 사도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뜻을 쫓아서 하는 거라고 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거다 그게 결국 그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행한다고 한다면
정반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죠 이 드다, 그 다음에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이 똑같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가말리엘도 그가 일어났다고 했어요 어디 나왔습니까? 34절에 보게 되면 그가 공회 중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똑같이 일어났다고 하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거죠 드다, 그 다음에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은 일어났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게 되었으나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 가말리엘이 마찬가지로 그도 일어나서 이제 공회 앞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가말리엘이 말대로 되지 않습니까?
그럼 그 차이가 뭐예요?
두 사람은 드다와 갈리 유다는 자신의 뜻을 따라서 일하는 겁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서 이렇게 행한 겁니다 하지만 가말리엘이 이렇게 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했을 때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무언가를 이룰 때에
결국은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잠언 19장 21절을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이 둘의 차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행운을 받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실패하게 될 것이다 라는 거고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거라 한다면 반드시 그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관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 있어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뜻은 이루어집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에 맞으니까요.
하나님께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시고 그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거라고 한다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일을 이룰 때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보셔야 돼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뭔가를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이 말씀이 맞으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고 맞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되는 거죠.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이렇게 먼저 살핀 다음에 그 다음에 일을 진행하시고 일을 진행되는 그런 과정 속에서도 처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을 했지만 중간에 또 그렇게 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시작을 했으나 중간에 내 생각이 개입이 돼서 이렇게 치우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면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일을 추진하는 그런 과정에 있어서도 일이 진행되는 그런 과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살피고 돌아보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도록 기도하고 구하는 그런 모습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수고해도 아무리 내가 그것을 이루려고 한다 하더라도 결코 이루지 못한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 생각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렇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38절입니다.
38절 38절 이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오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이 가마리엘은 이 두 사람이 예를 들어서
결국은 이들이 실패한 것이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이니까 이렇게 실패했던 것처럼 이들도 지금 이 공예 앞에 신문 받고 있는 이 사도들도 이들이 사람의 뜻에 이해한 거라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른 거라 한다면 오히려
당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38절과 38절에서는 39절은 이렇게 증거하는 거죠 이 사람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라 무너질 거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 이 사도들의 사상과 소행 즉 생각과 행하는 바가
사람으로 말미암은 거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지만 하지만 이들의 생각과 행함이 하나님에게서 말미암으면 정반대가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 사도들을 해야 하는 것 만약에 사도들을 만약에 해야 한다면 그러면 이 앞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대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가마알레일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가마알레일이 한 증거는요 사실은 성경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낳으면 반드시 망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으면 반드시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의는 그런 이야기들로 정말 가득 찹니다 상세히 보면 바벨탑 나오죠 바벨탑 대표적인 게 바로 그런 바벨탑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탑을
성을 샀습니다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만큼의 그런 탑을 샀습니다 성을 쌓는 거죠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바벨탑은 이 바벨탑은 그 모인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즉 이 바벨탑을 만들게 된 것은 이 사람들의 이 사상과 소행으로부터 시작이 된 거라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바벨탑이 처음에는 잘 시작이 됐지만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요 이렇다면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은 반드시 망하게 되고 실패한다고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아야만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요
그럼 우리는 사람을 쫓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은 다 실패한다는 겁니다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건 왜냐하면 사람 자체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데서 시작되니까 당연히 잘 될 수가 없는 거죠 성경은 사람이라고 한 존재에 대해서
거짓되고 부패되어 있고 불완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안에서 나오는 것들은 다 거짓되고 부패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리고 그러니까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어야만 완전하고 참되고 그리고 영원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요 사람을 따라가지 않도록 하셔야 됩니다 어떻게 하는지 사람을 따라가는 겁니까?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사상 이런 겁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됩니다 내 자신도 포함됩니다 사실은 우리는 하루 동안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우리 안에 나로부터 엄청난 양의 생각과 그리고 감정과 마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걸 따라가게 되면 결국은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요 어떻게 말씀하시냐면 두 가지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위로부터 온 지혜가 있고 하나는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위로부터 왔다는 건 하나님께로 왔다는 겁니다
지혜라고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죠 마음, 감정, 뜻, 생각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위로부터 하나님께로 오는 그런 지혜가 있는데 이런 거는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위로부터 오지 않은 지혜는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따라가게 되면 결국은 여기처럼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럼 점점 어떻게 변합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는 사망을 낳는지냐 라는 말씀처럼 위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은 그것이 탐욕이 되게 되고 그러면 죄가 되고 그러면 계속 그 안에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서 나중에는 거기에 이제 가령 눈덩이 같은 것에 이렇게 깔려 죽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요 사람을 쫓지 않도록 하셔야 됩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쫓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쫓아야 됩니다 어떻게요?
내 생각을, 내 마음을, 내 감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이에요 하나님 말씀 그래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나 마음이나 감정들 이런 걸 따라가지 마시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볼 때 이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인가를 분별하셔야 됩니다 반드시 분별하셔야 돼요 하나님 말씀이 맞으면 하나님께로 온 것이고
그리고 그걸 따라가면 됩니다 그런데 말씀에 맞지 않아요 내가 나에게 지금 일어난 생각이나 마음이나 감정들이 말씀과 맞지 않습니다 그럼 따라가면 안 돼요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불행해지게 됩니다 사람에게서 나는 건 다 따라가시면 안 되는 거죠 예수님 마감은 7장 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게 경배하는 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계명 하나님의 계명이 있고 사람의 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따라야죠 그런데 사람의 계명이 있습니다 사람이 맞는 계명이라는 겁니다 그럼 따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결국 오늘날 많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사람의 계명을 따라가다 보니까 결국은 다 이런 불행의 길로 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가말리엘이 했던 그런 증거들을 통해서 볼 때 다시 한 번 사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들은 결국은 다 이렇게 불행하게 되고 무너지게 되고 망하게 되는 거라고 한다면
그러면 결국 그것을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될 것이고 이거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이 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요 아 이렇게 하는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이게 하나님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사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간다는 거죠 그렇게 해야 결국은 망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40절입니다 40절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노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력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의 앞을 떠나니라 이 가마하레를 이렇게 증거했을 때 남은 종교 지도자들이
어쩌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사도들 불립니다 부릅니다 그리고는 그들 채찍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한 다음에 놓아줍니다 성경은 이때 사도들이 공의 앞을 떠나면서 기뻐했다라고 했습니다 왜 기뻐했을까요?
아 이제 우리 척방됐다 이제 우리 여기서 더 이상 신문 받지 않고 이제 우리가 자유가 됐으니까 그러니까 기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사도들이 기뻐했던 이유가 그 이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력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팔아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사도들이 기뻐한 건 뭐냐면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런 능력을 받아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것과 굉장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들이 기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받고 그리고 핍박받고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사 베드로 전사 4장을 보겠습니다
베드로 전사 4장입니다 베드로 전사 4장 12절 베드로 전사 4장 12절 베드로 전사 4장 12절 13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베드로 전사 4장 12절 성경은요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받을 때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받게 되면
그러면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결국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혹은 하나님의 때 그런 걸 말하는 거겠죠 그때의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리하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받게 되면 그 고난을 통해서 더욱 영광을 받게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그리스도로 인해서 고난받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그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을 받을 때 즐거워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그런 고난의 상황에서 그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2장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장 20절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 21절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서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져서 고난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선을 행해서 고난받는 이런 모습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걸 위해서 우리가 성도들이 부르심을 입었다고 말씀하세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본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살아가셨던 그 모습은요 결국은 이런 삶이었다는 겁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보면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에게는 굉장히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잘못한 게 없었잖아요 죄를 범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한 그런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런 삶을 사셨거든요 그런데 많은 고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선을 행하게 될 때 고난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때 고난이 있습니다 선을 행한다는 게 뭐예요?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까요?
자세하게 해보세요 우리 하나님 말씀을 따를 때 고난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는 건 결국 믿음대로 하는 거거든요 우리 앞에는 내가 믿음으로 할 수도 있고 믿음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되면요
그 말씀을 따라 그대로 행하려다 보면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 믿음대로 하려다 보면요 그런 어려움들이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쉬운 걸 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길은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좁은 길을 가라고 말씀하세요 좁은 길로 가라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라는 겁니다 왜?
우리가 믿음으로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안 가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하나 말씀대로 행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내 삶 속에서 정말 하나하나 말씀대로 하나하나 그 말씀대로 하려다 보면요 당장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립니다
힘들어요 그런데 그런 선을 행하게 될 때 비록 고난이 있지만 그런 고난을 받게 되면 베드로 전세 1장입니다 베드로 전세 1장 7절 베드로 전세 1장 7절입니다 1장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나실 때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의 칭찬 예수님께 예수님을 통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이유는요 믿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 보시기에 귀한 믿음인 거예요 예수님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그런 믿음 때문에 그 믿음을 통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게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이거는 이 시련이라고 하는 걸 통해서 이런 주님께서 원하는 이런 믿음이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요 우리가 믿음대로 하면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힘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 믿음이 실현된다는 겁니다 연단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힘들지만 내가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할 때 그 믿음의 선택을 했을 때 그 길로 가려고 하면 힘들어요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믿음이 연단이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더 온전한 믿음으로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게 되면 어떻습니까?
편합니다 편합니다 쉬워요 하지만 믿음의 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보세요 오늘날 세상은 이 믿음과는 반대로 갑니다 오늘 세상은요 많은 사람들이 편한 것 편한 것 쉬운 걸 추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편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은 그 과정에 있는 어려움
이거를 힘든 걸 이거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 힘들고 어려운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어야 되는 게 있습니다 우리 믿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의 온전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이 과정이 생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AI라고 하는 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따르되지 않습니까?
이 AI를 통해서 너무나 쉽게 너무나 빠르게 뭔가 결과물이 나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거를 이제 따르는 겁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뭔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하는 그런 어떤 그 기다림의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게 그냥 생략이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 1장 3자리에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겁니다 인내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해야 죽음은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믿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온전한 믿음이 되려면요 반드시 인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 인내가 언제 생깁니까?
힘든 과정을 통해서 거친 거예요 힘든 과정을 통해서 내가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하면 그 믿음대로 하려고 하면 힘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든 그 길을 가게 될 때 힘든 속에서 인내가 생깁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우리 믿음이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믿음이 강해지고 믿음이 온전해지고 믿음이 굳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고난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의 길이 있을 때 그러한 고난의 과정이 있을 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칭찬과 연구가 좋은 길을 얻게 되니까요
결론적으로 우리 성도들은요 쉽고 편안한 길을 가려고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 일부러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려는 생각과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바로 바로 좁은 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믿음의 길이라는 거예요 내가 가보기 전에는
이 길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길을 가면 내가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아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편한 길을 가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 길로 들어서야 됩니다 그 길로 가야 돼요 사도들이 왜 그런 것에 기뻐하게 됩니까
그런 힘들고 고난과 때로는 핍박의 그런 길을 가는 속에서 이 사도들이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낀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힘들고 어려운 길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길을 내가 자원해서 일부러 간다고 생각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위기 되고 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십니다 좁은 길을 가도록 좁은 길을 가려고 힘쓰라고 말 쓰십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믿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들이
초대교회에 갔던 그 길이고 오늘 우리가 가야 된 그런 길입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간 이후에 비로소 부활의 영광이 다른 것입니다 찬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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