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교회01
가서 제자를 삼으라
이남찬 · 마28:16-20
제작일 2026.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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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9 (토)
AI 설교 정리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인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설명함.
본문마태복음 28:16-20마가복음 28:18
-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으며, 이는 신앙의 핵심이다.
- 이 명령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는 중요한 사명이다.
-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며, 교회는 이 명령에 따라 교육과 전도를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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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 마태복음 28:16-20에서 예수님은 '가서 모든 족속에게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며 가르침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 이는 '지상 대명령'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며, 복음을 전하는 삶이 요구된다.
-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며, 이는 부활과 승천을 통해 이루어졌다.
신앙의 핵심: 예수님의 부활
-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핵심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신앙생활의 의미가 없다.
- 부활과 승천을 통해 예수님께 모든 권세가 주어졌으며,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계기였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하셨으며, 이는 그분의 권세와 사명을 강조한다.
복음 전파와 교육
- 복음 전파는 죄사함과 구원을 전하는 것이며, 이는 중요한 신앙의 목적이다.
- 세례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중요한 단계이다.
-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고, 신자 간 대화와 성경 공부를 통해 신앙을 깊게 해야 한다.
교회와 사명
-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교육과 전도를 계속해야 한다.
- 전도는 단순히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전도하게 만들기까지 포함된다.
- 9월부터 매주 노방전도가 진행되며, 신도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전도지를 돌며 전도한다.
교육과 준비
- 세례식을 앞두고 있으며, 세례를 받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 성령 충만과 은혜를 받기 위해 안수기도가 진행된다.
- 예배는 찬양과 기도로 마무리되며, 성도들은 둥글게 모여 인사한다.
전사(자막) 전문▼
예 할렐루야 우리 안식일이 기억하여 주님의 성전이시오 우리 모든 성도인들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 임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같이 나눈 말씀 마태복음 28장 마태복음 28장 16절에서 20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에서 20절의 말씀 우리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에서 20절의 말씀 우리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배웁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 예수께서 나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오늘 이 시간에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요. 참 많은 부탁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가지 부탁이 있지만 가장 좀 진실되고 또 사람들이 무겁게 받아들이고 이것만큼은 꼭 해야겠다라고 하는 부탁은요. 보통 유언입니다. 유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고인이 뭘 원했는지 그 유언에 있잖아요. 어떻게 해달라. 또 나가 죽은 뒤에 이것을 해달라.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의 사람들은요. 대부분 큰 문제가 아니면 그대로 하려는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무거운 유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안에 좀 뭐랄까 같은 부탁이어도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을 보통 사람들은 호의를 갖고 해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유언이 가진 힘이 굉장히 무섭습니다. 강합니다. 그래서 말을 듣지 않는 자기 아들들도요. 아버지의 유언이 있다면 그 아버지의 유언을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이순신 장군도 마지막 죽을 때 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까? 자기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그 유언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무겁고 굉장히 진심을 담긴 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아마 그때 당시에는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는 후손들에게는 전해졌겠지요. 이처럼 유언이 가진 그 무거움 또 진실됨. 우리는 그 유언을 좀 귀하게 여길 줄도 알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도 사실 유언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바로 조금 세상의 유언과는 조금 다르지만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마지막으로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말이 있어요. 물론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주는 유언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것만큼 무거운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남기시고 더 이상 남긴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인데요.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바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마지막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지상 대명령이다. 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마땅히 이 명령을 받았고 이 사명을 갖고 살아가야 된다. 하면서 많은 말씀을 특히 이 말씀을 많이 묵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가서 제자 삼으라는 우리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정말 무겁고도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정말 그분의 진실되고 정말 우리에게 바라시는 정말 간절한 소망인데요. 그 이야기에 대해서 우리 같이 나누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그런 전두자의 삶 복음 전파는 사람을 살아야겠다. 사명자의 마음을 한번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16절 말씀 보시면요. 16절 말씀 보시면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이 제자들을 만났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산에서 열한 명의 제자들 원래 예수님에게는 열혈 명의 제자가 있었고 특별하게 예수님이 기도하셔서 열두 명의 제자를 따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열두 제자이고 나중에 이 열두 제자가 사도가 됩니다. 굉장히 중요한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열한 명이 지금 예수님을 맞이하러 예수님이 명하신 산에 왔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명하셨을까요? 우리 10절 말씀해 보면요. 이에 예수께서 가라앗을 때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여러 자기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선 그 제자들에게 가서 형제들 결국 16절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그 열두 제자들이었겠죠. 그래서 그 열두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부활했다. 그러니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만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전언을 전했고 그들이 모두 다 모인 곳이 바로 오늘 16절의 말씀이었어요. 그런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원래 열두 명이어야 되는데 몇 명만 왔어요? 열한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어디 갔습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정말 안타까운 결말이 되었습니다. 가룬유다였죠. 그래서 가룬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이 명령하셨던 그 갈릴리에 있는 산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그것에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자 17절 보겠습니다. 17절 보시면 예수를 배웠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님이 떡하니 있는데도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참 사람의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게 참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심을 정말 믿으십니까? 정말 믿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고는 오늘날 우리가 받는 약속의 성령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요 우리 고린도전서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냐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은 아니라 우리들이 더 불쌍한 사람이 돼요. 왜냐하면 시상생활 힘들게 하시고 부활 없다고 하시면 힘들게 살다가 죽고 난 뒤에 끝나면 시상생활을 왜 하냐는 거예요. 시상생활을 하면서 괴로움과 고난 속에서 인내하고 참는 이유는 결국 새 생명을 얻기 위함 아닙니까? 그게 부활인데 그게 없으면 왜 신앙생활을 하냐는 거예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하지 않는 세상 사람이 덜 불쌍하다는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요 부활을 믿어야 되고 부활의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세가 되면 될수록 부활에 대한 의심들이 사독교에서도 있었듯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17절에서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도 참 믿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그중에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지만 예수님이 또 다 보여주셨죠. 의심하는 도마에게도 이제는 믿는 자가 되라고 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8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와 일러 가랐을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여러분 그 사람이 어떠한 위대한 일을 할 때는요 그 시기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사람의 역사를 보면요 인류의 역사를 보면 굉장히 위대했던 작전들 혁명들 아니면 뭐 세상을 바꾸는 역사들 그 일에는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치밀함과 지혜와 전략과 또 여러 가지들이 참 맞물려서 때가 되었을 때 움직인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게 되는 게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이거는 공감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바꿀 만한 수많은 역사의 현장들이 있었어요. 프랑스 혁명이라든지 러시아 혁명이라든지 뭐 우리나라도 많죠. 위아도 해군도 있었고 아니면 우리 독립 관련된 것도 많았고요. 뭔가 이러한 일을 하는데 우리 근대 역사만 봐도요. 독립군들이 독립하려고 그냥 바로 시작했으니까 힘을 기르면서 준비를 해왔습니까? 심지어 어디서 했어요? 한국 땅에서 안 했어요. 그렇죠. 중국 땅에서 했어요. 근데 이거에 대해서 정말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고 그런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다. 한국에서 해야지. 왜 중국이라는 이상한 나라 가서 하냐. 그건 전혀 생각이 짧은 것이죠. 힘을 기르고 준비하고 때가 되는 것은요. 정말 그것을 바르는 사람이 있었다면요. 굉장히 고대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독립에 있어서 가장 큰 주축이 되었던 사람이 한 분 계셨습니다. 누구이십니까? 백범 김구라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그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했지만 그분만큼 정말 간절한 소망을 갖고 그리고 독립을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그렇겠습니까? 얼마나 벅차올랐겠어요. 마치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실 그런 장면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3년이라는 세월 동안 함께 다녔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광야에서도 아마 텐트 치고 잡기도 했으며 어쩔 때는 먹을 게 없어가지고 서로 빵 조금 먹기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같이 핍박과 조롱과 욕을 먹고선 성에서 쫓겨났을 때도 있을 것이고 어쩔 때는 폭풍을 만나는데 폭풍이 지나가버리고 사라지는 이적을 체험하면서 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러 일들을 같이 지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여전히 가르침을 줌에도 부족한 모습과 믿음 없는 모습과 여전히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정치적인 메시아. 자기들 생각대로 생각하는 메시아. 그러면서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은 항상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장면은요 사실 성경에서 예수님의 감정에 대해서 표현은 읽지 않지만 예수님은 사실 굉장히 이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셨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도 보면요. 예수님은 또 사복음서를 다 통틀어서 보면 심지어 마지막 언약의 잔을 나누는 그 자리에서도요. 내가 이것을 기다려왔다고 합니다. 때가 되어서 드디어 준비가 되었고 드디어 너희와 함께 이 언약을 맺기 위하여 이 잔을 나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심을 통해서 오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줬다라는 것은요. 본래 우리 예수님은 요한복음을 특히 잘 보시면 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부탁하셔야 됐어요. 아버지에게 간구하시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 아들 대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루어주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능력이 있으신 분이 맞지만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뭔가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했고 하나님은 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데요. 우리 사도인전 보이십니다. 사도행전 2장 35절 말씀 보면요. 우리 예수님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장 35절입니다. 내가 네 원소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라. 우리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어디로 가셨냐.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가셨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갔을까요? 그것은 사도인전 또 13장의 말씀에 가면요. 13장 33절 말씀에 보시면 나옵니다. 13장 33절 말씀 보시면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합니다. 10편 둘째 편을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이 자가 내 아들이고 내가 낳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통하여 저희 사람 육신이 없으시고 하나님의 진정한 온전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본 이러면 어떤 사람이 부활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 너희가 그동안 핍박했던 그 나사리 예수가 진짜 내 아들임을 하나님이 증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세상의 왕이셔서 그 왕을 왕권을 누구에게 주셨을까요? 자기 아들에게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좌 우편에 앉아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그래서 에비소서에서 우리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케 하신 자의 충만인데 만물 위에 계시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다스리실 수 있는 권세를 이제 받았다는 거예요. 그리고선 제자들과 만났어요. 전에는 누구 이름으로 구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이었어요. 주의 이름으로.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모든 권세를 나에게 줬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너희는 누구 이름으로 구하라? 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라. 왜냐하면 이제 내게 권세가 생겼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날을 기다리셨어요. 이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너희는 내 친구 아니냐? 그리고 내가 너희가 내 친구임을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하여 친구와 친구를 위하여 죽는 것보다 세상에 더 큰 사람 없다? 내가 그거를 증명하지 않았냐? 나에게 부탁하고 살아가라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나에게 힘이 생겼다. 그래서 너희에게 특별하게 어떤 명령을 주겠다? 그게 바로 복음 전파라는 거예요. 그때는 못했던 거예요. 그전에는 드러내고 말할 수도 없었고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 구원의 역사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거예요. 이제 때가 되었고 그 원대했던 우리 하나님께서도 몇 천년에 걸쳐서 준비하셨던 그 일이 이루어졌어요. 우리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불러다가 이제 너희는 가서 제자 삼아라. 이제 이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명령은요. 유언과 같은 수준이 사실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을 바꿀만한 정말 세상을 정말 뒤집을 만한 그 놀라운 일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고 모든 것이 갖춰졌을 때 드디어 비로소 준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명령에 대한 무게가 어떻겠습니까? 굉장히 무거운 거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단순한 그런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때가 되었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말씀 보시면요.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 보시면 믿음의 주여 또 온정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어서 부끄럼을 게이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예수님은요. 이 원대한 날을 꿈꿨고 그 날을 위하여 인내하셨고 그 믿음을 갖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부활하시고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을 만나서 드디어 그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십니다. 그게 뭐라고요? 가서 제자삼을 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 예수님이 하고자 했던 정말 원대한 꿈이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오병이형의 이적이 예수님의 원대한 꿈입니까? 아니에요. 예수님이 무슨 병자 일으키는 게 이 세상에 오신 주된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정말 원대한 소망을 가졌던 것은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부활하여 증명되고 인정되었을 때 왕권을 받아서 그 왕권을 가지고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니 세상의 모든 권세가 너희를 이길 수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 권세 다스리는 거 누가 갖고 계세요? 예수님이 갖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시니 너희는 가서 하라는 거예요. 이게 우리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지상 대명령 우리가 가진 정말 큰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사명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돼요. 사명자의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명령을 늘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아는 것과 사명감을 갖는 것과 사명자가 되는 건 다 다릅니다. 모두가 사명이 뭔지는 다 알아요. 찬양으로도 사명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인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사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거죠. 그런 자들이 사명자가 되는 거예요. 이 땅 위에 죄인으로 태어나서 뭘로 죽는 거예요? 의인으로 죽고 이 땅 위에 정말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에서 이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원대한 사명을 가진 사명자로 죽는 것만큼 정말 원대하고 위대한 우아보다도 더 뛰어난 이러한 이야기가 사실 우리들의 삶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의 위대한 대통령들,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 지식인들, 부자들, 세상을 바꾼다는 백명인 이런 책 들이 많이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주인공이며 그들이 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사실 아니에요. 오늘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과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든 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참 알아주지도 않고 비 참하기도 하며 돈도 없기도 하고 지식도 부족하고 가방끈도 짧고 말도 못하고 어쩔 때는 감정도 주체하지 못해서 실수할 때도 많고 의심할 때도 있고 하나님 앞에 참신한 생활을 하는 것도 온전치 못한 내가 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정말 그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에요 사실. 이걸 아는 사람과 모르던 사람은요. 뭘로 나오냐?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에서 오는 자존감에서 증명이 됩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처럼 돈 벌어야 되고 세상 사람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한 사람, 명예 있는 삶.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사람들이 나를 보면 칭찬하고 나를 따르고 그런 사람을 꿈꾸면서 거기서 오는 자존감을 채우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자존감에서 하나님을 믿는 그 자존감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자 존감이에요. 거기서 진정한 사명자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좀 성경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우리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부자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가 사실 가장 위대했던 삶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가도 결국 빛이 되는 삶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속지요. 뭘 속아요? 눈과 귀에 속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괜히 그런 말씀 하신 게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천국 못 갈 것 같으면 뭘 차라리 빼어버려라? 눈을 빼어서 천국 가는 게 훨씬 낫다? 참 우리의 눈과 귀가 문제라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에게 이 명령을 주셨습니다. 네. 가서 제자 삼으라. 복음을 전파하라. 다른 누구가 아니에요. 세상에서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를 아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복음 전파하라는 명령을 가슴에 품고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그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 땅 위에 보내신 것이며 오늘날 내가 살아가는 이유 예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아직 안 데려가실까요? 우리는 삶이라는 것이 그냥 뭐 세상 사람들도 요즘 백세시대라고 하고 백세시대의 삶 가운데서 그냥 자연스럽게 우리도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 가져야 될 믿음은 내가 왜 아직 이 땅에 있을까? 하나님이 아직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뜻이 있다는 거예요. 내 삶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것을 다 이루기까지는 나를 데려가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 믿음을 갖고 살아가야 돼요. 오늘날 우리를 왜 눈을 뜨게 해주시고 또 오늘 하루 더 살게 해주신 이유는 뭘까요? 오늘날 우리의 성경에서 말씀해 있죠. 그게 뭡니까? 마태복음 28장 19절 말씀 우리 다 같이 한번 읽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오. 바로 우리가 가서 제자를 삼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정말 큰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가슴에 품고 사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돼요. 여러분 세례를 줘야 합니다. 세례를 줘야 한다는 것은 이 안에 많은 내용이 함유되어 있어요. 그게 뭐냐? 세례를 받아야 되는 이유는 뭐 때문에 받는 거예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주된 것은 죄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에 베드로가 이걸 잘 알았어요. 그래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래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들에게 죄가 있으며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너희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 거대야. 얼마나 이게 안타깝습니까? 그러니 빨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셔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 세신 말세의 참교회가 있으며 그곳에 와서 믿고 신앙생활 하시면서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까?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 많은 복을 받습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아니에요. 예수님 믿으면요. 우리 예수님이 가끔은 경제적 어려움에서도 우리를 도와주실 때도 있고요. 또 어쩔 때는 병이 있었을 때 병을 낳게 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아무리 돈이 많고 몸이 건강해도요. 가정이 불화하고 가정이 힘들면요. 괴롭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가정도 평화롭게 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면에서 우리 예수님은 많은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어야 되는 이유가 이 세상에서 복받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라는 거예요. 이것은 또 복음이죠. 그런데 이것은 사실 작은 부분이라는 거예요. 정말 큰 부분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구원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는 복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앞에 있는 것들은요. 어떤 분들에게는 허락하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하나님이 허락 안 해주기도 해요. 왜 그러실까요? 몰라요. 누구 뜻이에요? 하나님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하나의 은혜는요. 구원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어야 되며 신앙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어려움을 만나고 심지어 병을 만났을 때에도요 . 원망하지 않고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참 얻기 어렵죠. 그래서 그 믿음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서 세례를 받을 때까지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며 열심을 내서 전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근본 세례식이 또 있죠. 세례식이 있는데 여러분 세례식 자체가 참 복된 것은 맞습니다. 정말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더 세례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신앙생활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었으면 좋겠는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길 바라는데 그 대상이 우리 아이들이 받는 것도 참 기쁘지만 믿지 않았던 사람이 내 이웃이, 내 친구가, 내 직장 동료가, 내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때 세례식을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때 세례를 받았으면 합니다. 이게 우리의 기쁨이고 우리의 소망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그 소망을 가져야 돼요. 제가 가끔 들리더라고요. 이번에 세례식 때 많은 분들이 받게 되어서 다섯 명이 받으니까 예정이죠. 우리가 근데 기도를 해야 합니다. 참 기쁘다. 또 그 과정까지 정말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음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기쁜 일이죠. 근데 여러분 우리가 올해 세례식을 마치고 내년 세례식 할 때는 몇 명이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까? 또 내년에는 세례식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만 그 꿈을 갖고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믿지 않았던 사람이 믿음을 갖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열심히 전해야 됩니다. 낚시를 우리 예수님도 사람을 낚는 것이 바로 복음 전파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죠? 여러분 낚시를 해보셨습니까? 우리 형제님들은 낚시를 많이 해보신 경험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낚시를 해보면요. 낚시는 자기가 시간을 투자한 만큼 잡히는 것 같더라고요. 어쩔 때는 그래서 하염없이 심지어 며칠을 해도 안 잡힐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며칠 지나가지고 한 마리 잡았습니다. 그러면 기뻐요? 안 기뻐요? 기쁘다는 거예요. 우리가 복음 전파라는 게 그런 거예요. 내가 한평생 복음 전파했어도 아예 안 되던데요? 아니에요. 언젠가는 낚을 거다라는 믿음을 갖고 많이 해보릇해야 돼요. 많이 던져야 됩니다. 그런데 또 어쩔 때는 그럴 때가 있잖아요. 제 동생이 첫 낚시를요. 저는 첫 낚시가 장장 9시간 낚시에서 한 마리도 못 잡았거든요. 심지어 물고기 풀어놓는 저수지에서도 못했어요. 저는 그래서 낚시가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동생은 바다 낚시를 한번 다녀오더니 뭐라고 이야기했냐. 낚시는 진짜 재미있는 거라는 거예요. 왜 재미있냐 하니까 자기가 던질 때마다 낚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럭을 그때 정확한 것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요. 한 30마리 넘게 잡았어요. 그래서 제가 아주 실컷 우럭 조림과 우럭 회를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는 이렇게 많이 잡힐 때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알고 갑니까?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복음 전파하다가 지금 안 잡히면 안 잡힐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또 왕창 잡히는 때가 있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엄청 기쁨을 누려요. 한 마리 잡혀도 기쁨을 누리지만 여러 마리 잡으면 더 기쁘어요. 그리고 그것을 한번 맛본 사람은요. 포기 못합니다. 그 행복감. 그래서 어떠한 분이 사회에서 일하시다가 휴가를 받으면 휴가를 길게 받아서 섬으로 와서 그냥 섬 생활을 즐긴대요. 아무것도 사지도 않고 그냥 자기가 섬을 사서 그 섬에서 야생이 있는 것들을 잡고 물고기 잡고 그러면서 그냥 요리하면서 한 달 정도 지내다 다시 돌아간대요. 그래서 그분은 내가 1년의 힘든 바쁜 삶을 버티는 이유는 이 기쁨을 누려받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또 다음 내년에 휴가를 오기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 증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그 기쁨을 누려보잖아요. 너무 기뻐서 계속 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껴봐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요. 자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어요. 복음 전파에서 만약에 세례를 받게 되었어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 20절 말씀에 보면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자 우리 예수님이 보시겠대요. 항상 함께 있어서 보겠다. 감시하시는 것 같기도 하죠. 마치 우리 아이가 공부를 하는지 누가 노려보고 있어요? 엄마가 이렇게 노려보는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걸 보고 계시지만 또 하나 계속 보고 계시는 것은 세례를 받고 난 뒤에 끝났다는 게 아니에요. 제자를 삶는다는 것, 제자를 만든다는 것은 가르쳐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가르쳐야 됩니다. 뭘 가르쳐야 될까요? 말씀을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교회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 말씀이요. 지금 예배는요. 일방적인 거거든요. 제가 일방적으로 말하잖아요. 성도님 말씀하고 싶어도 말 못하잖아요. 어떤 분이 만약에 지금 떠들면 다른 분들이 조용히 하시라고 할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그게 당연히 현재 예배 형식이고 설교가 그렇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 공부는 좀 다릅니다. 성경 공부는요. 좀 일방적인 면도 있지만 좀 쌍방향정이 있습니다. 신도에도 뭡니까? 굉장히 신도에도 양방향적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요. 양방향적인 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뭘 모르는지도 알고 자기의 궁금한 것도 이야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해도 보고 많은 생각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메디츠 효과라고 있어요. 20세기 초반에 우리 인류는 역사상 말도 안 되는 경제적 성장과 지식의 성장을 했습니다. 그게 메디츠라는 곳에서 모여가지고 프랑스에 이탈라인은 메디츠에서 모여가지고 이 똑똑한 사람들이 대화를 갖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때 세상이 엄청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대화를 하는 시간이 여러분 신도에 때 보통 가지십니다. 신도에 예배를 하는데 여러분 신도에도 예배입니다. 신도에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 말씀 가지고 나누는데 그때 지금 계속 마지막에 하나를 두고 있는 게 있어요. 전도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나눠보시라는 거예요. 전도에 대해서 다들 얼마나 하고 있는가 생각보다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신앙생활 오래 했어도요. 그러다 보니까 대화가 좀 필요합니다. 근데 어떤 대화가 좀 많았으면 좋겠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냐? 이 대화가 그래서 나는 이런 노력을 한다? 그 이야기 들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도 바뀌어야죠. 나도 용기를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일들이 많아져야 됩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나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우리 교회가 열심히 내야 돼요. 우리가 성경 공부 시한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산 인천교회가 있어요. 우리 안시기 오후에 안산에도 있지요. 작년 부대상 그리고 누구나 원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 대학사 청부들은 수요일 날 저녁에 또 합니다. 참석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십시오. 꼭 하셔야 됩니다. 또한 우리 목요일에도 또 있어요. 또 있어요. 또 있어요. 우리 교사 선생님들 성경 공부를 또 합니다. 또 수요일 날 저녁에 우리 안산에서 성경 공부 또 있죠. 인천에 또 오후 예배 다 마치고 또 성경 공부가 또 있습니다. 왜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할까요?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주고 난 뒤에 세신자 성경 공부 있고요. 또 기본 신앙 공부 또 합니다. 그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계속 공부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한국총회에서 너무나 감사한 게 온라인 단기 신학이라는 것도 해줘요. 단기 신학이 학생들만 누릴 수 있는 약간 특권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아십니까? 2주 동안 시간 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직장인들이. 가정도 돌보셔야 되고 그런데 온라인 단기 신학은 그 단기 신학 때 한 것 그대로를 가져다가 공부하실 수 있기 때문에 몇 개월에 걸쳐서 해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계십니다. 어떤 분은 또 하셔요. 근데 또 하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결국 우리가 가르쳐야 되는 이유는 예수님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요. 가르치는 일에 정말 열심히 열심히 내야 합니다. 모든 걸 쏟아야 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많은 교육이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많거든요. 더 많이 해야 되는데 모든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결코 그냥 땅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믿음으로 자라게 될 것일 줄 믿습니다. 언제까지 가르쳐야 될까요? 지킬 때까지 가르치라는 거예요. 지킬 때까지.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한 번 들었다고 다 지킵니까? 아니에요. 나를 보면 딱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이거 하지 말라, 이거 하라 해도요. 여전히 하지 않고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은 그러면 그 사람을 다시 또 가르치라는 거예요. 그게 우리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이자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데리고 오서 끝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았으면 가르쳐야 되고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사람으로까지 만들어야 돼요. 그럼 그 사람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뭐하러 나갈까요? 전도하러 나간다는 거예요. 이제 안산 참예수교회가 9월부터 매주 매주 노방전도로 나갑니다. 광고되어 있죠? 돌아가면서 신도에 별로 이렇게 나갈 겁니다. 그래서 한 신도에다 많으면 두 달에 두 번, 두 달에 한 번 정도 하십니다. 그럴 때 숙제처럼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좀 마음을 담아서 그 전도지 전하면 안 받을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이 가져다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일을 해하고 있다는 것과 또 그 떨어진 것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압니까? 실제로 그 떨어진 전도지를 보고 교회를 찾아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신 분의 간증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걸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전도에 대한 용기와 또 복음 전파를 하는 그 주저함을 버리시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주저함을 버리려면 어디서 우리가 힘을 얻어야 되냐? 오늘 우리가 나눴던 본문 말씀이에요. 누가 주신 마지막 명령이에요? 예수 크리스도. 그런데 이 명령이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는 거죠. 정말 예수님이 꿈에 그리던, 정말 바라고 바라웠던 그것을 이제 준비하셨고 그것을 줬다는 거예요.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그것을 위하여 이제 몸으로 움직일 때가 왔습니다. 말로 전하셔야 되고 또 그 복음 전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배당 자리가 계속 꽉 차서 우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좀 기쁜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여기 계신 우리 안산과 인천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인들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주신 이 명령을 마음에 품고 늘 살아가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예수 크리스도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우리 다 같이 찬양 268장 다 같이 찬양 들으시겠습니다.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모든 사람들도 내 사랑할도록 온 세상 위하여 이 복음 전하를 저 죄인 되게 하고서 죽일 수 되더라 이 세상 구하로 주돌아가신 곳 나 추워하지 않으면 저 사람 모르리 전하고 기도해 내 지인들이라 세상 써낸 사람들 듣고 내 사랑할도록 온 세상 위하여 주의 힘하니 주 예수 이름이 비밀봐 이 복음 전하자 이 곳에 맘아서 전하지 못해도 나 어느 곳에 있는지 내게도 힘쓰리 전하고 기도해 내 지인들이라 온 세상 모든 사람들 듣고 내 사랑할도록 아멘 우리 다같이 말씀 기억하시면서 성령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네 지금 저희 세례식을 앞두고 있죠 저희 세례식이 또 우리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또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신 분들의 가정과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수기도 읽겠습니다 올해 성령 받기 위하여 성령이 충만함 또 하나님께 은혜 받기 위하여 안수 받기 원하는 성도님은 지금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모두 인사로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일어나셔서 둥글게 쓰시고 인사하시겠습니다 두 손 잡으시고 네 쭉 나오시고 자 인사하시겠습니다 알렐루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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