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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가려던 땅에 이르르려면? 20

김용준 · 요6:14-21

제작일 202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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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제자들이 육적인 메시야로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고, 영적인 구원을 위해 산으로 떠나신다.

본문요한복음 6:14-21신명기 18장
  •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시며, 육적인 메시야로 인식받는 것을 피하시려고 산으로 떠나신다.
  • 제자들은 기적을 보고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다.
  • 신앙의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며, 예수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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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오병이어 기적

  • 요한복음 6장 14절에서 21절은 예수가 다섯 번째 표적을 행한 사건을 다룬다.
  • 이 표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기 위해 요한이 선택한 일곱 가지 표적 중 하나이다.
  •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은 그분을 메시야, 즉 신명기 18장에 언급된 선지자로 인식했다.

육적인 메시야로의 오해

  • 그러나 이 인식은 육적인 구원, 즉 물질적 문제 해결을 위한 왕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예수의 진정한 목적(영생 주시기)과 맞지 않는다.
  • 예수는 이러한 오해를 인식하고,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으며 혼자 산으로 떠나신다.
  • 이는 예수께서 단순한 출애굽 구원의 재현이 아닌, 영적인 구원을 위해 오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자들의 반응과 예수의 목적

  •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을 임금 삼으려는 줄 알고 산으로 떠난다.
  • 오병의 기적 이후 제자들은 예수를 육적인 메시아로 인식하게 된다.
  • 예수는 제자들을 무리와 분리시키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다.

신앙의 목적과 방향

  • 예수는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고난을 겪는 것을 오랜 시간 지켜보신다.
  •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
  •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임을 다시 인식시켜 주신다.
  • 신앙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며, 풍랑과 광야 속에서도 예수를 영접해야 한다.
  • 예수를 육적인 메시야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앙의 본질

  •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세상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는 믿음에 있다.
  • 신앙은 표적이나 기적을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 제자들이 기적을 보고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목적지로 보내셨고, 그들은 폭풍에 직면하며 힘들어했다.
  • 믿음의 목적과 방향이 중요하며,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다.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며, 신앙의 목적도 이와 같아야 한다.
  • 신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는 데 있다.
전사(자막) 전문▼
이 시간에 같이 나눌 말씀은 요한복음 6장 14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 14절에서 2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시작!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보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않으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신별이 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 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오늘 본문에는 이제 다섯 번째 표적인 무리를 거르신 예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에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기사들 중에서 특별히 예수께서 참 하나님 되신다라고 하는 걸 증거하기 위해서 요한이 특별히 가려법은 일곱 가지 세메이온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메이온이라고 하는 것은 표시, 싸인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게 예수님이 하나님 되신다라는 싸인이다, 표이다.
그걸 위해서 요한은 특별히 일곱 가지 표적을 가려뽑았어요.
그 가운데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이 표적은 다섯 번째 표적인데요.
여러분 요한이 다섯 번째 표적으로 이 무리를 거르시는 예수를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많은 표적들 가운데 왜 이 무리를 거르신 예수를 다섯 번째 표적으로 선택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14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여기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은 뭘 말하는 것입니까?
네 번째 표적인 오병이어의 표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세상에 오실 바로 그 선지자이시다.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인식을 했다.
이런 말이잖아요.
여러분 여기 말씀하는 그 선지자는 어디에 말씀을 인용한 것이냐면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오는 그 선지자 하나를 보내주시겠다라고 말씀할 때 그 선지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말씀이에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바로 그 선지자라고 인식을 했다.
이런 말이에요.
애국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해서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네게 하시고 또 광야에서 기적적으로 만나를 먹도록 한 그 모세와 같이 오늘 예수님께서 제2의 출애국 구원을 이루실 분이시다.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신명기 18장을 근거로 해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바로 그 선지자라고 생각을 했다.
하는 걸 보여주는 그런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 오병이어의 이 기적은 대단한 기적이에요.
그래서 요한도 예수께서 하나님 되심의 근거로 이 표적을 사용을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저들도 이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표적이 오병이어의 이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다른 곳에 다 있지만 마태복음에도 있고 마가복음에도 있고 누가복음에도 있지만 꼭 필요한 이 일곱 가지 세메이온의 요한이 포함을 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이 표적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 선지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로 인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요한과 제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메시아에 대한 이런 인식 어떻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저들이 예수를 그 선지자라고 인식한 이 인식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통해서 그걸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이 14절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15절의 말씀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어요.
여러분 15절 말씀을 보세요.
이 말씀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14절에 이 표적을 통해서 저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그리고 신명기 18장에 예언하고 있는 그 선지자로 저들이 이렇게 인식을 했다.
그러면 15절에는 어떤 내용이 나와야 될까요?
뭔가 긍정적인 이런 내용이 나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15절에 이어지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여러분 문제가 무엇일까요?
저들이 예수를 그 선지자라고 인식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아주 심각하게 그걸 받아들이시고 저들을 떠나 버리신 걸까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이 오병열을 통해서 예수를 그 선지자로 인식하는 건 좋은데 그들의 그 인식이 예수님을 육적인 메시야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게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식이다 이런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은 단순히 출애국 구원의 문자적인 어떤 재현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시다라는 겁니다
정치적이나 아니면 경제적으로 저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주려고 인생의 함란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임하신 분이 아닌데 그들은 예수님의 이 오병의 표적을 세상적 관점에서 물질적으로만 해석을 하고 받아들였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를 뭐하려고 생각했어요?
예수를 여기 이런 표현을 썼잖아요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그러니까 저들이 예수를 붙잡으려고 생각을 했다 이 말이에요
왜 붙잡으려고 그랬을까요?
붙잡아서 뭘 삼으려고요?
왕을 삼으려고 붙잡아서 왕을 삼으려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를 왕으로 삼으면 예수가 예수가 자기들을 왕처럼 왕처럼 왕처럼 살게 해 줄 것 같은 거예요 뭘 보니까 오병이어를 행한 예수를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에요 예수는 예수는 예수는 예수는 왕을 삼기만 하면 자기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서 자기들을 왕처럼 살게 해줄
예수를 이런 왕이 될 것처럼 예수를 생각을 했다라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으로는 영생을 주려 오신 예수님의 목적에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그걸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렇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 크리스도의 메시아 되심은 세상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려 하심 아닙니까?
저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오시는 게 아니에요 저들의 육적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오병 이여라고 하는 이 기적이 워낙 크다 보니까 저들의 눈이 완전히 뒤집힌 거예요 저런 메시아라면 우리의 배고픔의 문제 여러분
인생에게 가장 큰 게 배고픔의 문제 이잖아요 이걸 우리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런 선지자는 없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의 모든 부족함 가운데에서 우리를 해방해서
우리를 아주 풍요롭게 왕처럼 살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 주겠구나 이 오병의 기적이 너무 크다 보니까 그게 자기들의 배고픔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래 가두어버렸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이 문제의
심각성은 어디가 있느냐 하면 사람들만 유대인들만 그렇게 무리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분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무리들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예수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마저도 다 그런 생각을 가졌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그게 어디에 잘 나타나 있느냐 하면
마가복음 가운데 보면 마가복음 6장 45절에서 52절까지의 이 병행본문이 기록이 되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 6장 52절 말씀을 보시면 마가는 이 무리를 걸으신 이 표적 맨 마지막에 이런 표현을 덧붙였어요 52절 말씀을 보세요 52절 함께 읽어봅니다 시작
이는 이는 이는 저희가 그 떡대시던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음 이러라 여러분 여기 저희가는 누구일까요?
마가복음 6장 52절에 여기 나오는 저희가는 제자들입니다 요한과 제자들 마가와 제자들 그런데 제자들 마저도 이 오병 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어떤 상태가 되어버렸다고요?
그 떡대시던 이를 제대로 깨닫지를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 졌다라 저들이 이 오병 이어 기적을 제대로 못 보고요 이 오병 이어의 기적 때문에 저들도 예수를 뭘로 받아들였다고요?
육적인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그런 메시아로 보는 그 마음에 갇혀버렸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요 이 오병 이어 를 대하는 저들에게서 심각성을 느끼셨다라는 거예요 오 이거 큰일 났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오늘 이 다섯 번째 이 표적을
행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이 다섯 번째 표적은 다분히 우리 주님께서 이 사건을 의도하신 이런 측면이 있어요 이 표적은 특별히 누구를 위해서 주신 거냐면 무리를 위해서 주신 게 아니에요 이 표적은 특별히 누구를 위해서 주신 거예요 제자들을 위해서 주신 거예요
이것이 틀림없는 것이 뭐냐면 여러분 마가복음 6장의 45절 말씀을 보시면 45절에 45절에 그 앞에 오병이호의 기적 이후에 이어서 45절을 이렇게 시작했어요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뭐 했어요?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배세다로 가게 하시고 오병이호의 기적 끝에 우리 주님이 서둘러서 제자들을 배 태워서 보내시고 있는 이런 상황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거잖아요 이런 마트보금에도 보면 이 긴박함에 대해서 잘 표현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막 재촉을 해가지고 제자들을 그 무리들과 이렇게 격리를 시키고 있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빨리 이렇게 무리들에게서 떼내 떼내가지고 그들을 건네 보내고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은 어떻게 하셔요?
그 무리들을 또 따로 이렇게 돌려보내는 무리들을 이렇게 보내시는 마트보금가 여러분 그 내용을 한번 나중에 참고해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
무리들하고 분리를 시켜서요 제자들은 배 태워서 배 쓰다 건너편으로 보내버리시고 그리고 무리들은 이렇게 잘 해서 빨리 돌아가라 이렇게 보내놓고 그리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예수님은 뭐 하십니까?
46절에 보시면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이렇게 오병기어 사건 이후에 그 상황을 예수님이 지금 막 이렇게 뭔가 서둘러서 이렇게 제자들을 그들에게서 격리를 시켜내는 어떤 이런 상황을 우리가 좀 잘 볼 수 있어야 된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십니까?
저물매 47절 보시면 마가복음 6장 47절에 보면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묻해 계시다가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는데 계속 기도만 하고 계셨다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기도는 얼마나 하셨는지는 잘 표현이 돼 있지 않지만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따라서 보면 기도는 한 무리들이 이렇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동안 그들을 피하는 어떤 이런 시간 정도를 산에 가서 기도를 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은 어디가 있느냐
바로 내려오셔가지고요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는 걸 바라보고 있다 이 말이에요 무태 홀로 이렇게 계시다가 그러니까 해질녘에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 우리들에게 오병의 기적을 통해서 그들과 식사를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물기 전에 그들을 다 이렇게 돌려보내고
제자들은 배 띄워서 보내고 예수님은 산에 가서 잠깐 기도하시다가 하는 사실은 말씀의 분위기로 보면 기도하신 게 아니라 기도하시는 척 하다가 저들을 피할 목적으로 기도하시러 올라간 거죠 그리고 그들이 다 돌아가고 이런 걸 보시고는 바로 내려오셔서 지켜보고 계신다 이 말이에요
뭘 지켜보고 계십니까?
건너가고 있는 배 타고 건너가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마음가운데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도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마음이 누구에게 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여러분 그 해변가에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건너가는 저들을 언제까지 보실까요?
얼마나 보고 계셨을까요?
48절 말씀을 보시면 바람이 거스름으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젖는 것을 보시고 초저녁부터 시작을 해가지고요 계속 보고 계시는 거예요 언제까지 봐요?
밤 사경 즈음에 밤 사경이면 몇 시인 줄 아세요?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 이게 밤 사경의 시간이거든요 그러니까 초저녁부터 지켜보고 계시는 예수님이 그걸 언제까지 보시느냐 새벽 3시가 되기까지 보신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아무리 보시기 시작한 시간을 저녁 10시라고 잡으면 10시라고 생각을 해도 최소한 몇 시간을 보고 계신 거예요
5시간 동안을 지켜보고 계시는 거예요 5시간 동안을 5시간 동안을 그래서 제자들이 힘겹게 괴로이 노 젖는 것 성경의 표현이 저는 참 재밌어요 마가가 특별히 이 표현을 썼어요 괴로이 노 젖는 것 우리 주님이 그걸 다 지켜보고 계셨더라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뭐 하려고 하셨다고요?
지나가려고 하시네 여러분 이 설정이 너무 재밌지 않아요?
예수님 지금까지 제자들을 어떻게 하는지 다 지켜보셨단 말이에요 근데 이제 한 5시간을 지켜보신 끝에 괴로이 노 젖는 저들을 우리 주님이 마치 이렇게 하시는 것 같아요 이게 배라고 그러면 모른 뒤 옆으로 그냥 지나가시려고 하는 것처럼 바다 위를 걸어서 쭉 오신단 말이에요
다른 복음서들 보면 제자들이 그걸 봅니다 그래서 유령인 줄 알고 막 무서워하잖아요 근데 주님은 그들 곁을 지나가시려고 하는 것처럼 지나가려고 하시네 그러다가 그 배에 올라가시니까 풍랑이 뭐예요?
잔잔해졌더라 그리고 52절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 일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통해서 제자들만을 위해서 지금 이 무리를 걸으시는 이 사건을 계획을 하신 건데 이 일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일까 하는 거예요
무엇일까요?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거예요 주님은 당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내가 육적인 메시야로 인식하는 것 이게 너희들이 나를 너희들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온 그 육적인 메시야로 인식하는 이건 정말 심각하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욕기서 말씀을 보시면 욥기 9장 8절에 하나님을 그렇게 표현했어요 하나님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분이시다 이런 표현을 하고 있잖아요 하늘과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그 생명을 공급하시는 창조자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여러분 누가 바다 위를 걸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창조자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인식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나는 너희의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무리를 걸으신 본문의 신학적인 의미예요 그러면 오늘 이 본문은 오늘 사는 우리들에게는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분명히 아셔야 돼요 분명히 해야 될 게 뭐냐면 우리가 뭘 우리 마음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가 뭘 위해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지 명확히 해야 된다 오늘 주님이 그걸 말씀하시려고 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도달해야 되는 목적지가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거기에다가 둬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도달해야 될 목적지 그게 무엇입니까?
그곳이 어디입니까?
오병이어로 대표되는 표적입니까?
배부르게 사는 것입니까?
우리의 모든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예수가 여러분 예수를 믿으시는 목적이 뭐예요?
뭐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이 말이에요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의 왕이 되시도록 그걸 위해서 믿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게 무엇이냐 이 말이에요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해결해 주시는 게 어떤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 예수를 통해서 가고 싶어하는 그 목적지가 어디이냐 이 말이에요 여러분 그것이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종국적인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까요?
그 목적을 바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더라 목적지가 분명해야 되는데 그 목적을 바로 하지 못한 채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이 목적했던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목적지에 가는 도중에는 풍랑과 광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에서는 이것이 여러 가지로 강조가 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요한복음 6장 16절 17절 말씀을 보시면 여기 이렇게 말하지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 하셨더니 여러분 날이 금방 어두워졌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 가운데 놓여져 있다라는 거예요 오늘 이 16절에 저물매라는 이 단어가 표현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이 저물매라고 하는 이 단어는 불안하다라는 뜻입니다 해가 지는 저녁을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 가로등 불빛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어둠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를 못해요 그렇죠?
그런데 여러분 저 시골에 가보세요 제가 쌍치에 이렇게 예전에 기도하러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빛이 하나도 없는 그 칠흑 같은 어둠을 그 밑에 최집사님 댁에 이렇게 밥이라도 먹으러 갔다가 저녁에 올라올라 치면요
몇 바탕을 논두렁으로 빠지는지 몰라요 길을 갈 수가 없어요 한 발짝도 갈 수가 없어요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거잖아요 여러분 제자들은 해가 지고 난 뒤 그 어둠이까지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요한은 특별히 이 점을 강조를 했습니다
17절에 이미 어두웠고 그런 상황 속에서 이미 어두워졌고 요한이 강조하는 그 표현을 잘 보세요 17절에 이미 어두웠고 그리고 뭐예요?
문제는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라라는 거예요 이미 어두워져 버렸는데 예수는 저희에게 오시지를 않아요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를 않았다 이게 표현하는 게 뭐냐면 저들의 그 마음 가운데 있는 그 불안한 상태를 더욱더 극적으로 이렇게 강조를 하려고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거예요
18절 말씀을 보시면 설상가상으로요 거기에다가 뭐까지 일어났다고요?
큰 바람이 일어 파도까지 일고 있다는 거예요 밤은 깊어 가는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기들만 배를 타고 건너가는데 이미 어둠은 임해버렸고 예수님은 그들 안에 계시지를 않고 거기에다가 더해서 큰 바람이 일어가지고 파도까지 치고 있다 저들의 그 불안에 한계치에 다 다르는
이런 상황이 저들에게 임해 있다 이걸 표현하는 거지 여러분 열두 제자 중에 여섯 일곱 명은 갈릴리바다 어부 출신이지만 이 태풍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이 소위 마가복음 6장 48절에 마가가 표현했던 노 젓는 뭐예요?
괴로움 노 젓는 괴로움입니다 여러분 역풍의 노 젓는 고통을 아십니까?
거슬리는 그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배를 앞으로 나가게 하려면 여러분 이 노를 져 보셨어야지만 이게 얼마나 수고로운지를 아실 수가 있어요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그런 힘든 그 상황을 예수님은 뭐 하고 계신다고요?
다섯 시간이 넘도록 계속 보고 계신다 이 말이에요 예수님은 그런 상황을 다 보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그걸 압니까? 모릅니까?
제자들은 모른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정말 주님을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더라라는 거예요 인생에는 노 젓는 괴로움이 있어요 그것도 그 노 젓는 괴로움이 밤새도록 지속되는 다른 때 같으면 몇 시간이면 건너갔어야 돼요 그런데 그 거리를 건너가지를 못하고
오늘 요한이 십여리쯤 가다가 이렇게 표현했잖아요 그러니까 그 갈릴리 바다의 중간밖에 못 간 거예요 젠작 건너갔어야 될 그 거리를 그 노 젓는 괴로움을 계속 당하면서 역풍의 수고만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괴로움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 주님의 존재
이런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라는 거예요 우리 예수님은 여전히 그걸 지켜보고 계시는데 예수님은 여전히 그걸 지켜보고 계시는데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외면한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걸 바라보고 계시는데 내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내 형편을 지켜보고 계시는데 우리는 주님은 내게서 떠나셨는가 주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가 주님은 계시지 않는 것인가 어디 계시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의심해서는 안 돼요 여러분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지나치게 기적으로만 몰고 가려고 생각을 해요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해서 초자연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 신앙에 기대하는 것이 뭔가 문제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 삶 가운데 이 노전문 수고가 치족되면 왜 그런 고통이 있어야 되지?
이걸 뭐하고 연결을 시키느냐 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으로 연결을 시켜요 기적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 보니까 신앙을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아가다 보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신앙은 그런 것 아니에요 사실 더 놀라운 축복은 진짜 축복은 새하늘과 새 땅이잖아요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은 그 축복은 그 축복이잖아요 여러분 로마서 8장 18절에서 2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그것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어요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대비시켰어요 현재의 고난,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
우리가 마땅히 바랄 것은 뭘 바라야 돼요?
이 땅의 유괴문제를 해결받는 그게 아니라 몸의 구속 우리 몸이 구속을 받아서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그걸 바라는 것 그게 신앙이라고 말을 하잖아요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을 보아도 그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초자연적인 축복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것 같으면
여러분 예수님이 당하신 그 십자가의 고난을 뭘 가지고 설명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에요 그토록 고난당하신 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십자가의 가치를 뭘 가지고 우리가 인정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 앞에 광야가 있었듯이
제자들이 목적지에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났듯이 인생에는 광야와 풍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와 풍랑 속에서도 노젓는 괴로움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그게 신앙이라는 거예요 그 노젓는 수고 속에서 그것이 그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노젓는 수고를 통해서 참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게 신앙의 본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신앙의 길에 광야가 있고 풍랑이 있고 노젓는 수고가 있다라고 하는 것 그게 지속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려던 땅에 이르려면 여러분 그 풍랑 가운데에서도 예수 크리스도를 영접할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21절의 강조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요한복음 6장 21절에 이 강조점을 한번 잘 보세요 21절 같이 읽어보십시다 시작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누구를 영접하니 예수를 영접하니
결론이 뭐예요?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비로소 여러분 예수님이 그 배에 오르시자 이 영접이라고 하는 단어는 람바노라는 단어예요 람바노가 무슨 뜻이냐면 취하다 받다 이런 뜻이거든요 예수 크리스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면 그 창조주 하나님을 취하면 예수를 육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 여러분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해주신다고요?
가려던 땅에 도달하게 만들어 주신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땅과 바다의 주권자이신 그 예수 크리스도를 모셔 드려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짊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시는 이런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요 결단코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세상은 불평등하지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하는 걸 믿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간에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고 나를 보고 계신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여전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의 흐름을 보시면 오병여의 기적 이후에 제자들이여 신이 나고
우쭈렀습니다 예수님이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그리고 그런 예수의 제자가 됐다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거예요 그러나 이런 우쭈렀함은 우리 믿음에 좋아요 나빠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신앙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이 사람들의 자랑은 표적을 본 것 때문이지
그런데 그건 아직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지금 제자들에게 하늘을 날 것 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그런 예수를 자기들이 따라다닌다라고 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하늘을 날 것 같은 그런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그 기쁨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우쭈러는 제자들을 재촉을 해서 배를 띄워서 건너편이
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정도의 큰 폭랑을 만나요 여러분 그 폭랑 앞에 제자들은 괴로이 노를 쳤습니다 심리를 노를 쳐서 갈릴리 바다의 한가운데에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그 노조문 수고를 밤새도록 그 수고 가운데에서 머물러 있는 그 싸움을
지금 5시간, 6시간, 7시간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고통 가운데 싸우고 있는 거예요 마태는 거기에다가 베드로의 믿음 문제를 추가를 했어요 마가는 그 이야기에다가 우리가 마땅히 붙들어야 될 것들을 붙들지 못하는 그래서 당하는 그 어려움을 강조를 했어요
그런데 요한은 어떻습니까? 요한은?
21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이것이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게 하는 핵심이다라고 하는 문제를 짚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에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믿음의 목적이 중요하고 방향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려는 땅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시려고 하는 목적이 있냐 이 말이에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어서 얻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뭘 얻으시려고 예수를 믿으시냐 이 말이에요 여러분 신앙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여러분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동일한 것이어야 돼요 예수님이 이 땅에 뭐 하러 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오셨어요 가장 큰 인생의 문제, 죽음의 문제, 영원한 삶의 문제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그것 얻기 위함이에요 그 목적이 분명해야 돼요 그게 흐트러지면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그 목적기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깨우쳐 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분명히 붙잡아야 될 그걸 위해서 신앙을 가질 수 있고 다른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도하겠습니다
아레리야 아멘 찬송 344장 찬송하겠습니다 찬송 344장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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