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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_서로 교제하며 (말씀: 행 2:42 찬송: 부3, 455)

제작일 202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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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 교제의 중요성과 신앙 공동체의 역할, 그리고 성도 간의 교제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제공됨.

본문성경 2장 42절
  • 예수교 교제는 단순한 친교를 넘어, 신앙 공동체 내에서의 영적 교류와 나눔을 포함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는 천국의 본질로 설명됨.
  • 교제는 서로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며, 신도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데 중요한 시간임.
  • 부모의 신앙생활은 자녀의 신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치유하고 회복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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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의 의미와 중요성

  • '교제'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로 '함께 나누다'는 의미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는 천국의 본질로 설명됨.
  • 교제는 단순한 친교를 넘어, 신앙 공동체 내에서의 영적 교류와 나눔을 포함함.
  • 가정, 교회, 부부 간의 교제는 서로의 영향력과 가치관을 나누는 과정으로 설명됨.

교제의 목적과 방향

  • 교제는 판단이나 비난이 아니라, 서로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임.
  •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 교제해야 하며, 세상의 모임과는 달리 신앙적 가치관과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해야 함.
  • 성도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교제를 통해 나누어야 하며, 교회 공동체는 이를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치유하고 회복해야 함.

신도회와 공동체의 역할

  • 신도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화시켜 실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시간임.
  • 교회는 개인적인 구원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구원을 이루는 곳임.
  • 신앙생활에서 부모의 영향력과 자녀의 소중함, 교제를 통해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 강조됨.

추가 정보

  • 찬송가 목록과 안식일 기도 시간, 목자님의 방문 일정 및 영원회 일정 변경 사항이 안내됨.
전사(자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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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42절 말씀을 본문으로 서로 교제하며 라고 하는 제목삼아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사실 오늘 이 주제로 말씀을 준비한 데에는 우리 동부 그리고 의정부 교회가 신도회로 오후 예배를 운영을 하고 있죠.
대부분의 모든 교회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동부교회는 8월부터 신도회가 개편이 되어서 새로운 신도회 구성원으로 신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신도회가 교회에서 왜 운영을 하는 것이며 또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신도회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보고 다짐해보고자 이렇게 말씀을 주제를 택했습니다.
원화업기는 오늘 이 시간을 시작으로 우리 동부교회와 의정부교회 신도회가 주님 안에서 더욱더 활성화되어지고 또 영적으로 성장하는 그런 기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시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이 사독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
사실 42절부터 47절까지의 내용을 쭉 읽어보시면 초대교회, 사독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자세히 말을 해주고 있죠.
한번 쭉 보시면 저희가 42절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위를 팔아 각 사람의 피로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
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저는 사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 찬미수교회도 언젠가 이 모습으로 회복이 될 거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교회도 하루빨리 이렇게 매일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전도와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넘치는 이러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는 서로 교제했다라고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성도님들 그 당시 교회 성도들이 서로 교제했다라고 하니까 이 교제가 어떤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 교제라는 단어를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잘 사용을 하진 않아요. 그렇죠?
어르신들 이성교제 교회에서 할 때 그렇게 사용을 하는데 우리가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까 이 단어를 생각을 할 때 친교라고 하는 의미 정도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친교.
혹시 제 말이 동의가 되십니까?
그래서 우리 사독교회 성도들이 서로 교제했다 그러니까 아 자주 만났구나. 자주 만나서 놀러도 가고 밥도 같이 먹고 뒤에 떡을 같이 뗐다고 하니까 밥도 같이 먹고 그렇게 했구나라는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에서 이 교제라고 하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그 용래 그러니까 사용된 용법들을 쭉 찾아보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교제라고 하는 것이 단순 친교의 의미를 넘어선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먼저 이 교제라고 하는 이 단어가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코이노니아.
이 단어는 좀 익숙할 수도 있거든요. 코이노니아.
이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단어를 한국 단어로 교제라고 번역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 원문을 놓고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코이노니아 했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게 무엇이냐.
이것을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1서 3장 3절 말씀 보겠습니다.
요한 1서 1장 3절 지금 우리가 이 성경에서 말하는 교제라고 하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지금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이 단어가 요한 1서 1장 3절에서는 이렇게 쓰이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여기는 교제라는 단어가 없죠.
그런데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단어는 있습니다.
무슨 단어일까요?
사귐입니다. 사귐.
여기서는 사귐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성경을 이렇게 쭉 찾아보시면 이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단어를 사귐, 교제, 참회, 교통 등등, 동정 등등으로 여러 단어로 번역을 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정확히 뭔지 오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코이노니아, 이 교제라고 하는 단어는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함께 나누다 라는 뜻입니다.
함께 나누다. 그러니까 함께하다, 연합하다, 나누다 이런 뜻이 있는데 이거를 다 그냥 축약해서 함께 나누다 라는 뜻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 함께 나눈다는 게 왜 중요하냐면 자 이제 성도님들 이렇게 생각을 해보셔요.
우리가 다 천국에 가기로 소망하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천국에 가시면 뭐 하실 것 같으십니까?
우리가 이제 경험해 보지 못한 거여서 천국에 가면 마냥 좋다는 것은 알겠어요.
슬픔도 없고 기쁨고 영원히 행복하고 그런 것이 천국인데 이제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나중에 천국에 갔어요?
그러면 실제로 천국에서 뭐 하면서 지내실 것 같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시죠?
천국에 갔더니 맨날 오마카세지 찾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닐까요?
아니면 경치 좋은데 이렇게 붕붕 날아다니면서 여행하고 다닐까요?
성도님들 천국에 가서 뭐 할까?
물론 거기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좋은 경치를 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천국에 가서 오늘날 내가 우리 성도들이 한 가지 하는 분명한 사실은 뭐냐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거예요 그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이 교제하는 상태가 곧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되는데 천국은 어떤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곧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그럼 반대로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그곳이 어딜까요?
사실은 지옥입니다 지옥이 다른 곳이 아니에요 그러면 왜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천국일까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십시다 왜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천국이라고 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영생, 생명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 세상에 생명이 그냥 어쩌다 보니까 저절로 뿅 하고 생겨났습니까?
생명 누가 만들었죠?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복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십니다 기쁨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천국이냐면 그 하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도 받고 복도 받고 기쁨도 받고 평안도 받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가 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럼 반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없어요 그래서 그것을 뭐라고 부르죠?
지옥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그래서 성도님들 천국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있는 것을 서로 나누어 받는 상태를 천국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 좋아하시는 대로 천국 가서 나중에 다 누리실 텐데요 분명한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없는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이걸 헬라우로 뭐라고 한다고 해요?
코이노니아 한다는 겁니다 천국에 가면 분명한 것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리고 거기 천국에 있는 형제자매들과 서로 교제 나누며 삶 을 살아갑니다 한 말씀만 참여하셨고요.
빌리뽀서 3장 10절 같이 읽겠습니다. 빌리뽀서 3장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회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0절에도 코이노니아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참회하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코이노니아, 교제한다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부활에도 참여하고 그리고 더불어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받았던 고난에도 참여하고 함께 그 모든 것들을 참여하고 나누는 것을 교제 코이노니아라고 하고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소망,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고 싶다라고 하는 그것 역시도
실체는 뭐냐면 하나님과 모든 것을 함께 서로 나누고 교제하는 것을 코이노니아 그리고 곧 사귐이라고 합니다 유한일서 1장으로 아까 돌아가셔서 유한일서 1장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제 그러한 개념으로 유한일서 1장 3절을 보시면 더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6절 7절 7절만 같이 읽겠습니다 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 그래서 코이노니아 교제라고 하는 것은 함께 나누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나누는 것을 쉽게 뭐라고 한다고 해요?
천국에 간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는 이유도 지금은 불확실할 것 같고 지금은 잘 보이지 않고 지금은 잘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창조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과 그 완전한 나눔으로 나아가려고 우리가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하는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하기 위해서 불명확함 불소통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과 모든 것들이 다 일 치가 되고 뚫려서 하나님과 교제되는 상태를 우리가 천국이라고 한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세우신 이 교회 공동체에 있는 성도들과 서로 교제하는 겁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이 땅에서 교회 안에서 서로 교제할 때 코이노니아 할 때에
영적으로 하나님과 코이노니아 교제하게 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되는 모습이 어떤 모습 이라고 해요?
교제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교제의 성도들과 함께하며 서로의 것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됩니다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교제라고 하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면 이해가 되시는데요 제가 지금 교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사실 이 교제라고 하는 것은 꼭 교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만이 아니어도 교제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요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나의 존재가 생기고 내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죠
그래서 사람은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누가 됐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는 나의 영향력을 받기도 하고 그 사람의 영향력을 내가 받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 주고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와닿게 말씀을 드리면 옛말에 이런 말이 있죠 부부는 어떻게 해야 된대요?
부부가 닮는다라는 말이 있죠 부부가 닮는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얼굴이 비슷해져 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 부부가 닮는다라고 하는 것은 뭐가 닮는다는 걸까요?
생각이 그리고 서로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그 존재가 서로 부부로 연을 맺고 한 가정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생각하는 바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그리고 가치관들이 서로 서로 하나 되어간다고 할 때 부부가 닮는다라고 하죠 그게 교제입니다 그게 코인혼이라고 해요
사람은 내가 가진 영향력을 다른 사람에게 이거는 내 선택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셔야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이 막 짜증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화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그 모습을 계속 보면 나도 어때요?
내가 어때요? 기쁘고 신나고 행복하나요?
나도 짜증나고 화나잖아요 왜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만 하냐고 그렇죠?
이거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매 사이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과 옆에 있고 살아가면 그 영향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받아요 받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내가 어디 속해 있는 동아리든 특히 가정은 그 교제권 아래에서 서로의 것들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라고요 그래서 성대님들 자녀들은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그 자녀들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의 전부는 사실 부모입니다
부모가 그 자녀에게 보여주는 모습 들려주는 말들 경험해 주게 하는 모든 것들이 그 자녀의 세상이 되어서 거기서부터 생겨져 갑니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 결혼을 해야 된다고 그러고 신앙 안의 가정으로 자녀들을 키워야 된다고 하죠 제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목회를 할 때 학생들이 교회를 잘 나오다가도 어느 기간만 되면 학생들이 교회를 안 나와요 어느 기간에 안 나올까요?
시험 기간에 시험 기간에 안 나오거든요 그러면 이제 전화도 하고 가서 신방도 하고 건면하죠 안식을 지켜야 된다 하나님한테 그래도 지혜를 구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된다 그러면 이 자녀들이 이렇게 대화를 하다가 이제 마지막에 가서 막 핏살기처럼 던지는 핑계가 뭔지 아십니까?
뭔지 아세요?
엄마가 가라는데요 그러면 이제 차원이 달라져요 이거는 이제 그 아이와의 상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 부모하고 해야 되는데 이건 더 어렵죠 성담들 부모가 목숨 걸고 안식이를 지켜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렇게 살아가면 자식들이 그걸 보고 그게 자식의 신앙이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안식이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 그래 신앙 생활을 하니까 안식일은 잘 지켜야지 아니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못 지킬 수 있는 경우도 있는 거 아니야?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여행 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살면 그 세상이 아이에게 말을 안 해도요 예?
예야 안식일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어겨도 돼?
이렇게 말을 안 해도 아이들이 그걸 보고 아 그래도 되는구나 라고 배운다고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게 전달이 됩니다 왜 그러냐면 그게 교제권이어서 그래요 교제권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이 교제라고 하는 것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가 아니어도 세상의 모임도 어느 모임이든 사람이 모인 곳에는 그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세운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가지고 교제해야 하는 것인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있어요.
교제는 다 하는데 교회는 무엇을 가지고 교제하는 거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과 그 신앙적 가치관을 서로 나누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성도인들 교회도요. 성도인들 이렇게 모이잖아요.
말씀을 안 해도 아마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그 사람, 사람이 한 명 한 명이 어떠한 삶의 궤적으로 살아왔는지 저 사람의 신앙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압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과 그 삶의 모습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할 목적이 아니어도 마치 부대껴 보면 아, 이 사람의 신앙이 지금 하늘에 있구나 아니면 이 사람의 지금 마음이 이 땅에 가 있구나
이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안다고요, 모른다고요.
알아요.
성도인들 한번 본인을 생각을 해보십시오.
알지 않습니까? 느껴지잖아요.
압니다.
그렇게 해서 나눕니다.
그것을 나눠요.
그런데 이제 교회가 추구하는 바,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것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서 서로의 삶의 가치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렇게 살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나눌 때 자기의 삶을 나누기 이전에 항상 무엇을 중심으로 나눠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것을 나눠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이 교회 공동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드리면 제가 운동을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까 축구를 통해서 교제할 수 있죠.
운동을 통해서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 운동, 축구를 하고 하는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서로 나눌 거예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 나누겠죠.
건강해야 된다.
몸 건강하려면 열심히 운동해서 축구도 해야 된다.
그리고 또 어떤 것들을 나눌 수 있을까요?
잘 이기려면, 승리하려면 어떻게 조직적으로 플레이를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된다.
팀워크가 잘 맞아야 된다.
이런 것들.
지면 억울하니까 다음에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열심히 더 노력해야겠다.
이런 것들 나눌 수 있겠죠.
그런데 교회 안에서 만약에 축구를 한다고 하면 중요한 것은 건강도 있고 이겨야 재미있는 것도 맞지만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축구를 통해서 서로 나누어야 할 가치관은 뭘까요?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기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그 이기는 것으로 내가 우월감을 느끼고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지고 있는 팀을 격려해 주고 때로는 좀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서 내가 플레이를 해야 되겠구나 생각하는 겁니다.
지고 있는 사람들도 내가 비록 지금 지고 있지만 기분이 나쁘지만 그거를 표출하지 않고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그 축구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도 그 선한 가치관을 나눌 수 있죠.
어떤 분들은 손이 크셔요.
그래서 요리를 할 때 음식을 많이 많이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딱 맞게 정량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이 두 가치관이 충돌해서 서로 다투고 누가 오르냐가 아니라 손이 커서 음식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할 때는 그런 것들을 같이 도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같이 이렇게 베풀고 넉넉하게 만들어서 여유 있게 서로 나누고 베풀어야겠다라는 가치관을 서로 나누고 배우고요.
그리고 딱 맞게 해야 된다라고 하는 이 분이 할 때는 그래 낭비하면 안 되지 하나님의 것을 낭비하면 안 되고 계획적으로 되도록이면 정확하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가치관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밥을 먹든 아니면 티타임을 가지든 운동을 하든 등산을 가든 놀로를 가든 그러한 모든 모임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준으로 그 선한 영향력들을 나누려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누려고 그 과정 중에 가장 제일 필요한 것은 뭐냐면 그 말씀을 통해 자기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교제라는 게 내가 가진 잣대를 가지고 상대방의 삶을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대입해서 들여다보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느낀 것들을 그 모임에서 서로 나누는 겁니다.
아까 음식 이야기를 했으니까 내가 손이 커서 타고난 게 어떻습니까?
음식을 막 많이 해요.
매번 남다 보니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동안 낭비가 좀 있었던 것 같구나.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것들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계획적으로 내가 음식을 만들어야 되겠다라고 그걸 깨달았으면 그것을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전의 생각이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내 삶에 느꼈던 것들을 그 모임에서 계속 나누어 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교회 공동체가 점점점점 물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 들어가게 된다고요.
이 사람도 말씀으로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저 사람도 말씀으로 자기의 삶을 돌아와서 그 말씀으로 돌아본 자기의 삶을 꺼내놓고 서로의 영향력을 주고받을 때 점점점 물 들어가요.
마치 옷감에 색소를 입히면 그 옷감에 그 색깔이 천천히 스며들어가듯이 물에다가 잉크를 떨어뜨리면 그 잉크가 물방울에 천천히 녹아들듯이 이 교회 공동체의 교제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성도님들 이 교제권을 형성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을 서로 주고받고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 있어요.
그게 뭘까요?
그게 교회에서 무슨 시간일 것 같습니까?
그게 신도의 시간이에요.
신도의 시간은 그거 하라고 만든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우리가 밥을 먹다가도 신앙적인 이야기하기 부담스럽잖아요.
먹다 체하잖아요. 그렇죠?
때로는 그냥 편하게 밥만 먹고 싶을 때가 있으면 밥만 먹으면 됩니다.
난 놀러가서 난 놀러가는 거에 정말 집중하고 싶다.
그러셔도 돼요.
그런데 신도회라고 하는 이 시간은 자기가 듣고 깨닫고 접한 하나님의 말씀을 뭐하라고?
나누라고 만든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들어가기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효율적인 시간이 바로 신도회입니다.
이 신도회 시간의 긍정적인 측면을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 성도님 한번 잘 생각해 보시면 과거에 한 2, 30년 전만 해도 이 안식일 예배 시간이 오전에도 말씀 오후에도 말씀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오후 그 시간이 소그룹 신도회로 나뉘어서 그 시간으로 운영되는 걸로 지금은 거의 대부분 바뀌었습니다.
물론 옛날이 좋다.
오후에도 말씀을 듣자라고 하는 소수 의견이 있는 걸로 저는 알고 있는데 대부분 그렇게 바뀌었어요.
물론 오후가 말씀 드린 거가 맞다, 틀리다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가 우리 한국참매수교회가 오후 예배를 왜 신도회라고 하는 것으로 이렇게 바꿨을지 혹시 그 의미를 아시는 분들이 계신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왜 그럴까요? 왜 신도회로 바꿨을까요?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말씀을 지금 제가 설교를 하고 우리 성도님들이 들으시죠?
이거는 일방적입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설교자가, 특히 목자가 설교를 해요.
그럼 우리 성도님들은 뭐 하십니까?
듣는 것밖에 없어요.
뭐 갑자기 여기서 손 들고 질문을 하신다거나 제 의견에 막 토론을 하실 용감한 분이 계십니까?
예배 시간이라는 게요.
공적인 말씀을 증거하는 예배 시간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계속 듣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치면 계속 먹기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물론 들어야죠.
먹어야죠.
그리고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먹는 시간과 양이 많아야 되죠.
지속적으로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초기교회 때는 우리 성도들이 말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어야죠.
그러니까 계속 많이 듣고 듣고 듣고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라고 사람이 성장해서 건강한 사람 그러니까 건강한 존재가 되려면 먹기만 해서는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럼 성도님들 건강하다는 것은 잘 먹는 것과 동시에 잘 먹어야 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고 하죠?
움직일 수 있어야 돼요 운동을 해야 된다고요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도 건강한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말씀을 듣기만 해서는 건강한 신앙으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계속 듣기만 하면 귀가 고급이 돼서 듣는 거에는 탁월하죠
그래서 오늘 말씀은 좀 어렵네 오늘 말씀은 좀 쉽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듣는 목적 이유는 뭐냐면 그 들은 말씀을 내 안에서 잘 소화시켜서 그거를 에너지로 만들어서 그거를 활용, 사용하려고 듣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씀을 듣는 이유는 내가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예를 들면 밖에 가서 전도를 하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봉사를 하든지 아니면 다음 세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든지 뭐든지 활동, 일을 하기 위해서 듣는 겁니다 이것이 순환, 골고루 이루어질 때 건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말씀해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모든 성경은 유익하죠 무엇으로 유익합니까?
17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두 번째,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받아서 아, 이게 선이구나 아, 이게 옳은 일이구나 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 그걸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성경을 대해야 된다고요
그게 건강한 몸이고 건강한 신앙입니다 자, 그럼 이제 성도님들 이제 왜 이 말씀을 드리는지 이미 짐작하시는 분이 계실 텐데 성도님들 말씀을 우리가 거의 듣기만 하잖아요 그리고 그게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말씀을 들었어요?
그러면 이 말씀, 내가 들은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해서 소화 아, 이게 이런 말씀이구나 내 삶에 적용했더니 내가 지금 이런 부분이 좀 잘못되었네 내가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 보도록 한번 도전을 해봐야 되겠네 라고 이렇게 소화시켜서 이 소화시킨 것을 내가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일까요?
그게 신도회입니다 그래서 신도회 하는 거예요 신도회가 우리 성도님들끼리 친목 다지고 친해지십시오라고만 해서 하는 게 아니라 들은 말씀을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내 삶에 빗대어 보니 그러면 내 삶이 살아가고 있었구나 아니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구나라고 하는
그런 다짐을 서로 교제 나누는 겁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신앙을 키워주고 서로에게 도전이 되고 서로 부족한 점이 있으면 기도해 주고 보완해 주고 나아가기 위해서 뭐가 있다고 해요?
신도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신도회의 시간을 소중하게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사실 이게 선택이 아니에요 시대가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문명들이 발전을 했죠 그래서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도 다 설교를 봅니다 설교가 뭡니까?
AI에 물어보면 그 설교에 대한 해석 뭐가 잘못됐고 잘됐는지 다 나와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모습도 더 시대 상황과 맞물려가지고 명확하게 나타나냐면 아니 꼭 신앙생활을 같이 해야 돼요?
그냥 내가 예수님 믿고 세례 성령 받았으면 그냥 나 혼자 집에서 말씀 읽고 그 말씀에 어긋나지 않도록 그냥 잘 살아가면 되는 거 아니냐 왜 꼭 교회에 모여서 공동체 활동을 해야 되느냐라고 하는 거에 대해서 이것이 왜 중요한지 모르고 and that's why
그리고 그거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성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죠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은 누가 대신해서 세례 받아줄 수 있나요?
자녀를 아무리 사랑한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가 세례 대신 못 받아줍니다 성령 대신 못 받아줘요 이런 측면에서는 개인적이죠 그런데 구원은요 지극히 공동체적인 겁니다 무슨 얘기냐면 세례 성령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세우신 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어 가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공동체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몸이거든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구원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고 그 안에서 코인노니아 교제권 안에서 서로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요
결단코 선택이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격도 안 맞고 생각도 안 맞고 때로는 갈등이 있어도 그거를 교제권 안에서 풀어가야 합니다 세상은 마음에 안 맞아요 뭐 하면 됩니까?
안 보면 돼요 관계 끊으면 됩니다 회사 사표 내면 돼요 물론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지만 그런데 교회는 그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과 이 교회, 성도와의 관계를 누가 끊을 수 있습니까?
끊길 수 있습니까?
로마서 8장 로마서 8장 39절 말씀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9절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8장 39절 높음이나 기품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냐 성도님들 하나님과 이 교회의 코인노니아
이 교제를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이루어가는 이 교회 공동체의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성향이 안 맞아서 다툴 수 있고 과거에 준 상처가 깊이 패여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죠 그런 것들조차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그런 것들이 메꿔지고 채워지고 회복되어 가는 것을 나누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어야만 합니다 굉장히 실질적인 문제인데요 어떤 분들은 이렇게 신도회에서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삶을 나누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니까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너무 공감을 합니다 그게 뭐냐면 목자님 그런 이야기 해봤자 아무도 기다려 듣지도 않고 심지어 내가 내 스스로 부족한 이야기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그거 다 들었다가 나중에 뭐 할까요?
저 사람 저렇대 라고 난도질 안다는 거예요 내 흉만 사람들한테 공개돼서 나만 괴롭다는 겁니다 그래도 신도회에 하렸더니 어떤 분들은 자기 자랑하느라 바빠요 자기 이야기 자기 가족 자랑 자기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랑 물론 현실적인 신도회의 모습이 아직 우리가 이루어야 할
신도회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이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라는 것을 저도 공감하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의 삶을 나누는 일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러냐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현재 내가 부족한 이야기를 하면 미성숙한 성도가 그거를 듣고 내 험담을 할 수도 있죠 내 판단을 할 수도 있죠 그리고 가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다 이제 수근거림이 되겠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우리의 삶을 최종적으로 누가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냐면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해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십니다
때문에 그 이야기들이 와전되고 커지고 흠이 돼도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나라는 존재를 아시기 때문에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그러한 부족하고 잘못된 일을 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변화되면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성인 모습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거 아니잖아요
내가 말씀을 통해서 내 인품이나 아니면 내 삶의 깊은 문제였던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해결이 되었다면 그동안 수치로 여겼던 그러니까 내가 수치이고 흠이고 험으로 여겼던 것이 내 삶이 하나님 안에서 바뀌면 이것이 반비례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게 이제 성도들이 받을 축복인데요 과거에 내가 많은 죄를 지었어요 고백하는 거 부끄럽죠 다 고백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게 드러났어요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과거에 그러한 죄성들이 이제는 사라져서 이제는 오히려 하나님에게 봉사하고 섬기고 남을 베푸는 삶을 살게 되었잖아요 그러면 이 격차만큼 뭐가 커집니까? 은혜가 커지는 거예요 그러니 내 부족함을 나누는 그 일이 하나님 안에서는 결단코 손해가 아닙니다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진심을 아시고 나를 판단해 주시기 때문에 그것이 교회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뀌잖아요 그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를 그렇게 판단하고 비난했던 그 사람들이 오히려 어떻게 될까요?
부끄러워집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하는 다윗의 시편의 고백이 사실이에요 다윗이 여러 범죄를 저지르고 얼마나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입니까?
그런데 다윗이 그런 것들을 시로 지어요 노래하게 합니다 그 부끄러움을 다 드러내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은혜로 뒤집어줬을 때 그것이 다 다윗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으로 전환된다는 겁니다 이게 교회 공동체에서 나누는 교제의 특수성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있다면 내가 과거에는 이러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혹은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라는 것을 용감하게 담대하게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랑 하는 경우가 있죠 듣기 거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말씀을 온전히 깨닫게 되면 자기 자랑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부끄러움이 앞서요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부끄러워지만 짧게 저희 간증을 하면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첫째를 주셨어요 그리고 첫째가 주영이고 둘째가 주호이죠 그런데 사실 주영이와 주호 사이에 유산을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호가 다시 생겼을 때에 어느 날 또 갑자기 제 아내가 막 하열을 하는 거예요 새벽에
그래서 큰일이 났다고 생각을 하고 주호가 주호가 무사히 잘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주호할 때 호자가 보호한다라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하신다라는 의미인데 그렇게 둘째를 낳고 낳고 이제 앞에 유산을 경험을 하고 보니까 그 첫째만 있을 때는 물론 감사는 했지만 당연히 결혼하면 자녀 놓고 자녀 키우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1년에 그 1년에 그 1년에 그 1년에 그 일들을 겪고 나서 보니까 아, 이 한 생명이 부모에게 오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큰 은혜이구나 라는 것이 체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가 너무 소중하게 여겨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그러면 내 자식이 이렇게 소중하면 누구도 다 소중합니까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태어나는 존재인지가 느껴졌어요 그런데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사실 다 누군가에게 태어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태어나는 존재인지가 느껴졌어요 그런데 여기 계신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사실 다 누군가의 귀한 자녀들 아닙니까
그래서 한 영혼 한 영혼이 그 사람의 존재가 귀한 존재이구나 그동안은 내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못했구나라는 게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건지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지금도 열심히 계속 상기하는데요
이런 것처럼 성도인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지해서 모르는 것들도 있고요 때로는 잘못 알아서 실수하는 것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 깨닫게 되면 와 나 이거 알았다 막 자랑하고 그게 아니라 부끄러워집니다 부끄러워져야 돼요
그래서 내가 아니라 나를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게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서로 교제하며 라고 하는 주제를 통해서 교제가 무엇인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교제는 단순히 침묵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과 이루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제입니다 그 온전한 교제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 간에 뭐 하는 겁니까 교제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말씀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 깨달은 것들, 내가 부족한 점들을 서로 나누는 겁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해 주실 수 있도록 믿습니다 그래서 저와 우리 모든 동부의정부교회 성도님들의 신도의 시간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조금씩 물들어가서 이후에 하나님과 영적인 완전한 교제를 이루어가시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목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민
다같이 일어나셔서 찬송가 45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455장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으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가 내 심을 불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30장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말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마음을 하시고 늘 채워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어깨 말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어깨 말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아멘 아멘 들으신 말씀 기억하시며 다같이 성령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의동문하시겠습니다.
다만하겠소 고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우시께 영원히 쌉나이다.
아멘 이것으로 안식일 내비 마치겠습니다. 광고 드리겠습니다.
8월달 제가 뒤쪽에 있는 달력에도 제가 표시를 해뒀습니다.
8월달 목자님 오시는 주가 8월 4일 화요일, 8월 8일 토요일 안식일, 그리고 8월 29일 토요일 안식일 .
그래서 8월달은 목자님께서 한 달에 두 번 오십니다.
동부랑 저희랑 의논을 해서 1년에 5주차가 총 4번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은 동부, 두 번은 의정부 해서 저희는 8월이랑 10월에 두 번 오실 겁니다.
참고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술제자상길 전도운동 8월이 증거의 달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광고 드린 대로 저희 영원회가 기존의 10월 2일부터 2일, 3일, 4일 금토일이었다가 이제 변경해서 1일, 2일, 3일 목, 금, 토, 목, 일, 저녁, 금, 일, 저녁, 토, 일, 종, 일로 변경되었습니다.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일하면서 마주 보시고 인사 나누시겠습니다.
할렐루야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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