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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아브라함의 연약함 20

허명도 · 창12:10-20

제작일 202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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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연약함 (창 12:10-20) 20260822 허명도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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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이주하면서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주었고, 이후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며 모든 일을 선으로 이끌어가셨다.

본문로마서 8:28
  •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이주하는 선택을 했으며, 이는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 이 결정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구원하시며, 모든 일을 선을 이루기 위해 합력시킨다고 강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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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선택과 믿음의 연약함

  • 아브라함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이주한다.
  • 그는 아내 사라가 아름다운 여인이라며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
  • 이는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 환경과 상황이 신앙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때로는 믿음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판단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판단에 따라 남방으로 이주했다.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땅에 머무르라고 명하셨고, 그곳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라고 말씀하셨다.
  •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구원하시며 큰 재앙을 애굽에 내리신다.
  •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를 인정하시되, 그분의 뜻을 따라 인도하시며 구원하신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셨고, 결국 그에게 재물을 주었다.
  • 로마서 8장 28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선을 이루기 위해 합력시킨다고 강조한다.

신앙의 교훈

  • 신앙인은 진실을 말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
  • 이 사건은 신앙인의 신앙 부족과 거짓말로 인한 수치스러운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 아브라함의 선택은 이후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예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말씀 창세기 10절에서부터 20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서부터 20절 말씀
찾으셨으면 우리 10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우구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저희들 신앙사활하면서 신앙사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상황과 안 좋은 환경이 우리 신앙에 이렇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더욱더 믿음이 굳건하게 서고 더욱더 그 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또 우리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믿음의 조상이지만 제일 첫 걸음으로 믿음을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연약함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는 그런 부분이기도 합니다.
먼저 우리 전제를 보게 되면요.
우리 창세기 12장 9절을 보게 되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라.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다라.
그때 당시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냐면 하나님께서 임자하신 곳이 정해져 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라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야곱이 형 애서의 죽이려고 하는 이런 상황을 피해서 도망갈 때 베데레에서 이런 꿈을 꾸는 가운데서 환상과 기사를 보지 않습니까?
하늘 사다라가 있고 또 천차들이 오르락 내리 가는 것을 보고 거기서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깨워서 하는 말이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내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원래 내가 있던 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었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계신 곳이었었는데 거기를 떠나면서 그런 마음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이삭도 그런 마음은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가는 가운데에서 하나의 어떤 다른 상황이 생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방으로 내려가는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느냐.
10절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급에 우고하려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의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왜 점차점차 남방으로 내려갔을까요?
남쪽에 더 가게 되면 그쪽에서 애급이 좀 가깝게 됩니다.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면 굳이 애급으로 가는 걸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점차점차 남방으로 이렇게 옮겨가게 된 것입니다.
왜 남방으로 옮겼을까요?
아브라함이 보기에 남쪽이 더욱더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눈에 좋은 대로 우리는 이렇게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가 더 좋아 보인다. 옮기고.
또 저희가 더 좋아 보인다. 옮기고.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 땅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다시 계속해서 7절 보시겠습니다.
12장 7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래서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바로 그곳에 단을 쌓았다.
그곳에 단을 쌓고.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를 부르는 예배 행위를 거기서 계속하는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거기에 머물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땅을 다 가지게 되는 것이고 거기서 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충분히 체험하시는 이런 좋은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쪽이 더 좋아 보여요.
그래서 점차 점차 남방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우리 눈이 보이는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좋아 보이는 이런 좋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우리는 가질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첫 번째 실수는 여기 있었던 것이고 점차 점차 남방으로 옮겨가는 가운데에서 또 외급에 도착하는 가운데에서 하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와를 위해서 단을 쌓고 여와를 부르는 부분이 없어요.
왜 그랬을까?
어떻게 보면 나타나신 여와를 위해서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과의 동행의 관계가 어느 정도 느슨해지고 나약해졌다라는 부분을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차 점차 상황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고 남쪽으로 가게 되면서 더욱더 쉽게 들으시는 것은 애급의 소식입니다.
기근이 심해지는 가운데에서 왜 애급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애급에는 무슨 강이 있습니까?
나일강이 있어요. 나일강.
그래서 나일강이 애급의 젖줄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큰 기근이 있어도 우리 나일강이 마른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활할 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결과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런 부분에 소문을 듣게 돼서 결과적으로 선택하는 부분은 바로 애급으로 가게 되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10절 보시겠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급에 우거하려 하여 애급에 우거하려 하여 애급으로 내려가야 되겠다라는 이런 마음의 계획과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로 내려갔으니 또 바로 그것을 실행해 옮긴 것입니다.
이는 그 땅의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약에 그 땅에 거하셨으면 어떻게 해서 그게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애급으로 내려가지 않고 기근이 심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거했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 신앙과 비신앙의 차이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쪽으로 불러오신 거예요.
이 땅을 주시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이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 열악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그대로 거했으면 만약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가운데에서 기근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그런 은혜를, 그런 능력을 아브라함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실수는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또 더 나아가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렇게 기근이 심한데 애굽으로 내려가도 될까요?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평소에 단을 쌓고 여하여름을 불렀더라.
예배하기 시작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상황이 됐는데 잠시 동안 애굽으로 내려갔다 와도 될까요?
반드시 가난한 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이 하나님께서 나와 내 자손에게 주신 땅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나중에 때가 되면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자기만의 선택이었고 일방적으로 자기만의 계획으로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원하셨을까요? 원치 않으셨을까요?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신앙인들이 항상 생각해야 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을까? 여기 없을까?
우리가 이사를 할 때도, 우리가 직장을 구할 때도, 우리가 또 다른 일을 계획할 때도, 사업을 할 때도 마 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까? 이 부분을 생각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먼저 저질러 봅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신앙에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기가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고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비신앙적인 부분입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우리가 거둬차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예요.
나중에 거기 또 특별히 이삭 때에도 가난한 땅에 흉렬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애굽으로 내려갈 계획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으십니다.
창세기 26장 1절로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 때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메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땅 아비멜렉에게 이르� �더니 점차점차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좀 더 데려가면 애굽이겠죠.
그런데 2절에 보니까요.
여왁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3절 3절
이 땅에 위하면, 애교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이 땅에 위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내 자손에게 줄이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사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줄이라.
줄이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처럼 애교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위하라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위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다.
충분히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이런 그 길을 열어주시겠다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게 되면 이삭이 그 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물이 일반 사람의 백배였다라는 것입니다.
원래 기근이 심하면 수확물이 적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수확물이 일반 사람의 백배를 얻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내려가지 않고 그냥 거기에 위하면서 기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구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거기에 이렇게 의지하면서 살았다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복을 주셨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부득이하게 애교로 내려갈 길이 또 이렇게 후손때에 생기게 됩니다.
큰 흉년이 들면서 먼저 요셉이 애교로 있을 때였습니다.
앞으로도 흉년이 오랫동안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형제들을 보내서 아버지를 애교로 모셔오게 합니다.
그런데 야교로 모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그냥 내려갔었다.
아버지는 내려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막으셨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애교로 내려가는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이런 부분에 고민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야교로 나타나서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46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46장 2절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교바 야교바 하시는지라 야교비 가로대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며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교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교보로 내려가겠고 이 부분이 또 이렇게 하나님께서 야교비에게 특별히 말씀해 주시는 부분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교보로 내려가겠고 그때 당시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곳, 임지하신 곳 거기에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계신 곳으로 생각했는데 함께 애교보로 내려가시겠다.
동행하시겠다라는 것입니다.
정령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그래서 나중에 정령 너를 인도하여 돌아오게 할 때는 이제 죽어서 장례를 이 땅으로 돌아와서 치르는 내용이 나중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교보로 내려가는 것, 안 내려가는 것,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냐 없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항상 잊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부분을 항상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중국어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이 부분을 그 분들 입에 항상 배워 있어요.
대만에 한번 놀러 오세요.
저는 반대로 한국에 한번 오세요.
그럼 목자님들이 바로 주로 유해니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내 뜻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가겠다.
우리 사도바울도 로마에 그렇게 가기를 원하는데 내 시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원하시면 주의 뜻 안에서 너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없기를 구하노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미의 선택이 여기는 잘못된 믿음 안의 선택이 아니었고 비신앙적인 선택이었다라는 부분을 아브라미의 실수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12장 11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1절부터 13절까지를 보게 되면 아브라미의 더 연약한 모습을 여기에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 그 안에 사례도로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우리 사례에 있어서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우리 아내한테 당신 참 그 이쁘다 하면 다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리따운 여인을 얻은 죄가 바로 그 다음 문제입니다.
애굽에 내려가면서 부인이 결코 이렇게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안 했을 텐데 아리따운 여인이기 때문에 당신을 데려가고 나를 죽이고 당신을 데려갈 거다 이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 보니까요.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고 나는 죽이고 그대를 살리르니 아브라미는 뭘 두려워합니까?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았으면 뭐하러 애굽에 내려옵니까?
기근이 심해도 그래도 견딜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생과 사회 문제예요.
그래서 우리 사람의 선택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 사람의 많은 선택은 겪어봐야지 그 결과가 나타나야지만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압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이미 그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선택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을 이미 알고 계시고 또 선택이 좋을 때는 더 좋은 복을 더해 주시고 선택이 안 좋을 때도 그 선택을 더 위기를 벗어나는 쪽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의 선택은 항상 이렇다라는 거예요.
거의 대부분이 우리 선택은 더욱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많은 분들이 저에게 그런 얘기를 해요.
목자님, 이 상황만 견디면 제가 교회를 잘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교회 못 나오는 것을 양해를 해달라 그런 쪽으로 얘기를 하세요.
그래서 제가 얘기를 하죠.
지금 이 상황이 하나님께 나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뜻을 구할 때다.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그럼 그렇게 하실까요?
안 그렇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쉬면서라도 자기가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여기저기 인맥 동원하고 또 여기저기 하면서 길을 찾아보기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어려워지는 가운데 처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인간의 능력으로 이제는 해결 불가능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다시 교회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어리석게도 낭비한 10년이다.
낭비한 20년이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13절 보니까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내 목숨을 누구한테 맡기겠다는 겁니까?
목숨을 하나님께 맡겨야지.
왜 아내한테 맡깁니까?
왜냐하면 이 사람이 누이라고 해서 데려갔으면 이 누이를 통해서 누이로 인해서 아브라함을 선대하겠죠.
아브라함에게 더 잘해주겠죠.
왜냐하면 내 아내의 오빠가 되니까 더 잘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으로 인해서 내가 안전하고 당신으로 인해서 내 목숨을 보존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달라.
원컨대 사라에게, 아내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평생 바뀌고 남편으로서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까?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다 보니까 부득이하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서로 부탁하고 들어주는 관계로 되면 이것은 곤란합니다.
나중에 사라가 부탁하면 아브라함 어떻게 될까요?
비신앙적인 일이라도 들어줘야 되겠죠.
나중에 그것이 나오게 됩니다.
하가를 취해서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
안 들어줘야 되는데 또 그 부탁도 서로 들어주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다음에 자신의 께에 의지해서 자신의 생명과 목숨과 재물을 보존하려고 하는 이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보니까 아브라함이 애급에 내려와서 단을 쌓았을까요? 안 쌓았을까요?
기본적으로 우리의 예배 생활이 부족해지게 되면 우리의 많은 생각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생활에 충실한 사람은 제일 먼저 누구의 계획과 누구의 뜻을 부를까요?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 생활에 충실한 사람은 누구를 의지할까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아브라함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이런 마음이 앞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생각을 자초하게 되고 이런 계획을 세우고 결과적으로 전혀 하나님과 무관한 자기의 방법을 이렇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느라.
여기도 지금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있지만 남편이 내 목숨 보존해 줄 수 있습니까?
아내가 내 목숨 보존해 줄 수 있어요?
누구를 의지합니까? 우리는 의사로 의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사도 내 목숨을 좌주의할 수 있습니까?
결과적으로 우리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경각기에 달려있을 때는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14절부터 16절 보시겠습니다.
14절 아브라함이 애국에 이르렀을 때
애국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쁜 아내를 얻은 대가를 이렇게 치르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항상 외모를 엄청 중시합니다.
그런데 우리 살아본 어르신들은 외모는 몇 년밖에 안 간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품이다, 성격이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외모는 몇 년이죠?
3년? 잠깐. 성품은 평생입니다.
거기다가 신앙은 영원입니다.
예전에 우리 박은도 목장님이 항상 용감하게 말씀하십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고기에서 듣지 마시고 우리 산에 보게 되면 정말로 좋은 나무들 다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다 베다가 그걸로 갖다가 좋은 목재를 만들어서 우리 인간의 필요한 데 다 씁니다.
그래서 마지막 산에 남아있는 것은 볼품 없고 보잘것 없고 별로 도움 안 되는 것만 산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 것처럼 우리 가정도 거기까지만 합시다.
아리따물 보았떼입니다.
15절 보시겠습니다.
16절 이에 바루가 그를 인하여 아브라함을 후대하므로 아브라함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낙이와 약대를 얻� �더라.
두 개가 교환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빼앗기고 재물은 얻었어요.
좋을까 안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좋아해요.
남편과 아내가 둘 중에 하나가 빨리 가야지 그걸로 보상금으로 잘 먹고 잘 산답니다.
참 불행한 생각이죠.
물질만능주의.
이렇게 해서 후대함으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낙이와 약대를 얻었긴 얻었는데 그날 밤에 잠이 편히 올까요?
그래서 그 어리석은 선택과 어리석은 계획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는 가운데서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도움이 없어서 끝나고 애국으로 따와서 돌아오게 될 때 아내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까?
이것은 아내를 되찾아올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선택이죠.
평생 그럼 애국에서 살 겁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은 가난한 땅인데 그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내 때문에 애국에서 평생 살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보니까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능력도 스스로 발로 고도 차버린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인생에 있어서는 정말로 가장 불행한 아내가 없는데 자기 혼자인데 나머지 전부 다 집안에 있는 노비와 종들 입니다.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요?
인생의 의미를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그런 결과를 스스로 만든 것이 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니까 양과 소와 노비, 이 노비 가운데서 나중에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브라메게도 노비를 주 었지만 사례를 데리고 갔을 때 사례를 시중두는 노비, 몸종을 바로가 당연히 사례에게 주었겠죠.
그 사례의 몸종이 나중에 애국에서 나올 때 따라 나오게 됩니다.
이름이 뭔지 아시죠? 하갈.
그래서 그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과 나중에 이삭의 후예들이 평생 전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이 지금 이미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영땅으로도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6장 보시겠습니다.
16장.
11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6장 11절.
12절 보시겠습니다.
다 겁도 없이 무조건 들이받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치겠고 심지어는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질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이게 지금 성취되고 있는 거잖아요.
아랍과 이스라엘의 싸움.
아랍과 모든 민족과의 싸움.
지금 미국이 위란을 왜 공격을 합니까?
똑같이 이런 부분인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류의 전후세까지 미치는 이런 엄청난 일이 이렇게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럴 때 아브라함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우심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7절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안에 사례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어떤 재앙인지는 기록되지 않았어요.
아무튼 큰 재앙이 내렸는데 당연하게 애굽에도 박수들이 일겠죠.
이 재앙이 왜 내린 거냐.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것은 아브라함의 안에 사례를 데려온 연고다.
이런 부분으로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18절 보니까요.
바로가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하여 접하였느냐.
내가 어찌하여 그를 내 아내라고 내게 구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를 누위라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내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아브라함을 불러서 책망을 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수칙인 거예요.
신앙사를 하는 사람이 비신앙, 신앙인들에게 책망 받는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부끄러운 거예요.
예전에 제가 청주에 있을 때 제가 고2, 아는 형 집에 가게 됐는데 그 형은 고3입니다.
저녁 먹고 같이 공부하자고 이렇게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그 집으로 내려가려는데 인도로 먼저 내려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저쪽에서 인도에 오더바이 한 대가 오더라고요.
그런데 인도가 그렇게 넓지는 않으니까 제가 오더바이 가오니까 오더바이가 좀 넓잖아요.
그래서 피해서 지나갔는데 지나가면서 보니까 이분이 넘어지시더라고요.
저는 선한 의도로 얼른 자전거를 세우고 다시 돌아와서 오더바이를 이렇게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저를 딱 잡더니만 너 때문에 내가 넘어졌고 넘어지면서 여기 배기통이 있잖아요.
배기통에 발목을 이렇게 대워서 화상을 입었으니까 배상 받아든다고 저를 따라오라고 끌고 가더라고요.
끌고 갔는데 우리 교회가 옛날 청주교회에 옆에 한 건너 건너서 그 옆집에 사시는 분이시더라고요.
저한테 계속해서 서로 잘 잡아놓아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니 나랑 부딪히지도 않고 혼자 넘어지고 왜 나한테 보상해달라고 하느냐.
그분은 또 네 더배로 내가 넘어졌으니까 네가 보상을 해 줘야 된다.
너 어디 사냐.
그런데 순간적으로 제가 여기 산다고 했으면 됐을 텐데 저 멀리 살아요.
그래서 둘이 계속해서 티비카가 하고 있는데 저희가 왔습니다.
부인이 내려왔어요.
부인이 내려와서 하는 말이 이제 그만 보내요.
여기 교회집 아들이에요.
얼마나 얼굴이 뜨거운지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그걸 했어야 되는데 제 딴에는 할머니가 계시니까 또 병원비 보상하려면 좀 많이 돌아가니까 그냥 멀리 살아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자전거를 타고 그 집까지 가는 사이에 이 얼굴에 뜨거움이 가시지 않았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바로바로 이렇게 진실을 얘기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분 볼 때마다 피해갔어요. 제가.
왜냐하면 교회집 아들이 거짓말했잖아요.
목사님 아들이 그것도.
평생 남다라고 그것이.
아직까지 제가 마음속에 그것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가 아브라함을 책망했어요.
아브라함이 엄청 부끄러운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말해서 이방인들한테 책망받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이렇게 기록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고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 보시겠습니다.
바로왕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에게 발생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주와 재앙을 내리셨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죠.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고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시기 때문에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이 그 부분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부분에 확신을 가졌다면 기근이 있다 할지라도 그 땅에 머물러서
있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근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어야 된다는 거예요.
기근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변치 않아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브라함은 그런 환경과 상황에서 신앙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브라함의 잘못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아브라함은 나중에 아내를 도로 찾을 수가 있었고 또 애급에서 나오게 될 때 많은 재물을 덤으로 얻어서 나올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가 준 재물을 다시 돌려줬을까요? 안 돌려줬을까요?
여기 보니까 마지막에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장 20절을 보게 되면 바로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다 보내었더라.
준 것은 다시 돌려주지 않고 다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부터 같이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권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켜대며 도살할 양같이 역임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이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례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기품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사랑으로 우리에게 천국의 기업을 약속을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구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가운데서 이것을 풍성히 누리시는 우리 천학계 성대님들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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