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교회01
참예수교회 기본신앙 21.
김승도 · 행2:38
제작일 2026. 8. 8.
AI 설교 정리
일반교회는 세례를 상징으로 보며,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본문요한복음 3:16사도행전 2:38
- 일반교회는 세례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세례와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고 본다.
- 세례는 상징적 개념으로 보며,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참예수교회는 사도행전 2장 38절을 근거로, 세례가 죄사함을 받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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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에 대한 일반교회의 입장
- 세례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세례와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고 본다.
- 세례는 상징적 개념으로 보며,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세례를 상징으로 보고, 성경보다 우선시한다고 본다.
- 주석가들의 해석은 성경을 잘못 해석했으며, 결례로 보는 오류가 있다.
- 요한복음 3장의 사건은 세례를 결례로 오해하게 했으며, 이는 성경의 잘못된 해석이다.
세례의 의미와 목적
- 결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라면, 세례는 영적인 죄사함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 세례는 믿음의 행위로, 율법의 행위가 아니며, 구원의 조건으로서 중요하다고 본다.
- 믿음과 세례는 함께 있어야 하며,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본다.
- 죄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참예수교회의 입장
- 참예수교회는 사도행전 2장 38절을 근거로, 세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 예수님이 주신 세례는 은혜의 시대에 속하며, 율법주의자가 아니라고 본다.
- 회개와 돌이킴은 세례 전 단계이며, 세례는 죄사함을 받는 행위이다.
죄와 세례의 관계
- 원죄는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죄이다.
- 본죄는 개인이 스스로 지은 죄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를 의미한다.
- 원죄와 본죄 모두 세례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
구원의 방식
-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타력 구원의 상징이다.
- 기독교는 자력(불교)이 아닌 타력(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참여수께 기본신앙 계속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세례에 대한 효력에 대해서 일반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그 이유를 공부했습니다 첫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성경보다 더 상위에 놓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세례는 하나의 상징적인 개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았다 해서 죄사함이 없다든지 중생 못했다든지 구원을 못 받았다든지 이런 염려는 전혀 없는 다시 말해서 세례와 구원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세례의 죄사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일반 주석가들의 잘못된 견해 주석가들은 그야말로 주석을 다는 거죠 뭐 매튜엣니, 기타, 스포울전이라든지 또 그 외에 요즘에 현대의 많은 신학가들이 각자의 어떤 신학적 관점을 통해서 주석을 달죠 그래서 그 주석가들의 견해를 봤을 때 이 세례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세례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잘못된 성경의 해석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요한복음 3장 22절 25절의 이 사건 요한이 요한의 세례를 주고 있는데 한 유태인이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했다 그 내용을 가지고 세례는 하나의 결례다 이렇게 보는 것으로써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죠 만약에 결례로 본다면 이 결례라는 것은 정결례거든요 구약의 정결례는 죄를 씻는 개념과는 달리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거죠 육체가 더러워졌을 때 집에 들어오기 전에 손발을 씻는다든지 아니면 목욕을 한다든지 아니면 유출병이나 기타 각종 육체에 오염이 됐을 때 진으로 들어오기 전에 몸을 씻고 올 수 있게끔 정결례법이 있었는데 세례를 하나의 정결례를 하나의 정결례를 하나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굉장히 그들의 오해가 상당히 도를 넘는 그런 데까지 간 거예요 세례를 정결례를 본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 처음 들어보셨지만은 사실은 이것이 웨스터 신앙 고백서에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절대 일반 교회에서는 세례를 죄사함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서 이 세례를 갖다가 정결례 즉 육체에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것 중에 하나로 이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착오가 어디서 나왔는가 끝이 요한복음 3장 22절 25절에 요한이 요한의 세례를 베풀 때에 한 유태인이 이상하네 내가 받은 정결례와 비슷하기는 한데 왜 물속에 풍동 들어갔다 나오지 그러면 내가 한번 변론을 해봐야 되겠다 와가지고 요한의 제자들과 변론이 일어났는데 이제 표현상으로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했다라고 하는 이 짤막한 문장 하나 때문에 바로 세례에 대해서 변론을 했는데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했다고 이렇게 표현한 것을 볼 때에 그러므로 세례는 결례다 이런 단순 공식 하에 오차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근데 이미 말씀드렸지만은 만약에 세례를 만약에 정결례 육체에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것 중에 하나로 본다면은 과연 성경에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거냐 그래서 죄라고 하는 것은 육체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붙어있는 것으로써 마음으로 짓는 거잖아요 그것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왔을 때에 결국 죄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이것은 이제 성립이 되는 거죠 그런데 성립이 되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부터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니 남을 미워한다든지 아니면 음욕을 품는다든지 남의 것을 탐심을 갖는다든지 이런 것들은 행위로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마음으로부터 짓는 죄거든요 그럼 행위로 나타나는 이 죄는 어디로부터 비롯됐느냐 그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거니까 결국 마음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면 행위의 죄도 용서받을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죄라고 하는 근본 발생처는 마음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마음에 짓는 죄를 갖다가 일종의 결례로 본다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죠 그래서 육체 정결과 말하자면 영적인 정결은 전혀 다른 개념인데 이것을 이 꼬로로 볼 수밖에 없는 이런 착오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례는 결례로 봐야 되는 것이고 세례는 세례로 봐야 된다 그래서 그 표현, 결례에 대해서 변론을 했다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대화의 주된 관심사가 결례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유태인들은 세례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세례는 요한의 세례부터 등장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들이 가시적으로 봤을 때 요한의 세례는 아주 특별한 행동을 하는 거거든요 물속에 들어갔죠 그리고 손을 들어서 안수를 하죠 또 물속에 푹 들어갔다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이런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행했던 결례와는 전혀 다른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서 아마도 이렇게 물어봤을 거예요 아니 우리는 그런 걸 처음 본다 혹시 이게 결례가 아니냐 아니야 아니야 이거는 우리 선생님 요한이가 회객회하기 위해서 주는 세례라고 하는 거야 아 그래? 그럼 결례와 세례가 뭐가 다른 거야 라고 하면서 서로 변론을 나눴던 그 상황을 놓고 결례에 대해서 그러니까 유태인의 결례냐 아니면 세례 요한의 결례냐 이게 결례냐 뭐냐라고 하는 대화의 중심의 핵심이 결례였기 때문에 결례에 대해서 변론했다라고 한 것이지 세례가 결례이기 때문에 결례에 대해서 변론했다라는 말은 전혀 아닐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세례는 세례이고 결례는 결례다 라고 우리가 정리를 해야 되는 것이죠 자 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나눴던 것은 원어상 자체로도 구약의 결례는 카다리스무스고요 신약의 세례는 바티스마거든요 그래서 원어상으로도 이렇게 틀리다라고 하는 것을 참고로 말씀을 드리고 저번 시간에 좀 더 부연 설명을 좀 하고 마쳤어야 되는데 설명을 못하고 그냥 마쳤기에 다시 갈라디아서 2장 우리 16절을 같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페이지 51쪽이 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장 16절을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거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롭담을 얻으려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우롭담을 얻을 육체가 없다 지금 여기서 두 가지를 끌어낼 수 있는데요 하나는 율법의 행위로 우롭담을 얻을 수 없다는 문제하고요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롭담을 받는 것 지금 이 두 가지를 끌어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사안이 지금 일반교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발목을 잡고 있느냐 세례라고 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의 행위고요 또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 대원칙에 전혀 저촉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잘못 인식하다 보니까 세례에 대한 관점이 마치 세례를 받으면 이 세례를 받는 행위 자체가 세례를 받는 것이 행위잖아요 그래서 이 행위를 하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다고 너희 참여수교회가 얘기를 하니 그러면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냐 그러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개념이구나 그러므로 참여수교회는 율법적인 교회 내 왜냐하면 세례를 받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 행위를 받지 않으면 그 행위를 받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다는 것은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라는 얘기네 라고 이게 자꾸 발전해 발전해 나가는 거죠 존쪽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오해에 근접하게끔 더 많이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믿음으로 의롭다 의롭다운을 받는다라고 하는 대원칙 하에서 볼 때에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러면 의롭다운을 받느냐 그럼 믿음으로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믿습니다 당신이 나의 구세주를 믿습니다 하고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마음으로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이 믿음이 중요하냐 아니면 세례를 받는 이 단순한 행위가 중요하냐 라고 하고 봤을 때 무게로 달아보면 믿습니다라고 하는 마음으로 믿는 이 믿음이 더 무게중심이 크잖아요 사실은 무게중심이 큰 겁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이 행위는 별로 중요치 않는 것인데 참여수교회는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단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롭다운을 받는다 육체의 행위로 의롭다운을 받을 수 없다라고 하는 이 문제를 더 굳건하게 지겨나가려고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충돌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조화를 이룰 것이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 문제는 일반교회와 전혀 다른 것이 없어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거예요 우리의 율법의 행위로 말면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먼저 정리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을 보겠습니다 시작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않는 화목재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해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않는 화목재물로 세우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죠 그래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피로 인해서 그의 피로 말미않아서 이제 우리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핵심이 뭐가냐면 믿음으로 말미않는 화목재물로 예수님께서 세우심을 받게 됐다는 거예요 그 무엇을 믿는 것이냐 그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그가 피를 흘림으로 말미않아 그의 피로 말미않아 우리가 죄산받는다는 거 그러한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이 중요한 사실을 세우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해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그 다음에 28절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느라 여러분 이거 부인할 수 있습니까? 우리 참여수계는 더욱더 인정합니다 그 어떤 개신교보다도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담을 받는다라고 강력하게 주창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정리해야 될 것이 뭐냐 그러면 세례를 받는 것은 과연 율법의 행위냐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은요 믿습니다도 중요하지만은 만약에 믿습니다 그거 하나 가지고 구원을 받는다면요 구태여 교회 나와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요 뭐 선한 행위를 가질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교회 나와서 말씀 듣고 선한 행위를 간과하고 더 열심히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그들도 행위를 주장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장하는 행위는 율법의 행위냐라고 저는 묻고 싶다는 거예요 아니거든요 그들은 그들이 노력하고 가르치고 행하는 그 행위를 믿음의 행위로 보는 거죠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세례 또 우리가 나타내고자 하는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행위는 구태여 율법의 행위로 보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저는 반문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믿습니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그 믿음에 상응하는 행위가 따라야 된다는 것이 성경의 공통적인 분모거든요 여러분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눈을 어떻게 떴습니까? 신라한 못에 가서 있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진흙을 발라 눈에 바르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신라한 못에 가서 지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믿습니다 하고 가지 않았다면 믿습니다 하고 거기에 대한 행위가 따르지 않았다면 아무리 믿습니다 해도 그의 눈은 띄어지지 않는 거예요 믿음에 상응하는 행위를 신라한 못에 가서 그대로 말씀대로 행위를 하신 것과 같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의 행위가 포함된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이지 믿음이 없이 세례만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얘기한 다면 그거는 잘못된 거죠 그러나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16장 16절을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 마가복음 16장 16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오 여러분 그냥 세례를 받으라고 그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례는 믿고 세례를 받은 거예요? 아니면 그냥 세례를 받은 거예요? 믿고 그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세례는 믿음의 세례입니까? 율법의 세례입니까? 믿음의 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입니까? 믿음의 행위입니까? 저는 안식일 오후만 되면 굉장히 유창하게 그냥 막 폭포스같이 나와요 왜냐하면 너무나 우리 참여수교의 진리는 아주 성경적이고요 논리적이고요 합리적이고요 신학적이고요 그 다음에 전체적이고요 때로는 부분적입니다 완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례를 받는 것은 믿음의 행위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세례를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라고 한다면 우리 예수님은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아휴 어떻게 예수님이 율법주의자가 되냐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해서 은혜의 시대가 열린 거고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율법이에요 이것부터 기준을 한번 찾아 봅시다 요한복음 1장 요한복음 1장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입니다. 1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시작.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냐. 그러므로 은혜의 시작은 예수님이시죠. 그런데 은혜의 골수시고 은혜의 선봉장이시고 은혜의 시작이신 그 예수님께서 만약에 세례를 율법으로 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예수님은 율법주의자죠. 왜냐하면 세례를 율법으로 생각하고 줬으니까. 그런데 그랬을까요. 라고 저는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죠. 예수님은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오신 것. 은혜의 시작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신 세례. 이거는 은혜 안에서 주신 세례죠.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신 세례는 율법의 세례가 아니라 은혜 안에서 주신 세례입니다. 그래서 결코 예수님은 율법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만이 아니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이제 우리가 주의사항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여기까지가 일반 교회의 잘못된 세례관 상징으로 또는 결례로 아니면 또 하나의 형식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지금까지 핀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부터는요. 그럼 참매수 교회가 주장하는 세례관을 좀 더 다시 성경 안에서 한번 짚고 정리해보자. 아시겠죠. 가장 대표적인 것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다 아는 말씀이지만 또 찾아봐야 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우리 참매수 교회가 주장하는 이 세례는요. 절대적으로 죄사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베드로가 가로대 너희가 회개하여 각광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게 이제 가장 원시적이고요. 가장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서 우리가 그냥 한 5초만 생각을 해도요.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요. 이거 바로 알 수 있어요. 자, 얘들아. 죄사함을 어떻게 받는다고 그랬지? 그러면 저야! 아, 그렇네요. 아이들이. 벌써 막 저, 뭐야. 하윤이. 아니, 하윤이. 하균인가? 누구지? 하민이. 규민이 정도라도 알아요. 자, 여기 보세요. 죄사함을 어떻게 얻으라고 그랬어요? 세례를 받고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는 거 아니에요? 그럼 세례를 안 받으면 죄사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 거죠. 자, 그러면 이거를 갖다 이제 우리가 원어적으로 좀 풀어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원어를 보니까 바티스테토 그러니까 베드로가 얘기하는 겁니다. 바티스테토 세례를 받으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이스 아페신 에이스라고 하는 것이 이제 전치사인데요. 세 가지의 뜻이 있어요. 뭐뭇을 위하여 어디어디 안으로 또는 어디어리 어디어리 어디어디 안에 그럼 뭐뭇을 위하여 라고 하는 건 영어로 하면 for 내가 너를 위해서 뭐뭇을 하겠다. for 그 다음에 뭐뭇을 위하여 그 다음에 뭐뭇 안으로 하면 into 들어가는 것이죠. 자, 여러분. 이 안에 물이 있어요. 이 상황은 인입니다. 자, 졸지 마시고 제일 중요한 시간에 항상 졸지 마시고 항상 졸지 마시고 이 단에서 졸지 마시고 이 단에서 존다는 말이 그런 말이 유투브를 향해서 나가. 그러면 내 설교가 인기가 없어. 어? 그러지 않도록 좀 주의를 해줘요. 나 심각해 지금. 진짜야. 이 안에 물이 담겨져 있잖아요. 이 물이 어디 안에 담겨져 있냐면 컵 안에 담겨져 있는 이 상태를 인이라고 그래. 인. 이럴 때에도 에이스라고 하는 전체를 쓴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다가 주전자에다 주전자를 가지고 와서 물을 더 따라. 그러면 주전자에 있는 물이 이리 들어가죠. 이것도 into야. 이거는 인이 아니고 인투라고 그래. 어디 무엇을 어디 어디 안으로 집어넣는 거예요. 이것도 에이스예요. 그다음에 이제 뭐뭇을 위하여라고 하는 그것도 바로 이 에이스라고 하는 전체사에 담고 있거든요. 뭐뭇을 위하여 어디 어디 안으로 어디 어디 안에 이 세 가지가 다 에이스인데 다 가능해요. 그러면 뭐가 어디에 이 에이스가 붙어있냐면요. 앞에 신에 붙어있잖아요. 이 앞에 신이라고 하는 이 원어의 뜻은 죄사함이라는 뜻이에요. 죄사함이에요. 그러면 보세요. 인이라고 우리가 봤을 때는 죄사함이 어디 안에 있습니까. 이 안에 이미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이미 들어가 있는 죄사함 안에 들어갔다 나오니까 죄사함을 받고 나오겠죠. 그런 개념으로 봐도 틀림없고 그 다음에 인투로 봤을 때는 여기 안에는 여기 이 한 개 안에는 죄사함의 한 개예요. 근데 내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갔다 나오면 죄사함을 얻고 나오는 거예요. 이것이 이제 하나의 인투 그 다음에 포 이거는 뭐뭐하기 위하여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그래서 어떠한 그 전치사 해석을 세석을 통해서 봐도 세례라고 하는 것은 죄사함과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의 효력에 대한 일반교회 주장은 단지 회개하고 돌아오면 죄가 사암받고 도말된다라고 생각하는데 참 이것도 큰 문제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시작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암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오 수도 지금 여기를 보시게 되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그거 자체가 죄 없이 암을 받는 것으로 이렇게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는 건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너희가 회개하여 돌이켜 너희 죄 없이 암을 받으라 그랬으니까 회개하고 돌이키면 죄 없이 암을 받는구나 라고 오해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회개하고 돌이켜라고 하는 것은 그 지점까지를 얘기해요. 그다음에 왜냐하면 에이스라고 하는 전치사가 돌이켜와 너희 이 사이에 들어있는 거거든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회개하고 돌이킨 이 상태에서 어디 안으로 들어가야 되냐면 너희 죄 없이 암을 받는 것으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동작이 달라요. 그래서 이거를 한 동작으로 보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동작 그다음에 에이스라고 하는 전치사 어디 어디에까지 어디 어디 안으로 어디 어디 안에 뭐뭇을 위하여 라고 하는 뜻으로 그 이 접속사 아 전치사지 이 전치사 에이스를 잘 활용해야 돼요. 그래서 마지막 꼬린 지점이 어디냐면 너희 죄 없이 암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베드로 사도의 말과 똑같아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그랬잖아요. 요번에 이것이 이제 첫 번째 단계거든요. 만약에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그냥 물속에 들어갔다 뭐 이렇게 세례받는다 해서 죄사함이 있겠습니까 전혀 회계도 없이 오늘 아침에 와서 세례받겠다 당신이 회계했냐 알아서 내가 하겠다 좀 세례 주시오 그래서 세례받는다 해서 그 죄사함이 있겠습니까 회계하고 믿음을 갖고 돌이킨 후에 그래서 너희가 각각 회계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이 두 가지 개념이 있는 거거든요 회계하는 단계 그 다음에 세례받는 단계 마찬가지예요 이게 누가 한 얘기입니까 베드로가 한 얘기거든요 회계하고 돌이켜 그 다음에 너희 죄악성을 받는 두 단계를 얘기하고 있는 거죠 이건 사도행전 2장 38절과 동일한 용법이에요 그러므로 회계가 곧 죄악시험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이제 52페이지로 넘어가서요 그럼 이제 우리가 세례로 어떤 죄를 용서받느냐라는 문제를 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는 원죄고요 두 번째는 본죄입니다 원죄라고 하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죄예요 그러니까 내가 지은 죄가 아닙니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니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까 어? 내가 죄인이 됐어 엄마 나 죄 지은 적이 없는데 내가 죄인이야 그래 교회 갔더니 너도 죄인이란다 어? 나 죄 지은 게 없는데요 그래 교회 갔더니 너도 죄인이래 어? 내가 죄 지은 것이 없는데요 내가 지은 죄가 없어도 내가 죄인으로 인정받는 거 왜 그럴까요? 본래부터 있었던 죄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된 거예요 그럼 본래부터 있었던 죄는 누가 지은 죄냐 아담과 하하가 지은 죄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담과 하하가 죄를 졌잖아요 선악가를 따먹고 범죄했잖아요 하나님 말씀 불순정했잖아요 그래서 쫓겨났죠 에덴 동서 쫓겨났어요 그래서 이제 죄인이 됐어요 하나님과 관계 없는 그런 존재가 됐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하가 지은 죄로 인해서 그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된 거 그것을 갖다가 본죄라고 그래요 그러면 질문이 있죠 아니 나는 인정 못합니다 아니 아담과 하하가 내가 무슨 상관인데 아담과 하하가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죄인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럼 나 예수님 안 믿을래요 이건 뭐 앞뒤가 안 맞네요 아니 내가 지은 죄도 아닌데 왜 내가 죄를 물려봤습니까 여러분 그런 질문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죠 그래서 머리 아픈 거예요 그런데 그 머리 아픈 것이 사실은 성숙하기 위해서 머리 아픈 거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잘 들어보세요 성경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 성경은 그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거든요 로마서 5장 12절 말씀 로마서 5장 12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름으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고요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요 그 아담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서 사망이 왔어요 사망이 육체적으로 누구나 한 번씩 반드시 죽어야 되는 누구는 죽고 싶어도 죽습니까 여러분 지금 여기서 나는 죽고 싶다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한 사람도 없어요 영원히 살고 싶어요 아파도요 죽는 것보단 나아요 사실은 안 그래요? 아파도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게 낫지 죽어서 썩어가지고 정말 처참한 모습으로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거 싫잖아요 산다는 것은 굉장히 위대한 거예요 그런데 이 위대한 생명 위대한 이 삶을 누가 짓밟았느냐 죄라는 게 짓밟은 거거든요 누가 지은 죄입니까? 아담이 지은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육체의 사망이 오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된 영적인 사망이 왔는데 이 사망이 그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는 거예요 우리에게까지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이거를 죄의 유전이라고 그러는데 죄의 유전성 뭐 불교에서는 이거를 업보라고도 합니다 내가 나쁜 짓 하니까 내 후손까지도 계속 업보가 물려가죠 예를 들어서 신내림을 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꼭 그런 건 아니지만은 할아버지 때에서 신내림을 받으면 아버지 때 또 아버지 때에서 신내림을 받으면 또 아들 때 계속 물려받는 것 같이 그걸 갖다가 이제는 업보라고 하는 개념으로 해석을 하는데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런 죄의 유전성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신내림을 업보로 하는 것은 그건 마귀 사탄이 가는 짓이에요 마귀 사탄은 이 땅에 오면서부터 사람을 죽이고 망하게 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들어가기가 쉬우냐면요 꼭 그렇게 빌고 샤머니즘적으로 구하는 그 사람에게 달라붙는 거거든요 밤길을 걷는데 무서워 그러면 무서워하는 자에게 달라붙는 거예요 마귀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 이름 그리스도의 군병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을 의지해서 나가게 되면 아무리 칠흑 같은 밤을 건너가도 마귀가 물러가는 거예요 절대 우리 하나님의 가정 안에는 마귀가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조상 누가 뭐 했다 하면 한번 들어와서 시험을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왔다 갔다 의심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들어와서 또 자리를 잡고 괴롭히고 또 그 후손대에 가서 또 괴롭히고 들어가서 괴롭히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이지 이것이 어떤 유전성을 가지고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다만 지금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의 유전성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 됐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어떤 성경의 신학적 체계를 갖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 안에서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 죄의 유전성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자 여러분 축구 경기를 했어요 축구 경기 자 우리나라 월드컵 이번에 잘했어요 못했어요 체코하고는 이겼는데 멕시코한테 줬고 또 하나 누구한테 줬더라 남아공에게도 줘가지고 지금 엄청나게 청문회까지 하고 권역을 치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스포츠라는 게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데 너무 사망한 것 같아요 스포츠가 이런 식으로 나아가게 되면 별로 재미없어요 자 그런데 가령 우리나라 축구 선수가 11명인데 멕시코하고 치코하고 멕시코하고 졌으니까 멕시코하고 싸웠는데 졌어요 그러면 누가 진 거예요 그 11명이 진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고 우리나라가 졌다고 그랬잖아요 왜 그래요 그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한 사람들이거든요 이와 같이 아담은요 인류의 대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실패는 곧 우리 모든 인류의 실패예요 만약에 아담이 승리를 했다면 선화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그로 인해서 우리도 영생을 누리고 지금까지 살 텐데 그가 실패했기 때문에 우리도 실패자가 된 거죠 명목상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아담의 죄를 진 적이 없어요 그러나 명목상으로 우리가 죄인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념으로 우리에게는 다 원죄가 있다 이해되시겠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본죄입니다 본죄 이 본죄는 성경이 어디냐 에베소서 2장 1절 2절을 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2절 시작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스톱 여기까지만 읽읍시다 지금 여기에 우리가 문장을 정확히 해석해야 되는데요 이거를 왜 본죄로 받느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너희의 허물과 죄입니다 한 사람의 허물과 죄로 인한 이 로마서 5장과 같은 문장이 아닙니다 여기 보면 분명히 이 허물과 죄는 너희의 허물과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은 우리 스스로 지은 허물과 죄로 인해서 우리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진짜 우리가 무덤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었다는 뜻이죠 우리가 죄를 짓고 나쁜 짓을 많이 하고 그렇게 해버리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싫어하실까요? 싫어하시죠 계속 죄를 지면 하나님께서 더 싫어하실까요? 더 좋아하실까요? 더 싫어하시겠죠 계속 죄를 지어 그러면 진짜 화나시겠죠 그러다 어떻게 해요? 버려버리시죠? 기부업한다는 것입니다 네 맘대로 해 내버려 두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인간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죄 짓는 데 빠져서 죄가 그렇게 재밌는 거예요 식이 탐욕 음란 질투 수근수근 되는 거 그냥 모든 죄를 다 짓고 살았잖아요 그래도 자기가 죄인인 걸 알아요 몰라요? 모릅니다 그렇게 살았던 이방인들이 너희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때 너희가 너희 가운데 생하며 이방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수자문자를 따라 쓰니고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래서 너희 허물과 죄 이게 본죄죠 그래서 원죄와 본죄 이것을 사안받을 수 있는 길은 세례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좀 극단적으로 생각을 하면요 내가 지은 죄 내가 지은 허물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면 해결을 해보겠다라고 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여러분 방법이 없겠습니까? 여러분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산으로 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바로 뭐냐 자기의 수행과 노력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불교거든요 스님들이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상당히 어려운 거예요 고충이 따르잖아요 세상을 떠나야 되고요 세상과 이별을 해야 되고요 이 세상과 모든 것을 단절해야 돼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그렇게 해가지고 세상이 돌아가겠습니까 그건 그것은 비합리적인 방법이거든요 불가능할 뿐더러 비합리적인 거예요 그러나 어쨌든 본죄 정도면 우리가 해보겠는데 지금 문제는 뭐냐면 원죄입니다 원죄 내가 짓지 않은 이 죄의 굴레를 내가 내 노력으로 해결하겠다 그거는 100%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의 노력이 아닌 타인의 도움이 없어서는 우리는 이 두 가지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기독교는 타력에 의한 구원이에요 자력에 의한 구원은 불교고 타력에 의한 구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도움인 것이죠 그래서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대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심으로 그를 믿음으로 말� ��며 구원받는 죄사함 받는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거거든요 그 핵심이 뭐냐 세례인 거죠 믿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 받는다 어떤 죄? 원죄와 본죄 오늘은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목도하겠습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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