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금)
렘18:1-12
제작일 202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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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호장로 #TJC전주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에레미야 18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 그리고 인간의 회개와 순종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본문에레미야 18:1-12베드로 후서 3:9-10
- 에레미야 18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회개를 강조한다.
-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며 멸망의 길로 나아간다.
- 하나님은 인간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며, 회개와 순종을 통해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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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과 인도
- 에레미야 18장 1-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토기장이 진흙을 다루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를 설명하고 있다.
-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형성하신다.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주권자이시며,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의 회개와 하나님의 목적
-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향해 재앙을 예고하지만, 그들이 회개하면 그 뜻을 돌이킬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 그러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며 강퍅해진다.
-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며, 그 목적을 위해 시련과 연단을 보내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준비
- 하나님은 인간을 치대기와 고온의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만들며,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신다.
- 인간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만 축복을 받을 수 있다.
- 베드로 후서 3:9-10은 하나님의 사랑과 오래 참으시는 이유를 설명하며, 회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주님의 오심은 예상치 못하게 올 수 있으므로, 회개와 준비가 필요하다.
전사(자막) 전문▼
에레미야서 먼저 18장을 보시겠습니다. 예레미야 18장 1절에서 12절까지 말씀 보겠습니다.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1절 요아학기로부터 에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내가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가서 본 즉 그가 동로로 일을 하는데 때 여와의 말씀이 되게 임한이라 가라사대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그러므로 이제 되는 유다 사람들과 에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요아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되패풀어 너희를 치료하느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드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에 강각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아멘 오늘은 예레미야 18장 말씀에 근거해서 진흙이 토기장의 손에 있음같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고 은혜 받고자 합니다 제가 직장에서 퇴직하기 전에 교육문화회관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육문화회관에 근무할 때 전주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고 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들 중에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도자기 공예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학생 대상의 공예 프로그램은 대부분 일회성의 도자기 체험이었지만 성인 대상의 도자기 공예반은 1년 코스로 매주 일회 2시간씩 연간 60시간 이상의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거기에 참여했던 분들이 대부분 또 참여하고 또 참여하고 매년 계속해서 참여하다 보니까 그분들 중에는 제법 좋은 작품들을 이렇게 내놓는 그런 수강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수강생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서 1년 동안에 몇 개의 작품을 만드는데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진흙을 치대고 이겨서 수강생들의 손에 의해서 진흙들이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로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어떤 진흙의 의지에 의해서 그릇등의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강생들의 생각과 그들의 손에 의해서 작품으로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과 능력으로 미해를 계획하고 또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짧게는 하루나 한 달 또는 연초가 되면 1년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일생 동안의 계획을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전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언 16장 9절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인도하시는 이는 요아시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삶의 길이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야만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유다의 멸망도 멀지 않은 그런 시기에 이 에레미야 선지자는 제약 가운데서 빠져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레미야 1장에서 선지자로 부류밍을 받은 이 에레미야 선지자는 본문 18장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유다 백성들이 돌아와야 하고 회개해야 함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전혀 회개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고 계속해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타락하고 폐역한 세대를 보면서 이 에레미야는 눈물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에레미야에게 본문의 말씀대로 토기장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였습니다 내려가 보니까 토기장인가 그릇을 만드는데 만들다 부서진 그릇의 진흙으로 자기 의견의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에레미야가 그 장면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에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도 내 손에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악에서 돌이키면 그들에게 내리려던 그런 재앙의 뜻을 돌이키겠고 만일 그들이 악한 것을 행해서 내 목소리를 청정치 아니하면 그에게 유익해하리란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1절 12절의 결론처럼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해서 각기 악한 마음에 강탁한 대로 그리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해서 죄의 가운데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너는 가서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죄에서 돌이켜함을 이야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빚으실 것이고 다시 회복시키실 것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이 유다 백성들을 그냥 버려버리면 될 것을 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고 제약 가운데 빠져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 유다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돌아오라 회개하라고 부탁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 요구하시고 부탁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이 백성들에 대한 징계나 멸망보다는 그게 아니라 회개와 관계 회복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18장 11절 12제를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거르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요하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하느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에 강박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본문은 하나님이 에레미야 선지자에게 유다 사람들과 에레미야 선지자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가는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할 것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레미야 선지자가 가서 이 유다 사람들과 에루살렘 거민들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길과 행위를 선하라고 전할 때에 유다 사람들과 에루살렘 거민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강박한 대로 행할 것임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레미야 선지자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유다 사람들과 에루살렘 거민들에게 유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있을 것임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회개와 회복을 진정으로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징계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을 징계하거나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뜻이었다면 그냥 멸망시키고 버려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만들어버린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의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이미 깨져버린 그릇과도 같은 존재이고 버려져야 하고 쓸모없는 그릇이지만 포기장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있는 그릇 질 좋은 그릇으로 다시 빚으시기 위해서 절망 가운데 빠져있는 에레미아 선지자에게 유다 백성들의 진실된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부르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제대로 순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장 9절로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 9절로 10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에 드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드린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회개하게 되었고 하시니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에 드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등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르르다. 사람들 중에 주님의 제듬이 늦어지고 언제 약속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면서 믿음 생활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심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은 에레미야 선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그 말씀을 소홀히 여기에서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장 10절의 말씀처럼 주님의 오심의 날은 도덕같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누구도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회개는 빠르면 빠를수록 안전한 것입니다. 마태국 25장에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열 명의 처녀 중에서 다섯 명은 기름을 채웠지만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채우지 못했고 졸라가 신랑이 오셨을 때에야 기름을 채우러 갔기 때문에 그녀들은 신랑을 제대로 맞이할 수가 없었고 결국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태봉 25장 13절의 말씀에 보면 그런 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니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예비해서 어떤 상황 하에서도 신랑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회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모두가 주 안에서 행복하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그 손에 있는 진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8장 6대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수가 이 토기장이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수가 진흙이 토기장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저론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획과 능력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자기의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들의 지극히 교만에 빠진 발상이고 태도인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지만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지 않고 함께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탕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내 뜻대로 뭔가 해보려고 하고 뭔가 성공하려고 궁리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죄 속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진흙은 스스로 그릇이 될 데 없으시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토기장이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우리의 모습에 우리들은 만족과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신 대로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책무입니다.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시라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토기장인은 진흙의 특성을 잘 알고 어떤 작품으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그릇을 만들어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스스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알맞고 좋은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를 어떻게 보면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나의 모습만 보지만 하나님은 나의 과거 나의 현재 우리의 미래에 완성될 모습까지도 보십니다. 우리는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만 안타까워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질 우리의 믿음과 주 안에서 누리게 될 행복과 영광까지도 보시는 분입니다. 신명기 5장 32절 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런 즉 너희 하나님 여왁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삶과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왁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돌을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면 삶을 얻고 복을 얻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주권은 바로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저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 속에서 인간의 참단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주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순종의 믿음 가운데 경고했던 여리고성의 무너짐도 있었고 남한 장군의 문둥병의 치유의 기사적도 함께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고 완고한 마음으로 살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진흙은 스스로 그릇을 만들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인간의 연약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몇 시간 앞도 알지 못합니다. 강한 것 같지만 쉽게 무너지고 작은 질병과 어려움 앞에서도 한순간에 넘어집니다. 겸손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욕심과 미움으로 교만이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해야 하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의견을 앞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모습으로 우리를 빚어주시려고 하면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다듬으려 하시면 반발하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흙이 토기장의 손을 거부하면 좋은 그릇이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로 7절에 보면 예수는 찬 포도나무 우리는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가지는 나무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나무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는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영양분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야 하며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주자이시며 이 세상 모든 일의 주권자이시기에 우리는 주권자의 고난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부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로마서 9장 20절 21절 말씀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네게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인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기이 쓸 그릇을 하나는 천이 쓸 그릇을 만드는 권한이 없느냐 지은 받은 물건 즉 피조물은 창주자의 의대도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악읍을 내려놓고 회개하며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2사에서 55장에 보면 여하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가치 내 길은 너의 길보다 높고 내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다라고 말씀하오겠습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그러한 것 등은 모두 다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가 있는 존재,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 사람들이 전지전문가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육체의 가시 문제로 세 번 기도를 하였지만 자고함을 막기 위해서 들어주지 않으셨을 때 오히려 바울은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 뜻대로 주님의 생각대로 빚어주시고 들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능이 많은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강한 사람보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국의 과정에서 항상 주님께 의지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 3절에 모세의 온유함이 주민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지 않는 교만함과 완악함 때문입니다. 하나님 손에 있는 진흙 같은 자신을 우리가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축복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그릇이 빚어지는 과정에는 시련과 연단이 따릅니다. 예레미야 18장 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의 손에서 파상하며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파상하다는 말은 다치거나 부상, 부딪혀 상하였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그릇이 빚어지는 과정에서 부서질 경우도 있습니다. 그처럼 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흙이 버려지지는 않습니다. 그 부서진 그릇의 진흙으로 다른 것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토기장인가 그릇을 만들 때 치대기라고 하는 걸 합니다. 치대기는 진흙을 이기는 것인데 흙을 문지르기도 하고 판에 두드리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진흙이 그릇 모양이 만들어지면 그 그릇을 감아에 넣고 굽는 작업을 합니다. 대부분의 것은 특별히 특수하게 제작되는 건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그릇들은 두 번은 굽습니다.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로 나뉘는데 초벌구이는 대개 800에서 1000도시로 8에서 12시간 동안 이렇게 구워냅니다. 초벌구이가 끝나면 거기다 유학을 바른 뒤에 다시 한 번 굽습니다. 이것이 재벌구이인데 이때는 1200에서 1300도의 높은 온도에서 역시 8에서 12시간 동안 구워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있어야 단단하고 쓸모있는 그릇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실 때 때로는 우리를 치대기와 높은 온도를 높은 온도를 견뎌내야 하는 기다림과 연단의 과정에 임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사람이나 환경을 만나게도 하시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 속에서 오랫동안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 성경 요사 속의 모세는 40년 동안 애국공주의 아들로서 살았고 미래한 개사당 이두로의 약물을 치면서 40년, 도와 80년의 준비과정을 거쳤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고 보디바레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까지 하였고 바이토 또한 사올의 칼을 피해서 오랫동안 도피생활에 많은 어려움과 연단의 과정을 거친 후에 하나님의 인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릇이 토기장애의 목적대로 의도대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치대기도 해야 되고 높은 온도에서 구원하는 과정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교만을 깨트리고 인내를 배우게 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도록 만드십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미로다 연단은 우리에게 상처와 좌절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강하고 단단하게 해서 소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불에 들어간 그릇이 단단해지듯이 시련을 믿음으로 통과한 성도는 어려움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만났을 때 좌절하거나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견디기 힘든 순간에도 견뎌야 합니다. 토기장의 손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들어주실 하나님의 전지전문화심과 나에 대한 사랑을 기대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을 기대하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사절에도 역시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고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을 때 우리가 부족함이 없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했을 때 힘들어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님께 다가가고 주님의 인도를 구하면서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람직한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순정해야 합니다. 현재 접하고 있는 시련과 연단이 지금은 고통스럽고 아플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더 귀하고 쓰기에 좋은 그러한 그릇으로 빚고 계심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릇의 가치는 쇼인도잉이 아니라 실제 쓰임받음에 있습니다. 모든 대상에는 그 물건의 효능 즉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릇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진흙은 통기장의 손에서 토기장의 의도하고 목적에 따라서 그릇으로 만들어집니다. 컵, 밥그릇, 국그릇, 꽃병, 접시 등등 토기장인가 그 그릇을 만든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대로 사용이 될 때 그 그릇의 가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릇의 가치는 쓰임받음에 있는 것입니다 밥그릇은 밥을 담는 도구로 국그릇은 국을 담는 기구로 꽃병은 꽃을 꽂아오는 기구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그냥 장식장 안에 있어가지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로만 있다면 그 그릇은 그릇으로의 가치가 미미합니다 그런데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릇일지라도 어떤 그릇은 귀이 쓰이기도 하고 천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귀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잘 관리되어야 합니다 깨끗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필요할 때 사용될 수 있도록 항상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주님의 오실 날은 우리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서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었을 때 가장 행복해야 할 주님의 오신 날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무 목적 없이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그릇에는 용도가 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이 쓰는 것도 있고 천이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이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려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성결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죄에서 벗어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이 화려하고 눈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그릇을 귀하게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게 잘 관리된 그릇을 귀히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바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기도와 찬성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십니다 진흙이 토기장이 손에 있을 때 비로소 같이 있고 귀히 쓰시는 쓰임받는 그릇으로 빚어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질 때 축복이 가득한 은혜로운 삶이 됩니다 모든 성동님들이 은혜 가운데 주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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