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교회01
돌아간버린 미디안 사람
이남찬 · 민10: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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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 (금)
AI 설교 정리
민수기 10장 29-32절을 통해 기회를 잡는 중요성과 신앙의 선택에 대해 설명한다.
본문민수기 10:29-32
- 모세가 호밥에게 이스라엘 여정에 함께 가자고 요청했으나, 호밥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 이스라엘의 여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되며, 신앙인은 기회를 선택하고 잡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신앙생활은 희생과 포기, 그리고 시험 속에서도 견고한 믿음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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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내용 요약
- 민수기 10장 29-32절은 모세가 미디안 사람 호밥(이드로)에게 이스라엘과 함께 여정에 가자고 요청하고, 호밥이 거절하는 내용을 다룬다.
- 호밥은 자신의 고향과 친족으로 돌아가려 한다.
- 모세는 호밥이 함께 가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권유한다.
교훈과 메시지
-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꿈을 이루기 위해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 성경에서는 때를 잡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 신앙인의 삶은 기회를 선택하고 잡는 데 있다.
신앙의 선택과 희생
- 호밥은 신앙의 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교훈을 준 인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된다고 강조한다.
- 신앙생활은 희생과 포기, 힘든 삶을 동반하며, 평안한 삶은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유혹이다.
간증과 신앙의 중요성
- 간증은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나온 믿음의 표현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고 한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사람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며, 시험 속에서도 견고한 믿음을 유지해야 한다.
결론
- 신앙생활은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천국으로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말세가 다가오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기도, 찬양, 전도 등을 통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같이 나눈 말씀 민수기 10장입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서 32절의 말씀입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서 32절의 말씀 우리 다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서 32절의 말씀 우리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루엘의 아들 호밤에게 이르되 여호와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밤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리라 모세가 가로대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 것을 안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아멘 오늘 이 시간에는 돌아가버린 미디안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요. 가장 유명한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꼭 어떤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그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와가지고 노래나 어떠한 재능을 보여주면서 자기는 꿈이 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이곳에 참가했다. 혹은 어떤 분은 대기업 아니면 높은 이런 지위에 있었던 사람도 그 꿈을 위하여 도전하기 위하여 이 오디션에 참가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선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사람은 뭘 가져야 된다? 꿈을 가져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런데 제가 어떠한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분은 나는 그 말에 반대한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젊은이들에게 쓸데없이 허황된 꿈 주지 말라는 거예요. 오히려 뭘 줘야 되냐. 기회가 왔을 때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거예요. 자기는 꿈이 없었다. 그러나 내 삶은 꿈이 없다고 가치가 없거나 정말 낮은 그런 삶이 아니다. 나는 가정을 꾸리고 있고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한 가정의 아빠가 돼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무슨 일을 하냐. 하수구에 있는 대소변을 치우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그 기회가 왔을 때 아무도 꺼려해서 누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엄청 더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기회가 자기 도시에 한 자리가 나왔고 자기는 내가 해보겠다 하고 그 기회를 잡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는 도시에서 잘나가는 하수구 처리하는 사람으로 잘나가고 있답니다. 돈을 굉장히 많이 번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기를 꿈을 가지라는 말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회를 잡아야 되는 것이 우리들에게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성경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는요. 때를 잡아라. 바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요. 사실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 자신의 그 어떠한 바람 소망 그런 꿈이 있죠.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회를 잡는 삶입니다. 어떤 기회를 잡는 삶입니까? 바로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는 선택하는 것. 그 기회를 잡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신앙인이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요. 포기하는 게 오히려 더 형통한 삶의 시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은요. 더 좋은 대학 가는 걸 뭐라 합니까? 성공하고 좋은 기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계에서는요.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는데도 안 가는 게 하나님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기회를 잡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거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려면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 많은 기회들이 있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거예요. 자신의 생각과 어떤 판단, 세상에서 말하는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신앙을 두고 선택하는 것.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세상의 판단으로 봤을 때 이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을 해서 돌아가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오늘 나오는 미디안 사람, 루의 아들, 호밥. 다른 말로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입니다. 오늘 이 이드로는 호밥은 왜 그는 이 신앙인의 삶의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같이 교훈을 삼아서요. 우리는 그 구원을 받는 그 신앙의 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그런 교훈을 좀 삼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29절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29절 우리 한번 다 즐거우겠습니다. 29절 시작.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루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와께서 주마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이스라엘께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아멘 여기에 말씀해 보면 모세의 장인어른이 되는 미디안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유대인들,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서 결혼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애국에서 도망쳐 나와서 바로 그 미디안 사람 제사장 가문이 되는 바로 루엘의 아들 이드로의 딸인 시뽀라와 결혼하게 되면서 미디안 사람 제사장 가문에 살았어요. 미디안 사람들, 오늘날로 치면 저희 아라비아에 있는 사람들인데 미디안 사람들이 누구를 믿었을까요? 하나님 믿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드로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몰랐으니까 할레를 줬어요 안 줬어요? 우리가 모세가 할레를 줬을까요? 못 줬을까요? 그러니까 영어로 치면 켄트냐 돈트인데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드로 집안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이드로의 집안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할레도 없는 자들이었고 언약이 없습니다. 그러니 모세가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를 뭐 하려고 합니까?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 모습을 누가 봅니까? 시뽀라가 본 거예요. 시뽀라가 보고서는 어떻게 됩니까? 충격을 받고 이거는 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제 선택해야 된다는 거예요. 내 아들은 누구 거다?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라 저희 히브리인들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뭐 합니까? 할레를 베풀고 그 표피를 던지지 않습니까? 그런 배경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이드로 집안 자체가 굉장히 강한 명이 있습니다. 모세도 강한 사람인데 모세가 당연히 말하지 않았겠어요? 나는 히브리 사람이고 나도 할레를 받은 사람이고 우리 민족이라면 이 약속이 있는 할레를 받아야 된다 했는데 하지를 못했다는 거예요. 물론 그의 상황이 이제 그 집안으로 와서 결혼해가지고 사는 사람의 입장이긴 했지만 모세도 못할 만큼 이드로와 그 집안 사람들이 아마 제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드로가 나중에 모세가 그 미디안 광야에 있는 신의 산을 떠나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내가 애국으로 가야 된다 라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리국기 우리 18장 말씀 보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어요. 그래서 애국이라는 땅에서 무려 몇 가지 재앙입니까? 그렇죠. 10가지 재앙에다가 하나는 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죠. 뭐였습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건너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이들이 돌아오게 되면서 이들의 목적지가 어디였을까요? 아라비아에 있는 바로 미디안 광야에 있는 신의 산 바로 지금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이 미디안에 있는 신의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와야 된다고 하셔서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면서 모세가 그곳을 알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 알까요? 모를까요? 모릅니다. 그러니 모세가 잘 아는 그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18장 1절 말씀 보시면요. 모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기를 하시니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국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냈던 그의 아내 여기 보시면 모세가 출애굽을 하기 전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 누구와 같이 갔어요? 자기 가족들이었어요. 바로 아내와 두 아들. 그런데 이유는 몰라요. 성경에서 그 이유까지는 안 나와있지만 먼저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어차피 이곳으로 다시 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드로 입장에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상하잖아요. 사위가 갑자기 무슨 여호와라는 하나님을 만나고 신을 만나가지고 지금 이집트란 땅에 가가지고 자기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데려오겠다라는 말을 하고 갔어요. 그런데 누가 다시 돌아왔어요? 자기 딸과 손자들이 돌아온 거예요. 참 이런 일들을 보면서 이드로 입장에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세를 믿었을까요? 그러니까 이 일을 듣고선 이 장면에서 놀라는 장면이 납니다. 7절 말씀 보면요. 7절 보시면 모세가 나가서 그 장인을 맞아 절하고 그에게 입맞추고 그들이 서로 문안하고 함께 장막에 들어가서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국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에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에게 그 장인에게 고함에 그래서 모세가 만났고 같이 장마에 들어와서 애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이드로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드로는 9절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모든 은혜를 베포사 애국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가로대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드로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너희를 애국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국사람의 손 밑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뭐하대요? 크시다. 이스라엘에게 교만이 행하는 그들을 뭐했답니까? 자 여러분 이드로는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입니까? 아니었어요. 그는 하나님만 있다 생각 안합니다. 여기 보면 뭐라고 됐습니까? 모든 신보다. 여기 안에는 그들의 우상적 생각 그 시대에 흐름이 다 묻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드로가 말로만 들었던 그 일을 정말 해가지고 모세가 돌아왔어요. 모세만 돌아왔으면 믿지 못했을 거예요. 누가 함께 돌아왔습니까? 어마어마한 백성들이 같이 왔잖아요.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아 이 이드로가 드디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너를 택하시고 너를 부르신 그 여호와라는 그 신이 정말 뛰어난 신이며 정말 참된 신이라는 것을 내가 드디어 알아서 찬송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드로는요. 오늘날로 치면요. 모세에게 뭘 들은 겁니까? 복음을 들은 거예요. 모세에게 복음을 들었고 그래서 모세가 장인에게 찾아온 이유는 뭐 하자는 거예요? 같이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을 믿어서 같이 가난한 땅으로 들어가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이방인을 배척했다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족보 혈통 이런 것을 보면요. 이방인 가운데서도요. 한례받으면 편입됩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성경 안에서 가난한 땅에 누구만 들어갔어요?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 여러분 여호수아는 원래 이스라엘 사람의 집안 사람인 걸 알 수 있어요. 근데 갈렙은요. 어느 족속 출시라고 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그나스. 그나스라고 하는 그 족속 출신입니다. 그나스.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그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멸망당할 거라고 하나님이 예고했던 족속 중 하나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갈렙은 이방인이었지만 누구를 믿게 된 거예요? 하나님을 믿었고 한례를 받음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이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도 한례를 받을 때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여기에는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고 아브라함에 속하겠다고 한 사람 모두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요. 지금 자기 장인어른에게 와서 당신에게도 복음을 전하러 왔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역사를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12절에 모세 장인이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뭘 먹었습니까? 떡을 먹었어요.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감사와 기쁨을 드리는 바로 예배와 화목제를 의미합니다. 희생이라는 단어가 화목제예요. 그래서 화목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참된 신이라는 것을 이드로도 뭐 한 거예요? 깨달았다는 거예요. 뭘 통해서요? 모세의 간증을 통해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복음이라는 것은요. 사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는 일종의 간증과 같은 간증의 성격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전도 집회나 가끔 전도를 할 때 꼭 자주 사용하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간증이라는 거예요. 간증이 그래서 참 귀한 것입니다. 우리 여우수와 뭐 있습니다? 여우수와 4장 21절입니다. 여우수와 4장 21절 말씀 보시면요. 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가래 열두 돌을 세우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대 후일에 너의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든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습니다. 요단 강이 사람이 물이 많으면 건너기 힘든 나룻배 타고 가야 되는 곳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모습이 등장해요. 그런데 그 요단 강 한가운데 돌이 몇 개가 있어요? 열두 개가 있다는 거예요. 인위적으로 둔 것이죠. 그래서 맨땅일 때 그들이 우리 조상들이 세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를 가르치라? 후손을 가르치고 이것을 증거 삼아서 계속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간증이 되는 삶을 살아야 되기도 하며 복음을 증거할 때 간증할 줄 알아 야 됩니다. 거기서 믿음에 확신이 오는 거거든요. 믿음은요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믿음은 단순히 글을 읽는 거에서 끝난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읽고 하나님의 말씀 열심히 공부하고 중요하죠. 안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이 살아서 경험해 봐야죠. 경험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욕도 마지막에 비로소 뭐라고 합니까? 내가 드디어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하잖아요. 경험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평면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입체적인, 내 삶에 정말 역사하는 하나님을 많이 경험해 보셔야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서 나오는 간증을 통해서 복음 증거하는 힘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 눈에 안 보여요. 눈에 안 보이는 거 사람이 믿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들 안 믿잖아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성도인들은 우리들은 왜 이곳에 와서 오늘도 기회를 잡으셔서 안식시키러 오셨는데 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큼 제일 비율적이 없어요. 세상에서. 여러분은 돈 쓰시고, 시간 쓰시고, 감정도 소비되고, 마음도 힘들고 그에도 상처 제일 많이 받습니다. 그러면 뭐가 떨어집니까? 연말 되면 성과금 줘요? 우리 임원분들한테 돈을 줍니까? 명예를 줍니까? 아무것도 안 줘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없는, 이익 집단이 왜 생기는 거 없습니까? 사람은 이익을 찾아다닌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도들은 왜 이 교회에 모여서 헌신하고 희생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냐는 거예요. 경험했기 때문인 거예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간증이 우리 삶 가운데 많아야 됩니다. 그래서 모세도 그것을 경험했고 그것을 자기 장인에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장인이 이드로가, 호바비, 또 다른 이름이죠. 그걸 듣고 뭐 한 거예요? 믿은 거예요. 정말 너의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그 하나님이 참된 신이구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삶에 간증이 많으셔야 돼요. 그리고 또한 간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어떤 경우는 간증하라고 하면 안 하시려는 분도 있어요 예 그런데 여러분 간증이라는 게 꼭 뭔가 대단한 일만 있어야 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삶 가운데 내가 괴로웠는데 마음의 평안함을 주신다. 이런 단순한 거여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좀 더 뒤에서 볼 거지만 엄청난 이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간증의 기회가 오시면요. 적극적으로 하실 줄 알아야 되고 또한 간증이 많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초기에는 정말 많은 간증이 많았어요. 물론 지금도 우리 교회 안에서는 계속 간증 될 만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글로만 읽고 듣는 저 성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 성도의 하나님도 나의 하나님이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나에게도 저렇게 역사하신다는 걸 그걸 믿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민수기 10장으로 본문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호밥은 모세에게 처음 복음을 들어가지고 아이고 하나님이 참되시는구나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29절에서 이제 드디어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모세가 이곳에서 1년 조금 넘게 있었고 이제는 드디어 떠나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 장인에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자.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자고 한 거예요.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1년 동안 이드로는 뭘 보고 살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걸 보고 살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같이 하나님 말씀도 들었을 것이고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30절의 말씀에 보면 10장 30절의 말씀 보시면 호밥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뭐라 합니까?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뭐 어디로 간대요?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호밥은요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예요. 평안한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 아브라함은요 뭘 떠났습니까? 내 친척 본토 아비집 이거와 이게 같은 말이에요. 이 시대에는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게 오늘날과는 너무 다릅니다. 오늘날은 얼마 전에 다른 도시로 이사 가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요 여러분 시골만 가도요 집성초 이런 데 가시잖아요. 지금도 외지인이 오면요 적응하기 힘들어하세요. 제가 목표하던 한 시골에 어떤 성도님이 여수에서 오셨거든요. 그런데 정말 몇 년은 힘들었대요. 마을 싸움 때문에. 그런데 거기에 있는 우리 성도 대신 전도하셔서 우리 성도가 되셨거든요. 친구인 우리 성도님과 또 그의 가족들이 함께 있으니까 내가 버틴 거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버틴 거지 정말 외지인이 이곳에 오는 건 쉽지 않다는 거예요. 함흥을 이 시대는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정말 고생해야 되는 삶이 시작되는 건데 호밥은 그걸 포기 못한 거예요. 지금 평안하고 지금 이렇게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심지어 호밥의 집안은 어떤 집안입니까? 제사장 집안이에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을 믿게 되면 이 제사장 집분을 어떻게 될까요? 없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호밥은 레위인이 아니고 아론의 집안도 아니거든요. 그러니 호밥의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되만 하는 순간이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순간에 신앙생활을 하러 가자 했는데 하지 않겠다 한 거예요. 그리고서 31절에 모세가 가로대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모세가 만류하지 않습니까? 이 모세가 장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비록 그 집안에서 모세가 고생했을 것입니다. 고생했어도 결국 당신을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내가 이곳에서 많은 걸 배웠고 나를 지켜주셨고 그러니 이제는 내가 당신에게 좋은 걸 주겠다는 거예요. 복음을 줬는데 그 복음을 제발 받아들이고 우리와 함께 구원으로 받는 길을 가자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호밥은요. 결국 가지 않게 되는 거죠.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가지고 호밥이 포기를 못한 거예요. 오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요. 많은 걸 포기하고 정말 힘든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쉽지 않아요.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세상과 싸워야 되면 또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세상에서 밀려 들어오는 미혹과 하지 않겠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아니라고 할 때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아야 돼요. 그런 삶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호밥은 이제 자기의 이익과 신앙과 가치를 판단해 본 거죠. 저울질을 해봤는데 뭐가 더 낫다는 거예요? 지금의 삶이 낫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평안하면요. 평안한 게 굉장히 큰 미혹거리인 거 아십니까? 제가 보면요. 제가 해외 사역을 몇 번 다니면요. 괴롭고 힘들고 절대적 빈곤이 계신 우리 성도인들은요. 평안할 수가 없어요. 정말 괴로워하세요. 어떤 위로도 못합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절대 빈곤 사이가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이. 또 여름에는 에어컨 시원하게 있고 마이크도 너무나 잘 돼 있고 교회에서 많은 것들을 제공해주고 우리 성도인들 시야생활하면서 너무 좋은 환경에서 시야생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은 해결할 수가 없어요. 아무 말은 못하겠어요 제가. 그래서 하나님 말씀만 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삶을 사시기 때문에 그분들은요. 힘들어도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를 보면요. 가끔 너무 평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좀 절실하게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어도 그런 거예요. 평안한 삶을 포기 못하고 평안한 게 좋거든요. 신앙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너무 지혜로우셔서요. 말세에 뭘 보내주십니까? 우리 베드로 전우서에 보면 너희를 시험하려고 하는 뭐를?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것 같아요. 우리가 너무 평안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십니까? 뜨거운 곳에 한번 들어가 보셨습니까? 찜질방 뜨거운데? 그러면 발 어떻게 합니까? 동동 구르시지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뜨거운 물에 넣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호밥은 그래서 이 호밥은 자기의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은 이 정말 귀한 기회를 차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선대하겠다. 하나님이 당신에게도 복을 주겠다. 그러나 그는 그것보다 지금 내 지혜와 이곳에 있는 내가 이룬 것들 내 편인 사람들이 이곳이 더 많다는 거예요. 나는 포기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호밥의 입장에서 더 사실 믿을 수밖에 없어야 되는 이유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호밥의 집 앞에는 호밥이 사는 그 근처에는 뭐가 있습니까? 우리 민수기 9장이나 10장의 말씀을 보면요. 그 앞에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적이 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거든요. 아침마다 뭐가 내려요? 만나가 맺혀가지고 이게 뭘까 하는 이 신비로운 세상이 없는 여러분 만나 어떻게 생기는지 아십니까?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거를 늘 보고 살았어요. 그런데 호밥은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밥은요.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 듣고 하나님을 믿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 자들에게는요. 하나님의 놀라운 표적이 눈앞에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어도 믿어요? 안 믿어요? 안 믿습니다. 눈앞에 만나가 있어도 안 믿는 거예요. 그게 우리 사람입니다. 우리 누가 보면 보겠습니다. 누가 보면 16장 27절 말씀 보면요. 우리 부자와 거짓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 보시면 27절에 가로대에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는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가 드디어 안 거예요. 복음을 받아들여서 이 뜨거운 곳에 오면 안 된다. 그러니 내 형제들만큼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형제들이 그 위를 여겼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29절에 아브라미 가로대 저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 이 말은요. 성경의 말씀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들으면 된다 그런데 30절에 가로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다 가로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니다 사람은요 믿지 않으면요 하나님 말씀 듣고도 믿지 않으면 눈앞에 죽은 자가 살아나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표적이라는 게 이적이라는 게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왜 이적을 보여주십니까? 그 이적을 통해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해주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왜 사람에게 그걸 보여줍니까?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말씀만 듣고도 믿으면 되는데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그 후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요 표적을 통해서 믿은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될까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도 믿지 않습니다 절대 믿지 않아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시험 중 하나는요 여러분 표적을 너무 바라지 마세요 목장 어떻게 표적을 바라지 않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는 거 바랄 수 있습니다 바래도 돼요 그런데 안 일어나면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까? 이제 거기서 시험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 보면 보겠습니다 마태복입니다 마태복 27장 40절 말씀 보시면요 마태복 27장 40절 말씀 보시면 가로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세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뭐 하겠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안 일어나요 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이런 능력을 하실 수 있음에도 안 해주셨을까요? 그게 하나님 뜻이기 때문이에요 표적이 안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 뜻입니다 이적이 없어도 돼요 이적 때문에 믿는 신앙은 반드시 이적 때문에 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하나님이 없고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있을까? 병들고 괴롭고 가난해지고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으면 세상 사람들을 보고 미혹이 되죠 세상에서 우상 믿고 악하게 살아가고 죄악 짓고 거짓말하고 압지하는 자들이 부하고 잘나가고 세상에서 위대해지는 걸 보면서 누구를 의심합니까? 하나님을 의심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여든이라는 것의 시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을 믿는 이유가 다 그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필요해요 이대로는 그 시험에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1년 동안 들었지만 믿음이 자라지 않았어요 이적을 듣고 믿었던 믿음의 끝은 이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말씀 당연히 안 듣죠 이적이 눈앞에 있어도 믿지 않았다는 거예요 결국 그는 함께 동행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요 절대적인 신앙이라는 게 뭘까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됩니다 점점 시대가 악해지면서요 게시록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밤의 때가 오면 아무런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까 없을까요? 여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한 재판관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왜 불이한 재판관에게 과부가 가서 왜 그렇게 합니까? 우리가 이렇게 당하는데 하나님 뭐하고 계시냐고 소리 지르는 거예요 게시록에서도 다섯 번째 인해 보면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의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않습니까? 언제까지 듣지 않으시고 언제까지 악인들에게 갚지 않으십니까? 얼마나 답답하면 하나님한테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럴 때가 온다는 거예요 이러면 그때 어떤 믿음으로 서 있으실 것입니까? 우리가 그때 서 있으려면요 이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가 되어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또한 나중에는 내 삶 가운데 마지막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 시상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이 세상을 보면요 점점 말세가 오고 있다는 게 많이 느껴집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아이들에게 그런 감각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정말 세상 멸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멸망할 거기 때문에 오늘 내가 누리는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고 어쩌면 부질없는 게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뭘 합니까? 늘 계획을 세우고 너의 꿈을 이루라 하며 내일도 세상에 있을 듯이 모든 걸 말합니다 많은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을 오늘날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줍니다 그래서 우리한테 뭐 하는 거예요? 신앙적으로 좀 더 졸자 좀 더 자자 그래서 네 빈공이 강도같이 우리니 자문의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의 그 부유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해외사역을 다녀오면 여러분 그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귀하게 여기십니다 왜 그러냐? 목자님을 뵐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 와가지고 궁금했던 것들도 많이 물어보고 하나의 말씀 듣겠다고 두세 시간 걸려도 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오늘 예를 들면 안산에 오셨어요 목자님이 그런데 이 목자님이 내일은 부산 가요 했는데 부산 갔잖아요 안산에서 계신 성도인들이 부산 따라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목자님 말씀 일꾼의 말씀 그때밖에 못 듣기 때문에 다 따라다니는 거예요 그 마음 안에 그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 케냐인들 성도들도 전부 다 심지어 예배드리다가 불빛이 꺼지는데도 모두 다 여전히 공책을 계속 피시고 계속 말씀을 적어 가세요 제가 삼손 형제의 성경책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경책이 헐었어요 엄청 많이 읽었어요 모든 곳에 밑줄이 있고 메모가 있습니다 뭐가 제일 좋아하냐 하니까 왜 오늘 성경을 성경이 성경이 있는 게 제일 재밌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정말 우리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말씀의 홍수다 보니까 홍수에 떠밀려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순종해야 되는데 우리들은 어차피 다음 주도 들으면 되고 안식일도 다음 주 지키면 되고 뭐 그럼 되겠지 하는 그 안일함이 우리 마음 가운데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런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지금 은혜 받을 때 은혜를 받기 위하여 말씀을 열심히 듣고 순종하고 변화하여 나중에 아무런 하나님이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그런데 그게 응답이긴 해요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그 시대에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드로처럼 떠나지 않으려면 지금 신앙생활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그때 가서 말씀드렸는데 우리 하나님은 지혜로우셔서 뜨거운 불이 오면 사람들이 잘 신앙생활 할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약간 우리는 몰라요 누가 신앙생활 여기 그러니까 우리 누가 보면 마태국 말씀에 빗대어 설명드리자면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고 둘 중 하나만 섬기를 하잖아요 누가 뭘 섬기는지는 모르지만 그때 하나님이 불시험을 주면 뭔가 세상을 조금 섬기던 성도들도 하나님 쪽으로 기울 거라고 착각합니다 아니에요 하나님 쪽에 있는 사람들이 더 온전해지는 겁니다 뜨거운 불에 실제로 들어갔던 다니엘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신앙생활 여러분 바벨론 시대에 그 세 친구만 하나님 믿었어요? 왜 세 친구만 절 안했다고 들어갔고 나머지는 어디 갔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그곳에 살았어요 히데기의 강가에 살았습니다 어디 갔냐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뭐 했을까요?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두려움 속에 절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그 뜨거운 불에 실제 들어간 사람들은 절하지 않은 온전한 사람들만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불시험을 당할 때 이상히 여기지 마시고 그때 더 온전해지고 깨끗해져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드로 호밥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찾아왔지요? 우리는 지금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따라오라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하고 계세요? 계속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안식일에 오라, 기도해라, 찬양하라, 전도해라 여러가지 말씀을 하나님이 계속 해주십니다. 우리가 그러면 그 말씀을 듣고 따라가야 됩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구름기둥 불기둥 아래에서 만� ��를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셔서 가난한 땅 즉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여기 계신 저 여러분께서 그 말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추천드� ��니다. 우리 다같이 찬양 253장 같이 찬양 들으시겠습니다. 이것으로 안식일 저녁 예배 마치겠습니다. 일어나셔서 인사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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