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교회01
사무엘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
신영길 · 삼상8:1-9
제작일 2026. 8. 11.
AI 설교 정리
사무엘상 8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며 사무엘의 아들의 부패를 보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건을 다룬다.
본문사무엘상 8:1-9
- 사무엘의 아들은 불공정한 판결로 백성을 실망시켰고, 이스라엘은 왕을 요구하게 된다.
- 하나님은 백성의 요구를 허락하지만, 이는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왕을 원함을 의미한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의 왕권에 대한 교훈을 제공하며, 오늘날 교회가 의롭게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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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배경
- 사무엘상 8장 1-9절은 사무엘의 아들이 사사로 삼겼지만, 불의한 판결을 했고,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는 사건을 다룬다.
- 사무엘의 아들은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으며 불공정하게 판결했다.
-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아들들의 부패를 보고, 하나님께 왕을 세우라고 간청했다.
하나님의 반응과 의미
-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는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왕을 원함을 의미한다.
- 하나님은 백성의 요구를 허락하셨으나, 이는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의 대비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나라 대신 열방의 왕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오늘날의 교훈
- 하나님은 불의한 왕들을 패하시며,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을 약속하셨다.
- 하나님 나라의 왕은 제사장으로서 복을 빌어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을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
-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의의 나라에 들어왔으므로, 불의한 일을 행해서는 안 된다.
- 교회 안에서 개인의 이익이나 입지를 추구하는 것은 열방의 왕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 우리는 왕과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의롭고 불의한 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화요일 저녁 예배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실 말씀 사무엘상 8장 찾겠습니다. 사무엘상 8장 1절에서 9절 말씀 사무엘상 8장 1절에서 9절까지 말씀 찾으셨으면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사무엘상 9절에서 10절까지 말씀 백성이 내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오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들을 애국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내게도 그리하는도다.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우리는 계속해서 사무엘기를 함께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사무엘기는 어떻게 왕이 세워지는가를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에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성경 전체를 흐르는 그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마지막 게시록까지 하나님의 나라라는 키워드로 설명이 될 수가 있죠. 창세기 1장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과정이 쭉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없으셔서 한 번에 완전한 에덴 동산을 만드실 수 없으셨을까요? 성경에 굳이 첫날부터 그 혼돈했던 하늘과 땅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어떻게 당신이 만드신 그 땅이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도 이루어지는데 그러한 과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완성이 되어 가는지 그것을 알아야 하는 거죠. 마태복음, 신약의 시작을 봐도 그렇습니다. 세례요한도 그렇고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죠. 백의 알아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 신약을 여는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천국이 가까웠다는 거예요. 천국, 곧, 하늘의 나라를 말하죠. 성경은 줄곧 이 하나님의 나라, 하늘의 나라에 대해서 우리 성경을 읽는 성도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합니다 . 오늘 사무엘은 이 사사시대 말기에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속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7장 마지막에 보게 되면 사무엘이 주로 한 일들이 뭐예요?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린 것입니다. 그런데 8장에서 그렇게 사무엘이 열심히 다스리고 다스리고 다스렸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죠.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는 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왕은 이렇게 이 백성들의 요구처럼 그렇게 그들이 요구한다고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 죠.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들의 말을 다 들으라.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의 주요 사건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 왕을 요구하는 사건 바로 앞에 기록된 이 세 구절의 한 사건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사무엘의 아들들에 관한 일입니다. 1절을 보시게 되면 사무엘이 늙음에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자, 성경에서 누군가 늙었다라는 것은 좋은 의미도 되지만 때로는 안 좋은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사무엘이 늙었다라는 것은 좋은 의미가 되기 때문에 사무엘이 늙었다라는 것입니다. 사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게 된 그런 표면적인 이유가 되 죠. 사무엘은 왜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을까요? 이런 일은 앞서 있었던 그 사사기에, 그 사사시대에도 우리가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사무엘이 늙음에, 사무엘이 늙었다는 사실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유를 사무엘이 왜 그랬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더욱더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 훌륭한 하나님께서 세운 그 선지자 사무엘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그래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구절을 볼 때에 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사무엘조차도 이렇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무엘이 인간적인 면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든 사람에게 경계가 되는 일인 거죠. 누구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의 연수가 어떠하든,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 항상 누구라도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거죠. 반대로 그런 오랜 경험 때문에 옳지 못한 판단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무엘이 왜 그랬을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요. 사무엘에게는 동역자가 없었다는 거예요. 7장 마지막 세 구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무엘 혼자서요.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다스렸습니다. 차도 없던 시절, 사무엘이 그렇다고 말을 타고 다녔겠습니까?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다스렸죠. 그런데 혼자였다는 거예요.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참 여러 가지 유익이 있죠.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바로 나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 동역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지를 보면서 나는 어떠한지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의 성과는 나의 사역에 대해서 나의 동역자로부터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또 판단을 받을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항상 교회의 일은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나라로 삼으셨다는 거예요. 이따가도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어요. 지난번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교회에 들어온 데는 사람마다 시간차가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 집단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항상 동역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 자체만 놓고 보면 참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다 하더라도 항상 교회의 덕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거죠 . 사무엘이 자신의 아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아들들이 사사의 역할을 잘 했으면 참 아무 일이 없고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죠. 그들은 사사였지만 판결을 굽게 했죠. 3절 다시 제가 읽겠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를 따랐다는 거예요. 이익. 이익을 말하는 거죠. 자기들의 이익. 그런데 이익을 뜻하는 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불의한, 부당한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이겠죠. 그런데 그 방법도 불의하고 부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 시작부터 사무엘의 집안과 엘리의 집안은 참 대조적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도 대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사무엘의 아들 대의로서 엘리의 아들들과 동일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 불의한 이익을 따랐을 때 우리는 엘리 가문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불의한 이익을 조치면 이렇게 된다는 거죠. 자문 15장 보겠습니다. 자문 15장 27절 자문 15장 27절입니다. 자문 15장 27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외물을 싫어하는 자는 산행이라 이를 탐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요? 자기의 집을 해롭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합니다. 불의의 이익을 취하면 폐가 망신한다고 그런 표현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앙의 집을 자신의 신앙의 집을 잘 세우는 거죠. 자기 신앙의 집을 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라도 자기 신앙의 집을 잘 세우고 또 잘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내가 불의의 일을 조치면 그 집을 바로 세울 수가 없는 거죠. 아무리 내가 돈을 잘 벌고 많이 벌어서 정말 튼튼한 또 이름만 되면 알아줄 그런 아파트를 사서 거기에서 행복하게 자녀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내 집이 운전하게 지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불의의 일을 조치면 자녀도 마찬가지 불의의 일을 조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불의한 것이고 무엇이 불의하지 않은 즉 의로운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뭐가 의로운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거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의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쫓아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의이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에게 주신 아주 중요한 의로운 삶이죠. 그런데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녀로 키우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불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불의의 일을 줬는다면 당연히 그 결과도 보나 마나죠. 물론 세상에서 말하는 불의는 뭔가 부정을 혹은 불법을 부도덕한 것을 따르는 것을 말할 텐데요. 하나님 백성에게 불의한 것은 그것이 아니죠. 자녀를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그렇게 잘하게 키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 자녀를 키울 때 말씀으로 그 자녀의 귀에 자녀 앞에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맘카페 학원에서 학원에서 학원에서 말하는 그런 정보들을 가지고 내 자녀를 키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그 자녀가 세상적으로 성공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부모는 자꾸 그런 정보들을 듣다 보면 그게 정말 부모의 역할인 것처럼 그게 바른 잘하는 부모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키운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자녀가 안식일도 제대로 못 지켜요. 그러면 지금 당장 안식일을 지키고 못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어떻게 나중에 자기 신앙의 집을 지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이 해롭게 된다는 것은 그 가정의 열매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10편 128편 보겠습니다. 10편 128편 3절 10편 128편 3절 제가 읽겠습니다. 내 집 내 실에 있는 내 안에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내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남나무 같으리로다. 아멘 집에는요 나무가 있고 또 열매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내 집을 해롭지 않게 건강하게 키운다는 것은 집안에 자라는 나무가 있고 또 그 나무에 열매가 있다는 거죠. 그 집안에 있는 자식들의 자리가 어디래요? 자식이 자식이 자식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래요? 내 상에 상은 밥상이잖아요. 밥상에는 자식들이 둘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뭘 말하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 그러잖아요. 그것을 말하기도 하죠. 그러니까 자녀는 그 밥상에서 아니 부모는 밥상에서 자녀를 봐야죠. 그래서 이 아이가 뭘 먹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들이 뭘 먹고 있는지 마땅히 육적인 양식도 이거는 잘 부모가 알아서 챙겨주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해로운 것이 안 들어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잘 크는 그런 음식으로 이렇게 차려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얘가 잘 먹는지 꼭꼭 씹어 먹는지 편식은 안 하는지 이거 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아이가 상에 둘렀다는 것은 부모는 내 아이가 무슨 말씀을 먹고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양식을 먹여야 하는지 부모가 책임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양식을 우리 하민이가 처음으로 학생부 영원회를 다녀왔어요 여러가지 충격을 받았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아동부 영원 때도 그러나 학생부 영원회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식사 시간에 그냥 밥 안 주죠 어떻게 해야 밥 먹을 수 있어요? 하민 암송해야 돼요 암송 못하면 못 먹죠 근데 감사하게도 못 먹는 애들은 없어요 안 먹는 애들이 있을지언정 사실 육신의 밥을 먹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이 일을 사실 누가 누가 해야 돼요? 말씀대로라면 누가 해야 돼요? 가정에서 해야 합니다 만약 내 아이가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부모가 부모가 알지 못하면 이 아이는 절대로 광야 같은 길을 걸을 힘이 없습니다 무엇이 불이한 이득인지 불이하지 않은 이익인지 분별할 눈이 안 생긴다는 거예요 반드시 가정에 가정에 가정에 그런 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사무엘이 그런 상에서의 교육에 실패했다 뭐 이런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했는지 아무 기록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초점은 사무엘이 도대체 자녀를 어떻게 키웠는가 이것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초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에 사무엘의 아들들의 일과 바로 이어져 나오는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아들들의 그 불이한 판결을 굳게 한 그 일 때문에 왕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의 아들들의 사건은 표면적인 인과관계 원인을 제공을 해요 그런데요 이 두 사건에 또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불이한 일을 취했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사무엘에게 불이한 요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무엘이 어땠어요? 6절에 보시면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의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는 거예요 사무엘이 아버지인데 자기 아들들이 그런 판결을 굳게 한 일에 대해서 왜 속상하지 않고 왜 기쁨이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일에 대해서 사무엘이 기뻐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의 일은 사무엘 개인으로서는 참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일 이것이 더 큰 일 평안이 없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문제입니다 첫 번째는 어떤 문제가 있어요 첫 번째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들의 요구를 보게 되면 5절에 나오죠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뭐예요 그에게로 되포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첫째 열방과 같아지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방 나라와 같이 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그 왕이 자기들을 인간 왕이 자기들을 다스려주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이죠 이 요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그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한 것은 곧 어떤 의미다 7절에 나오죠 여하께서 사모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내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들의 문제인 거죠 그런데요 분명히 이게 잘못된 것이면 잘못된 것이잖아요 그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이건 왜 허락하신 걸까요 마음이 약해지신 약해지신 걸까요 하도 때를 쓰니까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허락해 주신 걸까요 호세아 13장 보겠습니다 호세아 13장 10절 11절 호세아 호세아 13장 10절 11절 호세아 13장 10절 11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3장 전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내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내 왕이 어디 있으며 내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내가 분노함으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패하였노라 사멸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일을 다시 한참을 지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회상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성읍에서는 너희들을 구원할 구원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다고요 왜요 내가 분노함으로 왕을 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요구가 잘했어서가 아니라 분노함으로 왕을 주었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죠 또한 진노함으로 패하였다 그러니까 왕을 주신 이유는 그래 뭐 허락해줘 이렇게 하신 이유는 뭐하기 위해서 패하시기 위해서 그 패함을 통해서 뭘 알려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거는 뭐예요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분이구나 이런 것이 아니라 진노하시고 분노하시는 하나님에서 우리가 뭘 배워야 돼요 뭘 배워야 돼요 어렸을 때 부모님들 많이 화나게 하셨잖아요 우리가 그때 뭘 배웠어요 우리 아버지한테 잘못과는 큰일이 난다 이런 거예요 우리가 뭘 배웠습니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싫어하신다 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들 키우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칠 때는 차분하게 가르칠 걸 가르쳐야죠 우리가 잘못 듣거나 또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아이들 앞에 화내지 마세요. 이런 것을 저도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이 문장만 들으면 참 판단하기 어려운데요.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화내지 않는 것일까요? 반드시 자녀에게 부모가 화를 낸다는 것을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이걸 부모님이 싫어하시는구나 알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왜 분노하심으로 왕을 세우시고 또 진노하심으로 그 왕을 패하셨을까요? 왜 왕을 요구한 일에 대해서 화를 내셨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열방과 같은 왕과 하나님 나라의 왕을 이렇게 대조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최초로 왕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등장할까요? 최초니까 적어도 창세기까지 가야겠죠? 창세기 14장 보겠습니다. 창세기 14장 1절 2절입니다. 창세기 14장 1절 2절 제가 읽겠습니다. 당시에 신하로왕 아무라벨과 엘라사랑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우멜과 고임왕 기다리 소동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신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아랑과 싸우니라 왕이 나오죠? 처음으로 왕이 등장합니다. 왕이 몇 명 나와요? 몇 명이에요? 9명입니다. 어떻게 금방 세셨네요? 와 적어놓으셨나요? 이 9명의 왕이 나와서 하는 일이 뭐예요? 5대 4로 싸웁니다. 그래서 세상 왕들이 하는 일이 뭐예요?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한 왕들이 하는 일이 뭐예요?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왕들은 서로 상대의 것을 뺏어서 자기 덩치를 불리는 것 자기 힘을 키우는 것 이게 세상 왕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요. 같은 14장에 또 한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누구예요? 누구예요? 멜기세댁이죠. 멜기세댁. 그렇죠? 14장 18절 19절 보겠습니다. 히브리서에는 히브리서에는 멜기세댁 멜기세댁 뭐라고 소개하냐면 의의 왕이고 평강의 왕이다. 이렇게 소개하지 않습니까? 창생 14장 18절 19절 제가 읽겠습니다. 살렘왕 멸기세대기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대 천지의 주제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앞에 나왔던 소도망, 무슨 왕들도 있지만 멸기세대기는 살렘왕이에요. 그런데 이 왕은 특이합니다. 이 왕이 하는 일이 뭐예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멸기세대기는 어느 나라 왕이에요? 어느 나라 왕이에요? 살렘왕. 어느 나라예요? 하나님 나라죠. 그는 근데 하는 일이 제사장이에요. 구체적으로 제사장으로서 뭐 하는 일이에요? 무슨 일을 해요? 아브라함에게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세요. 복을 비는 일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 나라의 왕과 하나님 나라의 왕은 처음 등장부터 이렇게 대조적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까요? 창세기 17장 보겠습니다. 창세기 17장 5절입니다. 5절, 6절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17장 5절, 6절 시작. 아브라함을 통해서 뭐가 나온다고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뭐가 나와요? 나라들이 나오고요. 열왕, 왕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가 뭐예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라들이 나오고 왕들이 나온다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왕들이 나오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라들이 나올까요?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제사장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그가 왕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하는 일이 뭐예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즉 아브라함의 후손인 하나님 나라 또 하나님의 왕들이 하는 일은 뭐예요? 제사장으로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브라함을 불러서 뭐라고 약속하셨어요? 너는 복의 근원. 하나님 나라의 왕은 제사장으로서 복을 빌어야 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이 구체적인 하나님의 약속으로 드러나는 때가 있어요. 아예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대놓고 약속하십니다. 언제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기 19장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너희들이 내 말을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내 앞에서 나라가 되고 나라가 되는데 어떤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된다고요? 제사장 나라. 그게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이잖아요. 그런데 백성들이 아 저희가 그것을 다 행하겠습니다. 약속했죠. 그러니까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어낸 출애굽시킨 그 이유라는 거예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늘 사무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게 열방과 같은 나라가 되게 왕을 세워주십시오라고 요구한 것은 무슨 뜻이에요? 제사장 나라가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멸망해버린 소돔왕 고모라왕 같은 그런 왕 그런 나라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이 화가 나요 안 나요? 나죠. 왕을 요구했다는 것은 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살기가 너무 힘드네요. 이것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누구인지 하나도 모른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를 가지셨죠. 그래서 아까 호세아 13,11절에서 읽었습니다. 왕을 진노로 왕을 세우시기도 하고 분노로 왕을 패하시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왕을 세우시기도 하고 왕을 패하시기도 하죠. 그럼 어떤 왕들을 패하실까요? 어떤 왕들을 더 이상 왕 못하게끔 이렇게 하실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뜻이 없는, 즉 의롭지 못한 왕들은, 불의한 왕들은 다 패하십니다. 창세기 14장에서 그 아홉 왕들이 막 5대 4로 싸우다가 그 싸움에 누가 휘말려 들어가요? 아브라함이 조카 루시 끌려 들어가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막 집에서 길려온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싸웁니다. 아브라함에게 무기도 변번치 않았을 텐데 그 싸움에서 누가 이겨요? 아브라함이 이겨요. 아브라함은 전쟁을 연습했겠습니까? 무기가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나라들과 왕들과 싸워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 불의한 왕들을 패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국에서 나오게 할 때 어떻게 하셨어요? 마지막 재앙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애국의 바로 왕의 장자까지도 죽이셨습니다. 그 대국의 왕으로 패하셨죠. 그리고 가나한 땅이 들어갔습니다. 가나한 땅이 들어가서 한 일이 뭐예요? 가나한 땅의 대표적인 지도자. 그럼 누구예요? 여우수화죠. 여우수화가 한 일이 뭐예요? 정복 전쟁이죠. 그래서 땅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땅 분배하기 전에 한 일이 있어요. 그것을 여우수화는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걸 굳이 지루하게 이걸 왜 기록했지? 여우수화 12장입니다. 여우수화 12장입니다. 여우수화 12장 1절입니다. 여우수화 12장 1절 제가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순이 요단 저편 해돈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처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해서 6절까지 모세 때에 죽인 왕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그리고요 12장 7절 제가 읽겠습니다. 여우수화와 이스라엘 자순이 요단 2편 곧 서편 아까는 저편이었죠.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할가사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한락상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우수화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집하의 기억으로 주었습니다. 7절부터 24절까지는 여우수화가 멸한 왕들의 명단입니다. 그러니까 12장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죽인 즉 하나님께서 이들로 하여금 패해버린 왕들의 명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3장에서 비로소 뭐가 시작이 돼요? 땅 분배가 시작이 되죠.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했다라는 것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의의 일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무엘의 아들들은 개인적인 죄를 지은 것이죠.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민족적인 반역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일한 참교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이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를 향한 뜻이 뭐예요? 오늘 계속 제가 왕에 대해서 말씀드렸잖아요. 우리가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나라와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왕 노릇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 의의의 나라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땅히 우리는 불의의 일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도덕적으로도 의롭지 못한 것 불법을 저지르는 것 구도덕한 일을 당연히 그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루는데 거스르는 일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의 이것을 왜 거스를까요? 사무엘의 아들들 자기 유익을 구했다는 거죠.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교회 안에서 개인의 이익 개인의 입지를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하나님의 백성들도요.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죠. 그래서 무엇이 의롭고 무엇이 불이한 일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을 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의 길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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