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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그리스도인의 기다림과 탄식

이요셉 · 롬8:16-28

제작일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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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인의 기다림과 탄식
본문: 롬 8:16-28
찬양: 부3,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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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의 말씀을 통해 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증거하며, 성령의 도움으로 영광을 받는 과정을 설명한다.

본문로마서 8:16-17시편행전 13:33
  • 로마서 8:16-17에서 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인정받는 증거이다.
  • 예수님의 삶과 신자의 삶은 고난을 통해 영광을 받는 점에서 유사하다.
  • 성령은 신자들을 위해 탄식하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향한 모든 것이 선을 이루는 것으로 강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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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

  • 로마서 8:16-17에서 성령이 신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증거한다고 말씀한다.
  •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유산(천국, 영생)을 물려받는 후사이다.
  • 신자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인정받는 증거이다.
  •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은 성령을 받는 것으로 증명되며, 이는 큰 영광이다.

예수님과 신자의 유사성

  • 예수님의 삶과 신자들의 삶은 비슷하다.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면서 영광을 얻었으므로 신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예수님의 세례 때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지만, 부활 때에야 완전히 하나님의 아들로 "낳힌" 것으로 보인다.
  • 그리스도인도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완전한 자녀가 되기까지는 고난과 탄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난과 탄식의 의미

  • 세상과 그리스도인 모두가 고난과 탄식을 보내고 있으며, 이는 이미 완성된 상태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사이의 고통이다.
  • 그리스도인의 탄식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다.
  • 성령도 그리스도인의 연약함을 대신하여 탄식하고 간구하신다.

성령의 역할과 믿는 자의 태도

  • 성령은 믿는 자들을 위해 탄식하신다.
  • 방음기도는 하나님의 탄식소리로 여겨진다.
  • 예수님도 연약함 속에서 기도하며 도움을 받으셨다.
  • 인간은 연약하여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일이 선을 이루기 위해 합력된다고 믿는다.
  • 믿는 자는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된다.
  • 성도는 지금 어떤 탄식을 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6절 17절 읽겠습니다 시작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아멘 오늘 이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기다림과 탄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911년 8월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라고 하는 이 그림이 도난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모나리자 그림 보신 적 있으시죠?
그 그림이 도난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식이 전해진 후에 파리 시민들이 굉장히 놀랐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그 박물관 자체를 폐쇄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얼마 뒤에 재개장을 했는데 그 그림은 없는 거겠죠?
그런데 수천 명의 사람이 박물관으로 와가지고 그 그림이 걸려있던 빈자리를 쳐다봤대요 수천 명이 와가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꽃을 가져다 놓기도 하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통해서 그 그림의 존재를 더 강하게 새겼다라는 거죠 사람이 이런 것 같습니다
소중함을 잘 모르다가 잃어버리고 나면 절실함을 더욱더 잘 깨닫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죠?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가족, 내 아내, 내 남편, 우리 가족, 자녀들 또 건강, 또 내가 지금 일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다 귀한 것들입니다 소중한 것들이죠 불평하지 마시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 가운데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성령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이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가장 더럽다라는 거죠 그런데 그 마음 가운데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 더러운 마음 가운데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15절, 16절을 보시면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이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는데
누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주 귀한 것이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간구해야 하고 또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이죠 우리가 어떤 유명한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보증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여러분 그러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좋은 게 뭔가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뭐가 달라집니까?
저희 집에 애들이 서울에 이사 와서 학교에 가서 학생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을 듣고 집에 와서 이야기를 간혹 하는데 부산에서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아이들이 하더래요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너희 엄마 아빠는 어느 대학교 나왔어?
여기가 그런 곳이에요 그리고 직장이 무엇이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걸 안다는 거죠 그런데 육신적으로 보자면 어떤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부모 아니겠습니까?
그 부모에 따라서 내 국적도 정해지고 많은 것도 정해지죠 그래서 사람들을 보면 그 부모를 벗어나는 사람 넘어서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누가 내 부모가 되는가는 우리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의 부모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17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만 받을 수 있는 게 있어요 뭘까요?
17절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녀이면 후사이다 후사가 무슨 뜻입니까?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뜻이죠 우리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유산은 무엇을 말할까요?
천국 영생을 말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부모도 물려줄 수 없는 천국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다라는 거죠 나사로가 지금 아버지의 폼에 안겨있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토록 만족과 평안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끝까지 잃어버리지 말고 잘 지키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17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와 그리고 예수님 사이에 평행이론이 적용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행이론이 무슨 말이죠?
요즘에 많이 쓰는 말이죠 어떤 한 사람의 삶의 흐름이 다른 사람에게 비슷한 구조로 적용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삶이 비슷해진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맞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죠?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일컬어서 뭐라고 말하냐면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은 그 뒤에 아들들이 있다는 거죠 그 아들들이 누굴까요?
우리 성도들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다 같은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 비슷해진다는 거예요 비슷해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어떤 점에서 비슷해진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17절을 보세요 어떤 점에서 비슷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어떤 점에서 비슷해진다고 하고 있습니까?
고난받는다는 거예요 예수님처럼 영광을 얻기 위해서 우리도 고난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삶과 비슷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역사도 예수님의 삶과 비슷해지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좋은 거 입고 좋은 거 먹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사셨습니까?
아니죠?
히브리서 4장 15절을 보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삶이 어땠냐면 어려웠다는 거예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예수님이 다 겪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섬길 때
미움까지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태어나셔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그 기간은 사실은 고난의 기간이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삶이 이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다들의 삶이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도 그렇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 그와 함께 고난을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죠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하고 굉장히 다른 분보다는 비슷한 분이 좀 더 많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평안한 걸 좋아합니다.
안전한 걸 좋아합니다.
뭐 아니면 도 라는 식으로 제가 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도 있더라고요.
인생은 한 번뿐인데 적당히가 어딨냐.
뭐 아니면 도지.
한번 걸어보는 거지.
이런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안전하고 평안한 걸 좋아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뭐 아니면 도 인분 계십니까?
뭐 다양하겠죠.
그래서 저는 이제 무난한 선택을 하고 또 자연스러운 선택을 하고 그 안에서 만족할 줄 알고 또 자족하는 삶을 살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보면 이런 사람들을 그릇이 작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죠? 그릇이 작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합니다.
그것을 크게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권한이 없고 어려운 일이 없느냐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조심조심 살펴가면서 밟으면서 살아나가도 권한이 없느냐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리 성도인들의 삶을 보니까 어떤 분들은 크게 잘못하는 것 같지 않은데 삶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뭘 잘못해서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잘못하면 삶에 권한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죄를 짓지 않아도 권한이 온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권한을 받아야 예수님처럼 영광을 얻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거듭난 이후에 권한이 없으면 이상한 겁니다.
권한이 없으면 내가 누군가 한번 생각을 해봐야 돼요.
그렇죠?
오늘 말씀을 이렇게 비유를 하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습니다.
그 열매를 보면 여러분 뭐라고 부르십니까?
저거?
어렵습니까?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다고 말했잖아요.
뭐라고 부릅니까?
저거 사과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바로 따서 먹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죠.
반드시 기다립니다.
익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는데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가지고 낮에는 뜨거운 해 저녁에는 차가운 이슬을 계속 맞아야 합니다.
계속 버텨야 합니다.
그렇죠?
이것을 이미 그리고 아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미 사과지 않습니까?
사과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과예요?
아니에요.
사과인데 이미 사과인데 아직 사과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다 이해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이것을 우리가 볼 수 있고 이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문제를 만나는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이는 내가 기뻐하는 자고 나의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예요?
하나님의 아들이죠.
그렇죠?
그런데 그런 말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입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10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향해서 너는 내 아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렇게 말했어요.
이 오늘이 언제일까요?
이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일까요?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 내용을 읽어보시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신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내가 너를 낳았다.
너는 내 아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오늘 예수님의 부활하신 이 오늘 이전에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아들이죠.
그렇죠?
왜냐하면 세례받을 때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그렇죠?
저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봐주시고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가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하나님이 내가 너를 낳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낳았다 하기 전에는 아들이에요 아니에요?
그렇죠?
이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세례를 받을 때 결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날에 수확을 했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시간 있지 않습니까?
결실과 수확 사이에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 시간이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까?
고난으로 채워져 있다는 거예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심지어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까요?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사실 온 세상이 이 고난의 시간을 탄식하면서 보내고 있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 세상을 이 세상을 향해서 귀를 열고 이 세상의 소리를 들어보면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가 뭘까요?
탄식 소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키워드는 탄식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19절부터 22절을 보면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22절을 보면 피조물들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한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23절부터 25절을 보시면 이제 그리스도인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탄식하는 게 뭡니까?
탄식 한번 해보세요.
아휴 이게 탄식이죠.
그렇죠?
한숨과 신음이 섞인 것이 탄식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일까요?
26절을 보면 이제 누가 탄식합니까?
성령께서 또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땅이 꺼져라 이렇게 한숨 쉬면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우리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절부터 22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19절에서 22절 읽겠습니다.
시작!
피조물에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오 오직 굴복해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에 종로를 탄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에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안하니 여기서 말하는 것은 피조물이 피조물이 피조물이 탄식한다고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은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데요 이렇게 생각을 해보실 바랍니다 성경의 시작 무엇입니까 성경의 제일 첫 번째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천지 창조이죠 성경의 제일 끝에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구원이지 않습니까 택한 받은 자들이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이미와 아직으로 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이죠 그런데 그것은 겨우 결실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게 다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요 창조와 재림 사이에 뭐가 있을까요 탄식이 있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 피조물
다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 보이십니까?
세상이 다 탄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고 있고 행복해 보입니까?
여러분 어떻게 보이십니까?
다 맞는 거죠.
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해보세요.
세상을 좀 오래 사셨으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면 욕심에 눈이 멀어가지고 사람이 욕심으로 이 세상 시스템을 세우잖아요.
그리고 그 가운데는 악질적인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나쁜 사람들도 있죠.
그리고 아주 교활한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보면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세상이 이런가?
이런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철양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말을 전혀 이해를 못하십니까?
이해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해하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어떤 직장의 상사가 계속 나를 괴롭혀요.
그래서 미칠 것 같아요.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모습을 봤어요.
어떤 걸 봤냐면 그 상사가 다른 그 더위의 사람들한테 갈굼 받는 걸 본 거예요.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이 그렇구나.
그 속에서 저도 어떻게 한번 살아보려고 저렇게 하는 것밖에 안 되는구나.
그래서 불쌍하다는 거죠.
나를 갈구고 있지만 철양하다는 것입니다.
20절 21절을 보면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탄식 소리가 들리지 않고 세상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만 보여가지고 나도 그들처럼 돼야지 그러면 좀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20절 21절을 보시면요.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피조물이 세상 사람들이 허무한데 굴복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서 헛된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다른 것으로 그 뭐라도 자기를 좀 채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없으니까 다른 거라도 자기 마음을 채우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가운데서 죄라도 지어서 자기를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보면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뭐라도 내가 좀 채워야 되겠다.
갈급해가지고 죄라도 지어서 그래도 나는 먹고 살아야지 만족을 얻어야지 이런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썩어짐에 종로릇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를 지어서라도 뭐라도 자기를 채워야 되는데 그러나 그들이 죽음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어쩔 수 없다라는 거죠.
그렇죠?
이것이 세상의 현재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네팔에서 홍수가 났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 뉴스는 여러분들께서 다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네팔에서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고 세계에 있는 강대국들한테 청구서를 보냈습니다.
이 일이 왜 생겼느냐.
너희들 나라에서 탄소를 배출했기 때문에 그 피해를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아니냐.
하고 청구서를 보냈다는 거예요.
이것이 세상의 비참함이죠.
세상이 지금 망해가고 있습니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멈출 수가 없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습을 보면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양쪽이 벼랑인 어떤 아주 좁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앞에는 뭐가 있을까요?
벽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면 그렇게 가면 벽에 부딪힙니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습니까?
멈추면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 망해가는 걸 알지만 세상이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세상의 비참함이죠.
이것이 세상의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철양함이죠.
세상이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이미와 아직 사이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결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탄식하고 있습니다.
23절부터 25절을 보겠습니다.
23절에서 25절 읽겠습니다. 시작 23절에서 25절을 보면 23절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 양자 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양자 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이미 양자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삶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잖아요.
그래서 양자의 영을 받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무슨 양자 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죠.
여러분 우리 구원의 완성이 뭘까요?
제일 끝에 뭐가 있을까요?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에 이르기까지는 우리가 아직 읽지 않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마지막에는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몸을 가지고 승천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거기까지 이르러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부활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예요.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무엇일까요?
고난과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난과 탄식은 뭘까요?
여러분 탄식하고 계십니까?
이 고난과 탄식은 뭘까요?
세상 사는 게 힘들어서 탄식하는 걸까요?
그런 탄식은 저 세상 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네 하는 탄식은 세상에도 많이 있어요.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탄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탄식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내가 예수님처럼 변화되고 내가 예수님이 자기를 잘하신 것처럼 나도 그 맡은 일을 잘해야 될 텐데 그래서 나도 내 일을 다 마치고 무르익은 자가 되어야 될 텐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 일을 다 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그래야 될 텐데
이런 탄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내 모습을 보면 어때요?
너무 부족한 거예요.
아직 너무 먼 것입니다.
너무 부족해서 더 열심히 해야 될 텐데 더 열심히 할 힘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탄식하는 거겠죠.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렵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살면 세상에서 손해봅니다.
그렇죠?
믿음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며 살면 손해봅니다.
눈 한번 딱 감으면 잡을 수 있는 것도 못 잡아요.
그렇죠?
그리고 내가 이제 이 나이가 돼서 내가 깨닫고 보니 과거를 보니까 내가 너무 잘못 살았어요.
그래서 이미 그때 인생이 많이 꼬였어.
왜?
내가 죄를 지어가지고 많이 꼬여가지고 내가 고난을 많이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저래 삶이 힘들어서 내가 이걸 다 받아들이고 내가 좀 변화해야지 내가 이제 좀 달라져야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게 또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들으면 매맞는 것 같고 나를 향해서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면목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네.
그런 것일까요? 이런 단식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예수님처럼 잘하고 싶은데 우리 일꾼 가운데서 잘하고 싶은데 잘 못해서 우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어떤 대만 목자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분이 원래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군인 출신이었는데 군인 생활을 오래 하다가 이후에 신앙을 하고 목회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돼서 우울증에 걸렸대요.
왜 그럴까요? 저는 이름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고 그냥 이야기만 들었는데 제가 상상한 겁니다.
군대는 좀 그래도 편한 게 있어요.
명령을 하면 들으니까 그 세계 속에서 오래 살아왔습니다.
철저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왔죠.
그런데 교회 와서 보니까 명령을 했는데 안 들어.
그래서 화살을 누구한테 쏜 걸까요? 자기한테 쏜 거죠. 자기한테.
얼마나 자책을 했을까요? 마땅히 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해는 됩니다.
그런 일꾼들이 있다라는 거죠.
또 자기의 연약한 부족함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요.
내가 내 부족함을 아는데도 극복하지 못해서 실망해서 우는 성도들도 있다는 거죠.
이게 그리스도인의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만족, 기쁨,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만하게 살면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평안을 누리면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또한 탄식이 있다는 거예요.
자기를 볼 때 피곤함과 무능함에 대한 탄식이죠.
바울도 그랬습니다. 여러분.
바울이요. 어느 지역에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거기가 변질되었대요. 변질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 하겠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저는 이렇게 말하기 힘들 것 같아요.
한 번 하는 것은 해도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느라 힘드셨죠?
다시 하라고 하면 하시겠어요?
아니요.
아니요.
다시 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가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내가 그래 다시 하겠다.
이 말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중에 바울 사도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빌리보서를 보면 1장 23자로 보면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세상은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너무 고난을 많이 했고 수고를 많이 했고 피곤했기 때문에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나 너희들 때문에 가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죠.
이것이 탄식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탄식이죠.
저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만약에 이런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니잖아?
이렇게 말하실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에게 이런 탄식이 있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탄식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이죠.
그런 탄식이 없이 그냥 살아간다면 죽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마지막 탄식을 보겠습니다.
26절에서 28절입니다.
26절에서 28절 읽겠습니다.
시작!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자, 여기 보시면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치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과 같아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해가 뜨면 햇빛을 맞아야 되고 이슬이 내리면 이슬을 맞아야 합니다.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대롱대롱 매달려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 말씀을 읽고 성령께서 언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실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실까 어떤 분은 제가 이런 말을 들어봤는데 우리가 방음기도를 하잖아요.
그 방음기도가 하나님의 탄식소리라는 거예요.
이런 걸 뭐라고 그러냐면 아전인수라고 하죠.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탄식할 때 우리를 위해서 탄식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몸의 구속을 위해서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탄식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은 확실하죠.
그죠?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 아니 돕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탄식해야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잘하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겠고 힘도 없고 하나님 저 너무 뭐라고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 힘들어요.
이렇게 탄식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예수님도 탄식하셨습니다.
겟세만의 동산에서 십자가를 넘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산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기도를 천사가 와서 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움이 없이는 그걸 넘어갈 수가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래도 평안하게 그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결론이죠.
여러분 우리는 연약합니다.
무엇을 구해야 되고 또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릅니다.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지도 모를 정도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26절을 보면 마땅히 빌 봐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죠.
아마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여러분 아시면 오늘 여러분의 기도 제목이 바뀔 거예요.
그죠?
틀림이 없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우리가 안다면 오늘 기도 제목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른다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연약함이죠.
그죠?
우리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할 줄도 모르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과처럼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아는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28절을 보면 그러나 우리가 알거니와 이렇게 말하고 있죠.
무엇을 압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에게는 그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런 저런 일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것입니다.
이건 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심초사 이것을 해야 될까 저것을 해야 될까 노심초사하지 않고 내 삶에 주원을 지는 일을 만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받으면 된다라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탄식하고 계십니까?
온 세상에 탄식 가운데 계십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에 나온 탄식을 하고 계십니까?
성령의 위로를 받으시는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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