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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세상을 허무하게 만드는 요소들 88,

전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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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진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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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내용은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 진정한 행복의 원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삶의 중요성을 다룬다.

  • 예배는 세상의 부조리와 허무함, 그리고 이기주의와 외로움의 문제를 다루며, 진정한 행복은 이웃을 배려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 성공과 재물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고독과 불안을 동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 하나님을 믿는 삶은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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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삶

  • 세상의 부조리, 학대, 권세의 부패, 부당한 사회 구조 등이 언급됨.
  • 솔로몬은 사회의 부조리와 학대를 목격하며 괴로움을 느꼈다고 언급됨.
  • 권력자들은 악행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들은 위로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됨.
  • 세상의 부조리와 허무함은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약화시킴.

성공과 재물의 한계

  • 성공과 권력은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고독과 불안을 동반할 수 있음.
  • 사회적 성공이나 재물, 명성은 실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 성공을 얻으면 시기와 질투, 비난, 모욕 등 부정적인 반응이 따라온다.
  •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 재물을 뺏으려는 사람이 생기며, 갈등과 반목이 뒤따른다.

진정한 행복의 원천

  • 진정한 행복은 재물이나 성공이 아닌, 이웃을 배려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삶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 하나님을 믿는 삶은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삶이어야 한다.
  • 외로움과 허무함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삶에서 비롯되며, 이는 결국 불행으로 이어진다.
  • 적절한 삶은 중용, 균형 잡힌 태도를 요구하며, 지나친 욕심이나 게으름을 피해야 한다.

공동체와 신앙의 중요성

  • 두 사람이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친구가 있으면 슬픔이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
  • 이기심만을 좇으면 친구가 없어지고 외로워진다.
  • 재물은 이웃과 나누고 섬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예수님은 재물을 통해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다.
  • 교회는 서로 돕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 권력과 인기는 일시적이며, 영원한 것은 하나님만이다.
  •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 교회는 방문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해야 한다.
  •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이 영원한 영광을 가져다준다.
전사(자막) 전문▼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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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찬양으로 찬송가 543장 찬양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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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찬송가 3절 그 안에서 길이 살리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모자국 만져라 아들 진무고 울대 그 손모자국 만져라 마음을 열고서 주를 모셔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그 손모자국 만져라
주가 널 지키며 인도하시리 그 손모자국 만져라 아멘 마지막 찬양으로 434장 찬양 드리겠습니다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예수님 나의 갈 길 가라 예수님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예수님 하늘 위원장 내
무슨 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용도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예수님 하늘 위원장 내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예수님 하늘 위원장 내 어려운 일 어려운 일 다 할 때도 조카 내 내 주시네 나는 심히
고난하고 영원 매우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갈 길 가라 나의 찬송가 228장 찬송가 228장 찬송가 228장 다같이 마음 정돈하시면서 목도 드리겠습니다 찬송가 228장 찬송가 228장 할렐루야 아멘 우리 고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들어서 안식일 예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88장입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고주 예수님은 아멘 산 밑에 백합하여 빛나는 새벽별 주원님 영원할게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픈 적에 큰일이로 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원은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었고다
내 몸에 모의 몸에 모의 몸에 모의 몸에 모의 염려 이 세상 돌아가 나와 항상 같이 하여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 한 바의 개교를 적시해 물리치산할 지키시네 세상 날 버려도 예수 안 버려 그 흙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원은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내 맘을 다여서 주님을 따르며 길이 길이 길이 나를 사랑하리니 울부리 두렵지 않고 장검이 겁없네 주원은 높은 산성 내 방패시다 내 영혼 먹이시는 그 은혜 누리고 나 신이 조를 백기 원하네 울부리 두렵지 않고 내 영혼을 다여서 주님을 따르며 내 영혼을 다여서 주님을 따르며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아 하늘이 아 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또 내일까지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예배하며 영광 돌리는 그런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늘이 아니다 하늘이 아 우리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위해서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이 아니다 하늘이 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들이없나이다 아
안
이제
글쩡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니까 자살은 사는 것입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 아, 네.
빨리 죽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자살을 하나 봐요.
우리는 자살하면 안 되죠.
바로 지옥으로 직행입니다. 특검열차 타는 거죠.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이겨내고 우리가 아름다운 믿음의 신앙에 승리를 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참 모순들이 많아요.
그래서 거기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어떤 불만족으로 인해서 참 세상이 허무하다.
이렇게 씁쓸하다 쓰다 더 이상 무슨 소망을 갖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참 인생에 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까 저 역시도 이렇게 젊지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땅에 무슨 소망이 있는가 오직 나에게는 하나님 나라밖에 없다.
그 하나님 나라의 소망만 바라다 보여요. 사실은 많은 일을 겪다 보니까 허무한 것들을 겪다 보니까 내가 더 이상 세상에서 뭘 소망하고 살겠어.
나에게 하나님 나라가 없다면 정말 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상의 모순들을 겪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 젖을 떼듯이 세상의 어떤 그런 쾌락이라고 하는 소망이라는 그런 젖을 떼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천국 소망을 영생의 소망을 갖게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여기서 세상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 첫째로는 세상 속에 만연한 부조리들입니다.
세상 속에 만연한 부조리들.
1절에서 3절까지 아까 읽었죠.
1절 보면 내가 돌이께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학대가 좋은 말이 아니죠.
오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게 돼.
자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서러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저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나�도 좀 힘내 이렇게 좀 격려라도 해주면 좋겠는데 위로할 사람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내가 아무리 슬픈 일을 겪었어도 그래도 나를 따뜻하게 내 형편을 살피고 이해해주고 격려해주고 안아주고 그래도 힘내 형제.
잠에 그럴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나와 함께 울어 내 서러움을 가지고 같이 부둥켜 안고 울 사람만 있어도 이 세상은 그렇게 차갑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할 거예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서러움을 겪고 눈물을 흘리고 학대를 받되 내 처지를 전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 서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에서 보니까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더군다나 뭐가 있습니까.
권세가 있으나 저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이것은 가정 속에서도 이런 어떤 부조리들이 있을 수가 있죠.
어느 형님이 상당히 동생들을 좀 위협적으로 대했나 봐요.
그래서 어느 장로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밑에 있는 두 동생들이 힘을 합쳐서 형님을 그냥 엄청 두들겨 패준 거죠.
그래서 길을 완전히 죽여놓고 형님이 뭐라고 하면 두 녀석들이 그냥 덤벼갖고 동생들이 덤벼갖고 형님을 그냥 박살을 내놓으니까 형님이 길을 못 피고 유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그렇게 찍소리도 못하고 살아간다 합니다.
그 가정 속에서 그렇게 이미 자리 잡은 그 부조리들이 위계질서가 없는 그 속에서 누구한테 그 형이 그런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누구한테 말하겠습니까.
그 속과정은.
평생에 살아가면서 가족이라고 하는 이름 속에서 그 형은 형의 처지는 지금 그 가정의 처지는 정말 이런 부조리 속에서 정말 비참한 비해를 느끼게 합니다.
가정 속에서도 그게 형성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세상 속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는 타인을 학대하고 짐승같이 취급하는 모순된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어느 때는 노예로 팔기도 하고 채찍도 막고 그러겠지만 지금은 노예 시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보장이 되고 인권이 보장되었다고 하는 이 시대 속에서도 빈번하게 어느 시대든 일어나고 있는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로 타인에게 당하는 어떤 학대 짐승같이 취급당하는 그런 모순된 일이 각 사회의 어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솔로몬이 보게 된 것이죠.
지혜자라 사회 구석구석에 일어나는 부조리들을 봤을 때 그는 너무 마음이 괴로웠어요.
어떤 원리 원칙이 있고 도덕성이 있고 어떤 윤리가 있는데 내가 바라는 세상은 이러한 세상인데 그것과는 정반대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무참하게 이렇게 인격이 짓밟혀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마음이 어떨까요?
참 괴로운 법입니다.
악한 사람들만 봐도 너무 괴로워요.
저렇게 악할 수가 있는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 보면 너무 괴로운 거예요.
내가 당하는 것이 아닌데 그 악을 행하는 자체로 괴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어떤 사회의 어떤 구조와 질서가 행해야 되는데 내 생각은 완전히 딴 판으로 돌아가요.
그럼 내 양심에서의 괴로움이 있고 그런 부조리 속에서 너무 괴로운 그 슬픔을 그 피해를 솔로몬이 느끼는 거예요.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그 부조리들.
그런데 부조적으로 자신이 왕이지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문제는 그들을 위로해 주고 눈물을 흘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아래에서 태아래의 인생의 궁극적인 허무함을 그는 깨닫게 되었죠.
학대받는 자가 위로조차 받지 못하는 세상.
참 이게 만연하단 말이죠.
그런데 그러면 잘못을 행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고통을 줬으니까 학대를 줬으니까 짐승치렴 되어있으니까 좀 미안한 마음이라도 갖고 양심의 가책이라도 갖고 괴로움을 가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자기 자신이 행하는 그 악숙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자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하나의 권세까지 가지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1절 보면 내가 돌이킬 게 하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더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참 억울한 일이죠.
그럼 학대한 자는 어떨까요.
가책을 가질까요.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뭐가 있습니까.
권세가 있으나 저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권세가 있으니까 자기의 잘못과 악행을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어떤 그런 오히려 공로우식에 빠져 있을 수가 있겠죠.
그들은 힘을 가진 자는 법 앞에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법 위에 군림합니다.
그리고 어떤 위법한 일을 했어도 얼마든지 거기서 빠져나갈 수가 있어요.
자유로워요.
아주 자유롭습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그렇게 아주 큰 소리를 땅땅 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요.
어떤 대통령도 광주에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놓고도 월 30만 원 갖고도 평생 골프 치면서 살았죠.
누구신지 아시죠.
그런 사람들은 하나의 권력이 있는 것입니다.
법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죠.
이게 하나의 부조류입니다.
그 앞자리에서 고통당하고 그 앞자리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무참히 짓밟힌 것이죠.
이것 가지고 우리가 분노하자 이것은 아닙니다. 사실은요.
군대에서도 족구를 하다가 헛발질을 하게 되면 바로 고참이 지적을 합니다.
욕을 하면서 이렇게 너 먼 새끼 그러면서 대가리 박아 그러면 거기서 대가리 박죠.
갖고 이제 또 다시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고참이 이제 헛발질을 했어요.
꽁이.
그리고 쫄병이 고참을 딱 바라보는 거예요.
자기는 어떻게 하는가.
나는 대가리 박았는데 자기는 뭘 하나.
화이팅!
화이팅!
다시 하자.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저는 직접 봤어요.
뭐라고 하냐면 꼽냐? 아니 꼽으면 군대 빨리 오지. 네가 군대 늦게 와서 그런 거잖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권세지요. 그래서 자기의 정당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권세입니다 .
그래서 서로 윗자리에 올라가려고 그렇게 정치권에서도 길을 쓰나 봐요. 서로 이 사회가 그래요. 위에 올라간 놈이 최고예요. 모든 법 위에서 자기는 분립해요. 자유로워요. 그러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압제를 받아야 되고 법을 다 지켜야 돼요. 법대로입니다. 법대로. 그러나 권세를 잃는 사람은 법 위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힘이 없는 사람들은 작은 법 하나 어길까 봐서 마음을 좁아 좁아 좁아 조심조심 차를 몰고 다니면서 찍힐까 봐서 카메라 찍힐까 봐서 두근두근 두근두근. 속.
속도가 이렇게 빠르면 갔다 왔어도 어디 갔다 왔어도 찜찜하죠. 걸렸는가 보다 찍혔는가 보다. 힘이 없는 사람들은 간이 콩만 해요. 저도 참 힘이 없긴 없는가 봐요. 좀 세게 달리면 갔다 와서 찝찝해요. 간이 벌 금 날아올까 봐서 항상 이렇게 무편함을 쳐다봅니다.
참 하나님을 그들이 경애하였다면 좀 달라질 것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 그래서 세상 속에서 이렇게 존재하는 부조리들 만연한 부조리들 속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것인지 그것을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고 피해를 느끼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차라리 죽은 자가 낫겠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고 그냥 낙태 된 자가 차라리 행복하다. 그 모든 것들을 차라리 경험하는 말이죠.
그래서 그 세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3절 하시겠습니다.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차라리 낫지 않았으면 이런 꼴을 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닦아 줄 이유로 할 사람도 없더라 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수많은 큰 잘못을 저지르려고도 자기의 잘못에 전혀 이렇게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악 행을 보호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그런 것을 대조하면서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들 속에서 참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만연한 부조리들이 삶을 세상을 허무하게 느끼게 만든
다 하는 것입니다.
참 그렇죠? 뭔가 좀 제대로 돌아가면 삶만 나는 세상이 되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인간이 어떻게 보면 이것을 예의 없이 겪어야만 하는 하나의 이것은 지독한 시련이죠.
그래서 삶에 대한 회의를 낳게 해요.
그래서 이 회의를 갖다 보면 끝내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 마저도 소멸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뭘 얻겠어 무슨 소망을 느꼈어 이렇게 되는 거죠.
참 모든 사람의 처절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만연한 부조리들이 우리 삶의 행복을 빼앗고 허무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재미가 없죠?
두 번째는 이웃들에게 시기를 받는 삶입니다.
이웃들에게 시기를 받는 삶.
자 그러면 우리가 성공하고 보란듯이 뭔가를 돈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면 그러면 법 앞에 자유로우니까 우리는 30만 원 갖고도 살 수가 있죠.
재미나게 골프 치면서.
그걸 좀 배웠어야 되는데 30만 원만 가지면 평생 골프 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성공한 자의 삶.
그들은 또 평안할까요?
사절 말씀 보겠습니다.
나름대로 힘들어요. 세상 살기가.
있겠습니다. 시작.
내가 또 본 적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규모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어때요?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면 성공했어요.
인기를 얻었어요.
권력을 잡았어요.
그러면 정말 행복할까요?
내가 원하는 만큼 무엇인가를 소유했으니까.
그런데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어떤 허무 역시 허물을 느끼는 건 똑같아요.
아마 골프를 치면서도 인생의 허물을 덧없음을 느꼈을 거예요.
전 누구시도.
그런데 이 허물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해도 사실 극복 결국은 큰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자신의 타고를 통해서 성공과 성취를 얻어냈어요.
다른 사람보다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또 돈도 많이 가졌어요.
재력도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세상에 그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요.
누군가가 잘 되면 어떤 사람이 되냐면 누군가가 인기를 얻으면 그 다음부터 따라오는 게 있어요.
식입니다.
질투입니다.
다이슨 사울은 천천히요.
다이슨 만만일세.
만만이라고 하는 명예와 인기를 얻었어요.
그때부터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다이슨이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아주 그냥 집요하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적수가 생겨났습니다.
사울은.
그것도 자기 장인 어른이었죠.
모든 국가의 권력을 다해서 어떻게 하면 죽일까 어떻게 하면 그냥 창으로 그냥 몸을 꿰뚫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평생 죽기 살기로 다인만 죽이려고 쫓아다녔다가 자기 인생도 끝났던 사람이 존재하죠.
우리가 뭔가를 성공하면 그 성공 속에 인기 속에 꼭 어떤 일이 생기냐면 나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누가 나를 막 비난하고 욕하고 끌어내리려고 하고 모욕을 유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제가 평범한 사람들은 건들도 안 해요.
깎아내리지 않아요.
깎아내릴 것이 있으니까 깎아내리는 거죠.
잘 됐으니까 깎아내리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에서 성공해도 참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는 거죠.
내가 어떤 권력을 갖고 있으면 그 권력을 꼭 뺏으려고 하는 사람이 생겨나요.
그래서 내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 결국 누군가와의 반목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하게 돼 있고.
그래서 결국은 결론은 뭐냐 성공과 성취를 통해서도 사실 이 세상에서는 그 성공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야 이것 갖고 성공만 하면 어떤 건세만 가지면 인기만 얻으면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더니 이것 갖고도 안 되는구나.
참 이것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는 없구나.
이것을 깨닫는다는 얘기죠.
그래서 참 이런 것이 세상에 이런 시기로 인해서 두 번째는 이웃의 시기를 받기 때문에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삶이 우리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성공하려고도 하지도 말고 너무 게을러지도 말고 그냥 중용의 삶 그러니까 적절한 너무나 지나치게 어떤 과역을 통해서 뭘 권세를 얻는다든가 재물을 얻는다든가 그러지도 말고 너무 게을러가지고 자기가 필요한 양식도 구비하지 못하고 그냥 죽어가는 불행에 빠지는 그런 삶도 아니고
적절하게 적당하게 살아라.
이게 바로 5절 6절의 말씀입니다.
5절 6절 말씀 보겠습니다.
시작.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는이라.
자기 해야 될 일 것도 아니에요.
자기 먹을 양식이라도 버려야 되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가지고 그냥 노숙자 돼가지고 그냥 얻어먹고만 살라고 그래요.
그것도 참 자기 스스로를 망치는 것이죠.
내가 먹을 것은 내가 그래도 내 먹을 것은 내가 좀 벌고 살아야지.
게을러가지고 자기 살을 먹는다는 것은 자기를 폐망시킨다는 것입니다.
너무 게으름 때문에.
자기 양식은 자기가 버려야 될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살아야지.
그 다음에 이제 6절 보면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 아니라 막 우척같이 막 두 손으로 막 소유하고 뭔가를 얻으려고 잡고 그러면 소유하면 막 성공할 것 같은데 그 자범의 분들 뭐예요.
다른 사람은 막 시기해가지고 막 나를 공격하고 헐뜯고 사기쳐서 막 빼앗기고 그러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은 한 방에 잃더라고요.
또.
그러니까 많은 것을 가졌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까 장판 하나 깔 돈이 없어요.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늘 풍부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마 그들의 어떤 실패가 얼마나 충격적인지 볼 거예요.
천당에 있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그런 기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살 때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너무 게으르게 살지 말고 적당하게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어떤 성공이 인기가 행복을 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찬산을 돌리고 그러면 행복을 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
그것도 허무하더라.
우리 삶에 이렇게 허무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가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삶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삶이 세상의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삭막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삶 같은 병실의 백한가지 이야기 보면 이는
창 쪽에 있는 환자가 있어요. 병실에 가면. 창 쪽에 있는 사람들이 병원에 오래 입원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리모콘을 갖고 있어요. 함부로 텔레비전 채널을 못 돌려요. 그 양반한테 물어봐요. 허락 바꿔야 돼요 .
그런데 병실에 오래 있는 사람이 틈치와 상관이 없게 오래 있게 되면 상당히 방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한번 입원해가지고 방장이 된 적이 있는데요. 다 나이 드신 분들도. 하는 교도수도 그런다고 하잖아요. 정과 가 아주 몇 개 많고 흉악범들이 방장이 되는데 병원은 방장되기 쉽더라고요. 오래 입원하면 방장이 딱 되�
��라고요. 다 내 눈치를 봐요. 그것도 권력이라고.
그리고 창가 쪽에 딱 자리 잡잖아요. 창가 쪽에 딱 보면서 텔레비전도 여유있게 보고 병원 방장. 그래서 그 옆 사람이 항상 부러워했는데 옆 사람한테 창가 쪽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대요.
꽃이 피어있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그런 어떤 내용들을 옆 사람이 전해줬다는 거죠.
옆에 있는 침실에 있었던 환자가 나도 저 자리에 빨리 가고 싶다.
그런데 그 환자가 병이 나을 수 있는 환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거기도 잘 못 움직이는가 봐요. 그래서 저 사람이 그 사람이 미워지더래요. 저 사람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어느 날 호수에서 산소 호흡기가 빠져버렸답니다. 입에서. 그래서 그거 좀 소리쳐서 이야기를 간호사에게 해야 되는데 안 해준 거예요. 귀에다 싶어서.
그냥 놔뒀더니 꼴까닥 꼴까닥 하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자기 차리가 된 것이죠. 자기가 방장이 된 거죠.
그래서 그쪽으로 옮겨달라고 해서 옮겼는데 아무것도 없는 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창가에 있었던 이 환자가 사실은 옆에 환자를 위해서 무료일까 봐서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자기가 상상의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지어내서 그렇게 그를 무료함을 달리기 위해서 선을 행했던 것이죠.
정말 자기 인생에 있어서 고마움을 끼쳤던 사람을 그렇게 도와주지 못하고 은혜를 병망도 갖게 만들어서 그렇게 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 자리는 차지했지만 그냥 검은 병만 바라볼 뿐이었다고 합니다.
참 세상 삶이 그렇게 참 허무하게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그런 진실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지 못 하고 참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들도 있고요. 참 상막하다. 그래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찌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극단적인 그런 마음 속에서
참 세상에 또 비해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참 이런 극단적인 이기적인 삶이 세상을 상막하게 만들어요.
세상을 정말 세상에서 삶에 있어서 허무하게 만들어요. 이 세상이 어떻게 보면 참 그렇게 상막하고 허무한 것은 다 이기주의자들이 그냥 그렇게 세상을 자기만 자기 것만 지키겠다고 자기만 누리겠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냥 눈뜨고도 코비어간다고잖아요. 그런 일들을 한 번씩 겪어봐요. 얼마나 슬픈가.
제가 이제 바닷가에서 목회를 하면서 수문회에서 목회하면서 경험했던 것이 있습니다.
지금 모르고 단 30년 32년 되겠네요. 정확히 따지면. 거기 가서 목회를 하는데 바다에서 막 바지락도 나오고 조개도 나오고 다 나오잖아요.
물고기 막 이런 것들도 잡아가지고 팔고 새우도 막 잡아다 팔고 그런데 바다에다가 쓰레기를 다 버려. 집 안에 있는 쓰레기 거기서 다 태워요. 바다에다가.
냉장고 있으면 하다못해. 냉장고도 버려버려요.
있는 건 뭐 재활용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있으면 갖다 갖다. 조개 껍질이 다 버려.
저는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아니 자기들 먹여 살리는 이런 옥토인데 터전인데 세상에 자기들에게 의뢰를 주는데 이렇게 바다를 끼고 막 바다 기름 같은 유출 다 시키고 기름이 막 떠 있고 막 그물이 있으면 폐기물 폐기물 같은 거 다 버려요 .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이게 자기들이 지켜야 될 바다를 이렇게 보존해야 될 바다를 이렇게 오염시키는가.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그렇죠. 얻는 혜택은 다 받아들이면서 자기에게 불필요한 것들은 쓰레기들 다 버리는 거죠.
나중에 보니까 바다가 다 엉망진창이 다 돼버렸어요.
막 적조도 오고 그다음에 바지락이 수입이 안 나요. 옛날같이.
그냥 뻔한 숨은 바지락 혹시 드셔보셨어요?
우리 자매님이 바지락 바지락을 했는데 얼마든지 캐다가 드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얼마든지 갖다 캐다 먹었어요.
그랬더니 막 뿌연 국물이 우러나는데 그러니까 막 소코리로 그냥 갖고 와요.
몽땅 삶으면 그냥 뿌연 국물이 나와요.
그 맛이면 얼마나 진한지 몰라요.
너무 맛있어요.
그다음에 숟가락으로 해가지고 그 있잖아요. 우리는 양념해가지고 바지락이 귀하니까 우리 전주 같은 데는 양념해서 하나씩 먹잖아요.
그런데 그걸 깨가지고 숟가락으로 퍼먹어.
그냥 막 이렇게 소코리로 이렇게 쌓아놓고 가족들이 모여가지고 숟가락으로 퍼먹는다니까요.
한번 해보셨어요?
안 해봤죠?
저는 그걸 해봤어요.
그런데 거기다가 쓰레기를 다 버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안 난대요.
바다가 오염돼가지고 참 너무 인간이 이기적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받으면 받은 만큼 은혜를 갚아야 되는데 은혜를 갖다가 쓰레기로 갚아주니 그래서 참 이기적인 어떤 삶이 세상을 허무하게 만들어요.
당나귀와 말이 짐을 지고 가고 있었는데요.
한참 가다가 보니까 당나귀는 힘이 붙여서 말에게 자기 짐을 좀 나눠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은 내 짐도 무거워.
그러면서 아이고 네 짐까지 내가 어떻게 들어?
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길을 더 가다 보니까 이 당나귀는 그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당나귀의 모든 짐과 죽은 당나귀까지 말에 지게 했다고 합니다.
죽은 당나귀 버리고 갈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말에다가 당나귀와 짐까지 말리에다가 지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죠.
참 극단적인 이기심 속에서 사는 사람들 내 모습을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죠.
8절 보겠습니다.
7절 8절 볼까요. 시작.
내가 또 돌이켜 해아래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가족도 없어요.
친척도 없어요.
오로지 누구만 생각합니까?
낙이 자신이요.
나 자신이요.
그러니까 아들도 안 낳아요.
자식도 필요 없어요.
나 혼자 잘 살면 돼요.
잘 먹고 잘 살면 돼요.
형제 필요 없어요.
이렇게 사는 것이죠.
열심히 돈만 모아요.
열심히 돈만 모아요.
그래서 돈은 많이 모았는데 족함을 여기지 못하고 계속 돈만 모으고 돈돈돈하다가 마음속에 어떤 여의도 갖지 못하고 삶속에 어떤 낙을 누리지도 못하고 어떻게 보면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겨울옷 잠바 입고 사는 사람이겠죠.
또 그리고 외식 한 번 안 해보고 그리고 나명이나 끓여먹고 위에 빠꾸나겠죠.
그래서 돈은 쌓여가니까.
참 형제들이 죽어간다고 해도 불쌍히 여기고 뭐라도 좀 용돈이라도 주고 지원하려고 하는 그런 것들 생각하고 자기의 어떤 재물이라고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서 친척도 없고 이웃도 없고 남들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사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오직 극단적인 하나의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이죠.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을요.
친척도 돌아보지도 않고 형제간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자기 먹고 사는 것만 그냥 자기 기쁨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하고 있냐면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도 보면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보면 한번 볼까요?
디모데전서 5장 8절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돌아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자기 친척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예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그 이웃들에 대한 그런 살핌이 있어야 돼요.
그게 정말 진정한 믿음인 사람이지 우리가 막 교회 열심히 다니고 말씀 잘 알고 옳은 말하고 그런다고 해도 그 이웃들에 대한 어떤 배려가 하고 선한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미 그는 믿음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신앙 생활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사람은 이웃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것이고 내가 이웃에 부족함이 있으면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를 어떻게 영접할 것인가를 따뜻하게 보도물과를 생각하는 사람이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 생활을 잘못하면 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알기 때문에 진짜 잔인한 사람이 됩니다.
아주 극단적인 이기지은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할 때 이웃도 모르고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까?
불신자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자기 가족에 대해서 배려할 줄 알아요 .
이것은 이미 나는 주여주여 할지 모르겠지만 믿음을 이미 주님을 배반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믿음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이웃을 내가 정말 예수님의 가슴으로 따뜻하게 영접하는 거예요.
내가 믿는다는 것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고 내가 좋은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 내가 믿는다는 것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좋은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웃에 대해서 전혀 이렇게 돌아보지 않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사는 것은 믿음 을 배반한 사람이고 그리고 불신자보다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단지 모으고 쌓기만 급급한 그런 부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못 누리고 결국 재물만 쌓다가 하는 사람들이 아주 허당합니다. 그리고 모아놓은 재물에 대해서도 만족 하지 못하고 더 더 더 더 더 그러면서 그냥 돈 모으는 데만 급급해하고 쓸 줄도 모르는 그런 인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을 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살고 나서 보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요. 돈 모은 것 외에는요.
누구한테 제대로 선을 해간 것도 없어요. 나 먹고 산이라고 나 즐기려고 나도 즐기지 못하고 결국 그렇게 � �만 모으다가 끝났다 하는 것입니다.
정말 외롭게 이 사람들은 너무도 외롭게 살려. 그래서 쉬운 성경을 한번 읽어드리자면요.
어떤 사람은 아들이나 형제도 없는 외톨이지만 왜 외톨이 됐을까요? 극단적인 이기주의적인 자기만 생각하는 삶 을 살기 때문에 남도 필요 없다 생각하니까 끝없이 수고하면.
자기 재산에 만족할 줄 모른다. 그런 말한다. 내가 누굴 위해 이렇게 수고를 하지? 왜 나는 즐기지 못하는 걸까?
남에게도 혜택도 쥐도 못하고 자기도 즐기지 못하고 그냥 돈 모으는 게 인생의 목표였어요. 그러고 가는 거예요. 이렇게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도 어려운 것이에요. 선행을 하는 것도 내가 어떤 형편이 나아지면 선행을 행하겠다. 부모님께 효 도하겠다. 이런 사람들 선행을 행하는 건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어려울 때 하는 것입니다. 항상 어렵지 항상 부족하지 넉넉할 때가 없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어려운 거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맘만 먹으면 액수가 얼마든 뭐든 지금 해야 하는 것이지 언제 여 유가 여유가 쏘러 가지고 언제 할 거예요?
다 부모님들 다 돌아가실 건데. 그리고 내 형제들이 계속 내 옆에 있는 것도 아닐 건데. 그러니까 어려울 수록 내 마음을 여유롭게 갖고 순간순간마다 선행을 행해야 제대로 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행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날 힘들다. 맨날 어렵다. 부여해지면 하겠다. 나는 나 먹고 살 기도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생 못해요.
평생 인색한 삶을 삽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와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믿고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결국은 나도 이런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다. 이런 책망을 듣는 사람일 수 있어요. 나는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서 이렇게 돈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죠. 결국 재물로도 참 만족을 누리며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재물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뭔가를 재물을 얻으면 행복할 거라고 했는데 이것 가지고도 세상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더라.
더 자기 욕심만 극단주의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그거 가지면 재물을 가지면 몸에 행복할 거라고 했는데 더 불 행해져 버렸죠.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11절 12절. 두 사람이 우리 9절부터 보겠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한번 보 겠습니다.
9절부터 12절 시작.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으면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습니다.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물을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 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놓으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리야. 한 사람이면 패하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이 당하나니 삼겹수들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나니라.
삶의 사유가 살아가는 그런 행복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정말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삶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살아가는 어떤 길이 있어도 확실한 길을 걸어가는 걸까요.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 얻는 유익이 많아요. 거기에서 행복이 오는 거예요. 사실은.
산길을 걸어가다가도 그때는 강도를 만나잖아요. 선한 사마리의 비유를 들면.
그런데 두 사람이 다 걸어가게 되면 일단은 강도 때들도 생각해보는 거예요.
덮쳐야 될 것인가 말 것인가. 두 사람이니까.
그런데 한 사람 가면 백발백중 덮쳐집니다.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습격해야 하죠.
그래서 인생 속에는 정말 내가 넘어졌을 때 나를 일으켜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슬픔을 당했을 때 나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 이기심만 누리다 보면 친구가 없어요. 돈은 있는데.
그래서 내 인생을 살면서 나는 왜 사람복이 없느냐. 내 친구가 없느냐.
그러면 내가 아주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도 몰라요.
정말로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이 재물을 가지고도 친구를 부려한 재물을 가지고도 친구를 사귈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이 부려한 재물로 친구를 사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라고 나에게 허락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이런 재물관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평생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이 깨달아지질 않아요.
내 삶은 그냥 나 혼자 외롭게 살아가려고 그래요.
사실은 두 사람과 함께하는 삶. 다른 사람을 영접하는 삶.
그 다음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 그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재물을 허락하시는데 꼭 나만을 위해서 재물을 허락한 것처럼 피도 눈물도 없이 형제 간의 어려움이 있어도 나눌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오그려지고 돈만 더 증식하고 살려고 하는 그런 삶을 살다가 마치더라는 얘기죠.
그것이 인간의 죄성에서 기인한 삶이겠지요.
극단적인 이기적인 삶은 참 인생을 삭막하게 만듭니다.
저는 어떤 교회들을 보면 참 우리 교회 참유수 교회는요.
지금부터 진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각 교회마다.
그래서 저희 아내에게도 교회 돌아다니면서 음식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 가지씩만 배워라.
벌써 지금 제가 맥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손에 막 엄청.
그러니까 그 교회에서 음식을 잘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한 가지씩 배웠으면 제가 시키는 대로만 있으면 인류 요리가 됐었는데 순종을 안 해가지고.
그래도 제가 강조를 했기 때문에 음식을 잘해요.
그래도.
그런데 제대로 순종만 했으면 막 아주 그냥 음식점을 차려도 막 노다지가 났을 거예요.
족발을 잘하는 사람.
뭘 잘하는 사람.
그런데 말을 안 들어요.
그런데 이제 교회마다 보면 참 장점이 있어요.
제가 다녔던 교회들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 볼까요.
후원교회는 오후 시간 예배 권다고 나서 저녁 9시까지 기도를 해도 끝까지 따라오는 거예요.
순종하는 거예요.
거제교회는 어떻습니까.
매주 저녁마다 기도를 했어요.
9시까지.
그리고 그런 교회입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뭔 얘기를 하냐면 외부에서 손님 오면 목자님 돈이 얼마를 들어가도 상관이 없어요.
어떤 메뉴라도 상관없습니다.
정말 풍성하게 접대해 주십시오.
그때도 사실 교회 건축 때문에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린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거제교회가 참 복받는 이유가 있구나.
그런데 어떻게 보면 거제교회는 계속 성도들이 그냥 빠져나가요.
성도들이 계속 빠져나가요.
그런데 항상 그 숫자가 계속 채워져 있어요.
전도가 계속 돼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복주시는구나.
요즘에는 서울교회들이 옛날에는 영혼회 하면 청년들 있잖아요.
불량한 애들.
그래서 서울 쪽 애들하고 섞이는 것을 싫어했어요. 남부에서.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큰 은� �를 회복했어요. 강남도 그렇고 대방도 그렇고 서구도 그렇고 지금. 그런데 그 교회들이 전도가 되고 있다는 것 이지요.
참 그런 어떤 함께 하려고 하는. 강남이나 이런 교회도 한번 방문하면 그 방문자들에게 얼마나 사랑에 접대를 하는지 감동할 정도로 상을 정말 정성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감동할 정도로. 그 배려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옛날에 대방교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대방교회 자주 갔어요. 잘해주 니까. 자주 방문했어요.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요. 힘을 얻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도도 잘 되고. 성도들이 저번에 화요일에 예배를 갔는데 가득 차 있어요. 우리 전주교회는 어떻습니까.
참 그러니까 그런 어떤 이기적인 삶이. 정말 극단적인 이기적인 삶을 이렇게 상막하게 만들지만 그렇게 풍요한 삶이 우리를 얼마나 희망을 주는 것인가를 정말 살만나게 하는 것인가를 우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동행하는 것이 좋고 세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좋겠죠.
우리의 어떤 이기심을 통해서 이렇게 세상을 상막하게 만들고 세상을 허무하게 만들기 자야라 우리의 성김을 통 해서 나눔을 통해서 더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상막할지 몰라도 교회만큼은 천국이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이곳에 가득 살 것입니다. 그렇게 성기는 교회들은요. 나오자마자 믿음 생활을 하고 싶어 한대요.
우리 교회도 광주교회도 정말 와서 보니까 장점이 많고 저는 제가 여태까지 다녔지만 제가 광주교회 부임에서 우리 광양교회 부임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교회를 못 봤어요. 처음 봤어요.
이런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지 않는다면 누가 받겠습니까. 아마 전주교회 정도 이상으로 크게 발전하는 그런 부임의 은혜를 우리 광주교회에게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이 조금밖에 없는. 그게 암연해야 되는데. 어쨌든 참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죠.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는요. 영원함이 없는 세상입니다. 영원함이 없는 세상. 13절부터 16절까지 어떤 얘기 합니까.
같이 읽습니다. 시작. 가난하여도 재로운 소년은 늙고 두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습니다.
자 이 가난한 소년이 어떻게 됐습니까. 비찬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왕까지 올랐어요.
그래서 만백성에 굴림하기도 했지만 전도자 눈에는 그의 일생 역시도 허무하다는 거죠.
어떤 비찬한 신분의 소년이 왕의 자리까지 멸류관까지 쓰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것도 허무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이 불안한 환경에서 불안한 환경 가운데서도 끝내 왕이 오를 만큼 지혜롭고 옥에 갇히는 불행을 장애했 으면서도 끝내 이를 극복하고 왕이 되었어요.
마치 우리 이재명 대통령처럼 말이죠.
그래서 모든 신화와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한 몸에 받는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14절 보겠습니다.
저는 그 나라에서 나면서 가난한 자로서 옥에서 나와서 왕이 되었습니다.
요셉처럼요.
자 그렇죠.
다음 15절 보겠습니다.
내가 본 적 해아래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버금으로 대신하여 일어난 소년과 함께 있으며 16절 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을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이로다.
세월이 지나가니까 인기나 영화가 끝없이 지속될 줄 알았는데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는 신세로 전락하더� ��는 얘기죠.
왕이 좀 받겠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이죠.
어느 장모님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 기회에 상당히 오래 있었나 봐요.
목자님 목자님 들을 때는 서운하실지 모르겠지만 신도들은요. 목자님이 바뀌면 더 좋아해요.
왜냐하면 지금 있는 목자님보다 더 새로운 분이 오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거죠.
그게 삶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그렇다고 해서 떠나라고 하는 것은 아니죠.
그게 세상의 위치입니다.
어떤 아무리 인기 있는 왕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가다 보면 인기도 시들어져요.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고 원하죠.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권불 10년. 권세가 10년 못 간다.
그다음에 화무 11호.
붉은 꽃이고 10일 피는 10일 이상 유지하는 꽃이 없다.
이런 이야기죠.
그래서 인간의 손에서 나오는 모든 권력은 영원하지 못하고 그와 동반되는 대중적 인기 또한 일관성 없는 무상한 것이다.
결국은요.
대통령 나왔다고 막 화노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나왔다고 막 뭐가 될 것 같이 했는데 벌써부터 좀 빨리 내려왔으면 그런 거예요.
화무 11호예요.
권불 10년.
그러니까 일상에서 있는 어떤 영광 그걸 얻으면 찬산을 얻으면 행복할 것 같은데 결국 그것도 실패입니다.
인간이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권력과 대중적 인기가 이처럼 무상한다는 것을 통해서 사실 일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절대자의 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완벽한 시간이 영원한 세계 속에서 영광이 시들지 않는 영원한 영광의 가치를 붙들라고 오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도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찬송 드리겠습니다.
백희장입니다.
백희장입니다.
백희장입니다.
백희장입니다.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위와 바꿀 수 없네 영족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람 잊지 못해 세상절거 다 버리고 세상절안도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3절 하겠습니다 3절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요호와 빗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뻔치 못해 세상절거 다 버리고 세상절안도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예수님의 성령이 없네
왜 이렇게 분위기가 신선하지? 나 이 교회에 다니고 싶어요. 처음 이렇게 우리 교회에 나왔는데 저는 그렇게 고백을 해요. 그러니까 저는 초청 잔치할 때 기회 세우지 않습니다. 다 나오라고 해서 한 말씀씩 먼저 소개 하고 자기들이 인사 나이가 느낀 점 얘기하라고 하거든요.
왜냐하면 말을 하게 되면 책임이 있어요. 좋은 말을 해야 되잖아요. 나와서 얘기하라고 하면 분위기가 좋 습니다. 그런데 조금 마음에 감동이 있으면 다음 주부터 제가 교회에 나오겠습니다. 그 말들을 여고 사실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게 우리 교회에 그분들이 한 번 왔을 때 첫 번이자 마지막일 수 있어요. 평생에. 그때 결판을 봐야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 교회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요.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된 마음입니다. 은혜로 준비된 마음.
그래서 그들이 우리 교회를 발을 밟자마자 뭔가를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믿음 세월하고 싶어하는 그런 교회.
그런 교회를 위해서 같이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고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들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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