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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20 이찬우

신학생 · 행13:1-4

제작일 202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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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행 13:1-4) 20260731 이찬우 신학생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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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는 이방인과의 관계에서의 편견과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했다.

  •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유대인 중심의 구원관념을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 성령의 지시로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했으며, 이는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함으로써 건강하게 성장했으며, 다양한 배경의 지도자를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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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배경

  •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유대인 중심의 구원관념을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 스테반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나, 성도들이 흩어지며 복음이 이방인까지 전파되기 시작했다.

성령의 파송

  • 성령은 안디옥 교회에서 금식과 기도 중 바나바와 사울(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령했으며, 이들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선교 여행을 시작한다.
  •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위법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하는 명령을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방인과의 관계

  • 유대인과 이방인은 단절된 관계였으며, 유대인은 이방인을 혐오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마리아인을 멸망시키길 원했다.
  • 교회 내에서도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베드로조차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을 두려워했다.

안디옥 교회의 역할

  •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사회에서 배척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결국 성령의 명령에 순종했다.
  • 헌신적이었지만,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 안디옥 교회는 편견과 차별 없이 다양한 배경의 지도자를 양성했으며, 유대인, 이방인, 흑인, 노예 출신,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예배와 성령의 인도

  • 예배는 신앙의 본질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태도로 여겨졌다.
  • 안디옥 교회는 예배에 힘쓰며 금식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유지했다.
  • 파송은 보내는 이와 보내진 이 모두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함으로써 건강하게 성장했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아멘 모두 자리에 편안히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우리 먼저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장 말씀을 찾겠습니다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을 우리 함께 한 목소리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말씀 사도행전 13장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찾으셨으면 함께 읽겠습니다 1절 안디오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무운과 구레네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밉사오리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오를 사도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신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부로에 가서 아멘 할렐루야 우리 천안교회 성도인도 평안하시죠?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 드리기 위해서 귀한 발걸음 하신 성도인들께 은혜와 평강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교회가 바로 안디옥이라는 교회이죠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다가 보면
이 안디옥이라는 지명이 꽤 자주 등장을 하곤 합니다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역할을 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가 어떤 교회였냐면 이방인 교회였습니다 이 안디옥이라는 지역 자체가 이스라엘이 아니에요 이게 굉장히 놀라운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때 당시에는 유대인들만 구원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대가 아닌 이방의 땅에서 교회가 세워진 거예요 그게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우리 먼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사도행전 11장 19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 19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내일 스테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은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네게와 구부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이때 당시에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유대인밖에 없었어요 없었어요 그런데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냐면 일곱 집사 중에 택함을 받았던 스테반 집사가 순교를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예루살렘에 엄청난 핍박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큰 핍박이었냐면 도망을 안 가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큰 핍박이 나요 그래서 성도들이 도망을 갑니다 살려고 그런데 이 도망갔던 사람들이 거기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거예요 19절에 보니까 처음에는 누구에게만 전했습니까?
유대인에게만 전했다고 되어 있죠 그런데 20절에 가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제가 20절 말씀을 이어서 읽겠습니다 그 중에 구부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놀랍게도 도망갔던 사람들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가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게 되죠 그 결과 유대인을 포함한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을 해요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만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세워진 이방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 안디옥 교회에 한 가지 개시가 나타난 것으로 오늘 본문 사건이 시작이 됩니다 어떤 개시입니까?
바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서 파송하라는 개시가 나타납니다 이 명령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는지 간단하게가 아니라 길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상황에서 이삭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가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안디옥 교회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 있었는지 이것이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해야 이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큰 어려움은 뭐냐면 그들이 이방인이라는 거예요 물론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가 이방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당시에 이방인들은 어떤 취급을 받았냐면 인간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이방인은 더러운 사람들이고 혐오의 대상이자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 마땅한 죄인들로 여겨졌습니다 제가 이것을 성경에 있는 기록만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0장 2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 너희도 알거니와 아멘 여기 보니까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개시를 받고 고넬료의 집에 들어간 후에 이렇게 말을 하죠 사실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위법인 행동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애초에 금지된 행동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법을 어기는 것을 우리가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까?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방인을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고넬료 집에 들어갔던 베드로가 이방인 집에 들어갔다고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 요한복음 4장에서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사건이 요한복음 4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깜짝 놀랍니다 왜 놀랐습니까?
유대인이 나한테 말을 거니까 놀란 것입니다 그래서 묻기를 당신은 유대인인데 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라고 오히려 되묻죠 자기들도 아는 거예요 유대인은 우리를 혐오하고 상종치 않는다는 것을 이방인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인과 이방인은 단절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대인들은 이 단절을 넘어서서 이방인들이 멸망당해야 마땅한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누가복음 9장의 말씀인데 우리 누가복음 9장 52절에서 54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52절에서 54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제자들이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죠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가려고 하시는데 이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려고 하셨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야구부와 요한이 뭐라고 합니까?
예수님 저희가 불을 명해서 하늘에서 내려 저 사마리아인들을 멸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묻죠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그들이 불타 죽도록 기도하겠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불에 타서 죽여버리겠다 죽게 하도록 하겠다라는 말이 굉장히 무서운 말이지 않습니까?
사람의 생명을 굉장히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들리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때 당시에는 이게 당연한 거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은
그냥 죽어마땅한 죄인들이었고 죽어도 되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죠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유대인들은 어땠겠습니까?
그러니까 유대사회에서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회 내에서도 이방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다음에도 여전히 이 문제가 끊이지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2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야구보에게 온 어떤 이들이 일기 전에 개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메 그가 할래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메 자 여기 교회 내에서도 이 당시 교회 내에서도 아직까지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못한 할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이게 무서워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 모습이 들통이 날까봐 도망을 갔다는 내용이 지금 여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조차 이렇게 도망가는 것을 보면 이 당시 교회 내에서 이방인들이 얼마나 설 자리가 없었는지를 우리가 생각을 해볼 수가 있죠 그런데 여러분 사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믿음의 선택을 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방 땅에서 이방인으로서 내가 예수님을 믿겠다라고 선택을 한 사람들이니까 그렇습니다 안디옥은 우상이 정말로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만 믿겠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을 전한다면 여러분 다른 이방인들이 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엄청나게 피팍을 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방인들에게 쫓겨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그것을 돈을 버는 이방인들이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소동을 일으키죠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고 잡으려고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인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이제 이방인 사회에서 배척받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이방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된 것이죠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 사회에서도 유대 사회에서도 교회 내에서도 교회 밖에서도 어려움 밖에 없는 것이
사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가진 어려움이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안디옥교회 성도님들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아직 안디옥교회는 설립된 지 3년에서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같은 처지의 교회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유일한 이방인 교회가 안디옥교회예요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무언가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안디옥교회가 무엇을 그렇게 의지했겠습니까?
안디옥교회에서 중심이 되는 믿음의 지도자들을 그 무엇보다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힘을 내자 하고 그래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자 라고 버텨주고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그 믿음의 지도자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입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그런 사람들을 엄청나게 의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게시가 내려온 것입니까?
본문 말씀 2절 말씀을 다시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런 어려운 형편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서 파송해라 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순정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을까요?
우리 본문에서 1절 말씀을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 말씀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가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는 시모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네인과 및 사울이라 1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몇 명이 나옵니까?
5명이 나옵니다 바나바와 시모온, 루기온, 마나엔, 사울 이렇게 5명의 지도자가 나오죠 여러분 5명의 일꾼은 많은 것일까요? 적은 것일까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교회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 교회의 일꾼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너무나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규모에 비해 일꾼이 많다, 넘친다 라고 말하는 청년은 거의 없어요 다들 일꾼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이 5명이라는 숫자도 사실 안디옥 교회 성도님들이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을 것입니다 하도 어려움이 많고 이방인 교회로서 세워진 첫 교회고 설립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얼마나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5명 중에서 하나님께서 몇 명 보내라고 하십니까?
2명을 보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2명이 바울과 바나바인 것이죠 여러분 바울과 바나바는 그냥 지도자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 받게 될 때까지 교회에서 가르쳤던 굉장히 중요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2명을 보내야만 하는 거예요
그럼 인간적으로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될까요?
그럼 우리 교회는 어떻게?
지금 이렇게 힘든데 지금도 일꾼이 이렇게 별로 없는데 그 둘을 보내면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안디옥 교회는 굉장히 헌신적인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아가보라는 사람이 와서 예언을 하는데 무슨 예언을 하냐면 엄청나게 큰 흉년이 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해요 그런데 이때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하냐면 예루살렘 교회에 유대에 사는 유대인 형제들 돕겠다고
돈을 보냅니다 그만큼 사실 안디옥 교회는 이미 헌신을 많이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럼 더더욱 어떤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해야 돼?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희생해야 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천안교회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 어려움이 있고 그런 중에도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떻게?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해야 돼?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습니까?
이번에 고등부 영혼회가 우리 천안에서 진행이 됐습니다 영혼회를 치르면서 많은 성도민들 애써주시고 헌신해 주셨다는 것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해보니까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이게 정말로 큰 노력이 들어가는 거구나 이게 정말로 큰 고생이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에 중등부 영혼회도 해라 단기 신화까지 해라 라고 하면 여러분들 어떠십니까?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헌신하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은 일인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안디옥계가 순종을 합니다 이것이 중요하죠 명령에 순종했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순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명령에 순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가 나에게 또 우리 교회에 적용해야 되는 부분이 남은다는 것이죠 가장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사실 안디옥계는 이미 준비하고 있는 교회였다라는 것입니다 안디옥계는 이미 순종의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였어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요?
첫 번째는 안디옥계는 편견과 차별 없이 하나가 되어서 일꾼을 양성했다라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4등의 13장 1절 제가 읽겠습니다 안디옥계의 선지자들과 교자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모온과 구레네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로셋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오리라 아멘 1절에 보면 안디옥계에 굉장히 중요한 지도자들이 소개되고 있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이 지도자들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가 나오는데 여러분 바나바는 이 당시에 굉장히 영광이었어요
경향력 있던 교회 일꾼입니다.
그리고 정통적 유대인 일꾼입니다.
이미 예루살렘에서 굉장히 크게 쓰임을 받던 정통적 유대인 일꾼이죠.
그게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니게르라고 하는 시몬이 소개되고 있죠.
이 시몬이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니게르라고 소개를 합니다.
니게르는 무슨 뜻일까요?
니게르는 라틴어로 검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일꾼어 니게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것은 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흑인이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이 당시의 흑인은 주로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몬도 사실 노예 출신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시몬이 안디옥교회의 굉장히 중요한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누구입니까?
다음으로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나오죠.
루기오는 구레네 사람이래요.
여러분,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루기오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인 것이죠.
다음으로는 마나엔이라는 사람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뭐라고 소개됩니까?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이다.
라고 소개됩니다.
그러니까 이 마나엔이라는 사람은 귀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분봉왕 헤롯과 같은 젖을 먹으면서 자란 굉장히 귀한 신분의 사람이다.
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누가 나옵니까?
사울이 나옵니다.
사울은 우리가 잘 알고 있죠.
지금의 바울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울은 사실 예전에는 교회를 누구보다도 핍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개종해서 지금 교회의 지도자로 쓰임받고 있었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안디옥교회 지도자들의 구성을 보면 굉장히 특이해요.
천한 신분도 있고, 귀한 신분도 있고,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고, 인종도 하나가 아니에요.
배경도 다양하고, 신문도 다양합니다.
여러분, 이게 놀랍지 않습니까?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지 않으면 이들은 하나가 되어 지도자로 세워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시대에도 이런 사람들을 한 곳에 세우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하나 되어서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지금 안디옥교를 하나가 되어 이끌고 있다는 것은 안디옥교회가 그만큼 하나 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으로 차별 없이 일권을 양성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다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과 일하게 됩니다.
성격도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사실 능력도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좀 느리죠?
또 어떤 사람은 좀 눈치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같습니다.
교회를 향한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몸된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하나됨이 있어야 됩니다.
안디옥교회가 준비한 것은 바로 하나됨이었다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두 번째로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준비되었느냐?
안디옥교회는 예배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2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를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아멘 성령이 개시가 나타날 때 안디옥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주를 섬기며 금식하고 있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를 섬기다라는 뜻을 보면 공적인 섬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 예배를 의미하는 것이죠.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 지금 무엇도 하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까?
금식도 하고 있다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보통 금식을 언제 하십니까?
뭔가 큰일이 있을 때, 뭔가 당장 해결해야 되는 나에게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여러분 그때 금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예배를 위해서, 매번 드리는 이 예배를 위해서 금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예배를 드릴 때 이런 간절함을 위해서 금식을 했대요.
이것이 바로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이 얼마나 예배에 힘쓰는 사람들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는 우리의 기본입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그래서 무엇보다 예배에 힘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무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에 힘써야 됩니다.
그것이 준비입니다.
뭔가 능력을 쌓고, 뭔가 경험을 쌓고, 뭔가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우리가 이런 기본적인 예배에 간절함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꾼을 찾으십니다.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안디옥교회 성도님들은 뭐가 그렇게 간절했길래 이렇게 예배 드릴 때도 금식을 했는지 제 개인적으로 묵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간절하게 신앙생활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2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그들을 왜 보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죠.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2절을 보면 주루 섬겨 금식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뭐 때문에 그들을 세우라고 합니까?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하여 그들을 세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안디옥교회가 얼마나 어려운 형편에 있는지 이게 얼마나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인지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길게 설명을 드렸는데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명료하죠.
딱 한마디만 하십니다.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해서 그들을 세우라 라는 것이죠.
왜 이렇게까지 간단하게 이야기합니까?
왜냐하면 이것은 설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설득은 설명이 필요하죠.
여러 이유를 말해주고 그렇게 하는 근거와 상황도 설명하고 또 해결책도 제시해줘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건 설득이 아니에요.
이것은 명령입니다.
무엇을 위한 명령입니까?
내가 불러시키는 그 일을 위한 명령입니다.
그 일이 바로 복음을 말하는 것이죠.
복음 전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복음을 위한 명령이다 라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을 이것으로 지었습니다.
내가 불러시키는 일을 위하여 만약에 부제를 정한다면 복음을 위하여 라고 짓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만 듣고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에 순종할 수 있으십니까?
어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사실 우리는 때로는 엄청난 설명과 근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을 위해서라는 말로 우리에게 충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죠.
복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복음의 은혜를 먼저 얻었으니까 그런 것이죠.
안디옥 교회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복음을 위해서라는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순종을 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방인이죠.
그래서 이들이 복음에 대한 더 큰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이니까 더 잘 아는 거예요.
택한 받지 못한 백성이라고 여겨졌으니까 마땅히 죽어야 하는 마땅히 멸망당해서 지옥에 가야 되는 사람들이라고 여겨져 봤으니까 아는 거예요.
이런 나란 죄인도 이 천한 나도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분명 이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세웠을 때 어떻게 한 것입니까?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 교회는 결코 억지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질서대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믿음대로 순종한 것이죠.
우리 교회는 무엇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계십니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바랍기는 그게 복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복음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의 은혜 받은 사람들로서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고 있다면 복음을 위해서라는 말로 우리도 충분해야 됩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없어야 됩니다 바랍기는 우리 천안교회 성도님들이 복음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가 어려운 형편 속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고 파송을 했습니다 그럼 이후에는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됐을까요?
중요한 두 일꾼을 보냈으니까 이제 안디옥 교회가 망했을까요?
우리의 사도행전 13장 47절에서 4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7절부터 49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파송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이방의 복음이 널리 퍼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방인들이 다 믿게 되었다 다 구원을 얻었다라는 것이죠 이어서 사도행전 14장 26절과 27절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6절과 27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아멘 성교행을 떠났던 바울과 바나바가 지금 어디로 돌아왔습니까?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을 소개하기를 뭐라고 소개하냐면 두 사도의 이룬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고 이 안디옥 교회를 소개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 굉장히 큰 은혜가 됩니다 두 사도가 이루고 온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입니다 영혼에 대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이것을 나눕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가 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선교회 중심지가 되어서 더 큰 역할로 더 큰 쓰임을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돌아와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때마다 엄청나게 기뻤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감사했을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본문 말씀 마지막 구절인 4절 말씀 4등교 13장 4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4등교 13장 4절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부로에 가서 자 여기 보면 두 사람을 파송한 것이 누구라고 되어 있습니까?
성령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이 보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우리가 잘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직접 나타나지 않으시고 교회에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바나바가 아무리 대단한 일꾼이어도
그들은 한 개인이고 교회의 지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도 자랑할 것이 없으면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중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보낸 것이 아니라 성령이 보낸 것이다 라고 성령은 분명하게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교회가 나아갔다라는 그 사실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통치하심을 따라갈 때 복음이 전파되고 그 통치하심을 따라갈 때 교회가 바로 서기 때문입니다 바라붙기는 우리 천안교회도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 이제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신학에 대한 건면을 받고 고민을 했던 때가 벌써 4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죠 제가 그때의 당시를 돌아보면 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사실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떠나면 천안교회는 어떻게 하지?
천안교회가 저를 망설이게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천안교회가 저렴한 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저렴한 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저 이후에 또 다른 신학생이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천안교회가 되었고 면제해 주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해야 되는 일들을 면제해 주고 그들을 풀어줬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그 남은 일들은 누가 해야 하는 것입니까?
남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송을 보낸다는 것은 바울과 바나바의 희생과 헌신이기도 하지만 그 일부들을 보낸 남은 자들의 헌신과 희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내심을 받은만 헌신하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낸 사람들에게도 이런 헌신과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바라보기에는 우리 천안교회에 그런 헌신과 다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헌신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도 안디옥 교회처럼 크게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다 함께 묵도 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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