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교회01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이요셉 · 요3:1-8
제작일 202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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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본문: 요 3:1-8 찬양: 218, 485
AI 설교 정리
니고데모가 예수와의 대화를 통해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본문요한복음 3:1요한복음 3:2요한복음 3:3요한복음 3:4요한복음 3:5요한복음 3:6요한복음 3:7요한복음 3:8
- 니고데모는 예수를 찾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 예수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 니고데모는 이후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며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결국 빛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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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
- 니고데모는 바리세인으로 유대인의 관원이며,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이다.
-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를 찾아오며,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인정한다.
- 예수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 니고데모는 "어떻게 두 번째로 태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바람처럼 예측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이라고 설명한다.
니고데모의 상황과 변화
- 니고데모는 밤에 찾아온 이유는 예수와의 만남이 위험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 이 '밤'은 니고데모의 영적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를 의미한다.
-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온전히 믿지 못한 상태로 등장한다.
- 이후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며 영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신앙에 대한 메시지
- 믿음은 단순한 지식의 수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와 충성에 기반한 것임을 강조한다.
- 니고데모의 모습은 겸손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신앙의 중요한 기초임을 보여준다.
-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은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 이해가 안 되면 물어야 하며, 기도해야 한다.
- 예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모두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1.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8절까지 8절 말씀을 한 절씩 저와 여러분이 교독하겠습니다 1절 바리새인 중에 니고 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내가 내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 여기지 말라 바람이 이미로 불매 내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아멘 네 한 주간 수고하시고 또 하나님의 전을 찾으신 우리 모든 성도인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도 함께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또 하나님께 경배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니고 데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먼저 이 니고 데모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절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절만 읽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 시작 바리세인 중에 니고 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자 여기서 보면 이 니고 데모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몇 가지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바리세인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세인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이 바리세라고 하는 이 말은 불리하다 이런 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여러분 최근에는 이슬람 소식이 뉴스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뉴스에서 이슬람 불리주의자 이런 표현을 보셨습니까? 불리주의자 테러가 일어나면 그 테러의 소행은 불리주의자들의 소행이 경우가 많았죠 그죠? 불리하다 이 말은 굉장히 강하다는 것입니다 구별한다라는 거예요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도 이런 강경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바리세인입니다 이들은 율법학자이면서 학문만 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굉장히 엄격하게 지키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니고데모는 바리세인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죠 이어서 이 니고데모에 대해서 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유대인의 관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라는 표현은 산헤드린 공의회의 멤버라는 뜻인데요 이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는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 더하기 대법원 더하기 중앙정부 이 세 가지를 다 합�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위상과 권력이 아주 막강하죠 여러분 이 공회의 멤버가 몇 명인지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70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거기에 대제사장 한 명이 더해져서 총 71명이죠 왜냐하면 민수기 1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백성의 장로와 유사되는 줄 내가 아는 자 70인을 모아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모세를 도울 만한 사람들을 이렇게 세우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니고데모는 그 공회의 멤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보자면 만나기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만큼 높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기에 더해서 그 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 니고데모를 뭐라고 부르실까요? 요한복음 3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선생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어감이 좀 느껴지십니까? 원문이나 영어로 보면 너는 이스라엘의 그 선생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안에 있는 여러 선생 중에 하나 그런 것이 아니라 네가 바로 그 선생이다 이렇게 지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제가 이 표현을 생각했을 때 여러분 생각에 대한민국의 스승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세종대왕이요 대한민국의 스승 우리가 이견 없이 이 사람은 우리 대한민국의 스승이다 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이재훈 형제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 것 같아서 어차피 말할 것 아니냐 허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이네요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생각이 잘 안 나더라고요 그렇죠?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뽑으라면 김구 선생님 정도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김구 선생님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쉽지 않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그 선생이라고 불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니고데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렇게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언제 찾아왔습니까? 3장 2절을 보면 그가 밤에 예수께 왔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니고데모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예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죠 그렇죠?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은 학벌도 없고 그리고 아직 젊습니다 30대이죠 그리고 성전을 뒤엎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를 만나는 것 그것도 무언가를 묻기 위해서 만나는 것은 여러모로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해받기 쉽고 굉장히 무거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굳이 여기서 밤이라고 하는 사실을 이렇게 밝히고 있는 이유가 더 있을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사실 이 요한복음 안에서 이 밤은 그냥 해가 떨어진 이 밤 저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네 니고데모의 상태가 지금 밤이라는 거예요 깜깜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전 맥락을 한번 보실까요? 우리가 요한복음을 천천히 읽어보면 이런 맥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1절을 보시면 우리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2장 11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심에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어서 6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이렇게 뒤엎어 놓으셨죠? 그죠? 그리고 나서 19절을 보면 19절부터 21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19절에서 21절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대 이 성전을 46년 동안에 지어졌거늘 내가 3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이후에 성전을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 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이 말을 믿었을까요? 이 말을 알아듣고 믿었을까요? 우리가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죠? 왜냐하면 22절에서 바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2절 보겠습니다. 22절 시작.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 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언제 믿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믿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제자들의 믿음의 상태가 이렇다는 거예요.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다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믿지는 않았어요. 여러분 이걸 믿는다고 해야 될까요? 아니라고 해야 될까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신 말씀을 다 믿지는 않아요. 이걸 믿는다고 해야 될까요? 안 믿는다고 해야 될까요? 여러분들도 어려우신 모양이네요. 저도 생각해 보니까 어렵더라고요. 이걸 믿는다고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그래서 23절부터 25절을 보시면 믿는다는 표현이 계속 등장하는데 22절에도 나오고 23절에도 나오고 24 절에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의탁하다. 사실 이 말도 원문으로 보면 믿다입니다. 믿다. 그래서 일관되게 번역을 한번 해보면 이런 내용이에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었지만 그의 말씀은 부활하신 후에나 믿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들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을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참고로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믿는다라고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도 우리를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걸 믿는다고 표현을 안 하죠. 뭐라고 표현할까요? 충성되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믿을 때 충성되다. 믿을만하다. 그래서 어떤 일을 맡기다. 이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는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믿으시도록 우리가 거기까지 나가야 되겠죠? 여러분 지금 제자들의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보고 우리를 한번 돌이켜 보십시다. 우리 성도인들께 하나님이 계시냐 물어보신다면 틀림없이 믿으신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죠?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믿으실 것입니다. 만약에 그걸 믿지 않는다면 이렇게 피곤한 시간에 하나님 전에 나올 리가 없죠. 그렇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말씀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걸 믿는다고 해야 될까요? 안 믿는다고 해야 될까요? 그렇죠? 이것이 우리가 이렇게 나아가야 될 방향입니다. 오늘 이런 맥락에서 3장 1절의 말씀이 시작합니다. 원문을 보면 3장 1절에 우리 한글 성경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문을 보면 그런데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별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예수님을 믿었지만 온전히 믿지 못한 그 말씀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 이름이 무엇일까요? 니고데모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상태를 밤이라고 묘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에는 잘 안 보이죠? 그렇죠? 깜깜해서 잘 안 보이지 않습니까? 분명하지 않잖아요? 신앙적으로 그런 상태다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니고데모가 뭐라고 말을 하는지 한번 우리 봅시다. 요한복음 3장 2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대 라비어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다. 여러분 니고데모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니고데모가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나는 압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나는 당신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님인 줄 나는 압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안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정말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해봐야 되겠죠?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이후에 니고데모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데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습니까? 자기가 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알아듣습니까? 자, 그 이후의 내용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이제 안다고 하니까 말하죠.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거듭나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이 말을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죠.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는 게 가능합니까? 지금 알아들은 사람이에요? 못 알아들은 사람이에요? 여러분이 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못 알아듣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말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뭐라고 합니까? 구절 보겠습니다. 구절 보면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대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 말은 믿는다는 거예요? 안 믿는다는 거예요? 안 믿고 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안다고 했는데 지금 알아듣지도 못하고 이해도 안 되고 믿기지도 않는 그런 상황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0절을 우리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민망한 말씀을 말씀을 하셨을까요? 자기가 안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딱 알잖아요. 모르는데 안다고 그러니까 물어보고 말해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지 못하느냐? 너 안다며?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런 니고데모의 상태가 어떤 상태라는 거예요? 깜깜한 상태가 깜깜한 상태가 깜깜깜한 상태가 깨닫고 있는가? 깨닫지 못하는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여러분. 이 한복음을 보면 이렇게 대비하는 가운데가 없는 중간이 없는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 낮과 밤, 또 우리와 너희 이렇게 이분법적인 가운데가 없이 나눠버리는 그런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들은 요한복음 안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고려하고 말씀을 읽어야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요한복음 13장 30절을 보겠습니다. 밤에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제 밤에 사라지는 사람을 하나 봐야 되겠죠? 요한복음 13장 30절 읽겠습니다. 시작!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유다가 왜 나갔습니까? 예수님이 팔러 나간 거잖아요. 그런데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밤이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이죠. 여러분, 그래서 영적으로 어두우면 계속 밤에 머물러 있으면 유다처럼 되는 것입니다. 밤에서 이 어두움에서 벗어나서 밝은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은 우리 참여수교의 성도님들에게 아주 익숙한 말씀이죠. 그래서 여기서 구체적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듭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깜깜한 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그래서 이 거듭남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정리를 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니고데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맛보기로 제가 질문을 하나 먼저 하고 일주일 뒤에 여러분의 답변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물과 영으로 거듭나야 된다 이렇게 말하지 않 습니까? 물은 뭐죠? 세례. 영은. 성령을 받는 걸 말하지요. 그죠?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면 세례만 받은 사람은 거듭난 거예요? 안 난 거예요? 세례만 받은 사람들은 반만 거듭난 겁니까? 아시면서 대답을 안 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고요. 정말 여기에 대해서 오해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거듭났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요한복음 3장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니고데모로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니고데모는 이후에 이 영적인 어두움에서 탈출한 것으로 보� �니다. 왜냐하면 우리 19장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9장. 왠지 니고데모를 생각하면 좀 정감이 가지 않습니까?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9장 39절. 니고데모가 다시 등장을 하는데요. 19장 39절 읽겠습니다. 시작. 일찍 예수께 밤에 나왔던 니고데모도 모략과 치명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 38절부터 이후의 말씀을 보시면 아리마드 요셉과 함께 예수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굉장히 위험한 일로 요한복음 안에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니고데모는 백근의 최고급 수입 향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근이면 우리 학생부 백근이면 무게가 얼마 정도 돼요? 백근이면 몇 인분이에요? 학생부. 백근이면 60kg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있는 무게 단위로 정확하게 환산해서 보면 한 33kg 정도 됩니다. 33kg. 그러니까 33kg면 향신료를 33kg를 만들려면 부피도 상당했겠죠. 그래서 이 정도의 규모는 거의 왕의 장례식의 규모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시체에다가 향을 바르는 정도. 그 정도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33kg면 그 양이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시작과 끝에 니고데모를 배치를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가 깜깜한 밤에 등장했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마지막에는 그가 예수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거죠. 아마도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누구나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하는 건 아닙니다. 그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어두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그 깜깜한 어둠에서 밝은 빛으로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가 그 니고데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신앙에 큰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 우리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 2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절 2절 읽겠습니다. 시작 바리세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대 라비어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다. 자 니고데모의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진리 앞에서 참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바리세인입니다.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에요. 그죠? 그리고 관원입니다. 아주 지위가 높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자기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고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는 거예요. 나이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여전히 배우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표준적인 모습이라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니고데모보다 부족하다면 니고데모보다 더 배우기를 원해야 되고 더 깨닫기를 원해야 되겠죠. 그죠? 그리고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이 사람이 예수님을 라비여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라비여, 라비 라비 뜻이 뭘까요? 선생님 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라비 하면 나의 선생님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이렇게 내가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라비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은 사람이 이렇게 존경받는 사람이 나는 잘 모른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젊은 사람에게 나의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있고 여전히 배우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겸손하고 또 정직하고 또 배우기를 원하는 태도 이것이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신앙적인 눈을 뜨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 없이 우리의 올바른 태도 없이 되는 일도 아닙니다. 이게 거저되는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목자님에게 목자님에게 내 머리 한번 넣을 수 있으면 넣어보세요. 그렇게 말씀 앞에 서서는 10년, 20년 지나가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학자이지 않습니까?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에요. 나이도 많습니다. 지지도 높습니다. 그런데 그가 밤에 찾아와서 배우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 못한 우리들은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 되겠냐는 거예요. 얼마나 더 겸손하게 얼마나 더 자기를 낮추고 얼마나 더 마음을 열어야 되겠느냐. 그래야 얻어지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말씀이 주어지는 거죠. 그렇죠?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입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 마태복음 11장 25절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때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제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누구에게 드러내십니까? 어린 아이들에게 드러내신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일까요? 18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 4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 4절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일까요? 지식이 없는 사람이 어린아이일까요? 우리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가라사대의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별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잔이라.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입니까?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처럼 지식이 높아도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있고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자기를 높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말씀 니고데모에게는 이것이 우리 참예수교회의 특별히 우리 강남교회의 기본 정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이것은 우리가 서로 배우고 가르쳐야 되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도의 예배 때 먼저 된 사람들이 모범을 보아야 돼요. 이건 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평가하지 않고 말씀을 귀 기울여서 듣고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모습을 모두가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다른 연약한 사람들도 말씀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는 거죠. 남편이 퇴근을 하는데요. 아내가 남편을 퇴근할 때 아내가 물을 열고 들어오면 여보 하고 이제 수고했어요 이렇게 하고 환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애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왔는지 안 왔는지 그러면 애들도 똑같이 그래요. 먼저 된 사람이 말씀 앞에서 자기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천지도 모르고 자기를 높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요. 다 보고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잘 가르칠 줄 알아요. 그것이 우리 신도의 주요한 목적이죠. 여러분 니고데모 같이 높은 사람도 이렇게 철저히 자기를 낮추는 것을 우리가 볼 때에 우리가 감동을 얻고 니 고데모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잖아요. 천국에서 봤으면 좋겠다. 그렇죠? 이런 생각을 갖지 않습니까? 우리가 니고데모 같이 낮은 그런 모습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3절 4절 우리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 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르침 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이라. 니고데모가 가로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삼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삼나이까. 예수님께서 희한한 말씀을 하시죠. 니고데모가 그냥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칭찬을 하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의 질문도 듣지 않고 바로 답변을 하십니다. 그리고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대답을 하시죠. 여러분 요한복음에서 진실로 진실로는 키워드입니다. 그 뒤에는 결정적인 말이 나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자 그래서 예수님의 이 대답을 통해서 니고데모가 묻고 싶어 했던 게 무엇일지 우리가 역으로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니고데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왔을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했죠. 이 거듭나다라고 하는 것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나다 그리고 다시 나다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위로부터 나다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정말로 육신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 이렇게 이해를 한 거죠. 그래서 4절에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 니고데모가 어떤 사람입니까? 학자입니다. 어려서부터 평생 성경을 외우고 연구한 지성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예수님의 말이 어떻게 들렸습니까? 상식에도 맞지 않은 말로 들렸다는 거예요. 그죠? 아니 어떻게 사람이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가 있어요? 우리 주영이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안 되겠죠? 제가 봐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니고데모는 엄마가 없을 수도 있잖아요. 이미 하늘나라 가셨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니고데모가 자기 생각으로 용납되지 않고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또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때로는 내가 가진 상식과 부합하지 않을 때 여러분,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가 모두 내가 다 안다, 내가 잘 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행동을 보면 자기가 기준이 되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렇게 쉽게 판단해 버릴 때가 많지 않습니까? 내 상식에 맞지 않으면 에이, 제가 말도 안 되네 하고 마음으로 판단하고 넘어가 버리고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자, 니고데모는 어떻게 했을까요? 니고데모는 여기서 대화를 끊어버리지 않습니다. 계속 물어봅니다. 만약에 니고데모가 묻지 않았다면 대화는 여기서 끝났을 거예요. 그죠? 그가 재차 묻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질문이지만 상식을 초월해서 묻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묻죠. 그죠? 그가 평생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그 말에 대해서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니고데모는 그리고 되묻지 않습니까? 대단한 분인 줄 알았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하고 가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절에서도 또 묻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지 믿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니고데모는 계속 묻고 있다는 거죠. 여러분 어쩌면 이런 모습도 겸손의 연장선에 있을 수 있겠죠. 그죠? 겸손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다시 묻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묻고 그리고 또 교회에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두움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유다는 묻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하는 물었죠. 그런데 그는 묻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의 한계 속에서 들으면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 속에서 내 기준 속에서 들으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이 강해질 뿐이지요. 여러분 그러나 저는 우리 성도인들께 이렇게 권한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참예수 교회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이 교회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를 통해서 이곳에 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뜻으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적기사로 보호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진리를 이곳에서 배우고 깨닫고 그래서 성령도 받은 것 아니겠 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저를 믿으라는 게 아니에요. 저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 대신 예수님은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자행분을 주신다 이것을 믿고 우리가 깨달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면 물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 끝에 우리가 어둠에서 빛을 향해서 한 발 한 발 나가는 거죠.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거기 멈춰서서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서죠. 우리가 그런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 안에서 어떻게 진보하는지 우리가 알아야 된다라는 거죠. 여러분 말씀이 결론 맺겠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 사람의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어둠에 있던 이 니고데모 이 한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 아래에서 어떻게 빛가운데로 나아가는지를 보면 가장 중심에는 자기를 내려놓는 게 있어요 이러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고 나 같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라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사람인데 내가 정말 모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렇게 돼야 되겠습니다 당연히 저를 비롯해서 그 모습을 우리가 지켜나갈 때 우리가 예수 안에서 진보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겠죠 예수님을 믿을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 믿는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믿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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