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교회01
이방인의 죄 20
장종규 · 롬1:18-23
제작일 202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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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청주교회
AI 설교 정리
로마서 1:18-23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죄에 빠지게 되는 이유와,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삶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본문로마서 1:18-23
- 로마서 1:18-23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죄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다룬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으나, 이방인들은 이를 거부하며 죄를 짓는다.
-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감사하고 영화롭게 살아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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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계시
- 로마서 1:18-23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함으로써 죄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다룬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진리를 막는 불의와 죄로 인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창조물에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
-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견고한 진(요새)으로 표현된다.
-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을 거부하는 죄이다.
- 성경은 이 거부를 악한 마음으로 보며, 믿지 않는 자는 결국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한다.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태도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태도이다.
-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써 죄에 빠지게 된다.
- 이방인처럼 살아가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되고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살게 된다.
지혜로운 삶의 중요성
- 하나님을 아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로워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 하나님을 알수록 더욱 지혜롭게 되고, 지혜는 판단과 분별, 문제 해결 능력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지혜에서 멀어지며 어리석어진다.
-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함과 은총을 받는 삶이다.
- 이방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네 성경말씀 로마서 1장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18절에서 23절 말씀 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18절에서 23절 말씀은 제가 읽겠습니다. 1장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 시안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원없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에 있다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벌어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아멘 바우사도는 이 로마서를 통해서 보금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보금은 그 보금에 대해서 앞 시간에 1장 17절에서 바우사도는 이 보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증거합니다. 이 보금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의롭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보금을 다시 말하면 의롭게 되는 겁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이것이 보금인데요. 바우사도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보금인데 이 보금을 받기 전에 사람들이 의롭지 못하다라는 것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죄의 가운데 있음을 증거하는데 먼저는 이방인들이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은 그런 죄 가운데 있다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이방인의 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8절, 19절 말씀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시한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나느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저에게 보이셨느니라. 성형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쫓아 나타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자들에게 나타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라고 말씀합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이렇게 나타난다. 그런 말씀인데요. 그런 말씀인데요.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겁니까? 19절 말씀 보게 되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저희에게 보이셨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이셨다는 겁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본능이란 게 뭡니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하는 것. 그것을 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각 사람마다 알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저렇게 하나님께서 계시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진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처럼 그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아 계시다라고 하는 그 사실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알고 있고 계속 그 본능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것을 이렇게 말해주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결과학교 불의 즉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의, 죄가 진리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라고 하는 이 부분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는 결국 그것이 바로 이방인들의 그런 모습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사람들의 모습인데 이것이 바로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을 안다는 겁니다. 알 수 밖에 없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알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그걸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걸 가르쳐서 죄라고 말하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성경에는요. 사람마다 견고한 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서 10장 4절 이하에 보면 견고한 진이 나옵니다. 이 견고한 진이 계속해서 이걸 막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처럼 불의가 진리를 막고 있다. 이게 이방인들의 죄 아니겠습니까? 사람마다 견고한 진이 있는데 진이라고 하는 것은 요새이지 않습니까? 요새라는 것은 막는 거예요. 방어용입니다. 그 안에 스스로를 방어하는 그 요새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막는 요새가 있다는 겁니다. 견고한 진.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 모든 생각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과 모든 이론 이런 것들이 다 견고한 진이라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한다는 겁니다. 누가 대적하는 겁니까? 스스로 대적하는 거죠. 결국 견고한 진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복음을 막는 진리를 막는 하나님을 막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견고한 진이 가로막아서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데요. 그런데 성경은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럴 때가 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 2장 14절에 보면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은 것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각 사람한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을 주셨는데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은 이제 그보다 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모든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이런 심판이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게 되는 그때가 오게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앞서도 말했지만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계속 알게 하십니다. 19절 말씀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의 보임이라 라는 이 보임이라고 하는 시제가 현재형이에요. 즉 그 말은 헬라에서 현재형은 계속이거든요.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계속 보여주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요. 그 사람들이 그걸 믿지 않는 것은 그걸 계속 거부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바로 이렇게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절 보겠습니다. 20절 말씀 20절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진이라 19절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저에게 보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알만한 것을 언제부터 이렇게 나타내 보이셨냐고 말씀하셨냐면요 창세로부터입니다 창세로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신 건 아주 아주 아주 오래전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물을 지으셨는데 그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다고 한다면 너무나 많은 오랜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하나님 만드신 만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핑계치 못할 거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보여주셨으니까 특별히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이셨다고 말씀하십니까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된다고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보여주셨다는 거예요 영원하신 능력입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이 만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은 영원하시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다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잘 살펴보면 그런 만물들을 통해서 볼 때요 그런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하늘을 보시면 하늘이 아직 높잖아요 얼마나 높습니까 끝이 없을 정도로 높잖아요 바다 어떻습니까 아주 깊지 않습니까 물론 그 밑에까지 다 가보지 못했죠 정말 끝없이 깊은 그런 바다 이런 하늘 이런 걸 통해서 결국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해 보면 그런 만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을 분명히 보여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편 19편 1절에는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말씀하세요 하늘이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것은 이 하늘 자체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알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10편 8편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만드셨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만드셨다고 말씀하세요 결국은 이런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여지는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영원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보지 못한 우리가 보지 못한 이런 우주나 이런 어떤 이런 어떤 미지의 세상 이런 것을 통해서는 더더욱 하나님의 영원의 능력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신성입니다 신성 하나님의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야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성이라고 하는 것은요 하나님의 그런 신적인 속성을 가리킵니다 속성입니다 신에 속한 속성인 거죠 10편 139편 14절 말씀이요 내가 주께 감사함은 나를 지의심이 신묘 막취감이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안 아이다 신묘 막취가다라는 것은 경이롭다는 뜻입니다 놀랍다는 겁니다 뭘 보고요 나를 지으신 나를 보고 각 사람을 보면 그러면 하나님의 이런 신묘 막취감 하나님의 어떤 그런 경이로움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이런 경이롭고 놀라운 일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 생명을 자세히 보면요 굉장히 놀랍습니다 한 생명이 출산하고 그리고 성장하는 그런 과정들을 보면요 굉장히 놀랍지 않습니까 그 뭐죠 뭐 싹이 싹이 이렇게 자라서 그리고 어떤 꽃이 되고 열매를 맺는 어떤 그런 그것을 이제 아주 아주 빠른 속도로 이렇게 찍은 어떤 영상들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말 놀랍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생명 자체가 굉장히 신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말씀하세요 이런 어떤 풀이나 그리고 어떤 이런 꽃 같은 그런 생명을 보면서도 우리가 그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한다면 사실 사람은요 사람의 그 사람이라고 하는 이 이 이 생명체는요 정말 경이롭습니다 하나하나 이렇게 보면요 정말 놀라운 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거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이걸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삶과 너희 중에 혹 믿지 않냐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떨어질까 두려워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믿지 않은 마음을 악심이라고 말합니다 악한 마음이라는 겁니다 성경은 믿지 않은 마음을 이렇게 악한 마음이라고 보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하게 이렇게 보여주셨는데 그걸 믿지 않는다 그걸 거부한다는 겁니다 이거 계속 스스로가 이걸 막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악한 것이라고 보신다는 거죠 그래서 그 다음 내용이 히브리서 3장 13절 말씀인데 하실 말씀이 뭡니까? 오직 오늘이 히브리서 3장 13절에 죄의 죄의 유혹으로 강박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죄의 유혹으로 인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죄의 유혹을 받게 되 었습니다. 믿지 않는 그 악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밀고 밀고무하라는 겁니다. 그 말씀은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믿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으로 인해서요. 죄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람으로 알고 믿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단이 하는 그런 유혹과 미혹인 거죠. 21절입니다. 21절 말씀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에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않냐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닐 때 이때 어떻게 되냐면요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다고 말씀하세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않고 감사치도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이 말씀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고 또 하나님을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아는 그런 모습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영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 하나님 어떤 분인가를 아는 거잖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만드신 만물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이 분명히 보여야 알게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그 크신 그런 하나님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영어롭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이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영어롭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영어롭게 한다는 뜻은 하나님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감사하게 하나님으로 감사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을 영어롭게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게 되면 여기 말씀처럼 그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다. 이 말씀이 이 말씀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미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요. 성경은요. 이방인들 같이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방인들 같이 험한 마음을 행하게 되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방인들처럼 행하게 되면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되면 그럼 결국은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된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인처럼 살아가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 모르는 그런 삶처럼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거라는 겁니까? 하나님을 영어롭게 하고 하나님을 감사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 말씀처럼 총명이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련하게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이 지혜롭게 되면요. 어떻게 될까요? 지혜로운 사람은요. 그 지혜를 점점 더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지혜롭게 된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더욱더 가까이 하게 되니까 그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가까이 있게 되니까 더욱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혜가 뭐예요? 지혜는 판단하고 분별하고 옳고 그런 것을 알고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런 지혜를 얻게 됩니다.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십니다. 그럼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럼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 지혜를 추구하게 됩니다. 아 정말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지혜의 말씀이구나 정말 진리의 말씀이구나 라는 것을 계속해서 알게 되고 그것을 더욱더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럼 반대가 되면 어떻습니까? 그 지혜가 점점 이제 없어지는 겁니다. 삶 속에서 점점 지혜가 없어지는 거예요.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지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되는데 오히려 그 지혜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그 말씀 와닿지 않는 거예요. 그 말씀대로 더 살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말씀과 점점 멀어지는 겁니다. 그럼 결국 지혜에서 멀어지는 거예요. 그럼 점점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사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하여금 영화롭기도 하지 않고 감사치도 않은 그런 삶을 살게 되면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세요.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을 알게 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의 백성들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지혜가 영원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지혜의 말씀이세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서 점점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럼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함과 은총을 우리가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복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방인들처럼 이렇게 살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을 영원하게 하고 하나님을 감사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지혜로운 우리 성도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간은요. 말씀해 주시고요.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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