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31일 금요일 저녁예배 삼손의 죽음 찬송_399장
제작일 2026. 7. 25.
AI 설교 정리
삼손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에 있으며,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본문사사기 16:23-31
-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하며 블레셋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했다.
- 그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에 있었고, 드릴라와 블레셋 사람들이 이를 이용해 그를 붙잡았다.
- 삼손의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그의 삶은 예수님의 고난과 구원의 모형으로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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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삶과 죽음
-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간 활동하며 블레셋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했다.
- 그는 블레셋 여인 드릴라를 사랑했고, 블레셋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 삼손을 붙잡는 계략을 세웠다.
- 삼손의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에 있었으며, 머리카락이 잘리자 그의 힘이 사라졌다.
- 삼손은 결국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며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의 죽음으로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었다.
- 삼손의 형제와 아비는 그의 시체를 받아 장사했다.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된 삼손의 죽음
-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삼손의 죽음은 이루어졌으며, 그의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 삼손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힘을 마지막으로 사용하여 집을 무너뜨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예수님의 고난과 구원의 모형으로 비유된다.
신앙과 언약의 상징
- 삼손의 힘은 하나님과의 언약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는 그 언약을 깨는 것과 같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지어, 머리가 다시 자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상징한다.
- 신앙인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영광을 돌려야 하며, 삼손의 삶은 이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전사(자막) 전문▼
우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오늘은 사사기 16장 23절부터 31절까지 있는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사사기 16장 23절부터 31절까지 있는 말씀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사사기 16장 23절부터 31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불레셋 사람의 방대기 가로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군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대 우리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송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제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며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제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불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명 가량이라 다 삼손의 제주 부리는 것을 보았더라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지다 가로대 주여호하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불레셋 사람이 나의 준운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끼어 의지하고 가로대 불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느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며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히니 삼손이 죽을 때의 죽인 자가 살았을 때의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 시체를 취하여 가지고 올라와서 소라와 에스다울 사이 그 아비 만호와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기내었더라 우리 오늘 시간에는 사사기 16장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본문의 내용이 그러죠 삼손이 죽는 우리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삼손이 죽음에 대해서 같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삼손이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는가요? 네, 드릴라라고 하는 여인이죠 우리 드릴라라고 하는 이 여인은 불레셋 사람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방 여인일까요? 우리 이 한 가지하고 우리 삼손은 힘이 센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이 삼손의 힘은 어디에서 왔어요? 머리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하나님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해 주신 게 있는가요? 네, 우리 오늘은 이 두 가지를 같이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삼손이 죽게 되는 우리 그 말씀의 시작은 우리 16장 1절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1절부터 3절에 있는 내용은 약간 중간에 어디에 삽입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16장 1절부터 3절까지 있는 말씀 보시면은 삼손이 가사라고 하는 지역의 한 여인을 보고 기생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서 어디에 하루 저녁을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불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어디에 항상 눈에 가시었어요 언제든지 기회가 있다면은 참 죽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삼손이 가사에 오니까요 불레셋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이 삼손이 오늘 저녁에 가사에 왔으니 새벽이 어디에 이제 그가 나오면은 잡아 죽이리라 하고 어디에 매복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삼손은 어디에 그러한 내용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금 일찍 일어나가지고 어디에 거기를 떠납니다 우리 그 내용이 1절부터 3절까지 있는 말씀인데요 우리 3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삼손이 가사라고 하는 곳에 누워가지고 어디까지 가냐면은 페브론이라고 하는 곳까지 갑니다 그런데 이 가사에 기생의 집에서 하루 저녁 완전히 지내지 않고 밤중까지 있다가 한 어두운 때에 일어나가지고 페브론을 가는데 뭘 가지고 가는지 한번 보시면은 뭘 가지고 간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3절에 성문짝들 있습니다 두 설주 그랬습니다 또 이 빗장 그랬어요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서 어디에 가사에서 해브론까지 아마 이 거리가 한 어떤 신학자들이 계산해 보니까 한 60km 된다 그래요 그런데 밤중에 이것을 들고 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냥 단순히 문짝과 설주 빗장 우리 이것을 생각만 해도 가벼운 것이에요 무거운 것이에요 우리가 문짝 하나만 들어도 어디에 굉장히 무겁죠 설주에다가 또 빗장까지 하면 어디에 우리 이것을 우리 이것을 뭘 상징하냐면은 그 성이 어디에 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문의 크기가 어디에 그 집이 어디에 크기를 상징하기도 하죠 집이 철화할수록 어디에 문은 어때요? 집이 클수러 어디에 대문이 크죠 이걸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지금 블레셋 땅에서 어디에 유다 땅으로 어디에 가져간다 라고 하는 것이죠 곧 이 성문은 어디에 그 지역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어디에 힘이 지금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유다로 옮겨진다 라고 하는 의미로 우리가 한번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이 삼손이 우리 본문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우리 사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어떤 여인을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사절에 여인의 이름이 누구라고요? 들릴라 들릴라 그런데 소래골짜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소래골짜기에 들릴라 라고 그랬는데 우리는 이해하기로 어디에 블레셋 여인 들릴라 마치 어디에 우리 13장에 김나의 한 여인 여기는 블레셋 여인이죠 13장에 김나의 여인은 블레셋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16장에 들릴라는 어디에 소래골짜기는 어디에 정확하게는 어디에 블레셋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소래골짜기 소래골짜기에 토레골짜기에 이 들릴라라고 하는 여인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가 거기에 갔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사람들 어디에 항상 기회를 통해서 삼손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워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삼손을 죽일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어디에 삼손을 붙이지 않으면 어디에 절대로 어디에 삼손을 죽일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그러는 것 같아요 오늘날 저희들 또한 어디에 우리는 주위에 보면 믿음을 잃어버리고 어디에 우리 신앙에서 떠난 분들도 자신이 있습니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산다면 어디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디에 이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들에게 어디에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힘이 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약속의 말씀은 어디에 우리의 신앙의 삶을 변치 않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은 내 신앙을 어디에 지탱해 주기도 하고 어디에 유지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하는 어떤 귀한 도구라고 하는 것이죠 그니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 가운데 있어야죠. 나의 삶 가운데 있을 때야 돼요. 늘 주위에서 시험이 오죠. 어려운 일을 당한다든가 또 위험이 있다든가 또는 근심되는 일이 생긴다든가 하는 이러한 일들로 많이 시험을 당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본문에 있는 말씀에 이 삼선도 어디에요? 이 설의 골짜기의 여인 드릴라라고 하는 여인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어디에요? 거기에 내려가니까 누가 그들에게 다가가요? 불레셋 사람이래요. 불레셋 사람들이. 우리 3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죠. 아니 3절이 아니라 5절에 있는 말씀만 보시겠습니다. 사사기 16장 5절. 불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와서 그에게 이르되 삼선을 깨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이겨서 결박하여 곤곡해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1,100을 내게 줄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5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불레셋 사람이래요. 지금 방백들 하면 어디에요? 성으로 하면 성장. 아마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으로 하면 시장. 그런데 그들이 누구를 찾아왔어요? 드릴라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얘기 어디에요? 무엇을 알아보라 그래요? 그 힘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하면 그 힘을 잃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를 결박해서 괴롭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이런 약속을 하죠. 만약에 알게 한다면 뭘 주겠다 그랬어요? 은 1,100개 그랬습니다. 은 1,100개. 그런데 우리 이런 말씀을 하죠. 은 1,100개 앞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똑같은 말로. 각각 그랬어요. 각각. 불레셋은 어디에요? 다섯 성으로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각 성에 방백들이 어디에요? 각각 1,100씩을 어디에요? 이 뒤를 나에게 주겠다라고 하는 약속입니다. 그런 이 뒤를 나는 그 큰 금액을 금액이 어디에요? 마음이 뺏겨서 어디에요? 삼선에게 그 큰 힘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하면은 어떻게 결박하면은 그 힘이 없어지는지 하는 것을 어디에요? 알기를 원했다. 이 뒤를 나는 삼선을 사랑했을까요? 돈을 사랑했을까요? 만약에 삼선을 사랑한다면 어디에요? 그에게 위험이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어디에요? 삼선이 죽든 말든 불레셋 사람들에게 위해서 어디에요? 괴롭힘을 당하든 말든 어디에요? 드릴라는 뭘 사랑했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요? 이 돈을 사랑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사람도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요? 약해진다라고 얘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약해진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서도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아내를 사랑하면 남편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요. 우리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면 어디에요? 아내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해졌지 않았는가요? 만약에 하나님이 어디 우리를 사랑한다면서도 강압적으로 우리를 구원시키기를 원한다면 아마 우리는 그 안에서 어디에요? 그 권위와 어디에요? 그 권세에 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요?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요? 약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 그것을 참고로 하시고 자 우리 뒤를 나가야 돼요. 이제 삼선에게 불레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야 돼요. 삼선에게 묻습니다. 삼선에게 그 힘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을 알기를 원했죠. 세 번의 시험을 합니다. 세 번의 시험을 하죠. 세 번의 시험. 우리 첫 번째 시험이 어떤 시험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힘이 약해질 수 있는가? 하고 뒤를 나가 물으니까 삼선이 어디에요? 이렇게 이야기하죠. 포른 칩 일곱을 가지고 어디에요? 나를 묶으면 어디에요? 내 힘이 없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여기 포른 칩 어디에요? 단단한 것 같아요. 밧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두 번째로는 어디에요? 우리 11절에 보면 사용하지 않는 어디에요? 새 줄로 어디에요? 나를 결박하면 될 것이다. 또 우리 13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어떻게 하면 내 힘이 없어질 수 있다고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배틸이 있죠? 그 배틸에 그 시를 가지고 어디에요? 그 머리를 짜면 어디에요? 머리를 엮어놓으면 일곱 가닥을 위선에 섞여 짜면 힘이 없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번번이 어디에요? 삼선에게는 강한 힘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우리 9절에 보면 어디에요? 첫 번째 시험에는 어디에요? 마치 포른 일곱 칩으로 묶었지만 불탄 삼실을 끊음같이 어디에요? 흐물흐물해져 버렸다라고 하는 것이죠. 또 우리 새로운 줄로 어디에요? 짰지만 어디에요? 그것도 가볍게 또 배틸과 함께 어디에요? 위선으로 그 배틸의 그 삼배실로 머리를 엮어 짰지만 어디에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랬습니다. 우리 이 세 번에 어디에요? 희롱을 당한 세 번이나 나를 희롱했다. 그랬습니다. 제대로 답을 안 해줬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삼선이 드릴라에게 어디에요? 답을 해주기 싫어서 안 했을까요? 아니면 어디에요? 그를 정말로 속이기 위함일까요? 그러지 않죠. 그 힘은 누구에게 있어요? 삼선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머리카락에 있었는가요?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면 있는가요? 우리 그 말씀을 한 번 더 보시면 우리 한 번 더 보겠습니다. 16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세 번이나 어디 허겼죠? 우리 그것을 희롱을 당했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10절에도 희롱을 당했다 그랬고 13절에도 희롱을 당했다 그랬고 15절에도 희롱을 당했다 그랬거든요. 세 번이나 희롱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는 어디에요? 그가 아마 삼선을 정말 사랑했다면 어디에요? 세 번씩이나 어디에요? 알려주지 않고 어디에요? 그거를 속인 것에 대해서 어디에요? 정말로 이 삼선을 사랑했다면 아마 그 뒤로는 그만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16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드릴라는 삼선을 향해서 어디에요? 어떻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요? 날마다 어디에요? 그 말로 재촉하여 졸랐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삼선의 마음이 어디에요? 헌뇌하여 죽을 지경이다 그랬습니다. 삼선은 아까 우리 사절에 여인을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삼선은 어디에요? 여인의 이와 같은 어디에요? 재촉하고 조르는 우리 거기에 번민했다 그랬습니다. 결국은 삼선을 사랑했기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었죠. 사랑했기 때문에 약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그래서 진정으로 어디에요? 17절에 이야기했다 그랬습니다. 진정을 토해서 어디에요? 그에게 말씀했습니다.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다 내가 못해 해서 하나님의 나신이 되었으니라 내가 내 머리가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그랬습니다. 우리 17절에 있는 우리 말씀을 보면 삼선의 그 힘은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요?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나시린이다 라고 하는 그랬죠. 머리를 자르면 어디? 다른 사람과 같이 약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어디? 말씀 그만보면 힘은 정말로 머리에 있는 걸로 압니다. 나시린의 귤에 나시린의 귤에 우리 속에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도 있지만 또 무엇도 있었어요? 포도자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도 있죠. 부주한 것을 먹지 않은 것도 있죠.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것도 있죠. 이거 하나야 하나님과 이 삼성과의 나시린에 대한 규례라고 하는 것이죠. 그 규례를 지킴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이 삼성과 함께 하는 것이죠. 지금 저희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는 것 같아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약속이죠. 언약이죠. 그 언약의 약속이 우리가 깨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에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하나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계명 가운데에도 쉽게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어떤 것은 무겁게 생각할 수 있는 우리 계명들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가늠하지 말라. 하나님의 계명들은 어디예요? 내가 무겁게 생각하느냐. 가볍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어디예요? 우리는 그것은 해도 돼.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어디예요?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계명, 한 계명, 한 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주셨는가요? 그냥 가볍게 여기라고 주셨는가요? 아니면 이걸 반드시 지켜서 내 거룩함과 성결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가요? 만약에 하나라도 지키면 어디예요? 열 가지가 다 무효가 되는 것이죠. 하나만 안 지켜도 어디예요? 하나님의 원약이 깨진다라고 하는 것이죠. 지금 이 머리와, 아니,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은 나 시린의 규에 있지 힘과는 사실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어디예요? 자기의 힘이 어디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있다고요? 머리에 있다고요? 아니면 원약에 있다고요? 삼손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어디예요? 하나님은 원약에 있다고 하는 것이죠. 이 말을 들은 드릴라가 어떻게 했어요? 불레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진정으로 삼손이 이야기했으니까 한 번만 더 올라오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집안에 숨어있어라. 그러면 내가 그의 힘을 약하게 해주겠다. 하고는 어디예요? 그를 눕히고 어디예요? 사람들을 시켜가지고 머리를 자르니까 정말 힘이 없어졌더라 그랬습니다. 힘이 없어지는 동시에 우리 20절 한번 보시겠습니다. 20절.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죠? 드릴라가가로 내 삼손이여 불레저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요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그랬습니다. 머리를 자름으로 인해서 누가 그 삼손에게서 떠났다고요? 힘이 떠났어요? 요하께서 떠났어요? 요하께서 떠났는데 삼손은 그걸 알았어요? 몰랐어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심으로 그가 큰 능력을 발휘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머리를 자름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떠나니까 힘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글을 붙어봐서 제일 먼저 행한 것이 뭘까요? 우리 2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눈을 뺐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글을 힘들게 하기 위해서 맷돌을 돌리게 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 앞에 제주를 부리게 했다 그랬습니다. 이곳에 삼손은 힘이 없어지니까 삼손에게 행한 일들을 뭐라고 했다고요? 눈을 빼고 어디? 또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고 또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희롱하게 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시키면서 블레셋 사람들이나 블레셋 방백들은 어떻게 해서 이 삼손이 붙잡혔다라고요. 우리 쪽은 본문을 읽으면서 그랬습니다. 삼손을 붙잡게 하는 것이죠. 삼손은 우리의 원수다. 삼손은 우리의 토지를 헐고 많은 사람을 죽인 우리의 원수다. 그러면서 그들이 외친 것이 있어요. 뭐라고 외쳤죠? 우리의 신이. 우리의 신이. 우리의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23절에 그랬잖아요. 중간에 있는 말씀 보시면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가로대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그랬습니다. 24절에도 보시면 어디예요? 24절에도 보시면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대 우리의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성하며 그랬습니다. 삼손을 그들이 붙잡고 눈을 빼고 맷돌을 돌리고 희롱하면서 누구를 찬양했어요? 그들의 신을 찬양했죠. 다곤이여대.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그러니 우리의 신이여대. 위대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어디예요? 구약이 어디예요? 많은 전쟁은 어디예요? 신들의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신이 강하냐에 따라서 어디예요? 이 전쟁을 승리하게 해주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디예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 줌으로 인해서 어디예요? 내 삶을 어디예요? 승리하게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어디예요? 그들은 컸대. 정말 돕지 못하는 어쩌면 그러한 신들을 그들은 섬기지만 우리는 어떠한 신을 섬기는가요? 삼손이 붙잡혀가지고 어디예요? 눈을 빼임을 당하고 붙들려가지고 새차들을 메어서 어디예요? 맷돌을 돌리고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디예요? 죄주를 부리는 죄주를 부렸다라고 하는 것은 희롱을 당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롱을 당했다라고 하는 의미거든요. 우리 그러한 일들이 어디예요? 그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다고요? 삼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떠났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라플레스의 사람들 어디예요? 자기의 신들이 어디예요? 삼손을 그들의 손에 붙여가지고 이와 같이 이제는 어디예요? 고통도 당하지 않냐고 괴롭힘도 당하지 않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예요? 삼손을 부를 때 삼손을 왜 이 세상에 오게 했죠? 왜 그로 알고 나시디니 되게 했죠? 그의 삶이 어디예요? 어떤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던가요? 불레스 사람들을 손에서 어디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삼손을 통해서 어디예요? 우리가 마지막에 비록 붙들려가지고 괴롭힘은 당했지만 우리 이런 말씀 있죠? 22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제 머리가 짤려운 이후에 어디예요? 또 머리가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보면 어디예요? 정말로 하나의 힘이 머리카락이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가 있죠. 그런데 머리가 자란다라고 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어디예요? 우리가 무엇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머리가 자란다라고 하는 것 자연에 있지까요? 아니면 어디? 하나님께서 어디? 그에게 나시린의 귀례로 약속한 어디? 그 나시린의 신분을 회복하기 아닐까요? 머리가 자란다라고 하는 것 머리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로이란 잔치를 베풀 때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우리 거기에는 어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그 많은 사람들의 표현을 2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했다. 집에 남녀가 가득했다 그랬습니다. 블랙셋의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3천명 가량이라 그랬습니다. 다 삼선에 재주 부리는 것을 보았더라 그랬습니다. 곧 삼선이 뚫려가지고 어디? 지금 있는 그 상황을 어디? 블랙셋의 많은 사람들이 어디? 함께 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삼손이 마지막으로 어떠한 행동을 했을까요? 우리 그 말씀이 28절부터 31절까지 있습니다. 삼손이 그랬잖아요. 자기를 조롱할 때 그리고 이제 좀 쉴 때 이 삼손은 어디예요?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삼손이 어디예요? 한 소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집을 버티고 있는 그 기둥을 찾아서 나로 의지하게 하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어디예요? 한쪽 기둥은 또 한 손으로는 다른 기둥은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어디예요? 기둥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까? 의심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삼손이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이제 눈도 뽑히고 어디예요? 조롱도 당하고 맷돌도 돌리고 힘도 다 쓰고 참 그러할 때 삼손은 자기를 탓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거죠. 자기를 책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아요. 내게 어려움을 당하면 괴로움을 당하면 어디예요? 우리 자신을 탓할 수가 있거든요. 또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삼손은 하나님께 어디예요? 불을 지졌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여기에서 삼손이 보여준 그러한 모습이 어디예요? 우리가 위기에 처할 때 또는 어려움을 당할 때 권한을 있을 때 하나님을 찾는 하나님께 불을 짓는 우리 그러한 모습이 어디예요? 진정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삼손이 요아께 불을 지졌습니다. 그러면서 내 모습을 좀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죠. 나를 생각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로 할 거면 어디예요? 내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로 강하게 하셨다.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셨어. 하고 우리 이렇게 고백하면서 죽죠. 내가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혀서 어디예요? 그 집을 무너뜨렸다 그랬습니다. 그는 단순히 어디예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함께해 주심으로 그 기둥을 무너뜨림으로 그 집을 무너뜨리는 우리 그 일이예요. 어쩌면 그의 일이었는가요? 그런데 우리 그 가운데 블레셋 사람들이 어디예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전에 어디? 죽인 사람들보다 삼손이 죽을 때 함께 죽은 사람들이 어디? 더 많았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것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무엇을 말씀하고 있어요? 지금 그 자리는 어디? 많은 방백들,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어디? 함께했던 자리라고 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어디? 아마 일부의 사람들은 어디? 살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 산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했을까요? 그 상황을 보고. 이 삼손이 어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롱했던 우리 그러한 사람들이 어디? 우리 그 자리에 살아났다면 어떤 마음이 가졌을까요? 삼손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그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그들은 삼손 하나 붙잡았다고 해서 그들의 신을 향해서 찬양을 했는데 죽음 가운데 살아난 사람들은 어디? 그냥 삼손에 힘만 자랑했을까요? 힘만 두려워했을까요? 어쩌면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어디?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니 우리의 신앙의 삶이 어디? 내 신앙의 삶 속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간다면 어디? 사람들은 나를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 내 안에 내가 섬기고 있는 그 하나님을 봄으로 인해서 어디? 사람들은 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거든 나의 삶이 조롱받은 일이라면 어디? 하나님에게 욕되면 그러한 삶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삼손을 보면서 어디? 우리 삼손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런 것 같아요. 삼손이 태어나서 또 그가 시험을 당하고 또 전쟁을 치르고 그리고 죽임을 당하는 우리 이런 모든 과정들이 어디? 어쩌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어디? 고난을 당하시면서 어디? 시험을 당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고치면서 어디? 죽을 위험도 당하고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그러한 예수님의 어디? 그 모형이 어디? 우리 삼손의 삶 속에 비추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삼손을 깊이 이해하다 보면 어디? 아 삼손의 삶이 어디? 예수님의 참 모형이 못 써져요. 있구나 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삼손의 삶이 어디? 그의 김나에 가서 한 여인을 사랑하고 또 서대크 불트릴라를 사랑하고 또 가사에서 한 기생의 집에 들어가고 하는 그러한 단편적인 우리 그러한 모습만 보면 어디? 참 삼손은 어디? 삼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기만은 출생으로부터 또 그의 행하는 일들을 통해서 그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가 보여주는 그러한 모습은 어디? 영적으로 어디? 예수님께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듯이 어디?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우리 그러한 구원의 그 모습이 어디? 이 삼손 속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우리 깊이 생각할 때 우리 삼손은 어떤 신분이었어요? 나신의 신분이죠. 하나님의 어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나신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사사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말 저희들도 그러는 것 같아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평생을 우리는 살아야 할 우리의 신분 아닌가요? 그러니 우리의 삶 속에 어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어디?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에 우리가 살아간다면 어디? 삼손에게 주신 그 힘이 어디? 오늘 저희들에게도 어디? 함께하기로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어디? 그러한 일을 우리에게 사명으로 주지는 않았지만 삼손을 통해서는 어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어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디? 평안하게 하는 그 일을 담당했지만 오늘날 저희들에게는 어디? 보금유를 통해서 어디? 많은 영혼들을 어디? 하나님 앞으로 참 인도할 수 있게끔 하는 그 사명이 어디? 저희들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가운데 살아가고 또 그 언약을 가운데 있음으로 인해서 어디? 우리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우리 신앙인의 올바른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희들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내 힘으로는 어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면 어디? 우리는 삼손의 그 힘을 통해서 어디? 많은 불레자 사람들을 이기는 우리 그러한 모습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겨나가면서 어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저희들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또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같이 기도하시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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