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8일 안식일 오후예배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찬송_102, 86장
히3:1-6
제작일 2026. 8. 7.
AI 설교 정리
히브리서 3:1-6절을 바탕으로 예수의 신분과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교 요약
본문히브리서 3:1-6창세기 2:2
- 설교는 히브리서 3:1-6절을 인용하며 예수의 신분과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예수는 사도이자 대제사장이며, 모세보다 더 존귀한 존재로, 구원의 주체이다.
- 신앙인들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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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분과 중요성
- 예수는 사도이자 대제사장이며, 신앙의 중심이자 구원의 주체이다.
- 예수는 모세보다 더 존귀한 존재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주인이다.
-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했지만, 예수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했다.
- 예수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다.
- 예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자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신앙생활의 중요성
- 신앙인들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그분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이유는 신앙의 삶을 살아가며,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위해서이다.
- 세상의 변화 속에서 신앙의 삶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예수를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예수는 그들보다 더 귀한 존재이다.
안식과 하나님의 뜻
- 창세기 2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언급된다.
- 예수님께서 일을 마치고 쉬셨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 안식은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삶과 연결된다.
-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이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이다.
- 안식은 영원한 안식과 연결되며,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 순종과 믿음은 하나님 안식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언급된다.
신앙생활의 목적
-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삶은 믿음과 순종을 통해 가능하다.
-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삶이다.
- 예수님은 변치 않는 신분으로,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위수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3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 히브리서 3장 1절부터 6절까지 있는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제가 공독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에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중기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원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디고 잡으면 그의 집이다. 우리 오늘 시간에는 우리의 희불에서 3장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는 마음에 누구를 깊이 생각해 보신 분이 계신가요? 남편이 되었던 우리가 아내가 되었던 우리 자녀가 되었던 깊이 생각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관심이 있거든. 또 주위에서 살펴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이 있는지 또 아프신지 또는 뭐가 부족한지 우리는 사람을 이렇게 많이 살피게 되죠. 우리가 예수님을 살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을 깊이 살피하는 이유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내게 주신 은혜가 어디에 합당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어디에 정말 내 신앙의 삶 속에 큰 보화인지 참 우리는 어디에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이 시대를 보면 너무 어디에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저희들의 믿음의 속도는 어디에 굉장히 느리시죠? 그런 거 안 느끼세요? 사회의 변화는 빠른데 어디에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저희의 믿음 그러다 보니까 어디에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아마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본문에 있는 말씀에 시대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결코 이 당시에는 어디에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일부의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오는 어려움들 우리 신앙의 삶을 삶으로 인해서 어디에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갈등 우리 일하는 것이 어디에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 시대에는 어디에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 다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 되었다가 예수님을 사람 되었다가 예수님을 그 신앙의 삶이 삶에서 어디에 다시 유대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우리 그란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주신 말씀이지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럴까요? 우리 1절 시작하는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이죠.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거 그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는데 어디에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내가 무슨 집안에 내 존재인지 우리가 일하는 것을 인식한다면 어디에 내 삶이 깨어져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가라고 하는 것을 알 때 그런데 우리 고문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나는 누구라고요? 하늘에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그랬습니다. 하늘에 부르심을 입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소망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그랬죠. 하늘에 불렀다라고 하는 이 하늘은 어디? 무엇을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의 존재가 거룩한 형제들아 그랬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거룩해지셨는가요? 우리는 거룩한 백성 그랬습니다. 내가 거룩하다라고 하는 의미를 알 때 왜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거룩해졌어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구분해서 거룩해졌는가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경건한 삶을 다른 사람보다 더 어디? 참 의로운 삶을 살아서 거룩하다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 거룩하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 구별하다라고 하는 의미가 그 가운데 들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구별했어요? 우리 스스로가 구별하셨는가요? 하나님이 구별하셨죠. 하나님의 자녀로 어디? 착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을 어디? 구분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이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는 가운데 구별된 저희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고는 있지만 어디?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저희들이 살아가면서 어디? 나아가는 방향은 어디? 다르다라고 하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 어디? 명예와 어디? 정기함과 어디? 또 세상의 부기 아마 이러한 것들을 쫓아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 어디? 이러한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저희들의 신앙 아닌가요? 믿음 아닌가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 약속을 어디? 가지고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고 계시는지도 몰라요. 예.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의로운 모습으로 어디?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 우리의 삶이 어디? 어려움이 임하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서 어디? 실망하게 되고 어디? 어디? 어디? 또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는 말씀으로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느냐라고 하면서 어디? 예수님과 누구를 비교했어요? 모세를 비교했습니다. 아마 저희들에게는 어려움이 임할 때 그냥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하지만 이 당시에 어디? 마음의 갈등이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 된 사람들은 어디? 이전의 삶 우리 이전에는 어디? 이전에 유대인들이 예수님보다는 어디? 모세를 더 어디? 귀하게 여겼다라고 하는 것이죠. 왜 모세를 유대인들은 귀하게 여겼을까요? 그들의 민족을 외국에서 이끌어낸 자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이 모세를 굉장히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셨어요?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이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디? 이 모세와 예수님을 지금 비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비교하고 있어요?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죠. 모세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죠.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예수님과 어디? 모세에 대한 생각은 어디? 어쩌면 저희들과는 좀 다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어디? 누가 더 어디? 나은자인가? 유대인가? 유대한가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어디? 2절에 있는 말씀 보니까 우리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은 이 얘기를 했습니다. 네.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 누구를 말하고 있어요?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모세는 어때요? 그것 또한 하나님의 집에서 어때요? 한 것과 같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7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민수기 12장 7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 모세는 어때요? 하나님의 집에서 어때요? 충성된 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때요? 충성된다. 우리 5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그랬습니다. 모세는 어때요? 상례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어때요? 사원으로 충성하였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사원으로 어때요? 충성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또한 어디요? 이 모세와 같이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했다 그랬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디에 충성했는가요? 어떤 분이시기에 어디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믿는 도리에 사도시며 제사장이시다라고 예수님을 말하고 있죠. 예수님의 신분을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사도라고 하는 의미가 뭐예요? 사도는 보냄을 받은다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은 누가 보냈어요? 하나님께서 하되요. 하나님께서 하되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되요. 하나님께서 하되요. 이 땅에 오신 분이시자.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이 무엇이에요? 원래는 하되요.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하되요. 우리 요한복을 3단 16절에 해놔야 돼요. 이런 말씀했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함으로 독생자를 보낸 수 있는 얘기였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독생자로 오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런데 그거야 돼요. 우리 빌립보서에 있는 말씀 보시면 언제까지 독종했다고 그랬어요. 충성있다라고 하는 말씀을 하는 거죠. 여기는 독종했다. 빌립보서 2장이 그랬는가요? 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종의 형체로서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음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디예요? 십자가에 죽으심이 죽기까지 복종했다 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누구의 종으로 써요? 하나님의 보내신다로써 하나님의 지배야 돼요. 아들로써야 돼요. 그는 충성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모세는 어디예요? 한 민족, 유대인들 어디예요? 구원하기 위해서 어디예요? 그 하나님의 지배 충성했지만 예수님은 어디예요? 우리 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집마다 지우니가 있으니 그랬습니다. 만모를 지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예요? 만모를 지울 때 어디에 계셨다고 그랬어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 계셨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아직 뱃속에 계셨을까요? 우리 요한복음 1장에 있는 말씀 보시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 함께 하셨다고 그랬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는 이가 누구라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와 하나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 그랬습니다. 우리 요한복음 1장에 있는 말씀 한번 보실까요? 1장 2절 3절에 있는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2절 3절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마무리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이 말씀 보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 우리 창세기에 있는 말씀인 것 같아요. 우리 요한복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는 이 말씀 속에 보면 어디에 조금 의미가 좀 다르죠. 구약에는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 속에는 어디에 한 분은 하나님의 천지를 지으셨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 보시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모세와 하나님의 영광이 다르다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러면서 어디에 집이 있으면 집이 중요해요.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이 중요해요. 주인이 중요하죠. 모세는 우리 집이 어디에 이 집의 주인 어디에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거죠. 우리 그 역할을 예수님이 하신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그의 말씀 속에 대해 우리 자신은 누구이냐라고 하는 거죠. 우리 앞에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했지만 어디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뭐가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집 안에 그하는 자. 집 안에 그하는 자면 어디에 그 주인은 어디에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 나의 삶 속에 어디에 예수님이 항상 함께하고 계심을 우리는 믿는 나의 신앙이 될 때 어디에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요. 이 욕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고려하게 될까요? 교절 3장 7절 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부리서 3장 7절 8절에 있는 말씀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 말씀하기 이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강팍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런 말씀 있죠? 시험하던 때와 같이 얘기를 했습니다. 시험이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창세기에 있는 창세기 3장에 보면 어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만들어 놓고 어디?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관은 어디? 먹지 말라 그랬죠. 생명나무의 실관은 그건 따먹으면서 어디? 영생할 수 있지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어디? 따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죽으리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유혹을 누가 누가 그 유혹을 시도했죠? 마귀가 그랬죠. 뱀이 그랬죠. 그렇듯이 그 뱀으로 인해서 어디? 천악가를 따먹고 어디? 쫓겨났듯이 오늘 본문 속에도 이러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10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우리의 삶 속에서도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음이 강탁하게 되는 그 이유들이 원인들이 여기에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10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놓아여 가로되 너희가 항상 마음에 위협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하였고 그랬습니다. 무엇이 주님의 가는 그 길을 위협한다 그랬어요. 그 길을 가지 못하게 한다 그랬어요. 미혹 그랬죠. 미혹. 또 우리 13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렇게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필차 곤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탁해됨을 면하라 그랬습니다. 죄의 유혹이 어디? 늘 우리 가운데 함께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어디? 광야에 있는 동안 많은 시험들이 어디? 시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가운데에서도 어디? 불평하고 어디? 원망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강탁하게 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요? 이런 결과를 낳았다 그랬죠. 17절에 있는 말씀 한번 보시면 17절에 있는 말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신누녀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려진 자에게가 아니냐 그랬 습니다. 우리 먼저 하나님께서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국에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한 약속이 무엇인가요 ? 가난 땅을 예비하고 그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시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땅을 가난 땅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어떤 땅이라고 그랬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랬죠. 그 말씀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그 땅은 기름지고 소칠이 풍성하고 그곳에 살면 어디?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이란 생각이 안 드는가요? 이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약속이거든요. 그런데 그 가는 과정을 어디? 그 가는 과정이 길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의 성경에 보니까 40년 동안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디? 이 광야에 있는 동안 시험을 했다 그랬습니다. 뭐 하기 위한 시험일까요? 모세는 충성된 자라 그랬습니다. 그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어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날 저희들에게도 어디? 시험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들으라고요? 비록 구약에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어디? 오늘날 이 시대에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 말씀을 야고버서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렇게 말씀했죠. 야고보서 1장 19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사랑하는 형제들아 그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라고요? 말하기는 어디? 성내기도 더디하라 그랬습니다. 말하기는 속히하고 듣기는 속히하고 어디? 말하기는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라 그랬습니다. 그럼 깊이 생각하고 어디? 행동하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으면서 어떻게 행동했는가요? 물이 없으면 물이 없다고 또 홍해가 가로막혀서 죽을 위기에 처하면 위험하다고 또 만나를 먹으면서 이동할 양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급에서 먹었던 그 양식이 생각나니까 돌아가고 싶다고 또 잠깐 모세가 어때? 하나님 만나러 신의 산에 올라가니까 밑에서는 어떻게 했어요? 우상을 만들고 우리 이러한 일들은 어때?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야를 건너는 과정 속에 어때? 순간순간 만나는 어려움이요 고통인 것 같아요. 이러한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그 길을 걸어갔다면 그 삶 속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하지만 하나님을 향해서 이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구하는 것 그래야 하는데 듣기는 석회하고 말 또한 행동 또한 빠르게 나오니까 성내는 것도 불같이 나오는 모든 것이 급하게 돌아가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고요? 40년 동안은 누구도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졌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나올 때 60만 명이 나왔다고 그랬죠? 그럼 이 60만 명을 광야에서 죽게 만드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었을까요? 아니면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은 그 40년의 긴 기간입니다. 그 40년의 긴 기간이라 할지라도 어디예요? 그들 모두가 어디예요? 가난한 땅에 들어가게 하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었을까요? 우리는 미루어 진작할 수는 없지만은 하나님의 죄에서 이끌어내는 것은 어디예요?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목적지어야 돼요. 이르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유리지 못하는 것은 뭐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어요? 미혹이나 죄의 유혹을 통해서 그들이 범죄함으로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면 범죄한 일 별로 없습니다. 사실은 그래요. 우리가 범죄함에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은 때로는 이러한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범죄는 행하지 않지만은 양심해야 돼. 가책을 좀 느낄 때가 있지 않든가요? 기도를 좀 못한다든가 또 우리 성경을 안 읽는다든가 또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든가 하는 이러한 일들 물론 이러한 일들어야 돼. 우리가 범죄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죄 지는 것은 사실은 아니고요. 그렇지만 이러한 마음이 내가 준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나로 알고 이러한 일을 감당하게 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라고 하는 것도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도 어디에요. 결국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거든요. 그럼으로 인해 가지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어찌보면 나 자신부터 변화될 것 같아요. 내 삶이 내 삶의 생각이여야 돼. 또 내 신앙의 모습이여야 돼.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내 모습이 달라진다라고 하는 것은 곧 무엇을 얻기 위함이에요.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간다라고 말합니다. 안식에 들어간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로 인해서 쓰러졌지만은 어디에요? 또 여당강을 건너서 가난한 땅에 들어간 사람은 쓰는 어디에요? 많이 바뀌었는가요? 60만 명이 죽었으니까 어디에요? 그 60만 명을 뺀 나머지 두 사람만 들어갔는가요? 그런데 그때 들어가는 숫자 또한 어디에요? 이전과 비슷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식에 참 들어가기 위한 것이 어디에요? 그래서 우리를 어디에요? 부르고 자녀 삼아주시고 또 주님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저희들의 모습이기도 하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우리 그 삶 속에 우리에게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에 들어간다라고 하는 것 우리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안식에 들어간다.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는 삶을 살고 계시죠? 어떻게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는 삶을 살고 계시는가요? 우리 여기에 있는 이 안식이라고 하는 말씀이 처음으로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창세기 2장 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요? 천지를 지으시고 여섯 해 동안 지으시고 지으신 일을 다 마치고 어디에요? 안식했다 그랬어요. 여기서 일을 마쳤다라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께서 일을 마쳤으니까 쉬셨다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어디에요? 우리 사람들에게도 어디에요? 명에서 거기에 참여하게 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것을 개명 속에 들어 있는 것이죠. 안식일을 기억해서 그렇게 지키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우리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는 안식일, 안식일 그러는데 창세기 2장에 있는 이 안식과 7월기 20장에 있는 안식일을 기억해서 그렇게 지키라고 하는 이 안식일과 다른 의미일까요? 같은 의미일까요? 사실은 같은 의미다 라고 하는 것이죠. 안식에 들어가는 똑같은 안식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요? 누구에게? 우리 사람들에게. 그래서 우리 사람들에게 어디에요? 이 안식이 어디에요?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식은 어디에요? 내 안식이 아니라 어디에요? 이 안식은 누구의 안식이에요? 하나님의 안식이에요. 그래서 이 복된 날은 누가 정한 거예요?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에 우리가 들어와서 어디에요? 누리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는 이 말씀 속에 어디에요? 모세보다 뛰어난 예수님 모세보다 뛰어난 예수님 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디에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약속되어 있지 않은가요? 천국에 들어있는 들어가는 것이 곧 뭐하는 것이라고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했죠. 안식이라고 하는 말을 하시면서 우리 1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안식에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는가요?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는가요?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셨으니 지금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난한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18절에도 그랬어요. 18절에도 또 하나님이 누구든지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정치에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그랬습니다. 우리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 안식 그리고 우리 사장에도 안식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계속 하시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안식이 어떠한 안식이라고요? 땅에 있는 이 신은 안식을 지키는 그러한 안식을 조금 뛰어넘어서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그러한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세를 통해서 나왔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에 들어갔다고요? 못 들어갔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가요? 그 땅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지라도 어디? 그 땅을 보고 온 사람들은 어디? 이렇게 생각했죠. 하나님이 이 땅은 어디? 안식의 땅. 우리가 들어가서 정착해야 할 땅 했는데 정작 정탐하고 나니까 그 땅은 안식하는 땅이었어요. 들어가기가 두려운 땅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다 하고 있지만 내 삶이 어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지금 막고 있는 요소들이 어디? 그걸로 인해서 어디? 못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그러한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그 약속을 어디? 믿으라라고 하는 것이죠. 그 약속을 믿고 어디? 순종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 한번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3장 18절 19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18절 19절에 있는 말씀 같이 한번 보시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치 않냐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않냐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그랬습니다 .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요? 먼저는 순종치 않는 자에게 그랬습니다. 우리 그 다음에는 직구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믿지 않냐므로 그랬습니다. 순종이 먼저예요? 믿는 것이 먼저일까요? 우리는 순종이 먼저 보다 믿는 것이 먼저겠죠. 믿어야 돼요. 순종하겠죠. 그렇지만 믿음과 순종은 어디예요? 어찌됐든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순서를 정하기보다도 어디예요?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어디예요? 순종치 못하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어디예요?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시냐라고 하는 것이죠.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세요? 내 죄를 다 해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을 받은 성령을 내게 주신 예수님 아닌가요? 나를 위해서 어디예요? 십자가에 죽어주신 분 아니신가요? 저희 예수님께서 저희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어디예요? 서서울 예비하러 간 온행이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순천하실 때 어디예요? 본 이대로 다시 오리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믿어질 때 어디예요? 순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순종하는 그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이 예수님을 어디예요? 왜 깊이 생각하라고 그랬어요? 왜 주목하여 생각하다라고 하는 말씀 속에 주목하다, 집중하여야 돼, 바라보다 우리 이러한 말씀의 의미가 있습니다. 곧 잊어버리지 말라라고 하는 것이죠. 늘 기억하면서 살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깊이 생각한다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님이 나의 삶 속에 어디예요? 내 삶의 일부가 되어서 어디예요? 나 자신을 어디예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인도하는 어디예요? 그 삶에 어디예요? 이유가 되기 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에도 어디예요? 시대가 많이 변화가 빠른 우리 그러한 가운데에서 우리의 믿음이 어디예요? 내 삶의 믿음의 변화의 속도는 늘이다 할지라도 어디예요? 예수님은 변하지 않는 신분, 영원하신 분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는 우리에게 약속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언제까지 사랑하신다고 그랬어요?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니 우리도 이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주님의 약속에 영광을 얻는 귀한 저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나의 삶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인해서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우리 그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우리가 찾아가면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가는 것 또 이 모습을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사람들에게 드러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곧 이것이 어디에 우리가 주님을 깊이게 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디에 이 신앙을 지켜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원합니다. 우리라는 삶 위에 우리 교회가 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나아가게 될 필요는 있습니다. 잠깐 목도 하시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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