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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님의 공평하신 심판 20

장종규 · 롬2:12-16

제작일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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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12-16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심판하시며, 율법을 행하는 것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한다.

본문로마서 2:12-16
  • 로마서 2:12-16은 모든 이방인과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 이방인은 율법 없이도 본성으로 율법을 행할 수 있으며, 그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다.
  •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죄로 인해 망하고,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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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 로마서 2:12-16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방인과 유대인)에게 공평하게 심판하신다는 내용을 다룬다.
  •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라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면, 그 스스로 율법이 된다고 말씀한다.
  •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
  •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의롭게 되는 방법

  • 의롭게 되는 방법은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행하는 데 있다.
  •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은 자로서 자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행하지 않았다.
  • 믿음은 듣는 데서 시작되지만, 행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 되며, 의롭게 되지 못한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의 핵심이며, 이는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의 본성과 양심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 양심은 하나님의 율법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재적 능력이다.
  • 양심은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거나 변명하며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
  • 이방인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과 구원

  •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서 심판자로 오셨으며, 부활을 통해 심판자의 자격을 증명하셨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며 모든 것을 드러낸다.
  •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의롭게 여겨질 수 있다.
  •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보호와 구원의 상징이다.
  •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신앙생활과 기도

  • 주님의 은혜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감사함을 표현
  •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
  •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머무르기를 소원
  • 밤늦게까지 찬양을 계속할 것임을 표현
  • "아멘"으로 기도를 마무리
전사(자막) 전문▼
성경의 말씀 로마서 2장 12절에서 16절까지 보겠습니다.
로마서 2장 12절에서 16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2장 12절에서 16절 말씀입니다.
12절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오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토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그날이라 아멘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토의 복음을 증거하기 전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이방인들의 죄에 대해서 증거했고요 그리고 유대인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이 사람들 이들 역시도 똑같이 죄를 범했었다라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결국은 모두가 죄를 졌다라는 거죠 범죄를 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해서 모두가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똑같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그런 공평하시 심판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데요
함께 살펴보고 교언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2절 말씀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유형의 범죄자가 나옵니다 율법이 없이 범죄한 자가 있고요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입니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바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런 율법을 법을 받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 없이 범죄한 즉 이방인 중에서 범죄한 자가 있고요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라는 것은 바로 유대인들을 가리키죠
하나님의 법이 있는 가운데서 범죄한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12절 말씀에 보면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 있고 범죄한 자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율법이 없든 율법이 있든
그 가운데서 범죄한 자들은 다 이와 같이 멸망을 당하거나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라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범죄한 자들에게는 소망이 없다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무슨 말일까요 지금 당장에 내가 힘들고 그리고 아무리 없이 산다 하더라도 나중에 내가 잘 살 수 있다라는 그런 소망이 있으면 그러면 힘이 나죠 그러나 반대로 지금은 잘 사는데
근데 나중에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힘이 쭉 빠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범죄자들은 이런 희망이나 소망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범죄한 자들의 결국은 이렇기 때문이라는 거죠 범죄한 자들의 마지막은 결국은 이렇게 멸망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에서도 그런 죄를 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범죄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이렇게 뭔가 죄를 졌지만 하지만 뭔가 붙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온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뭐 뭐 좋은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혹은 좋은 집을 산다 하더라도 항상 이 꼬리뼈가 따라다닐 거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죄로 인해서 언젠가 이런 그 죄로 인해서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 어떤 이렇게 될 거라고 하는 걸 생각하게 되면
그러면 그에게 맛있는 음식도 그리고 그가 거하고 있는 좋은 집이라고 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을 거다라는 거죠 그리고 항상 그런 불안한 마음에 언제 어디서 이렇게 잡혀서 그 죄로 인해서 어떤 이런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일지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사망 가운데 살아간다고 한다면
항상 불안해할 수밖에 없을 거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사실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과 불행을 결정지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바로 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그 범죄한 자들에 대해서 죄로 인해서 벌을 결국은 이와 같이 이런 결과를 당하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게 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들은 율법으로 알미암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똑같이 범죄한 자들에게는 그 마지막은 이제 이런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벌이라는 것은 영원한 형벌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인생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추구해야 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죄를 지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에 대한 그 결과가 사실 그 가장 불행한 그런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존귀한 그런 삶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사실 다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잠깐 그리고 잠깐만 필요한 일시적으로 뭔가 만족해하는 그런 것이고요 근본적인 문제는
이건 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거는 이 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영원토록 영원토록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게 바로 죄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
바로 죄의 문제라는 것 그래서 바울사도가 바로 복음을 증거하기 전에 바로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여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의 의롭다심을 얻으니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한다면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고 한다면 결국은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힘 써야 되는 부분들이 바로 의롭게 살아가는 것 이것을 위해서 힘을 써야 된다라는
성경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법 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이라는 게 뭘까요? 성경에는 율법이라는 말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행하라고 주신 법이고 이건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율법을 통해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들어서가 아니라 그 율법을 행할 때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율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의롭게 하고 선하게 하는 건 사실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행할 때에 비로소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율법을 받은 사람들이 결국은 유대인들 구약의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까?
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이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받은 것에 대해서 굉장히 그런 자부심을 느꼈 습니다.
사실 그건 맞는 거죠.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으로 택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
그런 면에서 이 유대인들은 사실은 굉장히 큰 그런 복을 받은 자들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율법을 통해서 의롭고 선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율법을 주신 건데 이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그와 같이 해서 율법을 행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율법을 단지 듣는 것에 그쳤다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듣는 것에 그냥 그쳤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더 범위를 넓혀가게 되면 하나님 말씀이 다 율법이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 성도들도 그 율법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율법을 우리가 들으면 율법을 들음으로 우리가 선해지고 거룩해지고 율법을 들음으로 우리가 선해지고 거룩해지고 의롭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착각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를 듣기만 하면 자신을 속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도를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가서 보고 그 모양이 어떤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게 되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면 곧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린 것과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거룩하시고 선한 그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는 왠지 내가 거룩해지고 선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근데 그냥 듣기만 하면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말씀을 들을 때는 그랬지만
이제 곧 그 말씀을 듣는 것을 그치게 되면 그러면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계속 반복된다고 한다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내가 들으니까 그러니까 마치 자신이 선해지고 그리고 의롭게 되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야구부서 그 다음에 나온 이 장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성경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겁니다.
들음은 그리즈의 말씀으로 말미암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은 듣는 데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반드시 그 들은 말씀을 내가 행하게 될 때 그 믿음이 온전해진다는 거예요.
야구부의 2장의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든 그 말씀을 통해서 의롭게 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반드시 행함이라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말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의롭게 하거나 거룩하게는 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요.
우리 오늘날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러면 의롭게 되지도 않는데 마치 자신이 의롭게 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제 신앙생활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처럼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건 그 율법을 행함으로 인한 것이다 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게 될 때 그 행함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 물론 우리 신앙생활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실 이런 예배도 말씀을 듣는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만 그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듣기만 하고 이제 가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돼요?
이 문을 나서는 순간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생긴 얼굴을 보다가 거울을 안 보게 되면 바로 잊어버린 것과 똑같이 그래서 성경은요 우리의 예배라고 하는 것이 단지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이걸 영적 예배라고 말씀합니다.
로바스 12장 1절 말씀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들을 영적 예배니라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들은 바 말씀을 가지고 내 삶 속에서 실천하고 순종하는 것 이것도 예배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했을 때 우리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말씀을 행하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10장 12절 13절 말씀 보게 되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오늘날 내 행복을 위하여 내가 내게 명하는 명령과 귀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될 때 비로소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의로워지는 이것이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드시 행하는 데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말씀이 나에게 정말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그리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은 자를 가르켜 예수님은 반석의 집을 지은 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규유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게 되면 반석의 집을 지은 사람과 같이 되는 겁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창서 불 때도 무너짐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머리 위에 집을 짓게 되면 비가 오고 바람이 오고 창수가 물게 되면 금방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구약시 유대인들만 해당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오늘 신약시 우리 성도들에게도 동일 하게 말씀이 적용된다라고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삶을 사게 될 때 비로소 이 구원도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말씀을 듣고 행할 때. 마태복음 7 장 21절 말씀처럼.
나더러 주여주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오.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하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그런 믿음으로 그게 참된 믿음인 거죠.
그런 믿음의 과정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4절 말씀.
14절 15절입니다. 14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이라.
율법 없는 이방인.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여기 14절 말씀하게 되면 그 율법 없는 이방인들도 율법의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데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이방인이 본성으로요. 본성으로.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 백선을처럼 정식으로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기록된 이 법을 그들이 받지는 않았으나 하지만 그들은 본성을 통해서 이 율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없지만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본성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런 피조물이죠.
성경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이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부분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그 마음이 있는 거죠.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다 보니까 그 하나님의 율법,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결국 하나님의 법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야 되는 것, 이렇게 해야 맞는다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이고 법이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한다는 거예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성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런 것을 알 수 있 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본성을 통해서 알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요.
배우지 않아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배우지 않은데 하더라도 이게 죄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고 죄를 범하면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라도 다 이렇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어릴 때 다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거예요, 그렇죠?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네 살 때인가 다섯 살 되기 전인 것 같아요.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모태신앙인가 어릴 때 어떤 교회를 나왔겠죠.
그런데 네 다섯 살 짜리가 교회에서 배우면 얼마나 배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제가 경험했었던 일이 굉장히 두려웠던 기억으로 남는 거죠.
무슨 말이냐면 제가 혼자서 돌 던지기를 하고 놀았습니다.
아마 제가 네 살, 네 다섯 살 때였던 것 같아요.
이쪽에서 이쪽으로 돌을 던지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도로였으면 도로.
이제 차들이 많이, 그 당시는 차들이 많이 안 다니니까 그렇게 했겠죠.
도를 던졌는데, 그런데 어느, 딱 도를 던졌는데 뜻밖의 차가 지나갔어요.
그 차가 돌을 맞은 겁니다.
그런데 그 차가 경찰차였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놀라가지고요.
막 제가 도망갔던, 집으로 막 도망가서 제가 너무 무서워가지고 집에 가서 혼자서 숨어버렸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제가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가 그런 경험을 해서 제가 놀랐을까요?
동윤이가 지금 몇 살이죠?
다섯 살.
제보다 어릴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한 거 보면 그런 것이 제 기억에 아주 분명하게 남아있는 걸 보게 되면 그 본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인간에게 누구나 그런 본성이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을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 바로 양심이라는 겁니다.
양심.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지 않습니까?
그 양심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면 양심이 증거가 된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한다는 겁니다.
송사한다는 것은 고소하는 겁니다.
가령 자신이 뭔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안에 어떤 생각이 나는데 그 생각이 자기를 고소하는 겁니다.
송사하는 게 고소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혹은 변명한다는 것은 그걸 또한 변호한다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 가운데 이런 것이 서로 이렇게 교차한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그 마음에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양심이 있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양심, 하나님 형상을 따라서 만들다 보니까 사람에게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본능적으로 아는 그와 같은 그런 본능, 양심이 있는 건데 이것이 바로 율법의 기능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어떤 양심이라고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게 하나님의 그런 율법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희미하게나마 분명히는 알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방인들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학생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양심이라고 하는 것 이걸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신 거라고 한다면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도 이 양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양심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도 따라가야 되는 건 당연히 맞는 거지만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본성적으로 주신 양심이라고 하는 걸 통해서도 양심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더욱더 온전하게 하나님의 그런 뜻을 따라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요.
내가 범사의 하나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증거합니다.
양심을 따라 범사의 하나님을 범사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를 힘썼다라고
라고 바울이 증거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 성도들도 양심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됩니다.
양심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그냥 양심이 그런 기능이 있어요.
디모델 1장 5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거든.
경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건 이건 우리로 하여간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경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그 목적이 뭐라는 것입니까?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는 사랑이거든.
즉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신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선한 양심을 갖는 거라는 겁니다.
선한 양심.
선한 양심을 갖는다라는 건 뭐예요?
우리 양심을 따라서 살아가게 될 때에 비로소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양심을 따라 우리가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선한 양심이 되기가 어렵다라는 것입니다.
당연하겠죠.
내가 양심을 따라서 내가 양심을 따라서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게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따라서는 양심을 따라서 따라서 힘을 쓰면 힘을 쓰면 양심을 따라서 민감해 주시기 바라요.
양심을 따라서 양심을 따라서 양심을 따라서 양심이 무너지기 바라요.
성경에는 양심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양심이 확인되는 것은 양심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랄 때요?
디도서 2장 15절에 보면 디도서 2장 16절에 말씀하게 되면 하나님을 입으로는 시인하나 행위로는 복종하지 않은 자가 나옵니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복종하지 않은 자가 나옵니다.
이런 자가 양심이 덜어진다고 디도서 2장 15절에 나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이렇게 힘 쓸 때에 선한 양심을 갖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죄에 대해서 예민하게 죄를 멀리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힘써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양심이 나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더러워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그런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양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도 우리가 더욱더 힘을 써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입니다. 16절 말씀.
16절 말씀.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란 성경은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없는 자와 율법이 있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구장 27절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바여 이외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할 때 어떻게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 12장 14절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시게 될 때가 분명히 있는데요.
그런데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는 우리 성도를 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그렇죠?
이 하나님 심판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심판을 누가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야마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는 거죠. 왜?
죄가 없으니까. 그렇죠?
죄가 없는 사람이 반드시 심판자가 되어야지.
죄가 있는 사람이 심판할 수 있지는 않잖아요.
예수님께서 죄가 없기 때문에,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죄를 심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부활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입니다.
사도인 17장 3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한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토께서 이제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심판자라고 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성경을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나중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심판하는 데 있어서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을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
히브리서 4장 12절.
히브리서 4장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건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은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 쪼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 쪼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모든 마음, 생각, 뜻을 다 쪼개서 그 선악에 대해서 이 말씀이 그걸 드러내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하나님께서 모든 은미나 것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모든 것을 다 이렇게 드러내니까요.
그 마음에 깊은 것까지 하나님이 다 드러내시니까.
그러니까 13절 말씀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심판을 받을 때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되는데 마치 그냥 다 벌거벗은 것 같이 다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는 심판 때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돼서 감춰있던 것들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이제 하나님의 그런 심판에서 모든 은밀한 것을 심판한 그 심판에서 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는 그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을 통해서는 이렇게 의롭다 여김을 받을 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이제 우리 스스로를 통해서는 의롭게 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여서 많이 이런 심판을 심판 앞에 설 수 있다라는 그런 의미가 되는 겁니다.
14절입니다.
14절 예수님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라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 돼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을 가르쳐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제사장 대제사장은 구약시대 직분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그런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죄가 있지만 이 대제사장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다 이제 하나 앞에 용서를 받게 돼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이 이렇게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그 역할이 바로 대제사장의 역할이었는데 성경은 바로 예수님께서 밖으로 그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대제사장 대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니까.
그래서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으로 우리가 옷을 입을 때 그 예수님의 그런 거룩함과 의로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구원을 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립도 안에 있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이런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도피성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구약열법에 오게 되면 도피성이라고 하는 그런 제도가 있습니다.
도피성은 말 그대로 도피하는 성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피하는 겁니까?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 도피하게 해준 성입니까?
사람을 죽였어요.
그런데 일부러 죽인 게 아닙니다.
고의로 죽인 게 아니에요.
실수로 혹은 무지간에 무지간에 부지간에 원래 율법대로 한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죽여야 됩니다.
반드시 죽여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고의로 일부러 죽인 게 아니라 자신의 어떤 실수나 어떤 이런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이런 살인 그런 살인했던 그런 사람들이 이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해서 이제 피하게 했던 게 도피성이라는 것입니다.
도피성입니다.
그래서 그 도피성 안에 들어가면 이제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도피성에 들어간 사람이 대제사장에 죽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 안에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세요.
만약에 그 사람이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럼 이 사람은 죽임을 당하는 거예요.
도피성 안에 대제상이 거기에 살아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 안에 있다면 이 사람은 그 도피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겁니다.
이건 결국은 우리가 예수 그리토 안에 거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그런 국률하심을 입는 그런 원리를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성경은 이후에 예수 그리토를 통해서 특별히 예수 그리토를 통해서 국률을 받아서 하나님께 우리가 이제 의롭게 여김을 의로운 자가 되고 그로 인해서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 그런 방법 여러 가지 어떤 상황들과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국률을 받는 겁니다.
어떻게 해요?
예수 그리토 안에 있는 겁니다.
사실 이 보금이라고 하는 보금의 보금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보금의 본질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국률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은 나중에 이제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아무튼 이런 어떤 하나님의 국률 그리고 예수님의 이런 은혜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라고 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죄에 대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않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은혜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 국률을 받는 이 부분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예수님의 은혜가 큰 것인가를 알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바울사도는 앞부분에서 철저하게 아주 세밀하게 이 죄에 대해서 낱낱이 이렇게 고발하고 그리고 그걸 지적하게 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16절 말씀 보고 마치겠습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극률화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조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 되는 항상 힘써야 되는 그런 일입니다.
극률화심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찬송하겠습니다.
405장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어넣는 큰 악의 성원 지신 주 내 고마워 나 처음 믿는 그 시간 귀하 귀하 귀하 귀하 귀하 귀하 귀하 다 이제 꼭 내가 산 그리 주님의 은혜 그리 주님의 은혜 은혜 또 또 나를 찾고 향해
인도 해 주시 인도 인도 해 주시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 서럼밤 깨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 아 아 아 아 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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