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20
김찬민 · 수3:1-17
AI 설교 정리
[00:00] (화면) 지금은 성령기도시간입니다.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주시옵소서. • 맡겨주신 성업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참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끌어주시옵소서. [00:00]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00:1
- [00:00] (화면) 지금은 성령기도시간입니다.
-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 •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주시옵소서.
- • 맡겨주신 성업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 참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이끌어주시옵소서.
- [00:00]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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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_one": "예배에서 요단강 건너기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함께 걷는 삶을 권면한다.",
"summary_three": "예배는 하나님께 예배가 기뻐되도록 기도하며 시작되었다.\n요단강 건너기 사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믿음을 강조하는 교훈을 제공한다.\n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body_md": "## 예배 시작\n- 예배 시작 전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가 기뻐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성업에 충실하도록, 참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함.\n-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증거.\n- 예배 일시: 2026년 8월 18일 화요일 저녁, 제목은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수3:1-17).\n- 날씨가 덥지만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였음을 언급.\n\n## 요단강 건너기 사건\n- 성경 구절(수3:1-17)을 읽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강 건너기 사건을 설명.\n- 요단강은 물이 넘치는 시기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시기에 요단강 앞에 세우셨음.\n-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야 함을 가르치기 위함.\n-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요단강과 같은 장애물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럴 때는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n-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n\n## 하나님의 인도와 믿음\n-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에 익숙했지만, 요단 강 건너기에는 전혀 경험 없었다.\n-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략을 주지 않고, 언약괴를 따라가라고 말씀하셨다.\n- 언약괴는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을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을 인도하는 표지였다.\n- 하나님은 앞서가시며, 백성들이 그 뒤를 따라가라고 말씀하신다.\n- 믿음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n\n## 성결과 말씀의 순종\n- 하나님은 백성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성결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태도이다.\n-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며, 그 말씀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신다.\n-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n\n## 믿음의 실천\n-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함께 있음을 믿고 요단강을 건넜다.\n-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만 요단강이 마르게 되었다.\n-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고, 그 결과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n- 믿음은 결과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에서 비롯된다.\n\n##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n- 하나님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며 지켜주시는 분이다.\n-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시며, 그리스도인은 그 임재를 의지해야 한다.\n- 하나님의 약속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며, 이는 가장 큰 기적과 은혜이다.\n- 성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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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좀 몇몇일 한풀 꺾인 것 같더니 오늘 제가 오랜만에 다시 출근을 했는데 날씨가 다시 더워졌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가만히만 있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 날씨가 뜨겁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해 드리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성도님들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 말씀 읽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길지만 같이 교독하시면서 읽어보시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1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 교독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1절 여우수와 3장 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돼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우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쫓으라 그러나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러나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여호와께서 여호수하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그리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니깐요. 1년 학교에서 근무를 마치고 군대에 가기 전에 이대로 군대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 청주교회에 있는 모 형제와 함께 몇 주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계획을 열심히 세우려고 했는데 첫 해에 근무하다 보니까 직장생활에 너무 허덕이다가 계획들을 꼼꼼하게 세우지 못하고 그렇게 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모든 것들이 좀 힘들었지만 그 중에서도 지하철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전혀 달라서 고생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에 표를 끊으러 갔는데 어떤 표를 끊어야 될지도 모르겠고 표를 끊어서 어디로 가야 목적지로 가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런 것들이 정말 헷갈리고 막막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하철역에서 옆에서 표를 뽑으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이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안되는 영어와 몸짓 발짓을 섞어 가면서 이곳에 가겠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친절하게 표를 끊어주시고 그 표를 가지고 어디에 가야 그 장소에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탈 수 있는지 거기까지 좀 데려다 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데려다 주시니까 막막했던 제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고 이제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안도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우리에게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지 그런 것을 모를 때 우리는 그것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또는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믿고 따라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걸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을 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단강이었고요. 그 요단강은 일반적인 때의 요단강이 아니었습니다. 요나 3장 15절에는 요단강을 몸에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라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곡식을 거두는 때였고 요단강의 물은 언덕에 넘치는 때라고 특별히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이 가장 적어서 건너기가 좋은 때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러한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 앞에 데려오셨습니다. 이 상황은 어떻게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이제 가난 안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조금만 더 기다리셨다가 이 물이 넘치는 시기가 좀 지나서 좋은 시기에 물이 줄어든 다음에 요단을 건너게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면 요단강이 뻗어있는 긴 요단강의 물줄기 중에서 가장 물이 얕은 좋은 편안한 길로 인도하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기와 그리고 장소 앞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세워놓으셨을까요? 이스라엘은 앞으로 가난 안에 들어가서 여리고를 만나게 되고 많은 이방족속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적을 맞이하고 그들과 전쟁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 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능력 때문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여호수아 3장 10절에는 여우수아는 이렇게 백성들에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단강이 갈라지는 사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성공적으로 요단을 건넜다 이런 사실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고 오늘날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오늘날 우리 앞에도 요단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녀의 교육문제나 건강, 직장, 사업과 같이 개인적인 문제가 요단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다가올 미래가 막막한 요단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신앙을 지켜나가는 일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 이런 것들이 요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계산해봐도 길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요단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장애물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괴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먼저 가시는 우리를 계획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삶의 문제를 만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오늘 � �문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는 가보지 않은 길에서는 하나님의 임제를 따라야 합니다. 성경 말씀 읽으시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2절부터 4절의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2절부터 4절입니다. 3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돼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 우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쫓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산거가 이천 규비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유사들이 진중으로 다니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우와의 언약괴 매는 것을 보거든 그 뒤를 쫓으라. 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며 다닙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4절에서는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한 문장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에는 매우 익숙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광야에서 성막과 진을 치는 법 그리고 걷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날을 먹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광야의 생활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고난이고 힘든 삶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겐 어쩌면 익숙한 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본문의 상황은 이제까지와의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을 건넌 적이 없고 가난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앞으로 있을 큰 성 여리고와 같은 성과 싸워본 적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전에는 지나 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알지 못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주고 계십니까? 가난과 관련된 자세한 지도나 어떤 전략적인 요충지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고 계십니까? 또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자세히 보여주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언약괴를 앞세우고 그 뒤를 쫓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괴는 하나님의 언약과 임재를 나타내는 거룩한 표지였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 보면 그리고 민수기 10장 33절에서는 그리고 민수기 10장 33절에서는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길을 행할 때 여호와의 언약괴가 그 삼일길에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라고 말씀하시며 여호와의 언약괴가 이스라엘 백성보다 앞서가며 쉴 곳을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이와 같이 광야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재하셨고 말씀하시며 앞서가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상황 역시 환경은 그때와 변화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취해야 하는 행동은 다르지 않음을 말씀해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 요단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앞서가시겠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들이 계획해라 그럼 내가 그것을 돕겠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시겠다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바울사도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제가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 으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정확하고 자세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나 어떤 지도가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길을 떠난 것일까요?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앞으로 갈 목적지는 정확하게 몰랐으나 자신을 부르신 이가 누구인지는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갈 길을 알지 못하더라도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길을 알고 출발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길을 잘 모르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에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친척들과 음식점을 찾아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내비게이션이 정말 잘 돼 있어서 목적지만 딱 검색을 해놓으면 내비게이션이 잘 알려주지 않습니까? 그때 당시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었고 항상 이제 저희 조수석에는 저희 어머니께서 지도책을 펴시고 알려주시는 그런 길을 찾아가기도 했었는데요. 또는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뒤에 따라와 라고 하면서 이렇게 안내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저희 고모부께서 저희 아버지께 뒤에 따라오면 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출발하게 됐 습니다. 저는 뒷좌석에 앉아서 고모부 차에 뒤편만 계속 뚫어져라 이렇게 쳐다봤습니다. 왜냐하면 그 차를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계속 이렇게 저라도 주시하면서 나중에 놓치면 제가 어디 있다 이렇게 알려드리려고 열심히 쳐다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다가 달리던 차로가 살짝 변하게 되고 고모부께서 계시던 그 차의 차로가 조금 정차하게 되면서 한순간 저희 아버지의 차가 고모부의 차보다 앞서가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한순간 어? 길을 잃는 거 아닌가?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되게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희 고모부의 차는 다시 저희 앞에 오시게 됐고 그제서야 저의 마음이 다시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 이런 저의 마음이 이렇게 변화가 있었을까요? 바로 길을 아는 사람이 내 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도 비슷할 것입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서가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추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찾아보라, 내가 뒤에서 지켜보겠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앞서가시며 나의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은 종종 하나님보다 앞서가려 합니다. 삶을 살아가며 사람이 먼저 결정하고 나서 그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결정을 했습니다. 저의 결정을 축복해 주십시오. 또는 저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욕심대로 저의 행사를 정해놓고 하나님이 따라오시기를,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순서는 우리의 모습과 정반대입니다. 함께 성경말씀 읽으시겠습니다. 잠언 3장 5절에서 6절입니다. 잠언 3장 5절에서 6절 교독하시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우아를 의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길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임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문제를 만나고 결정을 해야 될 때 나에게 어떤 선택이 유리한지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어떤 길이 오른가 어디에서 하나님을 더 온전히 섬길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계획을 세우시고 또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또는 목자님과 성직자분들의 설교와 건면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될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약괴를 보고 쫓으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길을 알지 못하여도 좋습니다. 앞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눈이 주님을 놓치지 않게 해달라 기도하는 저와 성교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5절입니다. 여우수와 3장 5절 여우수와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하라 여우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우수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입니다. 여우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실 것이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두렵기도 하고 또는 신기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하지만 하나님 앞에 성결하라는 그런 말씀은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거룩함을 이루고 우리의 잘못된 행실을 돌이켜 진정한 회개의 삶을 이루고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는 하나님께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맡기는 일은 참 어렵고 좀 부담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기 전에 백성들을 준비시키십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결하게 살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적을 빚지는 것이 아니십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 기사를 행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기적의 주원은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결한 삶은 하나님께 기적을 얻어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10절에서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신의 산에 임하시기 전에 백성들에게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만나고자 하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5절부터 1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을 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이렇듯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 역시 거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을 건너기 전 성결을 명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을 바꾸시기 전 우리를 준비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사람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환경과 문제를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너는 어떠냐 물으십니다. 10편 139편 23절부터 24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편 139편 23절 24절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주변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주세요 라는 기도보다 제 안에 잘못된 것을 보여주시고 저를 깨끗하게 하여 주소서라는 기도를 먼저 올려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조금 아시다시피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린 학생들이지만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문제들을 겪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친구들 간의 다툼으로 제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들 중에는 제가 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도를 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 상호 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기의 행동과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합니다. 이 과정을 잘 거치게 되면 결국에는 서로에게 화난 마음보다는 미안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더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두가 상대방 또는 환경의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물론 언제나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나의 잘못된 것을 깨끗하게 해달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성결은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우리의 욕심과 더러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더욱 나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과 7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라 이렇게 명하시면서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는 그런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분들께서는 이유로는 유도치 않게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가고 또는 세상에 조금씩 물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나의 고집을 또 관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나를 세우는 일에 더욱 힘쓸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에 사용될 깨끗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결하라 그리하면 내일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그러한 성도가 되기를 기도하는 저와 수원교의 성도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세 번째는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 보시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7절부터 10절의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여우수와 3장 7절에서 10절입니다. 여우아께서 여우수와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괴를 맨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우수와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우아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난족속과 헷족속과 휘이족속과 브리스족속과 기르가스족속과 아모리족속과 여부스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령이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7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여우수와를 세우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우수와를 크게 하겠다 하시는 이유는 백성이 여우수와를 따르게 하고 지도자로서 추앙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같은 경우는 같은 절에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여우수와와 함께 있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우수와가 앞으로 백성 앞에서 가질 권위의 핵심은 여우수와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바로 여우수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수 있는 권위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가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여우수와 1장 7절 그리고 8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우수와 1장 7절부터 8절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9절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까이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가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10절에서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심을 이 일을 통해 알리라 이렇게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물이 불어나 있는 요단강을 만나게 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하시며 일을 해결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백성들을 요단으로 인도하시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까요?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많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하나님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계획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다시 본문 말씀 읽으시겠습니다. 요수하 3장 13절부터 16절의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요수하 3장 13절부터 16절입니다. 요수하 4장 13절입니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 제사장들은 언역괴를 메고 백성 앞에 행하니라. 요단이 몸에 꺼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괴를 맨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괴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며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세. 이제 언역괴를 맨 제사장들이 움직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역괴를 맨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에 잠기면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물이 끊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4절부터 16절에 걸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제사장들이 언역괴를 메고 요단에 이르고 그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물이 멈춥니다. 물이 멈춘 다음에 제사장들이 걸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제사장들이 순종했을 때 물이 멈춘 것 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역사의 순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마르게 하시는 그런 기사를 보이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 4절 그리고 5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며 이런 대화를 하십니다. 누가복음 5장 4절부터 5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오랜 세월 동안 어부일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히는 시기, 계절 그리고 장소 이런 것들을 아마 꿰뚫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날은 고기를 잡지 못했고 그때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치시고 나서 그물을 씻고 있던 제자들에게 기쁜대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갈릴리 바다에서 아주 오랫동안 어부로서 일한 사람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해가 되지 않고 우습고 어쩌면 쓸데없는 행동이라 여길 수 있는지 5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을 때 얻은 것이 없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것으로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많은 물고기를 잡게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가르는 것은 여우수아의 역할도 제사장들의 역할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할도 아닙니다. 그들의 역할은 말씀을 믿고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물을 멈추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을 책임지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고민을 하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여야 할 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분들의 건면을 통해서 기도 중 응답을 통하여든 어떤 방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일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에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들 것만 같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수 있는지 우리에게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부담스러울지라도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이오당강에 발을 내디든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다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린 베드로와 같은 신앙의 발걸음을 딛는 저와 수원교의 성도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수와 3장 17절입니다. 여수와 3장 17절 제가 읽겠습니다. 여우와의 언약계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여수와 3장의 마지막 절인 17절에서 드디어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갑니다. 그런데 이 언약계를 맨 제사장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서 있습니다.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칠 때까지 요단강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두려워하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물이 넘실거려서 도저히 넘을 수가 없을 것만 같이 보였던 요단강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계가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 바깥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고 계십니다. 내가 요단 한 가운데 서 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물이 없을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함께 하겠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만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혼자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10편 23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0편 23편 4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사라져서 일까요? 아니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피해갈 수 있게 하나님께서 해주셨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평안의 근거는 성도를 둘러싸고 있는 좋은 환경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대책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계획 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결혼 전에 아픈 곳을 싹 고치고 결혼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항상 턱 밑에가 아팠었습니다. 턱이 아팠었는데 병원에 갔을 때 작은 돌이 생겼는데 이거 염증량 먹으면 저절로 빠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해서 먹으면서 수술을 해야 된다기라 좀 겁이 나서 계속 미루고 있는 상태였는데 결혼도 하고 그래야 되겠다고 해서 이걸 좀 해결을 해야겠다. 라고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병 이름이 타석증이라고 하더라고요. 침샘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돌이 점점 커져서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돌이 좀 생겼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뭐 이제 여기 살짝 쬐고 빼면 되는 거니까 이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머 이 정도는 하나님께서 날 지켜주시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냥 이제 들어가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아보신 성도님들 혹시 계시면 아시겠지만 그 수술 전날 밤에 그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동의서를 작성합니다.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그 동의서 작성으로 하러 오신 그 의사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수술을 하게 되면 뭐 잘 될 건데 수술이 잘못되면 그 선생님 혀를 움직이시는데 좀 불편하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조금 더 안 좋으면 얼굴 한쪽에 조금 마비가 오실 수 있습니다. 라고 이렇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언제까지일까요? 그랬더니 마비가 오면 모르죠. 저도 풀릴 때까지 마비가 있으실 거예요. 라고 하셔서 거기에 동의하시겠습니다. 라고 동의하시겠습니까? 라고 이렇게 동의서를 주시는데 그리고 제가 동의 안 하면 어떻게 되죠? 라고 했더니 수술을 못한다고 이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때부터 일단 동의서를 썼습니다. 수술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동의서는 썼는데 그때부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수술이 정말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다시 막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눈 떴을 때 제가 수술이 끝나고 눈을 딱 떴을 때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하나님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근데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때 당시에 제가 했어야 하는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했어야 되는 기도는 어떤 결과가 있던 제가 혼자라는 사실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실 것임을 계속 잊지 않게 해주세요. 저와 함께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먼저 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자포자기하는 어쩌면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나의 평안을 어떤 일의 결과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것에 걸겠다는 고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런 기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그것 또한 중요하지만 또 주목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계를 진 제사장들이 모든 백성이 다 건널 때까지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빠르고 건장한 가난한 정보를 좀 해나갈 수 있는 어떤 강한 백성들만 건너거나 또는 믿음이 충실한 믿음이 좋은 사람 몇몇만 이렇게 건너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심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은 정말 다양하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도님들의 각각의 성격들도 다 다르실 것이고 갖고 있는 능력들도 다 다르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갖고 있는 믿음의 크기도 아마 다 다르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잘해봐 잘해봐 잘해서 너희가 올라와야 돼 라고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은 고난의 자리인 십자가의 죽음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아픔과 눈물 그리고 두려움과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시고 부활하시고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래하시면서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 말씀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이시고 그리고 그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부터 20절의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올라가시기 전 복음을 전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를 삼고 그들을 구원하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요즘 어떤 사이입니까?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기만 해도 자리를 피하려고 하고 또 말을 꺼내면 종교를 좀 강요하지 말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불편해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조금 위축되는 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길은 아마 시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전하고는 싶으나 주저하게 되고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마치 요단강을 마주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을 여신 것 같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성도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과 그리고 성도들의 간증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고 계십니다. 함께 하겠다 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우리 앞에 요단을 건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우리의 사명을 향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저와 수원교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결론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요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단은 실제로 존재하는 그런 어려움이 없고 물이 넘치고 있는 평소보다 더 힘든 장애물이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단 앞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들어가시고 너희가 지날 때까지 내가 가운데 함께하겠다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서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일까요? 요단강이 갈라진 것과 같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기적과 은혜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하는 약속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면 하나님 믿고 따르겠습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에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눈앞에 우리를 막는 요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길을 가르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저와 수원교의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추건합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찬송 생략하고 오늘 들으신 말씀 생각하시면서 함께 성령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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